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화적에 의해 눈앞에서 아버지를 잃는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윤 직원 영감에게 있어 지고의 가치는 생존이다.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게 되자 ‘윤 직원 영감’은 평생 일제의 권력에 아첨하고 기생하여 막대한 양의 부를 축재한다. 이미 노년에 접어든 그의 목표는 이제 하나, 일본에서 유학 중인 손자 ‘종학’이 경찰서장이 되어 권력까지 손에 넣는 것이다. 아들 ‘창식’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가속들은 모두 제 앞가림도 못 하는 반편이들뿐이기에, 윤 직원 영감은 모든 희망을 종학에게 걸고 있다. 그러던 중 동경에서 전보가 한 장 날아온다. 유일하게 믿고 있던 손자 종학이 ‘사상 관계로 경시청에 피검’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전보였다. 윤 직원 영감은 손자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배신감과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떤다.
고전본문
“종학이가 사상 관계로 경시청에 붙잽혔다는 뜻일 테지요!” (중략)
“……그런 쳐 죽일 놈이, 깎어 죽여두 아깝잖을 놈이! 그놈이 경찰서장 하라닝개루, 생판 사회주의 허다가 뎁다 경찰서에 잽혀? 으응?…… 오사육시를 헐 놈이, 그놈이 그게 어디 당헌 것이라구 지가 사회주의를 히여? 부잣놈의 자식이 무엇이 대껴서 부랑당패에 들어?……”
아무도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섰기 아니면 앉았을 뿐, 윤직원 영감이 잠깐 말을 그치자 방 안은 물을 친 듯이 조용합니다.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오죽이나……”
윤직원 영감은 팔을 부르걷은 주먹으로 방바닥을 땅 치면서 성난 황소가 영각을 하듯 고함을 지릅니다.
“화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 같은 수령들이 있더냐?…… 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요,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넌 다 지나고오……,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한 정사,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십만 명 동병을 히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하여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 것 지니고 앉어서 편안허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그런디 이런 태평천하에 태어난 부잣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 지가 떵떵거리구 편안허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놀 부랑당패에 참섭을 헌담 말이여, 으응?”
땅 방바닥을 치면서 벌떡 일어섭니다. 그 몸짓이 어떻게도 요란스럽고 괄괄한지, 방금 발광이 되는가 싶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모여 선 가권들은 방바닥 치는 소리에도 놀랐지만, 이 어른이 혹시 상성이 되지나 않는가 하는 의구의 빛이 눈에 나타남을 가리지 못합니다.
채만식, 『태평천하』에서
토론하기
(1) 일제 식민지시기가 ‘태평천하’라는 윤 직원 영감의 반박할 수 있는 논리를 스스로 생각해보자.
(2) 서술자는 인용된 대목에 대한 별다른 평가를 하지 않고 작품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렇듯 윤 직원 영감의 말로 작품의 결말을 지은 의도는 무엇일까
해설읽기
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서도 자주 보이는 『태평천하』는 대개 ‘풍자소설’로 소개된다. 이러한 소개가 없어도 『태평천하』가 풍자소설이라는 것을 알아보기에는 대단한 통찰이 필요치 않다. 작가 채만식의 개성적인 문체와 노골적인 제목에 힘입어, 작품의 중요한 장치인 ‘아이러니(irony=반어)’를 이해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윤 직원 영감이 내놓은 답 ‘태평천하’는 뻔한 오답이다. 일제 식민지시기가 태평천하라니. 지극히 비상식적인 헛소리라 반박할 시간조차 낭비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의 답을 찾는 것은 이러한 뻔한 오답을 반박해보는 것에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채만식은 알고 있었다.
능청스러운 말투와 반어적 조롱에 능한 서술자는 마치 판소리의 창자와 같은 어투로 작품 내내 독자들에게 친절한 설명을 제공한다. 인용된 대목의 장 제목도 ‘망진자는 호야니라(亡秦者胡也)’로, 중국 진나라를 망하게 한 것이 ‘오랑캐(胡)’가 아닌 진시황의 자식 ‘호해(胡亥)’임을 말하는 것으로 작품의 내용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갑자기 서술자는 오로지 미쳐 가는 윤 직원 영감의 모습을 보여준다. 배신감에 치를 떨며 “발광”하는 모습을 보이는 윤 직원 영감의 모습은 차라리 안쓰러울 지경이다. 서술자도 이때만큼은 윤 직원 영감을 조롱하거나 비웃지 않는다. 독자들에게 그 역할을 대신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이 뻔한 오답을 반박할 수 있을까?
교과서에 쓰여 있을 법한 답은 그가 친일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민족’의 이름으로 자행된 참사들을 보고 있노라면, 현대의 관점에서 ‘민족주의’는 답의 근거가 되기 어렵다. 단순히 그가 동족을 져버렸기 때문에 악이라는 논리는 또 다른 폭력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가 단순히 친일파가 아니라 권력에 아첨하고 기생하는 ‘기회주의자’이기 때문에 틀렸다는 설명은 어떨까? 윤 직원 영감이 자신의 신념이 없이 권력과 영달만을 좇는 사람이었다면 그러한 설명이 타당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결말을 보자. 윤 직원 영감은 진심으로 일제 식민지시기가 태평천하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결말에 나타나는 윤 직원 영감의 모습은 자신과 가문의 알량한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일생의 신념을 배신당한 사람의 모습이다. 물론 이 신념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강자의 편에 서서 약자를 괴롭히는 논리를 정당화하는 신념이 옳다고 하긴 어렵다. 그러나 윤 직원 영감 역시 하찮은 약자였다. 화적패에 손에 아버지를 잃고 나서도 어떻게든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려 했던, 즉 자신의 답을 찾으려 했던 약자였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드디어 우리에게는 ‘개인 뒤의 구조’가 보인다. 이 끔찍한 시기를 ‘태평천하’라고 부르짖게 만드는 ‘미친 세상’이 보인다. 세상에 뻔한 오답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를 파멸로 몰아넣으려는 《어벤져스》의 ‘타노스’마저 이상과 사연이 있는 마당에 어찌 뻔한 오답이 있을 수 있을까. 물론 윤 직원 영감이나 타노스가 내놓은 답이 오답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의 답을 찾는 것은, 그것을 쉽고 편하게 오답이라 치부하지 않고 치열하게 고민해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키워드
고민, 아이러니, 오답, 채만식, 태평천하
전후맥락
화적에 의해 눈앞에서 아버지를 잃는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윤 직원 영감에게 있어 지고의 가치는 생존이다.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게 되자 ‘윤 직원 영감’은 평생 일제의 권력에 아첨하고 기생하여 막대한 양의 부를 축재한다. 이미 노년에 접어든 그의 목표는 이제 하나, 일본에서 유학 중인 손자 ‘종학’이 경찰서장이 되어 권력까지 손에 넣는 것이다. 아들 ‘창식’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가속들은 모두 제 앞가림도 못 하는 반편이들뿐이기에, 윤 직원 영감은 모든 희망을 종학에게 걸고 있다. 그러던 중 동경에서 전보가 한 장 날아온다. 유일하게 믿고 있던 손자 종학이 ‘사상 관계로 경시청에 피검’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전보였다. 윤 직원 영감은 손자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배신감과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떤다.
고전본문
“종학이가 사상 관계로 경시청에 붙잽혔다는 뜻일 테지요!” (중략)
“……그런 쳐 죽일 놈이, 깎어 죽여두 아깝잖을 놈이! 그놈이 경찰서장 하라닝개루, 생판 사회주의 허다가 뎁다 경찰서에 잽혀? 으응?…… 오사육시를 헐 놈이, 그놈이 그게 어디 당헌 것이라구 지가 사회주의를 히여? 부잣놈의 자식이 무엇이 대껴서 부랑당패에 들어?……”
아무도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섰기 아니면 앉았을 뿐, 윤직원 영감이 잠깐 말을 그치자 방 안은 물을 친 듯이 조용합니다.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오죽이나……”
윤직원 영감은 팔을 부르걷은 주먹으로 방바닥을 땅 치면서 성난 황소가 영각을 하듯 고함을 지릅니다.
“화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 같은 수령들이 있더냐?…… 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요,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넌 다 지나고오……,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한 정사,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십만 명 동병을 히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하여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 것 지니고 앉어서 편안허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그런디 이런 태평천하에 태어난 부잣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 지가 떵떵거리구 편안허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놀 부랑당패에 참섭을 헌담 말이여, 으응?”
땅 방바닥을 치면서 벌떡 일어섭니다. 그 몸짓이 어떻게도 요란스럽고 괄괄한지, 방금 발광이 되는가 싶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모여 선 가권들은 방바닥 치는 소리에도 놀랐지만, 이 어른이 혹시 상성이 되지나 않는가 하는 의구의 빛이 눈에 나타남을 가리지 못합니다.
채만식, 『태평천하』에서
토론하기
(1) 일제 식민지시기가 ‘태평천하’라는 윤 직원 영감의 반박할 수 있는 논리를 스스로 생각해보자.
(2) 서술자는 인용된 대목에 대한 별다른 평가를 하지 않고 작품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렇듯 윤 직원 영감의 말로 작품의 결말을 지은 의도는 무엇일까
해설읽기
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서도 자주 보이는 『태평천하』는 대개 ‘풍자소설’로 소개된다. 이러한 소개가 없어도 『태평천하』가 풍자소설이라는 것을 알아보기에는 대단한 통찰이 필요치 않다. 작가 채만식의 개성적인 문체와 노골적인 제목에 힘입어, 작품의 중요한 장치인 ‘아이러니(irony=반어)’를 이해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윤 직원 영감이 내놓은 답 ‘태평천하’는 뻔한 오답이다. 일제 식민지시기가 태평천하라니. 지극히 비상식적인 헛소리라 반박할 시간조차 낭비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의 답을 찾는 것은 이러한 뻔한 오답을 반박해보는 것에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채만식은 알고 있었다.
능청스러운 말투와 반어적 조롱에 능한 서술자는 마치 판소리의 창자와 같은 어투로 작품 내내 독자들에게 친절한 설명을 제공한다. 인용된 대목의 장 제목도 ‘망진자는 호야니라(亡秦者胡也)’로, 중국 진나라를 망하게 한 것이 ‘오랑캐(胡)’가 아닌 진시황의 자식 ‘호해(胡亥)’임을 말하는 것으로 작품의 내용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갑자기 서술자는 오로지 미쳐 가는 윤 직원 영감의 모습을 보여준다. 배신감에 치를 떨며 “발광”하는 모습을 보이는 윤 직원 영감의 모습은 차라리 안쓰러울 지경이다. 서술자도 이때만큼은 윤 직원 영감을 조롱하거나 비웃지 않는다. 독자들에게 그 역할을 대신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이 뻔한 오답을 반박할 수 있을까?
교과서에 쓰여 있을 법한 답은 그가 친일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민족’의 이름으로 자행된 참사들을 보고 있노라면, 현대의 관점에서 ‘민족주의’는 답의 근거가 되기 어렵다. 단순히 그가 동족을 져버렸기 때문에 악이라는 논리는 또 다른 폭력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가 단순히 친일파가 아니라 권력에 아첨하고 기생하는 ‘기회주의자’이기 때문에 틀렸다는 설명은 어떨까? 윤 직원 영감이 자신의 신념이 없이 권력과 영달만을 좇는 사람이었다면 그러한 설명이 타당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결말을 보자. 윤 직원 영감은 진심으로 일제 식민지시기가 태평천하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결말에 나타나는 윤 직원 영감의 모습은 자신과 가문의 알량한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일생의 신념을 배신당한 사람의 모습이다. 물론 이 신념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강자의 편에 서서 약자를 괴롭히는 논리를 정당화하는 신념이 옳다고 하긴 어렵다. 그러나 윤 직원 영감 역시 하찮은 약자였다. 화적패에 손에 아버지를 잃고 나서도 어떻게든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려 했던, 즉 자신의 답을 찾으려 했던 약자였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드디어 우리에게는 ‘개인 뒤의 구조’가 보인다. 이 끔찍한 시기를 ‘태평천하’라고 부르짖게 만드는 ‘미친 세상’이 보인다. 세상에 뻔한 오답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를 파멸로 몰아넣으려는 《어벤져스》의 ‘타노스’마저 이상과 사연이 있는 마당에 어찌 뻔한 오답이 있을 수 있을까. 물론 윤 직원 영감이나 타노스가 내놓은 답이 오답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의 답을 찾는 것은, 그것을 쉽고 편하게 오답이라 치부하지 않고 치열하게 고민해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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