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청소년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관심사 가운데 하나가 사랑이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건 나이와 성별을 떠나서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 중 하나이며, 인생의 ‘봄날’을 맞은 청소년들이 이차 성징과 함께 성에 눈뜨고 사랑이라는 감정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금보다 평균수명이 절반 이하이던 시절임을 참작해야겠지만, 이몽룡과 성춘향이 사랑에 빠진 나이는 이팔청춘 16세이고, 이보다 더 조숙했던 줄리엣은 14살에 로미오를 따라 죽는다. 많은 청소년들이 그들과 같은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지만, 십대의 조숙한 연애를 색안경 끼고 바라보는 어른들의 편견 어린 시선과 과도한 입시경쟁 속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랑을 포기하거나 유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십대의 사랑은 아직 여러모로 성숙하지 않아 위태롭고 때론 불나방같이 무모하지만, 어리기 때문에 가능한 순수함과 풋풋함이 있다. 이 셀묶음은 1930년대 비슷한 시기에 쓰인 두 편의 유명한 중국 현대소설에서 뽑아보았다. 쓰촨의 봉건적 대가정과 후난 서쪽 샹시(湘西) 지방 산골마을 젊은이들의 비슷한 듯 서로 다른 사랑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쓰촨과 맞닿은 후난 서쪽 변방에 있는 작은 산골마을 다동(茶峒)에 일흔 살 사공 노인과 열다섯 된 외손녀 취취(翠翠: 나루터 양쪽 산기슭에 빼곡하게 자란 짙푸른 대나무의 빛깔에서 따온 이름이다)가 나루터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실어 나르며 서로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다. 사공 노인에겐 늙은 자신이 죽은 뒤 혼자 남겨질 취취에게 하루 빨리 좋은 배필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여생의 과업이 있다. 나루를 건너 언덕을 넘어가면 다동 읍내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바깥 마을로 통하는 부두를 관리하는 쉰 살의 순순(順順) 선주(船主)는 그 고장에서 이름난 호인이다. 그에겐 톈바오(天保: ‘하늘이 보호하는 사람’이라는 뜻)와 눠쑹(儺送: ‘전염병을 몰고 다니는 역귀를 물리치는 신이 보낸 사람’이라는 뜻)이라는 두 아들이 있는데, 누구나 사윗감으로 탐낼 만큼 반듯하고 멋진 청년들이다. 두 집안은 마을의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인 단오 축제를 계기로 서로 알게 된다. 지지난 단오 축제 때 취취는 잃어버린 할아버지를 찾다가 둘째 도령 눠쑹과 조우하고, 지난 단오 축제 때는 할아버지와 취취가 갑자기 쏟아진 비를 피하다가 큰도령과 순순 선주를 알게 된다. 두 형제는 똑같이 취취를 좋아하게 되는데, 큰도령 톈바오가 먼저 사공 노인에게 취취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밝힌다. 또 다시 단오가 돌아와 마을 사람 모두 축제를 즐기는 가운데 큰도령의 부탁을 받은 사공 노인의 지인이 사공 노인의 의중을 넌지시 떠본다.
고전본문
“아저씨, 댁에 취취가 올해 열 몇 살이죠?”
“만 열네 살에서 이제 열다섯 살이 됐네 그려.” 사공 노인은 이렇게 말한 뒤 마음 속으로 지나간 세월을 헤아려보았다.
“열네 살인데 일을 정말 잘하네요! 이담에 취취를 데려가는 사람은 정말 복이 터졌어요!”
“무슨 복이 터져? 혼수로 가져갈 방앗간도 없는 맨몸인데!”
“맨몸이라뇨! 일 잘하는 사람 두 손은 방앗간 다섯 채와 맞먹는다구요! 낙양교(洛陽橋)도 노반(魯般)*이 두 손으로 만든 거잖아요!” 이런 저런 말을 하다가 그 사람이 웃었다.
사공 노인도 따라 웃으며, ‘취취도 두 손이 있으니 이담에 낙양교를 만들라 해야겠군. 희한한 일이 될거야!’라고 생각했다.
잠시 후에 그 사람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동 젊은이들은 눈이 밝아서 색시 고르는 데도 아주 능하지요. 아저씨, 아저씨께서 제 뜻을 곡해하지 않으신다면 제가 농담 하나 해도 될까요?”
사공 노인이 물었다. “무슨 농담인데 그러나?”
그 사람이 말했다. “아저씨께서 괜한 걱정을 하지 않으신다면 이 농담을 진담으로 들으셔도 돼요.”
그러더니 순순 선주 댁의 큰도령이 사람들 앞에서 취취 칭찬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또한 어쩌다가 그에게 사공 노인의 눈치를 살펴 달라고 부탁했는지 말했다. 끝으로 그는 사공 노인에게 큰도령과 대화를 나눴던 상황을 전달했다. “제가 ‘큰도령, 지금 하는 말이 진담인가 아니면 농담인가?’하고 물었더니, ‘저 대신 가셔서 노인장의 눈치를 좀 살펴 주세요. 제가 취취를 좋아하고 신부로 맞고 싶은 건 진심이에요!’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난 말재주가 없어서 괜히 잘못 말했다가 뺨이라도 한 대 맞으면 어쩔 텐가?’ 했더니, ‘맞을까봐 걱정이시면 먼저 농담처럼 말씀해 보세요. 그럼 맞지 않으실 거에요!’라고 하는 거에요. 아저씨, 그래서 제가 이 일을 농담처럼 말씀드리는 거랍니다. 초아흐렛날 그가 쓰촨 동쪽에서 돌아와 저를 보러 왔을 때 제가 뭐라 대답하면 좋을까요?”
사공 노인은 지난번 큰도령이 직접 했던 말이 떠올라 큰도령의 마음이 정말 진심이며 순순 선주도 취취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속으로 기뻤다. 그러나 이런 일은 이 고장 관습에 따르면 본인이 과자 따위를 들고 직접 벽계저(碧溪岨) 집으로 찾아와서 말씀드려야 신중히 처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사공 노인은 대답했다. “그가 돌아오면 이렇게 말하게. 늙은이가 농담을 다 듣고 나서 자기도 농담으로 하는 말이 ‘차는 차 달리는 찻길이 있고, 말은 말 달리는 말길이 있어서 그에 따라 가는 법이 다르다네. 큰도령이 찻길을 택한다면 아버님께서 나서셔서 중매쟁이를 청해 내게 정식으로 혼담을 꺼내셔야 할 것이요, 말길을 택한다면 자신이 나서서 나루터 강 건너 높은 언덕 위에서 취취를 위해 3년 반 동안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말하더라 전해주게.”
“아저씨, 만약 3년 반 동안 노래를 불러 취취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저라도 내일 당장 노래를 부르겠어요.”
“자네 생각엔 취취가 좋다 하는데 내가 마다할 것 같은가?”
“그런 게 아니라 제 생각엔 노인장께서 승낙하시면 취취가 싫다고 할 것 같지 않은데요.”
“그렇게 말해선 안 되네. 이건 취취의 일일세!”
“그녀의 일이긴 합니다만 집안 어른이 주관하셔야 하는 일이죠. 큰도령도 해가 뜨나 달이 뜨나 3년 반 동안 노래 부르는 것보다 아저씨께서 좋다고 하시는 한 마디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겠어요!”
“정 그렇다면 이렇게 해보자고. 큰도령이 쓰촨 동쪽에서 돌아오면 순순 선주께 분명히 말씀드리라 하고, 나는 말이지, 먼저 취취한테 묻는 걸세. 취취가 만일 3년 반 동안 노래를 들어야만 직성이 풀려 그 노래하는 사람을 좋아할 것 같으면 내 다시 자네를 불러 큰도령더러 구불구불 가기 힘든 말길을 택하라고 권하겠네.”
“그게 좋겠군요. 그를 만나면 이렇게 말할게요. ‘큰도령, 그 농담은 이미 전했네. 진담은, 이제 자네 운명에 맡겨봐야 할 것 같네’라고 말이지요. 진짜 그의 운명이 어떤가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제가 보기에 그의 운명은 여전히 노인장 손에 쥐어져 있는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할 일이 아닐세. 이 일이 참으로 내가 좌우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내 당장이라도 좋다고 할 걸세.”
* 노반(魯般): 노반(魯班, 기원전 507-기원전 444)이라고도 한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의 교체기를 살았던 사람으로 묵자의 라이벌로 유명하다. 대패, 끌, 톱, 곡척 등 다양한 공구를 발명했으며 조각과 토목건축 등에도 뛰어나 중국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고 불린다.
토론하기
(1) 사공 노인이 큰도령 톈바오에게 한 조언인 “차는 차 달리는 찻길이 있고, 말은 말 달리는 말길이 있어서 그에 따라 가는 법이 다르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2) 과거 부모님이나 집안 어른들이 배우자를 선택해주었던 중매혼의 사회문화적 배경에 대해 조사해보고,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 말해보자.
(3) 『가(家)』의 가오 나으리(할아버지), 아버지와 『변성(邊城)』의 사공 노인, 순순 선주가 자녀/자손들의 결혼 문제에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비교하고,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지 토론해보자.
해설읽기
이 중편소설의 제목 『변성(邊城)』은 ‘변방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중국 남부 내륙에 ‘샹시(湘西)’라고 불리는 후난성 서쪽 변방에 자리한 다동(茶峒)은 1개 대대의 군인과 500가구 정도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작은 산골마을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이곳은 중국의 여타 지역과도 구별되는, 지금의 문명 조건과는 완전히 다른 결을 가진 공간이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순박한 인성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마치 비현실적인 별천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수정처럼 맑은 눈동자를 가진 열다섯 살 소녀 취취(翠翠)는 강가 작은 흰 탑 밑의 외딴집에서 외할아버지와 서로 의지해 살고 있다. 일흔인 할아버지는 양쪽 강기슭을 오가는 사람들을 나룻배로 태워 나르는 일을 50년째 해오고 있다. 아기를 낳자마자 목숨을 버린 외동딸을 대신하여 취취를 기른 사공 노인은 늙은 자신마저 세상을 떠나고 나면 혼자 남겨질 손녀가 걱정이다. 그는 “배는 부두가 있어야 하고, 새는 둥지가 있어야 하는 법”이라며 눈을 감기 전에 하루빨리 취취에게 좋은 배필을 찾아주고자 한다. 이는 욕심 없는 사공 노인이 죽기 전에 해야 할 숙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한편 다동 읍내에서 바깥 마을로 통하는 부두를 관리하는 쉰 살의 순순(順順) 선주(船主)는 사리에 밝고 정직하며 온화한 데다 남을 돕는 데 재물을 아끼지 않아서 덕망이 높았다. 그의 두 아들 톈바오(天保)와 눠쑹(儺送)도 아버지를 닮아 “호랑이처럼 튼실한 데다 성품이 온화하고 상냥했으며 교만하거나 게으르지 않았다. 겉만 번지르르하지도 않고 세를 믿고 남을 업신여기는 일도 없었다. 그리하여 다동 인근에서 그들 부자 세 사람 이야기가 나오면 존경을 표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두 집안은 단오 축제를 계기로 서로를 알게 된다. 지지난 단오 축제 때 용선(龍船) 구경을 하다 잃어버린 할아버지를 찾아 헤매던 취취는 우연히 둘째 도령 눠쑹과 마주한다. 취취는 너무 오래 할아버지를 기다리다 초조해진 나머지 눠쑹의 호의를 오해하고 그에게 욕을 하는데, 나중에 그가 바로 다동에서 유명한 눠쑹 도령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놀라고 부끄러워한다. 그런데 눠쑹의 수려한 외모에 반한 것일까? 이때부터 취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눠쑹을 마음에 두게 된다. 지난 단오 축제 때는 할아버지와 취취가 갑자기 쏟아진 비를 피하려고 들어간 곳이 마침 순순 선주네 다락집이었다. 눠쑹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번엔 큰도령과 순순 선주를 알게 되었고 오리와 쭝쯔(粽子: 찹쌀에 소를 넣어 댓잎이나 갈잎에 싸서 쪄 먹는 중국의 단오절 음식)를 선물로 받아 집으로 돌아온다. 두 형제는 모두 예쁘고 부지런한 취취를 좋아하고 있었다.
사공 노인과 훗날 큰도령의 중매인으로 나서는 마병(馬兵) 양씨로 추정되는 인용문 속 지인은 단오날 용선 구경 대신 상류 쪽에 새로 생긴 방앗간의 물레방아를 구경하는 중이다. 지인은 사공 노인에게 이 방앗간은 산촌에 사는 왕씨 자위단장**의 소유이며, 자기 딸을 시집보낼 때 혼수로 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시에 방앗간은 현지 부자들의 산업으로, 지금으로 따지면 인테리어 비용만 수 억원이 드는 커피숍을 딸의 혼수로 준비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난한 사공 노인으로서는 부러워할 뿐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혼수에 이야기가 미치자 지인은 자위대장의 딸과 비슷한 또래인 취취가 생각났고 큰도령이 부탁했던 일이 떠올라 사공 노인에게 손녀 사윗감으로 큰도령 톈바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돈 많은 선주의 아들이 가난한 사공의 손녀를 사랑하는 것은 이곳 다동 마을에서는 별로 희한한 이야깃거리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의 마음이었다. 당시 일반적인 중국의 가정에서 집안 어른들이 자손의 의사는 전혀 상관없이 혼사를 좌우하던 것과는 달리, 『변성』에서 사공 노인과 순순 선주는 손녀와 아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그들의 마음을 최우선 순위에 둔다. 물론 사공 노인이야 순순 선주네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지만, 순순 선주도 조건을 따지지 않고 취취를 좋아했다. ‘문당호대(門當戶對)’라고 하여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수준이 엇비슷한 집안과 혼인을 맺던 관습도 개의치 않았다.
형제 가운데 아버지를 닮아 호방하고 활달한 큰도령 톈바오가 먼저 사공 노인에게 취취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밝혔다. 사공 노인은 그가 마음에 들었지만, 당사자인 취취의 의사를 존중하여 집안 어른으로서 어떤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다만 “차는 차 달리는 찻길이 있고, 말은 말 달리는 말길이 있다”며, ‘찻길’(쉽고 빠른 길, 중매혼)을 가려거든 아버지의 주도로 중매쟁이를 내세워 정식으로 청혼하고, ‘말길’(구불구불 가기 힘든 길, 연애혼)로 가려거든 강 건너 높은 언덕 위 대나무 숲속에서 3년 반 동안 취취를 위해 노래를 부르라고 조언한다. ‘3년 반’이란 ‘오랜 시간’에 대한 은유다.
톈바오는 ‘찻길’을 선택해서 곧바로 아버지께 말씀드렸고, 순순 선주는 큰아들이 원하는 신붓감을 며느리로 맞아들이기 위해 직접 나서서 사공 노인에게 중매쟁이를 보냈다. 사공 노인은 취취에게 “큰 도령은 앞날이 창창한 사람이야. 사람 됨됨이가 정직하고 통이 크지. 네가 그에게 시집가면 팔자 좋은 셈이란다”라고 말하면서도, “네가 원하는 게 말길이라면 두견새처럼 피를 토하고 목구멍이 엉망이 될 때까지 그 친구가 널 위해 햇빛 아래에서는 뜨거운 열정의 노래를, 달빛 아래에서는 부드러운 노래를 부르게 하겠다”라며 청혼에 대한 대답을 취취에게 맡긴다.
** 자위단장[團總]: 1920~30년대 중국은 청 왕조라는 강력한 구심점이 사라진 후 각 지방에 군벌들이 할거하며 곳곳에서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토비(土匪)들까지 기승을 부려 지방의 세력 있는 지주가 자체 방어를 위해 무장단체를 조직하기도 했는데, ‘자위단장’은 바로 그러한 조직의 우두머리를 말하며 지주가 직접 맡기도 했다.
키워드
결혼, 사랑, 연애, 자유혼, 중매혼
전후맥락
쓰촨과 맞닿은 후난 서쪽 변방에 있는 작은 산골마을 다동(茶峒)에 일흔 살 사공 노인과 열다섯 된 외손녀 취취(翠翠: 나루터 양쪽 산기슭에 빼곡하게 자란 짙푸른 대나무의 빛깔에서 따온 이름이다)가 나루터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실어 나르며 서로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다. 사공 노인에겐 늙은 자신이 죽은 뒤 혼자 남겨질 취취에게 하루 빨리 좋은 배필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여생의 과업이 있다. 나루를 건너 언덕을 넘어가면 다동 읍내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바깥 마을로 통하는 부두를 관리하는 쉰 살의 순순(順順) 선주(船主)는 그 고장에서 이름난 호인이다. 그에겐 톈바오(天保: ‘하늘이 보호하는 사람’이라는 뜻)와 눠쑹(儺送: ‘전염병을 몰고 다니는 역귀를 물리치는 신이 보낸 사람’이라는 뜻)이라는 두 아들이 있는데, 누구나 사윗감으로 탐낼 만큼 반듯하고 멋진 청년들이다. 두 집안은 마을의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인 단오 축제를 계기로 서로 알게 된다. 지지난 단오 축제 때 취취는 잃어버린 할아버지를 찾다가 둘째 도령 눠쑹과 조우하고, 지난 단오 축제 때는 할아버지와 취취가 갑자기 쏟아진 비를 피하다가 큰도령과 순순 선주를 알게 된다. 두 형제는 똑같이 취취를 좋아하게 되는데, 큰도령 톈바오가 먼저 사공 노인에게 취취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밝힌다. 또 다시 단오가 돌아와 마을 사람 모두 축제를 즐기는 가운데 큰도령의 부탁을 받은 사공 노인의 지인이 사공 노인의 의중을 넌지시 떠본다.
고전본문
“아저씨, 댁에 취취가 올해 열 몇 살이죠?”
“만 열네 살에서 이제 열다섯 살이 됐네 그려.” 사공 노인은 이렇게 말한 뒤 마음 속으로 지나간 세월을 헤아려보았다.
“열네 살인데 일을 정말 잘하네요! 이담에 취취를 데려가는 사람은 정말 복이 터졌어요!”
“무슨 복이 터져? 혼수로 가져갈 방앗간도 없는 맨몸인데!”
“맨몸이라뇨! 일 잘하는 사람 두 손은 방앗간 다섯 채와 맞먹는다구요! 낙양교(洛陽橋)도 노반(魯般)*이 두 손으로 만든 거잖아요!” 이런 저런 말을 하다가 그 사람이 웃었다.
사공 노인도 따라 웃으며, ‘취취도 두 손이 있으니 이담에 낙양교를 만들라 해야겠군. 희한한 일이 될거야!’라고 생각했다.
잠시 후에 그 사람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동 젊은이들은 눈이 밝아서 색시 고르는 데도 아주 능하지요. 아저씨, 아저씨께서 제 뜻을 곡해하지 않으신다면 제가 농담 하나 해도 될까요?”
사공 노인이 물었다. “무슨 농담인데 그러나?”
그 사람이 말했다. “아저씨께서 괜한 걱정을 하지 않으신다면 이 농담을 진담으로 들으셔도 돼요.”
그러더니 순순 선주 댁의 큰도령이 사람들 앞에서 취취 칭찬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또한 어쩌다가 그에게 사공 노인의 눈치를 살펴 달라고 부탁했는지 말했다. 끝으로 그는 사공 노인에게 큰도령과 대화를 나눴던 상황을 전달했다. “제가 ‘큰도령, 지금 하는 말이 진담인가 아니면 농담인가?’하고 물었더니, ‘저 대신 가셔서 노인장의 눈치를 좀 살펴 주세요. 제가 취취를 좋아하고 신부로 맞고 싶은 건 진심이에요!’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난 말재주가 없어서 괜히 잘못 말했다가 뺨이라도 한 대 맞으면 어쩔 텐가?’ 했더니, ‘맞을까봐 걱정이시면 먼저 농담처럼 말씀해 보세요. 그럼 맞지 않으실 거에요!’라고 하는 거에요. 아저씨, 그래서 제가 이 일을 농담처럼 말씀드리는 거랍니다. 초아흐렛날 그가 쓰촨 동쪽에서 돌아와 저를 보러 왔을 때 제가 뭐라 대답하면 좋을까요?”
사공 노인은 지난번 큰도령이 직접 했던 말이 떠올라 큰도령의 마음이 정말 진심이며 순순 선주도 취취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속으로 기뻤다. 그러나 이런 일은 이 고장 관습에 따르면 본인이 과자 따위를 들고 직접 벽계저(碧溪岨) 집으로 찾아와서 말씀드려야 신중히 처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사공 노인은 대답했다. “그가 돌아오면 이렇게 말하게. 늙은이가 농담을 다 듣고 나서 자기도 농담으로 하는 말이 ‘차는 차 달리는 찻길이 있고, 말은 말 달리는 말길이 있어서 그에 따라 가는 법이 다르다네. 큰도령이 찻길을 택한다면 아버님께서 나서셔서 중매쟁이를 청해 내게 정식으로 혼담을 꺼내셔야 할 것이요, 말길을 택한다면 자신이 나서서 나루터 강 건너 높은 언덕 위에서 취취를 위해 3년 반 동안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말하더라 전해주게.”
“아저씨, 만약 3년 반 동안 노래를 불러 취취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저라도 내일 당장 노래를 부르겠어요.”
“자네 생각엔 취취가 좋다 하는데 내가 마다할 것 같은가?”
“그런 게 아니라 제 생각엔 노인장께서 승낙하시면 취취가 싫다고 할 것 같지 않은데요.”
“그렇게 말해선 안 되네. 이건 취취의 일일세!”
“그녀의 일이긴 합니다만 집안 어른이 주관하셔야 하는 일이죠. 큰도령도 해가 뜨나 달이 뜨나 3년 반 동안 노래 부르는 것보다 아저씨께서 좋다고 하시는 한 마디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겠어요!”
“정 그렇다면 이렇게 해보자고. 큰도령이 쓰촨 동쪽에서 돌아오면 순순 선주께 분명히 말씀드리라 하고, 나는 말이지, 먼저 취취한테 묻는 걸세. 취취가 만일 3년 반 동안 노래를 들어야만 직성이 풀려 그 노래하는 사람을 좋아할 것 같으면 내 다시 자네를 불러 큰도령더러 구불구불 가기 힘든 말길을 택하라고 권하겠네.”
“그게 좋겠군요. 그를 만나면 이렇게 말할게요. ‘큰도령, 그 농담은 이미 전했네. 진담은, 이제 자네 운명에 맡겨봐야 할 것 같네’라고 말이지요. 진짜 그의 운명이 어떤가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제가 보기에 그의 운명은 여전히 노인장 손에 쥐어져 있는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할 일이 아닐세. 이 일이 참으로 내가 좌우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내 당장이라도 좋다고 할 걸세.”
* 노반(魯般): 노반(魯班, 기원전 507-기원전 444)이라고도 한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의 교체기를 살았던 사람으로 묵자의 라이벌로 유명하다. 대패, 끌, 톱, 곡척 등 다양한 공구를 발명했으며 조각과 토목건축 등에도 뛰어나 중국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고 불린다.
토론하기
(1) 사공 노인이 큰도령 톈바오에게 한 조언인 “차는 차 달리는 찻길이 있고, 말은 말 달리는 말길이 있어서 그에 따라 가는 법이 다르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2) 과거 부모님이나 집안 어른들이 배우자를 선택해주었던 중매혼의 사회문화적 배경에 대해 조사해보고,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 말해보자.
(3) 『가(家)』의 가오 나으리(할아버지), 아버지와 『변성(邊城)』의 사공 노인, 순순 선주가 자녀/자손들의 결혼 문제에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비교하고,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지 토론해보자.
해설읽기
이 중편소설의 제목 『변성(邊城)』은 ‘변방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중국 남부 내륙에 ‘샹시(湘西)’라고 불리는 후난성 서쪽 변방에 자리한 다동(茶峒)은 1개 대대의 군인과 500가구 정도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작은 산골마을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이곳은 중국의 여타 지역과도 구별되는, 지금의 문명 조건과는 완전히 다른 결을 가진 공간이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순박한 인성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마치 비현실적인 별천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수정처럼 맑은 눈동자를 가진 열다섯 살 소녀 취취(翠翠)는 강가 작은 흰 탑 밑의 외딴집에서 외할아버지와 서로 의지해 살고 있다. 일흔인 할아버지는 양쪽 강기슭을 오가는 사람들을 나룻배로 태워 나르는 일을 50년째 해오고 있다. 아기를 낳자마자 목숨을 버린 외동딸을 대신하여 취취를 기른 사공 노인은 늙은 자신마저 세상을 떠나고 나면 혼자 남겨질 손녀가 걱정이다. 그는 “배는 부두가 있어야 하고, 새는 둥지가 있어야 하는 법”이라며 눈을 감기 전에 하루빨리 취취에게 좋은 배필을 찾아주고자 한다. 이는 욕심 없는 사공 노인이 죽기 전에 해야 할 숙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한편 다동 읍내에서 바깥 마을로 통하는 부두를 관리하는 쉰 살의 순순(順順) 선주(船主)는 사리에 밝고 정직하며 온화한 데다 남을 돕는 데 재물을 아끼지 않아서 덕망이 높았다. 그의 두 아들 톈바오(天保)와 눠쑹(儺送)도 아버지를 닮아 “호랑이처럼 튼실한 데다 성품이 온화하고 상냥했으며 교만하거나 게으르지 않았다. 겉만 번지르르하지도 않고 세를 믿고 남을 업신여기는 일도 없었다. 그리하여 다동 인근에서 그들 부자 세 사람 이야기가 나오면 존경을 표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두 집안은 단오 축제를 계기로 서로를 알게 된다. 지지난 단오 축제 때 용선(龍船) 구경을 하다 잃어버린 할아버지를 찾아 헤매던 취취는 우연히 둘째 도령 눠쑹과 마주한다. 취취는 너무 오래 할아버지를 기다리다 초조해진 나머지 눠쑹의 호의를 오해하고 그에게 욕을 하는데, 나중에 그가 바로 다동에서 유명한 눠쑹 도령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놀라고 부끄러워한다. 그런데 눠쑹의 수려한 외모에 반한 것일까? 이때부터 취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눠쑹을 마음에 두게 된다. 지난 단오 축제 때는 할아버지와 취취가 갑자기 쏟아진 비를 피하려고 들어간 곳이 마침 순순 선주네 다락집이었다. 눠쑹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번엔 큰도령과 순순 선주를 알게 되었고 오리와 쭝쯔(粽子: 찹쌀에 소를 넣어 댓잎이나 갈잎에 싸서 쪄 먹는 중국의 단오절 음식)를 선물로 받아 집으로 돌아온다. 두 형제는 모두 예쁘고 부지런한 취취를 좋아하고 있었다.
사공 노인과 훗날 큰도령의 중매인으로 나서는 마병(馬兵) 양씨로 추정되는 인용문 속 지인은 단오날 용선 구경 대신 상류 쪽에 새로 생긴 방앗간의 물레방아를 구경하는 중이다. 지인은 사공 노인에게 이 방앗간은 산촌에 사는 왕씨 자위단장**의 소유이며, 자기 딸을 시집보낼 때 혼수로 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시에 방앗간은 현지 부자들의 산업으로, 지금으로 따지면 인테리어 비용만 수 억원이 드는 커피숍을 딸의 혼수로 준비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난한 사공 노인으로서는 부러워할 뿐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혼수에 이야기가 미치자 지인은 자위대장의 딸과 비슷한 또래인 취취가 생각났고 큰도령이 부탁했던 일이 떠올라 사공 노인에게 손녀 사윗감으로 큰도령 톈바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돈 많은 선주의 아들이 가난한 사공의 손녀를 사랑하는 것은 이곳 다동 마을에서는 별로 희한한 이야깃거리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의 마음이었다. 당시 일반적인 중국의 가정에서 집안 어른들이 자손의 의사는 전혀 상관없이 혼사를 좌우하던 것과는 달리, 『변성』에서 사공 노인과 순순 선주는 손녀와 아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그들의 마음을 최우선 순위에 둔다. 물론 사공 노인이야 순순 선주네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지만, 순순 선주도 조건을 따지지 않고 취취를 좋아했다. ‘문당호대(門當戶對)’라고 하여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수준이 엇비슷한 집안과 혼인을 맺던 관습도 개의치 않았다.
형제 가운데 아버지를 닮아 호방하고 활달한 큰도령 톈바오가 먼저 사공 노인에게 취취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밝혔다. 사공 노인은 그가 마음에 들었지만, 당사자인 취취의 의사를 존중하여 집안 어른으로서 어떤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다만 “차는 차 달리는 찻길이 있고, 말은 말 달리는 말길이 있다”며, ‘찻길’(쉽고 빠른 길, 중매혼)을 가려거든 아버지의 주도로 중매쟁이를 내세워 정식으로 청혼하고, ‘말길’(구불구불 가기 힘든 길, 연애혼)로 가려거든 강 건너 높은 언덕 위 대나무 숲속에서 3년 반 동안 취취를 위해 노래를 부르라고 조언한다. ‘3년 반’이란 ‘오랜 시간’에 대한 은유다.
톈바오는 ‘찻길’을 선택해서 곧바로 아버지께 말씀드렸고, 순순 선주는 큰아들이 원하는 신붓감을 며느리로 맞아들이기 위해 직접 나서서 사공 노인에게 중매쟁이를 보냈다. 사공 노인은 취취에게 “큰 도령은 앞날이 창창한 사람이야. 사람 됨됨이가 정직하고 통이 크지. 네가 그에게 시집가면 팔자 좋은 셈이란다”라고 말하면서도, “네가 원하는 게 말길이라면 두견새처럼 피를 토하고 목구멍이 엉망이 될 때까지 그 친구가 널 위해 햇빛 아래에서는 뜨거운 열정의 노래를, 달빛 아래에서는 부드러운 노래를 부르게 하겠다”라며 청혼에 대한 대답을 취취에게 맡긴다.
** 자위단장[團總]: 1920~30년대 중국은 청 왕조라는 강력한 구심점이 사라진 후 각 지방에 군벌들이 할거하며 곳곳에서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토비(土匪)들까지 기승을 부려 지방의 세력 있는 지주가 자체 방어를 위해 무장단체를 조직하기도 했는데, ‘자위단장’은 바로 그러한 조직의 우두머리를 말하며 지주가 직접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