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주인공 ‘나’는 매춘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아내가 벌어오는 돈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고등실업자이다. “가장 게으른 동물”처럼 방에 갇혀 사는 ‘나’는 아내가 외출한 틈을 타 아내의 방에서 유아적인 장난을 치는 것으로 소일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돈을 쓰는 쾌감이 궁금해져 ‘외출’을 감행하게 되고, 몇 차례 외출하고 귀가하는 과정에서 아내의 직업과 비밀을 알게 된다.
고전본문
나는 이불 속에서 아내에게 사죄하였다. 그것은 네 오해라고……
나는 사실 밤이 퍽이나 이슥한 줄만 알았던 것이다. 그것이 네 말마따나 자정 전인 줄은 나는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다. 나는 너무 피곤하였다. 오래간만에 나는 너무 많이 걸은 것이 잘못이다. 내 잘못이라면 잘못은 그것밖에는 없다. 외출은 왜 하였더냐고?
나는 그 머리맡에 저절로 모인 5원 돈을 아무에게라도 좋으니 주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내 잘못이라면 나는 그렇게 알겠다. 나는 후회하고 있지 않나?
내가 그 5원 돈을 써 버릴 수가 있었던들 나는 자정 안에 집에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리는 너무 복잡하였고 사람은 너무도 들끓었다. 나는 어느 사람을 붙들고 그 5원 돈을 내어 주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여지없이 피곤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좀 쉬고 싶었다. 눕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내 짐작 같아서는 밤이 어지간히 늦은 줄만 알았는데, 그것이 불행히도 자정 전이었다는 것은 참 안된 일이다. 미안한 일이다. 나는 얼마든지 사죄하여도 좋다. 그러나 종시 아내의 오해를 풀지 못하였다 하면 내가 이렇게까지 사죄하는 보람은 그럼 어디 있나? 한심하였다.
한 시간 동안을 나는 이렇게 초조하게 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이불을 홱 젖혀버리고 일어나서 장지를 열고 아내 방으로 비칠비칠 달려갔던 것이다. 내게는 거의 의식이라는 것이 없었다. 나는 아내 이불 위에 엎드러지면서 바지 포켓 속에서 그 돈 5원을 꺼내 아내 손에 쥐어 준 것을 간신히 기억할 뿐이다.
이튿날 잠이 깨었을 때 나는 내 아내 방 아내 이불 속에 있었다. 이것이 이 삼십삼 번지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 내가 아내 방에서 잔 맨 처음이었다.
(중략)
내가 잠을 깬 것은 전등이 켜진 뒤다. 그러나 아내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나 보다. 아니! 들어왔다 또 나갔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것을 삼고하여 무엇 하나?
정신이 한결 난다. 나는 지난 밤 일을 생각해보았다. 그 돈 5원을 아내 손에 쥐여주고 넘어졌을 때에 느낄 수 있었던 쾌감을 나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객들이 내 아내에게 돈 놓고 가는 심리며 내 아내가 내게 돈 놓고 가는 심리의 비밀을 나는 알아낸 것 같아서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니다. 나는 속으로 빙그레 웃어 보았다. 이런 것을 모르고 오늘까지 지내온 내 자신이 어떻게 우스꽝스럽게 보이는지 몰랐다. 나는 어깨춤이 났다.
따라서 나는 또 오늘 밤에도 외출하고 싶었다. (하략)
-[출전] 이상, 「날개」
토론하기
(1) ‘나’는 외출을 통하여 경제적 행위와 돈의 필요성을 자각하며, 점차 마비되고 분열증적이었던 자의식을 회복한다. 작품에서 ‘나’는 총 5번 외출하는데, 각각의 외출 과정을 설명하고, ‘외출’이라는 사건을 통해 변화하는 ‘나’의 내면과 아내와의 관계 등을 말해보자.
(2) 주인공이 무기력하고 자폐적인 삶을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주인공처럼 무기력하고 자포자기의 심정을 느낀 적이 있는가? 있었다면 언제, 왜 그랬는가? 나는 이를 어떻게 극복했는가?
(3) 이 소설은 남편의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다. 이 작품을 식민지 시대의 알레고리로 읽지 않고 표면적인 현상만 놓고 본다면 남편은 아내에게 경제적으로 기생하는 쓰레기, 기둥서방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만일 아내의 시각에서 사건을 재구성한다면 어떤 생각과 느낌이 들까?
해설읽기
주인공 ‘나’는 18가구가 함께 사는 33번지 복합가옥의 7번째 칸에 산다. “구조가 흡사 유곽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다”고 에두르지만, 유곽일 뿐이다. (비속어와 발음이 같은) 이 18가구를 대표하는 대문은 “한 번도 닫힌 일이 없는 행길이나 마찬가지인 대문”이어서 “온갖 장사치들은 하루 가운데 어느 시간에라도 이 대문을 통하여 드나들 수” 있다. 누구나 드나들 수 있게 대문이 열려있어 쉽사리 침범당하는 이 집은, 이곳에 사는 여자들의 운명을 상징함과 동시에 주권을 빼앗긴 국가의 운명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33번지는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축소판인 것이다.
‘나’는 장지(본딧말: 障子. 방과 방 사이, 또는 방과 마루 사이에 칸을 막아 끼우는 문)로 나뉘어 있는 방의 윗방에서 혼자 산다. 아내가 쓰는 아랫방은 볕이 들고 화려하며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이 있지만, ‘나’의 방은 해가 들지 않고 소박하며 바깥세계로 드나들기 위해서는 아내의 방을 통할 수밖에 없다. 주인공은 두 칸으로 나뉜 방을 “내 운명의 상징”이라고 했는데, 가장 가까워야 할 아내와도 단절된 채 고립된 생활을 하는 무기력한 ‘나’의 처지를 잘 보여준다.
‘나’는 유곽에서 일하는 아내에게 “매어달려 사는” 존재이다. 생활 능력이 없는 탓에 아내가 끼니때면 넣어주는 밥을 “닭이나 강아지처럼” “넙죽넙죽” 받아먹으며, 대부분 시간을 “내 몸과 마음에 옷처럼 잘 맞는 방 속에서 뒹굴면서 축 처져” 지낸다. ‘나’는 아내가 외출만 하면 아내의 방으로 가 돋보기로 지리가미(휴지)를 태우는 불장난을 하거나, 손잡이 거울을 가지고 놀거나, 화장품 병마개를 열고 냄새를 맡으며 아내의 체취를 상상한다.
하지만 유곽이라는 장소의 특성상 주인공에게는 공간과 시간상의 금지와 억압이 가해진다. 주인공이 자폐적이고 권태로운 삶에서 잠시 벗어나 어린아이와 같은 퇴행적 유희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내가 외출하고 손님이 들르지 않는 낮 동안뿐이다. 이 시간을 제외하면, 특히 아내에게 손님이 있는 저녁에서 자정까지는 아랫방에 절대 출입할 수 없다. 출입은커녕 윗방의 이불 속에 틀어박혀서 인기척조차 낼 수 없다. 이 규율을 지키면 아내는 ‘나’에게 밥도 넣어주고 저축할 돈도 준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나’는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가를 연구하기에 착수”하고, 먼저 아내가 쓰는 돈의 출처를 탐색해보기로 한다. 그러다 아내가 쓰는 돈은 “까닭 모를 내객(來客: 찾아온 손님)들이 놓고 가는 것”이며, 내객이 아내에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나 아내가 내게 돈을 놓고 가는―손님이 많이 왔다 간 날은 아내가 ‘나’에게 50전짜리 은화를 준다―것이 일종의 쾌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쾌감의 유무를 체험하고 싶어진 ‘나’는 드디어 외출을 감행한다.
인용문은 주인공이 첫 번째 외출 후에 깨달음을 얻으며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는 대목이다. ‘나’는 외출을 통하여 경제적 행위와 돈의 필요성을 자각하게 된다. 경제적으로 무능할 뿐만 아니라 아내가 준 돈을 모아놓은 벙어리 저금통을 화장실에 가져다 버릴 정도로 ‘돈’의 쓰임새나 가치에 무지했던 ‘나’는 외출하면서 돈 쓰는 쾌감을 알게 되고, 급기야 “하늘에서 얼마라도 좋으니 왜 지폐가 소낙비처럼 퍼붓지 않나” 원망하며, 돈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게 된다. 또한 경성역 일이등 대합실 티룸에서 커피를 사 마시는 경제적 행위도 하게 된다(세 번째 외출). 그뿐만 아니라 도무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던 부부 관계도 외출 후 같은 이부자리에서 자고 식사도 겸상하는 등 개선된다.
그러나 아달린1)과 아스피린 사건 이후 아내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된 자신의 무능함을 자각하고, “바지 포켓 속에 남은 돈 몇 원 몇십 전을 가만히 꺼내서는 몰래 미닫이를 열고 살며시 문지방 밑에다 놓고 나서는 나는 그냥 줄달음박질을 쳐서 나와버렸다.” 그의 발걸음이 닿은 곳은 미쓰코시(三越) 백화점2) 옥상이었고, 그는 이곳에서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라고 외친다.
방 속에 누워 스스로 인간임을 망각하고 세속의 모든 것과 단절한 채 “가장 게으른 동물”처럼 아내에게 사육되던 ‘나’는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서 저항의 의지마저 거세된 채 길들여진 지식인을 비유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외출’을 통해 돈을 쓰는 쾌감,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알게 되고,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점점 자각하게 된다. 그의 마지막 외침은 사회로 복귀하고자 하는 의욕과 재생 의지를 보여준다.
1) 아달린(Adalin): 독일 바이엘(BAYER) 사에서 만든 수면제. 1950년대 중반까지 널리 사용되었으나 장기간 복용하면 브롬(Br) 중독 등의 부작용을 일으켜 1971년 판매가 금지되었다.
2) 미쓰코시(三越) 백화점: 일본 미쓰이(三井) 그룹이 지금의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 자리에 세운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된 한국 최초의 근대식 백화점이다. 1930년 10월 24일 개장했으며, 대지 730평, 건평 435평, 연건평 2,300평, 종업원 360여 명으로 당시 조선과 만주를 통틀어 최고 및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영화 《암살》에서 안옥윤(전지현)의 쌍둥이 언니인 미츠코가 처음 등장하는 곳이자, 안경을 맞추러 간 안옥윤과 마주친 곳이 바로 미쓰코시 백화점이다.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곳이 아닌, 선진 문화를 흡수, 전파하는 ‘문화 살롱’이자, 근대를 직접 느낄 수 있는 경성 최고의 명물이었다.
키워드
전후맥락
주인공 ‘나’는 매춘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아내가 벌어오는 돈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고등실업자이다. “가장 게으른 동물”처럼 방에 갇혀 사는 ‘나’는 아내가 외출한 틈을 타 아내의 방에서 유아적인 장난을 치는 것으로 소일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돈을 쓰는 쾌감이 궁금해져 ‘외출’을 감행하게 되고, 몇 차례 외출하고 귀가하는 과정에서 아내의 직업과 비밀을 알게 된다.
고전본문
나는 이불 속에서 아내에게 사죄하였다. 그것은 네 오해라고……
나는 사실 밤이 퍽이나 이슥한 줄만 알았던 것이다. 그것이 네 말마따나 자정 전인 줄은 나는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다. 나는 너무 피곤하였다. 오래간만에 나는 너무 많이 걸은 것이 잘못이다. 내 잘못이라면 잘못은 그것밖에는 없다. 외출은 왜 하였더냐고?
나는 그 머리맡에 저절로 모인 5원 돈을 아무에게라도 좋으니 주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내 잘못이라면 나는 그렇게 알겠다. 나는 후회하고 있지 않나?
내가 그 5원 돈을 써 버릴 수가 있었던들 나는 자정 안에 집에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리는 너무 복잡하였고 사람은 너무도 들끓었다. 나는 어느 사람을 붙들고 그 5원 돈을 내어 주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여지없이 피곤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좀 쉬고 싶었다. 눕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내 짐작 같아서는 밤이 어지간히 늦은 줄만 알았는데, 그것이 불행히도 자정 전이었다는 것은 참 안된 일이다. 미안한 일이다. 나는 얼마든지 사죄하여도 좋다. 그러나 종시 아내의 오해를 풀지 못하였다 하면 내가 이렇게까지 사죄하는 보람은 그럼 어디 있나? 한심하였다.
한 시간 동안을 나는 이렇게 초조하게 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이불을 홱 젖혀버리고 일어나서 장지를 열고 아내 방으로 비칠비칠 달려갔던 것이다. 내게는 거의 의식이라는 것이 없었다. 나는 아내 이불 위에 엎드러지면서 바지 포켓 속에서 그 돈 5원을 꺼내 아내 손에 쥐어 준 것을 간신히 기억할 뿐이다.
이튿날 잠이 깨었을 때 나는 내 아내 방 아내 이불 속에 있었다. 이것이 이 삼십삼 번지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 내가 아내 방에서 잔 맨 처음이었다.
(중략)
내가 잠을 깬 것은 전등이 켜진 뒤다. 그러나 아내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나 보다. 아니! 들어왔다 또 나갔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것을 삼고하여 무엇 하나?
정신이 한결 난다. 나는 지난 밤 일을 생각해보았다. 그 돈 5원을 아내 손에 쥐여주고 넘어졌을 때에 느낄 수 있었던 쾌감을 나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객들이 내 아내에게 돈 놓고 가는 심리며 내 아내가 내게 돈 놓고 가는 심리의 비밀을 나는 알아낸 것 같아서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니다. 나는 속으로 빙그레 웃어 보았다. 이런 것을 모르고 오늘까지 지내온 내 자신이 어떻게 우스꽝스럽게 보이는지 몰랐다. 나는 어깨춤이 났다.
따라서 나는 또 오늘 밤에도 외출하고 싶었다. (하략)
-[출전] 이상, 「날개」
토론하기
(1) ‘나’는 외출을 통하여 경제적 행위와 돈의 필요성을 자각하며, 점차 마비되고 분열증적이었던 자의식을 회복한다. 작품에서 ‘나’는 총 5번 외출하는데, 각각의 외출 과정을 설명하고, ‘외출’이라는 사건을 통해 변화하는 ‘나’의 내면과 아내와의 관계 등을 말해보자.
(2) 주인공이 무기력하고 자폐적인 삶을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주인공처럼 무기력하고 자포자기의 심정을 느낀 적이 있는가? 있었다면 언제, 왜 그랬는가? 나는 이를 어떻게 극복했는가?
(3) 이 소설은 남편의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다. 이 작품을 식민지 시대의 알레고리로 읽지 않고 표면적인 현상만 놓고 본다면 남편은 아내에게 경제적으로 기생하는 쓰레기, 기둥서방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만일 아내의 시각에서 사건을 재구성한다면 어떤 생각과 느낌이 들까?
해설읽기
주인공 ‘나’는 18가구가 함께 사는 33번지 복합가옥의 7번째 칸에 산다. “구조가 흡사 유곽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다”고 에두르지만, 유곽일 뿐이다. (비속어와 발음이 같은) 이 18가구를 대표하는 대문은 “한 번도 닫힌 일이 없는 행길이나 마찬가지인 대문”이어서 “온갖 장사치들은 하루 가운데 어느 시간에라도 이 대문을 통하여 드나들 수” 있다. 누구나 드나들 수 있게 대문이 열려있어 쉽사리 침범당하는 이 집은, 이곳에 사는 여자들의 운명을 상징함과 동시에 주권을 빼앗긴 국가의 운명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33번지는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축소판인 것이다.
‘나’는 장지(본딧말: 障子. 방과 방 사이, 또는 방과 마루 사이에 칸을 막아 끼우는 문)로 나뉘어 있는 방의 윗방에서 혼자 산다. 아내가 쓰는 아랫방은 볕이 들고 화려하며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이 있지만, ‘나’의 방은 해가 들지 않고 소박하며 바깥세계로 드나들기 위해서는 아내의 방을 통할 수밖에 없다. 주인공은 두 칸으로 나뉜 방을 “내 운명의 상징”이라고 했는데, 가장 가까워야 할 아내와도 단절된 채 고립된 생활을 하는 무기력한 ‘나’의 처지를 잘 보여준다.
‘나’는 유곽에서 일하는 아내에게 “매어달려 사는” 존재이다. 생활 능력이 없는 탓에 아내가 끼니때면 넣어주는 밥을 “닭이나 강아지처럼” “넙죽넙죽” 받아먹으며, 대부분 시간을 “내 몸과 마음에 옷처럼 잘 맞는 방 속에서 뒹굴면서 축 처져” 지낸다. ‘나’는 아내가 외출만 하면 아내의 방으로 가 돋보기로 지리가미(휴지)를 태우는 불장난을 하거나, 손잡이 거울을 가지고 놀거나, 화장품 병마개를 열고 냄새를 맡으며 아내의 체취를 상상한다.
하지만 유곽이라는 장소의 특성상 주인공에게는 공간과 시간상의 금지와 억압이 가해진다. 주인공이 자폐적이고 권태로운 삶에서 잠시 벗어나 어린아이와 같은 퇴행적 유희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내가 외출하고 손님이 들르지 않는 낮 동안뿐이다. 이 시간을 제외하면, 특히 아내에게 손님이 있는 저녁에서 자정까지는 아랫방에 절대 출입할 수 없다. 출입은커녕 윗방의 이불 속에 틀어박혀서 인기척조차 낼 수 없다. 이 규율을 지키면 아내는 ‘나’에게 밥도 넣어주고 저축할 돈도 준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나’는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가를 연구하기에 착수”하고, 먼저 아내가 쓰는 돈의 출처를 탐색해보기로 한다. 그러다 아내가 쓰는 돈은 “까닭 모를 내객(來客: 찾아온 손님)들이 놓고 가는 것”이며, 내객이 아내에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나 아내가 내게 돈을 놓고 가는―손님이 많이 왔다 간 날은 아내가 ‘나’에게 50전짜리 은화를 준다―것이 일종의 쾌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쾌감의 유무를 체험하고 싶어진 ‘나’는 드디어 외출을 감행한다.
인용문은 주인공이 첫 번째 외출 후에 깨달음을 얻으며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는 대목이다. ‘나’는 외출을 통하여 경제적 행위와 돈의 필요성을 자각하게 된다. 경제적으로 무능할 뿐만 아니라 아내가 준 돈을 모아놓은 벙어리 저금통을 화장실에 가져다 버릴 정도로 ‘돈’의 쓰임새나 가치에 무지했던 ‘나’는 외출하면서 돈 쓰는 쾌감을 알게 되고, 급기야 “하늘에서 얼마라도 좋으니 왜 지폐가 소낙비처럼 퍼붓지 않나” 원망하며, 돈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게 된다. 또한 경성역 일이등 대합실 티룸에서 커피를 사 마시는 경제적 행위도 하게 된다(세 번째 외출). 그뿐만 아니라 도무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던 부부 관계도 외출 후 같은 이부자리에서 자고 식사도 겸상하는 등 개선된다.
그러나 아달린1)과 아스피린 사건 이후 아내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된 자신의 무능함을 자각하고, “바지 포켓 속에 남은 돈 몇 원 몇십 전을 가만히 꺼내서는 몰래 미닫이를 열고 살며시 문지방 밑에다 놓고 나서는 나는 그냥 줄달음박질을 쳐서 나와버렸다.” 그의 발걸음이 닿은 곳은 미쓰코시(三越) 백화점2) 옥상이었고, 그는 이곳에서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라고 외친다.
방 속에 누워 스스로 인간임을 망각하고 세속의 모든 것과 단절한 채 “가장 게으른 동물”처럼 아내에게 사육되던 ‘나’는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서 저항의 의지마저 거세된 채 길들여진 지식인을 비유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외출’을 통해 돈을 쓰는 쾌감,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알게 되고,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점점 자각하게 된다. 그의 마지막 외침은 사회로 복귀하고자 하는 의욕과 재생 의지를 보여준다.
1) 아달린(Adalin): 독일 바이엘(BAYER) 사에서 만든 수면제. 1950년대 중반까지 널리 사용되었으나 장기간 복용하면 브롬(Br) 중독 등의 부작용을 일으켜 1971년 판매가 금지되었다.
2) 미쓰코시(三越) 백화점: 일본 미쓰이(三井) 그룹이 지금의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 자리에 세운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된 한국 최초의 근대식 백화점이다. 1930년 10월 24일 개장했으며, 대지 730평, 건평 435평, 연건평 2,300평, 종업원 360여 명으로 당시 조선과 만주를 통틀어 최고 및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영화 《암살》에서 안옥윤(전지현)의 쌍둥이 언니인 미츠코가 처음 등장하는 곳이자, 안경을 맞추러 간 안옥윤과 마주친 곳이 바로 미쓰코시 백화점이다.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곳이 아닌, 선진 문화를 흡수, 전파하는 ‘문화 살롱’이자, 근대를 직접 느낄 수 있는 경성 최고의 명물이었다.
키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