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서술자 ‘나’는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 차 인근의 안개마을[霞村]에 2주 정도 머무르기로 한 공산당 지식인이다. 마을 사정에 밝은 선전과(宣傳科) 여성동지 아구이(阿桂)의 도움을 받아 류얼마(劉二媽: 류씨 집안 둘째 며느리) 집에서 묵게 되는데, 첫날 저녁 그 댁 큰집 조카 전전(貞貞)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온 마을이 그녀에 관한 이야기로 술렁거린다. 그녀는 일년 반 전 일본군이 쳐들어왔을 때 강간을 당하고 위안부로 끌려갔던 터였다. 이튿날 밤 아구이가 ‘나’와 함께 묵는 방으로 전전을 데려와 그녀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고전본문
“그 사람들을 따라서 여러 곳을 돌아다녔니?”
“늘 한 부대만 따라다니는 건 아니에요. 사람들은 내가 일본놈 장교 부인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린 줄로 아는데, 사실 나는 두 번 돌아왔었고 이번까지 치면 세 번째예요. 나중에는 파견된 건데 어쩔 수 없었어요. 내가 그곳에 대해 잘 알고 중요한 일인데 한동안 다른 사람을 찾지 못했거든요. 이제 그들은 더 이상 나를 파견하지 않고 내 병을 치료해주려고 해요. 그것도 좋아요, 나도 우리 엄마 아빠가 걱정되던 참에 돌아와서 봤으니까. 그런데 엄마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가 없어도 울고 돌아와도 또 우시니까.”
“정말 고생이 많았겠구나.”
“전전(貞貞)이 한 고생은 상상도 못할 정도예요.” 아구이(阿桂)는 괴로운 모습을 내비치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여자로 산다는 건 정말 재수없는 일이야. 전전, 계속 얘기해봐.” 아구이는 전전 곁으로 더욱 바싹 다가앉았다.
“고생이라기엔,” 전전은 아득한 일을 회상하는 듯했다. “지금도 뭐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어요. 어떤 것들은 당시에는 괴로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별일 아니고, 어떤 것들은 당시엔 대충대충 넘어갔는데,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프니까요. 일년 남짓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어요. 그런데 이번에 돌아왔더니 많은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어요. 바로 이 마을 사람들이요, 다들 나를 외지 사람 대하듯 하는데, 다정한 사람도 있고 피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집안 식구들도 다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누구나 나를 흘끔흘끔 쳐다보며 아무도 나를 원래의 전전으로 봐주지 않았어요. 내가 변한 건가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난 조금도 변한 게 없는 걸요. 굳이 말하자면 마음이 좀 독해졌을 뿐이죠. 사람이 그런 데서 살다 보면 마음이 좀 독해지지 않고 되겠어요? 그리고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거잖아요!”
병에 걸린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이 그녀의 얼굴은 발그레하게 윤기가 돌았고, 목소리는 맑고 또렷해서 부자연스럽거나 거칠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조금도 과장하지 않았으며, 그녀가 무슨 푸념을 늘어놓거나 청승을 떠는 것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나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병에 대해 물었다.
“사람은 대개 다 이럴 거에요. 더 나쁜 곳에 가더라도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을 거에요. 눈 딱 감고 허리를 꼿꼿이 펴고 버티면 설마 죽기야 하겠어요? 나중에 나는 우리 편이랑 연락이 닿아서 더 두렵지 않았어요. 일본놈들이 나한테 못된 짓을 한 뒤에 패전하고 유격대가 사방에서 활동하여 인심이 나날이 좋아지는 것을 보고는 내가 고생을 좀 해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난 어쨌든 살길을 찾아야 했고 정말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의미 있게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들이 내 병을 고쳐주겠다고 했을 때 나도 그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치료하는 게 나을 테니까요. 그 당시에는 병도 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가역(張家驛)을 지날 때 이틀을 묵었는데, 그들이 내게 주사를 두 차례 놔주고 먹을 약을 좀 주었어요. 그런데 올 가을부터 병이 심하게 도지더니 사람들 말로는 내 뱃속이 문드러졌다고 했어요. 또 급히 보내야할 소식이 생겼는데, 나를 대신할 사람을 찾지 못해서 그날 밤 어두운 길을 더듬으며 혼자 삼십리를 왔다 갔다 했어요.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너무 아파서 주저 앉아 더이상 걷고 싶지 않았어요. 만약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다면 나는 분명 돌아가지 않았을 거에요. 하지만 이건 그럴 수 없는 일인데다, 아휴, 일본놈들이 나를 알아볼까봐 무섭기도 하고, 시간이 지체될까봐 걱정도 됐어요. 나중에 꼬박 일주일 정도 잠들었다가 몸을 거의 질질 끌다시피 해서 일어났어요. 한 목숨이 죽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토론하기
(1) 작품 속에서 위안부로 끌려갔다 돌아온 전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태도는 다양하다. 전전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등장인물들을 범주화하고 어떤 태도가 올바른지 말해보자.
(2)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약자에게 희생을 강요하거나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가하는 사례를 찾아보자.
(3) 위안부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영화를 보고 위안부 할머니의 아픔과 역사에 대해 토론해보자.
해설읽기
올해 열여덟 살인 전전(貞貞)은 어릴 때 친구인 샤다바오(夏大寶)를 좋아했지만 그녀의 부모는 가난한 샤다바오 대신 살림이 안정된 쌀집 가게 주인의 후처로 시집보내려 했다. 전전은 반항하는 마음에 수녀가 되기 위해 아랫마을의 천주교 예배당으로 도망을 갔는데, 하필 그 날 쳐들어온 일본군에게 험한 일을 당하고 만다. 일본군에게 위안부로 끌려가 일년 넘게 고생하다 고향인 안개마을로 돌아왔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따갑기만 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병이 심해서 코까지 문드러졌다”거나, “지금은 다 떨어진 신발*보다도 못하게 되었다”는 둥 유언비어에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은 전전을 혐오하고 경멸했으며, “그런 부도덕한 여자는 돌아오지 못하게 했어야 돼!”라고 말한다. 어떤 여자들은 전전의 아픔에서 자신들의 ‘거룩함’을 발견하며 남에게 강간당하지 않았다는 자부심과 우월감을 느꼈다. 한편, 대부분의 마을사람들과는 달리 공산당 활동단원 젊은이들은 전전에게 호의적이었는데, 그 중 하나인 마(馬) 동지는 ‘나’에게 전전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할 때 눈빛에서 유쾌하고 정열적인 빛을 내뿜으며 “걔가 그렇게 대단한 지 몰랐다”고 말한다.
인용문에서 전전은 외지인인 ‘나’와 아구이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담담히 들려준다. 전전이 “사실 나는 두 번 돌아왔었고 이번까지 치면 세 번째”이며 “나중에는 파견된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그녀가 공산당의 첩보원으로 활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항일전쟁 시기에 중국공산당은 일본군에게 위안부로 끌려갔던 여성들을 첩보전에 적극 활용했다. 전전의 비극적인 처지를 이용해서 그녀를 끔찍한 소굴로 다시 밀어 넣는 행위는 아무리 항일과 구국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갖다 붙이더라도 폭력과 다르지 않다.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점을 악용하여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약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렇기에 전전에게 1차적인 폭력을 가한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중국공산당도 그녀에게 2차 가해를 행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같은 이유로, 전전에게 ‘돌을 던지는’ 마을사람들에게 분노와 불쾌함을 느끼는 한편으로 그녀를 대단한 인물로 추켜세우는 마 동지의 시선에도 위화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공산당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전전으로서는 공산당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 불행으로 인해 가족들에게조차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동네에서 손가락질 받는 전전은 공산당의 첩보활동을 돕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 그녀는 “내가 고생을 좀 해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고, “정말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의미 있게 살고 싶어”했다. 그렇기에 아픈 몸을 이끌고 위험을 무릅쓰며 급히 보내야할 소식을 가지고 어두운 밤길을 혼자 삼십리를 왔다 갔다 했던 것이다. 소설에서 나오지는 않지만, 그녀가 목숨을 걸고 가져온 첩보는 일본군의 공습으로부터 한 마을을 지켜 여러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정보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따지면 전전 자신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고, 또 그녀를 영웅으로 추켜세우는 건 조심스럽지만, 그녀의 행위는 충분히 영웅적이다.
전전은 부모님의 봉건주의적 가치관을 거부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했고, 성병으로 추정되는 몹쓸 병에 걸렸으며, 정신적으로도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위안부로 끌려갔던 여성들은 사지(死地)에서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지만 가족들에게조차 환영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상당수가 가문의 명예를 지킨다는 이유로, 자식의 앞날을 막지 않아야 한다는 이유로 또다시 죽음에 내몰렸다. 전전 또한 스스로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 되었으며, “기왕에 흠이 났기 때문에 앞으로 다시는 행운이 올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남은 삶을 가치 있게 살고자 하는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 전전(貞貞: 곧을 정)이라는 이름은 육체적 정절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이상을 향한 지조와 절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위안부로 다시 파견되었던 것에 나름의 정당성을 갖춘 전전은 마을 사람들의 시선에 크게 개의치 않고, 결국 마을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자신의 병든 몸을 고치고 공부도 하며 새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 떨어진 신발: 원문 ‘포셰(破鞋)’는 직역하면 ‘해어진 신발, 다 떨어진 신발, 찢어진 신발’ 등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품행이 바르지 못한 여자’, ‘성경험이 많은 여자’를 뜻하며, 공산당 근거지가 있었던 산시(陝西) 지역에서 ‘성매매로 생계를 꾸려 나가는 여성’을 경멸하며 부르는 호칭이었다.
키워드
2차 가해, 새출발, 성노예, 여성, 영웅, 용기, 위안부, 폭력, 희생
전후맥락
서술자 ‘나’는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 차 인근의 안개마을[霞村]에 2주 정도 머무르기로 한 공산당 지식인이다. 마을 사정에 밝은 선전과(宣傳科) 여성동지 아구이(阿桂)의 도움을 받아 류얼마(劉二媽: 류씨 집안 둘째 며느리) 집에서 묵게 되는데, 첫날 저녁 그 댁 큰집 조카 전전(貞貞)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온 마을이 그녀에 관한 이야기로 술렁거린다. 그녀는 일년 반 전 일본군이 쳐들어왔을 때 강간을 당하고 위안부로 끌려갔던 터였다. 이튿날 밤 아구이가 ‘나’와 함께 묵는 방으로 전전을 데려와 그녀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고전본문
“그 사람들을 따라서 여러 곳을 돌아다녔니?”
“늘 한 부대만 따라다니는 건 아니에요. 사람들은 내가 일본놈 장교 부인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린 줄로 아는데, 사실 나는 두 번 돌아왔었고 이번까지 치면 세 번째예요. 나중에는 파견된 건데 어쩔 수 없었어요. 내가 그곳에 대해 잘 알고 중요한 일인데 한동안 다른 사람을 찾지 못했거든요. 이제 그들은 더 이상 나를 파견하지 않고 내 병을 치료해주려고 해요. 그것도 좋아요, 나도 우리 엄마 아빠가 걱정되던 참에 돌아와서 봤으니까. 그런데 엄마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가 없어도 울고 돌아와도 또 우시니까.”
“정말 고생이 많았겠구나.”
“전전(貞貞)이 한 고생은 상상도 못할 정도예요.” 아구이(阿桂)는 괴로운 모습을 내비치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여자로 산다는 건 정말 재수없는 일이야. 전전, 계속 얘기해봐.” 아구이는 전전 곁으로 더욱 바싹 다가앉았다.
“고생이라기엔,” 전전은 아득한 일을 회상하는 듯했다. “지금도 뭐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어요. 어떤 것들은 당시에는 괴로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별일 아니고, 어떤 것들은 당시엔 대충대충 넘어갔는데,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프니까요. 일년 남짓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어요. 그런데 이번에 돌아왔더니 많은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어요. 바로 이 마을 사람들이요, 다들 나를 외지 사람 대하듯 하는데, 다정한 사람도 있고 피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집안 식구들도 다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누구나 나를 흘끔흘끔 쳐다보며 아무도 나를 원래의 전전으로 봐주지 않았어요. 내가 변한 건가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난 조금도 변한 게 없는 걸요. 굳이 말하자면 마음이 좀 독해졌을 뿐이죠. 사람이 그런 데서 살다 보면 마음이 좀 독해지지 않고 되겠어요? 그리고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거잖아요!”
병에 걸린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이 그녀의 얼굴은 발그레하게 윤기가 돌았고, 목소리는 맑고 또렷해서 부자연스럽거나 거칠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조금도 과장하지 않았으며, 그녀가 무슨 푸념을 늘어놓거나 청승을 떠는 것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나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병에 대해 물었다.
“사람은 대개 다 이럴 거에요. 더 나쁜 곳에 가더라도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을 거에요. 눈 딱 감고 허리를 꼿꼿이 펴고 버티면 설마 죽기야 하겠어요? 나중에 나는 우리 편이랑 연락이 닿아서 더 두렵지 않았어요. 일본놈들이 나한테 못된 짓을 한 뒤에 패전하고 유격대가 사방에서 활동하여 인심이 나날이 좋아지는 것을 보고는 내가 고생을 좀 해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난 어쨌든 살길을 찾아야 했고 정말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의미 있게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들이 내 병을 고쳐주겠다고 했을 때 나도 그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치료하는 게 나을 테니까요. 그 당시에는 병도 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가역(張家驛)을 지날 때 이틀을 묵었는데, 그들이 내게 주사를 두 차례 놔주고 먹을 약을 좀 주었어요. 그런데 올 가을부터 병이 심하게 도지더니 사람들 말로는 내 뱃속이 문드러졌다고 했어요. 또 급히 보내야할 소식이 생겼는데, 나를 대신할 사람을 찾지 못해서 그날 밤 어두운 길을 더듬으며 혼자 삼십리를 왔다 갔다 했어요.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너무 아파서 주저 앉아 더이상 걷고 싶지 않았어요. 만약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다면 나는 분명 돌아가지 않았을 거에요. 하지만 이건 그럴 수 없는 일인데다, 아휴, 일본놈들이 나를 알아볼까봐 무섭기도 하고, 시간이 지체될까봐 걱정도 됐어요. 나중에 꼬박 일주일 정도 잠들었다가 몸을 거의 질질 끌다시피 해서 일어났어요. 한 목숨이 죽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토론하기
(1) 작품 속에서 위안부로 끌려갔다 돌아온 전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태도는 다양하다. 전전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등장인물들을 범주화하고 어떤 태도가 올바른지 말해보자.
(2)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약자에게 희생을 강요하거나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가하는 사례를 찾아보자.
(3) 위안부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영화를 보고 위안부 할머니의 아픔과 역사에 대해 토론해보자.
해설읽기
올해 열여덟 살인 전전(貞貞)은 어릴 때 친구인 샤다바오(夏大寶)를 좋아했지만 그녀의 부모는 가난한 샤다바오 대신 살림이 안정된 쌀집 가게 주인의 후처로 시집보내려 했다. 전전은 반항하는 마음에 수녀가 되기 위해 아랫마을의 천주교 예배당으로 도망을 갔는데, 하필 그 날 쳐들어온 일본군에게 험한 일을 당하고 만다. 일본군에게 위안부로 끌려가 일년 넘게 고생하다 고향인 안개마을로 돌아왔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따갑기만 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병이 심해서 코까지 문드러졌다”거나, “지금은 다 떨어진 신발*보다도 못하게 되었다”는 둥 유언비어에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은 전전을 혐오하고 경멸했으며, “그런 부도덕한 여자는 돌아오지 못하게 했어야 돼!”라고 말한다. 어떤 여자들은 전전의 아픔에서 자신들의 ‘거룩함’을 발견하며 남에게 강간당하지 않았다는 자부심과 우월감을 느꼈다. 한편, 대부분의 마을사람들과는 달리 공산당 활동단원 젊은이들은 전전에게 호의적이었는데, 그 중 하나인 마(馬) 동지는 ‘나’에게 전전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할 때 눈빛에서 유쾌하고 정열적인 빛을 내뿜으며 “걔가 그렇게 대단한 지 몰랐다”고 말한다.
인용문에서 전전은 외지인인 ‘나’와 아구이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담담히 들려준다. 전전이 “사실 나는 두 번 돌아왔었고 이번까지 치면 세 번째”이며 “나중에는 파견된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그녀가 공산당의 첩보원으로 활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항일전쟁 시기에 중국공산당은 일본군에게 위안부로 끌려갔던 여성들을 첩보전에 적극 활용했다. 전전의 비극적인 처지를 이용해서 그녀를 끔찍한 소굴로 다시 밀어 넣는 행위는 아무리 항일과 구국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갖다 붙이더라도 폭력과 다르지 않다.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점을 악용하여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약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렇기에 전전에게 1차적인 폭력을 가한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중국공산당도 그녀에게 2차 가해를 행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같은 이유로, 전전에게 ‘돌을 던지는’ 마을사람들에게 분노와 불쾌함을 느끼는 한편으로 그녀를 대단한 인물로 추켜세우는 마 동지의 시선에도 위화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공산당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전전으로서는 공산당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 불행으로 인해 가족들에게조차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동네에서 손가락질 받는 전전은 공산당의 첩보활동을 돕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 그녀는 “내가 고생을 좀 해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고, “정말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의미 있게 살고 싶어”했다. 그렇기에 아픈 몸을 이끌고 위험을 무릅쓰며 급히 보내야할 소식을 가지고 어두운 밤길을 혼자 삼십리를 왔다 갔다 했던 것이다. 소설에서 나오지는 않지만, 그녀가 목숨을 걸고 가져온 첩보는 일본군의 공습으로부터 한 마을을 지켜 여러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정보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따지면 전전 자신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고, 또 그녀를 영웅으로 추켜세우는 건 조심스럽지만, 그녀의 행위는 충분히 영웅적이다.
전전은 부모님의 봉건주의적 가치관을 거부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했고, 성병으로 추정되는 몹쓸 병에 걸렸으며, 정신적으로도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위안부로 끌려갔던 여성들은 사지(死地)에서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지만 가족들에게조차 환영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상당수가 가문의 명예를 지킨다는 이유로, 자식의 앞날을 막지 않아야 한다는 이유로 또다시 죽음에 내몰렸다. 전전 또한 스스로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 되었으며, “기왕에 흠이 났기 때문에 앞으로 다시는 행운이 올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남은 삶을 가치 있게 살고자 하는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 전전(貞貞: 곧을 정)이라는 이름은 육체적 정절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이상을 향한 지조와 절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위안부로 다시 파견되었던 것에 나름의 정당성을 갖춘 전전은 마을 사람들의 시선에 크게 개의치 않고, 결국 마을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자신의 병든 몸을 고치고 공부도 하며 새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 떨어진 신발: 원문 ‘포셰(破鞋)’는 직역하면 ‘해어진 신발, 다 떨어진 신발, 찢어진 신발’ 등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품행이 바르지 못한 여자’, ‘성경험이 많은 여자’를 뜻하며, 공산당 근거지가 있었던 산시(陝西) 지역에서 ‘성매매로 생계를 꾸려 나가는 여성’을 경멸하며 부르는 호칭이었다.
키워드
2차 가해, 새출발, 성노예, 여성, 영웅, 용기, 위안부, 폭력, 희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