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영채신과 섭소천의 애정 고사는 「섭소천」이라는 제목으로 요재지이에 실려 있다. 1987년 개봉되어 홍콩 영화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 작품인 ≪천녀유혼(倩女幽魂)≫으로 영화화되어 중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서사이다. 영화에서는 장국영이 영채신 역을, 왕조현이 섭소천 역을 맡아 준수한 인간 남자와 수려한 미모의 귀신 여인 간의 사랑을 신비롭고도 낭만적으로 펼쳐냈다. 「섭소천」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영채신은 일이 있어 금화라는 지역에 갔다가 쇠락한 사찰에 여장을 풀었다. 그 사찰에는 악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악귀는 다른 미녀 귀신을 겁박하여 사찰에 머무는 남자들을 미색으로 홀리게 한 후 비몽사몽에 빠져 있는 남자들의 피를 빨아 먹고 있었다. 영채신에게도 미녀로 둔갑한 미녀 귀신이 나타나 유혹했지만 영채신은 이를 단호히 거절함으로써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이러한 영채신의 모습에 감동한 미녀 귀신은 영채신에게 악귀로 인한 위험을 미리 알려주어 목숨을 건지게 하고는 자신의 유골을 다른 곳에 묻어줌으로써 자신을 이 악귀들의 손아귀로부터 빼내달라고 부탁한다. 이 미녀 귀신이 바로 섭소천이었다. 이에 영채신은 섭소천의 유골을 수습하여 고향으로 돌아온 뒤 양지 바른 곳에 묻어준다. 그러자 섭소천이 나타나 영채신에게 함께 지낼 것을 청한다. 영채신과 그의 어머니는 섭소천의 진정을 받아들여 함께 지냈고 시일이 지난 후 영채신의 처가 병사하자 둘이 결혼한다. 이후 영채신은 과거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고 섭소천도 아들을 낳으며 화목하게 살았다.
고전본문
영채신의 서재는 들판에 임해 있었다. 그는 서재 밖 들판에 무덤을 파서 섭소천의 유골을 묻어준 다음 제사를 올리며 축원했다. “그대 고독한 혼이 가여워 내 거처 부근에 묻었소이다. 노랫소리나 울음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운 곳이오. 바라건대 다시는 사나운 악귀에게 능욕당하지 말기를! 한 잔 올리니 드시오. 맛있는 안주는 채비하지 못했구료. 바라건대 탓하지는 마시오.” 축원을 마치고는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때 뒤편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잠시 기다렸다 저랑 같이 가세요!” 돌아보니 섭소천이었다. 그녀는 기쁨에 겨워 감사하며 말했다. “당신의 신의는 제가 열 번 다시 죽어도 그 은혜를 갚지 못할 것입니다. 청컨대 당신과 함께 갈 수 있게 해주세요. 당신의 부모님을 뵙고 당신의 첩이 될 수만 있다면 여한이 없을 듯합니다.” 이에 영채신은 그녀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뽀얀 살결에는 발그레한 홍조가 노을처럼 흐르고 있었고, 발은 흡사 죽순처럼 뾰족하고 가냘팠다. 환한 대낮에 보니 빼어난 미모가 더욱 돋보였다. 결국 영채신은 그녀와 함께 서재에 이르렀다. 그는 섭소천에게 잠시 앉아 기다리라고 당부하고는 먼저 안으로 들어가 어머니에게 전후사정을 고하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크게 놀랐다. 당시 영채신의 처는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었기에 어머니는 며느리가 크게 놀랄까 걱정되어 처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경계하였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섭소천은 이미 나부끼듯이 방안으로 들어와 바닥에 엎드려 사뿐히 절을 올렸다. 영채신이 말했다. “이 사람이 섭소천입니다.” 어머니는 화들짝 놀라며 어찌할 줄을 몰라 하는데 섭소천이 입을 열었다. “저는 홀몸으로 떠돌면서 부모형제와도 멀리 떨어져 있다가 다행이 영채신 공자의 보살핌을 받아 그 은택으로 육신이 새로 생겼습니다. 원컨대 청소라도 하면서 하늘 같은 은혜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어머니는 그녀의 맵시 있고 사랑스런 모습을 보고는 비로소 용기를 내어 말문을 열었다. “아가씨가 그토록 내 아들을 은혜로 돌보아준다고 하니 나야 기쁘기 그지없네요. 하지만 내 한평생 다만 이 애 하나뿐인데 대를 이어야 할 아이에게 귀신을 배필로 삼으라고 할 수는 없네요.” 그러자 섭소천이 말했다. “저는 진실로 딴 마음은 없습니다. 제가 저승 사람이라 어머님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이라면 청컨대 영채신 공자를 오라버니로 섬기고, 어머님을 모시면서 아침저녁으로 살펴드리는 것은 어떠하신지요?” 어머니는 그녀의 정성이 가엾게 여겨져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다. …… 섭소천은 막 왔을 당시는 아무 것도 먹지 않았지만 반년쯤 지나자 차츰 묽게 쑨 죽을 먹을 수 있었다. 어머니와 아들 모두 섭소천을 깊이 사랑하여 그녀가 귀신임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그녀가 귀신인 줄을 분별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 후 영채신의 아내가 죽었다. 어머니는 속으로는 섭소천을 며느리로 들이고 싶었지만 아들에게 해가 될까 걱정이 되었다. …… 어머니도 섭소천이 악하지 않다는 것은 알았지만 대를 잇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이 앞섰다. 섭소천이 말했다. “자녀는 오직 하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사람의 운명을 적은 장부에 아드님에게는 조상을 빛낼 아들이 셋이라고 씌어 있으니 귀신을 처로 삼았다고 해서 그 셋을 지워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그녀의 말을 믿고 아들과 의논했다. 영채신은 엄청 기뻐하면서 잔치를 베풀어 친척들에게 결혼 사실을 고하였다. 어떤 사람이 신부를 보고 싶다고 말하자 섭소천은 화려하게 단장한 모습으로 당당하게 그 자리에 나타났다. 모두들 눈을 휘둥그레 뜨고 섭소천을 쳐다보는데, 그녀를 귀신이라고 의심하는 게 아니라 선녀가 아닌가 하고 의심하였다. 이에 멀고 가까운 친척 모두가 예물을 들고 와 축하를 하고는 다투어 소천과 교제하려 하였다. 소천은 난초와 매화를 잘 그렸다. 하여 매번 한 폭씩 답례로 선물하니 그림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이를 보물처럼 간수하며 영광이라 여겼다.
[요재지이], 「섭소천」 중에서
토론하기
(1) 귀신과 사람 사이의 애정 이야기는 왜 생겨났을까? 또한 왜 귀신을 아름답게 설정했을까?
(2) 귀신의 아름다움이 어느 정도의 수준이라고 생각하는가? 왜 사람들은 그 정도의 아름다움을 귀신에게 부여했을까?
(3) 귀신의 아름다움을 진정한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는가? 또한 무엇을 참된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름다움의 조건에 대하여 토론해보자.
해설읽기
옛이야기를 보면 사람으로 둔갑한 귀신이나 여우의 미모가 절정인 예가 한둘이 아니다. “이제 막 열다섯 정도의 나이로, 이슬이 맺힌 연분홍 연꽃 같았고 옅은 안개로 둘러싸여 한껏 촉촉해진 살구꽃 같았다. 미소를 짓는 그녀의 모습은 이 세상에선 볼 수 없는 절정의 아름다움이었다.”(「호사저(胡四姐)」, 요재지이) 절세미인으로 둔갑한 여우를 묘사한 대목이다. “이 세상에선 볼 수 없는 절정의 아름다움이었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으로 둔갑한 여우는 사람 가운데서는 발견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띠고 있다. 여우만 이러한 게 아니라 귀신도 못지않다. 사뭇 고혹적이고 매혹적으로 묘사되곤 한다.
왜 사람으로 둔갑한 귀신이나 여우는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아름다움의 최고치를, 아니 “선녀 같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아름다움을 뛰어넘은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상상되었을까? 요재지이에는 여성으로 둔갑한 여우나 귀신뿐 아니라 남성으로 둔갑한 여우도 절정의 미모를 뽐낸다. 예컨대 다음과 같다.
하사삼의 서재는 초계의 동쪽에 있었고 대문은 넓은 들판을 마주하고 있었다. 하루는 저물녘에 우연히 집밖으로 나왔다가 말을 탄 한 부인을 보았는데 한 소년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부인은 쉰 살쯤 되어 보였는데 안색이며 자태가 출중하고 몹시 수려했다. 눈을 돌려 소년을 보았더니, 나이는 열대여섯 가량이고 외모가 아리따운 여자보다도 한결 아름다웠다. …… 등불을 돋우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소년은 마치 어린 처자처럼 수줍어했다. 그러다 짓궂은 이야기라도 하면 이내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벽 쪽으로 돌렸다. – [요재지이], 「황구랑(黃九郞)」
미소년으로 둔갑한 여우의 미모가 “아리따운 여자보다도 아름답다”고 묘사되어 있다. 역시 인간의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상상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사람으로 둔갑한 귀신이나 여우가 사람으로서 지닐 수 있는 아름다움, 그 이상을 지녔다고 함은 사람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최고의 아름다움이 귀신이나 여우 같은 비인간 존재로 축출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곧 여성적 아름다움이라고 규정해온 미의 극치가 인간 영역 바깥으로 내쳐졌다는 얘기다. 그런데 왜 그러한 아름다움을 인간의 영역 바깥으로 축출했을까? 사람으로 둔갑한 귀신이나 여우 이야기를 토대로 하면 그 이유는 여우나 귀신이 절정의 아름다움으로 사람을 ‘홀리기’ 때문이었다. 곧 축출의 명분은 ‘홀린다’는 낙인이었다. 이는 여성적 아름다움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를 둘러싸고 남자들이 늘 문제를 일으켰기에 절정의 아름다움이 비인간계로 추방됐음을 시사해준다. “남자에게 홀려서”란 표현은 거의 쓰이지 않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홀린다’고 할 때 홀리는 주체는 여성이고 홀림을 당하는 대상은 남성이다. 남자에게는 문제가 없는데 여자가 외모의 아름다움으로 남자를 유혹하기에 문제가 생긴다는 논리다. 이는 전형적인 남성 독존의 닫힌 윤리학이다. 남성은 이러한 윤리학을 내세우며 절정의 아름다움을 인간 바깥으로 내쫓았다. 그러는 한편 속으로는 그에 대한 주체치 못할 욕망을 포기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우나 귀신을 소환하고 그들에 미의 극치를 투사함으로써 절정의 아름다움을 누리고자 하는 욕망을 대리 실현했다. 절정의 여성미를 지닌 여우나 귀신 이야기는 결국 남성 독존 사회의 이중성이 빚어낸 추한 판타지였던 것이다.
한편 영채신과 섭소천의 인간과 귀신 간 애정 서사는 드물게도 해피엔딩이다. 대부분의 인간과 귀신 내지 여우 간 애정 서사는 인간이 귀신이나 여우에게 생기를 빨아 먹힌다든지, 인간이 귀신이나 여우가 내건 금기를 결국을 지키지 못해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비극적 결말로 끝나곤 한다. 그래서 이러한 질문을 던져봄직하다. “왜 영채신과 섭소천의 애정 서사는 해피엔딩이 되었을까?” 이 물음은 가령 “영채신은 어떻게 해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섭소천의 아름다움에 홀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라는 물음과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섭소천은 영채신이 여색이나 황금 같은 것에 유혹되지 않는 인격적 훌륭함에 감동되어 악귀들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삶(물론 여전히 귀신으로서의 삶이지만)을 살기로 결단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도덕적 역량이 귀신도 감복시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관념을 추출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같은 맥락에서 “역으로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인간과 비인간 간의 애정 서사는 비극적 결말일까?”라는 물음도 던져봄직하다. 특히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을 때 그 결과가 나쁘다면 이러한 아름다움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과 함께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아름다움이 나쁜 결말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지, 결말이 나쁘면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것인지, 아름다움은 결과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인지 등의 각도에서 답변을 구성해보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키워드
귀신 이야기, 아름다움, 애정 고사, 여우 이야기, 천녀유혼
전후맥락
영채신과 섭소천의 애정 고사는 「섭소천」이라는 제목으로 요재지이에 실려 있다. 1987년 개봉되어 홍콩 영화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 작품인 ≪천녀유혼(倩女幽魂)≫으로 영화화되어 중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서사이다. 영화에서는 장국영이 영채신 역을, 왕조현이 섭소천 역을 맡아 준수한 인간 남자와 수려한 미모의 귀신 여인 간의 사랑을 신비롭고도 낭만적으로 펼쳐냈다. 「섭소천」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영채신은 일이 있어 금화라는 지역에 갔다가 쇠락한 사찰에 여장을 풀었다. 그 사찰에는 악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악귀는 다른 미녀 귀신을 겁박하여 사찰에 머무는 남자들을 미색으로 홀리게 한 후 비몽사몽에 빠져 있는 남자들의 피를 빨아 먹고 있었다. 영채신에게도 미녀로 둔갑한 미녀 귀신이 나타나 유혹했지만 영채신은 이를 단호히 거절함으로써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이러한 영채신의 모습에 감동한 미녀 귀신은 영채신에게 악귀로 인한 위험을 미리 알려주어 목숨을 건지게 하고는 자신의 유골을 다른 곳에 묻어줌으로써 자신을 이 악귀들의 손아귀로부터 빼내달라고 부탁한다. 이 미녀 귀신이 바로 섭소천이었다. 이에 영채신은 섭소천의 유골을 수습하여 고향으로 돌아온 뒤 양지 바른 곳에 묻어준다. 그러자 섭소천이 나타나 영채신에게 함께 지낼 것을 청한다. 영채신과 그의 어머니는 섭소천의 진정을 받아들여 함께 지냈고 시일이 지난 후 영채신의 처가 병사하자 둘이 결혼한다. 이후 영채신은 과거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고 섭소천도 아들을 낳으며 화목하게 살았다.
고전본문
영채신의 서재는 들판에 임해 있었다. 그는 서재 밖 들판에 무덤을 파서 섭소천의 유골을 묻어준 다음 제사를 올리며 축원했다. “그대 고독한 혼이 가여워 내 거처 부근에 묻었소이다. 노랫소리나 울음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운 곳이오. 바라건대 다시는 사나운 악귀에게 능욕당하지 말기를! 한 잔 올리니 드시오. 맛있는 안주는 채비하지 못했구료. 바라건대 탓하지는 마시오.” 축원을 마치고는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때 뒤편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잠시 기다렸다 저랑 같이 가세요!” 돌아보니 섭소천이었다. 그녀는 기쁨에 겨워 감사하며 말했다. “당신의 신의는 제가 열 번 다시 죽어도 그 은혜를 갚지 못할 것입니다. 청컨대 당신과 함께 갈 수 있게 해주세요. 당신의 부모님을 뵙고 당신의 첩이 될 수만 있다면 여한이 없을 듯합니다.” 이에 영채신은 그녀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뽀얀 살결에는 발그레한 홍조가 노을처럼 흐르고 있었고, 발은 흡사 죽순처럼 뾰족하고 가냘팠다. 환한 대낮에 보니 빼어난 미모가 더욱 돋보였다. 결국 영채신은 그녀와 함께 서재에 이르렀다. 그는 섭소천에게 잠시 앉아 기다리라고 당부하고는 먼저 안으로 들어가 어머니에게 전후사정을 고하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크게 놀랐다. 당시 영채신의 처는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었기에 어머니는 며느리가 크게 놀랄까 걱정되어 처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경계하였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섭소천은 이미 나부끼듯이 방안으로 들어와 바닥에 엎드려 사뿐히 절을 올렸다. 영채신이 말했다. “이 사람이 섭소천입니다.” 어머니는 화들짝 놀라며 어찌할 줄을 몰라 하는데 섭소천이 입을 열었다. “저는 홀몸으로 떠돌면서 부모형제와도 멀리 떨어져 있다가 다행이 영채신 공자의 보살핌을 받아 그 은택으로 육신이 새로 생겼습니다. 원컨대 청소라도 하면서 하늘 같은 은혜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어머니는 그녀의 맵시 있고 사랑스런 모습을 보고는 비로소 용기를 내어 말문을 열었다. “아가씨가 그토록 내 아들을 은혜로 돌보아준다고 하니 나야 기쁘기 그지없네요. 하지만 내 한평생 다만 이 애 하나뿐인데 대를 이어야 할 아이에게 귀신을 배필로 삼으라고 할 수는 없네요.” 그러자 섭소천이 말했다. “저는 진실로 딴 마음은 없습니다. 제가 저승 사람이라 어머님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이라면 청컨대 영채신 공자를 오라버니로 섬기고, 어머님을 모시면서 아침저녁으로 살펴드리는 것은 어떠하신지요?” 어머니는 그녀의 정성이 가엾게 여겨져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다. …… 섭소천은 막 왔을 당시는 아무 것도 먹지 않았지만 반년쯤 지나자 차츰 묽게 쑨 죽을 먹을 수 있었다. 어머니와 아들 모두 섭소천을 깊이 사랑하여 그녀가 귀신임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그녀가 귀신인 줄을 분별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 후 영채신의 아내가 죽었다. 어머니는 속으로는 섭소천을 며느리로 들이고 싶었지만 아들에게 해가 될까 걱정이 되었다. …… 어머니도 섭소천이 악하지 않다는 것은 알았지만 대를 잇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이 앞섰다. 섭소천이 말했다. “자녀는 오직 하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사람의 운명을 적은 장부에 아드님에게는 조상을 빛낼 아들이 셋이라고 씌어 있으니 귀신을 처로 삼았다고 해서 그 셋을 지워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그녀의 말을 믿고 아들과 의논했다. 영채신은 엄청 기뻐하면서 잔치를 베풀어 친척들에게 결혼 사실을 고하였다. 어떤 사람이 신부를 보고 싶다고 말하자 섭소천은 화려하게 단장한 모습으로 당당하게 그 자리에 나타났다. 모두들 눈을 휘둥그레 뜨고 섭소천을 쳐다보는데, 그녀를 귀신이라고 의심하는 게 아니라 선녀가 아닌가 하고 의심하였다. 이에 멀고 가까운 친척 모두가 예물을 들고 와 축하를 하고는 다투어 소천과 교제하려 하였다. 소천은 난초와 매화를 잘 그렸다. 하여 매번 한 폭씩 답례로 선물하니 그림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이를 보물처럼 간수하며 영광이라 여겼다.
[요재지이], 「섭소천」 중에서
토론하기
(1) 귀신과 사람 사이의 애정 이야기는 왜 생겨났을까? 또한 왜 귀신을 아름답게 설정했을까?
(2) 귀신의 아름다움이 어느 정도의 수준이라고 생각하는가? 왜 사람들은 그 정도의 아름다움을 귀신에게 부여했을까?
(3) 귀신의 아름다움을 진정한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는가? 또한 무엇을 참된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름다움의 조건에 대하여 토론해보자.
해설읽기
옛이야기를 보면 사람으로 둔갑한 귀신이나 여우의 미모가 절정인 예가 한둘이 아니다. “이제 막 열다섯 정도의 나이로, 이슬이 맺힌 연분홍 연꽃 같았고 옅은 안개로 둘러싸여 한껏 촉촉해진 살구꽃 같았다. 미소를 짓는 그녀의 모습은 이 세상에선 볼 수 없는 절정의 아름다움이었다.”(「호사저(胡四姐)」, 요재지이) 절세미인으로 둔갑한 여우를 묘사한 대목이다. “이 세상에선 볼 수 없는 절정의 아름다움이었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으로 둔갑한 여우는 사람 가운데서는 발견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띠고 있다. 여우만 이러한 게 아니라 귀신도 못지않다. 사뭇 고혹적이고 매혹적으로 묘사되곤 한다.
왜 사람으로 둔갑한 귀신이나 여우는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아름다움의 최고치를, 아니 “선녀 같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아름다움을 뛰어넘은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상상되었을까? 요재지이에는 여성으로 둔갑한 여우나 귀신뿐 아니라 남성으로 둔갑한 여우도 절정의 미모를 뽐낸다. 예컨대 다음과 같다.
하사삼의 서재는 초계의 동쪽에 있었고 대문은 넓은 들판을 마주하고 있었다. 하루는 저물녘에 우연히 집밖으로 나왔다가 말을 탄 한 부인을 보았는데 한 소년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부인은 쉰 살쯤 되어 보였는데 안색이며 자태가 출중하고 몹시 수려했다. 눈을 돌려 소년을 보았더니, 나이는 열대여섯 가량이고 외모가 아리따운 여자보다도 한결 아름다웠다. …… 등불을 돋우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소년은 마치 어린 처자처럼 수줍어했다. 그러다 짓궂은 이야기라도 하면 이내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벽 쪽으로 돌렸다. – [요재지이], 「황구랑(黃九郞)」
미소년으로 둔갑한 여우의 미모가 “아리따운 여자보다도 아름답다”고 묘사되어 있다. 역시 인간의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상상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사람으로 둔갑한 귀신이나 여우가 사람으로서 지닐 수 있는 아름다움, 그 이상을 지녔다고 함은 사람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최고의 아름다움이 귀신이나 여우 같은 비인간 존재로 축출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곧 여성적 아름다움이라고 규정해온 미의 극치가 인간 영역 바깥으로 내쳐졌다는 얘기다. 그런데 왜 그러한 아름다움을 인간의 영역 바깥으로 축출했을까? 사람으로 둔갑한 귀신이나 여우 이야기를 토대로 하면 그 이유는 여우나 귀신이 절정의 아름다움으로 사람을 ‘홀리기’ 때문이었다. 곧 축출의 명분은 ‘홀린다’는 낙인이었다. 이는 여성적 아름다움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를 둘러싸고 남자들이 늘 문제를 일으켰기에 절정의 아름다움이 비인간계로 추방됐음을 시사해준다. “남자에게 홀려서”란 표현은 거의 쓰이지 않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홀린다’고 할 때 홀리는 주체는 여성이고 홀림을 당하는 대상은 남성이다. 남자에게는 문제가 없는데 여자가 외모의 아름다움으로 남자를 유혹하기에 문제가 생긴다는 논리다. 이는 전형적인 남성 독존의 닫힌 윤리학이다. 남성은 이러한 윤리학을 내세우며 절정의 아름다움을 인간 바깥으로 내쫓았다. 그러는 한편 속으로는 그에 대한 주체치 못할 욕망을 포기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우나 귀신을 소환하고 그들에 미의 극치를 투사함으로써 절정의 아름다움을 누리고자 하는 욕망을 대리 실현했다. 절정의 여성미를 지닌 여우나 귀신 이야기는 결국 남성 독존 사회의 이중성이 빚어낸 추한 판타지였던 것이다.
한편 영채신과 섭소천의 인간과 귀신 간 애정 서사는 드물게도 해피엔딩이다. 대부분의 인간과 귀신 내지 여우 간 애정 서사는 인간이 귀신이나 여우에게 생기를 빨아 먹힌다든지, 인간이 귀신이나 여우가 내건 금기를 결국을 지키지 못해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비극적 결말로 끝나곤 한다. 그래서 이러한 질문을 던져봄직하다. “왜 영채신과 섭소천의 애정 서사는 해피엔딩이 되었을까?” 이 물음은 가령 “영채신은 어떻게 해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섭소천의 아름다움에 홀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라는 물음과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섭소천은 영채신이 여색이나 황금 같은 것에 유혹되지 않는 인격적 훌륭함에 감동되어 악귀들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삶(물론 여전히 귀신으로서의 삶이지만)을 살기로 결단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도덕적 역량이 귀신도 감복시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관념을 추출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같은 맥락에서 “역으로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인간과 비인간 간의 애정 서사는 비극적 결말일까?”라는 물음도 던져봄직하다. 특히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을 때 그 결과가 나쁘다면 이러한 아름다움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과 함께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아름다움이 나쁜 결말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지, 결말이 나쁘면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것인지, 아름다움은 결과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인지 등의 각도에서 답변을 구성해보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키워드
귀신 이야기, 아름다움, 애정 고사, 여우 이야기, 천녀유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