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고전본문]에 인용한 내용이 대부분 원문 전체와 겹치는 관계로 맥락 설명은 생략한다.
고전본문
기가 모이면 형체가 이루어지고 혼과 백이 사물을 떠나면 귀신이 되니, 사람이 있으면 귀신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 기가 뭉침에는 단단하고 단단하지 못한 것과 오래가고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 있다. 뭉침이 단단하지 못하고 오래가지 못하는 것은 흩어지기 쉽다. 반면 단단하고 오래가는 것은 반드시 더디게 흩어지지만, 조금 더딜 뿐 언제나 존속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일은 추측하고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필시 조상을 섬기는 예법이 있는 것이다. 재계란 조상의 귀신과 감응하여 오게 하는 방법이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정성스러운 마음이 닿은 곳에 감응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고 하는데, 이를 무엇으로 증명하겠는가.
옛말에 있는 것처럼 제삿날 죽은 이가 살아생전 머무르고 먹고 마시며 웃고 말하고 생각한 것을 마음에 두면 반드시 그를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환상일 뿐이요 진실로 생각했던 그 대상이 아니다. (…) 다만 귀신은 형체가 사라져도 기가 남아 있고 사람이 정성을 다하는 것도 기를 사용하는 것이니, 삶이 죽음과 다르더라도 기는 서로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자석이 바늘을 당기는 이유는 기가 서로 통하기 때문이니, 자석의 기를 바늘에 쐬어주면 10년 동안 자석의 기가 씻기지 않아 한결같이 남북을 가리킨다. 게다가 조상과 후손은 기가 동일하다.
이제 바늘을 철갑 속에 넣어 자석을 지척에 놓고 자석을 그대로 두면 바늘도 가만히 있고 자석을 움직이면 바늘도 움직이니, 철갑이 그 기를 막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이른바 “같은 종류의 기가 서로를 찾는다”라는 말을 여기에서 증명할 수 있다.
『주역』에 “귀신의 실태를 안다.”라고 하였으니 그 실태를 말하자면 귀신에게 정신이 오히려 남아 있어서, 그가 기뻐하거나 분노하는 일 역시 사람과 같다. 진실로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지 않아서 음식 냄새가 향기롭지 않고 그릇이 가지런하지 않으며, 정성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귀신을 엄숙하고 경건하게 섬기지 않으면, 산 사람도 부끄럽게 여겨 제사음식을 먹지 않는데 하물며 귀신은 어떻겠는가.
귀신에 제사 음식을 흠향할지 말지는 오직 정결한 데 달려 있고 가짓수가 많은 데 있지 않으니, 차려 놓은 제사상에 한 점의 더러운 것이 있으면 잘 차린 음식이라도 소용이 없게 된다. 또 이치에 맞지 않는 음식을 올리거나 힘든 기색을 보이면 군자는 반드시 머뭇거리다가 가버린다. 귀신은 허기를 채우고자 음식을 탐하는 일이 없어서 굶주리고 목마른 자가 먹고 마시는 것과 실로 다르니, 틀림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릴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몸을 불결하게 하고 생각을 산만하게 하면서, 여러 음식을 뒤섞어 차리고는 귀신이 흠양하기를 바란다면, 이는 너무 동떨어진 생각이다.
-『성호사설』의 「귀신의 실태」 중에서
토론하기
(1) 이이는 기를 우주와 인간을 구성하고 운용하는 자연계의 에너지로 보았다. 그러나 이익은 기본적으로 이이의 입장을 따르면서도 귀신의 인격성을 강조하였다. 이익이 활동한 18세기만 하더라도 이미 많은 유학자가 귀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환상으로 치부한 사실을 고려한다면, 그의 주장은 오히려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2) 이익은 18세기에 서양의 과학과 의학지식을 가장 광범하게 접촉한 유학자 중의 한 명이었다는 점에서, 20세기에도 줄곧 ‘한국 과학사상의 선구자’로 평가되었다. 당대의 여느 유학자들보다도 과학과 의학 지식에 관심이 많았던 이익이 오히려 귀신의 인격성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해설읽기
사람은 혼과 백이라는 정기가 뭉쳐 이루어진 존재이다. 기가 모여 몸과 정신이 생겨나지만, 기가 흩어지면 몸과 정신도 흩어진다. 사람이 죽으면 혼과 백이 몸을 떠나 귀신이 된다는 점에서, 사람이 있으면 귀신도 있는 것이다.
다만 기가 단단히 뭉친 경우에는 귀신도 천천히 사라지고 성기게 뭉쳤다면 귀신은 빨리 사라진다. 그리고 기가 뭉쳐있는 한, 귀신의 정신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는 논리적 추론과 실험을 통해 입증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없다고 입증할 수 있는 분명한 증거나 논리도 없는 이상,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것이 조상을 섬기는 예법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후손이 조상을 제사 지내는 이유이다.
하지만 귀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내면 조상이 보인다는 옛말은 환상에 불과하며 그 실체가 아니다. 제사는 결국 기로 이루어진 마음을 쓰는 일로, 조상의 기가 후손의 정성스러운 마음에 공명하여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상의 귀신이 후손의 마음과 기를 매개로 공명하며 서로를 끌어당기는 것은 자석이 바늘을 끌어당기는 것과 같다. 또한 자석에 바늘을 비비면 그 가루가 바늘에 코팅되어 바늘 또한 자석과 같은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데, 이는 기에 비유될 수 있는 자석의 가루를 공유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주역』과 같은 고대 경전에서 말하는 귀신의 실태란, 바로 귀신에게 정신이 있으며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일으키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귀신은 감정과 생각이 있지만 육신의 허기나 갈증은 없다는 점에서, 정성이 제대로 담기지 않은 제사는 받지 않는다. 그는 음식이 정갈하지 못하거나 어지럽게 차려져 있지 않아도 제사를 받지 않으며, 아무리 상차림이 화려하고 풍성하더라도 제사 지내는 후손의 마음가짐이 바르지 않으면 흠향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후손은 정성을 다하고 단정한 제사상을 차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조상을 추모해야 비로소 조상의 귀신이 그에게 돌아와 제수를 흠향하고 떠난다. 이처럼 이익은 귀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인격적 존재로 이해했고, 이를 근거로 제사의 당위를 주장했다. 귀신에 대한 그의 관점은 기를 철저히 자연계의 에너지로 환원하여 본 이이와 달랐다고 말할 수 있다.
키워드
감정, 공경, 귀신, 무형, 인격, 정기, 정신, 제사, 추모, 혼백, 흠향
전후맥락
[고전본문]에 인용한 내용이 대부분 원문 전체와 겹치는 관계로 맥락 설명은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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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모이면 형체가 이루어지고 혼과 백이 사물을 떠나면 귀신이 되니, 사람이 있으면 귀신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 기가 뭉침에는 단단하고 단단하지 못한 것과 오래가고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 있다. 뭉침이 단단하지 못하고 오래가지 못하는 것은 흩어지기 쉽다. 반면 단단하고 오래가는 것은 반드시 더디게 흩어지지만, 조금 더딜 뿐 언제나 존속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일은 추측하고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필시 조상을 섬기는 예법이 있는 것이다. 재계란 조상의 귀신과 감응하여 오게 하는 방법이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정성스러운 마음이 닿은 곳에 감응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고 하는데, 이를 무엇으로 증명하겠는가.
옛말에 있는 것처럼 제삿날 죽은 이가 살아생전 머무르고 먹고 마시며 웃고 말하고 생각한 것을 마음에 두면 반드시 그를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환상일 뿐이요 진실로 생각했던 그 대상이 아니다. (…) 다만 귀신은 형체가 사라져도 기가 남아 있고 사람이 정성을 다하는 것도 기를 사용하는 것이니, 삶이 죽음과 다르더라도 기는 서로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자석이 바늘을 당기는 이유는 기가 서로 통하기 때문이니, 자석의 기를 바늘에 쐬어주면 10년 동안 자석의 기가 씻기지 않아 한결같이 남북을 가리킨다. 게다가 조상과 후손은 기가 동일하다.
이제 바늘을 철갑 속에 넣어 자석을 지척에 놓고 자석을 그대로 두면 바늘도 가만히 있고 자석을 움직이면 바늘도 움직이니, 철갑이 그 기를 막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이른바 “같은 종류의 기가 서로를 찾는다”라는 말을 여기에서 증명할 수 있다.
『주역』에 “귀신의 실태를 안다.”라고 하였으니 그 실태를 말하자면 귀신에게 정신이 오히려 남아 있어서, 그가 기뻐하거나 분노하는 일 역시 사람과 같다. 진실로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지 않아서 음식 냄새가 향기롭지 않고 그릇이 가지런하지 않으며, 정성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귀신을 엄숙하고 경건하게 섬기지 않으면, 산 사람도 부끄럽게 여겨 제사음식을 먹지 않는데 하물며 귀신은 어떻겠는가.
귀신에 제사 음식을 흠향할지 말지는 오직 정결한 데 달려 있고 가짓수가 많은 데 있지 않으니, 차려 놓은 제사상에 한 점의 더러운 것이 있으면 잘 차린 음식이라도 소용이 없게 된다. 또 이치에 맞지 않는 음식을 올리거나 힘든 기색을 보이면 군자는 반드시 머뭇거리다가 가버린다. 귀신은 허기를 채우고자 음식을 탐하는 일이 없어서 굶주리고 목마른 자가 먹고 마시는 것과 실로 다르니, 틀림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릴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몸을 불결하게 하고 생각을 산만하게 하면서, 여러 음식을 뒤섞어 차리고는 귀신이 흠양하기를 바란다면, 이는 너무 동떨어진 생각이다.
-『성호사설』의 「귀신의 실태」 중에서
토론하기
(1) 이이는 기를 우주와 인간을 구성하고 운용하는 자연계의 에너지로 보았다. 그러나 이익은 기본적으로 이이의 입장을 따르면서도 귀신의 인격성을 강조하였다. 이익이 활동한 18세기만 하더라도 이미 많은 유학자가 귀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환상으로 치부한 사실을 고려한다면, 그의 주장은 오히려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2) 이익은 18세기에 서양의 과학과 의학지식을 가장 광범하게 접촉한 유학자 중의 한 명이었다는 점에서, 20세기에도 줄곧 ‘한국 과학사상의 선구자’로 평가되었다. 당대의 여느 유학자들보다도 과학과 의학 지식에 관심이 많았던 이익이 오히려 귀신의 인격성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해설읽기
사람은 혼과 백이라는 정기가 뭉쳐 이루어진 존재이다. 기가 모여 몸과 정신이 생겨나지만, 기가 흩어지면 몸과 정신도 흩어진다. 사람이 죽으면 혼과 백이 몸을 떠나 귀신이 된다는 점에서, 사람이 있으면 귀신도 있는 것이다.
다만 기가 단단히 뭉친 경우에는 귀신도 천천히 사라지고 성기게 뭉쳤다면 귀신은 빨리 사라진다. 그리고 기가 뭉쳐있는 한, 귀신의 정신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는 논리적 추론과 실험을 통해 입증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없다고 입증할 수 있는 분명한 증거나 논리도 없는 이상,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것이 조상을 섬기는 예법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후손이 조상을 제사 지내는 이유이다.
하지만 귀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내면 조상이 보인다는 옛말은 환상에 불과하며 그 실체가 아니다. 제사는 결국 기로 이루어진 마음을 쓰는 일로, 조상의 기가 후손의 정성스러운 마음에 공명하여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상의 귀신이 후손의 마음과 기를 매개로 공명하며 서로를 끌어당기는 것은 자석이 바늘을 끌어당기는 것과 같다. 또한 자석에 바늘을 비비면 그 가루가 바늘에 코팅되어 바늘 또한 자석과 같은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데, 이는 기에 비유될 수 있는 자석의 가루를 공유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주역』과 같은 고대 경전에서 말하는 귀신의 실태란, 바로 귀신에게 정신이 있으며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일으키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귀신은 감정과 생각이 있지만 육신의 허기나 갈증은 없다는 점에서, 정성이 제대로 담기지 않은 제사는 받지 않는다. 그는 음식이 정갈하지 못하거나 어지럽게 차려져 있지 않아도 제사를 받지 않으며, 아무리 상차림이 화려하고 풍성하더라도 제사 지내는 후손의 마음가짐이 바르지 않으면 흠향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후손은 정성을 다하고 단정한 제사상을 차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조상을 추모해야 비로소 조상의 귀신이 그에게 돌아와 제수를 흠향하고 떠난다. 이처럼 이익은 귀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인격적 존재로 이해했고, 이를 근거로 제사의 당위를 주장했다. 귀신에 대한 그의 관점은 기를 철저히 자연계의 에너지로 환원하여 본 이이와 달랐다고 말할 수 있다.
키워드
감정, 공경, 귀신, 무형, 인격, 정기, 정신, 제사, 추모, 혼백, 흠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