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굴원가생열전」은 전국시대 말엽 초나라의 굴원(屈原)과 한대 초엽의 가의(賈誼)에 대한 기록이다. 사마천이 서로 다른 시대 인물을 한 데 묶어 열전을 쓴 까닭은 이 둘은 모두 회재불우, 그러니까 출중한 역량과 도덕성을 지녔음에도 세상으로부터 쓰이지 못해 불우한 삶을 보낸 지식인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굴원은 초나라의 명문귀족 집안의 후예라는 힘 있는 배경을 지녔음에도 그의 탁월한 역량과 올곧은 성품을 시샘한 이들로부터 결국 무고를 당해 두 차례에 걸쳐 축출된다. 인용문은 두 번째 축출된 후 격한 울분을 주체치 못해 초나라의 남쪽 지역을 방황하다가 결국 극단적 선택으로 불의한 세상에 항거하고자 했던 굴원에 대한 서술이다. 인용문 앞부분에는 굴원의 태생과 축출되기 전까지의 관직 생활에 대해 서술되어 있고, 인용문 뒷부분은 또 다른 회재불우형 지식인의 대명사였던 가의에 대하여 서술되어 있다.
고전본문
진나라 소왕은 초나라와 혼인관계를 맺고자 초나라 회왕과 회합을 추진하였다. 회왕이 직접 가려고 하자 굴원이 말했다.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와 같은 나라이므로 믿으시면 안 됩니다. 가시지 않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러나 회왕의 작은 아들인 자란은 회왕에게 갈 것을 권하며 말했다. “어찌 진나라의 호의를 거절하십니까?” 결국 회왕은 진나라로 갔다. 회왕이 진나라의 무관 땅으로 들어서자 진나라의 복병들이 그 뒤를 끊고서는 회왕을 억류한 채 초나라 땅을 할양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회왕은 분노하여 허락하지 않았다. 회왕이 조나라로 도망하려 했으나 조나라에서 받아주지를 않아 다시 진나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곳에서 죽은 다음에야 돌려보내져 장사를 치렀다.
이에 회왕의 큰아들 경양왕이 즉위하였고 그의 아우 자란이 재상인 영윤이 되었다. 초나라 사람들은 자란이 회왕에게 권유하여 진나라로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게 된 것을 질책하였다. …… 회왕은 군대는 군대대로 패배하고 영토도 빼앗겨 여섯 군을 잃었으며 그 자신은 진나라에서 객사하여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것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여 입게 된 재앙이었다. [역경]은 말한다. “우물물이 맑아도 사람들이 마시지 않는다. 나의 마음이 슬픈 까닭은 이 우물물은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왕이 명철하다면 또한 그 은택을 받게 되리라.” 왕이 명철하지 못하니 어찌 은택을 입을 수 있겠는가? 영윤 자란은 굴원의 이러한 태도를 듣고는 격노하여 결국에는 상관대부를 시켜 경양왕에게 굴원의 잘못을 말하게 하였다. 경양왕은 격노하여 굴원을 멀리 내쫓았다.
굴원은 강가에 이르렀다. 머리를 풀어 헤치고 물가를 거닐면서 노래를 읊조렸다. 안색은 초췌하였고 모습은 야위었다. 한 어부가 그를 보고 말했다.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니십니까? 무슨 까닭에 여기까지 이르렀습니까?” 굴원이 답했다. “온 세상이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들이 취해 있는데 나 홀로 깨어 있다 보니 이리 내쫓기게 되었소이다.” 어부가 다시 말했다. “무릇 성인이란 외물에 구애되지 않고 너끈히 세속의 변화와 함께할 수 있습니다. 온 세상이 혼탁하다면 왜 그 흐름을 좇아 그 물결을 타지 않으십니까? 세상 모든 사람이 취해 있다면 왜 그 술지게미를 먹거나 그 거르고 남은 술을 마시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고결한 품덕과 재능만을 움켜쥔 채로 추방을 자초하셨습니까?” 굴원이 대답하였다. “내가 듣기로, 새로 머리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을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 중 그 누가 자신의 결백하고 깨끗한 몸에 더럽고 더러운 오물을 묻히려 하겠습니까? 차라리 흐르는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의 뱃속에 장사를 지낼지라도 또 어찌 희디흰 결백함으로써 세속의 더러운 먼지를 뒤집어쓰겠습니까?” 그러고 나서 「회사」라는 부를 지었다.
쨍쨍 찌는 여름이여, 초목이 무성하다.
상심 속 애달파 하며, 어지러이 남쪽 땅으로 간다.
바라보니 한없이 막막하고, 온통 그윽하고 크나큰 고요뿐.
원망은 가슴에 올올이 맺히고, 비통한 곤경에 빠졌다.
마음을 어루만지며, 고개 숙여 옛일을 되뇌인다.
……
많은 것을 지고 있고 담고 있지만, 함정에 몰아넣으니 헤어날 수 없다.
아름다운 옥 같은 재주 품었지만, 나를 내보일 사람 하나도 없다.
성 안의 개들 무리지어 짖어대나니, 괴이한 것만 보면 짖는다.
빼어난 이를 비방하고 의심함은, 본디 졸렬한 자의 추태이다.
재능과 문채를 안으로 감추니, 사람들은 나의 비범함을 모르고,
재목이 쌓여 있어도, 나의 지닌 바를 알아주는 이 하나 없다.
……
시름을 머금고 슬픔을 안은 채, 이제 죽음에 임하노라.
콸콸 흐르는 원수, 상수여! 두 갈래로 빠르게 흘러가는구나.
먼 여로는 잡초로 뒤덮여, 아득하게 뻗어 있다.
일찍이 머금게 된 비애여, 길고 길게 탄식한다.
세상에 나를 알아줄 이 없으니, 사람들의 마음을 언급할 필요조차 없으리.
충직한 성정과 빼어난 자질을 지녔어도, 세상에 짝할 이 없구나.
백락*이 세상을 떠났으니, 천리마를 누가 알아주겠는가?
사람이 태어날 때 받은 운명은, 제각기 정해져 있다.
마음을 정하고 뜻을 넓히면, 나머지야 두려울 것 무어 있겠는가?
상심과 애통함에, 길고 길게 탄식한다.
세상이 혼탁하여 나를 알아주지 않으니, 사람들의 마음을 언급할 필요조차 없으리.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아나니, 바라건대 미련 두지 않으리.
군자들에게 내 분명 고하노니, 나는 장차 표상이 되리라.
그리하여 바위를 품고 마침내 멱라수에 빠져 죽었다.
[출전] 『사기』, 「굴원가생열전」
* 백락 : 본명은 손양(孙阳)으로 춘추시대 조나라 사람이다. 말의 역량을 잘 감별하여 전 중원에 이름이 높았다.
토론하기
(1) 죽음을 선택한 굴원에 대하여 평가해보자.
(2) 자신의 진실을, 결백을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았던 경험이 있었는가? 그때 어떠한 감정이 들었으며 또 어떻게 행동했는가?
(3) 절망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취할 수 있는 길로 무엇이 있을까?
해설읽기
무엇이 굴원을 죽음에 이르게 했을까? 「굴원가생열전」의 서술 내용을 보면 올곧고 참되게 살았음에도, 또 빼어난 공적을 세우며 살았음에도 주변으로부터 끊임없이 시샘 받고 비방당하며 임금마저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아 오히려 내쫓김을 당한 현실로 인한 억울함이, 삭히려 해도 삭혀지지 않는 분노와 울분이 굴원을 결국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굴원과 같은 처지라고 하여 모두가 굴원과 같은 선택을 한 것은 아니다. 굴원보다 덜 억울해서가 아니다. 굴원보다 못났기 때문도 아니었다. 공자가 나라에 도가 통하면 출사하고 도가 통하지 않으면 출사하지 않고 민간에 묻혀 산다고 한 것처럼 어떤 이는 경세(經世)의 지향을 접고 장삼이사와 같은 삶을 선택했고, 또 어떤 이는 오염된 속세를 떠나 자연과 벗하며 살았다. 다른 이들은 조선 태종 이방원의 「하여가」처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며 시류에 편승하며 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대시인 이백처럼 자신을 수용하지 못하는 세상을 자유분방한 낭만과 약간의 기행과 광기 등으로 조롱하고 초극하는 살기도 했다. 굴원의 사례가 오히려 특이했기 때문에 사마천이 역사라는 이름 아래 기록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마천은 굴원의 삶과 선택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적어도 다음 두 가지는 확실하게 말하고자 했던 듯하다. 하나는 굴원의 선택에 동의할 수 있는가라는 회의이다. 이는 「굴원가생열전」에 삽입되어 있는 굴원과 한 어부의 대화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 대화는 굴원의 작품으로 알려진 「어부사(漁父辭)」라는 작품의 일부이다. 여기서 어부는 굴원에게 옛 성인들도 시류를 따라 살았다면서 성인도 아닌 당신은 어째서 혼자 고고하게 살려고만 드는가 하며 굴원을 비판하였다. 이에 굴원은 고결하게 가꿔온 삶에 오물을 묻히느니 차라리 물고기의 밥이 되는 것이 낫겠다며 자신의 결심을 굽히지 않는다. 그런데 「굴원가생열전」에 인용되지 않은 「어부사」의 끝부분을 보면 그러한 굴원의 말을 듣고 나서 빙그레 웃고는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하며 떠나는 어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어부가 한 노랫말은 이러했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으면 되고, 창랑의 물이 탁하면 내 발을 씻으면 되리라!” 어부가 이렇게 노래하며 떠나가는 바람에 굴원은 더는 얘기를 못 붙였다는 말로 「어부사」가 끝난다. 일종의 아쉬움의 묻어나는 결말인 셈이다. 「어부사」를 지은 굴원조차 자신의 선택에 대해 완전히 승복하지 못했음이 암시되는 대목이다. 사마천이 이러한 내용과 뉘앙스의 「어부사」를 인용했음은 그가 어부의 관점에 동의해서였을 가능성이 높다. 「어부사」 속 어부는 사마천의 아바타였을 수 있다는 얘기다.
다른 하나는 정반대의 경우이다. 그러니까 사마천이 굴원에게 자신을 투영했을 가능성이다. 사마천은 흉노 정벌에 나서 최선을 다해 싸웠으나 역부족이어서 결국 흉노에 투항했던 선봉장 이릉을 옹호하다가 사형을 언도받아 투옥되었고, 처형을 앞두었을 때 『사기』를 완성하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완수하지 못한 점이 한스러워 결국 고환을 제거하는 궁형을 자처하여 목숨을 부지한 경력이 있었다. 사마천도 굴원처럼 옳음을 실천하다가 크나큰 억울함을 당했음이다. “만 권의 독서, 만 리의 답사”가 『사기』를 있게 했다는 평가처럼 사마천은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공부했고 관직에 오른 후에도 성실하고 바르게 공무를 수행했다. 이릉을 옹호한 것도 사마천이 보기에 이릉은 주어진 여건 속에서 목숨을 바쳐 최선을 다한 후에 선택한 항복이었기에 그의 항복을 용서해줄 이유가 충분했다. 그럼에도 당시 조정의 신하들은 이릉에 대한 미움으로 사마천의 합리적인 판단을 매도하였고 황제였던 무제 또한 격노하여 사마천에게 치욕스런 형벌을 내렸다. 궁형은 당시로서는 너무나도 치욕적인 형벌이었기에 그 고통스런 치욕에서 벗어나고자 자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마천도 그러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사기』 를 완성해야 한다는 방기할 수 없는 과업이 있었다. 그는 살아가면서 매순간 마주하였을 치욕을 『사기』 를 써가면서 극복했을 것이다. 만약 『사기』 를 완성해야 하는 것 같은 사명이 없었다면 사마천은 어떠한 선택을 했을까? 사정이 이러하니 굴원은 또 다른 사마천일 수 있었다.
사마천과 다른 점이 있다면 굴원에게는 [사기]를 완성해야 하는 것 같은 사명이 없었다는 점이다. 굴원도 가시지 않는 분노와 울분을 잊고자 「이소(離騷)」를 비롯하여 주옥같은 시가를 써냈다. 「굴원가생열전」에 실려 있는 「어부사」도 지었고 「회사부」도 지었다. 그러나 문학이 결국은 그의 격한 분노와 짙은 울분을 달래지 못했다. 결국 그에게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절망에서 벗어날 길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키워드
굴원, 분노, 울분, 절망, 회재불우
전후맥락
「굴원가생열전」은 전국시대 말엽 초나라의 굴원(屈原)과 한대 초엽의 가의(賈誼)에 대한 기록이다. 사마천이 서로 다른 시대 인물을 한 데 묶어 열전을 쓴 까닭은 이 둘은 모두 회재불우, 그러니까 출중한 역량과 도덕성을 지녔음에도 세상으로부터 쓰이지 못해 불우한 삶을 보낸 지식인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굴원은 초나라의 명문귀족 집안의 후예라는 힘 있는 배경을 지녔음에도 그의 탁월한 역량과 올곧은 성품을 시샘한 이들로부터 결국 무고를 당해 두 차례에 걸쳐 축출된다. 인용문은 두 번째 축출된 후 격한 울분을 주체치 못해 초나라의 남쪽 지역을 방황하다가 결국 극단적 선택으로 불의한 세상에 항거하고자 했던 굴원에 대한 서술이다. 인용문 앞부분에는 굴원의 태생과 축출되기 전까지의 관직 생활에 대해 서술되어 있고, 인용문 뒷부분은 또 다른 회재불우형 지식인의 대명사였던 가의에 대하여 서술되어 있다.
고전본문
진나라 소왕은 초나라와 혼인관계를 맺고자 초나라 회왕과 회합을 추진하였다. 회왕이 직접 가려고 하자 굴원이 말했다.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와 같은 나라이므로 믿으시면 안 됩니다. 가시지 않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러나 회왕의 작은 아들인 자란은 회왕에게 갈 것을 권하며 말했다. “어찌 진나라의 호의를 거절하십니까?” 결국 회왕은 진나라로 갔다. 회왕이 진나라의 무관 땅으로 들어서자 진나라의 복병들이 그 뒤를 끊고서는 회왕을 억류한 채 초나라 땅을 할양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회왕은 분노하여 허락하지 않았다. 회왕이 조나라로 도망하려 했으나 조나라에서 받아주지를 않아 다시 진나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곳에서 죽은 다음에야 돌려보내져 장사를 치렀다.
이에 회왕의 큰아들 경양왕이 즉위하였고 그의 아우 자란이 재상인 영윤이 되었다. 초나라 사람들은 자란이 회왕에게 권유하여 진나라로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게 된 것을 질책하였다. …… 회왕은 군대는 군대대로 패배하고 영토도 빼앗겨 여섯 군을 잃었으며 그 자신은 진나라에서 객사하여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것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여 입게 된 재앙이었다. [역경]은 말한다. “우물물이 맑아도 사람들이 마시지 않는다. 나의 마음이 슬픈 까닭은 이 우물물은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왕이 명철하다면 또한 그 은택을 받게 되리라.” 왕이 명철하지 못하니 어찌 은택을 입을 수 있겠는가? 영윤 자란은 굴원의 이러한 태도를 듣고는 격노하여 결국에는 상관대부를 시켜 경양왕에게 굴원의 잘못을 말하게 하였다. 경양왕은 격노하여 굴원을 멀리 내쫓았다.
굴원은 강가에 이르렀다. 머리를 풀어 헤치고 물가를 거닐면서 노래를 읊조렸다. 안색은 초췌하였고 모습은 야위었다. 한 어부가 그를 보고 말했다.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니십니까? 무슨 까닭에 여기까지 이르렀습니까?” 굴원이 답했다. “온 세상이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들이 취해 있는데 나 홀로 깨어 있다 보니 이리 내쫓기게 되었소이다.” 어부가 다시 말했다. “무릇 성인이란 외물에 구애되지 않고 너끈히 세속의 변화와 함께할 수 있습니다. 온 세상이 혼탁하다면 왜 그 흐름을 좇아 그 물결을 타지 않으십니까? 세상 모든 사람이 취해 있다면 왜 그 술지게미를 먹거나 그 거르고 남은 술을 마시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고결한 품덕과 재능만을 움켜쥔 채로 추방을 자초하셨습니까?” 굴원이 대답하였다. “내가 듣기로, 새로 머리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을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 중 그 누가 자신의 결백하고 깨끗한 몸에 더럽고 더러운 오물을 묻히려 하겠습니까? 차라리 흐르는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의 뱃속에 장사를 지낼지라도 또 어찌 희디흰 결백함으로써 세속의 더러운 먼지를 뒤집어쓰겠습니까?” 그러고 나서 「회사」라는 부를 지었다.
쨍쨍 찌는 여름이여, 초목이 무성하다.
상심 속 애달파 하며, 어지러이 남쪽 땅으로 간다.
바라보니 한없이 막막하고, 온통 그윽하고 크나큰 고요뿐.
원망은 가슴에 올올이 맺히고, 비통한 곤경에 빠졌다.
마음을 어루만지며, 고개 숙여 옛일을 되뇌인다.
……
많은 것을 지고 있고 담고 있지만, 함정에 몰아넣으니 헤어날 수 없다.
아름다운 옥 같은 재주 품었지만, 나를 내보일 사람 하나도 없다.
성 안의 개들 무리지어 짖어대나니, 괴이한 것만 보면 짖는다.
빼어난 이를 비방하고 의심함은, 본디 졸렬한 자의 추태이다.
재능과 문채를 안으로 감추니, 사람들은 나의 비범함을 모르고,
재목이 쌓여 있어도, 나의 지닌 바를 알아주는 이 하나 없다.
……
시름을 머금고 슬픔을 안은 채, 이제 죽음에 임하노라.
콸콸 흐르는 원수, 상수여! 두 갈래로 빠르게 흘러가는구나.
먼 여로는 잡초로 뒤덮여, 아득하게 뻗어 있다.
일찍이 머금게 된 비애여, 길고 길게 탄식한다.
세상에 나를 알아줄 이 없으니, 사람들의 마음을 언급할 필요조차 없으리.
충직한 성정과 빼어난 자질을 지녔어도, 세상에 짝할 이 없구나.
백락*이 세상을 떠났으니, 천리마를 누가 알아주겠는가?
사람이 태어날 때 받은 운명은, 제각기 정해져 있다.
마음을 정하고 뜻을 넓히면, 나머지야 두려울 것 무어 있겠는가?
상심과 애통함에, 길고 길게 탄식한다.
세상이 혼탁하여 나를 알아주지 않으니, 사람들의 마음을 언급할 필요조차 없으리.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아나니, 바라건대 미련 두지 않으리.
군자들에게 내 분명 고하노니, 나는 장차 표상이 되리라.
그리하여 바위를 품고 마침내 멱라수에 빠져 죽었다.
[출전] 『사기』, 「굴원가생열전」
* 백락 : 본명은 손양(孙阳)으로 춘추시대 조나라 사람이다. 말의 역량을 잘 감별하여 전 중원에 이름이 높았다.
토론하기
(1) 죽음을 선택한 굴원에 대하여 평가해보자.
(2) 자신의 진실을, 결백을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았던 경험이 있었는가? 그때 어떠한 감정이 들었으며 또 어떻게 행동했는가?
(3) 절망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취할 수 있는 길로 무엇이 있을까?
해설읽기
무엇이 굴원을 죽음에 이르게 했을까? 「굴원가생열전」의 서술 내용을 보면 올곧고 참되게 살았음에도, 또 빼어난 공적을 세우며 살았음에도 주변으로부터 끊임없이 시샘 받고 비방당하며 임금마저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아 오히려 내쫓김을 당한 현실로 인한 억울함이, 삭히려 해도 삭혀지지 않는 분노와 울분이 굴원을 결국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굴원과 같은 처지라고 하여 모두가 굴원과 같은 선택을 한 것은 아니다. 굴원보다 덜 억울해서가 아니다. 굴원보다 못났기 때문도 아니었다. 공자가 나라에 도가 통하면 출사하고 도가 통하지 않으면 출사하지 않고 민간에 묻혀 산다고 한 것처럼 어떤 이는 경세(經世)의 지향을 접고 장삼이사와 같은 삶을 선택했고, 또 어떤 이는 오염된 속세를 떠나 자연과 벗하며 살았다. 다른 이들은 조선 태종 이방원의 「하여가」처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며 시류에 편승하며 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대시인 이백처럼 자신을 수용하지 못하는 세상을 자유분방한 낭만과 약간의 기행과 광기 등으로 조롱하고 초극하는 살기도 했다. 굴원의 사례가 오히려 특이했기 때문에 사마천이 역사라는 이름 아래 기록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마천은 굴원의 삶과 선택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적어도 다음 두 가지는 확실하게 말하고자 했던 듯하다. 하나는 굴원의 선택에 동의할 수 있는가라는 회의이다. 이는 「굴원가생열전」에 삽입되어 있는 굴원과 한 어부의 대화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 대화는 굴원의 작품으로 알려진 「어부사(漁父辭)」라는 작품의 일부이다. 여기서 어부는 굴원에게 옛 성인들도 시류를 따라 살았다면서 성인도 아닌 당신은 어째서 혼자 고고하게 살려고만 드는가 하며 굴원을 비판하였다. 이에 굴원은 고결하게 가꿔온 삶에 오물을 묻히느니 차라리 물고기의 밥이 되는 것이 낫겠다며 자신의 결심을 굽히지 않는다. 그런데 「굴원가생열전」에 인용되지 않은 「어부사」의 끝부분을 보면 그러한 굴원의 말을 듣고 나서 빙그레 웃고는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하며 떠나는 어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어부가 한 노랫말은 이러했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으면 되고, 창랑의 물이 탁하면 내 발을 씻으면 되리라!” 어부가 이렇게 노래하며 떠나가는 바람에 굴원은 더는 얘기를 못 붙였다는 말로 「어부사」가 끝난다. 일종의 아쉬움의 묻어나는 결말인 셈이다. 「어부사」를 지은 굴원조차 자신의 선택에 대해 완전히 승복하지 못했음이 암시되는 대목이다. 사마천이 이러한 내용과 뉘앙스의 「어부사」를 인용했음은 그가 어부의 관점에 동의해서였을 가능성이 높다. 「어부사」 속 어부는 사마천의 아바타였을 수 있다는 얘기다.
다른 하나는 정반대의 경우이다. 그러니까 사마천이 굴원에게 자신을 투영했을 가능성이다. 사마천은 흉노 정벌에 나서 최선을 다해 싸웠으나 역부족이어서 결국 흉노에 투항했던 선봉장 이릉을 옹호하다가 사형을 언도받아 투옥되었고, 처형을 앞두었을 때 『사기』를 완성하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완수하지 못한 점이 한스러워 결국 고환을 제거하는 궁형을 자처하여 목숨을 부지한 경력이 있었다. 사마천도 굴원처럼 옳음을 실천하다가 크나큰 억울함을 당했음이다. “만 권의 독서, 만 리의 답사”가 『사기』를 있게 했다는 평가처럼 사마천은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공부했고 관직에 오른 후에도 성실하고 바르게 공무를 수행했다. 이릉을 옹호한 것도 사마천이 보기에 이릉은 주어진 여건 속에서 목숨을 바쳐 최선을 다한 후에 선택한 항복이었기에 그의 항복을 용서해줄 이유가 충분했다. 그럼에도 당시 조정의 신하들은 이릉에 대한 미움으로 사마천의 합리적인 판단을 매도하였고 황제였던 무제 또한 격노하여 사마천에게 치욕스런 형벌을 내렸다. 궁형은 당시로서는 너무나도 치욕적인 형벌이었기에 그 고통스런 치욕에서 벗어나고자 자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마천도 그러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사기』 를 완성해야 한다는 방기할 수 없는 과업이 있었다. 그는 살아가면서 매순간 마주하였을 치욕을 『사기』 를 써가면서 극복했을 것이다. 만약 『사기』 를 완성해야 하는 것 같은 사명이 없었다면 사마천은 어떠한 선택을 했을까? 사정이 이러하니 굴원은 또 다른 사마천일 수 있었다.
사마천과 다른 점이 있다면 굴원에게는 [사기]를 완성해야 하는 것 같은 사명이 없었다는 점이다. 굴원도 가시지 않는 분노와 울분을 잊고자 「이소(離騷)」를 비롯하여 주옥같은 시가를 써냈다. 「굴원가생열전」에 실려 있는 「어부사」도 지었고 「회사부」도 지었다. 그러나 문학이 결국은 그의 격한 분노와 짙은 울분을 달래지 못했다. 결국 그에게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절망에서 벗어날 길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키워드
굴원, 분노, 울분, 절망, 회재불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