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맥락]
소설은 식민지기 조선을 배경으로, 주인공인 경희가 일본 유학 도중 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와서 겪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경희는 집에 머무는 동안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데, 먼저 그녀는 당시 ‘여학생’을 둘러싼 주변인들의 의심 가득한 시선을 극복해야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남성들이 받던 교육을 여자들 또한 받아야 하는 필요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여학생들의 성취를 폄하하고 그들을 문란한 존재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경희는 이러한 의혹과 여성들이 겪고 있는 고난들이 구습(舊習)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고, 교육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본문은 경희의 집을 찾아온 사돈댁 어른이 경희와 여학생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는 장면으로, 사돈어른은 시집을 잘 가면 그만일 경희를 왜 일본에까지 유학을 시키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경희가 집안일을 핑계로 물러난 이후, 경희의 어머니는 사돈어른에게 경희가 자신이 받은 교육을 바탕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며 딸을 간접적으로 옹호한다. 사돈어른은 뒤늦게 교육의 필요성을 깨닫고, 자신의 손녀 또한 더 공부시켜야겠다고 다짐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고전본문]
“거기를 또 가니? 인제 고만 곱게 입고 앉았다가 부잣집으로 시집가서 아들딸 낳고 재미드랍게 살지 그렇게 고생할 것 무엇 있니?”
아직 알지 못하여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일러주는 것 같이 경희에 대하여 말을 하다가 마주 앉은 경희 어머니에게 눈을 향하여 ‘그렇지 않소. 내 말이 옳지요’ 하는 것 같았다.
“네, 하던 공부 마칠 때까지 가야지요.”
“그것은 그리 많이 해 무엇하니. 사내니 고을을 간단 말이냐? 군 주사(郡主事)라도 한단 말이냐? 지금 세상에 사내도 배워가지고 쓸데가 없어서 쩔쩔매는데…..”
이 마님은 여간 걱정스러워 아니 한다. 그리고 대관절 계집애를 일본까지 보내어 공부를 시키는 사돈 영감과 마님이며 또 그렇게 배우면 대체 무엇하자는 것인지를 몰라 답답해한 적은 오래전부터 있으나 다른 집과 달리 사돈집 일이라 속으로는 늘 ‘저 계집애를 누가 데려가나 욕을 하면서도 할 수 있는 대로는 모른 체하여 왔다가 오늘 우연한 좋은 기회에 걱정해오던 것을 말한 것이다.
경희는 이 마님 입에서 ‘어서 시집가거라. 공부는 해서 무엇하니 꼭 이 말이 나올 줄 알았다. 속으로 옳지 그럴 줄 알았지 하였다. 그리고 어제 오셨던 이모님 입에서 나오던 말이며 경희를 보실 때마다 걱정하시는 큰어머니 말씀과 모두 일치되는 것을 알았다. 또 작년 여름에 듣던 말을 금년 여름에도 듣게 되었다. 경희의 입술은 간질간질하였다.
‘먹고 입고만 하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알아야 사람이에요. 당신 댁처럼 영감 아들 간에 첩이 넷이나 있는 것도 배우지 못한 까닭이고 그것으로 속을 썩이는 당신도 알지 못한 죄예요. 그러니까 여편네가 시집가서 시앗을 보지 않도록 하는 것도 가르쳐야 하고 여편네 두고 첩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도 가르쳐야만 합니다’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마님 입에서는 반드시 오늘 아침에 다녀가신 할머니의 말씀과 같은 “얘, 옛날에는 여편네가 배우지 않아도 수부귀다남(壽富貴多男)하고 잘만 살아왔다. 여편네는 동서남북도 몰라야 복(福)이 많단다. 얘, 공부한 여학생들도 보리방아 찧게 되더라. 사내가 첩 하나도 둘 줄 모르면 그것이 사내냐?” 하던 말씀이 꼭 나올 줄 알았다. 경희는 ‘쇠귀에 경을 읽지’ 하고 제 입만 아프고 오늘 저녁에 또 이 생각으로 잠을 못 자게 될 것을 생각하였다. 또 말만 시작하게 되면 답답하여서 속이 불과 같이 탈 것, 자연 오랫동안 되면 뒷마루에서는 기다릴 것을 생각하여 차라리 일절 입을 다물었다. 더구나 이 마님은 입이 걸어서 한 말을 들으면 한 열 말쯤 거짓말을 보태어 여학생의 말이라면 어떻든지 흉만 보고 욕만 하기로는 수단이 용한 줄을 알았다. 그래서 이 마님 귀에는 좀처럼 변명이라든지 설명이 조금도 곧이 가 들리지 않을 줄도 짐작하였다.
「경희」 중에서
토론하기
(1) 사돈집 마님은 왜 경희의 유학 생활을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나요? 당시 교육을 받았던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은 어떠한 것이었는지 짐작해봅시다.
(2) 경희는 ‘사람’의 조건을 “먹고 입고만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배우고 아는 것”에 있다고 믿습니다. 또 사돈어른의 집이 구습, 즉 옛 관습에 얽매여 있는 이유 또한 배우지 못한 데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는 교육의 필요를 절대적으로 믿는다고 볼 수 있는데, 과연 교육은 사회 체계를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해설읽기
「경희」는 나혜석의 첫 단편소설이자 대표작으로, 여성 교육을 적극적으로 옹호한 계몽적 작품이다. 소설 외에도 논설에서 여성들에게 꾸준히 “여자보다도 먼저 사람”임을 깨닫기를 주장해온 나혜석은, 당시 사회의 시선이 자신과 같은 여성들에게 비판적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경희」와 비슷한 시기 발표한 논설 「잡감」에서 이러한 인식이 잘 드러나는데, 여기서 작가는 눈 덮인 산을 오르는 일에 여성이 개척할 미래를 비유하며, 그 이전에 누구도 가지 않아 발자국조차 남아있지 않은 길을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야기한다. 설령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의 발자취를 운 좋게 따라간다고 해도, 결국 자신이 도달하고 싶은 곳에 이르는 길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글의 마지막에서 나혜석은 “아무려나 미끄러져서 머리가 터질 각오로 밟아나 볼 욕심”이라는 포부를 밝힌다.
한국에 공식적인 여성 교육기관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1886년 이화학당이 설립되면서부터다. 초반에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각 가정에서는 딸에게 근대 교육을 받게 할 필요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는 식민지기에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여학생’이란 근대에 들어 등장한 생소한 존재였고, 그 수 또한 많지 않았다. 세간에서는 교복을 입고 자유롭게 길거리를 걸어 학교로 향하는 이들을 불편하게 여기는 한편 여학생들이 방종하다는 악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경희」에서 주인공 경희가 맞닥뜨린 것은 바로 여학생들을 향한 불신을 주변인들을 통해 체감해야 하는, 「잡감」에서 말한 아무도 가본 적 없는 설산 앞에 놓인 상황이었다. 경희는 공부는 그만두고 시집이나 잘 가라는 사돈댁 부인이나 떡 장수들에게 직·간접적으로 교육의 필요성을 설파한다. 경희가 보기에 조선 사회는 비근대적인 구식 제도가 유지되고 있으며, 특히 여성은 가정과 사회에서 억압받고 있으며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타개할 방법은 교육, 특히 여성이 자신의 ‘사람됨’을 깨달을 수 있는 교육이다.
본문에서 사돈어른은 경희가 공부를 핑계로 당시 여성에게 주어진 집안일에도 소홀하리라 생각하고 도대체 신식 고등 교육을 받아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의심한다. 딸의 공부에 호의적인 경희의 어머니 김 부인은 딸이 집안일도 곧잘 하며, 일본어를 할 줄 알아서 재봉틀 회사 감독으로부터 높은 임금을 제안받았다는 사실을 대신 전한다. 사돈어른은 이 말이 사실인지 처음에는 의심하지만, 점차 생각이 바뀌며 지금껏 여학생을 잘 못 알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손녀들 또한 내일부터 학교에 보내기를 다짐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앞뒤 맥락]
소설은 식민지기 조선을 배경으로, 주인공인 경희가 일본 유학 도중 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와서 겪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경희는 집에 머무는 동안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데, 먼저 그녀는 당시 ‘여학생’을 둘러싼 주변인들의 의심 가득한 시선을 극복해야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남성들이 받던 교육을 여자들 또한 받아야 하는 필요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여학생들의 성취를 폄하하고 그들을 문란한 존재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경희는 이러한 의혹과 여성들이 겪고 있는 고난들이 구습(舊習)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고, 교육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본문은 경희의 집을 찾아온 사돈댁 어른이 경희와 여학생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는 장면으로, 사돈어른은 시집을 잘 가면 그만일 경희를 왜 일본에까지 유학을 시키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경희가 집안일을 핑계로 물러난 이후, 경희의 어머니는 사돈어른에게 경희가 자신이 받은 교육을 바탕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며 딸을 간접적으로 옹호한다. 사돈어른은 뒤늦게 교육의 필요성을 깨닫고, 자신의 손녀 또한 더 공부시켜야겠다고 다짐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고전본문]
“거기를 또 가니? 인제 고만 곱게 입고 앉았다가 부잣집으로 시집가서 아들딸 낳고 재미드랍게 살지 그렇게 고생할 것 무엇 있니?”
아직 알지 못하여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일러주는 것 같이 경희에 대하여 말을 하다가 마주 앉은 경희 어머니에게 눈을 향하여 ‘그렇지 않소. 내 말이 옳지요’ 하는 것 같았다.
“네, 하던 공부 마칠 때까지 가야지요.”
“그것은 그리 많이 해 무엇하니. 사내니 고을을 간단 말이냐? 군 주사(郡主事)라도 한단 말이냐? 지금 세상에 사내도 배워가지고 쓸데가 없어서 쩔쩔매는데…..”
이 마님은 여간 걱정스러워 아니 한다. 그리고 대관절 계집애를 일본까지 보내어 공부를 시키는 사돈 영감과 마님이며 또 그렇게 배우면 대체 무엇하자는 것인지를 몰라 답답해한 적은 오래전부터 있으나 다른 집과 달리 사돈집 일이라 속으로는 늘 ‘저 계집애를 누가 데려가나 욕을 하면서도 할 수 있는 대로는 모른 체하여 왔다가 오늘 우연한 좋은 기회에 걱정해오던 것을 말한 것이다.
경희는 이 마님 입에서 ‘어서 시집가거라. 공부는 해서 무엇하니 꼭 이 말이 나올 줄 알았다. 속으로 옳지 그럴 줄 알았지 하였다. 그리고 어제 오셨던 이모님 입에서 나오던 말이며 경희를 보실 때마다 걱정하시는 큰어머니 말씀과 모두 일치되는 것을 알았다. 또 작년 여름에 듣던 말을 금년 여름에도 듣게 되었다. 경희의 입술은 간질간질하였다.
‘먹고 입고만 하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알아야 사람이에요. 당신 댁처럼 영감 아들 간에 첩이 넷이나 있는 것도 배우지 못한 까닭이고 그것으로 속을 썩이는 당신도 알지 못한 죄예요. 그러니까 여편네가 시집가서 시앗을 보지 않도록 하는 것도 가르쳐야 하고 여편네 두고 첩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도 가르쳐야만 합니다’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마님 입에서는 반드시 오늘 아침에 다녀가신 할머니의 말씀과 같은 “얘, 옛날에는 여편네가 배우지 않아도 수부귀다남(壽富貴多男)하고 잘만 살아왔다. 여편네는 동서남북도 몰라야 복(福)이 많단다. 얘, 공부한 여학생들도 보리방아 찧게 되더라. 사내가 첩 하나도 둘 줄 모르면 그것이 사내냐?” 하던 말씀이 꼭 나올 줄 알았다. 경희는 ‘쇠귀에 경을 읽지’ 하고 제 입만 아프고 오늘 저녁에 또 이 생각으로 잠을 못 자게 될 것을 생각하였다. 또 말만 시작하게 되면 답답하여서 속이 불과 같이 탈 것, 자연 오랫동안 되면 뒷마루에서는 기다릴 것을 생각하여 차라리 일절 입을 다물었다. 더구나 이 마님은 입이 걸어서 한 말을 들으면 한 열 말쯤 거짓말을 보태어 여학생의 말이라면 어떻든지 흉만 보고 욕만 하기로는 수단이 용한 줄을 알았다. 그래서 이 마님 귀에는 좀처럼 변명이라든지 설명이 조금도 곧이 가 들리지 않을 줄도 짐작하였다.
「경희」 중에서
토론하기
(1) 사돈집 마님은 왜 경희의 유학 생활을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나요? 당시 교육을 받았던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은 어떠한 것이었는지 짐작해봅시다.
(2) 경희는 ‘사람’의 조건을 “먹고 입고만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배우고 아는 것”에 있다고 믿습니다. 또 사돈어른의 집이 구습, 즉 옛 관습에 얽매여 있는 이유 또한 배우지 못한 데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는 교육의 필요를 절대적으로 믿는다고 볼 수 있는데, 과연 교육은 사회 체계를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해설읽기
「경희」는 나혜석의 첫 단편소설이자 대표작으로, 여성 교육을 적극적으로 옹호한 계몽적 작품이다. 소설 외에도 논설에서 여성들에게 꾸준히 “여자보다도 먼저 사람”임을 깨닫기를 주장해온 나혜석은, 당시 사회의 시선이 자신과 같은 여성들에게 비판적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경희」와 비슷한 시기 발표한 논설 「잡감」에서 이러한 인식이 잘 드러나는데, 여기서 작가는 눈 덮인 산을 오르는 일에 여성이 개척할 미래를 비유하며, 그 이전에 누구도 가지 않아 발자국조차 남아있지 않은 길을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야기한다. 설령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의 발자취를 운 좋게 따라간다고 해도, 결국 자신이 도달하고 싶은 곳에 이르는 길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글의 마지막에서 나혜석은 “아무려나 미끄러져서 머리가 터질 각오로 밟아나 볼 욕심”이라는 포부를 밝힌다.
한국에 공식적인 여성 교육기관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1886년 이화학당이 설립되면서부터다. 초반에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각 가정에서는 딸에게 근대 교육을 받게 할 필요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는 식민지기에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여학생’이란 근대에 들어 등장한 생소한 존재였고, 그 수 또한 많지 않았다. 세간에서는 교복을 입고 자유롭게 길거리를 걸어 학교로 향하는 이들을 불편하게 여기는 한편 여학생들이 방종하다는 악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경희」에서 주인공 경희가 맞닥뜨린 것은 바로 여학생들을 향한 불신을 주변인들을 통해 체감해야 하는, 「잡감」에서 말한 아무도 가본 적 없는 설산 앞에 놓인 상황이었다. 경희는 공부는 그만두고 시집이나 잘 가라는 사돈댁 부인이나 떡 장수들에게 직·간접적으로 교육의 필요성을 설파한다. 경희가 보기에 조선 사회는 비근대적인 구식 제도가 유지되고 있으며, 특히 여성은 가정과 사회에서 억압받고 있으며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타개할 방법은 교육, 특히 여성이 자신의 ‘사람됨’을 깨달을 수 있는 교육이다.
본문에서 사돈어른은 경희가 공부를 핑계로 당시 여성에게 주어진 집안일에도 소홀하리라 생각하고 도대체 신식 고등 교육을 받아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의심한다. 딸의 공부에 호의적인 경희의 어머니 김 부인은 딸이 집안일도 곧잘 하며, 일본어를 할 줄 알아서 재봉틀 회사 감독으로부터 높은 임금을 제안받았다는 사실을 대신 전한다. 사돈어른은 이 말이 사실인지 처음에는 의심하지만, 점차 생각이 바뀌며 지금껏 여학생을 잘 못 알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손녀들 또한 내일부터 학교에 보내기를 다짐하며 집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