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허삼관 매혈기』는 ‘허삼관이 피를 파는 이야기’라는 뜻으로, 허삼관이 피를 파는 것과 큰아들 일락이가 허삼관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이 작품의 커다란 두 축을 이룬다. 허삼관은 허옥란과 결혼해서 아들 셋을 낳고, 세 아들의 이름을 일락(一樂), 이락(二樂), 삼락(三樂)이라 지었다. 이를 두고 옥란은 “내가 분만실에서 한 번, 두 번, 세 번 고통스러울 때, 당신은 밖에서 한 번, 두 번, 세 번 즐거웠다는 거 아니야?”라고 핀잔을 준다. 그중에서도 일락이는 허삼관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는 하지만 허삼관은 세 아들 중에서도 의젓하고 유독 자신을 잘 따르는 일락이를 가장 예뻐했다. 하지만 일락이가 아홉 살이 되던 해에 일락이가 허삼관을 전혀 닮지 않았으며 점점 허옥란의 결혼 전 애인 하소용을 닮아간다는 소문이 동네에 쫙 퍼지고, 머지않아 소문은 사실로 밝혀진다.
이때부터 허삼관에겐 ‘자라 대가리’라는 꼬리표가 생긴다. 중국어에서 ‘자라’(소설의 원문은 ‘우구이烏龜’이며, ‘왕바王八’도 같은 뜻이다)는 오쟁이 진 남편, 즉 다른 남자와 간통한 아내를 둔 남편이라는 뜻이다. 이는 무능하고 바보 같음을 조롱하는, 남자가 들을 수 있는 가장 심한 욕 중 하나이다. 이를 한국적 맥락으로 치환하면, 그 모욕적인 정도는 훨씬 덜하지만, 뻐꾸기 새끼를 자기 자식인 줄 알고 기르는 ‘종달새 아빠’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일락이가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배신감을 느낀 허삼관은 등나무 평상에 누워 모든 집안일을 거부하고, 밥상도 따로 차리게 하며, 피를 팔아서 번 돈만큼은 일락이에게 한 푼도 쓰지 않으려 한다.
인용문의 시대적 배경은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이 실패하고 홍수에 연이은 가뭄으로 중국 전역이 대기근에 시달리던 때로, 허삼관의 가족도 오십칠 일간 멀건 옥수수죽밖에 먹지 못했다. 굶주림으로 얼굴이 누렇게 뜨고 피골이 상접한 모습을 본 허삼관은 식구들한테 오랜만에 맛있는 밥 한 끼를 사주기 위해 피를 판다. 그날 저녁 온 가족을 데리고 승리반점으로 맛있는 밥을 먹으러 가면서, 허삼관은 일락이만 쏙 빼놓는다.
고전본문
##
허옥란은 정말이지 일락이가 고구마로 저녁을 때우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허삼관은 하는 수 없이 일락이를 불러서 왼쪽 팔뚝의 주삿바늘 자국을 보여주며 물었다.
“이게 무슨 자국인지 알겠니?”
“피 뽑은 자리잖아요.”
허삼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맞다. 주삿바늘 꽂았던 자리다. 오늘 피를 팔러 갔었지. 왜 피를 팔았느냐? 너희들한테 맛있는 밥 한 끼 사주려고 그랬다 이거야. 나하고 너희 엄마, 그리고 이락이와 삼락이는 식당에 가서 국수를 먹을 테니까. 넌 이 오십 전을 가지고 왕 털보네 가게에 가서 군고구마를 사 먹어라.”
일락이가 허삼관에게 오십 전을 받아 들고 말했다.
“아버지, 저 방금 아버지하고 엄마하고 하는 얘기 다 들었어요. 저한테는 오십 전짜리 군고구마를 사 먹게 하고, 다른 사람들은 일원 칠십 전짜리 국수를 먹으러 간다는 거요. 아버지, 저도 제가 아버지 친아들이 아니라는 거 다 알아요. 이락이하고 삼락이만 친아들이구요. 그렇지만 아버지, 저 오늘 딱 하루만 아버지 친아들 하면 안 돼요? 저도 국수 먹게 해주세요, 네?”
허삼관은 고개를 저으며 일락이를 타일렀다.
“일락아, 내가 평소에 언제 너를 홀대한 적 있니? 이락이, 삼락이가 먹는 거면 너도 같이 먹었잖니. 하지만 오늘 이 돈은 내가 피를 팔아 번 거라구. 쉽게 번 돈이 아니에요. 내 목숨하고 바꾼 돈이라구. 내가 만약 피를 팔아서 너한테 국수를 사 먹인다면, 그 천하의 죽일 놈 하소용을 너무 봐주는 거잖니.”
일락이는 알아듣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문간을 넘자마자 돌아서서 허삼관에게 물었다.
“아버지, 만약에 제가 아버지 친아들이었으면, 국수 먹으러 데려가는 거였죠? 그렇죠?”
“만약에 네가 내 아들이었으면 널 제일 좋아했을 거다.”
이 말에 일락이는 입을 쫙 벌리며 활짝 웃고는 왕 털보네 가게로 갔다.
##
“일락아, 일락이 아니냐?”
허삼관은 일락이인 것을 확인하고는 욕을 퍼부었다.
“이런 제길, 네 엄마는 초주검을 만들어놓고……. 나도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그래, 잘 한다. 남의 집 대문 앞에 앉아서.”
“아버지, 배고파요. 배고파서 힘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 굶어 죽어도 싸지. 이 자식아, 누가 나가랬어? 안 들어오기는 뭘 안 들어온다고…….”
일락이는 손으로 얼굴의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원래는 안 들어오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친자식으로 쳐주질 않으니까 하소용을 찾아간 건데, 하소용도 싫다기에 안 돌아오려고…….”
허삼관은 일락이의 말을 싹둑 잘라버렸다.
“그런데 왜 돌아왔어? 지금이라도 다시 나가. 지금 다시 나가도 된다구. 나가서 아주 안 돌아오면 딱 좋겠다.”
일락이는 이 말을 듣고 더욱 격렬하게 울었다.
“배고프고 졸려요. 뭘 좀 먹고 자고 싶어요. 절 친자식으로 여기지는 않아도 하소용보다는 아껴주실 것 같아서 돌아온 거에요.”
이렇게 말하며 일락이는 벽을 짚고 일어나 다시 서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너 거기 안 서! 이 쪼그만 자식이 정말 가려구 그러나…….”
걸음을 멈춘 일락이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고개를 푹 숙인 패 온몸이 들썩거릴 정도로 울었다. 그 모습을 본 허삼관이 일락이 앞에 쪼그려 앉아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업혀라.”
허삼관은 일락이를 업고 동쪽을 향해 걸어갔다. 골목을 지나 큰길로 접어들었는데, 그 길은 바로 성을 가로질러 흐르는 강 옆으로 난 길이었다. 걸어가는 중에도 허삼관의 입은 일락이에게 쉴 새 없이 욕을 퍼부었다.
“이 쪼그만 자식, 개 같은 자식, 밥통 같은 자식……. 오늘 완전히 날 미쳐 죽게 만들어놓고……. 가고 싶으면 가, 이 자식아. 사람들이 보면 내가 널 업신여기고, 만날 욕하고, 두들겨 패고 그런 줄 알거 아니냐. 널 십일 년이나 키워줬는데, 난 고작 계부밖에 안 되는 거 아니냐. 그 개 같은 놈의 하소용은 단돈 일 원도 안 들이고 네 친아비인데 말이다. 나만큼 재수 옴 붙은 놈도 없을 거다. 내세에는 죽어도 네 아비 노릇은 안 하련다. 나중에는 네가 내 계부 노릇 좀 해라. 너 꼭 기다려라. 내세에는 내가 널 죽을 때까지 고생시킬 테니…….”
승리반점의 환한 불빛이 보이자 일락이가 허삼관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 우리 지금 국수 먹으러 가는 거에요?”
허삼관은 문득 욕을 멈추고 온화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토론하기
(1) 온 가족을 데리고 국수를 사 먹으러 가면서 일락이만 쏙 빼놓은 허삼관의 행동에 대해 토론해보자.
(2) 작품 속에서 묘사된 ‘대약진운동’의 모습은 어떠한지 말해보고, 그에 대해 더 조사해보자.
(3) 일락이에 대한 허삼관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을 말해보자.
해설읽기
허삼관은 일락이에게 자신이 국수를 사 주지 않는 이유에 대해 “내 목숨하고 바꾼 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에게 “피를 팔아 번” 돈은 결코 “쉽게 번 돈이 아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 속 농촌과 성안[도시] 사람들의 매혈에 대한 관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농촌에서는 피를 파는 행위를 건강의 상징으로 여기며, 자신이 피를 팔 수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에 반해 성안 사람들에게 피를 파는 행위는 조상을 파는 것과 같으며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로, 몸이나 전답은 팔아도 피는 팔 수 없다. 농촌에서 자라 성안에서 살고 있는 허삼관에겐 이 두 가지 관념이 섞여 있다. 그는 자신이 피를 팔 수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는 동시에, 땀을 흘려[일해서] 번 돈과 피를 흘려[피를 팔아] 번 돈을 철저하게 구분하며 후자에 더 큰 의미를 둔다. 설령 몸속의 피가 “퍼내도 마르지 않는 우물”이나 “꽃 대신 돈이 열리는 나무”와 같을지라도 피를 팔아서 번 돈은 절대 허투루 쓸 수 없는 것이다.
허삼관은 맨 처음 피를 팔게 된 이후로, 매번 피를 팔 때마다 마치 의식(儀式)처럼 승리반점에 들러 돼지간볶음 한 접시에 황주 두 냥을 마신다. 하지만 이 시기만큼은 승리반점에도 ‘가뭄이 닥쳐’ 메뉴가 양춘면(陽春麵: 별다른 고명이나 건더기 없이 국물만 있는 국수) 한 가지 밖에 없었다. 육수조차 쓰지 못하고 멀건 물에 간장만 조금 탄 국수지만, 그나마도 구 전하던 것이 일 원 칠십 전으로 폭등한 상태라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당시는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인한 자연재해와 대기근으로 중국 전역이 극심한 물자 부족과 굶주림에 시달렸으며, 수 천만 명의 아사자(餓死者)가 나왔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부모가 친자식을 잡아먹은 사건까지 발생했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친자식도 아닌 일락이에게 국수를 사 먹인다는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피(목숨)를 팔아서 번 돈만큼은 친아들이 아닌 일락이에게 절대 쓰지 않겠다고 다짐한 허삼관은 온가족이 어렵게 외식하는 자리에 일락이를 데려가지 않는다. 안 그래도 일락이가 자신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소문이 온동네에 퍼져서 망신살이 뻗쳤는데, 피를 판 돈으로 맛난 음식까지 사 먹인다면 사람들이 자신을 얼마나 무시하고 얕잡아보겠는가? 일락이에게 국수를 사주지 않는 것은 허삼관이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었다. 일락이가 자기도 하루만 친아들이 되어 국수를 먹게 해달라고 애원하자, 그는 “내 목숨하고 바꾼 돈으로 너한테 국수를 사 먹인다면 그 천하에 죽일 놈을 너무 봐주는 것 아니겠냐”라고 타이른다. 철이 일찍 들고 또 허삼관을 많이 따랐던 일락이는 그의 말을 수긍하면서, “만약에 네가 내 아들이었으면 널 제일 좋아했을 거다”라는 소리에 활짝 웃으며 고구마를 사 먹으러 뛰어간다.
하지만 아무리 철이 일찍 들었어도 일락이는 열한 살 어린아이였다. 작은 고구마 하나로는 여전히 배가 차지 않자 결국 참지 못하고 승리반점을 찾아가지만, 가족들이 이미 집으로 돌아간 후여서 헛걸음을 하고 돌아온다. 허기가 져서 그날 밤잠을 이루지 못한 일락이는 “그래, 난 당신 친아들이 아니야. 당신 역시 내 친아버지가 아니라구”라고 생각한다.
이튿날 아침 일락이는 하소용을 찾아가 친아버지라고 부르며 국수를 사달라고 조른다. 하지만 일락이를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 하소용과 그의 부인은 호되게 욕을 퍼부으며 문전박대한다. 그 길로 가출한 일락이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국수 한 그릇만 사 주면 친아들 노릇을 하겠다”라고 울면서 애걸하고, 이 소식이 허삼관의 귀에까지 들어간다. 허삼관은 일락이가 ‘친아버지’를 찾으러 갔다는 말에 기분이 상하지만, 날이 어두워져도 일락이가 돌아오지 않자 걱정하며 아들을 찾아 나선다. 집 근처에서 배고픔에 지쳐 울고 있는 일락이를 발견한 허삼관이 일락이를 업고 구시렁구시렁 욕을 하면서 도착한 곳은 승리반점이었다.
허삼관은 아내의 과오를 덮어주고 일락이를 감싸 안을 만큼 포용력이 있거나 대범한 위인이 못 된다. 그렇다고 일락이를 내쫓거나 학대할 만큼 모질지도 못하다. 오히려 일락이가 느끼기에 자신을 “친자식으로 여기지는 않아도 하소용보다는 아껴주”었다. 일락이의 가출 소동은 결국 허삼관이 국수를 사주면서 끝난다. 자신과 피 한 방울 안 섞인 일락이에게는 피를 팔아서 번 돈을 쓰지 않겠다는 허삼관의 다짐은 그 뒤로도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아이러니하게도 허삼관은 일락이를 위해 가장 많은 피를 뽑게 된다. 피를 엮어 둥지를 만들고 지키는 종달새 허삼관의 부성애는 그래서 늘 웃프다.
키워드
낳은 정, 기른 정, 부성애, 아버지와 아들
전후맥락
『허삼관 매혈기』는 ‘허삼관이 피를 파는 이야기’라는 뜻으로, 허삼관이 피를 파는 것과 큰아들 일락이가 허삼관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이 작품의 커다란 두 축을 이룬다. 허삼관은 허옥란과 결혼해서 아들 셋을 낳고, 세 아들의 이름을 일락(一樂), 이락(二樂), 삼락(三樂)이라 지었다. 이를 두고 옥란은 “내가 분만실에서 한 번, 두 번, 세 번 고통스러울 때, 당신은 밖에서 한 번, 두 번, 세 번 즐거웠다는 거 아니야?”라고 핀잔을 준다. 그중에서도 일락이는 허삼관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는 하지만 허삼관은 세 아들 중에서도 의젓하고 유독 자신을 잘 따르는 일락이를 가장 예뻐했다. 하지만 일락이가 아홉 살이 되던 해에 일락이가 허삼관을 전혀 닮지 않았으며 점점 허옥란의 결혼 전 애인 하소용을 닮아간다는 소문이 동네에 쫙 퍼지고, 머지않아 소문은 사실로 밝혀진다.
이때부터 허삼관에겐 ‘자라 대가리’라는 꼬리표가 생긴다. 중국어에서 ‘자라’(소설의 원문은 ‘우구이烏龜’이며, ‘왕바王八’도 같은 뜻이다)는 오쟁이 진 남편, 즉 다른 남자와 간통한 아내를 둔 남편이라는 뜻이다. 이는 무능하고 바보 같음을 조롱하는, 남자가 들을 수 있는 가장 심한 욕 중 하나이다. 이를 한국적 맥락으로 치환하면, 그 모욕적인 정도는 훨씬 덜하지만, 뻐꾸기 새끼를 자기 자식인 줄 알고 기르는 ‘종달새 아빠’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일락이가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배신감을 느낀 허삼관은 등나무 평상에 누워 모든 집안일을 거부하고, 밥상도 따로 차리게 하며, 피를 팔아서 번 돈만큼은 일락이에게 한 푼도 쓰지 않으려 한다.
인용문의 시대적 배경은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이 실패하고 홍수에 연이은 가뭄으로 중국 전역이 대기근에 시달리던 때로, 허삼관의 가족도 오십칠 일간 멀건 옥수수죽밖에 먹지 못했다. 굶주림으로 얼굴이 누렇게 뜨고 피골이 상접한 모습을 본 허삼관은 식구들한테 오랜만에 맛있는 밥 한 끼를 사주기 위해 피를 판다. 그날 저녁 온 가족을 데리고 승리반점으로 맛있는 밥을 먹으러 가면서, 허삼관은 일락이만 쏙 빼놓는다.
고전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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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옥란은 정말이지 일락이가 고구마로 저녁을 때우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허삼관은 하는 수 없이 일락이를 불러서 왼쪽 팔뚝의 주삿바늘 자국을 보여주며 물었다.
“이게 무슨 자국인지 알겠니?”
“피 뽑은 자리잖아요.”
허삼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맞다. 주삿바늘 꽂았던 자리다. 오늘 피를 팔러 갔었지. 왜 피를 팔았느냐? 너희들한테 맛있는 밥 한 끼 사주려고 그랬다 이거야. 나하고 너희 엄마, 그리고 이락이와 삼락이는 식당에 가서 국수를 먹을 테니까. 넌 이 오십 전을 가지고 왕 털보네 가게에 가서 군고구마를 사 먹어라.”
일락이가 허삼관에게 오십 전을 받아 들고 말했다.
“아버지, 저 방금 아버지하고 엄마하고 하는 얘기 다 들었어요. 저한테는 오십 전짜리 군고구마를 사 먹게 하고, 다른 사람들은 일원 칠십 전짜리 국수를 먹으러 간다는 거요. 아버지, 저도 제가 아버지 친아들이 아니라는 거 다 알아요. 이락이하고 삼락이만 친아들이구요. 그렇지만 아버지, 저 오늘 딱 하루만 아버지 친아들 하면 안 돼요? 저도 국수 먹게 해주세요, 네?”
허삼관은 고개를 저으며 일락이를 타일렀다.
“일락아, 내가 평소에 언제 너를 홀대한 적 있니? 이락이, 삼락이가 먹는 거면 너도 같이 먹었잖니. 하지만 오늘 이 돈은 내가 피를 팔아 번 거라구. 쉽게 번 돈이 아니에요. 내 목숨하고 바꾼 돈이라구. 내가 만약 피를 팔아서 너한테 국수를 사 먹인다면, 그 천하의 죽일 놈 하소용을 너무 봐주는 거잖니.”
일락이는 알아듣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문간을 넘자마자 돌아서서 허삼관에게 물었다.
“아버지, 만약에 제가 아버지 친아들이었으면, 국수 먹으러 데려가는 거였죠? 그렇죠?”
“만약에 네가 내 아들이었으면 널 제일 좋아했을 거다.”
이 말에 일락이는 입을 쫙 벌리며 활짝 웃고는 왕 털보네 가게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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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락아, 일락이 아니냐?”
허삼관은 일락이인 것을 확인하고는 욕을 퍼부었다.
“이런 제길, 네 엄마는 초주검을 만들어놓고……. 나도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그래, 잘 한다. 남의 집 대문 앞에 앉아서.”
“아버지, 배고파요. 배고파서 힘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 굶어 죽어도 싸지. 이 자식아, 누가 나가랬어? 안 들어오기는 뭘 안 들어온다고…….”
일락이는 손으로 얼굴의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원래는 안 들어오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친자식으로 쳐주질 않으니까 하소용을 찾아간 건데, 하소용도 싫다기에 안 돌아오려고…….”
허삼관은 일락이의 말을 싹둑 잘라버렸다.
“그런데 왜 돌아왔어? 지금이라도 다시 나가. 지금 다시 나가도 된다구. 나가서 아주 안 돌아오면 딱 좋겠다.”
일락이는 이 말을 듣고 더욱 격렬하게 울었다.
“배고프고 졸려요. 뭘 좀 먹고 자고 싶어요. 절 친자식으로 여기지는 않아도 하소용보다는 아껴주실 것 같아서 돌아온 거에요.”
이렇게 말하며 일락이는 벽을 짚고 일어나 다시 서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너 거기 안 서! 이 쪼그만 자식이 정말 가려구 그러나…….”
걸음을 멈춘 일락이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고개를 푹 숙인 패 온몸이 들썩거릴 정도로 울었다. 그 모습을 본 허삼관이 일락이 앞에 쪼그려 앉아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업혀라.”
허삼관은 일락이를 업고 동쪽을 향해 걸어갔다. 골목을 지나 큰길로 접어들었는데, 그 길은 바로 성을 가로질러 흐르는 강 옆으로 난 길이었다. 걸어가는 중에도 허삼관의 입은 일락이에게 쉴 새 없이 욕을 퍼부었다.
“이 쪼그만 자식, 개 같은 자식, 밥통 같은 자식……. 오늘 완전히 날 미쳐 죽게 만들어놓고……. 가고 싶으면 가, 이 자식아. 사람들이 보면 내가 널 업신여기고, 만날 욕하고, 두들겨 패고 그런 줄 알거 아니냐. 널 십일 년이나 키워줬는데, 난 고작 계부밖에 안 되는 거 아니냐. 그 개 같은 놈의 하소용은 단돈 일 원도 안 들이고 네 친아비인데 말이다. 나만큼 재수 옴 붙은 놈도 없을 거다. 내세에는 죽어도 네 아비 노릇은 안 하련다. 나중에는 네가 내 계부 노릇 좀 해라. 너 꼭 기다려라. 내세에는 내가 널 죽을 때까지 고생시킬 테니…….”
승리반점의 환한 불빛이 보이자 일락이가 허삼관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 우리 지금 국수 먹으러 가는 거에요?”
허삼관은 문득 욕을 멈추고 온화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토론하기
(1) 온 가족을 데리고 국수를 사 먹으러 가면서 일락이만 쏙 빼놓은 허삼관의 행동에 대해 토론해보자.
(2) 작품 속에서 묘사된 ‘대약진운동’의 모습은 어떠한지 말해보고, 그에 대해 더 조사해보자.
(3) 일락이에 대한 허삼관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을 말해보자.
해설읽기
허삼관은 일락이에게 자신이 국수를 사 주지 않는 이유에 대해 “내 목숨하고 바꾼 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에게 “피를 팔아 번” 돈은 결코 “쉽게 번 돈이 아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 속 농촌과 성안[도시] 사람들의 매혈에 대한 관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농촌에서는 피를 파는 행위를 건강의 상징으로 여기며, 자신이 피를 팔 수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에 반해 성안 사람들에게 피를 파는 행위는 조상을 파는 것과 같으며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로, 몸이나 전답은 팔아도 피는 팔 수 없다. 농촌에서 자라 성안에서 살고 있는 허삼관에겐 이 두 가지 관념이 섞여 있다. 그는 자신이 피를 팔 수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는 동시에, 땀을 흘려[일해서] 번 돈과 피를 흘려[피를 팔아] 번 돈을 철저하게 구분하며 후자에 더 큰 의미를 둔다. 설령 몸속의 피가 “퍼내도 마르지 않는 우물”이나 “꽃 대신 돈이 열리는 나무”와 같을지라도 피를 팔아서 번 돈은 절대 허투루 쓸 수 없는 것이다.
허삼관은 맨 처음 피를 팔게 된 이후로, 매번 피를 팔 때마다 마치 의식(儀式)처럼 승리반점에 들러 돼지간볶음 한 접시에 황주 두 냥을 마신다. 하지만 이 시기만큼은 승리반점에도 ‘가뭄이 닥쳐’ 메뉴가 양춘면(陽春麵: 별다른 고명이나 건더기 없이 국물만 있는 국수) 한 가지 밖에 없었다. 육수조차 쓰지 못하고 멀건 물에 간장만 조금 탄 국수지만, 그나마도 구 전하던 것이 일 원 칠십 전으로 폭등한 상태라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당시는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인한 자연재해와 대기근으로 중국 전역이 극심한 물자 부족과 굶주림에 시달렸으며, 수 천만 명의 아사자(餓死者)가 나왔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부모가 친자식을 잡아먹은 사건까지 발생했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친자식도 아닌 일락이에게 국수를 사 먹인다는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피(목숨)를 팔아서 번 돈만큼은 친아들이 아닌 일락이에게 절대 쓰지 않겠다고 다짐한 허삼관은 온가족이 어렵게 외식하는 자리에 일락이를 데려가지 않는다. 안 그래도 일락이가 자신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소문이 온동네에 퍼져서 망신살이 뻗쳤는데, 피를 판 돈으로 맛난 음식까지 사 먹인다면 사람들이 자신을 얼마나 무시하고 얕잡아보겠는가? 일락이에게 국수를 사주지 않는 것은 허삼관이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었다. 일락이가 자기도 하루만 친아들이 되어 국수를 먹게 해달라고 애원하자, 그는 “내 목숨하고 바꾼 돈으로 너한테 국수를 사 먹인다면 그 천하에 죽일 놈을 너무 봐주는 것 아니겠냐”라고 타이른다. 철이 일찍 들고 또 허삼관을 많이 따랐던 일락이는 그의 말을 수긍하면서, “만약에 네가 내 아들이었으면 널 제일 좋아했을 거다”라는 소리에 활짝 웃으며 고구마를 사 먹으러 뛰어간다.
하지만 아무리 철이 일찍 들었어도 일락이는 열한 살 어린아이였다. 작은 고구마 하나로는 여전히 배가 차지 않자 결국 참지 못하고 승리반점을 찾아가지만, 가족들이 이미 집으로 돌아간 후여서 헛걸음을 하고 돌아온다. 허기가 져서 그날 밤잠을 이루지 못한 일락이는 “그래, 난 당신 친아들이 아니야. 당신 역시 내 친아버지가 아니라구”라고 생각한다.
이튿날 아침 일락이는 하소용을 찾아가 친아버지라고 부르며 국수를 사달라고 조른다. 하지만 일락이를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 하소용과 그의 부인은 호되게 욕을 퍼부으며 문전박대한다. 그 길로 가출한 일락이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국수 한 그릇만 사 주면 친아들 노릇을 하겠다”라고 울면서 애걸하고, 이 소식이 허삼관의 귀에까지 들어간다. 허삼관은 일락이가 ‘친아버지’를 찾으러 갔다는 말에 기분이 상하지만, 날이 어두워져도 일락이가 돌아오지 않자 걱정하며 아들을 찾아 나선다. 집 근처에서 배고픔에 지쳐 울고 있는 일락이를 발견한 허삼관이 일락이를 업고 구시렁구시렁 욕을 하면서 도착한 곳은 승리반점이었다.
허삼관은 아내의 과오를 덮어주고 일락이를 감싸 안을 만큼 포용력이 있거나 대범한 위인이 못 된다. 그렇다고 일락이를 내쫓거나 학대할 만큼 모질지도 못하다. 오히려 일락이가 느끼기에 자신을 “친자식으로 여기지는 않아도 하소용보다는 아껴주”었다. 일락이의 가출 소동은 결국 허삼관이 국수를 사주면서 끝난다. 자신과 피 한 방울 안 섞인 일락이에게는 피를 팔아서 번 돈을 쓰지 않겠다는 허삼관의 다짐은 그 뒤로도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아이러니하게도 허삼관은 일락이를 위해 가장 많은 피를 뽑게 된다. 피를 엮어 둥지를 만들고 지키는 종달새 허삼관의 부성애는 그래서 늘 웃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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