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주인공이자 대학생 지식인인 ‘이명준’은 아버지의 월북으로 인해 남한에서 갖은 고초를 겪는다. 남한의 체제와 이데올로기에 실망한 명준은 자신도 월북을 감행하지만, 북한의 체제와 이데올로기 역시 만족스럽지 않다. 그러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고, 당의 간부로서 전쟁에 참전한 명준은 전쟁터에서 아내 ‘은혜’와 뱃속에 있던 딸을 잃는다. 전쟁 포로가 된 명준은 전쟁이 끝날 무렵, 어디로 돌아갈지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양측의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모두 겪어 본 명준으로서는 둘 다 선택하고 싶지 않았고, 자신을 설득하는 양측의 대표 앞에서 오직 ‘중립국’이라는 대답만을 반복한다.
고전본문
나오는 문 앞에서, 서기의 책상 위에 놓인 명부에 이름을 적고 천막을 나서자, 그는 마치 재채기를 참았던 사람처럼 몸을 벌떡 뒤로 젖히면서, 마음껏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찔끔찔끔 번지고, 침이 걸려서 캑캑거리면서도 그의 웃음은 멎지 않았다.
준다고 바다를 마실 수는 없는 일. 사람이 마시기는 한 사발의 물. 준다는 것도 허황하고 가지거니 함도 철없는 일. 바다와 한 잔의 물 그 사이에 놓인 골짜기와 눈물과 땀과 피. 그것을 셈할 줄 모르는 데 잘못이 있었다. 세상에서 뒤진 가난한 땅에 자란 지식 노동자의 슬픈 환장. 과학을 믿은 게 아니라 마술을 믿었던 게지. 바다를 한 잔의 영생수로 바꿔준다는 마술사의 말을. 그들은 뻔히 알면서 권력이라는 약을 팔려고 말로 속인 꾀임을. 어리석게 신비한 술잔을 찾아나섰다가, 낌새를 차리고 항구를 돌아보자, 그들은 항구를 차지하고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참을 알고 돌아온 바다의 난파자들을 그들은 감옥에 가둘 것이다. 못된 균을 옮기지 않기 위해서. 역사는 소걸음으로 움직인다. 사람의 커다란 모순과 업에 비기면, 아무 자국도 못 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당대까지 사람이 만들어낸 물질 생산의 수확을 고르게 나누는 것만이 모든 시대에 두루 맞는 가능한 일이다. 마찬가지 아닌가. 벌써 아득한 옛날부터 사람 동네가 알아낸 슬기. 사람이라는 조건에서 비롯하는 슬픔과 기쁨을 고루 나누는 것. 그래 봐야, 사람의 조건이 아직도 풀어나가야 할 어려움의 크기에 대면,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이 이루어놓은 것에 눈을 돌리지 않고, 이루어야 할 것에만 눈을 돌리면, 그 자리에서 그는 사람의 힘을 잃는다. 사람이 풀어야 할 일을 한눈에 보여주는 것ㅡ 그것이 ‘죽음’이다. 은혜의 죽임을 당했을 때, 이명준 배에서는 마지막 돛대가 부러진 셈이다. 이제 이루어 놓은 것에 눈을 돌리면서 살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지 않다. 팔자소관으로 빨리 늙는 사람도 있는 법이었다. 사람마다 다르게 마련된 몸의 길, 마음의 길, 무리의 길, 대일 언덕 없는 난파꾼은 항구를 잊어버리기로 하고 물결 따라 나선다. 환상의 술에 취해보지 못한 섬에 닿기를 바라며. 그리고 그 섬에서 환상 없는 사람을 살기 위해서. 무서운 것을 너무 빨리 본 탓으로 지쳐빠진 몸이, 자연의 수명을 다하기를 기다리면서 쉬기 위해서. 그렇게 해서 결정한, 중립국행이었다.
최인훈, 『광장』 중에서
토론하기
(1) 인용된 대목에는 많은 상징과 비유가 사용되고 있다. 각각의 의미를 스스로 추론해보자.
(2) 명준의 중립국행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것은 명준의 고민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까?
해설읽기
누구나 문제를 풀다가 막혀 해설지를 뒤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명쾌한 해설에 무릎을 탁 치고, 완벽히 이해했다고 믿은 채 다음 문제로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그것은 해설지에 적힌 답이지 내가 찾은 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광장』의 주인공 명준은 열심히 공부하는 모범생이다. 해설지에 나의 답이 있을 것이라 믿고, 그 풀이방식을 열심히 세상에 적용해보는 모범생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데올로기(ideology)’는 인류의 해설지이다. 인간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에 따라 문명은 어떻게 형성되고,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의 풀이과정을 전부 담고 있는 해설지이다. 홉스(Thomas Hobbes), 루소(Jean-Jacques Rousseau), 마르크스(Karl Marx) 등 역사가 인증한 위대한 천재들이 작성한 해설지이니 그 공신력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문제의 진단과 풀이방식에 따라 취향이 갈리고 유파가 나뉘어 서로 싸우는 것도 당연하다. 입시제도에 시달리고 있는 고등학생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자기 스타일에 따라 선생을 정함으로써 ‘일타강사’들의 경쟁이 시작되지 않는가. 문제는 이러한 경쟁의 존재가 아니다. 문제는 일타강사라고 해서 모든 학생들의 성적을 올려주지는 못 하는 것처럼, 이데올로기가 모든 개인에게 답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인류가 모험과 탐구의 정신으로 발견한 “바다”다. 바다는 끝없이 인간을 꿈꾸게 하고, 도전하게 만드는 무한하고 불변하는 자연이다. 그러나 정작 목마른 개인에게 바닷물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아름다운 바닷물을 “영생수”라고 착각하고 “항구”를 떠났을 때, “권력”은 잽싸게 항구를 점거하고 개인이 돌아올 곳을 지워버린다. 이렇듯 마실 수도 없고, 권력에 이용당할 여지까지 있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는 위험하다. 내가 찾아야만 하는 나의 답을 해설지에 의존하게 만들고, 정작 나는 생각할 줄 모르는 바보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당대까지 사람이 만들어낸 물질 생산의 수확을 고르게 나누는 것”이라는 논리의 이데올로기인 ‘사회주의’는, “사람이라는 조건에서 비롯하는 슬픔과 기쁨을 고루 나누는 것”이라는 개인의 과제에 아무런 답을 줄 수 없다. 해설지에 적혀 있는 것은 “이루어야 할 것”, 즉 아직 ‘오지 않은(未來)’ 미래이며, 그렇기에 “환상”이기 때문이다. 환상이 줄 수 있는 ‘현재’의 답은 없다.
그래서 중립국행은 공허하다. 그것은 이데올로기가 없는 곳을 찾아 떠나는 행위일 뿐, 답을 찾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자연의 수명”이 다하기를 기다리기 위해 가는 중립국은 답이 될 수 없다. 물론 답을 찾다가 아내와 딸, 고향 등 모든 것을 잃고 체념한 명준을 탓할 수는 없다. 다만 나의 답을 찾을 때 해설지는 잠시 접어둬야 한다는 교훈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해설지에 의존하여 문제를 푸는 습관을 들이다 보면, 언젠가는 모든 문제에 지친 채 명준처럼 중립국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키워드
광장, 냉전,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최인훈
전후맥락
주인공이자 대학생 지식인인 ‘이명준’은 아버지의 월북으로 인해 남한에서 갖은 고초를 겪는다. 남한의 체제와 이데올로기에 실망한 명준은 자신도 월북을 감행하지만, 북한의 체제와 이데올로기 역시 만족스럽지 않다. 그러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고, 당의 간부로서 전쟁에 참전한 명준은 전쟁터에서 아내 ‘은혜’와 뱃속에 있던 딸을 잃는다. 전쟁 포로가 된 명준은 전쟁이 끝날 무렵, 어디로 돌아갈지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양측의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모두 겪어 본 명준으로서는 둘 다 선택하고 싶지 않았고, 자신을 설득하는 양측의 대표 앞에서 오직 ‘중립국’이라는 대답만을 반복한다.
고전본문
나오는 문 앞에서, 서기의 책상 위에 놓인 명부에 이름을 적고 천막을 나서자, 그는 마치 재채기를 참았던 사람처럼 몸을 벌떡 뒤로 젖히면서, 마음껏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찔끔찔끔 번지고, 침이 걸려서 캑캑거리면서도 그의 웃음은 멎지 않았다.
준다고 바다를 마실 수는 없는 일. 사람이 마시기는 한 사발의 물. 준다는 것도 허황하고 가지거니 함도 철없는 일. 바다와 한 잔의 물 그 사이에 놓인 골짜기와 눈물과 땀과 피. 그것을 셈할 줄 모르는 데 잘못이 있었다. 세상에서 뒤진 가난한 땅에 자란 지식 노동자의 슬픈 환장. 과학을 믿은 게 아니라 마술을 믿었던 게지. 바다를 한 잔의 영생수로 바꿔준다는 마술사의 말을. 그들은 뻔히 알면서 권력이라는 약을 팔려고 말로 속인 꾀임을. 어리석게 신비한 술잔을 찾아나섰다가, 낌새를 차리고 항구를 돌아보자, 그들은 항구를 차지하고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참을 알고 돌아온 바다의 난파자들을 그들은 감옥에 가둘 것이다. 못된 균을 옮기지 않기 위해서. 역사는 소걸음으로 움직인다. 사람의 커다란 모순과 업에 비기면, 아무 자국도 못 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당대까지 사람이 만들어낸 물질 생산의 수확을 고르게 나누는 것만이 모든 시대에 두루 맞는 가능한 일이다. 마찬가지 아닌가. 벌써 아득한 옛날부터 사람 동네가 알아낸 슬기. 사람이라는 조건에서 비롯하는 슬픔과 기쁨을 고루 나누는 것. 그래 봐야, 사람의 조건이 아직도 풀어나가야 할 어려움의 크기에 대면,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이 이루어놓은 것에 눈을 돌리지 않고, 이루어야 할 것에만 눈을 돌리면, 그 자리에서 그는 사람의 힘을 잃는다. 사람이 풀어야 할 일을 한눈에 보여주는 것ㅡ 그것이 ‘죽음’이다. 은혜의 죽임을 당했을 때, 이명준 배에서는 마지막 돛대가 부러진 셈이다. 이제 이루어 놓은 것에 눈을 돌리면서 살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지 않다. 팔자소관으로 빨리 늙는 사람도 있는 법이었다. 사람마다 다르게 마련된 몸의 길, 마음의 길, 무리의 길, 대일 언덕 없는 난파꾼은 항구를 잊어버리기로 하고 물결 따라 나선다. 환상의 술에 취해보지 못한 섬에 닿기를 바라며. 그리고 그 섬에서 환상 없는 사람을 살기 위해서. 무서운 것을 너무 빨리 본 탓으로 지쳐빠진 몸이, 자연의 수명을 다하기를 기다리면서 쉬기 위해서. 그렇게 해서 결정한, 중립국행이었다.
최인훈, 『광장』 중에서
토론하기
(1) 인용된 대목에는 많은 상징과 비유가 사용되고 있다. 각각의 의미를 스스로 추론해보자.
(2) 명준의 중립국행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것은 명준의 고민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까?
해설읽기
누구나 문제를 풀다가 막혀 해설지를 뒤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명쾌한 해설에 무릎을 탁 치고, 완벽히 이해했다고 믿은 채 다음 문제로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그것은 해설지에 적힌 답이지 내가 찾은 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광장』의 주인공 명준은 열심히 공부하는 모범생이다. 해설지에 나의 답이 있을 것이라 믿고, 그 풀이방식을 열심히 세상에 적용해보는 모범생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데올로기(ideology)’는 인류의 해설지이다. 인간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에 따라 문명은 어떻게 형성되고,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의 풀이과정을 전부 담고 있는 해설지이다. 홉스(Thomas Hobbes), 루소(Jean-Jacques Rousseau), 마르크스(Karl Marx) 등 역사가 인증한 위대한 천재들이 작성한 해설지이니 그 공신력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문제의 진단과 풀이방식에 따라 취향이 갈리고 유파가 나뉘어 서로 싸우는 것도 당연하다. 입시제도에 시달리고 있는 고등학생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자기 스타일에 따라 선생을 정함으로써 ‘일타강사’들의 경쟁이 시작되지 않는가. 문제는 이러한 경쟁의 존재가 아니다. 문제는 일타강사라고 해서 모든 학생들의 성적을 올려주지는 못 하는 것처럼, 이데올로기가 모든 개인에게 답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인류가 모험과 탐구의 정신으로 발견한 “바다”다. 바다는 끝없이 인간을 꿈꾸게 하고, 도전하게 만드는 무한하고 불변하는 자연이다. 그러나 정작 목마른 개인에게 바닷물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아름다운 바닷물을 “영생수”라고 착각하고 “항구”를 떠났을 때, “권력”은 잽싸게 항구를 점거하고 개인이 돌아올 곳을 지워버린다. 이렇듯 마실 수도 없고, 권력에 이용당할 여지까지 있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는 위험하다. 내가 찾아야만 하는 나의 답을 해설지에 의존하게 만들고, 정작 나는 생각할 줄 모르는 바보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당대까지 사람이 만들어낸 물질 생산의 수확을 고르게 나누는 것”이라는 논리의 이데올로기인 ‘사회주의’는, “사람이라는 조건에서 비롯하는 슬픔과 기쁨을 고루 나누는 것”이라는 개인의 과제에 아무런 답을 줄 수 없다. 해설지에 적혀 있는 것은 “이루어야 할 것”, 즉 아직 ‘오지 않은(未來)’ 미래이며, 그렇기에 “환상”이기 때문이다. 환상이 줄 수 있는 ‘현재’의 답은 없다.
그래서 중립국행은 공허하다. 그것은 이데올로기가 없는 곳을 찾아 떠나는 행위일 뿐, 답을 찾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자연의 수명”이 다하기를 기다리기 위해 가는 중립국은 답이 될 수 없다. 물론 답을 찾다가 아내와 딸, 고향 등 모든 것을 잃고 체념한 명준을 탓할 수는 없다. 다만 나의 답을 찾을 때 해설지는 잠시 접어둬야 한다는 교훈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해설지에 의존하여 문제를 푸는 습관을 들이다 보면, 언젠가는 모든 문제에 지친 채 명준처럼 중립국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키워드
광장, 냉전,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최인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