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맥락]
경희의 아버지 이철원은 김 부인을 찾아와 경희의 혼사 문제를 거론한다. 이철원은 최근에 들어온 혼처가 조건이 매우 좋아서 결혼을 강행하고 싶어 한다. 김 부인은 딸이 결혼보다는 학업을 중시하고 있음을 알고 있고, 또한 자신이 남 부럽지 않게 부귀하게 살아오긴 했지만, 남편의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 때문에 “비단치마 속에 근심과 설움이 있다”라는 딸의 말에 남몰래 동조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혼처가 아깝기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도 않는다. 대신 남편에게 경희가 학업에 학교에서 받은 가사 교육을 바탕으로 예전보다도 더 집안일을 잘하고 있음을 전한다.
다음 날 경희는 결혼을 두고 아버지와 설전을 벌인 끝에 방에 돌아와 눈물을 흘린다. 여자는 시집가서 자식을 낳고 시부모를 섬기고 남편을 공경하면 그만이라는 말에 경희는 그것은 옛날 말인데다가 “지금은 계집애도 사람”이고, “사람인 이상에는 못할 것이 없다”라고 반박한 것이다. 경희는 자신의 말을 번복하고 사회적 인습에 따를 것인지 고민에 빠지기도 하지만, 소설의 결말에서 자신의 다짐을 재차 새기며 하느님께 사람으로 살아갈 것을 기도한다.
[고전본문]
경희의 앞에는 지금 두 길이 있다. 그 길은 희미하지도 않고 또렷한 두 길이다. 한 길은 쌀이 곳간에 쌓이고 돈이 많고 귀염도 받고 사랑도 받고 밟기도 쉬운 황토요, 가기도 쉽고 찾기도 어렵지 않은 탄탄대로이다. 그러나 한 길에는 제 팔이 아프도록 보리방아를 찧어야 겨우 얻어먹게 되고 종일 땀을 흘리고 남의 일을 해주어야 겨우 몇 푼 돈이라도 얻어보게 된다. 이르는 곳마다 천대뿐이요, 사랑의 맛은 꿈에도 맛보지 못할 터이다. 발부리에서 피가 흐르도록 험한 돌을 밟아야 한다. 그 길은 뚝 떨어지는 절벽도 있고 날카로운 산정(山頂)도 있다. 물도 건너야 하고 언덕도 넘어야 하고 수없이 꼬부라진 길이요, 갈수록 험하고 찾기 어려운 길이다. 경희의 앞에 있는 이 두 길 중에 하나를 오늘 택해야만 하고 지금 꼭 정해야 한다. 오늘 택한 이상에는 내일 바꿀 수 없다. 지금 정한 마음이 이따가 급변할 리도 만무하다. 아아, 경희의 발은 이 두 길 중에 어느 길에 내놓아야 할까.
(중략)
“아이구, 어찌하나. 내가 그렇게 될 줄 알았을까……..”
한마디가 늘었다. 동시에 경희의 머리끝이 우쩍 위로 올라간다. 그러곤 경희의 뻔뻔한 얼굴, 넓적한 입, 길쭉한 사지의 형상이 모두 스러지고 조그마한 밀짚 끝에 깜박깜박하는 불꽃 같은 무엇이 바람에 떠 있는 것 같다. 방만은 후끈후끈하다. 부지중에 사방 창을 열어젖혔다.
뜨거운 강한 광선이 별안간에 왈칵 대드는 것은 편싸움꾼의 양편이 육모 방망이를 들고 자…………’ 하며 대드는 것같이 깜짝 놀랄 만치 강하게 쪼여 들어온다. 오색이 혼잡한 백일홍 활년화(活年花) 위로는 연락부절(連絡不絶)히 호랑나비 노랑나비 오고 가고 한다. 배나무 위의 까치 보금자리에는 까만 새끼 대가리가 들락날락하며, 어미 까치가 먹을 것을 가지고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댑싸리 그늘 밑에는 탑실개가 쓰러져 쿨쿨 자고 있다. 그 배는 불룩하다. 울타리 밑으로 굼벵이 잡으러 다니는 어미 닭의 뒤로는 대여섯 마리의 병아리가 줄줄 따라간다. 경희는 얼빠진 것 같이 멀거니 앉아서 보다가 몸을 일부러 움직였다.
“저것! 저것은 개다. 저것은 꽃이고 저것은 닭이다. 저것은 배나무다. 그리고 저기 매달린 것은 배다. 저 하늘에 뜬 것은 까치다. 저것은 항아리고 저것은 절구다.”
이렇게 경희는 눈에 보이는 대로 그 명칭을 불러본다. 옆에 놓인 머릿장도 만져본다. 그 위에 개어서 얹은 면주 이불도 쓰다듬어본다.
“그러면 내 명칭은 무엇인가? 사람이지! 꼭 사람이다.”
(중략)
아아, 대답 잘했다. 아버지가 “그리로 시집가면 좋은 옷에 생전 배불리 먹다 죽지 않겠니?” 하실 때에 그 무서운 아버지 앞에서 평생 처음으로 벌벌 떨며 대답하였다. “아버지 안자(顔子)의 말씀에도 일단사(一單食)와 일표음(一瓢飮)에 낙역재기중(樂亦在其中)이라는 말씀이 없습니까? 먹고만 살다 죽으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금수이지요. 보리밥이라도 제 노력으로 제 밥을 제가 먹는 것이 사람인 줄 압니다. 조상이 벌어놓은 밥 그것을 그대로 받은 남편의 그 밥을 또 그대로 얻어먹고 있는 것은 우리 집 개나 일반이지요” 하였다.
(중략)
경희도 사람이다. 그다음에는 여자다. 그럼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또 조선 사회의 여자보다 먼저 우주 안 전 인류의 여성이다. 이 철원 김 부인의 딸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딸이다. 여하튼 두말할 것 없이 사람의 형상이다. 그 형상은 잠깐 들씌운 가죽뿐 아니라 내장의 구조도 확실히 금수가 아니라 사람이다.
오냐, 사람이다.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험한 길을 찾지 않으면 누구더러 찾으라 하리! 산정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것도 사람이 할 것이다. 오냐, 이 팔은 무엇 하자는 팔이고 이 다리는 어디 쓰자는 다리냐?
「경희」중에서
토론하기
(1) 경희에게는 학업 또는 직업 활동과 결혼을 함께 하는 길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오늘날과의 차이를 생각하며 답해봅시다.
(2) 경희는 자신이 여자이기 전에 사람임을 재차 강조하는데, 여기서 ‘사람’은 동물과 구분되는 존재이면서, 단순히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해서 ‘사람다운’ 것은 아닙니다. 이런 구분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그리고 이 ‘사람다움’은 어떤 의미일까요?
해설읽기
소설 속 주인공 경희와 마찬가지로 나혜석 또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식민지 조선 여성 가운데 드문 경우였다. 그러나 나혜석의 아버지는 유학을 중단하고 결혼하기를 요구했고, 나혜석은 자신의 힘으로 유학 생활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교사로 일하며 학비를 모아 일본으로 돌아갔다.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할 만큼 전도유망한 나혜석조차도 여성은 공적으로 인정받는 존재가 되기보다는 결혼을 해야한다는 시대적 관습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웠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소설에 작가가 자신의 경험에서 깨달은 문제의식이 반영되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경희」보다 먼저 발표한 논설 「이상적 부인」에서 나혜석은 “과거 및 현재를 통하여 이상적 부인이라 할 부인은 없다고 생각하는 바”라고 주장하며 조선 여성이 나아가야 할 길을 논의한다. 기존의 이상적 여성상이라 할 수 있는 ‘양처현모’에 대해서는, “여자를 노예 만들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라 비판하고 대신 ‘실력’을 갖추고 “자신의 개성을 발휘코자 하는 자각”을 가진 “선각자”가 되기를 종용한다. 이 문제의식은 소설 전체에 걸쳐 경희가 피력하는 주장과 상통한다. 그러나 소설에서 경희는 막상 닥쳐올 현실을 생각하면 막막하다. 왜냐하면 경희 또한 ‘조선 가정의 인습(因習)’ 속에서 자라온 여성이며, 여성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평범한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단연 뛰어남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꿈꾸던 새로운 조선 사회와 가정을 이룩하기에는 스스로가 너무나도 작고 부족하다고 느끼면서, 새삼 결혼한 부인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에게 말을 번복할까 고민하기를 잠시, 창문을 여니 보이는 풍경에서 경희는 답을 찾는다. 마당에 있는 개, 닭, 배나무 등의 이름을 떠올리며 자신의 명칭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니 결국 답은 하나다. “사람이지! 꼭 사람이다.”
‘나는 결국 사람’이라는 자각은 『인형의 집』 속 노라가 가정에 대한 의무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을 다하겠다는 선언과 공명한다. 두 인물의 국적과 살아가고 있는 환경 또는 시간 모두 다르지만, 이전과 달리 한 명의 주체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다는 점이 닮아있다. 이들은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 속박되어 ‘여자다움’이라는 이름으로 한계지어졌던 데에서 벗어나 자신다운 삶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앞뒤 맥락]
경희의 아버지 이철원은 김 부인을 찾아와 경희의 혼사 문제를 거론한다. 이철원은 최근에 들어온 혼처가 조건이 매우 좋아서 결혼을 강행하고 싶어 한다. 김 부인은 딸이 결혼보다는 학업을 중시하고 있음을 알고 있고, 또한 자신이 남 부럽지 않게 부귀하게 살아오긴 했지만, 남편의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 때문에 “비단치마 속에 근심과 설움이 있다”라는 딸의 말에 남몰래 동조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혼처가 아깝기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도 않는다. 대신 남편에게 경희가 학업에 학교에서 받은 가사 교육을 바탕으로 예전보다도 더 집안일을 잘하고 있음을 전한다.
다음 날 경희는 결혼을 두고 아버지와 설전을 벌인 끝에 방에 돌아와 눈물을 흘린다. 여자는 시집가서 자식을 낳고 시부모를 섬기고 남편을 공경하면 그만이라는 말에 경희는 그것은 옛날 말인데다가 “지금은 계집애도 사람”이고, “사람인 이상에는 못할 것이 없다”라고 반박한 것이다. 경희는 자신의 말을 번복하고 사회적 인습에 따를 것인지 고민에 빠지기도 하지만, 소설의 결말에서 자신의 다짐을 재차 새기며 하느님께 사람으로 살아갈 것을 기도한다.
[고전본문]
경희의 앞에는 지금 두 길이 있다. 그 길은 희미하지도 않고 또렷한 두 길이다. 한 길은 쌀이 곳간에 쌓이고 돈이 많고 귀염도 받고 사랑도 받고 밟기도 쉬운 황토요, 가기도 쉽고 찾기도 어렵지 않은 탄탄대로이다. 그러나 한 길에는 제 팔이 아프도록 보리방아를 찧어야 겨우 얻어먹게 되고 종일 땀을 흘리고 남의 일을 해주어야 겨우 몇 푼 돈이라도 얻어보게 된다. 이르는 곳마다 천대뿐이요, 사랑의 맛은 꿈에도 맛보지 못할 터이다. 발부리에서 피가 흐르도록 험한 돌을 밟아야 한다. 그 길은 뚝 떨어지는 절벽도 있고 날카로운 산정(山頂)도 있다. 물도 건너야 하고 언덕도 넘어야 하고 수없이 꼬부라진 길이요, 갈수록 험하고 찾기 어려운 길이다. 경희의 앞에 있는 이 두 길 중에 하나를 오늘 택해야만 하고 지금 꼭 정해야 한다. 오늘 택한 이상에는 내일 바꿀 수 없다. 지금 정한 마음이 이따가 급변할 리도 만무하다. 아아, 경희의 발은 이 두 길 중에 어느 길에 내놓아야 할까.
(중략)
“아이구, 어찌하나. 내가 그렇게 될 줄 알았을까……..”
한마디가 늘었다. 동시에 경희의 머리끝이 우쩍 위로 올라간다. 그러곤 경희의 뻔뻔한 얼굴, 넓적한 입, 길쭉한 사지의 형상이 모두 스러지고 조그마한 밀짚 끝에 깜박깜박하는 불꽃 같은 무엇이 바람에 떠 있는 것 같다. 방만은 후끈후끈하다. 부지중에 사방 창을 열어젖혔다.
뜨거운 강한 광선이 별안간에 왈칵 대드는 것은 편싸움꾼의 양편이 육모 방망이를 들고 자…………’ 하며 대드는 것같이 깜짝 놀랄 만치 강하게 쪼여 들어온다. 오색이 혼잡한 백일홍 활년화(活年花) 위로는 연락부절(連絡不絶)히 호랑나비 노랑나비 오고 가고 한다. 배나무 위의 까치 보금자리에는 까만 새끼 대가리가 들락날락하며, 어미 까치가 먹을 것을 가지고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댑싸리 그늘 밑에는 탑실개가 쓰러져 쿨쿨 자고 있다. 그 배는 불룩하다. 울타리 밑으로 굼벵이 잡으러 다니는 어미 닭의 뒤로는 대여섯 마리의 병아리가 줄줄 따라간다. 경희는 얼빠진 것 같이 멀거니 앉아서 보다가 몸을 일부러 움직였다.
“저것! 저것은 개다. 저것은 꽃이고 저것은 닭이다. 저것은 배나무다. 그리고 저기 매달린 것은 배다. 저 하늘에 뜬 것은 까치다. 저것은 항아리고 저것은 절구다.”
이렇게 경희는 눈에 보이는 대로 그 명칭을 불러본다. 옆에 놓인 머릿장도 만져본다. 그 위에 개어서 얹은 면주 이불도 쓰다듬어본다.
“그러면 내 명칭은 무엇인가? 사람이지! 꼭 사람이다.”
(중략)
아아, 대답 잘했다. 아버지가 “그리로 시집가면 좋은 옷에 생전 배불리 먹다 죽지 않겠니?” 하실 때에 그 무서운 아버지 앞에서 평생 처음으로 벌벌 떨며 대답하였다. “아버지 안자(顔子)의 말씀에도 일단사(一單食)와 일표음(一瓢飮)에 낙역재기중(樂亦在其中)이라는 말씀이 없습니까? 먹고만 살다 죽으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금수이지요. 보리밥이라도 제 노력으로 제 밥을 제가 먹는 것이 사람인 줄 압니다. 조상이 벌어놓은 밥 그것을 그대로 받은 남편의 그 밥을 또 그대로 얻어먹고 있는 것은 우리 집 개나 일반이지요” 하였다.
(중략)
경희도 사람이다. 그다음에는 여자다. 그럼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또 조선 사회의 여자보다 먼저 우주 안 전 인류의 여성이다. 이 철원 김 부인의 딸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딸이다. 여하튼 두말할 것 없이 사람의 형상이다. 그 형상은 잠깐 들씌운 가죽뿐 아니라 내장의 구조도 확실히 금수가 아니라 사람이다.
오냐, 사람이다.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험한 길을 찾지 않으면 누구더러 찾으라 하리! 산정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것도 사람이 할 것이다. 오냐, 이 팔은 무엇 하자는 팔이고 이 다리는 어디 쓰자는 다리냐?
「경희」중에서
토론하기
(1) 경희에게는 학업 또는 직업 활동과 결혼을 함께 하는 길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오늘날과의 차이를 생각하며 답해봅시다.
(2) 경희는 자신이 여자이기 전에 사람임을 재차 강조하는데, 여기서 ‘사람’은 동물과 구분되는 존재이면서, 단순히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해서 ‘사람다운’ 것은 아닙니다. 이런 구분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그리고 이 ‘사람다움’은 어떤 의미일까요?
해설읽기
소설 속 주인공 경희와 마찬가지로 나혜석 또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식민지 조선 여성 가운데 드문 경우였다. 그러나 나혜석의 아버지는 유학을 중단하고 결혼하기를 요구했고, 나혜석은 자신의 힘으로 유학 생활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교사로 일하며 학비를 모아 일본으로 돌아갔다.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할 만큼 전도유망한 나혜석조차도 여성은 공적으로 인정받는 존재가 되기보다는 결혼을 해야한다는 시대적 관습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웠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소설에 작가가 자신의 경험에서 깨달은 문제의식이 반영되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경희」보다 먼저 발표한 논설 「이상적 부인」에서 나혜석은 “과거 및 현재를 통하여 이상적 부인이라 할 부인은 없다고 생각하는 바”라고 주장하며 조선 여성이 나아가야 할 길을 논의한다. 기존의 이상적 여성상이라 할 수 있는 ‘양처현모’에 대해서는, “여자를 노예 만들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라 비판하고 대신 ‘실력’을 갖추고 “자신의 개성을 발휘코자 하는 자각”을 가진 “선각자”가 되기를 종용한다. 이 문제의식은 소설 전체에 걸쳐 경희가 피력하는 주장과 상통한다. 그러나 소설에서 경희는 막상 닥쳐올 현실을 생각하면 막막하다. 왜냐하면 경희 또한 ‘조선 가정의 인습(因習)’ 속에서 자라온 여성이며, 여성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평범한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단연 뛰어남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꿈꾸던 새로운 조선 사회와 가정을 이룩하기에는 스스로가 너무나도 작고 부족하다고 느끼면서, 새삼 결혼한 부인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에게 말을 번복할까 고민하기를 잠시, 창문을 여니 보이는 풍경에서 경희는 답을 찾는다. 마당에 있는 개, 닭, 배나무 등의 이름을 떠올리며 자신의 명칭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니 결국 답은 하나다. “사람이지! 꼭 사람이다.”
‘나는 결국 사람’이라는 자각은 『인형의 집』 속 노라가 가정에 대한 의무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을 다하겠다는 선언과 공명한다. 두 인물의 국적과 살아가고 있는 환경 또는 시간 모두 다르지만, 이전과 달리 한 명의 주체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다는 점이 닮아있다. 이들은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 속박되어 ‘여자다움’이라는 이름으로 한계지어졌던 데에서 벗어나 자신다운 삶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