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본문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토론하기
(1) ‘님의 침묵‘에서 역설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어디인지 찾아보자.
(2)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시인은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다고 말한다. 이 시행이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해설읽기
「님의 침묵」 속의 역설 ──── 역설이란 대중들의 통념에 위배되거나 표현 상 논리적 모순을 포함하고 있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러한 모순을 통해서 그 배후 깊숙한 곳에 놓여있는 의미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유와 표현의 방법을 말한다. 역설은 평범한 일상에서도 드물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런 만큼 대단해 보이지도 않고 사소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역설은 앎의 형성에 있어서 상당한 기여를 보여주는 언어적 활동이다. 그것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화자가 표현 속에 숨겨놓은 함의에 대해 추론하게 만들고 깨닫도록 독려한다. 표면에 드러난 모순은 듣는 이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유발하고 그의 생각은 모순 뒤에 감추어진 진의가 무엇인지 무의식적으로 추적한다. 이 과정의 끝에서 문제의 역설에 대해 어떤 답을 찾아내면 그는 가벼운 충격과 감탄 그리고 즐거움과 더불어 역설적 표현이 품고 있던 내용을 기존에는 없었던 각도와 지평에서 바라보며 새로운 이해와 앎을 향유할 것이다.
그렇다면 역설은 「님의 침묵」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까? 이 시에서 화자는 이별이 곧 만남이라는 역설적 인식을 들려준다. 시의 마지막 행에 등장하는 ‘사랑의 노래’는 이별로부터 오는 슬픔의 노래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슬픔은 곧 희망으로 전이되고 만남에 대한 기대감으로 승화된다. 이러한 시상전개 속에는 이별은 결국 이별이 아닌 만남이라는 역설이 자리잡고 있다. 바로 이곳이 역설이 스며있는 곳이다. 역설이란 어떤 상황을 분석해보았을 때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거나 혹은 한꺼번에 참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는 두 개의 결론 혹은 선택지가 나오는 모순적 상황을 통해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사유나 언어적 표현방식이라고 했다. 이별이 곧 만남이라는 인식 역시 이별A과 이별이 아닌 것~A, 즉 만남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두 항을 양립시키고 이를 통해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향한 한결같은 의지와 희망을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님의 침묵」 속에 역설의 원리가 담겨있다고 말할 수 있다.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향한 의지가 담긴 「님의 침묵」 ──── 「님의 침묵」은 개인적인 사랑과 이별의 슬픔을 넘어서,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향한 저항의 정신을 내포하고 있다. 한용운은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다고 노래한다. 보내지 않았으니 그 자리에 있어야하건만 님은 원래 있던 자리에 있지 않다. 보내지도 않은 님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 시행 역시 역설적이다. 시인은 역설을 통해 무슨 메시지를 강조하고 싶은 것인가?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 떠나가는 연인과 다시 만나기를 소망하는 사랑의 시로 나타나지만, 그 이면에는 조국을 잃어가는 한 국민이 나라를 되찾기를 바라며 노래하는 민족적 희망의 시이기도 하다. 이러한 각도에서 볼 때, ‘님’은 일제에 빼앗긴 조국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그 조국은 지금 어디 있는가?
시인의 말처럼, 조국은 우리를 떠났지만 떠나지 않은 것이고, 떠나지 않았지만 떠난 것이다. 조국은 우리 곁을 떠나갔다. 주권을 빼앗겨 이 나라의 땅과 그에 대한 권리가 우리의 손에서 멀어져 일제에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이 땅은 나와 우리 백성들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조국은 여전히 우리 발아래 그대로 있다. 조국과 조국의 땅은 오늘도 늘 있던 그 자리에 있고 한용운 자신을 비롯해서 이 땅의 백성들을 떠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그때까지 조국이라고 불렀던 그 땅과 똑같은 땅을 밟고 서있다. 현상적으로는 나의 조국이 내 곁을 떠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떠나지 않고 단지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 역시 나도 님을 보내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용운은 개인적 감정의 표현을 통해 당시 우리나라가 처한 절박한 상황과 민족주의적 의지를 녹여내,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이 시집에서 그는 자연과 사랑을 상징적으로 사용하여 민족의 아픔을 역설을 통해 표현하고, 이별의 고통 속에서도 희망과 자유를 향한 불굴의 의지를 드러낸다. 이 시에서 ‘이별 → 이별 후의 슬픔 → 희망으로의 전이 → 만남’이라는 역설적 시상 전개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는 이별의 시가 아니라 만남의 시요, 절망의 시가 아니라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향한 희망의 시이자 기다림의 시가 된다.
키워드
님의 침묵, 만해, 사랑, 역설, 패러독스, 한용운
고전본문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토론하기
(1) ‘님의 침묵‘에서 역설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어디인지 찾아보자.
(2)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시인은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다고 말한다. 이 시행이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해설읽기
「님의 침묵」 속의 역설 ──── 역설이란 대중들의 통념에 위배되거나 표현 상 논리적 모순을 포함하고 있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러한 모순을 통해서 그 배후 깊숙한 곳에 놓여있는 의미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유와 표현의 방법을 말한다. 역설은 평범한 일상에서도 드물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런 만큼 대단해 보이지도 않고 사소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역설은 앎의 형성에 있어서 상당한 기여를 보여주는 언어적 활동이다. 그것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화자가 표현 속에 숨겨놓은 함의에 대해 추론하게 만들고 깨닫도록 독려한다. 표면에 드러난 모순은 듣는 이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유발하고 그의 생각은 모순 뒤에 감추어진 진의가 무엇인지 무의식적으로 추적한다. 이 과정의 끝에서 문제의 역설에 대해 어떤 답을 찾아내면 그는 가벼운 충격과 감탄 그리고 즐거움과 더불어 역설적 표현이 품고 있던 내용을 기존에는 없었던 각도와 지평에서 바라보며 새로운 이해와 앎을 향유할 것이다.
그렇다면 역설은 「님의 침묵」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까? 이 시에서 화자는 이별이 곧 만남이라는 역설적 인식을 들려준다. 시의 마지막 행에 등장하는 ‘사랑의 노래’는 이별로부터 오는 슬픔의 노래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슬픔은 곧 희망으로 전이되고 만남에 대한 기대감으로 승화된다. 이러한 시상전개 속에는 이별은 결국 이별이 아닌 만남이라는 역설이 자리잡고 있다. 바로 이곳이 역설이 스며있는 곳이다. 역설이란 어떤 상황을 분석해보았을 때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거나 혹은 한꺼번에 참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는 두 개의 결론 혹은 선택지가 나오는 모순적 상황을 통해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사유나 언어적 표현방식이라고 했다. 이별이 곧 만남이라는 인식 역시 이별A과 이별이 아닌 것~A, 즉 만남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두 항을 양립시키고 이를 통해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향한 한결같은 의지와 희망을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님의 침묵」 속에 역설의 원리가 담겨있다고 말할 수 있다.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향한 의지가 담긴 「님의 침묵」 ──── 「님의 침묵」은 개인적인 사랑과 이별의 슬픔을 넘어서,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향한 저항의 정신을 내포하고 있다. 한용운은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다고 노래한다. 보내지 않았으니 그 자리에 있어야하건만 님은 원래 있던 자리에 있지 않다. 보내지도 않은 님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 시행 역시 역설적이다. 시인은 역설을 통해 무슨 메시지를 강조하고 싶은 것인가?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 떠나가는 연인과 다시 만나기를 소망하는 사랑의 시로 나타나지만, 그 이면에는 조국을 잃어가는 한 국민이 나라를 되찾기를 바라며 노래하는 민족적 희망의 시이기도 하다. 이러한 각도에서 볼 때, ‘님’은 일제에 빼앗긴 조국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그 조국은 지금 어디 있는가?
시인의 말처럼, 조국은 우리를 떠났지만 떠나지 않은 것이고, 떠나지 않았지만 떠난 것이다. 조국은 우리 곁을 떠나갔다. 주권을 빼앗겨 이 나라의 땅과 그에 대한 권리가 우리의 손에서 멀어져 일제에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이 땅은 나와 우리 백성들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조국은 여전히 우리 발아래 그대로 있다. 조국과 조국의 땅은 오늘도 늘 있던 그 자리에 있고 한용운 자신을 비롯해서 이 땅의 백성들을 떠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그때까지 조국이라고 불렀던 그 땅과 똑같은 땅을 밟고 서있다. 현상적으로는 나의 조국이 내 곁을 떠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떠나지 않고 단지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 역시 나도 님을 보내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용운은 개인적 감정의 표현을 통해 당시 우리나라가 처한 절박한 상황과 민족주의적 의지를 녹여내,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이 시집에서 그는 자연과 사랑을 상징적으로 사용하여 민족의 아픔을 역설을 통해 표현하고, 이별의 고통 속에서도 희망과 자유를 향한 불굴의 의지를 드러낸다. 이 시에서 ‘이별 → 이별 후의 슬픔 → 희망으로의 전이 → 만남’이라는 역설적 시상 전개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는 이별의 시가 아니라 만남의 시요, 절망의 시가 아니라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향한 희망의 시이자 기다림의 시가 된다.
키워드
님의 침묵, 만해, 사랑, 역설, 패러독스, 한용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