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이 작품은 루쉰의 소설 가운데 유일하게 남녀 간의 사랑을 소재로 삼고 있다. “쥐안성의 수기”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소설은 남자 주인공인 쥐안성의 시각에서 서술되고 있다. 5‧4시기 신사상의 영향을 받은 젊은 남녀 쥐안성(涓生)과 쯔쥔(子君)은 봉건적 인습을 거부하며 자유연애를 시작했다. 그들은 주변의 반대와 차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가정의 전제, 구습 타파, 남녀평등 등에 관해 이야기하며, 세상의 편견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영원할 것처럼 뜨겁게 타올랐던 사랑과 열정은 일상의 자질구레함과 생활고 속에 반년도 못 가 식어버렸고, 두 사람의 관계는 쥐안성이 직장에서 해고되면서 결정적 위기를 맞는다.
고전본문
쯔쥔은 이때부터 또다시 옛일의 복습과 새로운 시험을 시작하며, 내게 거짓된 위로의 답안을 내도록 강요했다. 나는 그녀에게 위로를 내보이고 거짓된 초고는 내 마음 속에 새겨두었다. 나의 마음은 점점 이런 초고들로 가득 채워져서 언제나 숨을 쉬기 어려웠다. 나는 고뇌하면서 늘 이렇게 생각했다. 진실을 말하는 데는 자연히 지대한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만약 이런 용기가 없어서 거짓에 구차하게 안주한다면 이는 곧 새로운 삶의 길을 개척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단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존재한 적이 없는 사람처럼 되어버릴 것이다!
몹시 추운 어느 날 이른 아침, 쯔쥔은 원망하는 기색을 보였다. 전에는 본 적이 없는 원망의 기색이었는데, 어쩌면 내가 그렇게 보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 차갑게 분노하며 속으로 비웃었다. 그녀가 갈고 닦은 사상과 활달하고 거침없던 언사는 결국 공허한 것이었으며, 그녀는 이 공허함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진작부터 어떤 책도 읽지 않았으며, 인간의 삶에서 첫번째 계책이 생활수단을 강구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지 못했다. 생활수단을 강구하는 길을 향해서는 반드시 손을 맞잡고 함께 나아가야만 하며, 그렇지 않으면 온몸을 내던져 홀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만약 남의 옷자락을 붙들고 매달릴 줄만 안다면 그가 전사라고 할지라도 싸우기 어려우며 함께 멸망할 수밖에 없다.
나는 새로운 희망은 우리 둘이 헤어지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연하게 버리고 떠나가야 한다. 나는 문득 그녀의 죽음에 생각이 미쳤지만 곧바로 자책하고 참회했다. 다행히도 이른 아침이어서 시간이 충분했으므로 나는 나의 진실을 말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은 바로 이 때였다.
나는 그녀와 잡담을 하면서 일부러 우리들의 지난 일을 끌어오고 문예에 관해 이야기하며 외국의 문인과 그 문인의 작품 『노라』, 『바다에서 온 여인』을 언급했다. 그리고 노라의 결단력을 칭찬했다……지난해 회관의 낡은 방에서 했던 이야기들이었지만 지금은 공허한 것으로 변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내 귀로 흘러 들어갈 때마다 모습을 감춘 못된 아이가 등 뒤에 숨어서 악의적이고 악랄하게 내 말을 따라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하며 내 말에 귀를 기울였지만 나중에는 침묵했다. 나는 더듬거리며 말을 마쳤고, 말소리의 여운마저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요.” 쯔쥔은 잠시 침묵한 뒤에 말했다. “하지만, ……쥐안성, 당신 요즘 많이 변한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당신, 솔직하게 말해줘요.”
나는 정수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곧 정신을 가다듬고 내 의견과 주장을 말했다. 함께 멸망하지 않으려면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새로운 삶을 재건해야 한다고.
말미에 나는 단단히 결심하고 몇 마디를 덧붙였다.
“……더구나 당신은 이미 걱정할 필요없이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소. 나한테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했지요? 그래요, 사람은 거짓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내 솔직하게 말하리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나는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오! 하지만 당신에게는 이게 훨씬 잘된 일이오. 당신이 아무런 걱정없이 일을 할 수 있으니까 말이오……”
나는 이와 동시에 커다란 변고가 닥칠 것을 예상했지만 침묵만이 흘렀다. 그녀의 안색이 갑자기 죽은 사람처럼 흙빛으로 변했다가 순식간에 되살아났고 눈에서도 앳된 윤기를 내뿜었다. 이 눈빛은 굶주리고 목마른 아이가 자애로운 엄마를 찾을 때처럼 사방을 쏘아보았지만 겁에 질려 나의 눈을 피하며 허공 속을 찾을 뿐이었다.
나는 차마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다행히도 이른 아침이어서 나는 찬바람을 무릅쓰고 통속도서관으로 달아났다.
토론하기
(1) 동거하기 전과 후에 달라진 쯔쥔의 모습을 비교해보고, 쥐안성이 쯔쥔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된 이유에 대해 말해보자.
(2) 쥐안성과 쯔쥔의 사랑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 것은 시대적인 한계 때문일까, 아니면 개인(쥐안성이나 쯔쥔, 혹은 둘 다)의 잘못 때문일까?
(3) 쥐안성과 쯔쥔이 갈등을 겪게 된 결정적 원인은 무엇인가?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쥐안성과 쯔쥔은 각각 어떤 태도를 취했으며, 어떤 노력을 했는지 비교해보자.
해설읽기
「노라는 떠난 후 어떻게 되었는가」라는 제목으로 여학생들 앞에서 강연을 한 지 약 2년 뒤, 루쉰은 그 질문에 답이라도 하듯 쯔쥔이라는 중국판 노라의 형상을 창조했다. 쯔쥔은 5‧4시기 신사상의 세례를 받은 신여성이다. 쥐안성과 사랑에 빠진 쯔쥔은 “나는 나 자신의 것이에요. 그들 누구도 나에게 간섭할 권리는 없어요!”라고 외치며 집을 나온다. 동거 전의 쯔쥔은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에게 용감하게 반항하며, 주변의 따가운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당찬 성격의 신여성이었다. 쥐안성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매력을 느꼈고, 거절당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며 사랑을 고백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말단 관리의 작은집에 방 두 칸을 세 얻고 과감하게 동거를 시작한다. 단출한 세간 살림을 장만하기 위해 쥐안성은 모은 저축을 다 털어 쓰고 쯔쥔도 하나뿐인 금반지와 귀걸이를 팔아서 보탰다. 그러나 동거를 시작한 후로 쯔쥔은 점점 집안일에 매몰되어 빛을 잃어갔다. 독서나 산책은커녕 서로 담소를 나눌 시간조차 없었으며, 없는 살림에도 개와 닭을 기르고 쥐안성의 끼니를 챙기는 일에 집착했다. 쯔쥔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식 여성이 되어갔다.
지금도 혼전 동거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데, 100년 전의 중국 사회에서는 오죽했을까? 두 사람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 가족, 친구들과 의절했으며, 쥐안성이 직장에서 해고된 것도 두 사람에 관한 소문이 나쁘게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안 그래도 빠듯했던 그들의 살림은 쥐안성의 실직으로 더욱 심하게 쪼들린다. 병아리 때부터 키우던 닭들은 차례차례 식탁에 올랐으며, 개의 먹이조차 큰 부담이 되어 멀리 내다버리기에 이른다. 쯔쥔은 개를 내다버린 쥐안성을 냉정하다고 원망하고, 쥐안성은 모름지기 “생활수단을 강구하는 길을 향해서는 반드시 손을 맞잡고 함께 나아가야만” 하는데 혼자에게만 경제적인 부담을 지우는 쯔쥔을 원망한다. “사랑은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성장하고, 창조되어야 한다.” 쥐안성은 자기 계발을 게을리하고 나가서 일할 생각을 하지 않는 쯔쥔에게서 더 이상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쥐안성은 지난 반년 동안 “맹목적인 사랑만을 위해 인생의 다른 의의를 모두 소홀히 해왔다”는 것을 깨닫고, “함께 멸망하지 않으려면” “우리 둘이 헤어지는 길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쯔쥔도 쥐안성의 마음이 전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진작에 눈치챘을 것이지만 그녀에게는 불굴의 용기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쯔쥔은 불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빛났던 과거의 찰나에 집착하며 쥐안성이 자신에게 고백했던 순간을 곱씹는다. 하지만 쯔쥔이 고백의 순간을 복기하며 나약한 모습을 보일수록 쥐안성은 이별의 결심만 굳힐 뿐이다. 그는 벼르고 벼르다가 몹시 추웠던 어느 날 이른 아침 그녀에게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고백’한다. 그리고는 쯔쥔이 자신과 동거하기 위해 집을 떠나왔던 것처럼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결연히 자신을 떠나주기를 바란다. 겨울에서 봄으로 바뀔 무렵 쯔쥔은 조용히 떠났고, 쥐안성은 얼마 후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루쉰은 쯔쥔의 죽음을 통해 여성에게 취업의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았던 당시의 사회적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사랑을 찾아 떠나면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환상을 품은 신여성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그가 주는 교훈은 오늘날 맹목적인 사랑에 눈이 먼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은 반드시 살아가야 하고 사랑은 바로 그것에 수반되는 법이다.” 다시 말하면, 생계가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사랑도 지킬 수 없다. 결혼 또는 동거는 그야말로 ‘생활’이다. 먹고 마시고 싸고 치우는 것과 같이 자질구레하지만 필수불가결한 일을 해결하며 삶을 지속해야 한다. 만약 쥐안성이 실직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들이 가난하지만 평범한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쥐안성은 쯔쥔을 짐짝처럼 버거워하며 떨쳐버리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고, 쯔쥔은 절망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지 않았을 것이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얻으려면 남녀를 불문하고 먼저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키워드
경제권, 남녀평등, 노라, 독립 여성, 여성해방, 인형의 집, 자유
전후맥락
이 작품은 루쉰의 소설 가운데 유일하게 남녀 간의 사랑을 소재로 삼고 있다. “쥐안성의 수기”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소설은 남자 주인공인 쥐안성의 시각에서 서술되고 있다. 5‧4시기 신사상의 영향을 받은 젊은 남녀 쥐안성(涓生)과 쯔쥔(子君)은 봉건적 인습을 거부하며 자유연애를 시작했다. 그들은 주변의 반대와 차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가정의 전제, 구습 타파, 남녀평등 등에 관해 이야기하며, 세상의 편견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영원할 것처럼 뜨겁게 타올랐던 사랑과 열정은 일상의 자질구레함과 생활고 속에 반년도 못 가 식어버렸고, 두 사람의 관계는 쥐안성이 직장에서 해고되면서 결정적 위기를 맞는다.
고전본문
쯔쥔은 이때부터 또다시 옛일의 복습과 새로운 시험을 시작하며, 내게 거짓된 위로의 답안을 내도록 강요했다. 나는 그녀에게 위로를 내보이고 거짓된 초고는 내 마음 속에 새겨두었다. 나의 마음은 점점 이런 초고들로 가득 채워져서 언제나 숨을 쉬기 어려웠다. 나는 고뇌하면서 늘 이렇게 생각했다. 진실을 말하는 데는 자연히 지대한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만약 이런 용기가 없어서 거짓에 구차하게 안주한다면 이는 곧 새로운 삶의 길을 개척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단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존재한 적이 없는 사람처럼 되어버릴 것이다!
몹시 추운 어느 날 이른 아침, 쯔쥔은 원망하는 기색을 보였다. 전에는 본 적이 없는 원망의 기색이었는데, 어쩌면 내가 그렇게 보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 차갑게 분노하며 속으로 비웃었다. 그녀가 갈고 닦은 사상과 활달하고 거침없던 언사는 결국 공허한 것이었으며, 그녀는 이 공허함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진작부터 어떤 책도 읽지 않았으며, 인간의 삶에서 첫번째 계책이 생활수단을 강구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지 못했다. 생활수단을 강구하는 길을 향해서는 반드시 손을 맞잡고 함께 나아가야만 하며, 그렇지 않으면 온몸을 내던져 홀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만약 남의 옷자락을 붙들고 매달릴 줄만 안다면 그가 전사라고 할지라도 싸우기 어려우며 함께 멸망할 수밖에 없다.
나는 새로운 희망은 우리 둘이 헤어지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연하게 버리고 떠나가야 한다. 나는 문득 그녀의 죽음에 생각이 미쳤지만 곧바로 자책하고 참회했다. 다행히도 이른 아침이어서 시간이 충분했으므로 나는 나의 진실을 말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은 바로 이 때였다.
나는 그녀와 잡담을 하면서 일부러 우리들의 지난 일을 끌어오고 문예에 관해 이야기하며 외국의 문인과 그 문인의 작품 『노라』, 『바다에서 온 여인』을 언급했다. 그리고 노라의 결단력을 칭찬했다……지난해 회관의 낡은 방에서 했던 이야기들이었지만 지금은 공허한 것으로 변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내 귀로 흘러 들어갈 때마다 모습을 감춘 못된 아이가 등 뒤에 숨어서 악의적이고 악랄하게 내 말을 따라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하며 내 말에 귀를 기울였지만 나중에는 침묵했다. 나는 더듬거리며 말을 마쳤고, 말소리의 여운마저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요.” 쯔쥔은 잠시 침묵한 뒤에 말했다. “하지만, ……쥐안성, 당신 요즘 많이 변한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당신, 솔직하게 말해줘요.”
나는 정수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곧 정신을 가다듬고 내 의견과 주장을 말했다. 함께 멸망하지 않으려면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새로운 삶을 재건해야 한다고.
말미에 나는 단단히 결심하고 몇 마디를 덧붙였다.
“……더구나 당신은 이미 걱정할 필요없이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소. 나한테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했지요? 그래요, 사람은 거짓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내 솔직하게 말하리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나는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오! 하지만 당신에게는 이게 훨씬 잘된 일이오. 당신이 아무런 걱정없이 일을 할 수 있으니까 말이오……”
나는 이와 동시에 커다란 변고가 닥칠 것을 예상했지만 침묵만이 흘렀다. 그녀의 안색이 갑자기 죽은 사람처럼 흙빛으로 변했다가 순식간에 되살아났고 눈에서도 앳된 윤기를 내뿜었다. 이 눈빛은 굶주리고 목마른 아이가 자애로운 엄마를 찾을 때처럼 사방을 쏘아보았지만 겁에 질려 나의 눈을 피하며 허공 속을 찾을 뿐이었다.
나는 차마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다행히도 이른 아침이어서 나는 찬바람을 무릅쓰고 통속도서관으로 달아났다.
토론하기
(1) 동거하기 전과 후에 달라진 쯔쥔의 모습을 비교해보고, 쥐안성이 쯔쥔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된 이유에 대해 말해보자.
(2) 쥐안성과 쯔쥔의 사랑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 것은 시대적인 한계 때문일까, 아니면 개인(쥐안성이나 쯔쥔, 혹은 둘 다)의 잘못 때문일까?
(3) 쥐안성과 쯔쥔이 갈등을 겪게 된 결정적 원인은 무엇인가?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쥐안성과 쯔쥔은 각각 어떤 태도를 취했으며, 어떤 노력을 했는지 비교해보자.
해설읽기
「노라는 떠난 후 어떻게 되었는가」라는 제목으로 여학생들 앞에서 강연을 한 지 약 2년 뒤, 루쉰은 그 질문에 답이라도 하듯 쯔쥔이라는 중국판 노라의 형상을 창조했다. 쯔쥔은 5‧4시기 신사상의 세례를 받은 신여성이다. 쥐안성과 사랑에 빠진 쯔쥔은 “나는 나 자신의 것이에요. 그들 누구도 나에게 간섭할 권리는 없어요!”라고 외치며 집을 나온다. 동거 전의 쯔쥔은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에게 용감하게 반항하며, 주변의 따가운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당찬 성격의 신여성이었다. 쥐안성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매력을 느꼈고, 거절당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며 사랑을 고백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말단 관리의 작은집에 방 두 칸을 세 얻고 과감하게 동거를 시작한다. 단출한 세간 살림을 장만하기 위해 쥐안성은 모은 저축을 다 털어 쓰고 쯔쥔도 하나뿐인 금반지와 귀걸이를 팔아서 보탰다. 그러나 동거를 시작한 후로 쯔쥔은 점점 집안일에 매몰되어 빛을 잃어갔다. 독서나 산책은커녕 서로 담소를 나눌 시간조차 없었으며, 없는 살림에도 개와 닭을 기르고 쥐안성의 끼니를 챙기는 일에 집착했다. 쯔쥔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식 여성이 되어갔다.
지금도 혼전 동거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데, 100년 전의 중국 사회에서는 오죽했을까? 두 사람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 가족, 친구들과 의절했으며, 쥐안성이 직장에서 해고된 것도 두 사람에 관한 소문이 나쁘게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안 그래도 빠듯했던 그들의 살림은 쥐안성의 실직으로 더욱 심하게 쪼들린다. 병아리 때부터 키우던 닭들은 차례차례 식탁에 올랐으며, 개의 먹이조차 큰 부담이 되어 멀리 내다버리기에 이른다. 쯔쥔은 개를 내다버린 쥐안성을 냉정하다고 원망하고, 쥐안성은 모름지기 “생활수단을 강구하는 길을 향해서는 반드시 손을 맞잡고 함께 나아가야만” 하는데 혼자에게만 경제적인 부담을 지우는 쯔쥔을 원망한다. “사랑은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성장하고, 창조되어야 한다.” 쥐안성은 자기 계발을 게을리하고 나가서 일할 생각을 하지 않는 쯔쥔에게서 더 이상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쥐안성은 지난 반년 동안 “맹목적인 사랑만을 위해 인생의 다른 의의를 모두 소홀히 해왔다”는 것을 깨닫고, “함께 멸망하지 않으려면” “우리 둘이 헤어지는 길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쯔쥔도 쥐안성의 마음이 전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진작에 눈치챘을 것이지만 그녀에게는 불굴의 용기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쯔쥔은 불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빛났던 과거의 찰나에 집착하며 쥐안성이 자신에게 고백했던 순간을 곱씹는다. 하지만 쯔쥔이 고백의 순간을 복기하며 나약한 모습을 보일수록 쥐안성은 이별의 결심만 굳힐 뿐이다. 그는 벼르고 벼르다가 몹시 추웠던 어느 날 이른 아침 그녀에게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고백’한다. 그리고는 쯔쥔이 자신과 동거하기 위해 집을 떠나왔던 것처럼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결연히 자신을 떠나주기를 바란다. 겨울에서 봄으로 바뀔 무렵 쯔쥔은 조용히 떠났고, 쥐안성은 얼마 후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루쉰은 쯔쥔의 죽음을 통해 여성에게 취업의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았던 당시의 사회적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사랑을 찾아 떠나면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환상을 품은 신여성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그가 주는 교훈은 오늘날 맹목적인 사랑에 눈이 먼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은 반드시 살아가야 하고 사랑은 바로 그것에 수반되는 법이다.” 다시 말하면, 생계가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사랑도 지킬 수 없다. 결혼 또는 동거는 그야말로 ‘생활’이다. 먹고 마시고 싸고 치우는 것과 같이 자질구레하지만 필수불가결한 일을 해결하며 삶을 지속해야 한다. 만약 쥐안성이 실직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들이 가난하지만 평범한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쥐안성은 쯔쥔을 짐짝처럼 버거워하며 떨쳐버리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고, 쯔쥔은 절망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지 않았을 것이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얻으려면 남녀를 불문하고 먼저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키워드
경제권, 남녀평등, 노라, 독립 여성, 여성해방, 인형의 집,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