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춘추고징』은 중국 역사서 춘추에 대한 정약용의 주석서로, 여기서는 제사의 대상이 정확히 누구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 글에 따르면 하늘과 땅이 만물을 생성하고 다스린다는 말은 자연계의 물질이자 에너지인 기의 작용을 형상화한 말에 지나지 않으며, 실질적으로 천지만물을 관장하는 이들은 상제의 신하인 하늘 귀신과 땅 귀신이다. 그러므로 제사의 실질 대상은 자연계의 물질인 천지가 아닌 바로, 그들을 관장하는 귀신과 모든 귀신을 관장하는 상제라고 할 수 있다. 『중용강의보』는 정약용이 정조가 『중용』의 구절을 주제로 제시한 질문에 제출한 답변서를 이후 수정하고 보완하여 완성한 책이다. 정조의 질문은 귀신의 탁월한 능력이 기인지 리인지를 묻는다. 이에 정약용은 귀신은 리도 아니고 기도 아닌, 초월적 힘을 갖은 무형의 지성적 존재라고 주장한다.
고전본문
하늘과 땅은 전부 지성이 없는 사물이다. 이들은 해와 달, 산과 강과 마찬가지로 기질로 이루어졌기에, 정신이 스스로 발휘되는 법이 없다. 성인은 이치에 밝으시니, 어찌 하늘과 땅을 부모로 섬길 리가 있겠는가. 위대한 상제만이 모습도 없고 몸뚱이도 없이 매일 우주와 인간에 임하시어 천지를 다스리며, 모든 사물의 시초가 되고 모든 귀신의 으뜸이 되어 찬란히 빛나며 하늘 위에 계신다. 그러므로 성인은 상제를 조심스럽게 잘 섬기니, 이것이 들판의 제사가 생겨난 유래이다. 이에 영명한 귀신이 상제의 명을 받아 해와 달, 별, 바람, 구름, 우레, 비를 다스리기도 하고, 토지와 오곡, 산천과 구릉, 숲과 연못을 다스리기도 한다. 그러므로 하늘 위에서 그것을 다스리는 자를 하늘 귀신이라 부르고, 땅 위에서 그것을 다스리는 자를 땅 귀신이라고 한다.
–『춘추고징』의 「흉례」 중에서
귀신은 리도 아니고 기도 아닙니다. 굳이 리와 기라는 두 글자에 좌우로 이끌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주역』에서는 “음과 양의 예측할 수 없는 활동이 귀신이다.”라고 하였고, 또 “한 번 양하고 한 번 음하는 것을 도라고 말한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전부 점괘에서 말하는 사태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 귀신은 리나 기로써 말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제 생각에 천지의 귀신은 온천지에 가득한데, 그중에 가장 존귀하고 위대한 분이 상제입니다. 문왕께서 삼가는 마음으로 상제를 잘 섬겼다는 『시경』의 기록과 『중용』에서 말하는 “늘 조심하며 두려워한다.”는 구절이 어찌 상제를 잘 섬기는 학문이 아니겠습니까. 요즘 사람들은 귀신의 존재를 의심하여 마침내 그것을 미지의 영역에 방치합니다. 때문에 군주가 상제를 경외하는 자세와 배우는 자가 홀로 있을 때에도 삼가는 마음가짐이 전부 진실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어두운 방 안에 혼자 있어 온갖 못할 짓을 하더라도 끝내 발각되지 않는다면, 그자가 장차 구태여 두려워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중용강의보』의 제16장 중에서
토론하기
(1) 인간의 윤리적·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외부에 그의 행위를 살피는 초월적 존재를 설정하는 그의 이론적 장치는 효과가 어느 정도 있을지 논의해보자.
(2) 인간이 자신을 늘 살피는 상제에게 존경과 두려움을 느끼고 자기 행동을 제어하는 실천 행위는 자율적인가, 타율적인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3) 귀신을 기와 분리하여 전자를 자연과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 후자를 자연의 물질 에너지로 바라보는 정약용의 시선은 오늘날 종교나 과학의 입장과 얼마나 같거나 다른지 논의해보자.
해설읽기
정약용은 귀신을 음과 양이라는 두 기의 작용으로 보는 성리학의 전통 관념을 거부한다. 그에게 기는 혼과 백이 모였다 흩어지는 일시적으로 정신을 유지하는 존재가 아니다. 음과 양은 그림자와 햇빛, 밤과 낮, 추위와 더위 등 자연계의 변화를 일으키는 자연계의 물질이나 에너지에 불과하다.
정약용은 기의 지성과 자발성을 철저히 부정하며 기는 물론 리도 귀신과 호환될 수 없는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귀신을 기나 리와 구분하여 초자연적 존재로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귀신은 월등한 힘과 지성을 가지고 우주와 인간, 만물의 생성과 운동을 관장한다. 천지만물을 다스리는 힘을 가졌다는 점에서 귀신은 자연과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다.
귀신 개념의 새로운 해석을 근거로, 정약용은 제사의 대상을 자연물과 구분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가 볼 때 천자가 하늘과 땅에 지내는 제사는 그 대상이 자연물이 아닌, 그것을 관장하는 귀신이다. 그리고 우주에는 자연과 인간의 각 영역을 분장하여 관장하는 무수한 귀신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이들을 통제하는 최상위 귀신도 존재한다. 그가 바로 『시경』과 『서경』과 같은 고대 경전에 등장하는 상제이다. 상제는 모든 귀신에 명하여 우주를 다스린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상제는 항상 하늘 위에서 인간 세계를 굽어보고 그들의 행위를 살핀다. 그러므로 상제에게 제사 지내는 군주는 물론 일반 백성도 항상 신중한 마음가짐으로 상제를 경외한다. 이것이 바로 만물의 근원인 상제에게 감사하는 방법이다.
정약용은 귀신을 기나 리가 아닌, 또 다른 무형의 초월적 존재라고 보았다는 점에서 귀신을 해석한 이전의 유학자와 완전히 다른 노선을 걸었다. 이이나 이익을 비롯하여 조선의 유학자들이 기의 에너지와 물질은 물론 정신을 모두 귀신이라고 이해한 반면, 정약용은 지성을 귀신의 성질로, 물질과 에너지를 기의 성질로 재해석하여 귀신과 기를 개념상 완전히 분리시켰다. 그리고 귀신이 인간의 선악을 감시하기 때문에, 자기의 생각과 행동을 자신만이 알고 있다 하더라도 항상 나쁜 생각을 경계하고 조심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처럼 정약용이 귀신의 물질성을 철저히 부정하고 지성과 초월적 힘을 강조한 이유는 결국 인간이 자기 생각과 언행을 끊임없이 반성하고 경계하여 선을 실천하기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초월적 존재가 자신을 늘 살펴보고 있다고 느끼면, 자기 마음에 은밀히 싹트는 삿된 생각을 경계하고 제거하리라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귀신을 새롭게 해석한 정약용의 이론은 인간을 자연에서 분리하고 인간의 윤리적 행위와 사회적 책임을 한층 강화하는 새로운 이론적 장치였다고 할 수 있다.
키워드
경외, 귀신, 기, 물질, 실천, 에너지, 윤리, 자연, 정신, 제사, 지성, 초월
전후맥락
『춘추고징』은 중국 역사서 춘추에 대한 정약용의 주석서로, 여기서는 제사의 대상이 정확히 누구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 글에 따르면 하늘과 땅이 만물을 생성하고 다스린다는 말은 자연계의 물질이자 에너지인 기의 작용을 형상화한 말에 지나지 않으며, 실질적으로 천지만물을 관장하는 이들은 상제의 신하인 하늘 귀신과 땅 귀신이다. 그러므로 제사의 실질 대상은 자연계의 물질인 천지가 아닌 바로, 그들을 관장하는 귀신과 모든 귀신을 관장하는 상제라고 할 수 있다. 『중용강의보』는 정약용이 정조가 『중용』의 구절을 주제로 제시한 질문에 제출한 답변서를 이후 수정하고 보완하여 완성한 책이다. 정조의 질문은 귀신의 탁월한 능력이 기인지 리인지를 묻는다. 이에 정약용은 귀신은 리도 아니고 기도 아닌, 초월적 힘을 갖은 무형의 지성적 존재라고 주장한다.
고전본문
하늘과 땅은 전부 지성이 없는 사물이다. 이들은 해와 달, 산과 강과 마찬가지로 기질로 이루어졌기에, 정신이 스스로 발휘되는 법이 없다. 성인은 이치에 밝으시니, 어찌 하늘과 땅을 부모로 섬길 리가 있겠는가. 위대한 상제만이 모습도 없고 몸뚱이도 없이 매일 우주와 인간에 임하시어 천지를 다스리며, 모든 사물의 시초가 되고 모든 귀신의 으뜸이 되어 찬란히 빛나며 하늘 위에 계신다. 그러므로 성인은 상제를 조심스럽게 잘 섬기니, 이것이 들판의 제사가 생겨난 유래이다. 이에 영명한 귀신이 상제의 명을 받아 해와 달, 별, 바람, 구름, 우레, 비를 다스리기도 하고, 토지와 오곡, 산천과 구릉, 숲과 연못을 다스리기도 한다. 그러므로 하늘 위에서 그것을 다스리는 자를 하늘 귀신이라 부르고, 땅 위에서 그것을 다스리는 자를 땅 귀신이라고 한다.
–『춘추고징』의 「흉례」 중에서
귀신은 리도 아니고 기도 아닙니다. 굳이 리와 기라는 두 글자에 좌우로 이끌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주역』에서는 “음과 양의 예측할 수 없는 활동이 귀신이다.”라고 하였고, 또 “한 번 양하고 한 번 음하는 것을 도라고 말한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전부 점괘에서 말하는 사태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 귀신은 리나 기로써 말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제 생각에 천지의 귀신은 온천지에 가득한데, 그중에 가장 존귀하고 위대한 분이 상제입니다. 문왕께서 삼가는 마음으로 상제를 잘 섬겼다는 『시경』의 기록과 『중용』에서 말하는 “늘 조심하며 두려워한다.”는 구절이 어찌 상제를 잘 섬기는 학문이 아니겠습니까. 요즘 사람들은 귀신의 존재를 의심하여 마침내 그것을 미지의 영역에 방치합니다. 때문에 군주가 상제를 경외하는 자세와 배우는 자가 홀로 있을 때에도 삼가는 마음가짐이 전부 진실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어두운 방 안에 혼자 있어 온갖 못할 짓을 하더라도 끝내 발각되지 않는다면, 그자가 장차 구태여 두려워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중용강의보』의 제16장 중에서
토론하기
(1) 인간의 윤리적·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외부에 그의 행위를 살피는 초월적 존재를 설정하는 그의 이론적 장치는 효과가 어느 정도 있을지 논의해보자.
(2) 인간이 자신을 늘 살피는 상제에게 존경과 두려움을 느끼고 자기 행동을 제어하는 실천 행위는 자율적인가, 타율적인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3) 귀신을 기와 분리하여 전자를 자연과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 후자를 자연의 물질 에너지로 바라보는 정약용의 시선은 오늘날 종교나 과학의 입장과 얼마나 같거나 다른지 논의해보자.
해설읽기
정약용은 귀신을 음과 양이라는 두 기의 작용으로 보는 성리학의 전통 관념을 거부한다. 그에게 기는 혼과 백이 모였다 흩어지는 일시적으로 정신을 유지하는 존재가 아니다. 음과 양은 그림자와 햇빛, 밤과 낮, 추위와 더위 등 자연계의 변화를 일으키는 자연계의 물질이나 에너지에 불과하다.
정약용은 기의 지성과 자발성을 철저히 부정하며 기는 물론 리도 귀신과 호환될 수 없는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귀신을 기나 리와 구분하여 초자연적 존재로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귀신은 월등한 힘과 지성을 가지고 우주와 인간, 만물의 생성과 운동을 관장한다. 천지만물을 다스리는 힘을 가졌다는 점에서 귀신은 자연과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다.
귀신 개념의 새로운 해석을 근거로, 정약용은 제사의 대상을 자연물과 구분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가 볼 때 천자가 하늘과 땅에 지내는 제사는 그 대상이 자연물이 아닌, 그것을 관장하는 귀신이다. 그리고 우주에는 자연과 인간의 각 영역을 분장하여 관장하는 무수한 귀신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이들을 통제하는 최상위 귀신도 존재한다. 그가 바로 『시경』과 『서경』과 같은 고대 경전에 등장하는 상제이다. 상제는 모든 귀신에 명하여 우주를 다스린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상제는 항상 하늘 위에서 인간 세계를 굽어보고 그들의 행위를 살핀다. 그러므로 상제에게 제사 지내는 군주는 물론 일반 백성도 항상 신중한 마음가짐으로 상제를 경외한다. 이것이 바로 만물의 근원인 상제에게 감사하는 방법이다.
정약용은 귀신을 기나 리가 아닌, 또 다른 무형의 초월적 존재라고 보았다는 점에서 귀신을 해석한 이전의 유학자와 완전히 다른 노선을 걸었다. 이이나 이익을 비롯하여 조선의 유학자들이 기의 에너지와 물질은 물론 정신을 모두 귀신이라고 이해한 반면, 정약용은 지성을 귀신의 성질로, 물질과 에너지를 기의 성질로 재해석하여 귀신과 기를 개념상 완전히 분리시켰다. 그리고 귀신이 인간의 선악을 감시하기 때문에, 자기의 생각과 행동을 자신만이 알고 있다 하더라도 항상 나쁜 생각을 경계하고 조심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처럼 정약용이 귀신의 물질성을 철저히 부정하고 지성과 초월적 힘을 강조한 이유는 결국 인간이 자기 생각과 언행을 끊임없이 반성하고 경계하여 선을 실천하기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초월적 존재가 자신을 늘 살펴보고 있다고 느끼면, 자기 마음에 은밀히 싹트는 삿된 생각을 경계하고 제거하리라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귀신을 새롭게 해석한 정약용의 이론은 인간을 자연에서 분리하고 인간의 윤리적 행위와 사회적 책임을 한층 강화하는 새로운 이론적 장치였다고 할 수 있다.
키워드
경외, 귀신, 기, 물질, 실천, 에너지, 윤리, 자연, 정신, 제사, 지성, 초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