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청소년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관심사 가운데 하나가 사랑이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건 나이와 성별을 떠나서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 중 하나이며, 인생의 ‘봄날’을 맞은 청소년들이 이차 성징과 함께 성에 눈뜨고 사랑이라는 감정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금보다 평균수명이 절반 이하이던 시절임을 참작해야겠지만, 이몽룡과 성춘향이 사랑에 빠진 나이는 이팔청춘 16세이고, 이보다 더 조숙했던 줄리엣은 14살에 로미오를 따라 죽는다. 많은 청소년들이 그들과 같은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지만, 십대의 조숙한 연애를 색안경 끼고 바라보는 어른들의 편견 어린 시선과 과도한 입시경쟁 속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랑을 포기하거나 유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십대의 사랑은 아직 여러모로 성숙하지 않아 위태롭고 때론 불나방같이 무모하지만, 어리기 때문에 가능한 순수함과 풋풋함이 있다. 이 셀묶음은 1930년대 비슷한 시기에 쓰인 두 편의 유명한 중국 현대소설에서 뽑아보았다. 쓰촨의 봉건적 대가정과 후난 서쪽 샹시(湘西) 지방 산골마을 젊은이들의 비슷한 듯 서로 다른 사랑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순순 선주의 두 아들 톈바오와 눠쑹 형제는 벽계저에서 양쪽 강기슭을 오가며 나룻배로 사람들을 태워 나르는 사공 노인의 외손녀 취취를 좋아한다.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이었던 톈바오는 사공 노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밝히고 그의 조언에 따라 아버지를 통해 정식으로 중매쟁이를 내세워 혼담을 넣었다. 역시나 순수하고 어여쁜 취취를 사랑하고 있었던 동생 눠쑹은 자신의 마음을 형에게 알리며 정정당당한 승부를 통해 취취의 마음을 얻자고 제안한다.
고전본문
두 형제는 상류의 배 만드는 곳에서 자기 집의 새로 만든 배를 보고 있었다. 형은 새 배 옆에서 자신의 모든 생각을 동생에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이 사랑은 이년 전 뿌리를 내린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동생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두 사람은 배 만드는 곳에서 강기슭을 따라 왕씨 양반댁의 새 연자 방앗간으로 갔다. 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우야, 넌 잘 된 거야. 자위단장의 사위가 되면 연자 방앗간이 생기잖니. 나는 일이 성사되면 그 노인을 이어 나룻배를 끌어야 해. 난 그 일이 좋아. 벽계저(碧溪岨)의 양쪽 산을 산 후 가장자리에 커다란 대나무를 심어 이 작은 강을 둘러서 나의 성채로 만들 거야!”
둘째는 여전히 들으면서 손에 들고 있던 반달형 낫으로 길가의 풀과 나무를 되는 대로 베어버렸다. 방앗간에 이르자 동생은 발길을 멈추고 형에게 말했다.
“형, 그녀 마음 속에 벌써 누군가가 있다면 믿겠어?”
“안 믿지.”
“형, 이 방앗간이 나중에 내 것이 된다면 믿겠어?”
“안 믿지.”
둘은 방앗간으로 들어갔다.
“그러지 말고…형, 다시 묻겠는데 만약 내가 이 방앗간을 마다하고 그 나룻배를 넘본다면, 게다가 이런 생각을 나도 이년 전부터 해왔다면 믿겠어?”
형은 그 말에 깜짝 놀라며 연자방아 받침돌 가로축 위에 앉아 있는 눠쑹을 바라보았다. 아우가 농담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는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툭툭 치며 그를 끌어내리려고 했다. 형은 모든 걸 이해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믿는다. 네 말이 진담이라는 걸!”
아우는 형의 눈을 바라보며 진심을 털어놓았다.
“형, 나를 믿어. 이건 사실이야. 난 진작에 그러기로 마음먹었어. 집에서 허락하지 않더라도 그쪽에서 승낙한다면 난 정말 나룻배를 끌러 갈 거야! 말해봐, 형도 그래?”
“아버지는 내 말을 들으시고 성안의 마병(馬兵) 양씨(楊氏)를 사공 노인에게 중매쟁이로 보내 혼담을 넣으셨어!”
형은 청혼 절차 얘기를 꺼냈다가 동생이 자신을 비웃을 것 같아서, 중매인을 보낸 의도는 사공 노인이 ‘차는 차 달리는 찻길이 있고, 말은 말 달리는 말길이 있다’고 해서 자신은 찻길을 택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성과는?”
“아무런 성과도 얻은 게 없어. 그 노인은 입에 자두를 물었는지 좀처럼 말을 분명하게 하지 않으니 참.”
“말 달리는 길로 가보는 건 어때?”
“말 달리는 길은 그 노인 말로는 벽계저 맞은편에 있는 높은 언덕에 올라가 3년 6개월 동안 노래를 부르라는 거야. 노래를 불러 취취의 마음을 얻으면 내 사람이 된다는 거지.”
“그거 나쁘지 않은 생각인데!”
“그래, 말더듬이가 말은 못해도 노래는 부를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런 일은 내 차례까지 돌아오지 않아. 나는 찌르레기가 아니라서 노래를 할 줄 모르거든. 그 노인네 속셈이 손녀를 노래 잘 하는 물레방아한테 시집 보내려는 건지, 아니면 절차를 밟아 시집 보낼 준비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형은 어쩔 건데?”
“그 노인더러 사실대로 말해달라고 할 거야. 한 마디면 된다고. 성사되지 않으면 난 배를 따라 타오위안(桃源) *으로 갈 거고, 성사되어서 날더러 나룻배를 끌라 하면 그렇게 하겠다고 할 거야.”
“노래 부르는 건?”
“그건 너의 특기지. 가서 찌르레기처럼 노래 부르려거든 가려무나. 그런다고 네 입에 말똥을 쳐 넣지는 않을 테니.”
아우는 형의 그런 모습을 보며 이 일로 형이 느끼는 고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아우는 형의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다동 사람 특유의 투박하면서도 시원시원한 면이 있어서, 잘 구슬리면 자기 심장이라도 선뜻 내어주지만, 수 틀리면 외삼촌일지라도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 큰도령이라고 왜 찻길을 가다 실패하면 말길을 걸을 생각이 없겠는가? 그러나 아우의 솔직한 고백을 듣자, 말길은 아우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지 자신에게는 그런 복이 없음을 알았다. 이 때문에 그는 조금 괴롭고 화가 났는데, 자연히 감출 수가 없었다.
아우가 좋은 수를 생각해냈다. 두 형제가 달밤에 함께 벽계저로 가서 노래 부르되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지 알 수 없게 두 사람이 번갈아 노래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응답을 받으면 그 사람은 노래 부르기에서 승리한 입술로 사공의 외손녀에게 계속 노래를 불러준다. 형은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니 형의 차례가 오면 아우가 대신 노래를 부른다. 둘이 운명대로 자신의 행복을 결정하니, 이렇게 하는 것은 지극히 공평하다고 할 수 있다. 아우가 이렇게 제안했을 때 형은 자기는 노래를 부를 줄 모르거니와 또 아우를 자기 대신 찌르레기로 삼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그러나 아우는 시인 같은 기질이 있어서 형에게 자기가 말한 대로 하자고 졸랐다. 아우는 이렇게 해야만 모든 게 공평해진다고 역설했다.
형은 아우의 제안을 생각해보더니 씁쓸하게 웃었다.
“제기랄! 자기가 찌르레기처럼 노래 부르지 못한다고 아우에게 대신 찌르레기가 되어 달라고 부탁하는 꼴이라니! 좋아, 이렇게 해 보자. 우리 각자 번갈아 노래를 불러보는 거야. 나도 네 도움은 원치 않아. 모든 건 내 힘으로 할 거야. 숲속의 부엉이는 소리가 아름답지 못해도 짝을 찾을 때는 남의 도움 받지 않고 제힘으로 노래를 부른단다.”
* 타오위안(桃源): 후난성 서북부에 위치한 타오위안현(桃源縣). 동진(東晉)의 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이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속세와 동떨어진 이상향으로 묘사한 무릉도원(武陵桃源)의 실제 무대로 알려져 있다.
토론하기
(1) 눠쑹은 형이 먼저 정식으로 혼담을 넣었지만 당시 마을 젊은이들의 구애 관습에 따라 노래로 승부를 겨루자고 제안한다. 두 형제가 달밤에 함께 취취네가 있는 벽계저로 가서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지 알 수 없게 번갈아 노래를 부르다가 응답을 받는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하되, 다만 형이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니 형의 차례에도 자신이 대신 노래를 부르겠다는 것이다. 눠쑹의 이 방법은 과연 그의 말대로 ‘공평’한가? 내가 만약 톈바오라면 이 제안을 받을 것인가?
(2) 친한 친구와 동시에 같은 이성 친구를 좋아해본 적이 있는가? 만약 베프와 동시에 같은 이성을 좋아하게 된다면 나는 마음을 접고 친구를 밀어주며 사랑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눠쑹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정정당당히 겨뤄보자고 말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먼저 말해서 친구가 포기하도록 할 것인가? 우정과 사랑 중 어느 쪽에 더 큰 가치를 두는지 그 이유를 말해보자.
(3) 동서양의 역사와 문학 속에서 한 형제/자매가 한 여자/남자를 동시에 사랑한 예를 찾아보고 친구들에게 소개해보자.
해설읽기
노래 실력은 없지만 추진력이 뛰어났던 톈바오는 사공 노인의 조언에 따라 ‘찻길’을 선택해서 곧바로 중매쟁이를 내세워 정식으로 청혼했다. 이에 동생 눠쑹도 형이 취취에게 청혼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생은 형에게 자신도 오래전부터 취취를 좋아하고 있었다고 털어놓으며 정정당당한 승부를 통해 취취의 마음을 얻자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런데 눠쑹은 산촌에 사는 왕씨 자위단장이 사윗감으로 점찍어 둔 터였다. 자위단장은 큰 돈을 들여 상류 쪽에 새 연자 방앗간을 만들고 이것을 딸의 혼수로 보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눠쑹은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벌 수 있는 방앗간을 마다하고 취취를 위해 기꺼이 나룻배의 사공이 되길 원했다.
두 형제가 같은 여자를 사랑한 예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야사에 따르면 조조(曹操)의 두 아들 조비(曹丕)와 조식(曹植)은 견복(甄宓)*이라는 여인을 동시에 좋아했는데, 조식이 형수가 된 견황후를 잊지 못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낙수(洛水)의 여신에 기탁하여 『낙신부(洛神賦)』를 지었다고 한다. 그는 여신의 입을 빌려 “인간과 신의 길이 다른 것이 한스럽고, 한창 젊은 나이에 배필이 되지 못함이 원망스럽습니다[恨人神之道殊兮, 怨盛年之莫當]”라며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노래했다. 두 형제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다동에서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다동 속담에 “불은 어디서든 타오를 수 있고, 물은 어디로든 흐를 수 있으며, 해와 달은 어디든 비출 수 있고, 사랑은 어디든 이를 수 있다.” 더구나 일단 ‘형수’나 ‘제수’라는 호칭이 고정되기 전이라면 사랑은 쟁취하는 자의 것 아닌가?!
다동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좋아하는 이성에게 구애를 할 때 노래를 불러서 마음을 전했다. 다동에 주둔하던 군인이었던 취취의 아빠도 구성진 노랫소리로 엄마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취취는 엄마와 아빠의 사랑 노래 속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둘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고, 이를 비관한 아빠가 먼저 음독 자살을 하고, 엄마는 차마 뱃속의 핏덩이 때문에 그 뒤를 따르지 못하다가 취취를 낳고는 바로 강물에 몸을 던져 죽고 만다. 두 형제가 동시에 취취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공 노인은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며 취취가 엄마의 불행한 운명을 따르게 되지 않을지 걱정한다. 사공 노인은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데, 다른 이의 눈에는 어물어물하고 뜨뜻미지근한 모습으로 비쳐 마치 취취 핑계를 대며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오해를 사게 된다.
사실 톈바오도 찻길을 가다 실패하면 말길을 걸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는 사공 노인에게 “몇 년 지나 제가 좀 한가해져서 그냥 다동에 머물러 일을 볼 수 있게 되면요, 까마귀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니지 않고 매일 저녁 이 강가로 와서 취취를 위해 노래를 부를 거예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노래 실력으로는 눠쑹의 상대가 되지 못했던 톈바오는 “아우의 솔직한 고백을 듣자, 말길은 아우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지 자신에게는 그런 복이 없음을 알았다.”
눠쑹이 제안하는 정정당당한 승부란 이러했다. 두 형제가 달밤에 함께 취취네가 있는 벽계저로 가서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지 알 수 없게 번갈아 노래를 부르다가 응답을 받는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하되, 형이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니 형의 차례에도 자신이 대신 노래를 부르겠다는 것이다. 눠쑹은 승부를 무작위의 운명에 맡기는 것이 공평하다고 여겼지만, 톈바오의 평소 성품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동생을 ‘쉐도우 싱어’로 내세우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자기가 찌르레기처럼 노래 부르지 못한다고 아우에게 대신 찌르레기가 되어 달라고 부탁하는 꼴이라니! 좋아, 이렇게 해 보자. 우리 각자 번갈아 노래를 불러보는 거야. 나도 네 도움은 원치 않아. 모든 건 내 힘으로 할 거야. 숲속의 부엉이는 소리가 아름답지 못해도 짝을 찾을 때는 남의 도움받지 않고 제힘으로 노래를 부른단다.” 이에 두 사람은 달이 휘영청 밝은 날을 고른 뒤, “집에서 직접 짠 옷감으로 만든 적삼을 입고 달빛이 비추는 높은 언덕 위로 올라가 이곳의 풍습대로 진지하고 성실하게, 그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세상 모르는 어린 신부감에게 노래를 불러 주기로 했다.”
* 견복(甄宓): 본래 원소(袁紹)의 둘째 아들 원희(袁熙)의 부인으로, 기주(冀州)를 평정하던 조조가 204년에 업성(鄴城)을 함락시켰을 때 시어머니와 성을 지키고 있다가 조비에게 먼저 발견되었다. 그녀의 미모에 반한 조비는 조조의 허락을 받아 자신의 정비(正妃)로 삼았다. 학자에 따라서는 甄을 ‘진’으로 읽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 배우자 없는 젊은 미혼 남녀가 왜 사랑의 도피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지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은데, 외지 출신 한족 군인과 현지 소수민족 간에 통혼이 금지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작가 선충원(沈從文, 1902~1988)의 친할머니는 소수민족인 먀오족(苗族)이었는데, 당시 고향의 습속으로는 먀오족 여인이 낳은 자녀는 과거도 볼 수 없고 사회적 지위를 가질 수 없었다. 이에 할아버지는 먀오족 여인에게서 아들 둘을 얻은 후 그녀를 다시 먼 곳으로 시집보내고 죽은 것처럼 가짜 무덤을 만들었다고 한다. 취취의 엄마가 소수민족이라는 언급은 없지만, 작가의 전기적 배경으로 미루어 짐작할 따름이다.
키워드
결혼, 구애, 노래, 사랑, 연애, 형제 간의 경쟁
전후맥락
순순 선주의 두 아들 톈바오와 눠쑹 형제는 벽계저에서 양쪽 강기슭을 오가며 나룻배로 사람들을 태워 나르는 사공 노인의 외손녀 취취를 좋아한다.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이었던 톈바오는 사공 노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밝히고 그의 조언에 따라 아버지를 통해 정식으로 중매쟁이를 내세워 혼담을 넣었다. 역시나 순수하고 어여쁜 취취를 사랑하고 있었던 동생 눠쑹은 자신의 마음을 형에게 알리며 정정당당한 승부를 통해 취취의 마음을 얻자고 제안한다.
고전본문
두 형제는 상류의 배 만드는 곳에서 자기 집의 새로 만든 배를 보고 있었다. 형은 새 배 옆에서 자신의 모든 생각을 동생에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이 사랑은 이년 전 뿌리를 내린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동생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두 사람은 배 만드는 곳에서 강기슭을 따라 왕씨 양반댁의 새 연자 방앗간으로 갔다. 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우야, 넌 잘 된 거야. 자위단장의 사위가 되면 연자 방앗간이 생기잖니. 나는 일이 성사되면 그 노인을 이어 나룻배를 끌어야 해. 난 그 일이 좋아. 벽계저(碧溪岨)의 양쪽 산을 산 후 가장자리에 커다란 대나무를 심어 이 작은 강을 둘러서 나의 성채로 만들 거야!”
둘째는 여전히 들으면서 손에 들고 있던 반달형 낫으로 길가의 풀과 나무를 되는 대로 베어버렸다. 방앗간에 이르자 동생은 발길을 멈추고 형에게 말했다.
“형, 그녀 마음 속에 벌써 누군가가 있다면 믿겠어?”
“안 믿지.”
“형, 이 방앗간이 나중에 내 것이 된다면 믿겠어?”
“안 믿지.”
둘은 방앗간으로 들어갔다.
“그러지 말고…형, 다시 묻겠는데 만약 내가 이 방앗간을 마다하고 그 나룻배를 넘본다면, 게다가 이런 생각을 나도 이년 전부터 해왔다면 믿겠어?”
형은 그 말에 깜짝 놀라며 연자방아 받침돌 가로축 위에 앉아 있는 눠쑹을 바라보았다. 아우가 농담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는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툭툭 치며 그를 끌어내리려고 했다. 형은 모든 걸 이해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믿는다. 네 말이 진담이라는 걸!”
아우는 형의 눈을 바라보며 진심을 털어놓았다.
“형, 나를 믿어. 이건 사실이야. 난 진작에 그러기로 마음먹었어. 집에서 허락하지 않더라도 그쪽에서 승낙한다면 난 정말 나룻배를 끌러 갈 거야! 말해봐, 형도 그래?”
“아버지는 내 말을 들으시고 성안의 마병(馬兵) 양씨(楊氏)를 사공 노인에게 중매쟁이로 보내 혼담을 넣으셨어!”
형은 청혼 절차 얘기를 꺼냈다가 동생이 자신을 비웃을 것 같아서, 중매인을 보낸 의도는 사공 노인이 ‘차는 차 달리는 찻길이 있고, 말은 말 달리는 말길이 있다’고 해서 자신은 찻길을 택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성과는?”
“아무런 성과도 얻은 게 없어. 그 노인은 입에 자두를 물었는지 좀처럼 말을 분명하게 하지 않으니 참.”
“말 달리는 길로 가보는 건 어때?”
“말 달리는 길은 그 노인 말로는 벽계저 맞은편에 있는 높은 언덕에 올라가 3년 6개월 동안 노래를 부르라는 거야. 노래를 불러 취취의 마음을 얻으면 내 사람이 된다는 거지.”
“그거 나쁘지 않은 생각인데!”
“그래, 말더듬이가 말은 못해도 노래는 부를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런 일은 내 차례까지 돌아오지 않아. 나는 찌르레기가 아니라서 노래를 할 줄 모르거든. 그 노인네 속셈이 손녀를 노래 잘 하는 물레방아한테 시집 보내려는 건지, 아니면 절차를 밟아 시집 보낼 준비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형은 어쩔 건데?”
“그 노인더러 사실대로 말해달라고 할 거야. 한 마디면 된다고. 성사되지 않으면 난 배를 따라 타오위안(桃源) *으로 갈 거고, 성사되어서 날더러 나룻배를 끌라 하면 그렇게 하겠다고 할 거야.”
“노래 부르는 건?”
“그건 너의 특기지. 가서 찌르레기처럼 노래 부르려거든 가려무나. 그런다고 네 입에 말똥을 쳐 넣지는 않을 테니.”
아우는 형의 그런 모습을 보며 이 일로 형이 느끼는 고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아우는 형의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다동 사람 특유의 투박하면서도 시원시원한 면이 있어서, 잘 구슬리면 자기 심장이라도 선뜻 내어주지만, 수 틀리면 외삼촌일지라도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 큰도령이라고 왜 찻길을 가다 실패하면 말길을 걸을 생각이 없겠는가? 그러나 아우의 솔직한 고백을 듣자, 말길은 아우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지 자신에게는 그런 복이 없음을 알았다. 이 때문에 그는 조금 괴롭고 화가 났는데, 자연히 감출 수가 없었다.
아우가 좋은 수를 생각해냈다. 두 형제가 달밤에 함께 벽계저로 가서 노래 부르되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지 알 수 없게 두 사람이 번갈아 노래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응답을 받으면 그 사람은 노래 부르기에서 승리한 입술로 사공의 외손녀에게 계속 노래를 불러준다. 형은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니 형의 차례가 오면 아우가 대신 노래를 부른다. 둘이 운명대로 자신의 행복을 결정하니, 이렇게 하는 것은 지극히 공평하다고 할 수 있다. 아우가 이렇게 제안했을 때 형은 자기는 노래를 부를 줄 모르거니와 또 아우를 자기 대신 찌르레기로 삼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그러나 아우는 시인 같은 기질이 있어서 형에게 자기가 말한 대로 하자고 졸랐다. 아우는 이렇게 해야만 모든 게 공평해진다고 역설했다.
형은 아우의 제안을 생각해보더니 씁쓸하게 웃었다.
“제기랄! 자기가 찌르레기처럼 노래 부르지 못한다고 아우에게 대신 찌르레기가 되어 달라고 부탁하는 꼴이라니! 좋아, 이렇게 해 보자. 우리 각자 번갈아 노래를 불러보는 거야. 나도 네 도움은 원치 않아. 모든 건 내 힘으로 할 거야. 숲속의 부엉이는 소리가 아름답지 못해도 짝을 찾을 때는 남의 도움 받지 않고 제힘으로 노래를 부른단다.”
* 타오위안(桃源): 후난성 서북부에 위치한 타오위안현(桃源縣). 동진(東晉)의 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이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속세와 동떨어진 이상향으로 묘사한 무릉도원(武陵桃源)의 실제 무대로 알려져 있다.
토론하기
(1) 눠쑹은 형이 먼저 정식으로 혼담을 넣었지만 당시 마을 젊은이들의 구애 관습에 따라 노래로 승부를 겨루자고 제안한다. 두 형제가 달밤에 함께 취취네가 있는 벽계저로 가서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지 알 수 없게 번갈아 노래를 부르다가 응답을 받는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하되, 다만 형이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니 형의 차례에도 자신이 대신 노래를 부르겠다는 것이다. 눠쑹의 이 방법은 과연 그의 말대로 ‘공평’한가? 내가 만약 톈바오라면 이 제안을 받을 것인가?
(2) 친한 친구와 동시에 같은 이성 친구를 좋아해본 적이 있는가? 만약 베프와 동시에 같은 이성을 좋아하게 된다면 나는 마음을 접고 친구를 밀어주며 사랑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눠쑹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정정당당히 겨뤄보자고 말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먼저 말해서 친구가 포기하도록 할 것인가? 우정과 사랑 중 어느 쪽에 더 큰 가치를 두는지 그 이유를 말해보자.
(3) 동서양의 역사와 문학 속에서 한 형제/자매가 한 여자/남자를 동시에 사랑한 예를 찾아보고 친구들에게 소개해보자.
해설읽기
노래 실력은 없지만 추진력이 뛰어났던 톈바오는 사공 노인의 조언에 따라 ‘찻길’을 선택해서 곧바로 중매쟁이를 내세워 정식으로 청혼했다. 이에 동생 눠쑹도 형이 취취에게 청혼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생은 형에게 자신도 오래전부터 취취를 좋아하고 있었다고 털어놓으며 정정당당한 승부를 통해 취취의 마음을 얻자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런데 눠쑹은 산촌에 사는 왕씨 자위단장이 사윗감으로 점찍어 둔 터였다. 자위단장은 큰 돈을 들여 상류 쪽에 새 연자 방앗간을 만들고 이것을 딸의 혼수로 보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눠쑹은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벌 수 있는 방앗간을 마다하고 취취를 위해 기꺼이 나룻배의 사공이 되길 원했다.
두 형제가 같은 여자를 사랑한 예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야사에 따르면 조조(曹操)의 두 아들 조비(曹丕)와 조식(曹植)은 견복(甄宓)*이라는 여인을 동시에 좋아했는데, 조식이 형수가 된 견황후를 잊지 못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낙수(洛水)의 여신에 기탁하여 『낙신부(洛神賦)』를 지었다고 한다. 그는 여신의 입을 빌려 “인간과 신의 길이 다른 것이 한스럽고, 한창 젊은 나이에 배필이 되지 못함이 원망스럽습니다[恨人神之道殊兮, 怨盛年之莫當]”라며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노래했다. 두 형제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다동에서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다동 속담에 “불은 어디서든 타오를 수 있고, 물은 어디로든 흐를 수 있으며, 해와 달은 어디든 비출 수 있고, 사랑은 어디든 이를 수 있다.” 더구나 일단 ‘형수’나 ‘제수’라는 호칭이 고정되기 전이라면 사랑은 쟁취하는 자의 것 아닌가?!
다동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좋아하는 이성에게 구애를 할 때 노래를 불러서 마음을 전했다. 다동에 주둔하던 군인이었던 취취의 아빠도 구성진 노랫소리로 엄마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취취는 엄마와 아빠의 사랑 노래 속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둘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고, 이를 비관한 아빠가 먼저 음독 자살을 하고, 엄마는 차마 뱃속의 핏덩이 때문에 그 뒤를 따르지 못하다가 취취를 낳고는 바로 강물에 몸을 던져 죽고 만다. 두 형제가 동시에 취취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공 노인은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며 취취가 엄마의 불행한 운명을 따르게 되지 않을지 걱정한다. 사공 노인은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데, 다른 이의 눈에는 어물어물하고 뜨뜻미지근한 모습으로 비쳐 마치 취취 핑계를 대며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오해를 사게 된다.
사실 톈바오도 찻길을 가다 실패하면 말길을 걸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는 사공 노인에게 “몇 년 지나 제가 좀 한가해져서 그냥 다동에 머물러 일을 볼 수 있게 되면요, 까마귀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니지 않고 매일 저녁 이 강가로 와서 취취를 위해 노래를 부를 거예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노래 실력으로는 눠쑹의 상대가 되지 못했던 톈바오는 “아우의 솔직한 고백을 듣자, 말길은 아우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지 자신에게는 그런 복이 없음을 알았다.”
눠쑹이 제안하는 정정당당한 승부란 이러했다. 두 형제가 달밤에 함께 취취네가 있는 벽계저로 가서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지 알 수 없게 번갈아 노래를 부르다가 응답을 받는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하되, 형이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니 형의 차례에도 자신이 대신 노래를 부르겠다는 것이다. 눠쑹은 승부를 무작위의 운명에 맡기는 것이 공평하다고 여겼지만, 톈바오의 평소 성품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동생을 ‘쉐도우 싱어’로 내세우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자기가 찌르레기처럼 노래 부르지 못한다고 아우에게 대신 찌르레기가 되어 달라고 부탁하는 꼴이라니! 좋아, 이렇게 해 보자. 우리 각자 번갈아 노래를 불러보는 거야. 나도 네 도움은 원치 않아. 모든 건 내 힘으로 할 거야. 숲속의 부엉이는 소리가 아름답지 못해도 짝을 찾을 때는 남의 도움받지 않고 제힘으로 노래를 부른단다.” 이에 두 사람은 달이 휘영청 밝은 날을 고른 뒤, “집에서 직접 짠 옷감으로 만든 적삼을 입고 달빛이 비추는 높은 언덕 위로 올라가 이곳의 풍습대로 진지하고 성실하게, 그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세상 모르는 어린 신부감에게 노래를 불러 주기로 했다.”
* 견복(甄宓): 본래 원소(袁紹)의 둘째 아들 원희(袁熙)의 부인으로, 기주(冀州)를 평정하던 조조가 204년에 업성(鄴城)을 함락시켰을 때 시어머니와 성을 지키고 있다가 조비에게 먼저 발견되었다. 그녀의 미모에 반한 조비는 조조의 허락을 받아 자신의 정비(正妃)로 삼았다. 학자에 따라서는 甄을 ‘진’으로 읽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 배우자 없는 젊은 미혼 남녀가 왜 사랑의 도피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지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은데, 외지 출신 한족 군인과 현지 소수민족 간에 통혼이 금지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작가 선충원(沈從文, 1902~1988)의 친할머니는 소수민족인 먀오족(苗族)이었는데, 당시 고향의 습속으로는 먀오족 여인이 낳은 자녀는 과거도 볼 수 없고 사회적 지위를 가질 수 없었다. 이에 할아버지는 먀오족 여인에게서 아들 둘을 얻은 후 그녀를 다시 먼 곳으로 시집보내고 죽은 것처럼 가짜 무덤을 만들었다고 한다. 취취의 엄마가 소수민족이라는 언급은 없지만, 작가의 전기적 배경으로 미루어 짐작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