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작품의 화자이자 관찰자인 ‘나’와 웨이롄수의 만남은 장례식에서 시작해 장례식으로 끝난다. 어느 해 가을 그의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가 전염병에 걸려 사망하자, 마을 사람들과 친척들은 이 서양물 먹은 신당(新黨) 맏손자가 장례절차를 어떻게 치를 것인지 주시한다. 마침 근처의 친척집에서 머물고 있던 ‘나’도 호기심에 문상을 갔다가 그와 알게 된다. ‘나’는 그해 연말 실직한 뒤로 웨이롄수와 자주 왕래하며 친분을 쌓는다. 그러던 어느 날 웨이롄수는 지방의 작은 신문에서 익명의 인사들에게 공격을 받다가 급기야 교직에서 해고당한다. 그는 아끼던 장서와 살림살이를 내다 팔 정도로 생활이 곤궁해졌지만, 평소 그에게 도움받았던 식객들은 발길을 끊고 집주인 아이들조차 그가 주는 간식을 먹지 않는다. ‘나’ 역시 생계문제로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타지 학교에 부임하여 S시를 떠났는데, 몇 달 뒤 웨이롄수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는다.
고전본문
선페이(申飛)…….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빈칸으로 남겨둘 테니 당신이 뭐라고 불리기를 원하는지 스스로 써넣기 바라오. 나는 아무래도 좋소.
헤어진 뒤로 모두 세 통의 편지를 받았지만 답신을 하지 않았소. 그 이유는 간단하오. 우표를 살 돈조차 없었기 때문이오.
당신이 나의 소식을 알고 싶어 할 것 같아 이제 솔직하게 알려드리리다. 나는 실패했소. 전에는 나 스스로 실패자라고 생각했으나 지금에 와서 보니 결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소. 지금이야말로 정말 실패자요. 전에는 내가 좀더 살아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었고, 나 스스로도 좀더 살기를 바랐지만, 살아갈 수 없었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으나 그래도 살아가려고 하오…….
그래도 살아가려 하겠다고?
내가 좀더 살기를 바라던 그 사람 자신이 더 살지 못하고 이미 적에게 속아 살해당하고 말았소. 누가 죽였느냐고? 아무도 모르오.
인생의 변화는 너무도 빠르오! 지난 반년 동안 난 거의 구걸을 했소. 아니, 실제로 이미 구걸을 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소. 그러나 내겐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나는 그것을 위해 구걸을 하고, 그것을 위해 추위에 떨고 굶주렸으며, 그것을 위해 고독하게 살았고, 그것을 위해 고생했소. 그러나 멸망은 원하지 않았소. 보시오, 내가 좀더 살기를 원하는 사람의 힘은 이렇게나 컸소. 그러나 지금은 없소, 이조차 없어졌소. 동시에 내 자신도 살아갈 자격이 없다고 느꼈소. 다른 사람은? 역시 자격이 없소. 동시에 나는 또 내가 살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기어이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오. 다행히 내가 잘 살기를 바라던 사람은 이미 사라졌으니, 아무도 가슴 아프지는 않을 거요. 나는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는 않소. 그런데 지금은 없소, 이 한 사람조차 없어진 것이오. 통쾌하고 후련하기 그지없소. 나는 벌써 예전에 내가 증오하고 반대했던 모든 것들을 몸소 실행해봤으며, 예전에 내가 숭배하고 주장했던 모든 것들을 거부했소. 나는 이제 완전히 실패했소. 하지만 난 승리한 것이오.
당신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오? 내가 영웅이나 위인이 된 것 같소? 아니, 그렇지 않소. 이 일은 간단하오. 나는 요즘 두(杜) 사단장의 고문이 되어 매달 은화 80원의 월급을 받고 있소.
선페이…….
당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당신 좋을 대로 하시오. 나는 아무래도 좋소.
당신은 나의 옛날 거실을 아직 기억하고 있겠지요. 우리가 성안에서 처음 만났고 또 헤어질 때의 그 거실 말이오. 나는 지금도 그 거실을 사용하고 있소. 여기에는 새로운 손님, 새로운 선물, 새로운 찬사, 새로운 아부, 새로운 절과 인사, 새로운 마작과 놀이, 새로운 냉대와 혐오, 새로운 불면과 각혈이 있소…….
당신이 지난번 보낸 편지에서 교편생활이 여의치 않다고 했소. 당신도 고문을 할 생각이 있소? 그럴 의사가 있다면 내가 주선할 테니 알려주시오. 사실 문지기를 해도 무방하오. 새로운 손님, 새로운 선물, 새로운 찬사……가 있기는 매한가지라오.
여기엔 큰 눈이 내렸소. 당신이 있는 곳은 어떻소? 지금은 한밤중, 두어 번 각혈을 하고 나니 정신이 맑아졌소. 당신이 가을부터 지금까지 편지를 세 통이나 보내주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놀랍기 그지없소. 그래서 당신에게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소. 허걱 하고 놀랄지도 모르지만.
아마 앞으로는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을 거요. 나의 이런 습관은 당신도 이미 알 것이오. 언제 돌아오시오? 빨리 돌아온다면 서로 볼 수 있을 것이오. 하지만 우린 결국 같은 길을 걷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오. 그렇다면 나를 잊어주시오. 당신이 일전에 나의 생계를 걱정해 준 것에 대해 나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소. 그러나 이제는 나를 잊어주시오. 나는 이미 ‘좋아졌으니’ 말이오.
12월 14일 롄수
-루쉰, 「고독한 사람」중에서
토론하기
(1) 웨이롄수가 할머니의 장례식 때 갑자기 대성통곡한 까닭은 무엇인가? 웨이롄수의 고독은 무엇으로부터 연원하는가?
(2) 「술집에서」와 「고독한 사람」의 주인공 뤼웨이푸, 웨이롄수 및 작품의 화자 ‘나’는 모두 사회 변혁의 의지와 열정을 지닌 진보적 지식인들이다. 이 인물들은 어느 정도 작가 루쉰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두 작품의 마지막 부분을 비교하며 ‘나’와 뤼웨이푸/웨이롄수의 차이점에 대해 말해보자.
해설읽기
루쉰의 두 번째 소설집 『방황』에 실린 「술집에서」와 「고독한 사람」은 약 1년 8개월의 시차를 두고 창작되었다. 두 작품의 주인공 뤼웨이푸와 웨이롄수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다 결국 현실과의 타협을 선택하는 현대적인 지식인이라는 점에서 종종 함께 논의된다. 뤼웨이푸가 유교 경전을 가르치며 자기비하와 자기혐오에 빠졌던 것에 비교해, 웨이롄수는 더 나아가 자학과 자기파괴로 이어지며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만다.
웨이롄수는 초등학교조차 없는 산골마을 전체에서 유일하게 외지로 나가 유학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마을 사람들과 친척들에게 그는 ‘외국인’과도 같은 이질적인 존재였고, ‘우리와는 다르다’고 치부되며 이해받지 못했다. 그는 신식학문인 동물학을 전공했지만, 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쳤다. 그는 독신으로 살며 “가정은 파괴되어야 한다”고 늘 말하면서도 할머니에게만은 지극정성이었다. 그의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는 아버지의 생모가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바느질로 집안의 생계를 책임졌다. 인용문의 “내가 좀더 살기를 바라던 그 사람”은 할머니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웨이롄수의 주변에는 다 쓰러져가는 그의 고향 집을 상속받기 위해 자기 아들을 양자로 들이려는 사촌 형, 세상 번뇌는 혼자 다 짊어진 척 ‘불행한 청년’ 운운하는 식객들뿐, 그를 진정으로 위해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나’는 그의 할머니 장례식에서 웨이롄수를 알게 되었고, 실직한 뒤로 웨이롄수를 자주 찾아가며 가까워졌다. 웨이롄수는 쌀쌀맞고 냉소적인 성격이었지만 실의한 사람을 친근하게 대해주었고, 무엇보다 아이들을 예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웨이롄수는 갑자기 교장에 의해 해고당한다. 신문과 잡지에 글을 기고하며 비판적인 의견을 발표한 것이 화근이었다. 처음에는 지방의 작은 신문에서 익명의 인사들에게 공격을 받다가 급기야 일자리까지 잃게 된 것이다. 평소 저축하지 않고 돈이 들어오는 대로 써버렸던 그는 실직한 지 2~3개월 만에 아끼던 장서와 살림살이를 내다 팔아야 정도로 생활이 곤궁해졌다. 그는 일자리를 찾아 타지로 떠나는 ‘나’를 찾아와 ‘베껴 쓰는 일’이라도 좋으니 그곳에 도착하면 일자리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아직 좀더 살아야 한다”는 그의 모습을 잊을 수 없어 여러 곳에 추천을 해보았지만, 그곳의 사정도 좋지 않아 ‘나’ 역시 학교에 부임한 지 두 달이 지나도록 월급 한 푼 받지 못했으며, 그 지역 인사들의 공격대상이 되어 운신의 폭까지 좁아진다.
인용문은 웨이롄수가 ‘나’에게 보낸 편지의 전문이다. 여기에는 그가 현실과 타협하게 된 이유가 적혀 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중국의 희망이 달린 아이들을 위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기고문을 통해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하며 중국 사회를 점차 변혁시키는 일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볼 수 있다. 그는 이상을 위해 일자리를 구걸해서라도 좀더 살고자 했지만, 주변의 몰이해와 냉대, 심지어 “우표를 살 돈조차 없”는 현실적 고난 앞에서 “두(杜) 사단장의 고문이 되어 매달 은화 80원의 월급을 받”는 것을 택한다. 고문이 되었다 함은 구사회를 지탱하는 ‘적폐세력’인 봉건 군벌의 막료로 들어갔으며, 이는 곧 적진에 투항했음을 의미한다. 그는 “벌써 예전에 내가 증오하고 반대했던 모든 것들을 몸소 실행해봤으며, 예전에 내가 숭배하고 주장했던 모든 것들을 거부했”다고 말한다.
웨이롄수의 생계문제가 해결된 것을 확인한 ‘나’는 한동안 그를 잊고 있다가 반년 남짓한 외지 생활을 정리하고 S시로 돌아온다. 도착한 날 저녁 ‘나’는 웨이롄수를 찾아갔다가 뜻밖에 그의 장례식과 마주하게 되고, 집주인 할머니로부터 ‘웨이 대인’이 얼마나 출세했고 잘 나갔는지를 듣는다. 군벌의 고문직은 그의 대외적 명성을 높이고, 물질적 풍요로움을 가져다주었는지 모르지만, 그의 정신은 점점 황폐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편지에서 “내가 살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기어이 살아가야 한다”고 했는데, 돈을 물 쓰듯 쓰고, 사흘이 멀다 하고 잔치를 벌이며,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던 아이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모습에서는 삶의 의지는커녕 자학과 자기파괴만이 가득하다. 그가 폐병을 고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몸을 막 굴렸던 것은 ‘변절’한 자신을 파멸시킴으로써 “내가 살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수하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전후맥락
작품의 화자이자 관찰자인 ‘나’와 웨이롄수의 만남은 장례식에서 시작해 장례식으로 끝난다. 어느 해 가을 그의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가 전염병에 걸려 사망하자, 마을 사람들과 친척들은 이 서양물 먹은 신당(新黨) 맏손자가 장례절차를 어떻게 치를 것인지 주시한다. 마침 근처의 친척집에서 머물고 있던 ‘나’도 호기심에 문상을 갔다가 그와 알게 된다. ‘나’는 그해 연말 실직한 뒤로 웨이롄수와 자주 왕래하며 친분을 쌓는다. 그러던 어느 날 웨이롄수는 지방의 작은 신문에서 익명의 인사들에게 공격을 받다가 급기야 교직에서 해고당한다. 그는 아끼던 장서와 살림살이를 내다 팔 정도로 생활이 곤궁해졌지만, 평소 그에게 도움받았던 식객들은 발길을 끊고 집주인 아이들조차 그가 주는 간식을 먹지 않는다. ‘나’ 역시 생계문제로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타지 학교에 부임하여 S시를 떠났는데, 몇 달 뒤 웨이롄수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는다.
고전본문
선페이(申飛)…….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빈칸으로 남겨둘 테니 당신이 뭐라고 불리기를 원하는지 스스로 써넣기 바라오. 나는 아무래도 좋소.
헤어진 뒤로 모두 세 통의 편지를 받았지만 답신을 하지 않았소. 그 이유는 간단하오. 우표를 살 돈조차 없었기 때문이오.
당신이 나의 소식을 알고 싶어 할 것 같아 이제 솔직하게 알려드리리다. 나는 실패했소. 전에는 나 스스로 실패자라고 생각했으나 지금에 와서 보니 결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소. 지금이야말로 정말 실패자요. 전에는 내가 좀더 살아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었고, 나 스스로도 좀더 살기를 바랐지만, 살아갈 수 없었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으나 그래도 살아가려고 하오…….
그래도 살아가려 하겠다고?
내가 좀더 살기를 바라던 그 사람 자신이 더 살지 못하고 이미 적에게 속아 살해당하고 말았소. 누가 죽였느냐고? 아무도 모르오.
인생의 변화는 너무도 빠르오! 지난 반년 동안 난 거의 구걸을 했소. 아니, 실제로 이미 구걸을 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소. 그러나 내겐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나는 그것을 위해 구걸을 하고, 그것을 위해 추위에 떨고 굶주렸으며, 그것을 위해 고독하게 살았고, 그것을 위해 고생했소. 그러나 멸망은 원하지 않았소. 보시오, 내가 좀더 살기를 원하는 사람의 힘은 이렇게나 컸소. 그러나 지금은 없소, 이조차 없어졌소. 동시에 내 자신도 살아갈 자격이 없다고 느꼈소. 다른 사람은? 역시 자격이 없소. 동시에 나는 또 내가 살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기어이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오. 다행히 내가 잘 살기를 바라던 사람은 이미 사라졌으니, 아무도 가슴 아프지는 않을 거요. 나는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는 않소. 그런데 지금은 없소, 이 한 사람조차 없어진 것이오. 통쾌하고 후련하기 그지없소. 나는 벌써 예전에 내가 증오하고 반대했던 모든 것들을 몸소 실행해봤으며, 예전에 내가 숭배하고 주장했던 모든 것들을 거부했소. 나는 이제 완전히 실패했소. 하지만 난 승리한 것이오.
당신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오? 내가 영웅이나 위인이 된 것 같소? 아니, 그렇지 않소. 이 일은 간단하오. 나는 요즘 두(杜) 사단장의 고문이 되어 매달 은화 80원의 월급을 받고 있소.
선페이…….
당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당신 좋을 대로 하시오. 나는 아무래도 좋소.
당신은 나의 옛날 거실을 아직 기억하고 있겠지요. 우리가 성안에서 처음 만났고 또 헤어질 때의 그 거실 말이오. 나는 지금도 그 거실을 사용하고 있소. 여기에는 새로운 손님, 새로운 선물, 새로운 찬사, 새로운 아부, 새로운 절과 인사, 새로운 마작과 놀이, 새로운 냉대와 혐오, 새로운 불면과 각혈이 있소…….
당신이 지난번 보낸 편지에서 교편생활이 여의치 않다고 했소. 당신도 고문을 할 생각이 있소? 그럴 의사가 있다면 내가 주선할 테니 알려주시오. 사실 문지기를 해도 무방하오. 새로운 손님, 새로운 선물, 새로운 찬사……가 있기는 매한가지라오.
여기엔 큰 눈이 내렸소. 당신이 있는 곳은 어떻소? 지금은 한밤중, 두어 번 각혈을 하고 나니 정신이 맑아졌소. 당신이 가을부터 지금까지 편지를 세 통이나 보내주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놀랍기 그지없소. 그래서 당신에게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소. 허걱 하고 놀랄지도 모르지만.
아마 앞으로는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을 거요. 나의 이런 습관은 당신도 이미 알 것이오. 언제 돌아오시오? 빨리 돌아온다면 서로 볼 수 있을 것이오. 하지만 우린 결국 같은 길을 걷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오. 그렇다면 나를 잊어주시오. 당신이 일전에 나의 생계를 걱정해 준 것에 대해 나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소. 그러나 이제는 나를 잊어주시오. 나는 이미 ‘좋아졌으니’ 말이오.
12월 14일 롄수
-루쉰, 「고독한 사람」중에서
토론하기
(1) 웨이롄수가 할머니의 장례식 때 갑자기 대성통곡한 까닭은 무엇인가? 웨이롄수의 고독은 무엇으로부터 연원하는가?
(2) 「술집에서」와 「고독한 사람」의 주인공 뤼웨이푸, 웨이롄수 및 작품의 화자 ‘나’는 모두 사회 변혁의 의지와 열정을 지닌 진보적 지식인들이다. 이 인물들은 어느 정도 작가 루쉰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두 작품의 마지막 부분을 비교하며 ‘나’와 뤼웨이푸/웨이롄수의 차이점에 대해 말해보자.
해설읽기
루쉰의 두 번째 소설집 『방황』에 실린 「술집에서」와 「고독한 사람」은 약 1년 8개월의 시차를 두고 창작되었다. 두 작품의 주인공 뤼웨이푸와 웨이롄수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다 결국 현실과의 타협을 선택하는 현대적인 지식인이라는 점에서 종종 함께 논의된다. 뤼웨이푸가 유교 경전을 가르치며 자기비하와 자기혐오에 빠졌던 것에 비교해, 웨이롄수는 더 나아가 자학과 자기파괴로 이어지며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만다.
웨이롄수는 초등학교조차 없는 산골마을 전체에서 유일하게 외지로 나가 유학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마을 사람들과 친척들에게 그는 ‘외국인’과도 같은 이질적인 존재였고, ‘우리와는 다르다’고 치부되며 이해받지 못했다. 그는 신식학문인 동물학을 전공했지만, 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쳤다. 그는 독신으로 살며 “가정은 파괴되어야 한다”고 늘 말하면서도 할머니에게만은 지극정성이었다. 그의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는 아버지의 생모가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바느질로 집안의 생계를 책임졌다. 인용문의 “내가 좀더 살기를 바라던 그 사람”은 할머니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웨이롄수의 주변에는 다 쓰러져가는 그의 고향 집을 상속받기 위해 자기 아들을 양자로 들이려는 사촌 형, 세상 번뇌는 혼자 다 짊어진 척 ‘불행한 청년’ 운운하는 식객들뿐, 그를 진정으로 위해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나’는 그의 할머니 장례식에서 웨이롄수를 알게 되었고, 실직한 뒤로 웨이롄수를 자주 찾아가며 가까워졌다. 웨이롄수는 쌀쌀맞고 냉소적인 성격이었지만 실의한 사람을 친근하게 대해주었고, 무엇보다 아이들을 예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웨이롄수는 갑자기 교장에 의해 해고당한다. 신문과 잡지에 글을 기고하며 비판적인 의견을 발표한 것이 화근이었다. 처음에는 지방의 작은 신문에서 익명의 인사들에게 공격을 받다가 급기야 일자리까지 잃게 된 것이다. 평소 저축하지 않고 돈이 들어오는 대로 써버렸던 그는 실직한 지 2~3개월 만에 아끼던 장서와 살림살이를 내다 팔아야 정도로 생활이 곤궁해졌다. 그는 일자리를 찾아 타지로 떠나는 ‘나’를 찾아와 ‘베껴 쓰는 일’이라도 좋으니 그곳에 도착하면 일자리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아직 좀더 살아야 한다”는 그의 모습을 잊을 수 없어 여러 곳에 추천을 해보았지만, 그곳의 사정도 좋지 않아 ‘나’ 역시 학교에 부임한 지 두 달이 지나도록 월급 한 푼 받지 못했으며, 그 지역 인사들의 공격대상이 되어 운신의 폭까지 좁아진다.
인용문은 웨이롄수가 ‘나’에게 보낸 편지의 전문이다. 여기에는 그가 현실과 타협하게 된 이유가 적혀 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중국의 희망이 달린 아이들을 위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기고문을 통해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하며 중국 사회를 점차 변혁시키는 일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볼 수 있다. 그는 이상을 위해 일자리를 구걸해서라도 좀더 살고자 했지만, 주변의 몰이해와 냉대, 심지어 “우표를 살 돈조차 없”는 현실적 고난 앞에서 “두(杜) 사단장의 고문이 되어 매달 은화 80원의 월급을 받”는 것을 택한다. 고문이 되었다 함은 구사회를 지탱하는 ‘적폐세력’인 봉건 군벌의 막료로 들어갔으며, 이는 곧 적진에 투항했음을 의미한다. 그는 “벌써 예전에 내가 증오하고 반대했던 모든 것들을 몸소 실행해봤으며, 예전에 내가 숭배하고 주장했던 모든 것들을 거부했”다고 말한다.
웨이롄수의 생계문제가 해결된 것을 확인한 ‘나’는 한동안 그를 잊고 있다가 반년 남짓한 외지 생활을 정리하고 S시로 돌아온다. 도착한 날 저녁 ‘나’는 웨이롄수를 찾아갔다가 뜻밖에 그의 장례식과 마주하게 되고, 집주인 할머니로부터 ‘웨이 대인’이 얼마나 출세했고 잘 나갔는지를 듣는다. 군벌의 고문직은 그의 대외적 명성을 높이고, 물질적 풍요로움을 가져다주었는지 모르지만, 그의 정신은 점점 황폐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편지에서 “내가 살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기어이 살아가야 한다”고 했는데, 돈을 물 쓰듯 쓰고, 사흘이 멀다 하고 잔치를 벌이며,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던 아이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모습에서는 삶의 의지는커녕 자학과 자기파괴만이 가득하다. 그가 폐병을 고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몸을 막 굴렸던 것은 ‘변절’한 자신을 파멸시킴으로써 “내가 살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수하려던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