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어머니가 환각을 보고 충격에 빠진 후, ‘나’는 회상을 통해 오빠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떠올린다. 동생인 ‘나’의 존경을 받았던 오빠는 한국전쟁 때 의용군에 자원했다가, 폐인이 되어 돌아온다. 오빠가 전쟁 전에 좌익운동에 참여했었다는 이유로 ‘나’의 가족들은 이웃들에게 외면받고, 오빠에게 시민증이 없어 피난마저 떠나지 못한다. 결국 어머니와 처음 서울에 자리 잡았던 현저동에 은둔하기로 결정하지만,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면서 들키고 만다.
고전본문
어느 날, 기적처럼 아니 흉몽처럼 오빠가 돌아왔다. 그렇게 믿고 기다리던 어머니까지 감히 오빠를 반기지 못했다. 헐벗고 굶주려 몰골이 흉한 것까지는 예상한 대로였지만 그때 오빠는 이미 속속들이 망가져 있었다. 눈은 잠시도 한군데 머무르지 못하고 희번덕댔고, 심한 불면증으로 몸은 수척했고 피해망상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깜짝깜짝 놀라고 사람을 두려워했다. 가족들한테도 전혀 친밀감을 나타낼 줄 몰랐고 집에 없는 처자식을 궁금해하거나 보고싶어할 줄도 몰랐다. 그동안 무슨 일이 그를 그토록 망가뜨렸는지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그는 문을 꼭 잠그고 그 안에서 두려움에 떠는 심약한 집 보는 어린이처럼 자기를 단단이 폐쇄하고 외부의 모든 것을 배척하려 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전세는 더욱 불리해져서 서울을 비우고 모든 사람들이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여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정부는 미리미리부터 서울의 위기를 예고하고 피난의 편의를 봐주었고 시민 역시 다시 적치하를 겪느니 죽는 게 낫다 싶은 비장한 각오로 남부여대 엄동설한에 집을 나섰다.
(중략)
다시 포성이 가까워지고 그들의 눈에 핏발이 서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앉으나서나 그들이 곱게 물러가기만을 축수했다.
"그저 내 자식 해코지만 마소서. 불쌍한 내 자식 해코지만 마소서.”
마침내 보위군관이 작별하러 왔다. 그의 작별 방법은 특이했다.
“내가 동무들같이 간사한 무리들한테 끝까지 속을 것 같소. 지금이라도 바른대로 대시오. 이래도 바른 소리를 못 하겠소?”
그가 허리에 찬 권총을 빼 오빠에게 겨누며 말했다.
“안 된다. 안 돼. 이 노옴 너도 사람이냐? 이노옴.”
어머니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그의 팔에 매달렸다. 오빠는 으,으, 으, 으, 짐승 같은 소리로 신음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가 어머니를 휙 뿌리쳤다.
“이래도 이래도 바른 말을 안 할 테냐? 이래도.”
총성이 울렸다. 다리였다. 오빠는 으, 으, 으, 으, 같은 소리밖에못냈다.
(중략)
“죽기 전에 바른말 한 기회를 주기 위해 당장 죽이진 않겠다.“
그 후 군관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며칠 만에 세상은 또 바뀌었다.
오빠의 총상은 다 치명상이 아니었는데도 며칠 만에 운명했다. 출혈이 심한 데다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며칠 동안에도 오빠의 실어증은 회복되지 않았다. 그 며칠 동안의 낭자한 유혈과 하늘에 맺힌 원한을 어찌 잊으랴. 그러나 덮어둘 순 있었다. 나는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자식을 낳아 또 사랑하는 걸로, 어머니는 손자를 거두어 기르며 부처님께 귀의하는 걸로.
[ 출전] 박완서,『엄마의 말뚝』
토론하기
(1) ‘나’의 오빠는 전쟁에 참여한 이후 어떻게 바뀌었으며, 바뀐 이유는 무엇인가요?
(2) 오빠의 죽음에 대한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나’와 어머니는 어떻게 살아왔나요?
(3) 여러분은 가장 아픈 기억마저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계속 안고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해설읽기
‘나’의 회상을 통해 어머니가 환각으로 떠올린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진 부분이다. 주인공의 유년기를 그린 1편부터 오빠는 똑똑할 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훌륭하여, 남매를 데리고 혈혈단신 서울행을 결정한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해온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나’는 그런 오빠를 어려워하면서도 존경했었다. 2편에서 회상한 내용에 따르면, 오빠는 해방기에 잠시 좌익운동에 참여했다가 전향한 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의용군에 지원한다. 그러나 도중에 집으로 돌아온 그는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져 폐인이 되어버린 상태였고, 오빠가 이전에 좌익운동에 참여했었던 소문이 퍼져 주인공 가족은 이웃으로부터 외면받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오빠에겐 피난을 떠나려면 필요한 시민증마저 없는 상황에서, 주인공 가족은 결국 피난을 포기하고 어머니와 처음 서울에 자리 잡았던 현저동에 은신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이 숨어있던 집은 결국 인민군에게 발각되고 만다. 원래대로라면 군인이 될 수 있는 오빠는 바로 끌려가거나 죽을 수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오빠가 실어증에 걸린 것을 이용하여 필사적으로 상황을 모면해왔다. 가족들은 전쟁을 경험하면서 피폐해진 오빠를 아예 정신이상자라고 설명함으로써 다시 닥쳐온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오빠를 보호하는 이상한 나날을 견뎌낸다. 그러나 전세가 급박하게 변해가는 와중에 인민군이 다시 퇴각하는 상황이 닥치자, 인민군은 나와 오빠의 부인이 집을 비운 새 결국 오빠에게 총을 쏘고 만다. 어머니는 필사적으로 말렸지만 결국 오빠가 총에 맞자 기절해버리고, 오빠는 즉사하지는 않았지만, 실어증이 더 심해진 상태로 상처가 덧나 며칠 후 사망하고 만다.
어머니가 다리 수술 후 오빠의 죽음을 떠올린 것은 오빠가 다리에 총을 맞았던 사실과 자신의 다리 부상과 겹쳐 보였으며, 순간 정신이 쇠약해진 탓도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어머니가 순간적으로 분출하는 감정을 설명하기란 어렵다. 어머니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녀가 현실을 살아가면서 잊었다고 생각한 아픔, 즉 나는 결혼 이후 자신의 가정에 충실한 나날들 속에서, 어머니는 불교에 귀의하면서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 날의 충격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회상 장면 이후 ‘나’는 다시금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머니는 자신을 구속하려는 의사와 간호사들을 향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고 ‘나’는 그런 어머니를 온 힘을 다해 제압한다.
이후 주인공은 어머니가 발휘한 초인적인 힘이 일생을 건 사건이었다고 생각하며 어머니의 죽음을 직감한다. 그런 ‘나’에게 어머니는 자신이 죽은 뒤 오빠와 마찬가지로 고향을 바라보는 곳에 수장(水葬)해달라고 당부한다. ‘나’는 어머니의 부탁이 잔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도저히 거절할 수 없어 받아들인다. 그러나 소설의 3부에 가면, 2부에서의 사건 이후 7년 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나’는 조카 부부에게 어머니의 장례에 관한 주도권을 빼앗긴다. 한국전쟁의 아픔을 겪어본 적 없는 조카 세대는 주인공 모녀가 공유하는 감정은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조카의 뜻대로 근교의 묘지에 어머니를 모시기로 결정되는데, ‘나’는 내심 조카의 결정에 편승하여 개운함을 느낀다.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었던 고통스러운 경험에 거리를 둘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어머니의 묫자리가 결정되고 난 뒤, 주인공은 장례마저 돈으로 해결되는 절차에서 근대화 이후 한국사회의 속물성을 깨닫는 한편 어머니에게 부채의식을 느낀다.
키워드
감정, 모녀 관계, 전쟁, 죽음, 트라우마
전후맥락
어머니가 환각을 보고 충격에 빠진 후, ‘나’는 회상을 통해 오빠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떠올린다. 동생인 ‘나’의 존경을 받았던 오빠는 한국전쟁 때 의용군에 자원했다가, 폐인이 되어 돌아온다. 오빠가 전쟁 전에 좌익운동에 참여했었다는 이유로 ‘나’의 가족들은 이웃들에게 외면받고, 오빠에게 시민증이 없어 피난마저 떠나지 못한다. 결국 어머니와 처음 서울에 자리 잡았던 현저동에 은둔하기로 결정하지만,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면서 들키고 만다.
고전본문
어느 날, 기적처럼 아니 흉몽처럼 오빠가 돌아왔다. 그렇게 믿고 기다리던 어머니까지 감히 오빠를 반기지 못했다. 헐벗고 굶주려 몰골이 흉한 것까지는 예상한 대로였지만 그때 오빠는 이미 속속들이 망가져 있었다. 눈은 잠시도 한군데 머무르지 못하고 희번덕댔고, 심한 불면증으로 몸은 수척했고 피해망상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깜짝깜짝 놀라고 사람을 두려워했다. 가족들한테도 전혀 친밀감을 나타낼 줄 몰랐고 집에 없는 처자식을 궁금해하거나 보고싶어할 줄도 몰랐다. 그동안 무슨 일이 그를 그토록 망가뜨렸는지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그는 문을 꼭 잠그고 그 안에서 두려움에 떠는 심약한 집 보는 어린이처럼 자기를 단단이 폐쇄하고 외부의 모든 것을 배척하려 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전세는 더욱 불리해져서 서울을 비우고 모든 사람들이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여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정부는 미리미리부터 서울의 위기를 예고하고 피난의 편의를 봐주었고 시민 역시 다시 적치하를 겪느니 죽는 게 낫다 싶은 비장한 각오로 남부여대 엄동설한에 집을 나섰다.
(중략)
다시 포성이 가까워지고 그들의 눈에 핏발이 서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앉으나서나 그들이 곱게 물러가기만을 축수했다.
"그저 내 자식 해코지만 마소서. 불쌍한 내 자식 해코지만 마소서.”
마침내 보위군관이 작별하러 왔다. 그의 작별 방법은 특이했다.
“내가 동무들같이 간사한 무리들한테 끝까지 속을 것 같소. 지금이라도 바른대로 대시오. 이래도 바른 소리를 못 하겠소?”
그가 허리에 찬 권총을 빼 오빠에게 겨누며 말했다.
“안 된다. 안 돼. 이 노옴 너도 사람이냐? 이노옴.”
어머니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그의 팔에 매달렸다. 오빠는 으,으, 으, 으, 짐승 같은 소리로 신음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가 어머니를 휙 뿌리쳤다.
“이래도 이래도 바른 말을 안 할 테냐? 이래도.”
총성이 울렸다. 다리였다. 오빠는 으, 으, 으, 으, 같은 소리밖에못냈다.
(중략)
“죽기 전에 바른말 한 기회를 주기 위해 당장 죽이진 않겠다.“
그 후 군관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며칠 만에 세상은 또 바뀌었다.
오빠의 총상은 다 치명상이 아니었는데도 며칠 만에 운명했다. 출혈이 심한 데다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며칠 동안에도 오빠의 실어증은 회복되지 않았다. 그 며칠 동안의 낭자한 유혈과 하늘에 맺힌 원한을 어찌 잊으랴. 그러나 덮어둘 순 있었다. 나는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자식을 낳아 또 사랑하는 걸로, 어머니는 손자를 거두어 기르며 부처님께 귀의하는 걸로.
[ 출전] 박완서,『엄마의 말뚝』
토론하기
(1) ‘나’의 오빠는 전쟁에 참여한 이후 어떻게 바뀌었으며, 바뀐 이유는 무엇인가요?
(2) 오빠의 죽음에 대한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나’와 어머니는 어떻게 살아왔나요?
(3) 여러분은 가장 아픈 기억마저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계속 안고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해설읽기
‘나’의 회상을 통해 어머니가 환각으로 떠올린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진 부분이다. 주인공의 유년기를 그린 1편부터 오빠는 똑똑할 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훌륭하여, 남매를 데리고 혈혈단신 서울행을 결정한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해온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나’는 그런 오빠를 어려워하면서도 존경했었다. 2편에서 회상한 내용에 따르면, 오빠는 해방기에 잠시 좌익운동에 참여했다가 전향한 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의용군에 지원한다. 그러나 도중에 집으로 돌아온 그는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져 폐인이 되어버린 상태였고, 오빠가 이전에 좌익운동에 참여했었던 소문이 퍼져 주인공 가족은 이웃으로부터 외면받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오빠에겐 피난을 떠나려면 필요한 시민증마저 없는 상황에서, 주인공 가족은 결국 피난을 포기하고 어머니와 처음 서울에 자리 잡았던 현저동에 은신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이 숨어있던 집은 결국 인민군에게 발각되고 만다. 원래대로라면 군인이 될 수 있는 오빠는 바로 끌려가거나 죽을 수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오빠가 실어증에 걸린 것을 이용하여 필사적으로 상황을 모면해왔다. 가족들은 전쟁을 경험하면서 피폐해진 오빠를 아예 정신이상자라고 설명함으로써 다시 닥쳐온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오빠를 보호하는 이상한 나날을 견뎌낸다. 그러나 전세가 급박하게 변해가는 와중에 인민군이 다시 퇴각하는 상황이 닥치자, 인민군은 나와 오빠의 부인이 집을 비운 새 결국 오빠에게 총을 쏘고 만다. 어머니는 필사적으로 말렸지만 결국 오빠가 총에 맞자 기절해버리고, 오빠는 즉사하지는 않았지만, 실어증이 더 심해진 상태로 상처가 덧나 며칠 후 사망하고 만다.
어머니가 다리 수술 후 오빠의 죽음을 떠올린 것은 오빠가 다리에 총을 맞았던 사실과 자신의 다리 부상과 겹쳐 보였으며, 순간 정신이 쇠약해진 탓도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어머니가 순간적으로 분출하는 감정을 설명하기란 어렵다. 어머니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녀가 현실을 살아가면서 잊었다고 생각한 아픔, 즉 나는 결혼 이후 자신의 가정에 충실한 나날들 속에서, 어머니는 불교에 귀의하면서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 날의 충격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회상 장면 이후 ‘나’는 다시금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머니는 자신을 구속하려는 의사와 간호사들을 향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고 ‘나’는 그런 어머니를 온 힘을 다해 제압한다.
이후 주인공은 어머니가 발휘한 초인적인 힘이 일생을 건 사건이었다고 생각하며 어머니의 죽음을 직감한다. 그런 ‘나’에게 어머니는 자신이 죽은 뒤 오빠와 마찬가지로 고향을 바라보는 곳에 수장(水葬)해달라고 당부한다. ‘나’는 어머니의 부탁이 잔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도저히 거절할 수 없어 받아들인다. 그러나 소설의 3부에 가면, 2부에서의 사건 이후 7년 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나’는 조카 부부에게 어머니의 장례에 관한 주도권을 빼앗긴다. 한국전쟁의 아픔을 겪어본 적 없는 조카 세대는 주인공 모녀가 공유하는 감정은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조카의 뜻대로 근교의 묘지에 어머니를 모시기로 결정되는데, ‘나’는 내심 조카의 결정에 편승하여 개운함을 느낀다.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었던 고통스러운 경험에 거리를 둘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어머니의 묫자리가 결정되고 난 뒤, 주인공은 장례마저 돈으로 해결되는 절차에서 근대화 이후 한국사회의 속물성을 깨닫는 한편 어머니에게 부채의식을 느낀다.
키워드
감정, 모녀 관계, 전쟁, 죽음, 트라우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