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남한산성은 청나라 군사에 포위되었고 외부와 단절되었다. 겨울이 깊어가는 가운데 성 내부의 식수와 음식이 동나기 시작했다. 그 곤궁함이 극심하여 백성부터 임금에 이르기까지 배고픔에 주리고 추위에 떨었다. 성의 군사들 또한 기아와 동상으로 쓰러져갔다. 소규모 국지전을 통해 몇몇 작은 이득을 보기도 하였으나 전세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군의 최고 지휘관 용골대는 조선 출신 역관 정명수를 통해 성안으로 문서를 전달한다. 조선의 조정은 적장에게서 온 문서를 놓고 갑론을박한다. 논쟁은 글의 서식과 문체의 무례함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이제 성문을 열고 나오라는 글의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로 귀결된다. 설전(舌戰)은 화친을 주장하는 이조판서 최명길과 싸워서 지킬 것을 주장하는 예조판서 김상헌의 발언을 통해 전개된다.
고전본문
최명길의 목소리는 더욱 가라앉았다. 최명길은 천천히 말했다.
(계속 성을 지키고 싸우자는)상헌의 말은 지극히 의로우나 그것은 말일 뿐입니다. 상헌은 말을 중히 여기고 생을 가벼이 여기는 자이옵니다. 갇힌 성안에서 어찌 말의 길을 따라가오리까.
김상헌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여 들었다.
전하, 죽음이 가볍지 어찌 삶이 가볍겠습니까. 명길이 말하는 생이란 곧 죽음입니다. 명길은 삶과 죽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삶을 죽음과 뒤섞어 삶을 욕되게 하는 자이옵니다. 신은 가벼운 죽음으로 무거운 삶을 지탱하려 하옵니다.
최명길의 목소리에도 울음기가 섞여 들었다.
전하, 죽음은 가볍지 않사옵니다. 만백성과 더불어 죽음을 각오하지 마소서. 죽음으로 삶을 지탱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임금이 주먹으로 서안을 내리치며 소리질렀다.
어허, 그만들 하라. 그만들 해
최명길은 계속 말했다.
전하, 그만할 일이 아니오니 신의 말을 막지 마옵소서. 장마가 지면 물이 한 골로 모이듯 말도 한 곳으로 쏠리는 것입니다. 성 안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묘당의 말들은 이른바 대의로 쏠려서 사세를 돌보지 않으니, 대의를 말하는 목소리는 크고 사세를 살피는 목소리는 조심스러운 것입니다. 사세가 말과 맞지 않으며 산목숨이 어느 쪽을 좇아야 하겠습니까. 상헌은 우뚝하고 신은 비루하며, 상헌은 충직하고 신은 불민한 줄 아오나 상헌을 충렬의 반열에 올리시더라도 신의 뜻을 따라주시옵소서.
(중략)
김상헌이 앞으로 나왔다.
전하, 뜻을 빼앗기면 모든 것을 빼앗길 터인데, 이 문서가 과연 살자는 문서이옵니까?
(중략)
최명길이 말했다.
상헌은 제 자신에게 맞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이제 적들이 성벽을 넘어 들어오면 세상은 기약할 수 없을 것이온데, 상헌이 말한 근본은 태평한 세월의 것이옵니다. 세상이 모두 불타고 무너진 풀밭에도 아름다운 꽃은 피어날 터인테, 그 꽃은 반드시 상헌의 넋일 것이옵니다. 상헌은 과연 백이(伯夷)이오나 신은 아직 무너지지 않은 초라한 세상에서 만고의 역적이 되고자 하옵니다. 전하의 성단으로 신의 문서를 칸에게 보내 주소서.
김훈, [남한산성] 중에서
토론하기
(1) 남한산성에서 40여 일간 버티던 인조는 청나라의 칸이 삼전도에 도착하자 결국 성문을 열고 신하의 옷을 입은 채로 나아가 칸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찧음으로 충성을 맹세한다. 인조와 조선 조정의 이와 같은 행태는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까? 나라와 민족의 자존심을 내팽개친 비굴한 행위인가? 아니면 굴욕을 감수함으로써 나라를 지켜내고 더 이상의 희생을 막아낸 훌륭한 행위인가?
(2) 선비로서 도리를 다하고 장렬히 죽고자 한 김상헌과 만고의 역적이 되더라도 조정의 관리로서 책임을 다해 삶의 길을 찾고자 한 최명길 중 누구를 높게 평가할 수 있을까? 그 이유는?
해설읽기
본문은 조선의 조정이 청과 화친할 것인가 계속 싸울 것인가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모습을 예조판서 김상헌과 이조판서 최명길 간의 첨예한 설전을 통해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남한산성은 청나라의 대군과 겨울의 혹독한 추위에 이중으로 포위되어 있었다. 살인적인 겨울의 추위와 청나라의 압도적인 대군 앞에서 싸울 것인가, 화친할 것인가를 둘러싼 김상헌과 최명길의 논쟁은 치욕스러운 삶과 비장한 죽음의 문제로 확장된다. 성문을 열고 나가 삶의 길을 찾는 것은 치욕스러울 것이며, 계속 싸우는 것은 추위나 굶주림, 청나라 군대의 창칼 아래에서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품에 등장하는 두 인물은 삶과 죽음에 대해 사뭇 다른 인식을 보여준다. 김상헌은 죽음이 삶보다 가볍다고 한다. 사대(事大)의 원칙을 저버리고 오랑캐에게 굴복하여 치욕스러운 삶을 지속하는 것이 죽음보다 더 큰 중압감을 지니므로 가볍게 죽음을 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최명길은 죽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고 말한다. 치욕은 견딜 수 있으나 죽음은 견딜 수 없으며, 삶이 있어야 무언가를 해나갈 수 있기에 그 어떤 말이나 담론, 원칙보다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상헌이 가고자 했던 숭고한 죽음의 길과 최명길이 말한 삶의 길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먼저 김상헌이 가고자 했던 장렬한 죽음의 길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내놓은 수많은 위인들의 일화를 통해 반복적으로 접해왔다. 김상헌이 보여준 선비의 충절과 기개는 오래도록 숭상되어 온 미덕이며 그는 역사에 충절과 절개의 화신으로 남아있다. 심지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일제에 항거한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에도 김상헌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선비로서 도리를 저버리고 치욕스럽게 연명하느니 오히려 죽음을 택하는 것이 쉽다는 그의 기개는 당대의 유교 사상과 오래 이어져 온 애국주의를 통해 전승되어 왔다.
하지만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절개를 지키는 장렬한 죽음의 길을 통해 선비로서의 도리는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고위관료로서의 현실적 처신이라고는 할 수 없다. 김상헌과 최명길은 각각 예조판서와 이조판서로서 중앙행정관서의 수장이다. 현재 대한민국 정부로 치면 김상헌은 외교부,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의 통합 장관이며, 최명길은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의 수장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조정의 당상관으로써 국가 중대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인물들이다. 즉 절개에 따라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전란을 해결하고 수습해야 하는 것이 그들의 맡은 바 과업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절개를 지키고자 죽음을 불사하는 것은 온당한 처사가 아닐 수 있다. 물론 당대의 유교 조선 사회와 현재를 동일한 관점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책임’의 관점에서 볼 때, 교훈은 명확하다.
최명길은 눈물로써 임금에게 삶의 길을 간청한다. 몸서리치는 치욕을 감내하더라도 살아서 ‘종묘사직’을 보존하고 백성의 삶을 지키라는 것이다. 또한 스스로 ‘초라한 세상에서 만고의 역적’이 되더라도 삶의 길을 열겠다고 한다. 치욕과 역사적 오명을 뒤집어 쓰더라도 살아서 자신의 소임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사마천이 명예로운 죽음 대신 궁형을 당하고 치욕스러운 삶을 이어나가야 했던 의미를 사기의 완성에서 찾았던 것처럼 최명길 또한 비참해질 삶의 길을 이어나갈 의미를 관료로서의 책임에서 찾았던 것은 아닐까?
전후맥락
남한산성은 청나라 군사에 포위되었고 외부와 단절되었다. 겨울이 깊어가는 가운데 성 내부의 식수와 음식이 동나기 시작했다. 그 곤궁함이 극심하여 백성부터 임금에 이르기까지 배고픔에 주리고 추위에 떨었다. 성의 군사들 또한 기아와 동상으로 쓰러져갔다. 소규모 국지전을 통해 몇몇 작은 이득을 보기도 하였으나 전세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군의 최고 지휘관 용골대는 조선 출신 역관 정명수를 통해 성안으로 문서를 전달한다. 조선의 조정은 적장에게서 온 문서를 놓고 갑론을박한다. 논쟁은 글의 서식과 문체의 무례함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이제 성문을 열고 나오라는 글의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로 귀결된다. 설전(舌戰)은 화친을 주장하는 이조판서 최명길과 싸워서 지킬 것을 주장하는 예조판서 김상헌의 발언을 통해 전개된다.
고전본문
최명길의 목소리는 더욱 가라앉았다. 최명길은 천천히 말했다.
(계속 성을 지키고 싸우자는)상헌의 말은 지극히 의로우나 그것은 말일 뿐입니다. 상헌은 말을 중히 여기고 생을 가벼이 여기는 자이옵니다. 갇힌 성안에서 어찌 말의 길을 따라가오리까.
김상헌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여 들었다.
전하, 죽음이 가볍지 어찌 삶이 가볍겠습니까. 명길이 말하는 생이란 곧 죽음입니다. 명길은 삶과 죽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삶을 죽음과 뒤섞어 삶을 욕되게 하는 자이옵니다. 신은 가벼운 죽음으로 무거운 삶을 지탱하려 하옵니다.
최명길의 목소리에도 울음기가 섞여 들었다.
전하, 죽음은 가볍지 않사옵니다. 만백성과 더불어 죽음을 각오하지 마소서. 죽음으로 삶을 지탱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임금이 주먹으로 서안을 내리치며 소리질렀다.
어허, 그만들 하라. 그만들 해
최명길은 계속 말했다.
전하, 그만할 일이 아니오니 신의 말을 막지 마옵소서. 장마가 지면 물이 한 골로 모이듯 말도 한 곳으로 쏠리는 것입니다. 성 안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묘당의 말들은 이른바 대의로 쏠려서 사세를 돌보지 않으니, 대의를 말하는 목소리는 크고 사세를 살피는 목소리는 조심스러운 것입니다. 사세가 말과 맞지 않으며 산목숨이 어느 쪽을 좇아야 하겠습니까. 상헌은 우뚝하고 신은 비루하며, 상헌은 충직하고 신은 불민한 줄 아오나 상헌을 충렬의 반열에 올리시더라도 신의 뜻을 따라주시옵소서.
(중략)
김상헌이 앞으로 나왔다.
전하, 뜻을 빼앗기면 모든 것을 빼앗길 터인데, 이 문서가 과연 살자는 문서이옵니까?
(중략)
최명길이 말했다.
상헌은 제 자신에게 맞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이제 적들이 성벽을 넘어 들어오면 세상은 기약할 수 없을 것이온데, 상헌이 말한 근본은 태평한 세월의 것이옵니다. 세상이 모두 불타고 무너진 풀밭에도 아름다운 꽃은 피어날 터인테, 그 꽃은 반드시 상헌의 넋일 것이옵니다. 상헌은 과연 백이(伯夷)이오나 신은 아직 무너지지 않은 초라한 세상에서 만고의 역적이 되고자 하옵니다. 전하의 성단으로 신의 문서를 칸에게 보내 주소서.
김훈, [남한산성] 중에서
토론하기
(1) 남한산성에서 40여 일간 버티던 인조는 청나라의 칸이 삼전도에 도착하자 결국 성문을 열고 신하의 옷을 입은 채로 나아가 칸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찧음으로 충성을 맹세한다. 인조와 조선 조정의 이와 같은 행태는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까? 나라와 민족의 자존심을 내팽개친 비굴한 행위인가? 아니면 굴욕을 감수함으로써 나라를 지켜내고 더 이상의 희생을 막아낸 훌륭한 행위인가?
(2) 선비로서 도리를 다하고 장렬히 죽고자 한 김상헌과 만고의 역적이 되더라도 조정의 관리로서 책임을 다해 삶의 길을 찾고자 한 최명길 중 누구를 높게 평가할 수 있을까? 그 이유는?
해설읽기
본문은 조선의 조정이 청과 화친할 것인가 계속 싸울 것인가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모습을 예조판서 김상헌과 이조판서 최명길 간의 첨예한 설전을 통해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남한산성은 청나라의 대군과 겨울의 혹독한 추위에 이중으로 포위되어 있었다. 살인적인 겨울의 추위와 청나라의 압도적인 대군 앞에서 싸울 것인가, 화친할 것인가를 둘러싼 김상헌과 최명길의 논쟁은 치욕스러운 삶과 비장한 죽음의 문제로 확장된다. 성문을 열고 나가 삶의 길을 찾는 것은 치욕스러울 것이며, 계속 싸우는 것은 추위나 굶주림, 청나라 군대의 창칼 아래에서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품에 등장하는 두 인물은 삶과 죽음에 대해 사뭇 다른 인식을 보여준다. 김상헌은 죽음이 삶보다 가볍다고 한다. 사대(事大)의 원칙을 저버리고 오랑캐에게 굴복하여 치욕스러운 삶을 지속하는 것이 죽음보다 더 큰 중압감을 지니므로 가볍게 죽음을 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최명길은 죽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고 말한다. 치욕은 견딜 수 있으나 죽음은 견딜 수 없으며, 삶이 있어야 무언가를 해나갈 수 있기에 그 어떤 말이나 담론, 원칙보다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상헌이 가고자 했던 숭고한 죽음의 길과 최명길이 말한 삶의 길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먼저 김상헌이 가고자 했던 장렬한 죽음의 길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내놓은 수많은 위인들의 일화를 통해 반복적으로 접해왔다. 김상헌이 보여준 선비의 충절과 기개는 오래도록 숭상되어 온 미덕이며 그는 역사에 충절과 절개의 화신으로 남아있다. 심지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일제에 항거한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에도 김상헌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선비로서 도리를 저버리고 치욕스럽게 연명하느니 오히려 죽음을 택하는 것이 쉽다는 그의 기개는 당대의 유교 사상과 오래 이어져 온 애국주의를 통해 전승되어 왔다.
하지만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절개를 지키는 장렬한 죽음의 길을 통해 선비로서의 도리는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고위관료로서의 현실적 처신이라고는 할 수 없다. 김상헌과 최명길은 각각 예조판서와 이조판서로서 중앙행정관서의 수장이다. 현재 대한민국 정부로 치면 김상헌은 외교부,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의 통합 장관이며, 최명길은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의 수장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조정의 당상관으로써 국가 중대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인물들이다. 즉 절개에 따라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전란을 해결하고 수습해야 하는 것이 그들의 맡은 바 과업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절개를 지키고자 죽음을 불사하는 것은 온당한 처사가 아닐 수 있다. 물론 당대의 유교 조선 사회와 현재를 동일한 관점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책임’의 관점에서 볼 때, 교훈은 명확하다.
최명길은 눈물로써 임금에게 삶의 길을 간청한다. 몸서리치는 치욕을 감내하더라도 살아서 ‘종묘사직’을 보존하고 백성의 삶을 지키라는 것이다. 또한 스스로 ‘초라한 세상에서 만고의 역적’이 되더라도 삶의 길을 열겠다고 한다. 치욕과 역사적 오명을 뒤집어 쓰더라도 살아서 자신의 소임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사마천이 명예로운 죽음 대신 궁형을 당하고 치욕스러운 삶을 이어나가야 했던 의미를 사기의 완성에서 찾았던 것처럼 최명길 또한 비참해질 삶의 길을 이어나갈 의미를 관료로서의 책임에서 찾았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