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성리학 전통에서 우주와 사물은 전부 리(理)와 기(氣)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리는 우주와 만물을 구성하는 법칙이자 규범이고, 기는 사물을 구성하는 재료인 동시에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리는 방향성과 목적이 있기 때문에, 유동적이고 무목적적인 기를 유도하여 수많은 종류의 사물을 생성하고 운동하게 한다. 성호 이익 역시 성리학의 생성론을 토대로 인간의 육신과 정신이 생겨난다고 본다. 그런데 그는 심장이 있는 존재만 정신 활동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생장이나 생성 능력을 ‘마음’이라고 보던 기존의 해석을 거부한다.
고전본문
육신이 생긴 뒤에는 ‘신명한 마음’도 생겨나 피와 살로 이루어진 장기에 깃든다. 신명한 마음이 움직이다 멈추고 고요하다 감응하는 능력을 갖출 때, 비로소 본성과 감정 욕구를 모두 주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신명한 마음이란 무엇인가. 이미 피와 살로 이루어진 심장이 생겨났으니, 이 심장 속에 있는 기의 에센스가 심장에 근원하면서도 그것에 구애받지 않아 온몸의 주재가 되는 것이다.
–『성호선생문집』의 「심통성정해」 중에 「심설」
사람은 ‘생장의 마음’과 ‘지각의 마음’이 있다는 점에서 실로 짐승과 같지만, 이른바 ‘의리의 마음’이라는 것도 있다. ‘지각의 마음’은 대상을 인지하고 감각하는 능력에 한정되기 때문에 그 능력이 이익을 추구하고 손해를 피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사람에 있어서 인심(人心)이 그것이다. 사람은 반드시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법칙과 규범을 주재로 삼기 때문에, 선의 추구가 살려는 본능보다 큰 경우가 있고 악의 거부가 죽음을 피하려는 본능보다 큰 경우도 있다. 도심(道心)이 바로 이것이다. (…) 그러하다면 사람에게는 ‘생장의 마음’과 ‘지각의 마음(인심)’, 그리고 ‘의리의 마음(도심)’, 이 세 가지가 있다는 말인가. 아니다. 인심과 도심, 이 두 가지만 있을 뿐 그 외의 마음은 없다. 마음은 본디 다섯 장기 가운데 하나로, 사람과 짐승에게만 있고 풀이나 나무에는 애초부터 없었다. 마음은 본성을 싣는 것이다. 본성은 리이고 마음은 기이기 때문에 리가 기를 유도하면 지각이 리를 따라 ‘의리의 마음’이 되고 기가 치우쳐 리가 흐릿해지면 ‘지각의 마음’만 있어 짐승과 같게 된다. 마음을 지칭하는 심(心)이라는 말은 본래 장기의 명칭에서 유래된 것이니, 저 장기가 없는 초목이 이와 무슨 상관이겠는가.
-『성호선생문집』의 「심설」 중에
토론하기
(1) 동양과 서양에서는 오랜 기간 심장이 사고는 물론 감정이나 욕구가 일어나는 근원이라고 보았고, 이러한 생각은 우리의 일상 언어에 여전히 깊게 각인되어 잔존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 사랑을 상징하는 기호를 ‘♥’로 표시하는데, 이것은 하트(heart) 즉 심장을 의미한다. 동서양에서 감정과 욕구를 심장과 연결하는 언어적 표현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뇌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달하는 오늘날 사회에서도 그러한 상징기호나 표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2) 동아시아 전통 시대에 우주는 물론 무생물을 포함한 모든 존재에게 마음이 있다는 입장이 주류 사조였지만, 19세기 이후에는 감각하고 사고하는 정신 작용이 포유류 이상의 종(種)만 가능하다고 믿어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시 광범한 종에 정신이 있을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감각과 사고 능력은 어느 종까지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해설읽기
인간이 생겨날 때 육신과 더불어 정신이 생겨나는데, 정신은 심장에 뿌리를 두고 활동하기 때문에 심 즉 ‘마음’으로 지칭된다. 마음은 오감을 통해 외부 세계와 접촉하여 감각, 인지, 기억, 연상, 계산, 추론, 판단, 성찰, 감정, 욕구, 충동 등의 무수한 능력을 발휘한다. 또한 마음에는 본성을 따라 본능을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의지와 실천력이 있다.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하늘로부터 본성과 본능을 부여받는다. 본성은 법칙과 규범 등을 가리킨다. 인간은 하늘에서 본성을 부여받는다는 점에서 일정 법칙과 규범을 실현해야 할 존재론적 의무가 있으며, 그 본능은 감정 이나 욕구 등의 충동을 일으킬 때 과열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적절히 조절하고 통제해야 한다. 이처럼 주어진 본성을 따르는 동시에 본능을 조절하는 주재자를 성호 이익은 인간의 마음이라고 보았으며, 때문에 마음을 한 몸의 주재자라고 부른 것이다.
그런데 천지와 만물에 모두 마음이 있다고 주장한 전통적 입장과 달리, 이익은 마음이 피와 살로 이루어진 심장을 전제로 발휘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이러한 입장대로라면 무생물과 식물에게는 심장이 없기 때문에 마음이 있다고 말할 수 없고, 오로지 심장을 소유한 동물과 인간만 정신 활동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생장 능력을 마음에 포함할 수 없으며 ‘생장의 마음’이라는 표현도 일종의 비유에 불과하다.
그런데 정신 활동은 두 종류로 구분되며 위계가 있다. 짐승에게는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기억과 인지, 판단 등의 정신 능력과 감정, 욕구, 충동 등의 본능만 존재한다. 반면 사람에게는 이와 더불어 숙고와 성찰, 공감, 선의 추구나 악의 거부와 같은 이성과 도덕성이 존재한다. 이익은 짐승의 마음을 인심, 인간 고유의 마음을 도심이라고 불렀다.
인간의 마음은 그 자체로 하나이다. 그러나 하늘이 부여한 이성과 도덕성을 실천하는 동시에 본능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데 성공하면 도심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성과 도덕성을 실천하지 못하여 본능을 날뛰게 내버려 둔다면 인심으로 변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마음이 본성에 따라 본능을 조절할 수 있게 끊임없이 훈련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생장의 마음’과 ‘지각의 마음’, ‘의리의 마음’ 셋으로 구분하고 심장의 여부에 따라 마음의 유무를 구분한 이익의 시각은, 기존의 조선 유학 전통에서 볼 수 없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인간의 영혼을 생혼과 각혼, 영혼으로 구분하고 식물은 생혼만, 동물은 생혼의 능력을 포함한 각혼을, 인간은 생혼과 각혼의 능력을 포함한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서양 중세 아퀴나스 삼혼설과 매우 유사하다. 이는 성호가 한문 서학서를 통해 조선에 전래된 삼혼설을 자신의 심설을 구축하는 데 지적 자원으로 동원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키워드
각혼, 도심, 삼혼설, 생장의 마음, 생혼, 심장, 영혼, 의리의 마음, 인신, 정신, 지각의 마음
전후맥락
성리학 전통에서 우주와 사물은 전부 리(理)와 기(氣)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리는 우주와 만물을 구성하는 법칙이자 규범이고, 기는 사물을 구성하는 재료인 동시에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리는 방향성과 목적이 있기 때문에, 유동적이고 무목적적인 기를 유도하여 수많은 종류의 사물을 생성하고 운동하게 한다. 성호 이익 역시 성리학의 생성론을 토대로 인간의 육신과 정신이 생겨난다고 본다. 그런데 그는 심장이 있는 존재만 정신 활동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생장이나 생성 능력을 ‘마음’이라고 보던 기존의 해석을 거부한다.
고전본문
육신이 생긴 뒤에는 ‘신명한 마음’도 생겨나 피와 살로 이루어진 장기에 깃든다. 신명한 마음이 움직이다 멈추고 고요하다 감응하는 능력을 갖출 때, 비로소 본성과 감정 욕구를 모두 주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신명한 마음이란 무엇인가. 이미 피와 살로 이루어진 심장이 생겨났으니, 이 심장 속에 있는 기의 에센스가 심장에 근원하면서도 그것에 구애받지 않아 온몸의 주재가 되는 것이다.
–『성호선생문집』의 「심통성정해」 중에 「심설」
사람은 ‘생장의 마음’과 ‘지각의 마음’이 있다는 점에서 실로 짐승과 같지만, 이른바 ‘의리의 마음’이라는 것도 있다. ‘지각의 마음’은 대상을 인지하고 감각하는 능력에 한정되기 때문에 그 능력이 이익을 추구하고 손해를 피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사람에 있어서 인심(人心)이 그것이다. 사람은 반드시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법칙과 규범을 주재로 삼기 때문에, 선의 추구가 살려는 본능보다 큰 경우가 있고 악의 거부가 죽음을 피하려는 본능보다 큰 경우도 있다. 도심(道心)이 바로 이것이다. (…) 그러하다면 사람에게는 ‘생장의 마음’과 ‘지각의 마음(인심)’, 그리고 ‘의리의 마음(도심)’, 이 세 가지가 있다는 말인가. 아니다. 인심과 도심, 이 두 가지만 있을 뿐 그 외의 마음은 없다. 마음은 본디 다섯 장기 가운데 하나로, 사람과 짐승에게만 있고 풀이나 나무에는 애초부터 없었다. 마음은 본성을 싣는 것이다. 본성은 리이고 마음은 기이기 때문에 리가 기를 유도하면 지각이 리를 따라 ‘의리의 마음’이 되고 기가 치우쳐 리가 흐릿해지면 ‘지각의 마음’만 있어 짐승과 같게 된다. 마음을 지칭하는 심(心)이라는 말은 본래 장기의 명칭에서 유래된 것이니, 저 장기가 없는 초목이 이와 무슨 상관이겠는가.
-『성호선생문집』의 「심설」 중에
토론하기
(1) 동양과 서양에서는 오랜 기간 심장이 사고는 물론 감정이나 욕구가 일어나는 근원이라고 보았고, 이러한 생각은 우리의 일상 언어에 여전히 깊게 각인되어 잔존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 사랑을 상징하는 기호를 ‘♥’로 표시하는데, 이것은 하트(heart) 즉 심장을 의미한다. 동서양에서 감정과 욕구를 심장과 연결하는 언어적 표현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뇌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달하는 오늘날 사회에서도 그러한 상징기호나 표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2) 동아시아 전통 시대에 우주는 물론 무생물을 포함한 모든 존재에게 마음이 있다는 입장이 주류 사조였지만, 19세기 이후에는 감각하고 사고하는 정신 작용이 포유류 이상의 종(種)만 가능하다고 믿어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시 광범한 종에 정신이 있을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감각과 사고 능력은 어느 종까지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해설읽기
인간이 생겨날 때 육신과 더불어 정신이 생겨나는데, 정신은 심장에 뿌리를 두고 활동하기 때문에 심 즉 ‘마음’으로 지칭된다. 마음은 오감을 통해 외부 세계와 접촉하여 감각, 인지, 기억, 연상, 계산, 추론, 판단, 성찰, 감정, 욕구, 충동 등의 무수한 능력을 발휘한다. 또한 마음에는 본성을 따라 본능을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의지와 실천력이 있다.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하늘로부터 본성과 본능을 부여받는다. 본성은 법칙과 규범 등을 가리킨다. 인간은 하늘에서 본성을 부여받는다는 점에서 일정 법칙과 규범을 실현해야 할 존재론적 의무가 있으며, 그 본능은 감정 이나 욕구 등의 충동을 일으킬 때 과열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적절히 조절하고 통제해야 한다. 이처럼 주어진 본성을 따르는 동시에 본능을 조절하는 주재자를 성호 이익은 인간의 마음이라고 보았으며, 때문에 마음을 한 몸의 주재자라고 부른 것이다.
그런데 천지와 만물에 모두 마음이 있다고 주장한 전통적 입장과 달리, 이익은 마음이 피와 살로 이루어진 심장을 전제로 발휘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이러한 입장대로라면 무생물과 식물에게는 심장이 없기 때문에 마음이 있다고 말할 수 없고, 오로지 심장을 소유한 동물과 인간만 정신 활동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생장 능력을 마음에 포함할 수 없으며 ‘생장의 마음’이라는 표현도 일종의 비유에 불과하다.
그런데 정신 활동은 두 종류로 구분되며 위계가 있다. 짐승에게는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기억과 인지, 판단 등의 정신 능력과 감정, 욕구, 충동 등의 본능만 존재한다. 반면 사람에게는 이와 더불어 숙고와 성찰, 공감, 선의 추구나 악의 거부와 같은 이성과 도덕성이 존재한다. 이익은 짐승의 마음을 인심, 인간 고유의 마음을 도심이라고 불렀다.
인간의 마음은 그 자체로 하나이다. 그러나 하늘이 부여한 이성과 도덕성을 실천하는 동시에 본능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데 성공하면 도심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성과 도덕성을 실천하지 못하여 본능을 날뛰게 내버려 둔다면 인심으로 변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마음이 본성에 따라 본능을 조절할 수 있게 끊임없이 훈련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생장의 마음’과 ‘지각의 마음’, ‘의리의 마음’ 셋으로 구분하고 심장의 여부에 따라 마음의 유무를 구분한 이익의 시각은, 기존의 조선 유학 전통에서 볼 수 없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인간의 영혼을 생혼과 각혼, 영혼으로 구분하고 식물은 생혼만, 동물은 생혼의 능력을 포함한 각혼을, 인간은 생혼과 각혼의 능력을 포함한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서양 중세 아퀴나스 삼혼설과 매우 유사하다. 이는 성호가 한문 서학서를 통해 조선에 전래된 삼혼설을 자신의 심설을 구축하는 데 지적 자원으로 동원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키워드
각혼, 도심, 삼혼설, 생장의 마음, 생혼, 심장, 영혼, 의리의 마음, 인신, 정신, 지각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