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북송대 화원화가 곽희(郭熙)의 『임천고치』(林泉高致)는 중국 산수화론 중 가장 종합적인 고전으로 평가된다. 이 책은 1121년에 곽희의 아들 곽사(郭思)가 엮은 것으로 그 중 가장 핵심 되는 내용이 「산수훈(山水訓)」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산수를 보는 법과 그리는 법 등 산수화론에서 망라할 수 있는 창작과 감상, 기법, 의의 등을 다 총괄해놓았다. 다음은 옛 화가들이 산수를 어떻게 관찰하고 그리려 했는지 잘 알려주는 대목이다.
고전본문
꽃 그리는 것을 배우려면, 한 그루의 꽃을 깊은 구덩이 속에 두고 그 위에서 내려다보면 꽃의 사면(四面)을 다 볼 수 있다. 대나무 그리는 것을 배우려면, 대나무 한 가지를 취해서 달밤에 흰 벽 위에 그 그림자를 비치게 하면 대나무의 참된 모습이 나타난다. 산수 그리는 것을 배우는 것이 이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몸소 산천에 나아가 이를 취한다면, 산수의 의경[意度]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참된 산수의 내와 골짜기는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써 그 깊음을 취하고, 가까이에서 노니는 것으로써 그 옅음을 취한다. 참된 산수의 암석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써 그 형세를 취하고, 가까이에서 보는 것으로써 그 질감을 취한다. 참된 산수의 구름[雲氣]은 사계절이 다르다. 봄에는 온화하면서 고우며, 여름에는 우거져서 뭉실뭉실 피어오르고, 가을에는 성글면서 얇고, 겨울에는 어두우면서 묽다. 그림에서는 구름의 큰 형상을 나타나게 하되 예리하게 새겨놓은 형태로 그리지 않아야 구름의 자태가 생기 있게 된다. 참된 산수의 안개[烟嵐]는 사계절이 다르다. 봄 산은 맑게 단장하여 웃는 것 같고, 여름 산은 울창하게 푸르러 젖어 있는 것 같고, 가을 산은 선명하게 깨끗하여 치장한 것 같고, 겨울 산은 어두침침하고 쓸쓸하여 졸고 있는 것 같다. 그림에서는 큰 뜻을 나타나게 하되 아로새긴 듯 그리는 필적(筆跡)으로 하지 않아야 안개가 낀 경치의 형상이 바르게 된다. 참된 산수의 비바람은 멀리서 바라보면 얻을 수 있는데 가까이에서는 익숙해지도록 음미할 수는 있으나 (비바람으로) 냇물이 일어났다가 그치는 기세를 궁구할 수는 없다. 참된 산수의 흐리고 맑은 경치는 멀리에서 바라보아야 죄다 볼 수 있는데, 가까이에서는 시야가 좁아져 산의 밝거나 어두운 곳과 숨어있거나 드러나는 곳의 자취를 얻을 수 없다.
(중략)
산은 가까이 보면 이러하고, 몇 리의 멀리에서 보면 또한 이러하며, 수십 리의 멀리에서 보면 또한 이러하여, 멀어질 때마다 매번 다르다. 이것이 이른바 산의 모습은 걸음걸음마다 바뀐다는 것이다. 산은 정면을 보면 이러하고, 측면을 보면 또한 이러하며, 뒷면 또한 이러하여 볼 때마다 매번 다르다. 이것이 이른바 산의 모습은 면면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의 산인데도 수십 개, 수백 개 산의 형상을 겸하고 있으니 어찌 궁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산은 봄과 여름에 보면 이러하고, 가을과 겨울에 보면 또한 이러하다. 이것이 이른바 사계절의 경치가 같지 않은 것이다. 산은 아침에 보면 이러하고, 저녁에 보면 또한 이러하며, 흐리거나 맑은 날에 보면 또한 이러하다. 이것은 아침저녁의 변화가 같지 않은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의 산인데도 수십 개, 수백 개 산의 자태를 겸하고 있으니 어찌 궁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임천고치』, 「산수훈」 중에서
토론하기
(1) 본문을 토대로 옛 화가가 산수를 그릴 때 어떤 과정을 거쳤을지 생각해보자.
(2) 산의 경치를 감상하는 방법에 대해 토론해보자
(3) 이런 식으로 그린다면, 서양화에서 풍경화를 그리는 법과 어떤 면이 다를지 얘기해보자. 그리고 실제 산수와는 어떤 점에서 다르게 될지도 얘기해보자.
해설읽기
우리는 이따금 산을 보고, 산을 올라가기도 한다. 그 속에서 냇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기도 한다. 또한 산과 물을 한 폭에 그려놓은 산수화를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옛 화가들은 산수를 어떻게 보고, 산수화를 어떻게 그려내고자 하였을까?
사진이 없던 시기, 옛 화가들은 산을 직접 오르내리며 눈으로 본 것을 마음으로 기록하였다. 화가들은 몸소 산을 관찰하고 체험하면서 공간 시점에 따라 산은 하나이나 다양한 형상을 갖추었으며, 시간 시점에 따라 계절감이 다채로우니 이렇게 변화무쌍한 대자연의 이치를 다 담아내는 것이 산수화라 여겼다. 따라서 산수화에는 시점에 따라 저마다 다른 경관이 하나의 화폭에 전부 담기게 된다. 이와 같이 산수를 체험하는 공간 인식론이 적용된 구체적 화론이 바로 곽희의 『임천고치』이다.
곽희는 산의 경관이 화가가 이동하는 걸음걸음 마다 변하게 되고, 서로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계절에 따라 봄의 구름, 여름의 구름, 가을의 구름, 겨울의 구름이 어떻게 달라지며, 안개와 비바람도 계절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는지 말해주고 있다. 이렇게 계절과 날씨, 위치에 따라 저마다 달라지는 산의 모습은 한 가지의 고정된 시점으로는 다 관찰할 수 없으며, 이것을 위해서는 이동하며 바라보는 다양한 시점의 방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산수자연의 상이한 시공간에 따라 이에 상응하는 관조방식을 취하는 것이 바로 그가 제시한 “몸소 산천에 나아가 취한다(身即山川而取之)”는 것이다. 동일한 산의 경관이라도 멀리서 보는 것과 가까이에서 보는 것, 계절에 따라 아침저녁으로 보는 것이 저마다 다른 풍경이기에 보는 공간과 시간에 따라 수십 개, 수백 개의 산의 자태를 구현해낼 수 있다. 이렇게 치밀한 관찰에 의해 화가는 예술적 재현자로서 산수화를 창작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곽희는 산수에서 이동하는 시점이 투영된 삼원법(三遠法)을 제시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된다. “산을 그리는 데에는 삼원법이 있다. 산 아래에서 산 꼭대기를 올려다보는 것을 고원(高遠)이라 하고, 산 앞에서 산 뒤를 넘겨다보는 것을 일러 심원(深遠)이라 하며, 가까운 산에서 먼 산을 바라보는 것을 일러 평원(平遠)이라 한다.” 여기에서 ‘삼원’은 인간이 객체로서 존재하는 자연과 관계 맺는 관점인데, 수평적인 시선에서 산을 조망한 ‘평원(平遠)’과 산 아래에서 산을 올려다 본 ‘고원(高遠)’, 산의 정상에서 내려다 본 ‘심원(深遠)’이 그것으로, 그의 대표작인 「조춘도(早春圖)」(1072, 타이페이 고궁박물관 소장)에서도 삼원법이 잘 드러나 있다. 삼원은 바로 주관의 시점에 따라 객체인 산수를 상대화하는 방식이며, 공간의 변화와 시간의 경과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므로 화면에 그려진 산수는 시간과 공간의 여정이 다 담겨지게 된다.
이러한 점은 서구의 원근법과는 다른 공간인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서양화에서 모든 시선은 하나의 점, 즉 소실점에 귀결되어 단일 시점의 원근법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는 시점을 이동시키는 산점투시를 채택함으로써 고정된 시점의 제약에서 벗어나는 특징을 선보이게 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화가는 자신이 체험한 시간과 공간의 여정을 산수화에 재현하려 했으며, 감상자는 그러한 산수 공간을 실제로 거닐고 노니는 것처럼 마음으로 체험하고 음미할 수 있게 된다.
키워드
임천고지(林泉高致), 곽희, 산수, 감상, 창작, 산수화론, 삼원법(三遠法)
전후맥락
북송대 화원화가 곽희(郭熙)의 『임천고치』(林泉高致)는 중국 산수화론 중 가장 종합적인 고전으로 평가된다. 이 책은 1121년에 곽희의 아들 곽사(郭思)가 엮은 것으로 그 중 가장 핵심 되는 내용이 「산수훈(山水訓)」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산수를 보는 법과 그리는 법 등 산수화론에서 망라할 수 있는 창작과 감상, 기법, 의의 등을 다 총괄해놓았다. 다음은 옛 화가들이 산수를 어떻게 관찰하고 그리려 했는지 잘 알려주는 대목이다.
고전본문
꽃 그리는 것을 배우려면, 한 그루의 꽃을 깊은 구덩이 속에 두고 그 위에서 내려다보면 꽃의 사면(四面)을 다 볼 수 있다. 대나무 그리는 것을 배우려면, 대나무 한 가지를 취해서 달밤에 흰 벽 위에 그 그림자를 비치게 하면 대나무의 참된 모습이 나타난다. 산수 그리는 것을 배우는 것이 이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몸소 산천에 나아가 이를 취한다면, 산수의 의경[意度]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참된 산수의 내와 골짜기는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써 그 깊음을 취하고, 가까이에서 노니는 것으로써 그 옅음을 취한다. 참된 산수의 암석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써 그 형세를 취하고, 가까이에서 보는 것으로써 그 질감을 취한다. 참된 산수의 구름[雲氣]은 사계절이 다르다. 봄에는 온화하면서 고우며, 여름에는 우거져서 뭉실뭉실 피어오르고, 가을에는 성글면서 얇고, 겨울에는 어두우면서 묽다. 그림에서는 구름의 큰 형상을 나타나게 하되 예리하게 새겨놓은 형태로 그리지 않아야 구름의 자태가 생기 있게 된다. 참된 산수의 안개[烟嵐]는 사계절이 다르다. 봄 산은 맑게 단장하여 웃는 것 같고, 여름 산은 울창하게 푸르러 젖어 있는 것 같고, 가을 산은 선명하게 깨끗하여 치장한 것 같고, 겨울 산은 어두침침하고 쓸쓸하여 졸고 있는 것 같다. 그림에서는 큰 뜻을 나타나게 하되 아로새긴 듯 그리는 필적(筆跡)으로 하지 않아야 안개가 낀 경치의 형상이 바르게 된다. 참된 산수의 비바람은 멀리서 바라보면 얻을 수 있는데 가까이에서는 익숙해지도록 음미할 수는 있으나 (비바람으로) 냇물이 일어났다가 그치는 기세를 궁구할 수는 없다. 참된 산수의 흐리고 맑은 경치는 멀리에서 바라보아야 죄다 볼 수 있는데, 가까이에서는 시야가 좁아져 산의 밝거나 어두운 곳과 숨어있거나 드러나는 곳의 자취를 얻을 수 없다.
(중략)
산은 가까이 보면 이러하고, 몇 리의 멀리에서 보면 또한 이러하며, 수십 리의 멀리에서 보면 또한 이러하여, 멀어질 때마다 매번 다르다. 이것이 이른바 산의 모습은 걸음걸음마다 바뀐다는 것이다. 산은 정면을 보면 이러하고, 측면을 보면 또한 이러하며, 뒷면 또한 이러하여 볼 때마다 매번 다르다. 이것이 이른바 산의 모습은 면면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의 산인데도 수십 개, 수백 개 산의 형상을 겸하고 있으니 어찌 궁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산은 봄과 여름에 보면 이러하고, 가을과 겨울에 보면 또한 이러하다. 이것이 이른바 사계절의 경치가 같지 않은 것이다. 산은 아침에 보면 이러하고, 저녁에 보면 또한 이러하며, 흐리거나 맑은 날에 보면 또한 이러하다. 이것은 아침저녁의 변화가 같지 않은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의 산인데도 수십 개, 수백 개 산의 자태를 겸하고 있으니 어찌 궁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임천고치』, 「산수훈」 중에서
토론하기
(1) 본문을 토대로 옛 화가가 산수를 그릴 때 어떤 과정을 거쳤을지 생각해보자.
(2) 산의 경치를 감상하는 방법에 대해 토론해보자
(3) 이런 식으로 그린다면, 서양화에서 풍경화를 그리는 법과 어떤 면이 다를지 얘기해보자. 그리고 실제 산수와는 어떤 점에서 다르게 될지도 얘기해보자.
해설읽기
우리는 이따금 산을 보고, 산을 올라가기도 한다. 그 속에서 냇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기도 한다. 또한 산과 물을 한 폭에 그려놓은 산수화를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옛 화가들은 산수를 어떻게 보고, 산수화를 어떻게 그려내고자 하였을까?
사진이 없던 시기, 옛 화가들은 산을 직접 오르내리며 눈으로 본 것을 마음으로 기록하였다. 화가들은 몸소 산을 관찰하고 체험하면서 공간 시점에 따라 산은 하나이나 다양한 형상을 갖추었으며, 시간 시점에 따라 계절감이 다채로우니 이렇게 변화무쌍한 대자연의 이치를 다 담아내는 것이 산수화라 여겼다. 따라서 산수화에는 시점에 따라 저마다 다른 경관이 하나의 화폭에 전부 담기게 된다. 이와 같이 산수를 체험하는 공간 인식론이 적용된 구체적 화론이 바로 곽희의 『임천고치』이다.
곽희는 산의 경관이 화가가 이동하는 걸음걸음 마다 변하게 되고, 서로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계절에 따라 봄의 구름, 여름의 구름, 가을의 구름, 겨울의 구름이 어떻게 달라지며, 안개와 비바람도 계절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는지 말해주고 있다. 이렇게 계절과 날씨, 위치에 따라 저마다 달라지는 산의 모습은 한 가지의 고정된 시점으로는 다 관찰할 수 없으며, 이것을 위해서는 이동하며 바라보는 다양한 시점의 방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산수자연의 상이한 시공간에 따라 이에 상응하는 관조방식을 취하는 것이 바로 그가 제시한 “몸소 산천에 나아가 취한다(身即山川而取之)”는 것이다. 동일한 산의 경관이라도 멀리서 보는 것과 가까이에서 보는 것, 계절에 따라 아침저녁으로 보는 것이 저마다 다른 풍경이기에 보는 공간과 시간에 따라 수십 개, 수백 개의 산의 자태를 구현해낼 수 있다. 이렇게 치밀한 관찰에 의해 화가는 예술적 재현자로서 산수화를 창작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곽희는 산수에서 이동하는 시점이 투영된 삼원법(三遠法)을 제시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된다. “산을 그리는 데에는 삼원법이 있다. 산 아래에서 산 꼭대기를 올려다보는 것을 고원(高遠)이라 하고, 산 앞에서 산 뒤를 넘겨다보는 것을 일러 심원(深遠)이라 하며, 가까운 산에서 먼 산을 바라보는 것을 일러 평원(平遠)이라 한다.” 여기에서 ‘삼원’은 인간이 객체로서 존재하는 자연과 관계 맺는 관점인데, 수평적인 시선에서 산을 조망한 ‘평원(平遠)’과 산 아래에서 산을 올려다 본 ‘고원(高遠)’, 산의 정상에서 내려다 본 ‘심원(深遠)’이 그것으로, 그의 대표작인 「조춘도(早春圖)」(1072, 타이페이 고궁박물관 소장)에서도 삼원법이 잘 드러나 있다. 삼원은 바로 주관의 시점에 따라 객체인 산수를 상대화하는 방식이며, 공간의 변화와 시간의 경과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므로 화면에 그려진 산수는 시간과 공간의 여정이 다 담겨지게 된다.
이러한 점은 서구의 원근법과는 다른 공간인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서양화에서 모든 시선은 하나의 점, 즉 소실점에 귀결되어 단일 시점의 원근법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는 시점을 이동시키는 산점투시를 채택함으로써 고정된 시점의 제약에서 벗어나는 특징을 선보이게 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화가는 자신이 체험한 시간과 공간의 여정을 산수화에 재현하려 했으며, 감상자는 그러한 산수 공간을 실제로 거닐고 노니는 것처럼 마음으로 체험하고 음미할 수 있게 된다.
키워드
임천고지(林泉高致), 곽희, 산수, 감상, 창작, 산수화론, 삼원법(三遠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