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때는 한겨울. 작품의 화자 ‘나’는 북방에서 동남쪽으로 여행을 하던 도중에 일부러 길을 돌아 고향을 방문했다가 근처의 S시에 도착했다. ‘나’는 과거 이곳의 학교에서 1년간 교사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원래 크지 않은 시내를 돌아다녀도 옛 동료들은 만날 수 없고, 학교의 모습도 많이 달라져서 “두 시간도 되지 않아 흥취는 진작에 사라지고 이곳에 괜히 왔다고 후회”한다. ‘나’는 나그네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예전에 자주 찾았던 작은 술집에 들러 혼자 술을 마시다가 뜻밖에도 옛 동창이자 교사 시절 동료였던 뤼웨이푸와 조우한다.
고전본문
“자네가 가르치는 것이 ‘공자 가라사대, 『시경』1)에 이르기를’ 이런 건가?” 나는 기이하게 생각되어 이렇게 물었다.
“물론이지. 자네는 내가 가르치는 것이 ABCD인 줄 알았나? 내게는 먼저 두 명의 학생이 있는데, 한 명은 『시경』을 읽고, 다른 한 명은 『맹자』를 읽고 있네. 최근에 또 한 명이 늘었는데 여자애라서 『여아경』2)을 읽고 있어. 산수조차 가르치지 않는데, 내가 가르치지 않는 게 아니라 그들이 배우려고 하지 않아.”
“자네가 이런 책들을 가르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네…….”
“그 애들 아버지가 이런 책들을 읽히고 싶어 하는데, 제삼자인 내가 별수 있나. 이렇게 시시한 일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아무렇게나 하면 그만이지…….”
그는 온 얼굴이 이미 새빨개져서 많이 취한 것 같았으나, 눈빛만큼은 또 점점 기가 죽었다.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계단에서 한바탕 떠들썩한 소리가 나더니 손님 몇몇이 올라왔다. 제일 먼저 올라온 사람은 키가 작고 퉁퉁한 둥근 얼굴이며, 두 번째 사람은 키가 크고 얼굴에 붉은 코가 도드라져 보였다. 그 뒤로도 사람들이 연달아 올라오는 바람에 이 작은 건물이 흔들릴 정도였다. 내가 눈을 돌려 뤼웨이푸를 보니 그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종업원을 불러 계산서를 달라고 했다.
“자네는 그걸로 생활이 유지되는가?” 나는 일어날 채비를 하면서 물었다.
“그렇다네. 허나 매달 20원으로는 그럭저럭 버티기가 빠듯하지.”
“그럼 자네는 앞으로 어쩔 셈인가?”
“앞으로? 나도 모르겠네. 그때 우리가 예상했던 일이 하나라도 뜻대로 된 것이 있던가? 나는 지금 아무것도 모르겠네, 내일이 어떻게 될지, 심지어 일 분 후의 일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네…….”
종업원이 계산서를 가져와서 내게 내밀었다. 뤼웨이푸도 처음 들어섰을 때의 겸손은 사라지고 단지 나를 한번 흘끗 보더니 담배만 피울 뿐 내가 계산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우리는 같이 술집을 나섰다. 그가 묵고 있는 여관은 나와 방향이 정반대여서 문 앞에서 헤어졌다. 나는 혼자 여관을 향해 걸어갔다. 차가운 바람과 눈이 얼굴로 들이치는데 오히려 상쾌하게 느껴졌다. 날은 이미 저물었고, 집과 거리는 온통 촘촘하지만 일정하지 않은 순백색의 눈 그물 속에 걸려있었다.
루쉰, 「술집에서(在酒樓上)」 중에서
1) 『시경(詩經)』: 주나라 초부터 춘추시대까지 민간에 구전되던 가요 3천여 편 가운데 공자가 300여 편을 추려 만든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이다. 풍(風: 주로 남녀 간의 정과 이별을 노래한 중원 각국의 민요)·아(雅: 궁중의 공식 연회에서 쓰이던 의전 음악)·송(頌: 종묘의 제사에 쓰이던 제례 음악)의 세 부문으로 구성된다. 유가에서 중요하게 꼽히는 다섯 가지 경서 가운데 하나로, 공자가 만년에 제자를 가르칠 때 시경을 으뜸으로 삼았다고 한다.
2) 『여아경(女兒經)』: 전통시기 중국 여성들에게 여자로서 지녀야 할 봉건적 덕목을 가르치던 교재. 명나라 때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며, 작자 미상으로 여러 판본이 전해진다.
토론하기
(1) 뤼웨이푸가 S시에 돌아온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시시한 일’이라 치부하며 애써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2) 1919년 우리나라의 3·1운동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중국의 5·4 운동과 5·4 신문화운동에 대해 조사해보자. 당시의 시대적 배경 속에 지식인으로서의 사명은 무엇이었을까?
(3) 거듭된 좌절과 실패로 자기비하에 빠지며 더 이상 도전하기를 포기한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해설읽기
‘나’는 S시의 단골 술집에서 헤어진 지 10년도 더 된 옛 동창이자 교사 시절 동료 뤼웨이푸(呂緯甫)와 조우한다. 뤼웨이푸는 과거 ‘나’와 함께 성황묘에 가서 신상(神像)의 수염을 잡아 뽑고, 연일 중국의 개혁 방법에 대해 토론하다가 싸움까지 벌였던 친구였다. ‘나’와 뤼웨이푸는 소위 봉건 질서의 타파를 부르짖으며, 새 시대의 도래를 위해 행동했던 열혈 진보 지식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한눈에 보기에도 “행동이 유달리 느려진 것이 옛날의 날쌔고 용맹한 뤼웨이푸가 아니었다.” 그는 타이위안(太原: 산시성山西省의 성도省都)에 산 지 2년이 넘었는데, 그곳에서 『시경』, 『맹자』, 『여아경』과 같은 유교 경전을 가르치며 근근이 입에 풀칠하며 살고 있었다. 신학문을 배운 현대적인 지식인인 그가 산수나 ABCD도 아닌, 유교 경전을 가르친다는 사실은 매우 뜻밖이면서도 씁쓸한 일이다.
그는 이번에 ‘시시한 일’ 때문에 잠시 돌아왔는데, 그 ‘시시한 일’이란 세 살 때 죽은 동생의 무덤을 이장하는 것이다. 동생의 무덤 주위로 물이 스며들어 곧 잠길지도 모르니 빨리 조처를 하라는 사촌 형의 전갈을 받고 설 연휴를 이용해 돌아왔으나, 막상 묘를 팠더니 어린 동생은 이불이며 옷, 뼈, 심지어 머리카락조차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더 이상 이장은 의미가 없었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기 위해 시체가 놓여있던 자리의 흙을 솜에 싸서 이불에 감싼 뒤 새 관에 넣어 아버지 무덤 곁에 묻어주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덤덤하게 들려주던 그는 문득 ‘나’의 시선을 의식하며, “나는 지금 이 모양으로 얼렁뚱땅 대충대충 살아가고 있네”라고 말한다. ‘나’는 아무런 내색을 비추지 않았건만, 과거의 자신이라면 하지 않았을 일임을 스스로 의식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어서 자신이 이곳에 와서 한 또 다른 ‘시시한 일’을 들려준다. 어머니가 고향에 가는 김에 이웃집 뱃사공의 딸 아순(阿順)에게 그녀가 갖고 싶어 했던 벨벳 꽃 머리 장식을 사다 주라고 한 것이다. 그는 온 타이위안 시내를 다녀도 구하지 못하고 지난(濟南: 산둥성山東省의 성도)까지 가서야 어렵사리 구해왔지만, 그녀는 이미 마음의 병을 얻어 죽은 후였다. 원래 폐병을 얻은 상태에서 어느 날 툭하면 돈을 빌리러 오는 큰아버지에게 돈을 내어주지 않자, 그가 “네 신랑감은 나보다 못할 것”이라고 내뱉은 악담에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께는 아순이 보고 너무 좋아하더라고 말씀드리면 된다며, “이런 시시한 일이 뭐라고? 대충대충 얼버무리면 되는 거야”라고 말한다.
그는 이런 ‘시시한 일’들 때문에 돌아온 자신을 “무언가에 놀라서 바로 날아가더니 작은 원을 한 바퀴 그리고는 다시 돌아와 같은 곳에 앉는” 벌이나 파리에 비유한다. 게다가 그가 말끝마다 내뱉는 “이런 시시한 일이 뭐 대수라고”, “얼렁뚱땅 대충대충”, “아무렇게나 하면 그만”이라는 자조 섞인 말 속에는 끝없는 자기비하와 자기혐오가 숨어 있다. “자넨 모를 거야, 내가 예전보다 더 사람들 찾아다니길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말일세. 나는 이미 자신이 혐오스러움을 잘 알고 있다네. 자신조차 혐오스러워하는데, 일부러 찾아가서 남을 암암리에 불쾌하게 해서야 되겠나?”
용맹했던 열혈청년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다지도 심한 자기혐오에 빠진 것일까? 답을 찾기 위해서는 텍스트 밖으로 나와 루쉰의 일생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무창기의로 촉발된 신해혁명은 이천 년이 넘는 황제지배체제를 전복시키고 아시아 최초로 공화정을 수립했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던 많은 ‘혁명가’들이 새 시대의 도래를 위해 피를 흘렸지만, 그 열매는 봉건 군벌과 변신에 능한 기회주의자들이 앗아갔고, 아Q와 같은 기층 민중은 ‘혁명’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작가 루쉰도 문학과 교육을 통한 국민정신의 개조라는 나름의 방식으로 혁명에 투신했으나, 거듭된 좌절을 맛보며 혁명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5·4 신문화운동의 열기 속에 단편소설들을 발표하며 잠시 사회 변혁의 희망을 꿈꾸었으나, 그가 첫 번째 소설을 발표했던 잡지이자 신문화운동의 본진이었던 《신청년(新靑年)》 동인은 이념으로 분열하고, 5·4 신문화운동의 열기도 점차 사그라들고 만다. ‘나’와 뤼웨이푸의 모습에는 5·4 신문화운동의 퇴조기 이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당시 지식인들의 고민, 무력감, 절망, 고통 등이 투영되어 있다. 하지만 작품의 말미에서 ‘나’가 묵는 숙소는 뤼웨이푸와 정반대 방향으로, ‘나’는 그와 다른 길을 걸을 것을 암시한다.
전후맥락
때는 한겨울. 작품의 화자 ‘나’는 북방에서 동남쪽으로 여행을 하던 도중에 일부러 길을 돌아 고향을 방문했다가 근처의 S시에 도착했다. ‘나’는 과거 이곳의 학교에서 1년간 교사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원래 크지 않은 시내를 돌아다녀도 옛 동료들은 만날 수 없고, 학교의 모습도 많이 달라져서 “두 시간도 되지 않아 흥취는 진작에 사라지고 이곳에 괜히 왔다고 후회”한다. ‘나’는 나그네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예전에 자주 찾았던 작은 술집에 들러 혼자 술을 마시다가 뜻밖에도 옛 동창이자 교사 시절 동료였던 뤼웨이푸와 조우한다.
고전본문
“자네가 가르치는 것이 ‘공자 가라사대, 『시경』1)에 이르기를’ 이런 건가?” 나는 기이하게 생각되어 이렇게 물었다.
“물론이지. 자네는 내가 가르치는 것이 ABCD인 줄 알았나? 내게는 먼저 두 명의 학생이 있는데, 한 명은 『시경』을 읽고, 다른 한 명은 『맹자』를 읽고 있네. 최근에 또 한 명이 늘었는데 여자애라서 『여아경』2)을 읽고 있어. 산수조차 가르치지 않는데, 내가 가르치지 않는 게 아니라 그들이 배우려고 하지 않아.”
“자네가 이런 책들을 가르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네…….”
“그 애들 아버지가 이런 책들을 읽히고 싶어 하는데, 제삼자인 내가 별수 있나. 이렇게 시시한 일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아무렇게나 하면 그만이지…….”
그는 온 얼굴이 이미 새빨개져서 많이 취한 것 같았으나, 눈빛만큼은 또 점점 기가 죽었다.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계단에서 한바탕 떠들썩한 소리가 나더니 손님 몇몇이 올라왔다. 제일 먼저 올라온 사람은 키가 작고 퉁퉁한 둥근 얼굴이며, 두 번째 사람은 키가 크고 얼굴에 붉은 코가 도드라져 보였다. 그 뒤로도 사람들이 연달아 올라오는 바람에 이 작은 건물이 흔들릴 정도였다. 내가 눈을 돌려 뤼웨이푸를 보니 그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종업원을 불러 계산서를 달라고 했다.
“자네는 그걸로 생활이 유지되는가?” 나는 일어날 채비를 하면서 물었다.
“그렇다네. 허나 매달 20원으로는 그럭저럭 버티기가 빠듯하지.”
“그럼 자네는 앞으로 어쩔 셈인가?”
“앞으로? 나도 모르겠네. 그때 우리가 예상했던 일이 하나라도 뜻대로 된 것이 있던가? 나는 지금 아무것도 모르겠네, 내일이 어떻게 될지, 심지어 일 분 후의 일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네…….”
종업원이 계산서를 가져와서 내게 내밀었다. 뤼웨이푸도 처음 들어섰을 때의 겸손은 사라지고 단지 나를 한번 흘끗 보더니 담배만 피울 뿐 내가 계산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우리는 같이 술집을 나섰다. 그가 묵고 있는 여관은 나와 방향이 정반대여서 문 앞에서 헤어졌다. 나는 혼자 여관을 향해 걸어갔다. 차가운 바람과 눈이 얼굴로 들이치는데 오히려 상쾌하게 느껴졌다. 날은 이미 저물었고, 집과 거리는 온통 촘촘하지만 일정하지 않은 순백색의 눈 그물 속에 걸려있었다.
루쉰, 「술집에서(在酒樓上)」 중에서
1) 『시경(詩經)』: 주나라 초부터 춘추시대까지 민간에 구전되던 가요 3천여 편 가운데 공자가 300여 편을 추려 만든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이다. 풍(風: 주로 남녀 간의 정과 이별을 노래한 중원 각국의 민요)·아(雅: 궁중의 공식 연회에서 쓰이던 의전 음악)·송(頌: 종묘의 제사에 쓰이던 제례 음악)의 세 부문으로 구성된다. 유가에서 중요하게 꼽히는 다섯 가지 경서 가운데 하나로, 공자가 만년에 제자를 가르칠 때 시경을 으뜸으로 삼았다고 한다.
2) 『여아경(女兒經)』: 전통시기 중국 여성들에게 여자로서 지녀야 할 봉건적 덕목을 가르치던 교재. 명나라 때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며, 작자 미상으로 여러 판본이 전해진다.
토론하기
(1) 뤼웨이푸가 S시에 돌아온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시시한 일’이라 치부하며 애써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2) 1919년 우리나라의 3·1운동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중국의 5·4 운동과 5·4 신문화운동에 대해 조사해보자. 당시의 시대적 배경 속에 지식인으로서의 사명은 무엇이었을까?
(3) 거듭된 좌절과 실패로 자기비하에 빠지며 더 이상 도전하기를 포기한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해설읽기
‘나’는 S시의 단골 술집에서 헤어진 지 10년도 더 된 옛 동창이자 교사 시절 동료 뤼웨이푸(呂緯甫)와 조우한다. 뤼웨이푸는 과거 ‘나’와 함께 성황묘에 가서 신상(神像)의 수염을 잡아 뽑고, 연일 중국의 개혁 방법에 대해 토론하다가 싸움까지 벌였던 친구였다. ‘나’와 뤼웨이푸는 소위 봉건 질서의 타파를 부르짖으며, 새 시대의 도래를 위해 행동했던 열혈 진보 지식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한눈에 보기에도 “행동이 유달리 느려진 것이 옛날의 날쌔고 용맹한 뤼웨이푸가 아니었다.” 그는 타이위안(太原: 산시성山西省의 성도省都)에 산 지 2년이 넘었는데, 그곳에서 『시경』, 『맹자』, 『여아경』과 같은 유교 경전을 가르치며 근근이 입에 풀칠하며 살고 있었다. 신학문을 배운 현대적인 지식인인 그가 산수나 ABCD도 아닌, 유교 경전을 가르친다는 사실은 매우 뜻밖이면서도 씁쓸한 일이다.
그는 이번에 ‘시시한 일’ 때문에 잠시 돌아왔는데, 그 ‘시시한 일’이란 세 살 때 죽은 동생의 무덤을 이장하는 것이다. 동생의 무덤 주위로 물이 스며들어 곧 잠길지도 모르니 빨리 조처를 하라는 사촌 형의 전갈을 받고 설 연휴를 이용해 돌아왔으나, 막상 묘를 팠더니 어린 동생은 이불이며 옷, 뼈, 심지어 머리카락조차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더 이상 이장은 의미가 없었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기 위해 시체가 놓여있던 자리의 흙을 솜에 싸서 이불에 감싼 뒤 새 관에 넣어 아버지 무덤 곁에 묻어주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덤덤하게 들려주던 그는 문득 ‘나’의 시선을 의식하며, “나는 지금 이 모양으로 얼렁뚱땅 대충대충 살아가고 있네”라고 말한다. ‘나’는 아무런 내색을 비추지 않았건만, 과거의 자신이라면 하지 않았을 일임을 스스로 의식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어서 자신이 이곳에 와서 한 또 다른 ‘시시한 일’을 들려준다. 어머니가 고향에 가는 김에 이웃집 뱃사공의 딸 아순(阿順)에게 그녀가 갖고 싶어 했던 벨벳 꽃 머리 장식을 사다 주라고 한 것이다. 그는 온 타이위안 시내를 다녀도 구하지 못하고 지난(濟南: 산둥성山東省의 성도)까지 가서야 어렵사리 구해왔지만, 그녀는 이미 마음의 병을 얻어 죽은 후였다. 원래 폐병을 얻은 상태에서 어느 날 툭하면 돈을 빌리러 오는 큰아버지에게 돈을 내어주지 않자, 그가 “네 신랑감은 나보다 못할 것”이라고 내뱉은 악담에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께는 아순이 보고 너무 좋아하더라고 말씀드리면 된다며, “이런 시시한 일이 뭐라고? 대충대충 얼버무리면 되는 거야”라고 말한다.
그는 이런 ‘시시한 일’들 때문에 돌아온 자신을 “무언가에 놀라서 바로 날아가더니 작은 원을 한 바퀴 그리고는 다시 돌아와 같은 곳에 앉는” 벌이나 파리에 비유한다. 게다가 그가 말끝마다 내뱉는 “이런 시시한 일이 뭐 대수라고”, “얼렁뚱땅 대충대충”, “아무렇게나 하면 그만”이라는 자조 섞인 말 속에는 끝없는 자기비하와 자기혐오가 숨어 있다. “자넨 모를 거야, 내가 예전보다 더 사람들 찾아다니길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말일세. 나는 이미 자신이 혐오스러움을 잘 알고 있다네. 자신조차 혐오스러워하는데, 일부러 찾아가서 남을 암암리에 불쾌하게 해서야 되겠나?”
용맹했던 열혈청년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다지도 심한 자기혐오에 빠진 것일까? 답을 찾기 위해서는 텍스트 밖으로 나와 루쉰의 일생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무창기의로 촉발된 신해혁명은 이천 년이 넘는 황제지배체제를 전복시키고 아시아 최초로 공화정을 수립했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던 많은 ‘혁명가’들이 새 시대의 도래를 위해 피를 흘렸지만, 그 열매는 봉건 군벌과 변신에 능한 기회주의자들이 앗아갔고, 아Q와 같은 기층 민중은 ‘혁명’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작가 루쉰도 문학과 교육을 통한 국민정신의 개조라는 나름의 방식으로 혁명에 투신했으나, 거듭된 좌절을 맛보며 혁명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5·4 신문화운동의 열기 속에 단편소설들을 발표하며 잠시 사회 변혁의 희망을 꿈꾸었으나, 그가 첫 번째 소설을 발표했던 잡지이자 신문화운동의 본진이었던 《신청년(新靑年)》 동인은 이념으로 분열하고, 5·4 신문화운동의 열기도 점차 사그라들고 만다. ‘나’와 뤼웨이푸의 모습에는 5·4 신문화운동의 퇴조기 이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당시 지식인들의 고민, 무력감, 절망, 고통 등이 투영되어 있다. 하지만 작품의 말미에서 ‘나’가 묵는 숙소는 뤼웨이푸와 정반대 방향으로, ‘나’는 그와 다른 길을 걸을 것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