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연암 박지원이 부친과 형과 같이 살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서 부친은 고인이 되셨다. 문득 돌아가신 부친이 그리워지면 나는 형님의 얼굴을 쳐다보곤 하였다. 시간이 또 흘렀다. 이제 형님마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형님이 그리우면 누구 얼굴을 쳐다보아야 하는가.
고전본문
우리 형님 얼굴 수염 누구를 닮았던고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나면 우리 형님 쳐다봤지.
이제 형님 그리우면 어디서 보아야 할까.
두건 쓰고 옷 입고 가 냇물에 비춰보아야지.
[연암집] 「연암억선형」(燕巖憶先兄) 중에서
토론하기
(1) 이 시에서 4행의 내용이 3행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4행의 뜻이 무엇인지 말해보도록 합시다.
(2) 다음은 서정주(徐廷柱, 1915~2000)의 「자화상」이라는 시입니다. 본문과 「자화상」에서 느낄 수 있는 공통점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아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아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를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가고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천치를 읽고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으련다
찬란히 틔어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봅시다.
.
해설읽기
가족의 얼굴은 서로 닮아 있다. 나는 내 아버지를 닮았고, 내 자식은 나를 닮았다. 박지원의 시 「연암억선형」(燕巖憶先兄)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지식은 이게 전부이다. 시 제목의 선형(先兄)은 돌아가신 형님을 뜻한다. 본문에 등장하는 아버님과 형님 모두 지금은 고인이 되신 분들이다. 네 줄의 짧은 시는 물음-대답이 두 번 반복하는 구조로 짜여 있다. 1행과 2행은 “우리 형님은 돌아가신 아버님을 닮았다”라는 말을 문답법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형님의 얼굴과 수염이 누구를 닮았더라. 아버님 그리워지면 형님을 쳐다보았지. 그렇게 바라본 형님의 얼굴 속에 아버지가 계셨기 때문이다. 이제 형님마저 돌아가셨다. 형님이 그리워지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형님의 자식이 남아있는지 모르겠지만, 박지원은 여기서 의관을 정제하고 냇가로 간다고 하였다. 형님의 얼굴이 냇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 모습을 형님에게서 찾았던 박지원은 이번에는 자신의 모습 속에서 형님의 모습을 찾는다. 아버지-형-나는 이렇게 이어진다. 이들이 가족임을 확인하게 되는 것은 닮은 외모 때문이다. 핏줄이 같다는 것을 얼굴이 같다는 데서 확인하는 것이기도 한다.
서정주의 「자화상」이라는 시가 있다. “애비는 종이었다”,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라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시구가 담겨 있는 시이다. 이 시 속에도 핏줄의 친연성을 외모의 닮음으로 표현하는 부분이 등장한다. 서정주는 외할아버지와 자신이 가족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전언(傳言)의 형식으로 내가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을 닮았음을 드러낸다. 외모의 닮음은 둘이 가족임을 드러내기도 하면서, 동시에 유사한 행동의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할아버지가 갑오년에 바닷가에 가셔서 끝내 돌아오지 못하신 것처럼, 나의 삶은 팔할이 바람이었다. 아버지는 종이고, 할머니는 늙은 것이 꼭 파뿌리 같고, 나는 집을 떠나 돌아오시지 않는 외할아버지를 닮았다. 가족 모두가 힘겹게 살아가고 있고, 시인 역시 스물세살의 생애가 고달팠음을 시 속에서 고백하고 있는 가운데 외모의 유사성으로 핏줄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는 사실을 「연암억선형」 시의 내용과 견주어 확인해 둠직하다.
키워드
냇물, 서정주, 선군(先君), 선형, 자화상
전후맥락
연암 박지원이 부친과 형과 같이 살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서 부친은 고인이 되셨다. 문득 돌아가신 부친이 그리워지면 나는 형님의 얼굴을 쳐다보곤 하였다. 시간이 또 흘렀다. 이제 형님마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형님이 그리우면 누구 얼굴을 쳐다보아야 하는가.
고전본문
우리 형님 얼굴 수염 누구를 닮았던고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나면 우리 형님 쳐다봤지.
이제 형님 그리우면 어디서 보아야 할까.
두건 쓰고 옷 입고 가 냇물에 비춰보아야지.
[연암집] 「연암억선형」(燕巖憶先兄) 중에서
토론하기
(1) 이 시에서 4행의 내용이 3행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4행의 뜻이 무엇인지 말해보도록 합시다.
(2) 다음은 서정주(徐廷柱, 1915~2000)의 「자화상」이라는 시입니다. 본문과 「자화상」에서 느낄 수 있는 공통점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아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아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를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가고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천치를 읽고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으련다
찬란히 틔어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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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읽기
가족의 얼굴은 서로 닮아 있다. 나는 내 아버지를 닮았고, 내 자식은 나를 닮았다. 박지원의 시 「연암억선형」(燕巖憶先兄)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지식은 이게 전부이다. 시 제목의 선형(先兄)은 돌아가신 형님을 뜻한다. 본문에 등장하는 아버님과 형님 모두 지금은 고인이 되신 분들이다. 네 줄의 짧은 시는 물음-대답이 두 번 반복하는 구조로 짜여 있다. 1행과 2행은 “우리 형님은 돌아가신 아버님을 닮았다”라는 말을 문답법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형님의 얼굴과 수염이 누구를 닮았더라. 아버님 그리워지면 형님을 쳐다보았지. 그렇게 바라본 형님의 얼굴 속에 아버지가 계셨기 때문이다. 이제 형님마저 돌아가셨다. 형님이 그리워지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형님의 자식이 남아있는지 모르겠지만, 박지원은 여기서 의관을 정제하고 냇가로 간다고 하였다. 형님의 얼굴이 냇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 모습을 형님에게서 찾았던 박지원은 이번에는 자신의 모습 속에서 형님의 모습을 찾는다. 아버지-형-나는 이렇게 이어진다. 이들이 가족임을 확인하게 되는 것은 닮은 외모 때문이다. 핏줄이 같다는 것을 얼굴이 같다는 데서 확인하는 것이기도 한다.
서정주의 「자화상」이라는 시가 있다. “애비는 종이었다”,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라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시구가 담겨 있는 시이다. 이 시 속에도 핏줄의 친연성을 외모의 닮음으로 표현하는 부분이 등장한다. 서정주는 외할아버지와 자신이 가족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전언(傳言)의 형식으로 내가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을 닮았음을 드러낸다. 외모의 닮음은 둘이 가족임을 드러내기도 하면서, 동시에 유사한 행동의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할아버지가 갑오년에 바닷가에 가셔서 끝내 돌아오지 못하신 것처럼, 나의 삶은 팔할이 바람이었다. 아버지는 종이고, 할머니는 늙은 것이 꼭 파뿌리 같고, 나는 집을 떠나 돌아오시지 않는 외할아버지를 닮았다. 가족 모두가 힘겹게 살아가고 있고, 시인 역시 스물세살의 생애가 고달팠음을 시 속에서 고백하고 있는 가운데 외모의 유사성으로 핏줄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는 사실을 「연암억선형」 시의 내용과 견주어 확인해 둠직하다.
키워드
냇물, 서정주, 선군(先君), 선형, 자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