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성인(聖人)은 유학에서 칭송하는 이상적 인간형이다. 성인의 대표적 인물로 공자(孔子)를 꼽지만, 사실 공자 이전에도 성인은 있었다. 맹자는 공자보다 앞선 세대의 세 명의 성인, 즉 백이(伯夷), 이윤(伊尹), 유하혜(柳下惠)와 관련한 일들을 보여준 후 이들의 장점을 각각 ‘청렴함’, ‘책임감’, ‘조화로움’이라는 용어로 정리한 바 있다. 그리고 이들의 후배에 해당하는 공자에게서 ‘때에 맞추어 실행하는 능력’을 찾아낸다. 그러고는 공자를 앞서 거론한 세 명의 성인의 장점을 ‘다 모아서 크게 이룬 존재’라고 칭송하였다. 공자보다 앞선 세대의 성인으로 거론되는 존재들은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 또 훌륭하다는 선배 성인들의 장점을 모아서 크게 이루었다는 공자의 특징은 대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고전본문
맹자가 말하였다. “백이(伯夷)는 눈으로는 나쁜 색깔을 보지 않았고, 귀로는 나쁜 소리를 듣지 않았다. 제대로 된 임금이 아니라면 그를 모시지 않았고, 제대로 된 백성이 아니라면 그를 부리지 않았다. 나라가 잘 다스려지면 벼슬길에 나아갔고, 나라가 잘 다스려지지 않으면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나쁜 정치가 나오는 곳과 나쁜 백성이 사는 곳에 차마 거주하지 않았으니, 혹시 그런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을 마치 임금을 뵐 때 입는 옷과 모자를 착용하고 더러운 진흙에 앉아 있는 것과 같이 여겼다. 폭군 주(紂)임금이 집권하던 때에는 북해(北海) 물가에 살면서 천하가 맑아지길 기다렸다. 백이의 풍도(風道)를 들은 이는 고집 센 사람은 청렴해지고, 나약한 사람은 굳은 뜻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윤(伊尹)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겠으며, 누구를 부린들 백성이 아니겠는가.’라고. 그는 나라가 잘 다스려질 때도 벼슬을 하려고 하였고, 나라가 어지러울 때도 벼슬자리에 나아갔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늘이 이 백성을 태어나게 했을 때에는 먼저 알게 된 사람으로 나중에 알게 되는 사람을 깨우치게 하며, 먼저 깨달은 사람으로 하여금 나중에 깨달을 사람을 깨우치게 한 것이다. 나는 하늘이 낸 백성 가운데 먼저 깨달은 사람이니, 이 도를 가지고서 저 백성들을 깨우치게 할 것이다’라고. 그리하여 천하의 백성 가운데 평범한 사람들 중 요(堯)임금, 순(舜)임금의 은택을 나누어 받지 못한 사람이 있거든 마치 자신이 구렁에 밀어서 빠뜨리게 한 것처럼 생각하였으니 이는 천하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유하혜(柳下惠)는 더러운 임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작은 관직도 마다하지 않았다. 관직에 나아가서는 자신의 현명함을 감추지 않았으되 반드시 정당한 도리로써 하였으며, 등용이 되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았고, 곤궁하게 되어도 서운해하지 않았으며, 무식한 마을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되 성품이 너그러워 차마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당신은 당신이고 나는 나이니, 내 곁에서 옷을 벗은들 당신이 나를 어찌 더럽힐 텐가?’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유하혜의 풍도(風道)를 들은 이는 속이 좁은 사람이 너그러워지고, 마음이 얄팍한 사람이 두터워지게 될 것이다.
공자(孔子)가 제나라를 떠날 적에 담가놓은 쌀을 건져서 떠날 만큼 서둘러 가셨고, 노나라를 떠날 적에는 ‘더디고 더디도다, 나의 행차여.’라고 하셨으니 이는 자신의 고국(故國)을 떠나는 도(道)이다. 빨리 떠나야 하셨을 경우에는 빨리 떠나셨고, 오랫동안 머물러야 하셨을 때는 오랫동안 계셨으며, 머무를 만하면 머무르셨고, 벼슬을 할만하면 벼슬을 하신 것이 공자이셨다.”
[출전] <맹자> 만장(하)
토론하기
(1) 맹자가 파악하고 있는 백이는 어떤 인물인지 생각해 봅시다. 혹시 백이 같은 인물에게서 찾을 수 있는 부정적 측면은 없을지도 고민해 봅시다.
(2) 맹자가 진술한 내용을 수용했을 때, 공자의 장점을 무엇이라고 판단하고 있는지 맹자의 말을 좀 더 풀어서 말해 봅시다.
(3) 본문에서 거론된 백이, 유하혜, 이윤, 공자, 그리고 이 말을 하고 있는 맹자는 모두 유학에서 성인(聖人)이라는 칭송을 받는 인물입니다. 본문의 화자(話者)가 맹자라는 점을 고려해 보았을 때, 화자를 맹자로 정하여 놓고, 공자의 빼어남을 말하게 하는 것은 어떤 효과를 낳고 있는지 말해 봅시다.
해설읽기
유학에서 이상적 인간형으로 칭송되는 존재가 바로 성인(聖人)이다. 특히 유학은 공자(孔子)를 성인의 대표로 삼고 있다. 맹자 역시 공자보다 백여 년 뒤의 인물로 유학 내에서 성인의 반열에 들기에 충분하다. 성인의 대표가 공자라고는 해도 공자 이전에도 성인은 있었다. 본문에서 소개되고 있는 백이, 유하혜, 이윤이 그들이다. 본문에서는 맹자가 화자(話者)가 되어 공자의 성인으로서의 특징을 발언하고 있는데, 전대의 성인 세 명의 특징을 ‘모아서 크게 이루었다’라고 하였다. ‘집대성’(集大成)이라는 말의 유래가 바로 여기이다. 즉 공자는 선배 성인들의 장점을 두루 이어받았다. 그런데 이 말을 후대의 성인이라고 할 법한 맹자의 입을 빌려서 하고 있는 것이다. 유학 안에서 성인의 계보는 이렇게 확정되어 간다.
백이는 어떤 인물인가? 나쁜 색깔과 나쁜 소리에 노출되는 것을 꺼렸고, 자신이 모실 임금과 부릴 백성이 어떤 사람인지 철저히 따져서 ‘제대로 된’ 사람들이 아니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잘 다스려지고 있는 나라에서만 벼슬길에 나가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은(殷)나라의 폭군 주(紂)임금이 통치하고 있던 시절에는 북해(北海)에 거처하면서 좋은 세상이 오길 기다렸다. 북해에 산다는 말은 폭군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에 거처한다는 뜻이다. 지극히 염결(廉潔)한 존재이다. 고죽국(孤竹國)의 왕자로서 숙제(叔齊)라는 동생과 서로 왕위를 마다하다 함께 세상을 떠나서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다가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지조를 지키려고 하는 대의에 대해서는 칭찬할 만하다. 우리 주변에도 고결한 뜻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의지가 너무 강해서 간혹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그들과 불화하는 경우가 종종 있음을 생각해 보면 백이가 훌륭하기는 해도 옆에 있으면 편할 것만 같지는 않다.
이윤은 어떤 인물인가? 일단 백이와는 다르다. 임금이 어떤 분인지 백성들이 어떤 사람인지 가리지 않았다. 나라가 어떤 상황에 있어도 벼슬을 한다고 하였다. 정세가 어떠한지 상관하지 않고 관직을 향해 돌진하는 이유는 그가 성공에 눈이 먼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특정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명감은 무엇인가? 자신은 선지자(先知者), 선각자(先覺者)이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깨우쳐야 한다는 책임감이다. 그래서 천하의 백성들 중 성왕(聖王)인 요임금, 순임금의 덕화(德化)를 나누어 갖지 못한 이가 있다면 몹시 괴로워했다. 괴로움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가? 자신이 그들을 밀어서 구렁에 빠뜨리게 한 것처럼 괴로워했다고 한다. 지금 보면, 이윤은 일종의 엘리트 계몽주의자라고 할 만하다. 자신의 사회적 책무가 무엇인지 분명히 자각하고 있다. 요순의 선정의 혜택을 받지 못한 이들이 있으면 이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는 모습 또한 이해해 줄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이 빠뜨려 죽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괜찮은가? 너무 심하지는 않은지…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백성들의 욕망은 물어볼 수는 없는 것인지 궁금하다. 우리 백성들은 모두 요순의 선정을 맛보아야 한다고 다짐했고, 이 일이 잘 안 되었을 경우 괴로워했다. 그런데 정작 백성들이 어떤 정치를 원하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유하혜는 어떤 인물인가? 더러운 임금, 작은 관직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말을 보면 언뜻 이윤과 비슷하다. 그런데 이윤이 견지한 계몽주의적 엘리트 의식은 별로 없어보인다. 그 대신 유하혜는 관직에 있을 때에는 자신의 현명함을 마음껏 드러내었고, 물러나서는 원망하지 않았으며, 곤궁하게 되어서도 섭섭해하지 않았다. 마을의 무식한 사람들과 거처했을 때 극도로 싫어했다는 백이와는 달리, 이윤은 그들이 어떤 일을 자신의 곁에서 행할지라도 그것이 자신에게 끼치는 영향이 거의 없다고 여겼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둥글둥글한 원 같은 사람, 이런 성격을 원만(圓滿)하다고 한다.
그런데 맹자는 다른 곳에서 백이와 유하혜에 대해 비판적 언급을 한 적이 있다. “백이는 좁고, 유하혜는 공손하지 못하다.”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그러고는 좁음과 공손하지 못함은 군자가 따르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성인들 역시 약점이 있고, 그 약점은 공자를 배우려고 하는 맹자에 의해 비판되고 있다. 맑음이 지나치면 포용력이 없고 사람이 좁아 보인다. 그리고 조화로움과 원만함은 맹자의 예민한 관찰에는 공손하지 못하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성인의 단점을 굳이 지적하는 맹자가 따르고자 하는 이는 공자이다.
공자는 제나라를 떠날 때에는 밥솥에 있는 쌀을 건져 내어 떠날 만큼 걸음을 황망히 하였다. 이 나라가 좋은 정치를 할 가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고국(故國)인 노나라를 떠날 때에는 느릿느릿 갔다고 한다. 고국의 왕이 마음을 돌려서 자신을 임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출세욕에 눈이 먼 것이 아니라 왕이 선한 정치를 베풀 가능성을 끝까지 믿고 싶었던 것이다. 공자는 빨리 떠나야 할 때는 누구보다 빨리 떠났고, 머물러야 할 이유가 남아 있었을 때는 행차를 느릿느릿하였다. 상황에 따라 최적의 처신을 하기 위해 애쓴 것이다. 그러니 백이, 이윤, 유하혜가 각각 고결함, 사명감, 조화로움이라는 하나의 장점을 가진 데 비해, 공자는 ‘때에 따라 잘 맞춤’이라는 장점을 갖는다고 맹자가 말했다. 이 ‘때에 따라 잘 맞춤’은 역시 하나의 장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이 ‘때’라고 하는 것이 수시로 바뀐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 때마다 제일 적절한 행동이나 마음가짐 역시 수시로 바뀐다. 그러니 공자는 하나의 장점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때,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잘 맞는 행동을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공자는 세 성인의 장점을 모아서 한 몸에 가진 존재가 되었다. 바로 맹자의 진술을 통해서. 유학 안에서 공자가 성인(聖人)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중임을 알 수 있다.
키워드
공자, 맹자, 백이, 유하혜, 성인, 이윤
전후맥락
성인(聖人)은 유학에서 칭송하는 이상적 인간형이다. 성인의 대표적 인물로 공자(孔子)를 꼽지만, 사실 공자 이전에도 성인은 있었다. 맹자는 공자보다 앞선 세대의 세 명의 성인, 즉 백이(伯夷), 이윤(伊尹), 유하혜(柳下惠)와 관련한 일들을 보여준 후 이들의 장점을 각각 ‘청렴함’, ‘책임감’, ‘조화로움’이라는 용어로 정리한 바 있다. 그리고 이들의 후배에 해당하는 공자에게서 ‘때에 맞추어 실행하는 능력’을 찾아낸다. 그러고는 공자를 앞서 거론한 세 명의 성인의 장점을 ‘다 모아서 크게 이룬 존재’라고 칭송하였다. 공자보다 앞선 세대의 성인으로 거론되는 존재들은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 또 훌륭하다는 선배 성인들의 장점을 모아서 크게 이루었다는 공자의 특징은 대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고전본문
맹자가 말하였다. “백이(伯夷)는 눈으로는 나쁜 색깔을 보지 않았고, 귀로는 나쁜 소리를 듣지 않았다. 제대로 된 임금이 아니라면 그를 모시지 않았고, 제대로 된 백성이 아니라면 그를 부리지 않았다. 나라가 잘 다스려지면 벼슬길에 나아갔고, 나라가 잘 다스려지지 않으면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나쁜 정치가 나오는 곳과 나쁜 백성이 사는 곳에 차마 거주하지 않았으니, 혹시 그런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을 마치 임금을 뵐 때 입는 옷과 모자를 착용하고 더러운 진흙에 앉아 있는 것과 같이 여겼다. 폭군 주(紂)임금이 집권하던 때에는 북해(北海) 물가에 살면서 천하가 맑아지길 기다렸다. 백이의 풍도(風道)를 들은 이는 고집 센 사람은 청렴해지고, 나약한 사람은 굳은 뜻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윤(伊尹)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겠으며, 누구를 부린들 백성이 아니겠는가.’라고. 그는 나라가 잘 다스려질 때도 벼슬을 하려고 하였고, 나라가 어지러울 때도 벼슬자리에 나아갔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늘이 이 백성을 태어나게 했을 때에는 먼저 알게 된 사람으로 나중에 알게 되는 사람을 깨우치게 하며, 먼저 깨달은 사람으로 하여금 나중에 깨달을 사람을 깨우치게 한 것이다. 나는 하늘이 낸 백성 가운데 먼저 깨달은 사람이니, 이 도를 가지고서 저 백성들을 깨우치게 할 것이다’라고. 그리하여 천하의 백성 가운데 평범한 사람들 중 요(堯)임금, 순(舜)임금의 은택을 나누어 받지 못한 사람이 있거든 마치 자신이 구렁에 밀어서 빠뜨리게 한 것처럼 생각하였으니 이는 천하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유하혜(柳下惠)는 더러운 임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작은 관직도 마다하지 않았다. 관직에 나아가서는 자신의 현명함을 감추지 않았으되 반드시 정당한 도리로써 하였으며, 등용이 되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았고, 곤궁하게 되어도 서운해하지 않았으며, 무식한 마을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되 성품이 너그러워 차마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당신은 당신이고 나는 나이니, 내 곁에서 옷을 벗은들 당신이 나를 어찌 더럽힐 텐가?’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유하혜의 풍도(風道)를 들은 이는 속이 좁은 사람이 너그러워지고, 마음이 얄팍한 사람이 두터워지게 될 것이다.
공자(孔子)가 제나라를 떠날 적에 담가놓은 쌀을 건져서 떠날 만큼 서둘러 가셨고, 노나라를 떠날 적에는 ‘더디고 더디도다, 나의 행차여.’라고 하셨으니 이는 자신의 고국(故國)을 떠나는 도(道)이다. 빨리 떠나야 하셨을 경우에는 빨리 떠나셨고, 오랫동안 머물러야 하셨을 때는 오랫동안 계셨으며, 머무를 만하면 머무르셨고, 벼슬을 할만하면 벼슬을 하신 것이 공자이셨다.”
[출전] <맹자> 만장(하)
토론하기
(1) 맹자가 파악하고 있는 백이는 어떤 인물인지 생각해 봅시다. 혹시 백이 같은 인물에게서 찾을 수 있는 부정적 측면은 없을지도 고민해 봅시다.
(2) 맹자가 진술한 내용을 수용했을 때, 공자의 장점을 무엇이라고 판단하고 있는지 맹자의 말을 좀 더 풀어서 말해 봅시다.
(3) 본문에서 거론된 백이, 유하혜, 이윤, 공자, 그리고 이 말을 하고 있는 맹자는 모두 유학에서 성인(聖人)이라는 칭송을 받는 인물입니다. 본문의 화자(話者)가 맹자라는 점을 고려해 보았을 때, 화자를 맹자로 정하여 놓고, 공자의 빼어남을 말하게 하는 것은 어떤 효과를 낳고 있는지 말해 봅시다.
해설읽기
유학에서 이상적 인간형으로 칭송되는 존재가 바로 성인(聖人)이다. 특히 유학은 공자(孔子)를 성인의 대표로 삼고 있다. 맹자 역시 공자보다 백여 년 뒤의 인물로 유학 내에서 성인의 반열에 들기에 충분하다. 성인의 대표가 공자라고는 해도 공자 이전에도 성인은 있었다. 본문에서 소개되고 있는 백이, 유하혜, 이윤이 그들이다. 본문에서는 맹자가 화자(話者)가 되어 공자의 성인으로서의 특징을 발언하고 있는데, 전대의 성인 세 명의 특징을 ‘모아서 크게 이루었다’라고 하였다. ‘집대성’(集大成)이라는 말의 유래가 바로 여기이다. 즉 공자는 선배 성인들의 장점을 두루 이어받았다. 그런데 이 말을 후대의 성인이라고 할 법한 맹자의 입을 빌려서 하고 있는 것이다. 유학 안에서 성인의 계보는 이렇게 확정되어 간다.
백이는 어떤 인물인가? 나쁜 색깔과 나쁜 소리에 노출되는 것을 꺼렸고, 자신이 모실 임금과 부릴 백성이 어떤 사람인지 철저히 따져서 ‘제대로 된’ 사람들이 아니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잘 다스려지고 있는 나라에서만 벼슬길에 나가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은(殷)나라의 폭군 주(紂)임금이 통치하고 있던 시절에는 북해(北海)에 거처하면서 좋은 세상이 오길 기다렸다. 북해에 산다는 말은 폭군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에 거처한다는 뜻이다. 지극히 염결(廉潔)한 존재이다. 고죽국(孤竹國)의 왕자로서 숙제(叔齊)라는 동생과 서로 왕위를 마다하다 함께 세상을 떠나서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다가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지조를 지키려고 하는 대의에 대해서는 칭찬할 만하다. 우리 주변에도 고결한 뜻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의지가 너무 강해서 간혹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그들과 불화하는 경우가 종종 있음을 생각해 보면 백이가 훌륭하기는 해도 옆에 있으면 편할 것만 같지는 않다.
이윤은 어떤 인물인가? 일단 백이와는 다르다. 임금이 어떤 분인지 백성들이 어떤 사람인지 가리지 않았다. 나라가 어떤 상황에 있어도 벼슬을 한다고 하였다. 정세가 어떠한지 상관하지 않고 관직을 향해 돌진하는 이유는 그가 성공에 눈이 먼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특정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명감은 무엇인가? 자신은 선지자(先知者), 선각자(先覺者)이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깨우쳐야 한다는 책임감이다. 그래서 천하의 백성들 중 성왕(聖王)인 요임금, 순임금의 덕화(德化)를 나누어 갖지 못한 이가 있다면 몹시 괴로워했다. 괴로움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가? 자신이 그들을 밀어서 구렁에 빠뜨리게 한 것처럼 괴로워했다고 한다. 지금 보면, 이윤은 일종의 엘리트 계몽주의자라고 할 만하다. 자신의 사회적 책무가 무엇인지 분명히 자각하고 있다. 요순의 선정의 혜택을 받지 못한 이들이 있으면 이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는 모습 또한 이해해 줄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이 빠뜨려 죽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괜찮은가? 너무 심하지는 않은지…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백성들의 욕망은 물어볼 수는 없는 것인지 궁금하다. 우리 백성들은 모두 요순의 선정을 맛보아야 한다고 다짐했고, 이 일이 잘 안 되었을 경우 괴로워했다. 그런데 정작 백성들이 어떤 정치를 원하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유하혜는 어떤 인물인가? 더러운 임금, 작은 관직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말을 보면 언뜻 이윤과 비슷하다. 그런데 이윤이 견지한 계몽주의적 엘리트 의식은 별로 없어보인다. 그 대신 유하혜는 관직에 있을 때에는 자신의 현명함을 마음껏 드러내었고, 물러나서는 원망하지 않았으며, 곤궁하게 되어서도 섭섭해하지 않았다. 마을의 무식한 사람들과 거처했을 때 극도로 싫어했다는 백이와는 달리, 이윤은 그들이 어떤 일을 자신의 곁에서 행할지라도 그것이 자신에게 끼치는 영향이 거의 없다고 여겼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둥글둥글한 원 같은 사람, 이런 성격을 원만(圓滿)하다고 한다.
그런데 맹자는 다른 곳에서 백이와 유하혜에 대해 비판적 언급을 한 적이 있다. “백이는 좁고, 유하혜는 공손하지 못하다.”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그러고는 좁음과 공손하지 못함은 군자가 따르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성인들 역시 약점이 있고, 그 약점은 공자를 배우려고 하는 맹자에 의해 비판되고 있다. 맑음이 지나치면 포용력이 없고 사람이 좁아 보인다. 그리고 조화로움과 원만함은 맹자의 예민한 관찰에는 공손하지 못하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성인의 단점을 굳이 지적하는 맹자가 따르고자 하는 이는 공자이다.
공자는 제나라를 떠날 때에는 밥솥에 있는 쌀을 건져 내어 떠날 만큼 걸음을 황망히 하였다. 이 나라가 좋은 정치를 할 가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고국(故國)인 노나라를 떠날 때에는 느릿느릿 갔다고 한다. 고국의 왕이 마음을 돌려서 자신을 임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출세욕에 눈이 먼 것이 아니라 왕이 선한 정치를 베풀 가능성을 끝까지 믿고 싶었던 것이다. 공자는 빨리 떠나야 할 때는 누구보다 빨리 떠났고, 머물러야 할 이유가 남아 있었을 때는 행차를 느릿느릿하였다. 상황에 따라 최적의 처신을 하기 위해 애쓴 것이다. 그러니 백이, 이윤, 유하혜가 각각 고결함, 사명감, 조화로움이라는 하나의 장점을 가진 데 비해, 공자는 ‘때에 따라 잘 맞춤’이라는 장점을 갖는다고 맹자가 말했다. 이 ‘때에 따라 잘 맞춤’은 역시 하나의 장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이 ‘때’라고 하는 것이 수시로 바뀐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 때마다 제일 적절한 행동이나 마음가짐 역시 수시로 바뀐다. 그러니 공자는 하나의 장점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때,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잘 맞는 행동을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공자는 세 성인의 장점을 모아서 한 몸에 가진 존재가 되었다. 바로 맹자의 진술을 통해서. 유학 안에서 공자가 성인(聖人)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중임을 알 수 있다.
키워드
공자, 맹자, 백이, 유하혜, 성인, 이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