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국수 가출 사건’(셀2 참조)으로부터 2년이 지난 어느 날 일락이의 생물학적 친부 하소용이 길을 가다가 상하이에서 올라온 트럭에 치여 혼수상태에 빠진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허삼관은 기뻐하며 인과응보라고 말한다. 하소용이 며칠이 지나도 깨어나지 못하자 그의 부인이 중의(中醫: 우리나라로 치면 한의사)이자 점 치는 노인을 찾아갔는데, ‘친아들’이 지붕 위에 올라가 ‘아버지, 가지 마세요. 아버지, 돌아오세요’라고 딱 두 마디만 한 시간을 외치면 육신을 빠져나간 혼이 돌아올 수 있다는 처방을 내린다. 그동안 일락이를 부정하며 모질게 욕하고 내쫓았던 하소용의 부인은 허삼관의 집을 찾아와 허옥란에게 울고불고 매달리며 ‘일락이에게 남편의 영혼을 불러오게 해 달라’고 애원한다.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허삼관은 처음에는 불같이 화를 냈지만 이내 마음이 약해져서, 가기 싫다고 버티는 일락이를 불러 설득한다. 일락이는 마지 못해 하소용네 지붕 위에까지 올라갔지만, 자신의 친아버지는 허삼관이라며 곡을 하길 극구 거부하고, 이에 사람들이 생사(生絲)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허삼관을 데려온다.
고전본문
“착한 내 아들 일락아, 넌 정말 내 아들이다. 내가 널 십삼 년 동안 헛키우지 않았구나. 오늘 네가 말한 걸 들으니 다시 십삼 년을 키우더라도 기분이 아주 좋을 것 같다…….”
일락이는 허삼관이 온 것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 저 지붕에 앉아 있는 거 지겨워요. 빨리 저 좀 내려주세요. 혼자 내려가기 무서우니까, 빨리 올라와서 저 좀 내려주세요.”
“일락아, 지금은 널 내려줄 수가 없단다. 너 아직 안 울었잖니. 소리도 안 쳤고, 하소용의 혼이 아직 돌아오지…….”
“아버지, 싫어요. 저 내려갈래요.”
“일락아, 내 말 들어라. 몇 번 울고 소리치면 끝이야. 이건 내가 사람들한데 약속한 거란다. 하기로 했으니 반드시 해야 하는 거란 말이다. 군자일언(君子一言)이면 사마난추(駟馬難追)라는 말도 있잖니. 무슨 뜻인고 하니, 군자가 한 번 내뱉은 말은 네 마리 말이 끄는 마차로도 따라잡지 못한다 이 말씀이야. 어쨌든 그 개 같은 놈의 하소용이 네 친아비인 것은 사실…….”
지붕 위의 일락이가 울면서 허삼관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다 아버지가 내 친아버지가 아니라 하고 엄마도 그렇게 말했는데, 지금 아버지까지 그렇게 말씀하시네요. 난 친아버지가 없고, 친엄마도 없고, 친척도 하나 없고, 그냥 나 혼자뿐이네요. 안 올라오시면 그냥 저 혼자 내려갈래요.”
일락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발짝쯤 옮기다가 경사진 곳에 이르자 다시 무서운 생각이 들어 그대로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일락이가 우는 모습을 보고 하소용의 부인이 소리 질렀다.
“일락아, 네가 드디어 우는구나. 일락아, 빨리 소리쳐라…….”
“입 닥치지 못해!”
허삼관은 하소용의 부인에게 엄포를 놓았다.
“일락이는 지금 그 개 같은 놈의 하소용 때문에 우는 게 아니고, 나 때문에 우는 거란 말이오.”
허삼관은 다시 고개를 들어 일락이를 타일렀다.
“일락아, 착한 내 아들아. 그냥 소리 몇 번 지르렴. 소리 지르면 내 바로 올라가서 널 데리고 내려오마. 그리고 우리 같이 승리반점에 가서 돼지간볶음 시켜 먹자…….”
일락이가 울면서 말했다.
“아버지, 어서 저 좀 내려주세요.”
“일락아, 그냥 소리 몇 번 질러. 그럼 오늘부터는 내가 네 친아버지가 되는 거다. 일락아, 소리 몇 번 지르렴. 지금 소리 지르면 이제 그 개 같은 놈의 하소용은 두 번 다시 네 친아비가 될 수 없고, 내가 바로 네 친아비가 되는 거라니까…….”
일락이는 허삼관의 말을 듣고는 하늘을 향해 외쳤다.
“아버지, 가지 마세요. 아버지, 돌아오세요.”
고함을 친 뒤 허삼관에게 말했다.
“아버지, 빨리 올라와서 저 좀 내려주세요.”
(중략)
허삼관은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가 일락이를 등에 업고 내려왔다. 지붕에서 내려온 허삼관이 일락이에게 일렀다.
“일락아, 여기 꼼짝 말고 있어라.”
이렇게 말한 뒤 허삼관은 하소용의 집으로 들어가 식칼을 들고 나왔다. 그러고는 하소용의 집 대문 앞에 서서 식칼로 자기 얼굴과 팔을 그어 상처를 낸 후, 선혈이 낭자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소리 쳤다.
“똑바로들 보시오. 이 피는 내가 칼로 그어서 나온 거요. 당신들…….”
허삼관은 하소용의 부인을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
“만약 당신들 중에 또 일락이가 내 친아들이 아니라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이렇게 칼로 베어버릴 테요.”
말을 마친 뒤 허삼관은 칼을 내던지고 일락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일락아, 우리 집에 가자.”
토론하기
(1)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크다”는 속담이 있지만,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핏줄에 대한 집착도 무시할 수 없다. 하소용은 자신을 찾아온 일락이를 모질게 내쫓았으며, 일락이가 친아들이라는 사실을 끝까지 부인했다. 허삼관은 일락이가 자신이 친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괴로워하며 일락이를 구박하고 때리기도 했다. 낳은 정과 기른 정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가?
(2) 어릴 적 자신을 버린 부모가 갑자기 나타나 이식 수술을 받지 않으면 얼마 살지 못한다며 내게 간이나 신장 같은 장기 기증을 요구한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해설읽기
2년 전 허삼관이 온가족을 데리고 국수 먹으러 가면서 일락이만 빼놓았다가 일락이가 가출하며 최고조에 이르렀던 둘 사이의 갈등은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러다 다시 두 사람의 아픈 상처(친자 논란)를 들쑤시는 사건이 일어난다. 일락이의 생물학적 친부 하소용이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졌는데, 현대의학으로는 도저히 손쓸 방도가 없자 그의 아내가 점쟁이를 찾아갔다. 그녀가 받은 처방은 ‘친아들’이 지붕에 올라가 굴뚝을 깔고 앉은 다음 서쪽 하늘을 향해 ‘아버지, 가지 마세요. 아버지, 돌아오세요’ 딱 이 두 마디를 한 시간동안 외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락이는 허삼관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따랐으며, 허삼관도 일락이가 자신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세 아들 중에서 일락이를 가장 예뻐했다. 일락이는 그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내 아버지는 하소용이 아니라 허삼관”이라며 친부의 존재를 부인했다. 그런 일락이가 딱 두 번 하소용을 아버지라 부르며 찾아간 적이 있었다. 한번은 대장장이 방씨 큰아들의 머리를 삼각돌로 내리찍어 병원비로 큰돈을 물어줘야 했을 때 친아버지한테 돈을 구해오라는 허삼관의 성화에 못 이겨 찾아갔고, 한번은 자신에게만 국수를 사주지 않은 허삼관이 야속하고 배가 고파서 국수를 사달라고 찾아간 것이었다. 하지만 하소용은 일락이를 아들로 인정하기는 커녕 두 번 다 모질게 욕하며 내쫓았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하소용의 집 지붕 위에 올라가 그를 ‘아버지’라고 불러 달라니, 아무리 온 동네 사람이 다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라지만, 또다시 치부를 드러내며 스스로 똥물을 뒤집어쓰라는 게 아닌가?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허삼관은 처음엔 “다시 한번 내 앞에서 하소용이가 일락이 친아비라는 소릴 하면 주둥이를 뭉개버릴 거야”라며 노발대발했지만, 조용히 일락이를 불러 자신과 넷째 삼촌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설득한다. 넷째 삼촌은 허삼관이 일락이만 했을 때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딴 남자와 도망을 가서 고아가 된 그를 거둬준 분이다. 허삼관은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어찌됐든 하소용이 일락이의 친아버지인 건 사실이고, 그래도 죽어가는 사람을 일단 살려 놓고 봐야하지 않겠냐며 친아들 된 도리로 지붕에 올라가 소리 몇 번 질러주라고 한다.
“일락아, 하소용이 널 친아들로 받아들이려 한다는구나. 그 사람이 널 친아들로 생각하지 않으면 나도 네 친아비 노릇을 할 수가 없단다……. 일락아, 오늘 내가 한 말 꼭 기억해둬라.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한다. 난 나중에 네가 나한테 뭘 해줄 거란 기대 안 한다. 그냥 네가 나한테, 내가 넷째 삼촌한테 느꼈던 감정만큼만 가져준다면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늙어서 죽을 때, 그저 널 키운 걸 생각해서 가슴이 좀 북받치고, 눈물 몇 방울 흘려주면 난 그걸로 만족한다…….”
일락이는 허삼관의 말을 듣고 지붕에 올라가긴 했지만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아버지는 하소용이 아니라 허삼관”이라고 버티며 곡하기를 거부한다. 친엄마인 허옥란도 일락이의 고집을 꺾지 못하자 사람들은 허삼관이 일하는 생사 공장으로 그를 찾아간다. 이 사실을 들은 허삼관은 “십삼 년 동안 헛키우지 않았구나”라며 몹시 흐뭇해한다. 일락이의 태도는 그동안 구겨진 허삼관의 체면을 세워주고 그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허삼관은 무서우니까 지붕에서 빨리 내려 달라고 우는 일락이에게 그냥 소리 몇 번만 지르면 오늘부터 내가 네 친아버지라고 달랜다. 일락이는 허삼관의 말을 듣고 하늘을 향해 외친다. 허삼관은 그 외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열세 살짜리 어린아이가 높은 굴뚝 위에서 느꼈을 공포와 그것을 이겨내고 자신의 말 대로 따라준 마음이 어떠한지 이해했을 것이다. 아마도 일락이가 외쳐 부른 ‘아버지’는 하소용이 아닌 허삼관이었을 것이다. 허삼관은 일락이를 지붕에서 업고 내려와 구름같이 몰려든 구경꾼들을 향해 피로써 맹세한다. 앞으로 누구든 일락이가 내 친아들이 아니라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칼로 베어버리겠노라고.
키워드
낳은 정, 기른 정, 부성애, 아버지와 아들
전후맥락
‘국수 가출 사건’(셀2 참조)으로부터 2년이 지난 어느 날 일락이의 생물학적 친부 하소용이 길을 가다가 상하이에서 올라온 트럭에 치여 혼수상태에 빠진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허삼관은 기뻐하며 인과응보라고 말한다. 하소용이 며칠이 지나도 깨어나지 못하자 그의 부인이 중의(中醫: 우리나라로 치면 한의사)이자 점 치는 노인을 찾아갔는데, ‘친아들’이 지붕 위에 올라가 ‘아버지, 가지 마세요. 아버지, 돌아오세요’라고 딱 두 마디만 한 시간을 외치면 육신을 빠져나간 혼이 돌아올 수 있다는 처방을 내린다. 그동안 일락이를 부정하며 모질게 욕하고 내쫓았던 하소용의 부인은 허삼관의 집을 찾아와 허옥란에게 울고불고 매달리며 ‘일락이에게 남편의 영혼을 불러오게 해 달라’고 애원한다.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허삼관은 처음에는 불같이 화를 냈지만 이내 마음이 약해져서, 가기 싫다고 버티는 일락이를 불러 설득한다. 일락이는 마지 못해 하소용네 지붕 위에까지 올라갔지만, 자신의 친아버지는 허삼관이라며 곡을 하길 극구 거부하고, 이에 사람들이 생사(生絲)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허삼관을 데려온다.
고전본문
“착한 내 아들 일락아, 넌 정말 내 아들이다. 내가 널 십삼 년 동안 헛키우지 않았구나. 오늘 네가 말한 걸 들으니 다시 십삼 년을 키우더라도 기분이 아주 좋을 것 같다…….”
일락이는 허삼관이 온 것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 저 지붕에 앉아 있는 거 지겨워요. 빨리 저 좀 내려주세요. 혼자 내려가기 무서우니까, 빨리 올라와서 저 좀 내려주세요.”
“일락아, 지금은 널 내려줄 수가 없단다. 너 아직 안 울었잖니. 소리도 안 쳤고, 하소용의 혼이 아직 돌아오지…….”
“아버지, 싫어요. 저 내려갈래요.”
“일락아, 내 말 들어라. 몇 번 울고 소리치면 끝이야. 이건 내가 사람들한데 약속한 거란다. 하기로 했으니 반드시 해야 하는 거란 말이다. 군자일언(君子一言)이면 사마난추(駟馬難追)라는 말도 있잖니. 무슨 뜻인고 하니, 군자가 한 번 내뱉은 말은 네 마리 말이 끄는 마차로도 따라잡지 못한다 이 말씀이야. 어쨌든 그 개 같은 놈의 하소용이 네 친아비인 것은 사실…….”
지붕 위의 일락이가 울면서 허삼관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다 아버지가 내 친아버지가 아니라 하고 엄마도 그렇게 말했는데, 지금 아버지까지 그렇게 말씀하시네요. 난 친아버지가 없고, 친엄마도 없고, 친척도 하나 없고, 그냥 나 혼자뿐이네요. 안 올라오시면 그냥 저 혼자 내려갈래요.”
일락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발짝쯤 옮기다가 경사진 곳에 이르자 다시 무서운 생각이 들어 그대로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일락이가 우는 모습을 보고 하소용의 부인이 소리 질렀다.
“일락아, 네가 드디어 우는구나. 일락아, 빨리 소리쳐라…….”
“입 닥치지 못해!”
허삼관은 하소용의 부인에게 엄포를 놓았다.
“일락이는 지금 그 개 같은 놈의 하소용 때문에 우는 게 아니고, 나 때문에 우는 거란 말이오.”
허삼관은 다시 고개를 들어 일락이를 타일렀다.
“일락아, 착한 내 아들아. 그냥 소리 몇 번 지르렴. 소리 지르면 내 바로 올라가서 널 데리고 내려오마. 그리고 우리 같이 승리반점에 가서 돼지간볶음 시켜 먹자…….”
일락이가 울면서 말했다.
“아버지, 어서 저 좀 내려주세요.”
“일락아, 그냥 소리 몇 번 질러. 그럼 오늘부터는 내가 네 친아버지가 되는 거다. 일락아, 소리 몇 번 지르렴. 지금 소리 지르면 이제 그 개 같은 놈의 하소용은 두 번 다시 네 친아비가 될 수 없고, 내가 바로 네 친아비가 되는 거라니까…….”
일락이는 허삼관의 말을 듣고는 하늘을 향해 외쳤다.
“아버지, 가지 마세요. 아버지, 돌아오세요.”
고함을 친 뒤 허삼관에게 말했다.
“아버지, 빨리 올라와서 저 좀 내려주세요.”
(중략)
허삼관은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가 일락이를 등에 업고 내려왔다. 지붕에서 내려온 허삼관이 일락이에게 일렀다.
“일락아, 여기 꼼짝 말고 있어라.”
이렇게 말한 뒤 허삼관은 하소용의 집으로 들어가 식칼을 들고 나왔다. 그러고는 하소용의 집 대문 앞에 서서 식칼로 자기 얼굴과 팔을 그어 상처를 낸 후, 선혈이 낭자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소리 쳤다.
“똑바로들 보시오. 이 피는 내가 칼로 그어서 나온 거요. 당신들…….”
허삼관은 하소용의 부인을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
“만약 당신들 중에 또 일락이가 내 친아들이 아니라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이렇게 칼로 베어버릴 테요.”
말을 마친 뒤 허삼관은 칼을 내던지고 일락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일락아, 우리 집에 가자.”
토론하기
(1)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크다”는 속담이 있지만,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핏줄에 대한 집착도 무시할 수 없다. 하소용은 자신을 찾아온 일락이를 모질게 내쫓았으며, 일락이가 친아들이라는 사실을 끝까지 부인했다. 허삼관은 일락이가 자신이 친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괴로워하며 일락이를 구박하고 때리기도 했다. 낳은 정과 기른 정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가?
(2) 어릴 적 자신을 버린 부모가 갑자기 나타나 이식 수술을 받지 않으면 얼마 살지 못한다며 내게 간이나 신장 같은 장기 기증을 요구한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해설읽기
2년 전 허삼관이 온가족을 데리고 국수 먹으러 가면서 일락이만 빼놓았다가 일락이가 가출하며 최고조에 이르렀던 둘 사이의 갈등은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러다 다시 두 사람의 아픈 상처(친자 논란)를 들쑤시는 사건이 일어난다. 일락이의 생물학적 친부 하소용이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졌는데, 현대의학으로는 도저히 손쓸 방도가 없자 그의 아내가 점쟁이를 찾아갔다. 그녀가 받은 처방은 ‘친아들’이 지붕에 올라가 굴뚝을 깔고 앉은 다음 서쪽 하늘을 향해 ‘아버지, 가지 마세요. 아버지, 돌아오세요’ 딱 이 두 마디를 한 시간동안 외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락이는 허삼관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따랐으며, 허삼관도 일락이가 자신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세 아들 중에서 일락이를 가장 예뻐했다. 일락이는 그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내 아버지는 하소용이 아니라 허삼관”이라며 친부의 존재를 부인했다. 그런 일락이가 딱 두 번 하소용을 아버지라 부르며 찾아간 적이 있었다. 한번은 대장장이 방씨 큰아들의 머리를 삼각돌로 내리찍어 병원비로 큰돈을 물어줘야 했을 때 친아버지한테 돈을 구해오라는 허삼관의 성화에 못 이겨 찾아갔고, 한번은 자신에게만 국수를 사주지 않은 허삼관이 야속하고 배가 고파서 국수를 사달라고 찾아간 것이었다. 하지만 하소용은 일락이를 아들로 인정하기는 커녕 두 번 다 모질게 욕하며 내쫓았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하소용의 집 지붕 위에 올라가 그를 ‘아버지’라고 불러 달라니, 아무리 온 동네 사람이 다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라지만, 또다시 치부를 드러내며 스스로 똥물을 뒤집어쓰라는 게 아닌가?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허삼관은 처음엔 “다시 한번 내 앞에서 하소용이가 일락이 친아비라는 소릴 하면 주둥이를 뭉개버릴 거야”라며 노발대발했지만, 조용히 일락이를 불러 자신과 넷째 삼촌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설득한다. 넷째 삼촌은 허삼관이 일락이만 했을 때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딴 남자와 도망을 가서 고아가 된 그를 거둬준 분이다. 허삼관은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어찌됐든 하소용이 일락이의 친아버지인 건 사실이고, 그래도 죽어가는 사람을 일단 살려 놓고 봐야하지 않겠냐며 친아들 된 도리로 지붕에 올라가 소리 몇 번 질러주라고 한다.
“일락아, 하소용이 널 친아들로 받아들이려 한다는구나. 그 사람이 널 친아들로 생각하지 않으면 나도 네 친아비 노릇을 할 수가 없단다……. 일락아, 오늘 내가 한 말 꼭 기억해둬라.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한다. 난 나중에 네가 나한테 뭘 해줄 거란 기대 안 한다. 그냥 네가 나한테, 내가 넷째 삼촌한테 느꼈던 감정만큼만 가져준다면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늙어서 죽을 때, 그저 널 키운 걸 생각해서 가슴이 좀 북받치고, 눈물 몇 방울 흘려주면 난 그걸로 만족한다…….”
일락이는 허삼관의 말을 듣고 지붕에 올라가긴 했지만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아버지는 하소용이 아니라 허삼관”이라고 버티며 곡하기를 거부한다. 친엄마인 허옥란도 일락이의 고집을 꺾지 못하자 사람들은 허삼관이 일하는 생사 공장으로 그를 찾아간다. 이 사실을 들은 허삼관은 “십삼 년 동안 헛키우지 않았구나”라며 몹시 흐뭇해한다. 일락이의 태도는 그동안 구겨진 허삼관의 체면을 세워주고 그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허삼관은 무서우니까 지붕에서 빨리 내려 달라고 우는 일락이에게 그냥 소리 몇 번만 지르면 오늘부터 내가 네 친아버지라고 달랜다. 일락이는 허삼관의 말을 듣고 하늘을 향해 외친다. 허삼관은 그 외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열세 살짜리 어린아이가 높은 굴뚝 위에서 느꼈을 공포와 그것을 이겨내고 자신의 말 대로 따라준 마음이 어떠한지 이해했을 것이다. 아마도 일락이가 외쳐 부른 ‘아버지’는 하소용이 아닌 허삼관이었을 것이다. 허삼관은 일락이를 지붕에서 업고 내려와 구름같이 몰려든 구경꾼들을 향해 피로써 맹세한다. 앞으로 누구든 일락이가 내 친아들이 아니라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칼로 베어버리겠노라고.
키워드
낳은 정, 기른 정, 부성애, 아버지와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