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총 19편으로 이루어진 『월절서』의 14편 「구술(九術)」에 수록된 내용으로, ‘구술’은 ‘아홉 가지 계책’이라는 뜻이다. 이 편의 앞부분은 월나라 왕 구천이 오나라 왕 부차에게 복수하기 위해 오나라를 정벌할 수 있는 계책을 대부 문종에게 묻자 문종이 9가지 계책을 아뢰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고, 중간 이후는 9가지 계책 중 “오나라 왕에게 솜씨 좋은 장인을 보내 궁실과 높은 누대를 세우게 하여 오나라의 재물을 소진케 하고 국력을 피폐케 함”과 “미녀를 오나라 왕에게 보내 오나라 왕의 뜻을 현혹함”에 대하여 자세히 서술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전본문
옛날, 월나라 왕 구천이 대부 문종에게 물었다. “내가 오나라를 토벌하고자 하는데 어떻게 해야 이 일을 이룰 수 있겠는가?” 대부 문종이 아뢰었다. “오나라를 토벌하는 데 아홉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월나라 왕이 물었다. “아홉 가지 계책이란 무엇을 말함인가?” 문종이 아뢰었다. “첫째는 하늘과 땅의 뜻을 존중하고 조상신과 여러 신격을 잘 섬기는 것입니다. 둘째는 많은 재물을 마련하여 오나라 왕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셋째는 오나라의 곡식과 건초*의 값을 높게 매겨서 사들여 오나라에는 비축물이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넷째는 미녀를 오나라 왕에게 보내 오나라 왕의 마음을 현혹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오나라 왕에게 솜씨 좋은 장인을 보내 궁실과 높은 누대를 세우게 하여 오나라의 재물을 소진케 하고 국력을 피폐케 하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오나라 왕에게 아첨에 능한 신하를 보내 오나라 왕으로 다른 나라 정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하는 것입니다. 일곱째는 간언하는 신하들을 고립시켜 스스로 자살하게끔 만드는 것입니다. 여덟째는 우리 월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각종 기물을 비축해두는 것입니다. 아홉째는 우리 월나라의 갑옷을 견고하게 하고 병기를 예리하게 해 두어 상대가 폐단을 보이는 때를 틈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아홉 가지이면 근심할 필요가 없으며, 단지 말을 조심해 계책이 새어나가지 않게만 하면 천하를 얻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오나라쯤이겠습니까?” 월나라 왕이 말했다. “좋은 계책이로다!” …… 월나라 왕 구천은 또 미녀 서시와 정단을 치장하여 대부 문종으로 하여금 그녀들을 오왕에게 바치게 하고는 이렇게 아뢰게 했다. “옛날에, 월나라 왕 구천은 하늘이 내려 준 두 미녀 서시와 정단을 사사로이 데리고 있었으나 월나라는 지세가 낮고 몹시 빈궁해 그녀들을 감당할 수 없어 제 수하인 문종으로 하여 재배하고 이들을 대왕께 바칩니다.” 오나라 왕 부천이 몹시 기뻐하자 오자서가 간했다. “아니 됩니다. 왕께서는 받지 마십시오. 신이 듣기로 오색**이 어우러진 것이 사람의 눈을 밝지 못하게 하고, 오음***이 어울린 것이 사람의 귀를 어둡게 한다고 합니다. 하나라 걸왕은 은나라 탕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멸망했고 은나라 주왕은 주나라 문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망했습니다. 대왕께서 그녀들을 받으시면 후에 반드시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듣기로, 월나라 왕 구천은 낮에는 문서를 처리함에 피곤할 줄 모르고 저녁에는 전적을 독서함에 아침이 되어서야 끝마친다고 합니다. 또 과감하게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용사 수만 명을 모았다고 하니 이 사람은 죽지 않는 한 기필코 자신의 염원을 이룰 것입니다. 제가 듣기로, 월나라 왕 구천은 성실하고 어진 정치를 행하며 간언을 듣고 현명한 인재를 등용한다고 하니 이 사람은 죽지 않는 한 기필코 명성을 크게 일구어낼 것입니다. 또한 제가 듣기로, 월나라 왕 구천은 겨울에는 거친 베옷을 입고 여름에는 모피 옷을 걸친다고 하니 이 사람이 죽지 않으면 반드시 우리 오나라에 큰 재앙이 될 것입니다. 저는 또 듣기로, 현명한 인재는 나라의 보물이며 미녀는 나라의 화근이라고 합니다. 하나라 걸왕은 말희 때문에 망했고 은나라 주왕은 달기 때문에 망했으며 주나라 유왕은 포사 때문에 망했습니다.” 그러나 오나라 왕 부차는 듣지 않고 결국에는 그 여인들을 거두었다. 그리고 오자서를 불충하다고 여겨 죽였다. 월나라는 군대를 일으켜 오나라를 토벌해 진여항산에서 오나라 군을 크게 무찔렀다. 구천은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부차를 사로잡은 후 자신과 내통했던 오나라의 간신 태재 비와 그의 처자식을 죽였다.
* 건초 : 소나 말 등의 양식이 되는 마른 풀.
** 오색 : 청・황・적・백・흑의 다섯 빛깔.
*** 오음 : 궁・상・각・치・우의 다섯 음.
토론하기
(1) 인용문을 토대로 나라가 망하게 되는 원인을 유추해보자.
(2) 미모의 여인 탓에 나라가 망했다는 관점에 대하여 토론해보자.
(3) 아름다움은 유죄인가, 아니면 무죄인가?
해설읽기
“경국지색”이라는 말이 있다. 나라를 기울게 하는 미색 또는 그러한 미모를 지닌 여성이라는 뜻이다. 전근대시기 한자권에는 이러한 미인의 계보가 있었다. 중국 최초의 왕국으로 주장되는 하나라 마지막 천자인 걸왕 시절의 말희, 그 다음 왕조인 상나라(후기 명칭은 은)의 마지막 천자인 주왕 시절의 달기, 그 다음 왕조인 주나라 전반부의 마지막 천자인 유왕 시절의 포사가 대표적 예로, 이들 여성은 모두 폭군과 연결시켜 폭정을 유발 내지 심화시킨 당사자로 몰렸다. 또한 이들 천자 때에 왕조가 망했다는 점에서 이들 여성은 망국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경국지색이라는 말이 나오게 저간의 사정이다.
그런데 망국의 결정적 원인을 여성과 미색에서 찾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그렇게 몰아가는 것이 걸렸는지 경국지색 서사에 복수 모티프 같은 서사를 가미하기도 했다. 망국의 주된 요인을 한 여성으로 몰아가기 위해 복수 모티프를 즐겨 활용했다는 것이다. 말희는 하나라 걸왕이 유시국을 정벌하여 복속시키자 유시국 사람들에 의해 걸왕에게 바쳐져 걸왕의 총애를 받았다. 얼마 후 걸왕은 민산국을 정벌하였고 민산국 사람들은 완과 염이라는 두 여성을 걸왕에게 바쳤다. 걸왕은 이 새 여성들을 총애하였고 말희를 멀리하였다. 그러자 이에 앙심을 품은 말희가 신흥 정치세력의 핵심이었던 이윤(훗날의 상나라의 초대 재상)이라는 인물과 내통하여 하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했다. 말희가 자신을 버린 걸왕에 대하여 복수했고 이 때문에 하나라가 멸망하게 됐다는 논리다. 달기는 상나라에 속한 주라고 하는 제후국에서 천자인 주왕에게 바쳐진 여성이다. 당시 주나라는 ‘넘버2’ 급인 제후의 나라에서 ‘넘버1’인 천자의 나라로 발돋움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 이를 간파한 상나라의 천자 주왕은 주나라의 제후인 희백 창을 유폐시키고 그의 장자를 무고하게 죽였다. 이에 희백 창을 도우고 있던 강태공이란 인물은 달기를 ‘주왕 맞춤형’으로 훈련시켜 주왕에게 바쳐 주왕의 폭정을 유도했다. 그런 후 역성혁명을 일으켜 주왕을 무력으로 축출하고 주나라를 제후의 나라에서 천자의 나라로 거듭나게 하는 데 성공했다. 강태공을 마음으로 따랐던 달기가 강태공이 모셨던 주나라 희백 창의 상나라 주왕에 대한 복수 프로젝트를 충실히 수행한 결과 주왕을 멸망에 이르게 했다는 서사이다.
포사 또한 점령당한 나라에서 천자에게 바쳐진 여성이다. 주나라의 전반부 시기, 이를 역사에서는 서주시대라고 부르는데, 이 시기의 마지막 천자인 유왕이 포나라를 정벌하자 포나라에서 바쳐진 여성이 바로 포사이다. 포사는 유왕의 더없는 총애를 받았고 유왕은 포사로 인해 정실인 왕후와 적통인 태자를 폐하고 포사를 왕후로, 포사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을 태자로 세웠다. 이로써 정국은 급속도로 혼란에 빠졌고 결국 쫓겨난 왕후의 아버지 신후가 여러 정치세력 및 외부의 서융이라는 이민족과 결탁하여 유왕을 쳐 유왕이 사망에 이르게 된다. 주나라가 멸망 직전에 이르렀음이다. 다만 신후에 동조하지 않은 제후들이 유왕의 아들을 구출한 후 동쪽으로 도망하여 주나라를 재건함으로써 주나라는 명운을 지속하게 되었다. 이를 역사에서는 동주시대라고 하는데, 왕조가 거의 결딴나기 직전까지 이르렀다가 기사회생했음이다. 오나라 왕 부차에게 바쳐진 서시도 이러한 여성들의 서사와 기본적으로 유사하다. 월나라 왕 구천은 자만에 빠져 있다가 부차에게 처절하게 정벌 당했다. 나라는 망하고 자신도 죽을 지경에 처했다가,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고 미리 손을 써둔 범려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다. 이 과정에서 구천은 짧지 않은 거리를 손발로 기면서 부차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자신을 비롯한 월나라 대신들의 아내와 딸들을 부차와 오나라 대신들에게 바치며 목숨을 구걸했다. 그렇게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구천은 곰쓸개를 빨고 거친 땔나무 위에서 자면서 복수를 벼르고 별렀다. 이때 범려는 서시라는 여성을 ‘부차 맞춤형’으로 훈련시켰고 때를 보아 부차에게 바쳤다. 예상대로 부차는 서시에 흠뻑 빠졌고 서시는 범려의 뜻대로 부차를 오도하여 결국 구천이 복수를 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다.
이들 모두는 복수라는 모티프를 등장시킴으로써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폭군을 비롯한 당사자들이 복수의 원한을 지닌 여성들에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인상을 풍기게 했다. 실제로 여성이 주체적 자각을 통해 복수를 한 사례도 있다. 춘추시대 진나라 헌공이 유목민족인 여융을 정벌하여 군주를 살해하고 그 딸인 여희를 첩으로 삼았다. 그러자 여희는 부친과 조국의 원수를 갚을 생각으로 헌공과 태자 사이를 이간질하여 결국 태자를 자살케 하는 등 진나라의 국정을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여희의 사례와 말희-달기-포사-서시로 이어지는 경국지색의 서사는 분명하게 다르다. 또한 경국지색이라고 지칭되었던 여성들이 이러한 유형의 서사에만 등장했던 것은 아니다. 삼국지연의의 초선이라는 여성이 대표적 예다. 물론 초선은 실존했던 인물은 아니고 소설적으로 가공된 허구의 인물이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초선은 오히려 역적 동탁을 제거하는 데 자발성을 바탕으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 경국지색이 기울어가는 나라를 잠시라도 지탱하는 데 크게 기여한 사례다.
이는 아름다움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음을 시사해준다. 그렇기에 아름다움은 나라의 기욺과 무관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그 자체로 대량 살육과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그것은 핵무기 개발에 크게 활용되었다. 그렇다고 아인슈타인에게 핵무기 개발에 결정적 책임을 씌울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경국지색은 나라 경영의 제일 책임이 있는 군주를 비롯한 남성 지배층이 자신들로 인한 망국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삿된 서사에 불과한 셈이다. 자신들의 합리화를 위해 아름다움을 추하게 활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름다움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다시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전근대시기처럼 남성, 그러니까 주류의 기준에 입각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러한 것으로부터 참되게 자유로운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인지, 그 실질은 또 무엇인지 등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키워드
경국지색, 구천, 부차, 서시, 아름다움
전후맥락
총 19편으로 이루어진 『월절서』의 14편 「구술(九術)」에 수록된 내용으로, ‘구술’은 ‘아홉 가지 계책’이라는 뜻이다. 이 편의 앞부분은 월나라 왕 구천이 오나라 왕 부차에게 복수하기 위해 오나라를 정벌할 수 있는 계책을 대부 문종에게 묻자 문종이 9가지 계책을 아뢰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고, 중간 이후는 9가지 계책 중 “오나라 왕에게 솜씨 좋은 장인을 보내 궁실과 높은 누대를 세우게 하여 오나라의 재물을 소진케 하고 국력을 피폐케 함”과 “미녀를 오나라 왕에게 보내 오나라 왕의 뜻을 현혹함”에 대하여 자세히 서술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전본문
옛날, 월나라 왕 구천이 대부 문종에게 물었다. “내가 오나라를 토벌하고자 하는데 어떻게 해야 이 일을 이룰 수 있겠는가?” 대부 문종이 아뢰었다. “오나라를 토벌하는 데 아홉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월나라 왕이 물었다. “아홉 가지 계책이란 무엇을 말함인가?” 문종이 아뢰었다. “첫째는 하늘과 땅의 뜻을 존중하고 조상신과 여러 신격을 잘 섬기는 것입니다. 둘째는 많은 재물을 마련하여 오나라 왕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셋째는 오나라의 곡식과 건초*의 값을 높게 매겨서 사들여 오나라에는 비축물이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넷째는 미녀를 오나라 왕에게 보내 오나라 왕의 마음을 현혹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오나라 왕에게 솜씨 좋은 장인을 보내 궁실과 높은 누대를 세우게 하여 오나라의 재물을 소진케 하고 국력을 피폐케 하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오나라 왕에게 아첨에 능한 신하를 보내 오나라 왕으로 다른 나라 정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하는 것입니다. 일곱째는 간언하는 신하들을 고립시켜 스스로 자살하게끔 만드는 것입니다. 여덟째는 우리 월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각종 기물을 비축해두는 것입니다. 아홉째는 우리 월나라의 갑옷을 견고하게 하고 병기를 예리하게 해 두어 상대가 폐단을 보이는 때를 틈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아홉 가지이면 근심할 필요가 없으며, 단지 말을 조심해 계책이 새어나가지 않게만 하면 천하를 얻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오나라쯤이겠습니까?” 월나라 왕이 말했다. “좋은 계책이로다!” …… 월나라 왕 구천은 또 미녀 서시와 정단을 치장하여 대부 문종으로 하여금 그녀들을 오왕에게 바치게 하고는 이렇게 아뢰게 했다. “옛날에, 월나라 왕 구천은 하늘이 내려 준 두 미녀 서시와 정단을 사사로이 데리고 있었으나 월나라는 지세가 낮고 몹시 빈궁해 그녀들을 감당할 수 없어 제 수하인 문종으로 하여 재배하고 이들을 대왕께 바칩니다.” 오나라 왕 부천이 몹시 기뻐하자 오자서가 간했다. “아니 됩니다. 왕께서는 받지 마십시오. 신이 듣기로 오색**이 어우러진 것이 사람의 눈을 밝지 못하게 하고, 오음***이 어울린 것이 사람의 귀를 어둡게 한다고 합니다. 하나라 걸왕은 은나라 탕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멸망했고 은나라 주왕은 주나라 문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망했습니다. 대왕께서 그녀들을 받으시면 후에 반드시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듣기로, 월나라 왕 구천은 낮에는 문서를 처리함에 피곤할 줄 모르고 저녁에는 전적을 독서함에 아침이 되어서야 끝마친다고 합니다. 또 과감하게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용사 수만 명을 모았다고 하니 이 사람은 죽지 않는 한 기필코 자신의 염원을 이룰 것입니다. 제가 듣기로, 월나라 왕 구천은 성실하고 어진 정치를 행하며 간언을 듣고 현명한 인재를 등용한다고 하니 이 사람은 죽지 않는 한 기필코 명성을 크게 일구어낼 것입니다. 또한 제가 듣기로, 월나라 왕 구천은 겨울에는 거친 베옷을 입고 여름에는 모피 옷을 걸친다고 하니 이 사람이 죽지 않으면 반드시 우리 오나라에 큰 재앙이 될 것입니다. 저는 또 듣기로, 현명한 인재는 나라의 보물이며 미녀는 나라의 화근이라고 합니다. 하나라 걸왕은 말희 때문에 망했고 은나라 주왕은 달기 때문에 망했으며 주나라 유왕은 포사 때문에 망했습니다.” 그러나 오나라 왕 부차는 듣지 않고 결국에는 그 여인들을 거두었다. 그리고 오자서를 불충하다고 여겨 죽였다. 월나라는 군대를 일으켜 오나라를 토벌해 진여항산에서 오나라 군을 크게 무찔렀다. 구천은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부차를 사로잡은 후 자신과 내통했던 오나라의 간신 태재 비와 그의 처자식을 죽였다.
* 건초 : 소나 말 등의 양식이 되는 마른 풀.
** 오색 : 청・황・적・백・흑의 다섯 빛깔.
*** 오음 : 궁・상・각・치・우의 다섯 음.
토론하기
(1) 인용문을 토대로 나라가 망하게 되는 원인을 유추해보자.
(2) 미모의 여인 탓에 나라가 망했다는 관점에 대하여 토론해보자.
(3) 아름다움은 유죄인가, 아니면 무죄인가?
해설읽기
“경국지색”이라는 말이 있다. 나라를 기울게 하는 미색 또는 그러한 미모를 지닌 여성이라는 뜻이다. 전근대시기 한자권에는 이러한 미인의 계보가 있었다. 중국 최초의 왕국으로 주장되는 하나라 마지막 천자인 걸왕 시절의 말희, 그 다음 왕조인 상나라(후기 명칭은 은)의 마지막 천자인 주왕 시절의 달기, 그 다음 왕조인 주나라 전반부의 마지막 천자인 유왕 시절의 포사가 대표적 예로, 이들 여성은 모두 폭군과 연결시켜 폭정을 유발 내지 심화시킨 당사자로 몰렸다. 또한 이들 천자 때에 왕조가 망했다는 점에서 이들 여성은 망국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경국지색이라는 말이 나오게 저간의 사정이다.
그런데 망국의 결정적 원인을 여성과 미색에서 찾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그렇게 몰아가는 것이 걸렸는지 경국지색 서사에 복수 모티프 같은 서사를 가미하기도 했다. 망국의 주된 요인을 한 여성으로 몰아가기 위해 복수 모티프를 즐겨 활용했다는 것이다. 말희는 하나라 걸왕이 유시국을 정벌하여 복속시키자 유시국 사람들에 의해 걸왕에게 바쳐져 걸왕의 총애를 받았다. 얼마 후 걸왕은 민산국을 정벌하였고 민산국 사람들은 완과 염이라는 두 여성을 걸왕에게 바쳤다. 걸왕은 이 새 여성들을 총애하였고 말희를 멀리하였다. 그러자 이에 앙심을 품은 말희가 신흥 정치세력의 핵심이었던 이윤(훗날의 상나라의 초대 재상)이라는 인물과 내통하여 하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했다. 말희가 자신을 버린 걸왕에 대하여 복수했고 이 때문에 하나라가 멸망하게 됐다는 논리다. 달기는 상나라에 속한 주라고 하는 제후국에서 천자인 주왕에게 바쳐진 여성이다. 당시 주나라는 ‘넘버2’ 급인 제후의 나라에서 ‘넘버1’인 천자의 나라로 발돋움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 이를 간파한 상나라의 천자 주왕은 주나라의 제후인 희백 창을 유폐시키고 그의 장자를 무고하게 죽였다. 이에 희백 창을 도우고 있던 강태공이란 인물은 달기를 ‘주왕 맞춤형’으로 훈련시켜 주왕에게 바쳐 주왕의 폭정을 유도했다. 그런 후 역성혁명을 일으켜 주왕을 무력으로 축출하고 주나라를 제후의 나라에서 천자의 나라로 거듭나게 하는 데 성공했다. 강태공을 마음으로 따랐던 달기가 강태공이 모셨던 주나라 희백 창의 상나라 주왕에 대한 복수 프로젝트를 충실히 수행한 결과 주왕을 멸망에 이르게 했다는 서사이다.
포사 또한 점령당한 나라에서 천자에게 바쳐진 여성이다. 주나라의 전반부 시기, 이를 역사에서는 서주시대라고 부르는데, 이 시기의 마지막 천자인 유왕이 포나라를 정벌하자 포나라에서 바쳐진 여성이 바로 포사이다. 포사는 유왕의 더없는 총애를 받았고 유왕은 포사로 인해 정실인 왕후와 적통인 태자를 폐하고 포사를 왕후로, 포사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을 태자로 세웠다. 이로써 정국은 급속도로 혼란에 빠졌고 결국 쫓겨난 왕후의 아버지 신후가 여러 정치세력 및 외부의 서융이라는 이민족과 결탁하여 유왕을 쳐 유왕이 사망에 이르게 된다. 주나라가 멸망 직전에 이르렀음이다. 다만 신후에 동조하지 않은 제후들이 유왕의 아들을 구출한 후 동쪽으로 도망하여 주나라를 재건함으로써 주나라는 명운을 지속하게 되었다. 이를 역사에서는 동주시대라고 하는데, 왕조가 거의 결딴나기 직전까지 이르렀다가 기사회생했음이다. 오나라 왕 부차에게 바쳐진 서시도 이러한 여성들의 서사와 기본적으로 유사하다. 월나라 왕 구천은 자만에 빠져 있다가 부차에게 처절하게 정벌 당했다. 나라는 망하고 자신도 죽을 지경에 처했다가,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고 미리 손을 써둔 범려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다. 이 과정에서 구천은 짧지 않은 거리를 손발로 기면서 부차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자신을 비롯한 월나라 대신들의 아내와 딸들을 부차와 오나라 대신들에게 바치며 목숨을 구걸했다. 그렇게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구천은 곰쓸개를 빨고 거친 땔나무 위에서 자면서 복수를 벼르고 별렀다. 이때 범려는 서시라는 여성을 ‘부차 맞춤형’으로 훈련시켰고 때를 보아 부차에게 바쳤다. 예상대로 부차는 서시에 흠뻑 빠졌고 서시는 범려의 뜻대로 부차를 오도하여 결국 구천이 복수를 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다.
이들 모두는 복수라는 모티프를 등장시킴으로써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폭군을 비롯한 당사자들이 복수의 원한을 지닌 여성들에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인상을 풍기게 했다. 실제로 여성이 주체적 자각을 통해 복수를 한 사례도 있다. 춘추시대 진나라 헌공이 유목민족인 여융을 정벌하여 군주를 살해하고 그 딸인 여희를 첩으로 삼았다. 그러자 여희는 부친과 조국의 원수를 갚을 생각으로 헌공과 태자 사이를 이간질하여 결국 태자를 자살케 하는 등 진나라의 국정을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여희의 사례와 말희-달기-포사-서시로 이어지는 경국지색의 서사는 분명하게 다르다. 또한 경국지색이라고 지칭되었던 여성들이 이러한 유형의 서사에만 등장했던 것은 아니다. 삼국지연의의 초선이라는 여성이 대표적 예다. 물론 초선은 실존했던 인물은 아니고 소설적으로 가공된 허구의 인물이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초선은 오히려 역적 동탁을 제거하는 데 자발성을 바탕으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 경국지색이 기울어가는 나라를 잠시라도 지탱하는 데 크게 기여한 사례다.
이는 아름다움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음을 시사해준다. 그렇기에 아름다움은 나라의 기욺과 무관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그 자체로 대량 살육과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그것은 핵무기 개발에 크게 활용되었다. 그렇다고 아인슈타인에게 핵무기 개발에 결정적 책임을 씌울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경국지색은 나라 경영의 제일 책임이 있는 군주를 비롯한 남성 지배층이 자신들로 인한 망국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삿된 서사에 불과한 셈이다. 자신들의 합리화를 위해 아름다움을 추하게 활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름다움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다시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전근대시기처럼 남성, 그러니까 주류의 기준에 입각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러한 것으로부터 참되게 자유로운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인지, 그 실질은 또 무엇인지 등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키워드
경국지색, 구천, 부차, 서시,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