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주인공이자 문둥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소록도 병원에 병원장으로 취임한 ‘조백헌’ 원장은 지옥이나 다름없는 소록도를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나환자 축구팀’을 만들어 자신감을 심어주고, 득량만 간척사업에 착수하여 문둥병 환자들 역시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자 한다. 그러나 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또 다른 주인공 ‘이상욱’은 그를 도우면서도, 끊임없이 그가 새로운 ‘동상’을 만들어낼 것을 경계한다. 결국 외부의 방해에 의해 득량만 간척사업은 실패로 돌아가고, 조 원장은 소록도를 떠난다. 그리고 7년이 흐르고 조 원장은 특별한 결혼식의 주례를 맡기 위해 소록도로 돌아온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문둥병 환자였던 ‘윤해원’과, 섬을 관리하는 직원이었던 ‘서미연’이다. 상욱은 오랜만에 돌아 온 조 원장을 찾아가는데, 주례사를 연습하고 있던 조 원장의 목소리를 문 앞에서 듣게 된다.
고전본문
시간이 늦어버린 가운데에 그 조 원장의 능청스런 축사 연습은, 그리고 자신의 광기에 못 이긴 기이하고도 진지한 연기는 아직도 한동안이나 더 도도하게 계속돼나갔다.
“이제 두 분에 대한 저의 당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비로소 윤해원과 서미연 두 사람의 대한 그의 당부라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두 분에 대한 저의 당부라는 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앞서도 이미 말했듯이 두 분은 기왕에 남다른 사랑과 용기로 이 일을 이룩하였으니 앞으로도 계속 자신들의 방둑을 허물어뜨리지 말고 누구보다 굳세게 그를 지키고 살찌워 나가주시라는 것입니다. 벽을 허물어뜨리고 그 절벽 대신 따듯한 인정이 넘나들 믿음과 사랑의 다리가 놓여야 할 곳은 많습니다. 다리의 이쪽과 저쪽이 한동네 마을로 섞이고 화목해야 할 자리는 많습니다. 제가 두 분의 신접살림을 직원 지대와 병사 지대의 중간에 마련하고자 했던 것도 사실은 그런 뜻에서였습니다. 두 분의 결합과 정착지를 시발점으로 하여 하루빨리 이 섬에서부터 두 마을이 하나로 합해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두 분의 정착지가 하루빨리 새로운 마을로 번창하여 이 섬 안엔 건강 지대와 병사 지대가 따로 없는 하나의 마을로 채워지기를 빕니다. 이제 두 사람으로 해서 그 오랜 둑길이 이어지고 길이 뚫렸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의 이웃은 힘을 합해 그 길을 지키고 넓혀나갈 것입니다……”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중에서
토론하기
(1) 조 원장이 소록도의 주민들에게 선물하고자 했던 ‘천국’이 ‘당신들의 천국’인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해보자.
(2) 인용된 대목은 작품의 결말이다. 작가가 결혼식 장면을 보여주지 않고, 조 원장의 주례사를 상욱이 엿듣는 것으로 마무리 한 의도는 무엇일지 생각해보자.
해설읽기
인생은 끝없는 시험의 연속이다. 매 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수능시험과 입사시험을 비롯하여 인간은 살면서 무수한 문제에 직면하고 그에 맞는 답을 내린다. 객관식 선지가 존재하지 않는, 언제나 주관식인 삶의 문제들에도 인간은 수없이 부딪힌다. 틀릴 때도 많고, 한 문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리고 그렇게 틀린 한 문제는 오랫동안 후회가 되어 나를 괴롭힐 것이다. ‘그 때 그 문제만 맞았더라면, 내 인생이 지금보다는 나아졌을 텐데….’
『당신들의 천국』은 흔히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소설로 해석된다. 문둥병 환자들의 ‘천국’을 만들어주겠다는 조 원장의 기획과 사업은, 당대 농민 대중들에게 천국을 만들어주겠다는 ‘새마을운동’ 등의 개발독재 사업과 닮아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문둥병 환자들의 의지할 수 있는 ‘동상’이 되어가는 조 원장의 모습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과 자연스레 겹쳐 보인다. 물론 지배자의 시선에서 조직된 조 원장의 이상은 피지배자인 문둥병 환자들의 이상과 같을 수 없기에, 그가 만들어내고자 하는 천국은 ‘당신들의 천국’이다. 결국 조 원장은 선한 의도를 가졌음에도 처참하게 실패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 원장에 대한 평가와 그것이 주는 교훈은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걸작에 대한 1차적인 독법일 뿐이다.
7년 만에 돌아온 조 원장이 가지고 온 해답은 ‘사랑’이다. 문둥병을, 타자(他者)를, ‘나와 다름’을 ‘혐오’의 근거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이해’의 근거로 삼는 사랑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가 내놓았던 해답이고, 그렇기에 진부하기까지 한 해답이다. 더욱이 실천하기에 쉬운 해답도 아니다. 7년 뒤에도 “병사 지대”와 “직원 지대”가 나뉘어져 있는 현실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조 원장의 답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답의 내용보다는 답을 도출해내기까지의 과정이다. 조 원장은 한 번 틀렸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소록도의 천국 실현 여부는 자신의 이상과 야망을 이루고, 자신이 생각하는 신념과 정의를 관철하고 증명할 수 있는 문제, 그렇기에 절대 틀려서는 안 되는 치명적인 문제였다. 우상에 의지하게 되자마자 우상을 잃은 소록도는 예전보다도 무기력한 모습으로 돌아갔고, 조 원장은 병원장이라는 지위를 잃고 패잔병처럼 물러났다.
그러나 조 원장은 다음 문제를 포기하지 않았다. 틀린 문제를 후회로만 삼지 않았다. 문둥병 환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신념을 저주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가 그를 다음 해답으로 이끌었다. 중요한 것은 답을 도출하기까지의 과정이다. 틀린 답보다 중요한 것은 그 틀린 답에 이르기까지 내가 헤맸고 결국 실패로 돌아간 여정, 그리고 그것을 발판 삼아 앞으로 맞는 답을 찾기 위해 나아가야 할 여정이다. 사랑이 맞는 답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답의 과정이 보여주는 것은, 설사 그것이 틀렸을지라도 조 원장은 다음 답을 찾을 것이라는 점이다.
작가 이청준은 결혼식 장면이 아닌, 상욱이 조 원장의 주례사를 엿듣는 장면으로 그의 해답을 소개했다. 그것은 자신의 해답을 하나의 결과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답은 도출된 결과의 형태가 아니라, 개인의 치열한 고민으로 점철된 과정의 형태로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틀려도 괜찮다. 그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처럼 보였을지라도, 삶은 계속되고 다음 문제는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키워드
당신들의 천국, 사랑, 우상, 이청준, 천국
전후맥락
주인공이자 문둥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소록도 병원에 병원장으로 취임한 ‘조백헌’ 원장은 지옥이나 다름없는 소록도를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나환자 축구팀’을 만들어 자신감을 심어주고, 득량만 간척사업에 착수하여 문둥병 환자들 역시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자 한다. 그러나 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또 다른 주인공 ‘이상욱’은 그를 도우면서도, 끊임없이 그가 새로운 ‘동상’을 만들어낼 것을 경계한다. 결국 외부의 방해에 의해 득량만 간척사업은 실패로 돌아가고, 조 원장은 소록도를 떠난다. 그리고 7년이 흐르고 조 원장은 특별한 결혼식의 주례를 맡기 위해 소록도로 돌아온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문둥병 환자였던 ‘윤해원’과, 섬을 관리하는 직원이었던 ‘서미연’이다. 상욱은 오랜만에 돌아 온 조 원장을 찾아가는데, 주례사를 연습하고 있던 조 원장의 목소리를 문 앞에서 듣게 된다.
고전본문
시간이 늦어버린 가운데에 그 조 원장의 능청스런 축사 연습은, 그리고 자신의 광기에 못 이긴 기이하고도 진지한 연기는 아직도 한동안이나 더 도도하게 계속돼나갔다.
“이제 두 분에 대한 저의 당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비로소 윤해원과 서미연 두 사람의 대한 그의 당부라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두 분에 대한 저의 당부라는 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앞서도 이미 말했듯이 두 분은 기왕에 남다른 사랑과 용기로 이 일을 이룩하였으니 앞으로도 계속 자신들의 방둑을 허물어뜨리지 말고 누구보다 굳세게 그를 지키고 살찌워 나가주시라는 것입니다. 벽을 허물어뜨리고 그 절벽 대신 따듯한 인정이 넘나들 믿음과 사랑의 다리가 놓여야 할 곳은 많습니다. 다리의 이쪽과 저쪽이 한동네 마을로 섞이고 화목해야 할 자리는 많습니다. 제가 두 분의 신접살림을 직원 지대와 병사 지대의 중간에 마련하고자 했던 것도 사실은 그런 뜻에서였습니다. 두 분의 결합과 정착지를 시발점으로 하여 하루빨리 이 섬에서부터 두 마을이 하나로 합해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두 분의 정착지가 하루빨리 새로운 마을로 번창하여 이 섬 안엔 건강 지대와 병사 지대가 따로 없는 하나의 마을로 채워지기를 빕니다. 이제 두 사람으로 해서 그 오랜 둑길이 이어지고 길이 뚫렸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의 이웃은 힘을 합해 그 길을 지키고 넓혀나갈 것입니다……”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중에서
토론하기
(1) 조 원장이 소록도의 주민들에게 선물하고자 했던 ‘천국’이 ‘당신들의 천국’인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해보자.
(2) 인용된 대목은 작품의 결말이다. 작가가 결혼식 장면을 보여주지 않고, 조 원장의 주례사를 상욱이 엿듣는 것으로 마무리 한 의도는 무엇일지 생각해보자.
해설읽기
인생은 끝없는 시험의 연속이다. 매 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수능시험과 입사시험을 비롯하여 인간은 살면서 무수한 문제에 직면하고 그에 맞는 답을 내린다. 객관식 선지가 존재하지 않는, 언제나 주관식인 삶의 문제들에도 인간은 수없이 부딪힌다. 틀릴 때도 많고, 한 문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리고 그렇게 틀린 한 문제는 오랫동안 후회가 되어 나를 괴롭힐 것이다. ‘그 때 그 문제만 맞았더라면, 내 인생이 지금보다는 나아졌을 텐데….’
『당신들의 천국』은 흔히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소설로 해석된다. 문둥병 환자들의 ‘천국’을 만들어주겠다는 조 원장의 기획과 사업은, 당대 농민 대중들에게 천국을 만들어주겠다는 ‘새마을운동’ 등의 개발독재 사업과 닮아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문둥병 환자들의 의지할 수 있는 ‘동상’이 되어가는 조 원장의 모습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과 자연스레 겹쳐 보인다. 물론 지배자의 시선에서 조직된 조 원장의 이상은 피지배자인 문둥병 환자들의 이상과 같을 수 없기에, 그가 만들어내고자 하는 천국은 ‘당신들의 천국’이다. 결국 조 원장은 선한 의도를 가졌음에도 처참하게 실패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 원장에 대한 평가와 그것이 주는 교훈은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걸작에 대한 1차적인 독법일 뿐이다.
7년 만에 돌아온 조 원장이 가지고 온 해답은 ‘사랑’이다. 문둥병을, 타자(他者)를, ‘나와 다름’을 ‘혐오’의 근거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이해’의 근거로 삼는 사랑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가 내놓았던 해답이고, 그렇기에 진부하기까지 한 해답이다. 더욱이 실천하기에 쉬운 해답도 아니다. 7년 뒤에도 “병사 지대”와 “직원 지대”가 나뉘어져 있는 현실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조 원장의 답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답의 내용보다는 답을 도출해내기까지의 과정이다. 조 원장은 한 번 틀렸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소록도의 천국 실현 여부는 자신의 이상과 야망을 이루고, 자신이 생각하는 신념과 정의를 관철하고 증명할 수 있는 문제, 그렇기에 절대 틀려서는 안 되는 치명적인 문제였다. 우상에 의지하게 되자마자 우상을 잃은 소록도는 예전보다도 무기력한 모습으로 돌아갔고, 조 원장은 병원장이라는 지위를 잃고 패잔병처럼 물러났다.
그러나 조 원장은 다음 문제를 포기하지 않았다. 틀린 문제를 후회로만 삼지 않았다. 문둥병 환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신념을 저주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가 그를 다음 해답으로 이끌었다. 중요한 것은 답을 도출하기까지의 과정이다. 틀린 답보다 중요한 것은 그 틀린 답에 이르기까지 내가 헤맸고 결국 실패로 돌아간 여정, 그리고 그것을 발판 삼아 앞으로 맞는 답을 찾기 위해 나아가야 할 여정이다. 사랑이 맞는 답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답의 과정이 보여주는 것은, 설사 그것이 틀렸을지라도 조 원장은 다음 답을 찾을 것이라는 점이다.
작가 이청준은 결혼식 장면이 아닌, 상욱이 조 원장의 주례사를 엿듣는 장면으로 그의 해답을 소개했다. 그것은 자신의 해답을 하나의 결과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답은 도출된 결과의 형태가 아니라, 개인의 치열한 고민으로 점철된 과정의 형태로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틀려도 괜찮다. 그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처럼 보였을지라도, 삶은 계속되고 다음 문제는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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