소설은 부산 발 신경(新京, 만주국 수도, 지금의 장춘)행 급행열차 식당에 모여 술자리를 하는 네 명의 남자들로부터 시작한다. 광고회사원, 축산회사원, 조선신문 동경지국 기자 등 번듯한 직업을 갖고 있는 이들은 일본에서 함께 대학을 다닌 동창생이다. 지금 모두 동경에서 일하고 있으며, 연말 휴가를 맞아 귀향하던 중 부산에서 만났다. 술이 얼큰해지자 신문기자 친구는 신경행 열차에 오를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며 그에 대해 회상하기 시작한다. 그의 이름을 알지는 못하고 당시 사람들이 부르던 대로 왕백작이라고 칭했다. 신문기자 친구가 왕백작을 처음 만난 것은 3년 전 동경에 있는 경찰서 유치장에서였다. 그는 유치장에서 우스꽝스러운 기행으로 주변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곤 했지만 예상 밖에 그의 아버지는 조선에서 도지사로 있었다.
고전본문
그 후 아마 재작년 지금쯤의 일인가 싶다. 나는 다시금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아니 오히려 갱생한 것이라 할까. 그리고 바로 이 경부선 열차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도중이었다. 나는 실로 그때에 다시 한번 이 왕백작을 만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드디어 무서운 일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하여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나는 그때 일을 생각하면 이상한 생각이 든다. 괴로워진다. 그리고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그렇다. 나는 갱생이라는 인생의 재출발 벽두에 있어서 또 하나의 큰 죄를 저지른 것처럼 생각된다.
…
그런데 기차 속은 만주 광야로 이주하는 이민군들로 가득 찼었다. 그들은 짐짝과 같이 웅크리고 쭈그리고 쓰러지고 혹은 넘어지고 모로 눕기도 하고자리에서 비어져 나온 사람은 통로에서 타구를 안은 채 세상 모르게 잠들고 있다. 모두들 무던히 피곤한 듯 침침히 잠이 들어 누구 하나 까닥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때때로 어린애들이 킹킹 보채인다. 여기저기서 부인네들은 구역질을 하고.── 끈으로 꾀어 돌더구(돌로 만든 절구통)에 매어단 바가지는 서로 마주치며 달가락 달가락 소리를 내고 있다.
나는 그 한 모퉁이에 움츠리고 있었다. 내 아무것도 생각지 않으랴 과거의 일은 과거대로 묻어버리고 말리라고 눈을 감은 채였다. 그러나 나는 절망하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는 내 체내에 새 생명의 피와 힘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 저주받을 풍수해로 말미암아 논 ․ 밭 ․ 집을 몽땅 띄워버리니 백성들이 이제부터 새로운 광명을 찾아 멀리 광야로 출발함을 볼 때 나는 더욱더욱 자기도 용기를 내어 갱생치 않으면 안 되겠다.
새로운 생명을 다시금 찾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나는 혼자 흥분한 나머지 차츰 체열이 생겨 거의 상기까지 할 지경이 되었다.
…
그도 나를 알아차린 듯 갑자기 눈을 휘둥그렇게 뜨더니만 히죽 웃는다. 그 웃는 얼굴을 보고는 나도 무엇이라 소리를 쳤다. 그것은 언제인가 A서 특고실에서 내 앞에 나타나 히죽이 웃던 왕백작이 틀림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엎어질 듯 비틀거리며 가까이 오더니만 덥썩 나한테로 달겨붙는다. 술냄새가 확 코를 찌른다.
“동경의 동지!”
이렇게 그는 아무 거리낌없이 다짜로 부르짖었다. 술기운 때문에 이전보다도 더욱 혀가 돌아가지 않는 일본 말을 쓴다.
“응 이게 웬일인가, 대체 자네는 그 후 무사했는가. 얼굴빛이 아주 나쁘구먼.”
“어서 여기라도 좀 앉게나.”
…
그는 다시 괴로운 소리를 내며 신음하였다.
“나는 아아 지금 당장 내 자신으로부터도 복수를 받고 있는 터이야 목줄을 졸라매구 있는 터이야. 희망두 없구 슬픔도 없구 그리구 또 목적조차 없구…… 아아 나는 이 이민 열차에 탔을 때만이 행복인걸 어떡하나. 나는 그들과 같이 울 수가 있구 부르짖을 수가 있어.”
“하나 이 사람들은 희망을 붙들고 가는 것이지 슬퍼하러 가는 것은 아닐 텐데.”
“그게야 아무렴 어때 나는 그냥 그들과 같은 차로 같은 방향으로 간다는 것만이 기뻐 죽겠어. 그리구 같이 울기두 하구 부르짖는 것두 함께 한다는 것이. 그러나 어떡허나 나는 어떡허나 이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서면 나는 혼자서 집에 오지 않으면 안 되니 나는 그때 생각을 하면…….”
하고 그는 또 쿨적쿨적 울기 시작하였다. 나는 더욱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나 어쩐지 그의 일이 뜻없이 측은히 생각되어 나도 덩달아 같이 슬퍼하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냉정히 생각한다면 이런 불쌍한 사람이 어디 있을 것인가. 이런 사람이야말로 차츰 멸망할 인간이라고 할 것이다.
-김사량, <<유치장에서 만난 사나이> 中
토론하기
(1) 왕백작이 만주이민을 떠나는 사람들과 함께 만주행 열차를 타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2) 일본 식민지 시기에 만주 이주에 대해 조사해 보자.
해설읽기
그로부터 1년 쯤 후. 신문기자인 나는 지금 타고 있는 이 신경행 경부선 열차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열차는 만주 광야로 떠나는 이민자들로 가득 하다. 통로에 짐짝처럼 웅크려 있는 사람들 틈에서 신문기자 나 또한 움츠려있다. 사실 그날은 신문기자에게 “갱생이라는 인생의 재출발 벽두”의 날이다. 약 1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자유로운 몸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타고 있었다. 이러한 자유는 그가 아마도 일종의 ‘전향’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열차 안에서 그는 “아무 것도 생각지 않겠다”고, “과거의 일은 과거대로 묻어 버리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이 열차를 타고 있는 사람들은 풍수해로 인해 논과 밭, 집을 모두 날아버리고, “이제부터 새로운 광명을 찾아 멀리 광야로 출발”하는 사람들이다. 신문기자는 이들을 보면서 자신도 더욱 용기를 내어야겠다고 스스로 삶의 의지를 북돋으며 상기되어 있다. 이제는 시대에 맞추어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은 모든 것을 잃고 어쩔 수 없이 식민 제국이 세운 괴뢰 국가 만주로 향하는 사람들에게서도 희망을 읽어내었다. 지난날 자신을 사로잡은 사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갱생을 다짐하던 바로 그 때, 이민자들로 이미 북새통이 된 열차 안에서 꺼먼 외투에 흰 명주 마후라를 걸친 한 신사가 비틀비틀 들어선다. 그들은 곧장 서로를 알아보았다. 사상범으로 붙잡혀 같은 유치장에 있었던 이력을 강조하려는 듯 왕백작이 그를 ‘동경의 동지’라고 부르며 다가왔다. 다시 만난 왕백작은 혀가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술에 취해 있었다.
두 번째 만난 왕백작은 그가 좋아하는 사상범들과 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조선에서 삶의 터전을 잃고 만주로 이주하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있다. 첫 번째 만남에서는 그는 아나키스트도 아니고 ‘불온한’ 사상범도 아니면서 유치장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이번 만남에서는 자신은 튼튼한 삶의 터전을 갖고 있으면서도 삶의 터전이 파괴되어 만주행 이민을 택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신경행 열차에 올라 타 있다. “통곡을 하구 싶어”서 “큰 소리를 지르며 통곡을 하고 싶어”서 이민열차에 오르는 것이라고 한다. 동경의 유치장에서 만주행 열차로 장소가 바뀌었을 뿐 설명하기 어려운 그의 기이한 행동은 오히려 심해졌다. 그는 실성한 사람처럼 에헤헤 웃어대다가, 울기 시작한다. 이들에게서 희망과 갱생을 발견한 신문기자와 달리, 왕백작은 이 열차와 이 사람들 속에서 “절대 고독”과 “무서운 절망”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웃다 울다, 미친 사람처럼 난동을 부리더니, 결국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진다.
왕백작과 신문기자의 두 번의 만남은 처음에는 동경의 어느 경찰서의 유치장에서, 두 번째는 만주행 열차에서 이루어졌다. 유치장은 범법자들의 공간이다. 이때는 두 사람 모두 어떤 이유에서건 일본 제국의 법을 위반했다. 두 번째 만난 열차에서 두 사람은 다른 모습이다. 신문기자는 갱생을 염원하며 과거의 일을 잊고 눈앞에 있는 현실의 사람들에도 눈감고자 한다.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희망에 가득 차 있다고 왜곡하기도 한다. 왕백작은 아무 쓸모없이 유치장에 갇혔던 것처럼, 만주 이민자들을 위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으면서 열차를 타며 시간을 보낸다. 뭔가를 하고 싶고 해야겠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들을 그냥 떠나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용기 내어 무언가를 하지도 못한다. 무력함을 넘어서 기이하고 기괴한 모습만이 남는다.
왕백작은 사상범인 척, 만주 이주자인 척 한다. 아니 백작이 아닌 척, 백만장자가 아닌 척, 식민 제국에 복무하는 관료의 아들이 아닌 척 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이 척하기는 세상을 속이기 위해서라기보다 왕백작 자신을 속이기 위한 것이다. 자신 스스로를 속일 수 있다면, 그래서 유치장에 갇히거나 이민자들의 대열에서 통곡할 수 있다면, 그는 세상에 맞설 자신이 없는 스스로를 탓하거나 죄의식을 갖지 않아도 된다. 세상이 필요로 하고 내가 간절히 원하는 영웅 상을 체현할 수 없을 때, 정신은 분열되기 십상이다. 그의 당당하다가 비굴한 모습, 헤헤거리다가 통곡하는 모습, 일본어와 조선어를 섞어 쓰는 모습 등은 분열된 자아의 흔적이다.
키워드
만주, 이민, 왕백작, 유치장, 전향, 정신 분열
전후맥락
소설은 부산 발 신경(新京, 만주국 수도, 지금의 장춘)행 급행열차 식당에 모여 술자리를 하는 네 명의 남자들로부터 시작한다. 광고회사원, 축산회사원, 조선신문 동경지국 기자 등 번듯한 직업을 갖고 있는 이들은 일본에서 함께 대학을 다닌 동창생이다. 지금 모두 동경에서 일하고 있으며, 연말 휴가를 맞아 귀향하던 중 부산에서 만났다. 술이 얼큰해지자 신문기자 친구는 신경행 열차에 오를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며 그에 대해 회상하기 시작한다. 그의 이름을 알지는 못하고 당시 사람들이 부르던 대로 왕백작이라고 칭했다. 신문기자 친구가 왕백작을 처음 만난 것은 3년 전 동경에 있는 경찰서 유치장에서였다. 그는 유치장에서 우스꽝스러운 기행으로 주변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곤 했지만 예상 밖에 그의 아버지는 조선에서 도지사로 있었다.
고전본문
그 후 아마 재작년 지금쯤의 일인가 싶다. 나는 다시금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아니 오히려 갱생한 것이라 할까. 그리고 바로 이 경부선 열차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도중이었다. 나는 실로 그때에 다시 한번 이 왕백작을 만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드디어 무서운 일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하여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나는 그때 일을 생각하면 이상한 생각이 든다. 괴로워진다. 그리고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그렇다. 나는 갱생이라는 인생의 재출발 벽두에 있어서 또 하나의 큰 죄를 저지른 것처럼 생각된다.
…
그런데 기차 속은 만주 광야로 이주하는 이민군들로 가득 찼었다. 그들은 짐짝과 같이 웅크리고 쭈그리고 쓰러지고 혹은 넘어지고 모로 눕기도 하고자리에서 비어져 나온 사람은 통로에서 타구를 안은 채 세상 모르게 잠들고 있다. 모두들 무던히 피곤한 듯 침침히 잠이 들어 누구 하나 까닥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때때로 어린애들이 킹킹 보채인다. 여기저기서 부인네들은 구역질을 하고.── 끈으로 꾀어 돌더구(돌로 만든 절구통)에 매어단 바가지는 서로 마주치며 달가락 달가락 소리를 내고 있다.
나는 그 한 모퉁이에 움츠리고 있었다. 내 아무것도 생각지 않으랴 과거의 일은 과거대로 묻어버리고 말리라고 눈을 감은 채였다. 그러나 나는 절망하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는 내 체내에 새 생명의 피와 힘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 저주받을 풍수해로 말미암아 논 ․ 밭 ․ 집을 몽땅 띄워버리니 백성들이 이제부터 새로운 광명을 찾아 멀리 광야로 출발함을 볼 때 나는 더욱더욱 자기도 용기를 내어 갱생치 않으면 안 되겠다.
새로운 생명을 다시금 찾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나는 혼자 흥분한 나머지 차츰 체열이 생겨 거의 상기까지 할 지경이 되었다.
…
그도 나를 알아차린 듯 갑자기 눈을 휘둥그렇게 뜨더니만 히죽 웃는다. 그 웃는 얼굴을 보고는 나도 무엇이라 소리를 쳤다. 그것은 언제인가 A서 특고실에서 내 앞에 나타나 히죽이 웃던 왕백작이 틀림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엎어질 듯 비틀거리며 가까이 오더니만 덥썩 나한테로 달겨붙는다. 술냄새가 확 코를 찌른다.
“동경의 동지!”
이렇게 그는 아무 거리낌없이 다짜로 부르짖었다. 술기운 때문에 이전보다도 더욱 혀가 돌아가지 않는 일본 말을 쓴다.
“응 이게 웬일인가, 대체 자네는 그 후 무사했는가. 얼굴빛이 아주 나쁘구먼.”
“어서 여기라도 좀 앉게나.”
…
그는 다시 괴로운 소리를 내며 신음하였다.
“나는 아아 지금 당장 내 자신으로부터도 복수를 받고 있는 터이야 목줄을 졸라매구 있는 터이야. 희망두 없구 슬픔도 없구 그리구 또 목적조차 없구…… 아아 나는 이 이민 열차에 탔을 때만이 행복인걸 어떡하나. 나는 그들과 같이 울 수가 있구 부르짖을 수가 있어.”
“하나 이 사람들은 희망을 붙들고 가는 것이지 슬퍼하러 가는 것은 아닐 텐데.”
“그게야 아무렴 어때 나는 그냥 그들과 같은 차로 같은 방향으로 간다는 것만이 기뻐 죽겠어. 그리구 같이 울기두 하구 부르짖는 것두 함께 한다는 것이. 그러나 어떡허나 나는 어떡허나 이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서면 나는 혼자서 집에 오지 않으면 안 되니 나는 그때 생각을 하면…….”
하고 그는 또 쿨적쿨적 울기 시작하였다. 나는 더욱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나 어쩐지 그의 일이 뜻없이 측은히 생각되어 나도 덩달아 같이 슬퍼하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냉정히 생각한다면 이런 불쌍한 사람이 어디 있을 것인가. 이런 사람이야말로 차츰 멸망할 인간이라고 할 것이다.
-김사량, <<유치장에서 만난 사나이> 中
토론하기
(1) 왕백작이 만주이민을 떠나는 사람들과 함께 만주행 열차를 타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2) 일본 식민지 시기에 만주 이주에 대해 조사해 보자.
해설읽기
그로부터 1년 쯤 후. 신문기자인 나는 지금 타고 있는 이 신경행 경부선 열차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열차는 만주 광야로 떠나는 이민자들로 가득 하다. 통로에 짐짝처럼 웅크려 있는 사람들 틈에서 신문기자 나 또한 움츠려있다. 사실 그날은 신문기자에게 “갱생이라는 인생의 재출발 벽두”의 날이다. 약 1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자유로운 몸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타고 있었다. 이러한 자유는 그가 아마도 일종의 ‘전향’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열차 안에서 그는 “아무 것도 생각지 않겠다”고, “과거의 일은 과거대로 묻어 버리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이 열차를 타고 있는 사람들은 풍수해로 인해 논과 밭, 집을 모두 날아버리고, “이제부터 새로운 광명을 찾아 멀리 광야로 출발”하는 사람들이다. 신문기자는 이들을 보면서 자신도 더욱 용기를 내어야겠다고 스스로 삶의 의지를 북돋으며 상기되어 있다. 이제는 시대에 맞추어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은 모든 것을 잃고 어쩔 수 없이 식민 제국이 세운 괴뢰 국가 만주로 향하는 사람들에게서도 희망을 읽어내었다. 지난날 자신을 사로잡은 사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갱생을 다짐하던 바로 그 때, 이민자들로 이미 북새통이 된 열차 안에서 꺼먼 외투에 흰 명주 마후라를 걸친 한 신사가 비틀비틀 들어선다. 그들은 곧장 서로를 알아보았다. 사상범으로 붙잡혀 같은 유치장에 있었던 이력을 강조하려는 듯 왕백작이 그를 ‘동경의 동지’라고 부르며 다가왔다. 다시 만난 왕백작은 혀가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술에 취해 있었다.
두 번째 만난 왕백작은 그가 좋아하는 사상범들과 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조선에서 삶의 터전을 잃고 만주로 이주하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있다. 첫 번째 만남에서는 그는 아나키스트도 아니고 ‘불온한’ 사상범도 아니면서 유치장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이번 만남에서는 자신은 튼튼한 삶의 터전을 갖고 있으면서도 삶의 터전이 파괴되어 만주행 이민을 택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신경행 열차에 올라 타 있다. “통곡을 하구 싶어”서 “큰 소리를 지르며 통곡을 하고 싶어”서 이민열차에 오르는 것이라고 한다. 동경의 유치장에서 만주행 열차로 장소가 바뀌었을 뿐 설명하기 어려운 그의 기이한 행동은 오히려 심해졌다. 그는 실성한 사람처럼 에헤헤 웃어대다가, 울기 시작한다. 이들에게서 희망과 갱생을 발견한 신문기자와 달리, 왕백작은 이 열차와 이 사람들 속에서 “절대 고독”과 “무서운 절망”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웃다 울다, 미친 사람처럼 난동을 부리더니, 결국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진다.
왕백작과 신문기자의 두 번의 만남은 처음에는 동경의 어느 경찰서의 유치장에서, 두 번째는 만주행 열차에서 이루어졌다. 유치장은 범법자들의 공간이다. 이때는 두 사람 모두 어떤 이유에서건 일본 제국의 법을 위반했다. 두 번째 만난 열차에서 두 사람은 다른 모습이다. 신문기자는 갱생을 염원하며 과거의 일을 잊고 눈앞에 있는 현실의 사람들에도 눈감고자 한다.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희망에 가득 차 있다고 왜곡하기도 한다. 왕백작은 아무 쓸모없이 유치장에 갇혔던 것처럼, 만주 이민자들을 위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으면서 열차를 타며 시간을 보낸다. 뭔가를 하고 싶고 해야겠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들을 그냥 떠나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용기 내어 무언가를 하지도 못한다. 무력함을 넘어서 기이하고 기괴한 모습만이 남는다.
왕백작은 사상범인 척, 만주 이주자인 척 한다. 아니 백작이 아닌 척, 백만장자가 아닌 척, 식민 제국에 복무하는 관료의 아들이 아닌 척 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이 척하기는 세상을 속이기 위해서라기보다 왕백작 자신을 속이기 위한 것이다. 자신 스스로를 속일 수 있다면, 그래서 유치장에 갇히거나 이민자들의 대열에서 통곡할 수 있다면, 그는 세상에 맞설 자신이 없는 스스로를 탓하거나 죄의식을 갖지 않아도 된다. 세상이 필요로 하고 내가 간절히 원하는 영웅 상을 체현할 수 없을 때, 정신은 분열되기 십상이다. 그의 당당하다가 비굴한 모습, 헤헤거리다가 통곡하는 모습, 일본어와 조선어를 섞어 쓰는 모습 등은 분열된 자아의 흔적이다.
키워드
만주, 이민, 왕백작, 유치장, 전향, 정신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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