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굴원(屈原)은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정치가이다. 참소를 당하여 관직에서 밀려나 재야(在野)를 전전하며 괴로워 하고 있었다. 이 때 어부(漁父)가 등장하여 초라한 용모의 굴원을 알아본다. 그러고는 삼려대부(三閭大夫)가 이곳에서 무얼 하는지 물었다. 삼려대부란 초나라의 관직명인데, 당시 초나라의 관직은 굴(屈), 경(景), 소(昭)씨가 주관하였기 때문에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어부는 은둔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으나 정치의 한복판에 서 있던 굴원의 모습을 알아보았다는 점에서 완전히 현실과 담을 쌓고 지내는 존재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 같은 질문에 대해 굴원은 세상이 더러운데 자신만 깨끗하고, 뭇사람들이 취하였는데 자신만 맨정신이기 때문에 축출 당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어부는 세상과 더불어 변해 가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굴원에게 한다. 이 권유를 굴원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본문에는 굴원과 어부 두 인물이 등장하고, 이 둘의 처세방법은 판이하게 다르다. 본문에서는 이들이 각각 어떤 식의 삶의 자세를 견지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고전본문
굴원이 추방당하여, 강호에 노닐면서 못가에서 시를 읊고 다녔다. 그의 낯빛은 초췌하였고 용모는 비쩍 말라보였다. 어부가 그 모습을 보고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대는 삼려대부(三閭大夫)가 아니신지요! 무슨 이유로 여기까지 이르게 되셨지요?”
굴원이 말하였다. “온 세상이 다 더러운데 나 혼자만 깨끗하였고, 모든 사람이 전부 취하였는데 나 홀로 깨어있었소. 이 때문에 추방당하였다오.”
어부가 말하였다. “성인은 외물에 엉기거나 막히는 일 없이 세상과 더불어 변해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더럽다면 어찌 진흙탕에 뛰어들어가 그 물결을 튀기지 않는단 말입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취했다면 어찌 그 지게미를 배불리 먹고 남아있는 술을 다 마시지 않는단 말입니까? 무엇 때문에 깊이 생각하고 고상하게 행동하여 추방을 자초하셨는지요?”
굴원이 말하였다. “내가 듣기에,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을 털어서 쓰고, 새로 몸을 씻은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라고 하였소. 어찌 이 깨끗한 몸으로 더러운 외물을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이오? 차라리 소상강으로 달려가 강물의 고기 뱃속에 장사를 지낼지언정 깨끗한 몸으로 속세의 티끌을 뒤집어 쓸 수 있겠소?”
어부는 빙그레 웃으면서 뱃전을 두드리며 떠나갔다. 그러면서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다면 갓끈을 씻으면 그만이고, 창랑의 물이 흐리다면 발을 씻으면 그만이지.”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끝내 떠나버려 더 이상 더불어 말하지 않았다.
[고문진보] 후편 <어부사>중에서
토론하기
(1) 본문에는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 두 인물의 삶의 태도는 뚜렷하게 대조적인데, 굴원과 어부의 삶의 태도가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해 봅시다.
(2) 본문에 두 인물이 등장하여 대화를 전개하는데, 이 중 어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3) 마지막에 어부가 부른 노래 “창랑의 물이 맑다면 갓끈을 씻으면 그만이고, 창랑의 물이 흐리다면 발을 씻으면 그만이지”의 의미가 무엇인지 말해 봅시다.
해설읽기
<어부사>는 ‘어부의 노래’이지만, 굴원이 먼저 등장한다. 굴원은 초나라의 충신으로 자신의 간언을 임금이 받아들여주지 않자, 스스로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진 인물이다. 굴원이 조정에서 쫓겨나 초췌한 몰골로 하릴없이 방황하고 있는 모습이 <어부사>의 첫 장면이다. 뒤이어 어부가 등장한다. 어부는 빈 배에 몸을 싣고 이리저리 떠도는 존재로서, 은자(隱者)의 모습을 하고 있다. 초라한 꼴을 한 채 강호를 떠돌던 사내가 사실은 초나라의 최고 벼슬아치였다는 사실이 어부의 입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이 사내는 왜 이렇게 몰락하게 된 것일까? 어부는 굴원으로 하여금 입을 열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말하게 한다. 이 글에서 어부가 담당한 역할이 바로 이것이다. 굴원은 어부의 질문에 아주 간명하게 대답했다. 왜 추방되었던가? 홀로 깨끗하였고, 혼자 깨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청렴함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언어와 행동은 종종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불결함을 추호도 용납하지 않는 태도로 이어진다. 옆에 있는 사람의 관(冠)이 조금 비뚤어졌다고, 그것이 자기의 몸을 더럽힐 것처럼 여기고 훌훌 떠나갔다는 백이(伯夷)가 이런 인물의 전형이다. 고죽국(孤竹國)의 왕자였던 백이는, 동생 숙제(叔齊)와 서로 왕위를 양보하다 결국 수양산(首陽山)에 함께 들어가 굶어죽고 말았다. 굴원의 전기를 이미 알고 있는 우리에게, 그의 모습에 백이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어부는 처세의 법을 말한다. 굴원의 고결함과는 반대 방향에 있다고 해도, 그를 꼭 기회주의자라고 나무랄 수는 없다. 세상과 더불어 변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피력한 것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부는 현실주의자의 모습을 한 채 이상주의자 굴원을 설득하려고 한다. 그래서 더러운 세상에서 살려면 그 더러움을 더러워하지 말아야 하고, 사람들이 모두 취해 있는 세상에서 지내려면 함께 취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어부가 파악한 굴원이 쫓겨난 이유는 ‘생각이 깊고 행동이 고상해서’이다. 당시 초나라는 이미 깊은 생각과 고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살 수 없는 곳이었던 듯하다. 더러운 물이든 깨끗한 물이든 가리지 않고 노를 저어 건너가는 어부에겐 이 세상 역시 그 같은 물과 다를 게 하나 없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세상과 더불어 변하면서 살아가라고 한 어부의 충고에도 굴원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더러운 것들과 더불어 살기엔 그는 너무 고결했다. ‘몸을 깨끗이 씻은 사람은 먼지를 털고 난 후에야 관과 옷을 입는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굴원은 자신이 티끌만큼의 불의도 용납하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굴원은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차라리 물 속에 사는 고기의 밥이 되겠다.”라고 한 선언은 자신 역시 백이(伯夷)의 길을 따를 것임을 암시한다고 보아야 한다. 굴원에겐 상강에 사는 물고기의 뱃속이 수양산이었던 것이다. 세상 안의 더러움을 용납하지 못한 존재는 이제 세상 밖으로 떠날 생각을 한다. 더러운 이들 때문에 괴롭지 않을 수 있을 테니 굴원에겐 오히려 그곳이 더 나은 곳이었을까?
키워드
고결함, 굴원, 멱라수, 백이, 어부, 이상주의자, 초나라, 현실주의자
“더러운 것들과 더불어 사느니 차라리 물고기 밥이 되겠다.”라는 결기어린 굴원의 말에 어부는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그러곤 아마도 자신이 늘 불러왔을 법한 노래인 ‘어부의 노래’를 부른다. 물이 맑으면 갓끈을 빨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면 그만이다. 세상에 맞추어 함께 살아갈 수 있었던 어부는 생각이 깊고 행동이 고원한 굴원과 자신이 섞일 수 없는 사이임을 확인하였다. 등을 돌린 그는 굴원과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공자가 말한 것처럼 “도가 다르면 함께 일을 도모하지 않는”(道不同不相爲謀: 논어「위령공」) 법이다. 가차없이 떠나가는 어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다 알았다는 듯이 빙그레 웃던 그의 모습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세상과 더불어 자신을 바꿀 줄 안다는 어부마저 떠나간 물 위에 굴원은 혼자 남았다. 이제 굴원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혹시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전후맥락
굴원(屈原)은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정치가이다. 참소를 당하여 관직에서 밀려나 재야(在野)를 전전하며 괴로워 하고 있었다. 이 때 어부(漁父)가 등장하여 초라한 용모의 굴원을 알아본다. 그러고는 삼려대부(三閭大夫)가 이곳에서 무얼 하는지 물었다. 삼려대부란 초나라의 관직명인데, 당시 초나라의 관직은 굴(屈), 경(景), 소(昭)씨가 주관하였기 때문에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어부는 은둔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으나 정치의 한복판에 서 있던 굴원의 모습을 알아보았다는 점에서 완전히 현실과 담을 쌓고 지내는 존재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 같은 질문에 대해 굴원은 세상이 더러운데 자신만 깨끗하고, 뭇사람들이 취하였는데 자신만 맨정신이기 때문에 축출 당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어부는 세상과 더불어 변해 가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굴원에게 한다. 이 권유를 굴원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본문에는 굴원과 어부 두 인물이 등장하고, 이 둘의 처세방법은 판이하게 다르다. 본문에서는 이들이 각각 어떤 식의 삶의 자세를 견지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고전본문
굴원이 추방당하여, 강호에 노닐면서 못가에서 시를 읊고 다녔다. 그의 낯빛은 초췌하였고 용모는 비쩍 말라보였다. 어부가 그 모습을 보고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대는 삼려대부(三閭大夫)가 아니신지요! 무슨 이유로 여기까지 이르게 되셨지요?”
굴원이 말하였다. “온 세상이 다 더러운데 나 혼자만 깨끗하였고, 모든 사람이 전부 취하였는데 나 홀로 깨어있었소. 이 때문에 추방당하였다오.”
어부가 말하였다. “성인은 외물에 엉기거나 막히는 일 없이 세상과 더불어 변해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더럽다면 어찌 진흙탕에 뛰어들어가 그 물결을 튀기지 않는단 말입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취했다면 어찌 그 지게미를 배불리 먹고 남아있는 술을 다 마시지 않는단 말입니까? 무엇 때문에 깊이 생각하고 고상하게 행동하여 추방을 자초하셨는지요?”
굴원이 말하였다. “내가 듣기에,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을 털어서 쓰고, 새로 몸을 씻은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라고 하였소. 어찌 이 깨끗한 몸으로 더러운 외물을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이오? 차라리 소상강으로 달려가 강물의 고기 뱃속에 장사를 지낼지언정 깨끗한 몸으로 속세의 티끌을 뒤집어 쓸 수 있겠소?”
어부는 빙그레 웃으면서 뱃전을 두드리며 떠나갔다. 그러면서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다면 갓끈을 씻으면 그만이고, 창랑의 물이 흐리다면 발을 씻으면 그만이지.”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끝내 떠나버려 더 이상 더불어 말하지 않았다.
[고문진보] 후편 <어부사>중에서
토론하기
(1) 본문에는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 두 인물의 삶의 태도는 뚜렷하게 대조적인데, 굴원과 어부의 삶의 태도가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해 봅시다.
(2) 본문에 두 인물이 등장하여 대화를 전개하는데, 이 중 어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3) 마지막에 어부가 부른 노래 “창랑의 물이 맑다면 갓끈을 씻으면 그만이고, 창랑의 물이 흐리다면 발을 씻으면 그만이지”의 의미가 무엇인지 말해 봅시다.
해설읽기
<어부사>는 ‘어부의 노래’이지만, 굴원이 먼저 등장한다. 굴원은 초나라의 충신으로 자신의 간언을 임금이 받아들여주지 않자, 스스로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진 인물이다. 굴원이 조정에서 쫓겨나 초췌한 몰골로 하릴없이 방황하고 있는 모습이 <어부사>의 첫 장면이다. 뒤이어 어부가 등장한다. 어부는 빈 배에 몸을 싣고 이리저리 떠도는 존재로서, 은자(隱者)의 모습을 하고 있다. 초라한 꼴을 한 채 강호를 떠돌던 사내가 사실은 초나라의 최고 벼슬아치였다는 사실이 어부의 입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이 사내는 왜 이렇게 몰락하게 된 것일까? 어부는 굴원으로 하여금 입을 열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말하게 한다. 이 글에서 어부가 담당한 역할이 바로 이것이다. 굴원은 어부의 질문에 아주 간명하게 대답했다. 왜 추방되었던가? 홀로 깨끗하였고, 혼자 깨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청렴함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언어와 행동은 종종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불결함을 추호도 용납하지 않는 태도로 이어진다. 옆에 있는 사람의 관(冠)이 조금 비뚤어졌다고, 그것이 자기의 몸을 더럽힐 것처럼 여기고 훌훌 떠나갔다는 백이(伯夷)가 이런 인물의 전형이다. 고죽국(孤竹國)의 왕자였던 백이는, 동생 숙제(叔齊)와 서로 왕위를 양보하다 결국 수양산(首陽山)에 함께 들어가 굶어죽고 말았다. 굴원의 전기를 이미 알고 있는 우리에게, 그의 모습에 백이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어부는 처세의 법을 말한다. 굴원의 고결함과는 반대 방향에 있다고 해도, 그를 꼭 기회주의자라고 나무랄 수는 없다. 세상과 더불어 변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피력한 것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부는 현실주의자의 모습을 한 채 이상주의자 굴원을 설득하려고 한다. 그래서 더러운 세상에서 살려면 그 더러움을 더러워하지 말아야 하고, 사람들이 모두 취해 있는 세상에서 지내려면 함께 취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어부가 파악한 굴원이 쫓겨난 이유는 ‘생각이 깊고 행동이 고상해서’이다. 당시 초나라는 이미 깊은 생각과 고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살 수 없는 곳이었던 듯하다. 더러운 물이든 깨끗한 물이든 가리지 않고 노를 저어 건너가는 어부에겐 이 세상 역시 그 같은 물과 다를 게 하나 없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세상과 더불어 변하면서 살아가라고 한 어부의 충고에도 굴원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더러운 것들과 더불어 살기엔 그는 너무 고결했다. ‘몸을 깨끗이 씻은 사람은 먼지를 털고 난 후에야 관과 옷을 입는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굴원은 자신이 티끌만큼의 불의도 용납하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굴원은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차라리 물 속에 사는 고기의 밥이 되겠다.”라고 한 선언은 자신 역시 백이(伯夷)의 길을 따를 것임을 암시한다고 보아야 한다. 굴원에겐 상강에 사는 물고기의 뱃속이 수양산이었던 것이다. 세상 안의 더러움을 용납하지 못한 존재는 이제 세상 밖으로 떠날 생각을 한다. 더러운 이들 때문에 괴롭지 않을 수 있을 테니 굴원에겐 오히려 그곳이 더 나은 곳이었을까?
키워드
고결함, 굴원, 멱라수, 백이, 어부, 이상주의자, 초나라, 현실주의자
“더러운 것들과 더불어 사느니 차라리 물고기 밥이 되겠다.”라는 결기어린 굴원의 말에 어부는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그러곤 아마도 자신이 늘 불러왔을 법한 노래인 ‘어부의 노래’를 부른다. 물이 맑으면 갓끈을 빨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면 그만이다. 세상에 맞추어 함께 살아갈 수 있었던 어부는 생각이 깊고 행동이 고원한 굴원과 자신이 섞일 수 없는 사이임을 확인하였다. 등을 돌린 그는 굴원과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공자가 말한 것처럼 “도가 다르면 함께 일을 도모하지 않는”(道不同不相爲謀: 논어「위령공」) 법이다. 가차없이 떠나가는 어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다 알았다는 듯이 빙그레 웃던 그의 모습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세상과 더불어 자신을 바꿀 줄 안다는 어부마저 떠나간 물 위에 굴원은 혼자 남았다. 이제 굴원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혹시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