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부산 발 신경(新京, 만주국 수도, 지금의 장춘)행 급행열차 식당에 모여 술자리를 하는 네 명의 남자들로부터 시작한다. 광고회사원, 축산회사원, 조선신문 동경지국 기자 등 번듯한 직업을 갖고 있는 이들은 일본에서 함께 대학을 다닌 동창생이다. 지금 모두 동경에서 일하고 있으며, 연말 휴가를 맞아 귀향하던 중 부산에서 만났다. 술이 얼큰해지자 신문기자 친구는 신경행 열차에 오를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며 그에 대해 회상하기 시작한다. 그의 이름을 알지는 못하고 당시 사람들이 부르던 대로 왕백작이라고 칭했다. 신문기자 친구가 왕백작을 처음 만난 것은 3년 전 동경에 있는 경찰서 유치장에서였다. 그는 유치장에서 우스꽝스러운 기행으로 주변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곤 했지만 예상 밖에 그의 아버지는 조선에서 도지사로 있었다.
고전본문
나는 작년 여름에 좀 조사할 것이 있어 강원도 산 속으로 들어갔었다. 그때에 수가 사나우려니까 열흘 동안이나 폭풍우가 계속되었다. 한강 상류에 아주 큰 창수로 탁류가 된 것이다. 어떤 날 그 강 쪽에서부터 사람 살리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어쩐지 낯익은 목소리 같아 뛰쳐나가 보았다. 중류 지대에 누아떼가 내려가고 있다. 그 위에 두서너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비 안개가 자욱하며 똑똑히는 보이지 않으나 그 중에는 양복 입은 사람도 하나 끼어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단말마의 소리를 내어 부르짖고 있는 모양이다. 그 몸 모양이 어쩐지 눈에 익은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 그것이 왕백작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도 나는 것이 물론 그럴싸해서이겠지만. 나는 그 후 서울 어느 젊은 목재 상인이 누아떼와 운명을 같이 하였다는 소리를 산읍에서 내려와서 들었다. 그러나 그 사내의 이름이 무엇이라는 것은 누구 하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렴. 그것이 왕백작이겠는가”고 광고장이라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번 봄의 일이다. 서울에 출장을 나와 종로에서 동대문 행 전차를 탔을 때이다. 바로 그게 반공 연습 당일이었다고 생각된다. 전차가 막 5 정 목 네거리를 지나가려 할 때였다. 그 길가에서는 경방 단원이 훈련을 받고 있었다.
별로 그다지 키가 크지 않은 한 사나이가 외줄로 쭉 늘어선 단원에게 훈시를 하고 있다. 나는 그 사내의 뒷모양밖에는 보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아무래도 그것이 왕백작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럼직도 한데.”
하고 나는 무릎을 치며 부르짖었다. 왜 내가 그렇게 부르짖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어쩐지 있음직한 일 같았기 때문이다.
“그럴 게야. 꼭 그게 왕백작임에 틀림없을 게야. 그는 전쟁이 벌어져 기뻐할 걸. 왜 그런고 하면 지금의 우리 나라는 현실적인 괴로움은 있지. 그러나 일정한 방향을 향하여 건국일치의 체제로 맥진에 맥진을 거듭하고 있으니 말일세. 그는 인제는 생활의 목표와 의의를 얻어 메었는지두 모르지.
경방단 반장쯤 넉넉하지 지냄직한 걸.’
모두들 묵묵히 끄덕이었다.
“그랬으면 좋은련만.”
하며 신문 기자는 한참 동안 비루잔을 들어다보더니 한숨을 짓는다. 그리고 또 다시 계속하였다.
“그러나 그 뒤 또 어떤 날……”
[출전] 김사량, 『유치장에서 만난 사나이』
토론하기
(1) 신문기자가 왕백작이 기차에서 죽었을 것이라 짐작하면서도 그 이후로 여러 곳에서 왕백작을 봤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 이 글의 저자인 김사량이 1940년대에 소설을 쓸 때 일본어로 썼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또 일본어로 쓴 소설이 문제가 된다면 왜일까?
해설읽기
신문기자는 작년에 조사차 강원도 산에 갈 일이 있었다. 열흘간 폭풍우가 계속되어 물이 불어나, 동물과 사람 두 세 명이 떠내려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중에 양복을 입은 사람이 끼어 있었는데, 그가 왕백작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후 전해들은 얘기는 목숨을 잃은 이 중에 서울의 젊은 목재 상인이 있다는 것이다.
또 올 봄에는 종로에서 전차를 타고 가던 중에 반공 훈련을 받는 경방단(식민지 말기 치안을 담당한 조직)원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무래도 왕백작이었을 것 같은 생각을 했다. 아마도 그가 열차에서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그는 전쟁이 벌어져 기뻐할 걸. 왜 그런고 하면 지금의 우리 나라는 현실적인 괴로움은 있지. 그러나 일정한 방향을 향하여 건국일치의 체제로 맥진에 맥진을 거듭하고 있으니 말일세. 그는 인제는 생활의 목표와 의의를 얻어 메었는지두 모르지. 경방단 반장쯤 넉넉하지 지냄직한 걸”. 나를 비롯해 곁에 있는 친구들 모두 에 있는 친구들 모두 맞장구친다. 그렇지만 신문기자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또 어떤 날은”…
신문기자는 죽어가는 왕백작을 그냥 내버려두고 기차를 내린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에 괴로워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가 죽지 않고 살아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가 만약 살았다면, 미치지 않고 살았다면 그의 삶의 행로는 어떠했을까? 백작이자 도지사인 아버지의 재산으로 목재상 사장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현실’에 휩쓸려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아니면 살기 위해 사상 개조를 하고, 갱생하여 광명을 찾았을지 모른다. 더 이상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과 좌표를 상실한 사람이 아니라, “전쟁이 벌어진 것을 기뻐하며”, “일정한 방향을 향하여”, “생활의 목표와 의의를” 메었을 것이다. 그는 새 시대의 방향에 맞는 생활인이 되어 보통의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신문기자와 나, 그리고 친구들 모두 “무지하고 광신적이며 또 그리고 곧잘 허풍을 떠는” 왕백작이 기차에서 죽지 않고 살았기를, 그래서 현실적인 인간이 되었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그런 바람이 실현되더라도 그는 여전히 현실을 모르기에 갑작스런 급류에 휩쓸리거나, 전쟁의 광기를 진짜 생활의 현장으로 착각하고 거기에서 삶의 목표를 찾게 될 뿐이다. 유치장과 만주행 열차를 떠돌아야 마음이 편한 왕백작에게 남겨진 두 가지 길은 방향을 완전히 상실해 어딘가로 휩쓸려가거나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식민 제국의 전시체제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길이다. 여전히 미쳐있거나, 급변하는 현실에 대응하지 못하거나, 전도된 현실을 진짜 현실이라 믿는 것. 마지막 선택은 열차 안에서 신문기자의 선택이기도 하다.
세상에 맞설 용기를 갖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두 왕백작과 같은 형상을 하지는 않는다. 대다수는 신문기자 또는 ‘나’의 모습일 것이다. 신문기자는 왕백작이 되고 싶어 흉내를 내고 척하는 진짜 사상범이었다. 그렇지만 1년의 수감 생활 후 그는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과거의 짐을 털어버린다. 만주로 떠밀려 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절망스런 삶에 눈을 감는다. 그들에게서 억지로 희망을 찾아내고 자신의 비겁함을 모른 척 하며, 새로운 광명의 시대에 걸맞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과거로부터 무사히 빠져 나온 것 같지만 실은 그가 발을 헛디뎌서 왕백작을 깔아뭉갰듯이, 그는 이후 전시체제에 동원되고, 식민제국의 괴뢰국으로 이민가고, 계급·민족의 2중 차별을 받고 있는 조선인들을 의도치 않게 깔아뭉갰을 것이다.
신문기자로부터 왕백작 얘기를 듣고 있는 ‘나’는 어떤가? ‘나’에 대한 정보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친구들 세 명의 직업을 말해주지만, ‘나’의 직업은 소개되지 않는다. ‘나’는 신문기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할 때의 나와 혼동되기도 한다. 아마도 ‘나’는 신문기자와 비슷한 사회적 위치와 시선을 가진 자일 터이다. 그렇지만 신문기자처럼 한 때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내보이고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다. 왕백작 같은 사람은 더욱 아니다. ‘나’는 철저히 숨어 있는 사람이다.
왕백작처럼 반쯤은 미쳐 있거나, 신문기자처럼 비겁해지거나, ‘나’처럼 철저히 익명으로 숨어 있거나…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할까?
키워드
만주, 식민지, 신문기자, 왕백작, 용기, 일본어
전후맥락
소설은 부산 발 신경(新京, 만주국 수도, 지금의 장춘)행 급행열차 식당에 모여 술자리를 하는 네 명의 남자들로부터 시작한다. 광고회사원, 축산회사원, 조선신문 동경지국 기자 등 번듯한 직업을 갖고 있는 이들은 일본에서 함께 대학을 다닌 동창생이다. 지금 모두 동경에서 일하고 있으며, 연말 휴가를 맞아 귀향하던 중 부산에서 만났다. 술이 얼큰해지자 신문기자 친구는 신경행 열차에 오를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며 그에 대해 회상하기 시작한다. 그의 이름을 알지는 못하고 당시 사람들이 부르던 대로 왕백작이라고 칭했다. 신문기자 친구가 왕백작을 처음 만난 것은 3년 전 동경에 있는 경찰서 유치장에서였다. 그는 유치장에서 우스꽝스러운 기행으로 주변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곤 했지만 예상 밖에 그의 아버지는 조선에서 도지사로 있었다.
고전본문
나는 작년 여름에 좀 조사할 것이 있어 강원도 산 속으로 들어갔었다. 그때에 수가 사나우려니까 열흘 동안이나 폭풍우가 계속되었다. 한강 상류에 아주 큰 창수로 탁류가 된 것이다. 어떤 날 그 강 쪽에서부터 사람 살리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어쩐지 낯익은 목소리 같아 뛰쳐나가 보았다. 중류 지대에 누아떼가 내려가고 있다. 그 위에 두서너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비 안개가 자욱하며 똑똑히는 보이지 않으나 그 중에는 양복 입은 사람도 하나 끼어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단말마의 소리를 내어 부르짖고 있는 모양이다. 그 몸 모양이 어쩐지 눈에 익은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 그것이 왕백작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도 나는 것이 물론 그럴싸해서이겠지만. 나는 그 후 서울 어느 젊은 목재 상인이 누아떼와 운명을 같이 하였다는 소리를 산읍에서 내려와서 들었다. 그러나 그 사내의 이름이 무엇이라는 것은 누구 하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렴. 그것이 왕백작이겠는가”고 광고장이라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번 봄의 일이다. 서울에 출장을 나와 종로에서 동대문 행 전차를 탔을 때이다. 바로 그게 반공 연습 당일이었다고 생각된다. 전차가 막 5 정 목 네거리를 지나가려 할 때였다. 그 길가에서는 경방 단원이 훈련을 받고 있었다.
별로 그다지 키가 크지 않은 한 사나이가 외줄로 쭉 늘어선 단원에게 훈시를 하고 있다. 나는 그 사내의 뒷모양밖에는 보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아무래도 그것이 왕백작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럼직도 한데.”
하고 나는 무릎을 치며 부르짖었다. 왜 내가 그렇게 부르짖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어쩐지 있음직한 일 같았기 때문이다.
“그럴 게야. 꼭 그게 왕백작임에 틀림없을 게야. 그는 전쟁이 벌어져 기뻐할 걸. 왜 그런고 하면 지금의 우리 나라는 현실적인 괴로움은 있지. 그러나 일정한 방향을 향하여 건국일치의 체제로 맥진에 맥진을 거듭하고 있으니 말일세. 그는 인제는 생활의 목표와 의의를 얻어 메었는지두 모르지.
경방단 반장쯤 넉넉하지 지냄직한 걸.’
모두들 묵묵히 끄덕이었다.
“그랬으면 좋은련만.”
하며 신문 기자는 한참 동안 비루잔을 들어다보더니 한숨을 짓는다. 그리고 또 다시 계속하였다.
“그러나 그 뒤 또 어떤 날……”
[출전] 김사량, 『유치장에서 만난 사나이』
토론하기
(1) 신문기자가 왕백작이 기차에서 죽었을 것이라 짐작하면서도 그 이후로 여러 곳에서 왕백작을 봤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 이 글의 저자인 김사량이 1940년대에 소설을 쓸 때 일본어로 썼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또 일본어로 쓴 소설이 문제가 된다면 왜일까?
해설읽기
신문기자는 작년에 조사차 강원도 산에 갈 일이 있었다. 열흘간 폭풍우가 계속되어 물이 불어나, 동물과 사람 두 세 명이 떠내려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중에 양복을 입은 사람이 끼어 있었는데, 그가 왕백작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후 전해들은 얘기는 목숨을 잃은 이 중에 서울의 젊은 목재 상인이 있다는 것이다.
또 올 봄에는 종로에서 전차를 타고 가던 중에 반공 훈련을 받는 경방단(식민지 말기 치안을 담당한 조직)원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무래도 왕백작이었을 것 같은 생각을 했다. 아마도 그가 열차에서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그는 전쟁이 벌어져 기뻐할 걸. 왜 그런고 하면 지금의 우리 나라는 현실적인 괴로움은 있지. 그러나 일정한 방향을 향하여 건국일치의 체제로 맥진에 맥진을 거듭하고 있으니 말일세. 그는 인제는 생활의 목표와 의의를 얻어 메었는지두 모르지. 경방단 반장쯤 넉넉하지 지냄직한 걸”. 나를 비롯해 곁에 있는 친구들 모두 에 있는 친구들 모두 맞장구친다. 그렇지만 신문기자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또 어떤 날은”…
신문기자는 죽어가는 왕백작을 그냥 내버려두고 기차를 내린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에 괴로워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가 죽지 않고 살아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가 만약 살았다면, 미치지 않고 살았다면 그의 삶의 행로는 어떠했을까? 백작이자 도지사인 아버지의 재산으로 목재상 사장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현실’에 휩쓸려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아니면 살기 위해 사상 개조를 하고, 갱생하여 광명을 찾았을지 모른다. 더 이상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과 좌표를 상실한 사람이 아니라, “전쟁이 벌어진 것을 기뻐하며”, “일정한 방향을 향하여”, “생활의 목표와 의의를” 메었을 것이다. 그는 새 시대의 방향에 맞는 생활인이 되어 보통의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신문기자와 나, 그리고 친구들 모두 “무지하고 광신적이며 또 그리고 곧잘 허풍을 떠는” 왕백작이 기차에서 죽지 않고 살았기를, 그래서 현실적인 인간이 되었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그런 바람이 실현되더라도 그는 여전히 현실을 모르기에 갑작스런 급류에 휩쓸리거나, 전쟁의 광기를 진짜 생활의 현장으로 착각하고 거기에서 삶의 목표를 찾게 될 뿐이다. 유치장과 만주행 열차를 떠돌아야 마음이 편한 왕백작에게 남겨진 두 가지 길은 방향을 완전히 상실해 어딘가로 휩쓸려가거나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식민 제국의 전시체제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길이다. 여전히 미쳐있거나, 급변하는 현실에 대응하지 못하거나, 전도된 현실을 진짜 현실이라 믿는 것. 마지막 선택은 열차 안에서 신문기자의 선택이기도 하다.
세상에 맞설 용기를 갖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두 왕백작과 같은 형상을 하지는 않는다. 대다수는 신문기자 또는 ‘나’의 모습일 것이다. 신문기자는 왕백작이 되고 싶어 흉내를 내고 척하는 진짜 사상범이었다. 그렇지만 1년의 수감 생활 후 그는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과거의 짐을 털어버린다. 만주로 떠밀려 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절망스런 삶에 눈을 감는다. 그들에게서 억지로 희망을 찾아내고 자신의 비겁함을 모른 척 하며, 새로운 광명의 시대에 걸맞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과거로부터 무사히 빠져 나온 것 같지만 실은 그가 발을 헛디뎌서 왕백작을 깔아뭉갰듯이, 그는 이후 전시체제에 동원되고, 식민제국의 괴뢰국으로 이민가고, 계급·민족의 2중 차별을 받고 있는 조선인들을 의도치 않게 깔아뭉갰을 것이다.
신문기자로부터 왕백작 얘기를 듣고 있는 ‘나’는 어떤가? ‘나’에 대한 정보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친구들 세 명의 직업을 말해주지만, ‘나’의 직업은 소개되지 않는다. ‘나’는 신문기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할 때의 나와 혼동되기도 한다. 아마도 ‘나’는 신문기자와 비슷한 사회적 위치와 시선을 가진 자일 터이다. 그렇지만 신문기자처럼 한 때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내보이고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다. 왕백작 같은 사람은 더욱 아니다. ‘나’는 철저히 숨어 있는 사람이다.
왕백작처럼 반쯤은 미쳐 있거나, 신문기자처럼 비겁해지거나, ‘나’처럼 철저히 익명으로 숨어 있거나…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할까?
키워드
만주, 식민지, 신문기자, 왕백작, 용기, 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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