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어리석은 아저씨’라는 뜻의 「치숙(痴叔)」은 사회주의 활동으로 감옥에 갔다 온 진보적 지식인(오촌 고모부)을 나름 세상 물정에 밝은 일반인(오촌 조카)의 시선에서 그리고 있다. ‘나’의 눈에 비친 아저씨는 대학에서 5년이나 경제학을 공부했건만 경제적으로 무능할 뿐 아니라 불한당이나 다름없는 “부자 사람의 돈 뺏어 쓰는 사회주의”를 하다가 전과자가 되고 폐병까지 얻은 실패한 인생이다. 평생 정신 못 차리고 아주머니 고생만 시키는 아저씨는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낫다.
고전본문
우리 아저씨 말이지요? 아따 저 거시키, 한참 당년에 무엇이냐 그놈의 것, 사회주의라더냐 막덕1)이라더냐, 그걸 하다 징역 살고 나와서 폐병으로 시방 앓고 누웠는 우리 오촌 고모부 그 양반……
머, 말도 마시오. 대체 사람이 어쩌면, 글쎄…… 내 원!
신세 간데없지요.
자, 십 년 적공2), 대학교까지 공부한 것 풀어 먹지도 못했지요. 좋은 청춘 어영부영 다 보냈지요, 신분에는 전과자라는 붉은 도장 찍혔지요. 몸에는 몹쓸 병까지 들었지요.
이 신세를 해가지굴랑은 굴속 같은 오두막집 단칸 셋방 구석에서 사시장철 밤이나 낮이나 눈 따악 감고 드러누웠군요.
재산이 어디 집 터전인들 있을 턱이 있나요. 서발막대3) 내저어야 짚 검불 하나 걸리는 것 없는 철빈4)인데. (중략)
그러고저러고 간에 자기도 인제는 속 차려야지요. 하기야 속을 차려서 무얼 하재도 전과자니까 관리나 또 회사 같은 데는 들어가지 못하겠지만 그야 자기가 저지른 일인 걸 누구를 원망할 일도 아니고, 그러니 막 벗어부치고 노동이라도 해야지요.
대학교 출신이 막벌이 노동이란 게 꼴 가관이지만 그래도 할 수 없지, 뭐. (중략)
사실 우리 아저씨 양반은 대학교까지 졸업하고도 이제는 기껏 해먹을 거란 막벌이 노동밖에 없는데, 보통학교 사 년 겨우 다니고서도 시방 앞길이 환히 트인 내게다 대면 고쓰까이5)만도 못하지요.
아, 그런데 글쎄 막벌이 노동을 하고 어쩌고 하기는커녕 조금 바시시 살아날 만하니까 이 주책꾸러기 양반이 무슨 맘보를 먹는고 하니, 내 참 기가 막혀!
아니, 그놈의 것하고는 무슨 대천지원수6)가 졌단 말인지, 어쨌다고 그걸 끝끝내 하지 못해서 그 발광인고?
그러나마 그게 밥이 생기는 노릇이란 말인지? 명예를 얻는 노릇이란 말인지. 필경은, 붙잡혀 가서 징역 사는 놀음?
아마 그놈의 것이 아편하고 꼭 같은가 봐요. 그렇길래 한번 맛을 들이면 끊지를 못하지요?
그렇지만 실상 알고 보면 그게 그다지 재미가 난다거나 맛이 있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더군 그래요. 부랑당패7)던데요. 하릴없이 부랑당팹디다. (중략)
사람이란 것은 제가끔 분지복8)이 있어서 기수9)를 잘 타고나든지 부지런하면 부자가 되는 법이요, 복록을 못 타고나든지 게으른 놈은 가난하게 사는 법이요, 다 이렇게 마련인데, 그거야말로 공평한 천리인 것을, 됩다 불공평하다니 될 말이오? 그러고서 억지로 남의 것을 뺏어먹자고 들다니 그놈들이 부랑당이지 무어요. (중략)
글쎄 그놈의 짓이 그렇게 세상 망쳐놀 장본인 줄은 모르고서 가난한 놈들, 그중에도 일하기 싫은 게으름뱅이들이 위선 당장 부자 사람네 것을 뺏어먹는다니까 거기 혹해가지굴랑 너도나도 와 하니 참섭10)을 했다는구려.
바로 저 아라사11)가 그랬대요.
그래서 아니나 다를까 농군들이 곡식을 안 만들기 때문에 사람이 수만 명씩 굶어 죽는다는구려. 빠안한 이치지 뭐.
위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그 지랄들을 했다가 잘코사니12)야!
아 그런데, 그 못된 놈의 풍습이 삽시간에 동서양 각국 안 간 데 없이 퍼져가지굴랑 한동안 내지13)에도 마구 굉장히 드세게 돌아다녔고, 내지가 그러니까 멋도 모르는 죄선14) 영감상들도 덩달아서 그 숭내를 냈다나요.
그렇지만 시방은 그새 나라에서 엄하게 밝히고 금하고 한 덕에 많이 너끔해졌고 그런 마음 먹는 사람은 별반 없다나 봐요.
그럴 게지 글쎄. 아 해서 좋을 양이면야 나라에선들 왜 금하며 무슨 원수가 졌다고 붙잡아다가 징역을 살리나요. (중략)
나라라는 게 무언데? 그런 걸 다 잘 분간해서 이럴 건 이러고 저럴 건 저러라고 지시하고, 그 덕에 백성들은 제각기 제 분수대로 편안히 살도록 애써주는 게 나라 아니오?
그놈의 것 사회주의만 하더라도 나라에서 금하질 않고 저희가 하는 대로 둬두었어 보아? 시방쯤 세상이 무엇이 됐을지…….
다른 사람들도 낭패 본 사람이 많았겠지만, 위선 나만 하더라도 글쎄 어쩔 뻔했어! 아무 일도 다 틀리고 뒤죽박죽이지.
[출전] 채만식, 「치숙(痴叔)」
1) 막덕: 요즘 식으로 ‘마르크스(맑스) 덕후’를 연상시키는 이 단어는 마르크스주의를 믿는 사람이나 행위를 낮추어 부르는 말이다.
2) 적공(積功): 공을 쌓음. 어떤 일에 많은 힘을 들이며 애를 씀.
3) 서발막대: 매우 긴 나무나 막대를 강조하여 이르는 말.
4) 철빈(鐵貧): 더할 수 없이 가난함. 또는 그런 가난.
5) 고쓰까이(小使): 고즈카이. 관청 등에 고용되어 잔심부름을 맡아 하는 사람을 뜻하는 일본어. 사환(使喚), 잔심부름꾼, 하인.
6) 대천지원수: 원래는 불구대천지원수(不俱戴天之怨讐), 즉 ‘하늘을 같이 이지 못하는 원수’라는 뜻으로, 같은 세상에서 살 수 없을 만큼 원한이 깊게 맺힌 원수를 말한다.
7) 부랑당패: ‘불한당패(不汗黨牌)’의 비표준어. 떼를 지어 다니며 재물을 마구 빼앗는 사람들의 무리 또는 남 괴롭히는 것을 일삼는 사람들의 무리.
8) 분지복(分之福): 분복. 각자 타고난 복.
9) 기수(氣數): 저절로 오고 가고 한다는 길흉화복의 운수.
10) 참섭(參涉): 어떤 일에 끼어들어 간섭함.
11) 아라사(俄羅斯): ‘러시아’의 음역어.
12) 잘코사니: 고소하게 여겨지는 일. 주로 미운 사람이 불행을 당한 경우에 하는 말이다.
13) 내지(內地): 외국이나 식민지에서 본국을 이르는 말로 ‘일본’을 가리킨다.
14) 죄선: 조선.
토론하기
(1) 소설 뒷부분에 나오는 아저씨와 ‘나’의 대화까지 보고 난 후 인용문에 나타난 아저씨에 대한 ‘나’의 평가를 재평가해보자. 이 작품에서 작가가 풍자하고자 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2) 작품의 배경이 식민지 상황임을 고려했을 때, 일본인 상점에서 돈을 벌고 일본 여자와 결혼하며 일본식 생활 양식을 동경하는 조카의 인생 철학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3)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은 무능·무가치함과 연결되며, 남들에게 무시당하기에 십상이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대기업의 스카우트 제의도 거부한 채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발명에 평생 매달리며 가족들을 고생시키는 아버지와 배움은 짧지만 자신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잘 보여서 인맥을 통해 번 돈으로 건물주가 되어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해주는 아버지 중에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누구의 자녀로 살고 싶은가?
해설읽기
관찰자이자 화자인 조카 ‘나’는 올해 스물한 살로, 보통학교(일제 강점기의 초등학교. 4년제에서 6년제로 바뀌었다) 4년을 마치고 일본인이 운영하는 상점에서 잔뼈가 굵었다. 일곱 살에 부모님을 여의고 의탁할 곳이 없었을 때, 당시 소박을 맞고 친정살이를 하던 아주머니가 거둬준 덕분에 열두 살까지 그 집에서 지내며 초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아주머니의 시집과 친정이 모두 폭삭 망한 탓에―이는 아저씨의 투옥 때문으로 보인다― 어린 나이에 돈을 벌어야 했지만, 나름 눈치도 빠르고 키워준 은공을 잊지 않고 갚을 만큼 경우가 밝다.
일찌감치 고생살이를 해서 세상 물정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조카는 철저하게 본인의 입장에서 오촌 고모부를 지켜본 결과를 풀어놓는다. 올해 서른셋인 아저씨는 일본 대학에서 5년이나 경제학을 공부했다. “경제는 돈 모으는 것”이고, “경제학이면 돈 모으는 학문”인데 아저씨는 “대학교까지 다니면서 경제 공부를 하구두 왜 돈을 못 모으나” 이해할 수 없다. 경제 공부 대신 “모아둔 부자 사람의 돈을 뺏어 쓰는” ‘부랑당패’인 사회주의에 빠져 전과자가 되고 폐병까지 얻어 골골거리는 실패한 인생이다. 또한 조혼으로 만난 본처인 아주머니를 버리고 학생 출신의 신여성과 딴 살림까지 차렸다가, 5년 동안 징역살이를 하고 중병까지 걸려 돌아와 아주머니에게 얹혀사는 배은망덕하고 염치없는 인간이다. 아주머니가 지극한 보살핌으로 다 죽어가던 목숨을 살려놨으면 이제는 고마움을 깨달아 정신 차리고 막노동이라도 해서 제 밥벌이는 할 법한데, 이 주책꾸러기 양반은 조금 기력을 찾을만하니 마약에 중독된 것마냥 다시 사회주의를 한다. 이런 아저씨를 띠동갑인 조카는 맘껏 조롱하며, 속으로 “어디루 대나 그 양반은 죽는 게 두루 좋은 일인데 죽지도 아니”한다고 여긴다.
‘나’는 미래에 대해 당차고 야무진 포부가 있다. ‘나’의 이상과 계획은 지금 일하고 있는 일본인 상점에서 10년 정도 더 신용을 쌓으며 일한 후, 주인이 독립된 점포를 내어주면 환갑까지 30년 동안 장사해서 10만 원을 모아 떵떵거리고 사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 여자와 결혼하고, 이름도 일본식으로 바꾸며, 아이들도 일본인 학교에 보내고, 일본말만 쓰면서 일본인처럼 살 것이다. 정해진 계획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 나의 앞길에 “세상 망쳐버릴 사회주의”를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조카의 이야기는 구구절절 옳다. 그러나 ‘나’는 식민지인 당대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심지어 일본 사람으로 동화되기 바라는 모습은 일제의 우민화 정책에 순응해서 살아가는 노예적 인간과 다름없다. 또한 사회주의를 “게으름뱅이 몇 놈”이 공모하여 “부자가 가진 것을 우리 가난한 사람들하고 다 같이 고르게 노나” 먹는 “날부랑당”으로 이해하는 것도 지극히 피상적이다.
이에 반해 아저씨는 당대 사회의 지배 질서에 반기를 들고 구조적인 모순을 개혁하고자 노력했다. 아주머니에게 이혼을 제기한 것도 염치없는 난봉꾼이라고 매도할 것이 아니라, 당시 만연했던 애정 없는 조혼 풍습에 대한 저항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그것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힘이 없었던 한 여자에겐 더없이 잔인하고 가혹한 처사였을지라도 말이다. 그는 사회주의 운동을 통해 현실을 바꾸고자 했지만, 제국주의를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 일제 치하에서 그에게 남은 것은 폐병과 전과자라는 낙인뿐이다.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는 무기력하고 가난한 패배자, 낙오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키워드
전후맥락
‘어리석은 아저씨’라는 뜻의 「치숙(痴叔)」은 사회주의 활동으로 감옥에 갔다 온 진보적 지식인(오촌 고모부)을 나름 세상 물정에 밝은 일반인(오촌 조카)의 시선에서 그리고 있다. ‘나’의 눈에 비친 아저씨는 대학에서 5년이나 경제학을 공부했건만 경제적으로 무능할 뿐 아니라 불한당이나 다름없는 “부자 사람의 돈 뺏어 쓰는 사회주의”를 하다가 전과자가 되고 폐병까지 얻은 실패한 인생이다. 평생 정신 못 차리고 아주머니 고생만 시키는 아저씨는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낫다.
고전본문
우리 아저씨 말이지요? 아따 저 거시키, 한참 당년에 무엇이냐 그놈의 것, 사회주의라더냐 막덕1)이라더냐, 그걸 하다 징역 살고 나와서 폐병으로 시방 앓고 누웠는 우리 오촌 고모부 그 양반……
머, 말도 마시오. 대체 사람이 어쩌면, 글쎄…… 내 원!
신세 간데없지요.
자, 십 년 적공2), 대학교까지 공부한 것 풀어 먹지도 못했지요. 좋은 청춘 어영부영 다 보냈지요, 신분에는 전과자라는 붉은 도장 찍혔지요. 몸에는 몹쓸 병까지 들었지요.
이 신세를 해가지굴랑은 굴속 같은 오두막집 단칸 셋방 구석에서 사시장철 밤이나 낮이나 눈 따악 감고 드러누웠군요.
재산이 어디 집 터전인들 있을 턱이 있나요. 서발막대3) 내저어야 짚 검불 하나 걸리는 것 없는 철빈4)인데. (중략)
그러고저러고 간에 자기도 인제는 속 차려야지요. 하기야 속을 차려서 무얼 하재도 전과자니까 관리나 또 회사 같은 데는 들어가지 못하겠지만 그야 자기가 저지른 일인 걸 누구를 원망할 일도 아니고, 그러니 막 벗어부치고 노동이라도 해야지요.
대학교 출신이 막벌이 노동이란 게 꼴 가관이지만 그래도 할 수 없지, 뭐. (중략)
사실 우리 아저씨 양반은 대학교까지 졸업하고도 이제는 기껏 해먹을 거란 막벌이 노동밖에 없는데, 보통학교 사 년 겨우 다니고서도 시방 앞길이 환히 트인 내게다 대면 고쓰까이5)만도 못하지요.
아, 그런데 글쎄 막벌이 노동을 하고 어쩌고 하기는커녕 조금 바시시 살아날 만하니까 이 주책꾸러기 양반이 무슨 맘보를 먹는고 하니, 내 참 기가 막혀!
아니, 그놈의 것하고는 무슨 대천지원수6)가 졌단 말인지, 어쨌다고 그걸 끝끝내 하지 못해서 그 발광인고?
그러나마 그게 밥이 생기는 노릇이란 말인지? 명예를 얻는 노릇이란 말인지. 필경은, 붙잡혀 가서 징역 사는 놀음?
아마 그놈의 것이 아편하고 꼭 같은가 봐요. 그렇길래 한번 맛을 들이면 끊지를 못하지요?
그렇지만 실상 알고 보면 그게 그다지 재미가 난다거나 맛이 있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더군 그래요. 부랑당패7)던데요. 하릴없이 부랑당팹디다. (중략)
사람이란 것은 제가끔 분지복8)이 있어서 기수9)를 잘 타고나든지 부지런하면 부자가 되는 법이요, 복록을 못 타고나든지 게으른 놈은 가난하게 사는 법이요, 다 이렇게 마련인데, 그거야말로 공평한 천리인 것을, 됩다 불공평하다니 될 말이오? 그러고서 억지로 남의 것을 뺏어먹자고 들다니 그놈들이 부랑당이지 무어요. (중략)
글쎄 그놈의 짓이 그렇게 세상 망쳐놀 장본인 줄은 모르고서 가난한 놈들, 그중에도 일하기 싫은 게으름뱅이들이 위선 당장 부자 사람네 것을 뺏어먹는다니까 거기 혹해가지굴랑 너도나도 와 하니 참섭10)을 했다는구려.
바로 저 아라사11)가 그랬대요.
그래서 아니나 다를까 농군들이 곡식을 안 만들기 때문에 사람이 수만 명씩 굶어 죽는다는구려. 빠안한 이치지 뭐.
위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그 지랄들을 했다가 잘코사니12)야!
아 그런데, 그 못된 놈의 풍습이 삽시간에 동서양 각국 안 간 데 없이 퍼져가지굴랑 한동안 내지13)에도 마구 굉장히 드세게 돌아다녔고, 내지가 그러니까 멋도 모르는 죄선14) 영감상들도 덩달아서 그 숭내를 냈다나요.
그렇지만 시방은 그새 나라에서 엄하게 밝히고 금하고 한 덕에 많이 너끔해졌고 그런 마음 먹는 사람은 별반 없다나 봐요.
그럴 게지 글쎄. 아 해서 좋을 양이면야 나라에선들 왜 금하며 무슨 원수가 졌다고 붙잡아다가 징역을 살리나요. (중략)
나라라는 게 무언데? 그런 걸 다 잘 분간해서 이럴 건 이러고 저럴 건 저러라고 지시하고, 그 덕에 백성들은 제각기 제 분수대로 편안히 살도록 애써주는 게 나라 아니오?
그놈의 것 사회주의만 하더라도 나라에서 금하질 않고 저희가 하는 대로 둬두었어 보아? 시방쯤 세상이 무엇이 됐을지…….
다른 사람들도 낭패 본 사람이 많았겠지만, 위선 나만 하더라도 글쎄 어쩔 뻔했어! 아무 일도 다 틀리고 뒤죽박죽이지.
[출전] 채만식, 「치숙(痴叔)」
1) 막덕: 요즘 식으로 ‘마르크스(맑스) 덕후’를 연상시키는 이 단어는 마르크스주의를 믿는 사람이나 행위를 낮추어 부르는 말이다.
2) 적공(積功): 공을 쌓음. 어떤 일에 많은 힘을 들이며 애를 씀.
3) 서발막대: 매우 긴 나무나 막대를 강조하여 이르는 말.
4) 철빈(鐵貧): 더할 수 없이 가난함. 또는 그런 가난.
5) 고쓰까이(小使): 고즈카이. 관청 등에 고용되어 잔심부름을 맡아 하는 사람을 뜻하는 일본어. 사환(使喚), 잔심부름꾼, 하인.
6) 대천지원수: 원래는 불구대천지원수(不俱戴天之怨讐), 즉 ‘하늘을 같이 이지 못하는 원수’라는 뜻으로, 같은 세상에서 살 수 없을 만큼 원한이 깊게 맺힌 원수를 말한다.
7) 부랑당패: ‘불한당패(不汗黨牌)’의 비표준어. 떼를 지어 다니며 재물을 마구 빼앗는 사람들의 무리 또는 남 괴롭히는 것을 일삼는 사람들의 무리.
8) 분지복(分之福): 분복. 각자 타고난 복.
9) 기수(氣數): 저절로 오고 가고 한다는 길흉화복의 운수.
10) 참섭(參涉): 어떤 일에 끼어들어 간섭함.
11) 아라사(俄羅斯): ‘러시아’의 음역어.
12) 잘코사니: 고소하게 여겨지는 일. 주로 미운 사람이 불행을 당한 경우에 하는 말이다.
13) 내지(內地): 외국이나 식민지에서 본국을 이르는 말로 ‘일본’을 가리킨다.
14) 죄선: 조선.
토론하기
(1) 소설 뒷부분에 나오는 아저씨와 ‘나’의 대화까지 보고 난 후 인용문에 나타난 아저씨에 대한 ‘나’의 평가를 재평가해보자. 이 작품에서 작가가 풍자하고자 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2) 작품의 배경이 식민지 상황임을 고려했을 때, 일본인 상점에서 돈을 벌고 일본 여자와 결혼하며 일본식 생활 양식을 동경하는 조카의 인생 철학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3)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은 무능·무가치함과 연결되며, 남들에게 무시당하기에 십상이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대기업의 스카우트 제의도 거부한 채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발명에 평생 매달리며 가족들을 고생시키는 아버지와 배움은 짧지만 자신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잘 보여서 인맥을 통해 번 돈으로 건물주가 되어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해주는 아버지 중에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누구의 자녀로 살고 싶은가?
해설읽기
관찰자이자 화자인 조카 ‘나’는 올해 스물한 살로, 보통학교(일제 강점기의 초등학교. 4년제에서 6년제로 바뀌었다) 4년을 마치고 일본인이 운영하는 상점에서 잔뼈가 굵었다. 일곱 살에 부모님을 여의고 의탁할 곳이 없었을 때, 당시 소박을 맞고 친정살이를 하던 아주머니가 거둬준 덕분에 열두 살까지 그 집에서 지내며 초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아주머니의 시집과 친정이 모두 폭삭 망한 탓에―이는 아저씨의 투옥 때문으로 보인다― 어린 나이에 돈을 벌어야 했지만, 나름 눈치도 빠르고 키워준 은공을 잊지 않고 갚을 만큼 경우가 밝다.
일찌감치 고생살이를 해서 세상 물정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조카는 철저하게 본인의 입장에서 오촌 고모부를 지켜본 결과를 풀어놓는다. 올해 서른셋인 아저씨는 일본 대학에서 5년이나 경제학을 공부했다. “경제는 돈 모으는 것”이고, “경제학이면 돈 모으는 학문”인데 아저씨는 “대학교까지 다니면서 경제 공부를 하구두 왜 돈을 못 모으나” 이해할 수 없다. 경제 공부 대신 “모아둔 부자 사람의 돈을 뺏어 쓰는” ‘부랑당패’인 사회주의에 빠져 전과자가 되고 폐병까지 얻어 골골거리는 실패한 인생이다. 또한 조혼으로 만난 본처인 아주머니를 버리고 학생 출신의 신여성과 딴 살림까지 차렸다가, 5년 동안 징역살이를 하고 중병까지 걸려 돌아와 아주머니에게 얹혀사는 배은망덕하고 염치없는 인간이다. 아주머니가 지극한 보살핌으로 다 죽어가던 목숨을 살려놨으면 이제는 고마움을 깨달아 정신 차리고 막노동이라도 해서 제 밥벌이는 할 법한데, 이 주책꾸러기 양반은 조금 기력을 찾을만하니 마약에 중독된 것마냥 다시 사회주의를 한다. 이런 아저씨를 띠동갑인 조카는 맘껏 조롱하며, 속으로 “어디루 대나 그 양반은 죽는 게 두루 좋은 일인데 죽지도 아니”한다고 여긴다.
‘나’는 미래에 대해 당차고 야무진 포부가 있다. ‘나’의 이상과 계획은 지금 일하고 있는 일본인 상점에서 10년 정도 더 신용을 쌓으며 일한 후, 주인이 독립된 점포를 내어주면 환갑까지 30년 동안 장사해서 10만 원을 모아 떵떵거리고 사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 여자와 결혼하고, 이름도 일본식으로 바꾸며, 아이들도 일본인 학교에 보내고, 일본말만 쓰면서 일본인처럼 살 것이다. 정해진 계획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 나의 앞길에 “세상 망쳐버릴 사회주의”를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조카의 이야기는 구구절절 옳다. 그러나 ‘나’는 식민지인 당대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심지어 일본 사람으로 동화되기 바라는 모습은 일제의 우민화 정책에 순응해서 살아가는 노예적 인간과 다름없다. 또한 사회주의를 “게으름뱅이 몇 놈”이 공모하여 “부자가 가진 것을 우리 가난한 사람들하고 다 같이 고르게 노나” 먹는 “날부랑당”으로 이해하는 것도 지극히 피상적이다.
이에 반해 아저씨는 당대 사회의 지배 질서에 반기를 들고 구조적인 모순을 개혁하고자 노력했다. 아주머니에게 이혼을 제기한 것도 염치없는 난봉꾼이라고 매도할 것이 아니라, 당시 만연했던 애정 없는 조혼 풍습에 대한 저항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그것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힘이 없었던 한 여자에겐 더없이 잔인하고 가혹한 처사였을지라도 말이다. 그는 사회주의 운동을 통해 현실을 바꾸고자 했지만, 제국주의를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 일제 치하에서 그에게 남은 것은 폐병과 전과자라는 낙인뿐이다.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는 무기력하고 가난한 패배자, 낙오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키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