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동의보감』맨 처음에 목차가 나오고 곧장 이정구가 쓴 서문과 허준이 쓴 서문(정식 명칭은 집례(集例))가 나온다. 본문은 이 두 편의 서문에서 발췌한 것이다. 『동의보감』은 분량과 내용이 모두 방대하고 전체 체제가 대단히 독창적인 의서였기에, 이런 책이 당시 어떻게 출간되었는지 밝혀둘 필요가 있었다(총 25권 25책. 한글 번역본의 분량은 『대역 동의보감』(동의보감출판사, 2005)을 기준으로 할 경우 총 2,500여 페이지다). 그래서 이 두 편의 서문에서는『동의보감』이라는 방대한 의서가 어떤 경위로 집필되었고, 특히 주안점을 둔 요소들은 무엇이었는지를 간결하지만 핵심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이 두 편의 서문이 끝나고 본론으로 넘어간다.
고전본문
의학을 하는 자들은 늘 황제(黃帝)와 기백을 말한다. (…) 그들은 의문점을 말하고 어려운 것을 드러내어 후세를 위해 그 법을 세웠으니, 의학계에 의서가 있은 지 이미 오래 되었다. (…) 수많은 학파가 끊임없이 생겨나 학설이 분분하였고, 부분을 표절하여 다투어 파벌을 만드니, 책이 많을수록 임상은 더욱 어두워져서 영추의 본래 뜻과 큰 차이가 난다. (……) 선조 대왕께서는 일찍이 (…….) 태의(太醫)인 신하 허준을 불러 다음과 같이 하교하셨다.
“요즘 중국의 의서를 보면 모두 용렬하고 조잡한 것만 모아 놓아 볼 만한 것이 없다. 마땅히 여러 의서를 널리 모아 하나의 책으로 편집하라. 또한 사람의 질병은 모두 조리와 섭생의 잘못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수양(修養)을 우선으로 하고 약물은 그 다음이어야 한다. (……) 가난한 시골과 외딴 마을은 의사와 약이 없어서 일찍 죽는 자가 많다. 우리 나라는 향약(鄕藥)이 많이 나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알지 못하니 마땅히 이들 약물을 분류하고 향약명을 함께 써서 백성들이 알기 쉽게 하라.”
신이 혼자 생각하건대 (….) 의약으로 백성의 요절을 구제하는 것이 실로 제왕(帝王)의 인정(仁政) 가운데 제일 먼저 하여야 할 어진 정치다. 그러나 의술은 책이 아니면 그 내용을 실을 수 없고, 책은 취사선택하지 않으면 정교하지 못하게 되며, 가려 뽑되 그것이 넓지 못하면 이치가 분명하지 않으며, 널리 전하지 못하면 혜택이 널리 미치지 못한다. (…)
신이 삼가 사람의 몸을 살펴보건대, 안으로는 오장육부가 있고 밖으로는 근육과 골격, 살결과 살, 피와 맥, 피부가 있어 그 형체를 이룬다. (…)
병든 사람으로 하여금 이 책을 펴보게 하면 병의 허실과 경중, 길흉과 생사의 조짐이 물이나 거울에 비친 것처럼 분명하여, 잘못 치료하여 요절하게 하는 우환이 거의 없을 것이다. (…)
옛 사람들의 처방에 들어가는 약재의 양과 숫자는 너무 많아 모두 갖추어 쓰기가 어렵다. 태평혜민화제국방의 한 첩에 들어가는 약물의 숫자가 너무 많으니 가난한 집에서 어찌 이를 다 갖추겠는가. (……) 옛 사람들은 “의학을 배우려면 먼저 본초를 읽어서 약성(藥性)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본초는 방대하고 번잡하며 여러 의가(醫家)의 논의가 한결같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르는 약재가 거의 반이나 된다. 지금 쓰이는 처방만을 골라 이 책에서는 신농본초경과 일화자주, 이고나 주진형의 요점만을 실었다. 또한 중국의 약과 우리 향약을 함께 실었는데 향약은 향명(鄕名)과 생산지, 채취 시기, 말리는 법을 써놓았으니 약을 갖추어 쓰기 쉬워서 멀리서 구하거나 얻기 어려운 폐해가 없을 것이다. (…….)
의학에 남과 북이라는 이름이 있은 지가 오래 되었다. 우리 나라는 동쪽에 치우쳐 있고 의학과 약의 도가 끊이지 않았으니 우리 나라의 의학은 동의(東醫)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감’이란 만물을 밝게 비추어 그 형체가 거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 이제 이 책을 펼쳐 한번 보면 병의 길흉과 경중이 맑은 거울처럼 밝혀질 것이다. 그러므로 마침내 [동의보감]이라고 이름지은 것은 옛 사람이 남긴 뜻을 본받은 것이다.
[동의보감] 중에서
토론하기
(1) 여기서는 사람의 질병을 기본적으로 조리와 섭생의 잘못 탓에 생긴다고 말하는데, 조선 중기의 의학자들은 몸 밖의 나쁜 기운이나 병을 일으키는 원인 같은 것을 거의 중시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당시 의사나 약물이 부족한 현실 때문에 이렇게 쓰게 된 것일까?
(2) 선조라고 하면 이순신을 질투하고 정사를 그르친 임금, 임진왜란 때 백성은 버려두고 중국 쪽으로 도망친 임금으로 유명하지만, 이 서문만 보자면 대단히 사려깊고, 일반 민중에게도 지극한 애정을 품은 임금인 것 같다. 사람은 본디 다면적 존재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선조라는 인물이 내게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각자 이야기해보자.
(3) 서문을 읽다 보면 병원보다는 공중보건소가 떠오른다. 실제로 동의보감을 세계 최초의 공중보건의서라고도 평가하기도 한다. 현재의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는 동의보감으로부터 어떤 점을 본받을 수 있을까?
해설읽기
황제는 중국의 전설적인 임금 중 한명이고 기백은 신하다. 이 둘이 문답 형식으로 한의학 이론의 토대를 설명하는 책이 황제내경이다. 이 책은 「소문(素問)」 81편, 영추(靈樞) 81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화자는 황제와 기백이지만 실제 책은 전국 시대에서 진한 시기 사이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소문」은 인체의 생리와 병리, 진단, 치료원칙, 약물, 예방, 의학사상 등 기본적인 의학이론과 임상을 총괄하고 있고, 「영추」는 경락과 침구 위주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요컨대 황제내경에는 한의학 이론의 기초가 되는 내용들이 담겨 있는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영추는 황제내경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이 서문에서는 선조가 허준에게 의서 편찬을 명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은 허준을 비롯해 어의(御醫) 양예수, 이명원, 김응탁, 정예남 등과 민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던 유의(儒醫) 정작 등 5인이 공동으로 편찬 작업을 시작했다. 다만 도중에 정유재란이 발발해 이 작업이 중단되었다가 훗날 다시 재개되었을 때 허준이 책임을 맡게 되고 끝까지 완료해 출간한 것도 허준에 의해서다.
전반부에 나오는 “신이 혼자 생각하건대”의 신은 이정구이며(당시 직제상 이정구가 허준의 상급자다), 이어서 후반부에 “신이 삼가 사람의 몸을 살펴보건대”의 신은 허준이다. 전반부의 제목은 「서문」이고 후반부는 「집례」인데 둘 다 서문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선조의 교시에서 알 수 있듯이 동의보감은 약물은 2차적이고,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어떻게 조리하고 섭생하느냐라고 보는 질병 및 의료관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또 극심한 전란 중에 편찬된 만큼 가난 때문에 질병에 더 취약해진 서민들의 처지를 최대한 고려하여 편집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향약을 중시하고 우리나라의 민간에서 불리는 이름을 함께 적어넣은 것에서도 비슷한 취지를 엿볼 수 있다.
동의보감의 1차 독자가 의원이 아니라 병든 사람이라는 점은 특히 의미심장하다. 실제로 “병든 사람으로 하여금 이 책을 펴보게 하면 병의 허실과 경중, 길흉과 생사의 조짐이 물이나 거울에 비친 것처럼 분명하여, 잘못 치료하여 요절하게 하는 우환이 거의 없을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의약으로 백성의 요절을 구제하는 것이 실로 제왕(帝王)의 인정(仁政, 어진 정치) 가운데 제일 먼저 하여야 할 어진 정치다.”라는 문장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약재의 양과 숫자가 너무 많거나 너무 적은 게 민중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인식, 그리고 그에 대한 깊은 배려도 동일한 맥락에서 의미심장하다.
신농본초경은 진한 시대(혹은 전국 시대)에 완성된 책이며 일화자주는 일찍이 흩어지고 분실되어 남아있지 않은 책이다. 이고와 주진형은 금나라와 원나라 시대의 의학가들이다.
동의보감이라는 제목에서 ‘동’을 단순히 중국이 아닌 동쪽의 나라라는 뜻으로만 보는 것은 협소한 이해다. 당시에는 중국의 중심, 즉 중원이 천하의 중심이었다. 그것을 기준으로 이고에서 유래한 남쪽의 의학, 즉 남의가 있었다. 그리고 남쪽 의학자였던 주진형이 그뒤 유종호에게 계승되어 북쪽에서 명성이 자자하였으니 이것이 북의였다. 한편 조선은 중국처럼 광대하지도 않고 그외에도 여러 가지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냥 중국의 의학을 받아들여선 현실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허준은 남의 및 북의와 구분되는 ‘동의’를 내세웠던 것이다. 의학은 보편성과 함께 지역성, 역사성, 특수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 투철했음을 알 수 있다.
‘보감’이란 보물과도 같은 귀한 거울이란 뜻이다. 병자의 현상을 이 책에 비추어보면 병의 길흉과 경중이 맑은 거울처럼 밝혀질 것이란 말이다.
키워드
본초, 섭생, 수양(修養), 약성(藥性), 오장육부, 인정(仁政), 향약(鄕藥), 허실, 황제(黃帝), <영추>
전후맥락
『동의보감』맨 처음에 목차가 나오고 곧장 이정구가 쓴 서문과 허준이 쓴 서문(정식 명칭은 집례(集例))가 나온다. 본문은 이 두 편의 서문에서 발췌한 것이다. 『동의보감』은 분량과 내용이 모두 방대하고 전체 체제가 대단히 독창적인 의서였기에, 이런 책이 당시 어떻게 출간되었는지 밝혀둘 필요가 있었다(총 25권 25책. 한글 번역본의 분량은 『대역 동의보감』(동의보감출판사, 2005)을 기준으로 할 경우 총 2,500여 페이지다). 그래서 이 두 편의 서문에서는『동의보감』이라는 방대한 의서가 어떤 경위로 집필되었고, 특히 주안점을 둔 요소들은 무엇이었는지를 간결하지만 핵심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이 두 편의 서문이 끝나고 본론으로 넘어간다.
고전본문
의학을 하는 자들은 늘 황제(黃帝)와 기백을 말한다. (…) 그들은 의문점을 말하고 어려운 것을 드러내어 후세를 위해 그 법을 세웠으니, 의학계에 의서가 있은 지 이미 오래 되었다. (…) 수많은 학파가 끊임없이 생겨나 학설이 분분하였고, 부분을 표절하여 다투어 파벌을 만드니, 책이 많을수록 임상은 더욱 어두워져서 영추의 본래 뜻과 큰 차이가 난다. (……) 선조 대왕께서는 일찍이 (…….) 태의(太醫)인 신하 허준을 불러 다음과 같이 하교하셨다.
“요즘 중국의 의서를 보면 모두 용렬하고 조잡한 것만 모아 놓아 볼 만한 것이 없다. 마땅히 여러 의서를 널리 모아 하나의 책으로 편집하라. 또한 사람의 질병은 모두 조리와 섭생의 잘못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수양(修養)을 우선으로 하고 약물은 그 다음이어야 한다. (……) 가난한 시골과 외딴 마을은 의사와 약이 없어서 일찍 죽는 자가 많다. 우리 나라는 향약(鄕藥)이 많이 나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알지 못하니 마땅히 이들 약물을 분류하고 향약명을 함께 써서 백성들이 알기 쉽게 하라.”
신이 혼자 생각하건대 (….) 의약으로 백성의 요절을 구제하는 것이 실로 제왕(帝王)의 인정(仁政) 가운데 제일 먼저 하여야 할 어진 정치다. 그러나 의술은 책이 아니면 그 내용을 실을 수 없고, 책은 취사선택하지 않으면 정교하지 못하게 되며, 가려 뽑되 그것이 넓지 못하면 이치가 분명하지 않으며, 널리 전하지 못하면 혜택이 널리 미치지 못한다. (…)
신이 삼가 사람의 몸을 살펴보건대, 안으로는 오장육부가 있고 밖으로는 근육과 골격, 살결과 살, 피와 맥, 피부가 있어 그 형체를 이룬다. (…)
병든 사람으로 하여금 이 책을 펴보게 하면 병의 허실과 경중, 길흉과 생사의 조짐이 물이나 거울에 비친 것처럼 분명하여, 잘못 치료하여 요절하게 하는 우환이 거의 없을 것이다. (…)
옛 사람들의 처방에 들어가는 약재의 양과 숫자는 너무 많아 모두 갖추어 쓰기가 어렵다. 태평혜민화제국방의 한 첩에 들어가는 약물의 숫자가 너무 많으니 가난한 집에서 어찌 이를 다 갖추겠는가. (……) 옛 사람들은 “의학을 배우려면 먼저 본초를 읽어서 약성(藥性)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본초는 방대하고 번잡하며 여러 의가(醫家)의 논의가 한결같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르는 약재가 거의 반이나 된다. 지금 쓰이는 처방만을 골라 이 책에서는 신농본초경과 일화자주, 이고나 주진형의 요점만을 실었다. 또한 중국의 약과 우리 향약을 함께 실었는데 향약은 향명(鄕名)과 생산지, 채취 시기, 말리는 법을 써놓았으니 약을 갖추어 쓰기 쉬워서 멀리서 구하거나 얻기 어려운 폐해가 없을 것이다. (…….)
의학에 남과 북이라는 이름이 있은 지가 오래 되었다. 우리 나라는 동쪽에 치우쳐 있고 의학과 약의 도가 끊이지 않았으니 우리 나라의 의학은 동의(東醫)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감’이란 만물을 밝게 비추어 그 형체가 거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 이제 이 책을 펼쳐 한번 보면 병의 길흉과 경중이 맑은 거울처럼 밝혀질 것이다. 그러므로 마침내 [동의보감]이라고 이름지은 것은 옛 사람이 남긴 뜻을 본받은 것이다.
[동의보감] 중에서
토론하기
(1) 여기서는 사람의 질병을 기본적으로 조리와 섭생의 잘못 탓에 생긴다고 말하는데, 조선 중기의 의학자들은 몸 밖의 나쁜 기운이나 병을 일으키는 원인 같은 것을 거의 중시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당시 의사나 약물이 부족한 현실 때문에 이렇게 쓰게 된 것일까?
(2) 선조라고 하면 이순신을 질투하고 정사를 그르친 임금, 임진왜란 때 백성은 버려두고 중국 쪽으로 도망친 임금으로 유명하지만, 이 서문만 보자면 대단히 사려깊고, 일반 민중에게도 지극한 애정을 품은 임금인 것 같다. 사람은 본디 다면적 존재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선조라는 인물이 내게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각자 이야기해보자.
(3) 서문을 읽다 보면 병원보다는 공중보건소가 떠오른다. 실제로 동의보감을 세계 최초의 공중보건의서라고도 평가하기도 한다. 현재의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는 동의보감으로부터 어떤 점을 본받을 수 있을까?
해설읽기
황제는 중국의 전설적인 임금 중 한명이고 기백은 신하다. 이 둘이 문답 형식으로 한의학 이론의 토대를 설명하는 책이 황제내경이다. 이 책은 「소문(素問)」 81편, 영추(靈樞) 81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화자는 황제와 기백이지만 실제 책은 전국 시대에서 진한 시기 사이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소문」은 인체의 생리와 병리, 진단, 치료원칙, 약물, 예방, 의학사상 등 기본적인 의학이론과 임상을 총괄하고 있고, 「영추」는 경락과 침구 위주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요컨대 황제내경에는 한의학 이론의 기초가 되는 내용들이 담겨 있는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영추는 황제내경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이 서문에서는 선조가 허준에게 의서 편찬을 명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은 허준을 비롯해 어의(御醫) 양예수, 이명원, 김응탁, 정예남 등과 민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던 유의(儒醫) 정작 등 5인이 공동으로 편찬 작업을 시작했다. 다만 도중에 정유재란이 발발해 이 작업이 중단되었다가 훗날 다시 재개되었을 때 허준이 책임을 맡게 되고 끝까지 완료해 출간한 것도 허준에 의해서다.
전반부에 나오는 “신이 혼자 생각하건대”의 신은 이정구이며(당시 직제상 이정구가 허준의 상급자다), 이어서 후반부에 “신이 삼가 사람의 몸을 살펴보건대”의 신은 허준이다. 전반부의 제목은 「서문」이고 후반부는 「집례」인데 둘 다 서문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선조의 교시에서 알 수 있듯이 동의보감은 약물은 2차적이고,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어떻게 조리하고 섭생하느냐라고 보는 질병 및 의료관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또 극심한 전란 중에 편찬된 만큼 가난 때문에 질병에 더 취약해진 서민들의 처지를 최대한 고려하여 편집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향약을 중시하고 우리나라의 민간에서 불리는 이름을 함께 적어넣은 것에서도 비슷한 취지를 엿볼 수 있다.
동의보감의 1차 독자가 의원이 아니라 병든 사람이라는 점은 특히 의미심장하다. 실제로 “병든 사람으로 하여금 이 책을 펴보게 하면 병의 허실과 경중, 길흉과 생사의 조짐이 물이나 거울에 비친 것처럼 분명하여, 잘못 치료하여 요절하게 하는 우환이 거의 없을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의약으로 백성의 요절을 구제하는 것이 실로 제왕(帝王)의 인정(仁政, 어진 정치) 가운데 제일 먼저 하여야 할 어진 정치다.”라는 문장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약재의 양과 숫자가 너무 많거나 너무 적은 게 민중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인식, 그리고 그에 대한 깊은 배려도 동일한 맥락에서 의미심장하다.
신농본초경은 진한 시대(혹은 전국 시대)에 완성된 책이며 일화자주는 일찍이 흩어지고 분실되어 남아있지 않은 책이다. 이고와 주진형은 금나라와 원나라 시대의 의학가들이다.
동의보감이라는 제목에서 ‘동’을 단순히 중국이 아닌 동쪽의 나라라는 뜻으로만 보는 것은 협소한 이해다. 당시에는 중국의 중심, 즉 중원이 천하의 중심이었다. 그것을 기준으로 이고에서 유래한 남쪽의 의학, 즉 남의가 있었다. 그리고 남쪽 의학자였던 주진형이 그뒤 유종호에게 계승되어 북쪽에서 명성이 자자하였으니 이것이 북의였다. 한편 조선은 중국처럼 광대하지도 않고 그외에도 여러 가지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냥 중국의 의학을 받아들여선 현실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허준은 남의 및 북의와 구분되는 ‘동의’를 내세웠던 것이다. 의학은 보편성과 함께 지역성, 역사성, 특수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 투철했음을 알 수 있다.
‘보감’이란 보물과도 같은 귀한 거울이란 뜻이다. 병자의 현상을 이 책에 비추어보면 병의 길흉과 경중이 맑은 거울처럼 밝혀질 것이란 말이다.
키워드
본초, 섭생, 수양(修養), 약성(藥性), 오장육부, 인정(仁政), 향약(鄕藥), 허실, 황제(黃帝), <영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