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인용문은 [사기] 「영행열전」의 일부이다. ‘영행(佞幸)’은 남자가 군왕의 총애를 받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는 한을 건국한 고조의 총애를 받은 굉과 2대 황제인 혜제의 총애를 받은 적이란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짧게 실려 있고, 5대 황제인 문제의 총애를 받은 등통, 7대 황제인 무제의 총애를 받은 한언과 이연년이라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긴 분량으로 실려 있다.
고전본문
옛날에 미색으로 총애를 입은 자가 많았다. 한이 일어났을 때 고조 유방은 사납고 씩씩했지만 적(籍)이라는 유생은 미색에 의지한 아첨으로 총애를 받았다. 혜제 때에는 굉(閎)이라는 유생이 총애를 받았다. 이 두 사람은 재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직 미모와 아첨으로써 총애를 받아 신분이 귀해졌다. 황제와 함께 자며 기거하므로 공경들이 모두 이들을 통해 황제에게 말씀을 올렸다. 그래서 혜제 때에는 낭관과 시중들이 모두 꿩의 깃털로 꾸민 관을 쓰고 조개 장식의 허리띠를 매고 연지와 분을 발라 적과 굉처럼 꾸몄다. 두 사람은 혜제가 죽자 그의 능이 있는 안릉으로 옮겨 죽은 황제를 섬기며 살았다.
문제 때 총애를 받는 신하로 사대부 출신으로는 등통(鄧通)이 있었고 환관으로는 조동(趙同)과 북궁백자(北宮伯子)가 있었다. 북궁백자는 사람을 아낄 줄 아는 장자였다는 점으로, 조동은 점성술로써 각각 총애를 받아 항상 문제를 모시고 수레를 함께 탔다. 반면에 등통은 재능이 없었다. 등통은 촉군의 남안 사람으로 노를 잘 저어서 황두랑이라는 황제가 타는 선박의 운행을 관장하는 관리가 되었다. 문제가 꿈에서 하늘에 오르려 했지만 오르지 못했는데 한 황두랑이 뒤에서 밀어주어 하늘에 올랐다. 뒤를 돌아보니 황두랑의 옷의 등솔기에 띠를 맨 곳이 터져 있었다. 잠에서 깬 뒤 궁궐 내 호수에 있는 점대라는 누각으로 가서 꿈속에서 등을 밀어준 황두랑을 은밀히 찾았다. 그러다 등통을 보니 그의 옷의 등솔기가 터져 있는 것이 꿈에서 본 것과 같았다. 그를 불러 성과 이름을 물으니 성은 등이고 이름은 통이었다. 문제는 기뻐하면서 날이 갈수록 그를 총애했다.
등통 역시 삼가고 성실했으며 다른 사람과 사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휴가를 주어도 밖에 나가려 하지 않았다. 이에 문제가 십여 차례 수만금을 상으로 내렸고 벼슬은 상대부에 이르렀다. 문제는 수시로 등통의 집에 가서 놀았다. 그러나 등통에게는 다른 재능은 없었고 인재를 찾아 추천할 줄도 모르며 오로지 자기 한 몸을 삼가며 황제에게 아첨할 뿐이었다. 황제가 뛰어난 관상가에게 등통의 관상을 보게 했더니 말하기를 “가난하게 되어 굶어죽을 것입니다”라고 아뢰었다. 문제는 “등통을 부유하게 해 줄 이가 바로 나인데 어째서 가난해진다고 하는가?”라고 하며 등통에게 촉군 엄도에 있는 구리 광산을 주어 스스로 돈을 주조할 수 있게 하니 이로 인해 ‘등씨전(鄧氏錢)’이 천하에 퍼졌다. 등통의 부유함이 이 정도였다.
문제가 일찍이 등창을 앓자 등통은 항상 황제를 위해서 종기의 고름을 빨아냈다. 문제는 마음이 편치 않아 조용히 등통에게 물었다. “천하에 누가 가장 짐을 사랑하느냐?” 등통이 대답했다. “당연히 태자만한 이가 없을 것입니다.” 때마침 태자가 문병을 오자 문제는 태자에게 종기를 빨아내라고 시켰다. 태자는 종기를 빨아내기는 했지만 안색이 좋지는 않았다. 얼마 후 태자는 등통이 늘 황제를 위해서 고름을 빨아낸다는 말을 듣고는 마음속으로 부끄러워했지만 이로 인하여 등통을 미워하게 되었다. 문제가 죽고 태자였던 경제가 즉위하자 등통은 면직되어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등통이 몰래 변경 밖으로 그가 주조한 돈을 유출시킨다고 고발하였다. 관리에게 넘겨 조사케 하니 그런 일이 꽤나 있었다. 판결을 내려 등통의 가산을 모조리 몰수하자 등통은 오히려 수만금의 빚을 지게 되었다. 등통과 사통했던 경제의 누이인 장공주가 등통에게 재물을 하사했으나 관리가 곧 몰수했기 때문에 등통은 비녀 하나조차 몸에 지닐 수 없었다. 이에 장공주는 빌려준다는 명목으로 등통에게 입을 것과 먹을 것을 보내주었지만 등통은 끝내 한 푼의 돈도 갖지 못한 채 남의 집에 얹혀살다가 죽었다.
-[사기] 「영행열전」 중에서
토론하기
(1) 황제와 영행의 관계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둘 사이의 감정은 어떤 성격의 감정일까?
(2) “여성에게는 여성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고 남성에게는 남성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관점에 대하여 토론해보자.
(3) 아름다움에는 유효기간이 있을까?
해설읽기
사마천이 열전에서 다룬 인물은 역사 전개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된 인물들이다. 이 인물들의 삶에서 본받을 바가 있다고 하여 열전의 주인공으로 삼은 것은 아니었다. 「영행열전」의 주인공들 역시 마찬가지다. 결코 훌륭한 삶을 펼쳐낸 위인이나 세상을 위기나 악으로부터 구제한 영웅이라고 볼 수 없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그저 무능력하다. 단지 타고난 아름다운 외모 덕분에 황제라는 최고 권력자의 눈에 띄어 호사와 권력을 누렸던 인물일 따름이다. 그러다 황제의 총애가 식는다든지, 황제가 죽는다든지 하면 누리던 호사가 끊겨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루저(looser)’가 되고 만다. 그럼에도 사마천이 이러한 루저들의 삶을 역사의 이름 아래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대답은 「영행열전」의 첫머리에 제시되어 있다. “속담에 ‘힘써 농사를 지음은 풍년을 맞이함만 못하고, 군주를 올바르게 섬김은 군주의 뜻에 영합됨만 못하다’라고 하던데 근거 없는 빈말이 아니다. 여자만 미색을 이용한 아첨으로써 군주에게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벼슬길에도 그런 것이 있다.” 미색은 자신의 노력과 무관하게 얻어진 것이다. 사마천은 타고난 미모 자체를 문제시하지 않았다. 미모가 아첨으로만 이어질 때, 다시 말해 자신의 노력을 통해 얻은 실력과 무관하게 외모가 활용될 때를 문제시 하였다. 그래서 문제 때 외모가 아름다웠던 조동이나 북궁백자는 영행으로 서술하지 않았다. 그들은 각각 사람을 아낄 줄 아는 도덕적 역량과 점성술이라는 전문 분야의 역량을 지니고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벼슬살이를 하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굉이나 적, 등통 같이 별다른 노력 없이 타고난 미색만으로 고위직에 오르고 호사를 누리는 인물들이다. 사마천은 이러한 이들이 권력과 호사를 누리는 현실을 속담을 인용하여 한탄하였다. 노력이 요행보다 못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요행이 이런 식으로 역사에 개입할 때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지, 다시 말해 타고난 외모 덕분에 최고 권력자의 총애를 받음으로써 권력과 호사를 누리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를 사마천은 「영행열전」의 서술을 통해 던지고자 했음이다.
그런데 「영행열전」은 이러한 각도에서만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사마천이 「영행열전」을 쓴 목적은 노력이 아닌 요행에 기대는 행위에 대하여 경계하는 데 있음은 분명하다. 노력을 통해 얻은 실력이 아니라 우연하게 타고난 외모와 자기 실력이 아닌 군주라는 타인의 힘에 의존하여 출세하고 영달하는 것의 부질없음에 대하여 경고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맥락과 무관하게 「영행열전」을 통해 아름다움과 관련된 화두를 던져볼 수도 있다. 하나는 이른바 “미모니 미색이니 하는 것들이 여성의 전유물인가?”라는 화두이다. 이는 미모니 미색이니 하는 것들은 남성에게 적용할 수 없는가라는 물음이기도 하다. 그런데 공자의 어록인 논어나 공자를 이어받은 맹자에는 각각 이러한 언급이 실려 있다. “공자가 말했다. ‘축타(祝鮀)와 같은 말주변이 없다면, 송조(宋朝)와 같은 아름다움이 없다면 오늘날 세상에서 어려움을 면하기는 어렵다.’”, “자도(子都) 같은 이에 대해서는 천하 사람들 중에 그 아름다움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뿐 아니라 공자나 맹자 등은 남성의 아름다움을 미색[色]이라는 표현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이를 보면 미모나 미색 등을 여성에게만 적용했던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미모니 미색이니 하는 것들이 여성의 전유물인가?”라는 화두는 이를테면 “여성에게는 여성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고 남성에게는 남성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식의 관점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과연 여성이나 남성에게 각각 고유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이른바 여성적 아름다움이라고 여겨지던 것들이 지금은 남성들에게도 공유되고 있고, 예컨대 ‘근육남’ 같은 표현이 환기하는 남성의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여성들에게 공유된 지는 이미 오래다. 아름다움에는 과연 성별이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사마천은 「영행열전」을 갈무리하면서 “심하다, 사랑하고 미워함이 때에 따라 다름이! 미자하의 행적은 후세 사람에게 영행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주나니 백세 이후라도 이와 같을 것임을 알 수 있다”고 평했다. 여기서 미자하는 춘추시대에 위나라 영공의 총애를 받던 인물이다. 그는 한창 젊었을 때는 영공의 수레를 허락 없이 몰고 나가도 영공은 노모의 병으로 급했기 때문이라며 용서해주었고, 미자하가 한 잎 베어 먹은 복숭아를 영공에게 주자 영공은 자신을 사랑했기에 맛있는 것을 나눠먹고자 하여 주었다며 용서해주었다. 그러다 나이를 먹어 미지하의 외모가 쇠락해지자 영공은 젊었을 때의 허락 없이 수레를 탔던 일, 먹던 복숭아를 자기에게 먹였던 일 등의 죄를 물어 처벌하였다. 사마천은 이러한 미자하의 삶의 궤적이 바로 영행의 전형이라면서 이를 보면 100세대 이후에도 영행은 이와 똑같을 것임이 분명하다고 했다. 자기 실력이 아닌 요행으로 얻은 바가 시효가 길지 않음을, 그 결말이 틀림없이 불행임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은 어떠할까? 아름다움에는 시효가 있는 것일까? 만약 아름다움에도 시효가 있다면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 아름다움은 꼭 지켜야만 하는 것일까? 사마천이 「영행열전」을 쓴 취지에서는 벗어나 있는 물음들이지만 한번쯤은 되새겨볼 만한 물음들이다.
키워드
남색, 사기, 사마천, 아름다움, 영행열전
전후맥락
인용문은 [사기] 「영행열전」의 일부이다. ‘영행(佞幸)’은 남자가 군왕의 총애를 받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는 한을 건국한 고조의 총애를 받은 굉과 2대 황제인 혜제의 총애를 받은 적이란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짧게 실려 있고, 5대 황제인 문제의 총애를 받은 등통, 7대 황제인 무제의 총애를 받은 한언과 이연년이라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긴 분량으로 실려 있다.
고전본문
옛날에 미색으로 총애를 입은 자가 많았다. 한이 일어났을 때 고조 유방은 사납고 씩씩했지만 적(籍)이라는 유생은 미색에 의지한 아첨으로 총애를 받았다. 혜제 때에는 굉(閎)이라는 유생이 총애를 받았다. 이 두 사람은 재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직 미모와 아첨으로써 총애를 받아 신분이 귀해졌다. 황제와 함께 자며 기거하므로 공경들이 모두 이들을 통해 황제에게 말씀을 올렸다. 그래서 혜제 때에는 낭관과 시중들이 모두 꿩의 깃털로 꾸민 관을 쓰고 조개 장식의 허리띠를 매고 연지와 분을 발라 적과 굉처럼 꾸몄다. 두 사람은 혜제가 죽자 그의 능이 있는 안릉으로 옮겨 죽은 황제를 섬기며 살았다.
문제 때 총애를 받는 신하로 사대부 출신으로는 등통(鄧通)이 있었고 환관으로는 조동(趙同)과 북궁백자(北宮伯子)가 있었다. 북궁백자는 사람을 아낄 줄 아는 장자였다는 점으로, 조동은 점성술로써 각각 총애를 받아 항상 문제를 모시고 수레를 함께 탔다. 반면에 등통은 재능이 없었다. 등통은 촉군의 남안 사람으로 노를 잘 저어서 황두랑이라는 황제가 타는 선박의 운행을 관장하는 관리가 되었다. 문제가 꿈에서 하늘에 오르려 했지만 오르지 못했는데 한 황두랑이 뒤에서 밀어주어 하늘에 올랐다. 뒤를 돌아보니 황두랑의 옷의 등솔기에 띠를 맨 곳이 터져 있었다. 잠에서 깬 뒤 궁궐 내 호수에 있는 점대라는 누각으로 가서 꿈속에서 등을 밀어준 황두랑을 은밀히 찾았다. 그러다 등통을 보니 그의 옷의 등솔기가 터져 있는 것이 꿈에서 본 것과 같았다. 그를 불러 성과 이름을 물으니 성은 등이고 이름은 통이었다. 문제는 기뻐하면서 날이 갈수록 그를 총애했다.
등통 역시 삼가고 성실했으며 다른 사람과 사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휴가를 주어도 밖에 나가려 하지 않았다. 이에 문제가 십여 차례 수만금을 상으로 내렸고 벼슬은 상대부에 이르렀다. 문제는 수시로 등통의 집에 가서 놀았다. 그러나 등통에게는 다른 재능은 없었고 인재를 찾아 추천할 줄도 모르며 오로지 자기 한 몸을 삼가며 황제에게 아첨할 뿐이었다. 황제가 뛰어난 관상가에게 등통의 관상을 보게 했더니 말하기를 “가난하게 되어 굶어죽을 것입니다”라고 아뢰었다. 문제는 “등통을 부유하게 해 줄 이가 바로 나인데 어째서 가난해진다고 하는가?”라고 하며 등통에게 촉군 엄도에 있는 구리 광산을 주어 스스로 돈을 주조할 수 있게 하니 이로 인해 ‘등씨전(鄧氏錢)’이 천하에 퍼졌다. 등통의 부유함이 이 정도였다.
문제가 일찍이 등창을 앓자 등통은 항상 황제를 위해서 종기의 고름을 빨아냈다. 문제는 마음이 편치 않아 조용히 등통에게 물었다. “천하에 누가 가장 짐을 사랑하느냐?” 등통이 대답했다. “당연히 태자만한 이가 없을 것입니다.” 때마침 태자가 문병을 오자 문제는 태자에게 종기를 빨아내라고 시켰다. 태자는 종기를 빨아내기는 했지만 안색이 좋지는 않았다. 얼마 후 태자는 등통이 늘 황제를 위해서 고름을 빨아낸다는 말을 듣고는 마음속으로 부끄러워했지만 이로 인하여 등통을 미워하게 되었다. 문제가 죽고 태자였던 경제가 즉위하자 등통은 면직되어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등통이 몰래 변경 밖으로 그가 주조한 돈을 유출시킨다고 고발하였다. 관리에게 넘겨 조사케 하니 그런 일이 꽤나 있었다. 판결을 내려 등통의 가산을 모조리 몰수하자 등통은 오히려 수만금의 빚을 지게 되었다. 등통과 사통했던 경제의 누이인 장공주가 등통에게 재물을 하사했으나 관리가 곧 몰수했기 때문에 등통은 비녀 하나조차 몸에 지닐 수 없었다. 이에 장공주는 빌려준다는 명목으로 등통에게 입을 것과 먹을 것을 보내주었지만 등통은 끝내 한 푼의 돈도 갖지 못한 채 남의 집에 얹혀살다가 죽었다.
-[사기] 「영행열전」 중에서
토론하기
(1) 황제와 영행의 관계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둘 사이의 감정은 어떤 성격의 감정일까?
(2) “여성에게는 여성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고 남성에게는 남성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관점에 대하여 토론해보자.
(3) 아름다움에는 유효기간이 있을까?
해설읽기
사마천이 열전에서 다룬 인물은 역사 전개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된 인물들이다. 이 인물들의 삶에서 본받을 바가 있다고 하여 열전의 주인공으로 삼은 것은 아니었다. 「영행열전」의 주인공들 역시 마찬가지다. 결코 훌륭한 삶을 펼쳐낸 위인이나 세상을 위기나 악으로부터 구제한 영웅이라고 볼 수 없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그저 무능력하다. 단지 타고난 아름다운 외모 덕분에 황제라는 최고 권력자의 눈에 띄어 호사와 권력을 누렸던 인물일 따름이다. 그러다 황제의 총애가 식는다든지, 황제가 죽는다든지 하면 누리던 호사가 끊겨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루저(looser)’가 되고 만다. 그럼에도 사마천이 이러한 루저들의 삶을 역사의 이름 아래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대답은 「영행열전」의 첫머리에 제시되어 있다. “속담에 ‘힘써 농사를 지음은 풍년을 맞이함만 못하고, 군주를 올바르게 섬김은 군주의 뜻에 영합됨만 못하다’라고 하던데 근거 없는 빈말이 아니다. 여자만 미색을 이용한 아첨으로써 군주에게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벼슬길에도 그런 것이 있다.” 미색은 자신의 노력과 무관하게 얻어진 것이다. 사마천은 타고난 미모 자체를 문제시하지 않았다. 미모가 아첨으로만 이어질 때, 다시 말해 자신의 노력을 통해 얻은 실력과 무관하게 외모가 활용될 때를 문제시 하였다. 그래서 문제 때 외모가 아름다웠던 조동이나 북궁백자는 영행으로 서술하지 않았다. 그들은 각각 사람을 아낄 줄 아는 도덕적 역량과 점성술이라는 전문 분야의 역량을 지니고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벼슬살이를 하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굉이나 적, 등통 같이 별다른 노력 없이 타고난 미색만으로 고위직에 오르고 호사를 누리는 인물들이다. 사마천은 이러한 이들이 권력과 호사를 누리는 현실을 속담을 인용하여 한탄하였다. 노력이 요행보다 못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요행이 이런 식으로 역사에 개입할 때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지, 다시 말해 타고난 외모 덕분에 최고 권력자의 총애를 받음으로써 권력과 호사를 누리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를 사마천은 「영행열전」의 서술을 통해 던지고자 했음이다.
그런데 「영행열전」은 이러한 각도에서만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사마천이 「영행열전」을 쓴 목적은 노력이 아닌 요행에 기대는 행위에 대하여 경계하는 데 있음은 분명하다. 노력을 통해 얻은 실력이 아니라 우연하게 타고난 외모와 자기 실력이 아닌 군주라는 타인의 힘에 의존하여 출세하고 영달하는 것의 부질없음에 대하여 경고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맥락과 무관하게 「영행열전」을 통해 아름다움과 관련된 화두를 던져볼 수도 있다. 하나는 이른바 “미모니 미색이니 하는 것들이 여성의 전유물인가?”라는 화두이다. 이는 미모니 미색이니 하는 것들은 남성에게 적용할 수 없는가라는 물음이기도 하다. 그런데 공자의 어록인 논어나 공자를 이어받은 맹자에는 각각 이러한 언급이 실려 있다. “공자가 말했다. ‘축타(祝鮀)와 같은 말주변이 없다면, 송조(宋朝)와 같은 아름다움이 없다면 오늘날 세상에서 어려움을 면하기는 어렵다.’”, “자도(子都) 같은 이에 대해서는 천하 사람들 중에 그 아름다움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뿐 아니라 공자나 맹자 등은 남성의 아름다움을 미색[色]이라는 표현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이를 보면 미모나 미색 등을 여성에게만 적용했던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미모니 미색이니 하는 것들이 여성의 전유물인가?”라는 화두는 이를테면 “여성에게는 여성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고 남성에게는 남성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식의 관점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과연 여성이나 남성에게 각각 고유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이른바 여성적 아름다움이라고 여겨지던 것들이 지금은 남성들에게도 공유되고 있고, 예컨대 ‘근육남’ 같은 표현이 환기하는 남성의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여성들에게 공유된 지는 이미 오래다. 아름다움에는 과연 성별이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사마천은 「영행열전」을 갈무리하면서 “심하다, 사랑하고 미워함이 때에 따라 다름이! 미자하의 행적은 후세 사람에게 영행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주나니 백세 이후라도 이와 같을 것임을 알 수 있다”고 평했다. 여기서 미자하는 춘추시대에 위나라 영공의 총애를 받던 인물이다. 그는 한창 젊었을 때는 영공의 수레를 허락 없이 몰고 나가도 영공은 노모의 병으로 급했기 때문이라며 용서해주었고, 미자하가 한 잎 베어 먹은 복숭아를 영공에게 주자 영공은 자신을 사랑했기에 맛있는 것을 나눠먹고자 하여 주었다며 용서해주었다. 그러다 나이를 먹어 미지하의 외모가 쇠락해지자 영공은 젊었을 때의 허락 없이 수레를 탔던 일, 먹던 복숭아를 자기에게 먹였던 일 등의 죄를 물어 처벌하였다. 사마천은 이러한 미자하의 삶의 궤적이 바로 영행의 전형이라면서 이를 보면 100세대 이후에도 영행은 이와 똑같을 것임이 분명하다고 했다. 자기 실력이 아닌 요행으로 얻은 바가 시효가 길지 않음을, 그 결말이 틀림없이 불행임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은 어떠할까? 아름다움에는 시효가 있는 것일까? 만약 아름다움에도 시효가 있다면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 아름다움은 꼭 지켜야만 하는 것일까? 사마천이 「영행열전」을 쓴 취지에서는 벗어나 있는 물음들이지만 한번쯤은 되새겨볼 만한 물음들이다.
키워드
남색, 사기, 사마천, 아름다움, 영행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