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이 글은 원래 루쉰이 1923년 12월 26일에 베이징여자고등사범학교 문예회에서 했던 유명한 강연의 일부다. ‘노라’는 입센의 대표작 『인형의 집』의 여주인공 이름으로, 누군가의 ‘인형’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임을 자각하고 남편과 아이들을 뒤로한 채 ‘나’를 찾기 위해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떠나는 노라의 모습은 주체적 여성의 탄생으로 해석되며 5‧4시기의 중국 지식인들에게도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노라의 ‘가출’에 박수를 보낼 때, 루쉰은 “노라가 떠난 후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노라에게는 타락하거나 되돌아오는 두 가지 길 밖에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여기에 내용을 입력하세요.
고전본문
노라는 떠난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중략) 사리에 비추어 추론해본다면 실제로 노라에게는 타락하거나 돌아오거나 이 두 가지 길 밖에 없을 것입니다. 작은 새라면 새장 안은 물론 자유롭지 못하지만, 일단 새장 문을 나서면 밖에는 매나 고양이, 그 밖의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갇힌 지 오래되어 이미 날개가 마비되었고 나는 법마저 잊어버렸다면 확실히 갈 수 있는 길이 없을 것입니다. 또 다른 길은 굶어죽는 것인데, 굶어죽는 건 이미 삶을 떠난 것이니 더더욱 문제랄 것이 없으며 무슨 길도 아닙니다.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꿈에서 깨어났을 때 갈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꿈을 꾸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만약 갈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했다면, 그를 깨우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중략) 만약 길을 찾지 못했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꿈입니다. 하지만 미래의 꿈이 아닌, 지금의 꿈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노라는 깨어난 이상 꿈나라로 돌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떠난 후에도 때에 따라서는 타락하거나 돌아오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각성한 마음 이외에 무엇을 가지고 떠났는지 질문해야 합니다. (중략) 그녀는 더 부유해야 하고, 핸드백 안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바로 돈이 있어야 합니다.
꿈은 좋은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돈이 중요합니다. 돈이라는 글자는 귀에 거슬리며 고상한 군자들에게 비웃음을 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어쩐지 사람들의 의론이 어제와 오늘뿐 아니라 식전과 식후에도 종종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무릇 밥을 사 먹으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비천하다고 여기는 자가 있는데, 만일 그의 위를 눌러볼 수 있다면 미처 소화되지 않은 생선이나 고기가 들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모름지기 온종일 그를 굶긴 다음에 다시 그의 의견을 들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노라를 생각하면 돈이, 고상하게 말하자면 경제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자유는 물론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돈 때문에 팔아버릴 수는 있습니다. 인류에게는 커다란 결점이 있는데 수시로 배가 고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꼭두각시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금 사회에서는 경제권이 가장 중요해 보입니다. 첫째, 가정에서는 우선 남녀의 균등한 분배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둘째, 사회에서는 남녀가 대등한 세력을 획득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이러한 권리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모르지만 여전히 투쟁해야 한다는 것만은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참정권을 요구할 때보다 더 격렬한 투쟁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중략)
사실 오늘날 한 명의 노라가 집을 떠난다면 어려움을 느낄 지경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 인물은 아주 특별하고 행동도 신선해서 몇몇 사람들의 동정을 얻어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들의 동정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것은 이미 자유롭지 못한 일이지만, 만약 백 명의 노라가 집을 떠난다면 동정마저 줄어들 것이고, 천 명 만 명이 떠난다면 혐오를 불러일으킬 것이니 자신이 경제권을 쥐고 있는 것만큼 미덥지는 못합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자유를 얻는다면 꼭두각시가 아닌 게 되는 걸까요? 여전히 꼭두각시인 것입니다. 남에게 끌려 다니는 일은 줄어들 수 있고 자신이 끌고 다닐 수 있는 꼭두각시는 늘어날 수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요즘 사회에서는 여자가 남자의 꼭두각시가 될 뿐만 아니라,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사이에도 서로 꼭두각시가 되고, 남자도 여자의 꼭두각시가 되고 있으니, 이는 결코 몇몇 여자들이 경제권을 얻는다고 해서 구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굶주리면서 이상세계가 도래하기를 조용히 기다릴 수는 없고, 최소한 약간의 숨통을 틔워줘야 합니다. 물이 바싹 마른 수레바퀴 자국 안에 있는 붕어에게 물 한 바가지가 다급한 것처럼 비교적 가까운 경제권을 요구하는 한편으로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토론하기
(1) 본문에서 루쉰은 노라의 가출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가?
(2) 학교나 집에서 내가 남자/여자이기 때문에 차별대우를 당하거나 손해를 본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그런 경험이 있다면 친구들과 공유해보자. 여기에 내용을 입력하세요.
(3) 노라의 가출과 요즘 청소년들의 가출 사이에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해보자.
해설읽기
중국에서 『인형의 집』은 신문화운동의 중심 캠프였던 잡지 『신청년』이 1918년 6월 ‘입센 특집호’를 발간하면서 처음 소개되었다. 이 특집호에는 후스(胡適)의 「입센주의」라는 평론을 필두로, 사회문제를 다룬 입센의 희곡 작품 세 편*과 입센의 전기가 실렸다. “A Doll’s House”라는 영어 제목을 병기하긴 했지만, 이때 번역된 작품 이름은 『인형의 집』이 아닌 『노라』였는데, 당시 봉건적인 유교 사상, 제도, 전통 등에 반대하며 개성 해방을 외쳤던 5‧4시기 지식인들에게 ‘노라’라는 인물이 지닌 상징성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알 수 있다.
“아내이자 어머니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살겠다”라고 선언하며 집을 박차고 나가는 노라의 모습은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사람들에겐 모성까지 저버리는 무책임한 여성으로 인식되었지만, 남녀 평등과 여성 해방을 꿈꾸었던 진보주의자들에겐 미몽에서 깨어나 주체적인 인간으로 거듭난 여성으로 받아들여졌다. 5‧4시기 당시 『신청년』 동인이자 신문화운동의 핵심 인물이었던 루쉰은 그런 노라의 이미지를 가져와 당시 중국의 사회적 상황 속에서 여성이 처한 운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루쉰의 화법을 따르면, 남편의 사랑스러운 아내이자 세 아이들의 어머니로 사는 것이 여자의 행복이라고 믿고 있던 노라는 꿈을 꾸고 있는 상태다. 그녀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남편에게 크게 실망하고 8년 간의 결혼생활이 거짓 행복이었음을 깨달으며 꿈에서 깨어난다. 구습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아를 발견하고 자신을 사랑하며 스스로를 해방하는 것은 남녀를 불문하고 당시의 시대 사조와도 같은 것이었으나, 루쉰은 강연을 듣고 있는 여학생들에게 “꿈에서 깨어나라!”라고 촉구하지 않는다. 당시 중국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각성한 노라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집을 떠난 노라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은 『인형의 집』이 세상에 나온 이래 많은 이들의 화두였던 만큼, 찾아보면 단순한 패러디물이나 결말만 다시 쓴 작품뿐만 아니라 노라가 집을 나간 이후에 초점을 맞춰 새롭게 쓴 속편들도 적지 않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당당히 성공을 거둔 노라들도 등장하지만, 과거에 쓰인 작품 대부분은 집 나간 노라가 생활고에 시달리는 등 불행해지거나 어쩔 수 없이 비굴하게 집으로 돌아간다는 설정이 많은 것 같다.
루쉰도 당시 중국에서 현실적으로 집을 나간 노라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타락하거나 돌아오거나” 이 두 가지밖에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타락한다는 것은 거리에서 몸 파는 여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외에도 두 가지 가능성이 더 있는데, 하나는 굶어죽는 것이다. 굶어죽는 것은 “이미 삶을 떠난 것이니” 논외로 친다. 노라의 가출에 대한 루쉰의 태도는 회의적이고 비관적이다. 그는 “백 명의 노라가 집을 떠난다면 동정마저 줄어들 것이고, 천 명 만 명이 떠난다면 혐오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백 명, 천 명, 만 명의 노라가 집을 떠난다면 그들의 ‘가출’이 사회적 이슈로 확산되어 긍정적인 여론이 조성되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는 일이다.
루쉰의 전망이 비관적이라고 해서, 그의 메시지를 “나가면 죽는다”, “집 나가면 고생이다”라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오해다. 그보다는 무의미한 희생을 치르지 않기 위해 “잘 준비해서 나가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루쉰은 집을 떠난 노라가 타락하거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핸드백 안에 준비가 되어 있어야”, 즉 지갑에 돈(요즘 같으면 통장 잔고)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의 ‘각성’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으려면 그것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동력이 필요하고, 그 동력은 다름 아닌 경제권(경제력)이다. 이는 ‘지금 여기’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만일 집에서 존중받지 못한다거나 자유를 억압당한다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등의 이유로 ‘독립’을 꿈꾼다면 단순히 집을 나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자립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확실히 노라가 집을 나서며 문을 쾅 닫는 소리는 유럽 전역을 넘어 5‧4시기 중국 지식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루쉰은 “짧은 시간동안 깜짝 놀라게 하는 희생은 필요하지 않으며, 이는 묵묵하고 끈질긴 투쟁보다 못합니다”라고 말한다. 딸은 출가외인이라 하여 재산 상속을 하지 않고 여자가 취직할 곳이 마땅치 않았던 당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보통의 평범한 여자가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루쉰이 보기에 이와 같은 현실에서 여자가 집을 떠나는 것은 희생이 되기를 자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예를 들어 전태일 열사의 희생으로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 환경이 개선되고 노동운동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쳤듯이, 때로는 한 사람의 희생이 사회가 한 걸음 나아가는 데 결정적 계기로 작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통의 인물인 노라에게 지사나 열사가 될 것을 기대하거나 강요할 수는 없다. 이에 섣불리 집을 뛰쳐나가거나 집안에서 무기력하게 이상세계가 도래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대신, 집요하고 끈질기게 “비교적 가까운 경제권”부터 요구하라고 충고한다.
* 1918년 6월 『신청년』 ‘입센 특집호’에 실린 세 편의 작품은 「노라(인형의 집)(A Doll’s House)」(Et Dukkehjem), 「국민의 적(공공의 적)(An Enemy of the People)」(En Folkefiende), 「작은 아이욜프(Little Eyolf)」(Lille Eyolf)이다.
키워드
경제권, 남녀평등, 노라, 독립 여성, 여성 해방, 인형의 집, 자유
전후맥락
이 글은 원래 루쉰이 1923년 12월 26일에 베이징여자고등사범학교 문예회에서 했던 유명한 강연의 일부다. ‘노라’는 입센의 대표작 『인형의 집』의 여주인공 이름으로, 누군가의 ‘인형’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임을 자각하고 남편과 아이들을 뒤로한 채 ‘나’를 찾기 위해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떠나는 노라의 모습은 주체적 여성의 탄생으로 해석되며 5‧4시기의 중국 지식인들에게도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노라의 ‘가출’에 박수를 보낼 때, 루쉰은 “노라가 떠난 후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노라에게는 타락하거나 되돌아오는 두 가지 길 밖에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여기에 내용을 입력하세요.
고전본문
노라는 떠난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중략) 사리에 비추어 추론해본다면 실제로 노라에게는 타락하거나 돌아오거나 이 두 가지 길 밖에 없을 것입니다. 작은 새라면 새장 안은 물론 자유롭지 못하지만, 일단 새장 문을 나서면 밖에는 매나 고양이, 그 밖의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갇힌 지 오래되어 이미 날개가 마비되었고 나는 법마저 잊어버렸다면 확실히 갈 수 있는 길이 없을 것입니다. 또 다른 길은 굶어죽는 것인데, 굶어죽는 건 이미 삶을 떠난 것이니 더더욱 문제랄 것이 없으며 무슨 길도 아닙니다.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꿈에서 깨어났을 때 갈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꿈을 꾸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만약 갈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했다면, 그를 깨우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중략) 만약 길을 찾지 못했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꿈입니다. 하지만 미래의 꿈이 아닌, 지금의 꿈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노라는 깨어난 이상 꿈나라로 돌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떠난 후에도 때에 따라서는 타락하거나 돌아오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각성한 마음 이외에 무엇을 가지고 떠났는지 질문해야 합니다. (중략) 그녀는 더 부유해야 하고, 핸드백 안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바로 돈이 있어야 합니다.
꿈은 좋은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돈이 중요합니다. 돈이라는 글자는 귀에 거슬리며 고상한 군자들에게 비웃음을 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어쩐지 사람들의 의론이 어제와 오늘뿐 아니라 식전과 식후에도 종종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무릇 밥을 사 먹으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비천하다고 여기는 자가 있는데, 만일 그의 위를 눌러볼 수 있다면 미처 소화되지 않은 생선이나 고기가 들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모름지기 온종일 그를 굶긴 다음에 다시 그의 의견을 들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노라를 생각하면 돈이, 고상하게 말하자면 경제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자유는 물론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돈 때문에 팔아버릴 수는 있습니다. 인류에게는 커다란 결점이 있는데 수시로 배가 고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꼭두각시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금 사회에서는 경제권이 가장 중요해 보입니다. 첫째, 가정에서는 우선 남녀의 균등한 분배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둘째, 사회에서는 남녀가 대등한 세력을 획득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이러한 권리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모르지만 여전히 투쟁해야 한다는 것만은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참정권을 요구할 때보다 더 격렬한 투쟁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중략)
사실 오늘날 한 명의 노라가 집을 떠난다면 어려움을 느낄 지경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 인물은 아주 특별하고 행동도 신선해서 몇몇 사람들의 동정을 얻어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들의 동정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것은 이미 자유롭지 못한 일이지만, 만약 백 명의 노라가 집을 떠난다면 동정마저 줄어들 것이고, 천 명 만 명이 떠난다면 혐오를 불러일으킬 것이니 자신이 경제권을 쥐고 있는 것만큼 미덥지는 못합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자유를 얻는다면 꼭두각시가 아닌 게 되는 걸까요? 여전히 꼭두각시인 것입니다. 남에게 끌려 다니는 일은 줄어들 수 있고 자신이 끌고 다닐 수 있는 꼭두각시는 늘어날 수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요즘 사회에서는 여자가 남자의 꼭두각시가 될 뿐만 아니라,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사이에도 서로 꼭두각시가 되고, 남자도 여자의 꼭두각시가 되고 있으니, 이는 결코 몇몇 여자들이 경제권을 얻는다고 해서 구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굶주리면서 이상세계가 도래하기를 조용히 기다릴 수는 없고, 최소한 약간의 숨통을 틔워줘야 합니다. 물이 바싹 마른 수레바퀴 자국 안에 있는 붕어에게 물 한 바가지가 다급한 것처럼 비교적 가까운 경제권을 요구하는 한편으로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토론하기
(1) 본문에서 루쉰은 노라의 가출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가?
(2) 학교나 집에서 내가 남자/여자이기 때문에 차별대우를 당하거나 손해를 본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그런 경험이 있다면 친구들과 공유해보자. 여기에 내용을 입력하세요.
(3) 노라의 가출과 요즘 청소년들의 가출 사이에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해보자.
해설읽기
중국에서 『인형의 집』은 신문화운동의 중심 캠프였던 잡지 『신청년』이 1918년 6월 ‘입센 특집호’를 발간하면서 처음 소개되었다. 이 특집호에는 후스(胡適)의 「입센주의」라는 평론을 필두로, 사회문제를 다룬 입센의 희곡 작품 세 편*과 입센의 전기가 실렸다. “A Doll’s House”라는 영어 제목을 병기하긴 했지만, 이때 번역된 작품 이름은 『인형의 집』이 아닌 『노라』였는데, 당시 봉건적인 유교 사상, 제도, 전통 등에 반대하며 개성 해방을 외쳤던 5‧4시기 지식인들에게 ‘노라’라는 인물이 지닌 상징성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알 수 있다.
“아내이자 어머니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살겠다”라고 선언하며 집을 박차고 나가는 노라의 모습은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사람들에겐 모성까지 저버리는 무책임한 여성으로 인식되었지만, 남녀 평등과 여성 해방을 꿈꾸었던 진보주의자들에겐 미몽에서 깨어나 주체적인 인간으로 거듭난 여성으로 받아들여졌다. 5‧4시기 당시 『신청년』 동인이자 신문화운동의 핵심 인물이었던 루쉰은 그런 노라의 이미지를 가져와 당시 중국의 사회적 상황 속에서 여성이 처한 운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루쉰의 화법을 따르면, 남편의 사랑스러운 아내이자 세 아이들의 어머니로 사는 것이 여자의 행복이라고 믿고 있던 노라는 꿈을 꾸고 있는 상태다. 그녀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남편에게 크게 실망하고 8년 간의 결혼생활이 거짓 행복이었음을 깨달으며 꿈에서 깨어난다. 구습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아를 발견하고 자신을 사랑하며 스스로를 해방하는 것은 남녀를 불문하고 당시의 시대 사조와도 같은 것이었으나, 루쉰은 강연을 듣고 있는 여학생들에게 “꿈에서 깨어나라!”라고 촉구하지 않는다. 당시 중국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각성한 노라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집을 떠난 노라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은 『인형의 집』이 세상에 나온 이래 많은 이들의 화두였던 만큼, 찾아보면 단순한 패러디물이나 결말만 다시 쓴 작품뿐만 아니라 노라가 집을 나간 이후에 초점을 맞춰 새롭게 쓴 속편들도 적지 않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당당히 성공을 거둔 노라들도 등장하지만, 과거에 쓰인 작품 대부분은 집 나간 노라가 생활고에 시달리는 등 불행해지거나 어쩔 수 없이 비굴하게 집으로 돌아간다는 설정이 많은 것 같다.
루쉰도 당시 중국에서 현실적으로 집을 나간 노라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타락하거나 돌아오거나” 이 두 가지밖에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타락한다는 것은 거리에서 몸 파는 여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외에도 두 가지 가능성이 더 있는데, 하나는 굶어죽는 것이다. 굶어죽는 것은 “이미 삶을 떠난 것이니” 논외로 친다. 노라의 가출에 대한 루쉰의 태도는 회의적이고 비관적이다. 그는 “백 명의 노라가 집을 떠난다면 동정마저 줄어들 것이고, 천 명 만 명이 떠난다면 혐오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백 명, 천 명, 만 명의 노라가 집을 떠난다면 그들의 ‘가출’이 사회적 이슈로 확산되어 긍정적인 여론이 조성되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는 일이다.
루쉰의 전망이 비관적이라고 해서, 그의 메시지를 “나가면 죽는다”, “집 나가면 고생이다”라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오해다. 그보다는 무의미한 희생을 치르지 않기 위해 “잘 준비해서 나가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루쉰은 집을 떠난 노라가 타락하거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핸드백 안에 준비가 되어 있어야”, 즉 지갑에 돈(요즘 같으면 통장 잔고)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의 ‘각성’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으려면 그것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동력이 필요하고, 그 동력은 다름 아닌 경제권(경제력)이다. 이는 ‘지금 여기’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만일 집에서 존중받지 못한다거나 자유를 억압당한다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등의 이유로 ‘독립’을 꿈꾼다면 단순히 집을 나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자립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확실히 노라가 집을 나서며 문을 쾅 닫는 소리는 유럽 전역을 넘어 5‧4시기 중국 지식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루쉰은 “짧은 시간동안 깜짝 놀라게 하는 희생은 필요하지 않으며, 이는 묵묵하고 끈질긴 투쟁보다 못합니다”라고 말한다. 딸은 출가외인이라 하여 재산 상속을 하지 않고 여자가 취직할 곳이 마땅치 않았던 당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보통의 평범한 여자가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루쉰이 보기에 이와 같은 현실에서 여자가 집을 떠나는 것은 희생이 되기를 자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예를 들어 전태일 열사의 희생으로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 환경이 개선되고 노동운동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쳤듯이, 때로는 한 사람의 희생이 사회가 한 걸음 나아가는 데 결정적 계기로 작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통의 인물인 노라에게 지사나 열사가 될 것을 기대하거나 강요할 수는 없다. 이에 섣불리 집을 뛰쳐나가거나 집안에서 무기력하게 이상세계가 도래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대신, 집요하고 끈질기게 “비교적 가까운 경제권”부터 요구하라고 충고한다.
* 1918년 6월 『신청년』 ‘입센 특집호’에 실린 세 편의 작품은 「노라(인형의 집)(A Doll’s House)」(Et Dukkehjem), 「국민의 적(공공의 적)(An Enemy of the People)」(En Folkefiende), 「작은 아이욜프(Little Eyolf)」(Lille Eyolf)이다.
키워드
경제권, 남녀평등, 노라, 독립 여성, 여성 해방, 인형의 집,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