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정약용은 ‘기예론’이라는 제목으로 모두 세 편의 글을 썼다. 다음 고전 인용문은 그 중 첫 번째 글의 전문이다.
고전본문
동물에게는 발톱을 주고 뿔을 주고 단단한 발굽과 날카로운 이를 주었으며 독(毒)을 주어서 그들로 각기 욕구하는 것을 얻게 하고 환난을 방어하도록 하였다. 사람의 경우에는 곧 벌거숭이인 채 연약하고 깨지기 쉬워 삶을 영위하지 못할 듯하게 했으니 어찌 하늘은 천한 동물에게는 후하게 하고 귀한 사람에게는 박하게 하였을까? 그러나 하늘은 사람은 지혜와 사려 및 솜씨와 생각을 지녀 그들로 기예를 익힘으로써 스스로 충족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런데 지혜와 사려는 밀고 나가며 운용함에는 한계가 있고 솜씨와 생각은 깊이 파고들어감에 순서가 있다. 그래서 아무리 성인(聖人)이라 하더라도 수많은 사람이 함께 논의한 바를 당해낼 수 없고, 아무리 성인이라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그 훌륭함을 다 발휘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많이 모일수록 그 기예가 더욱 정교하게 되고 세대가 아래로 내려올수록 그 기예가 한층 훌륭하게 되니, 이는 사세(事勢)*가 그렇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시골에 사는 사람은 공작 능력이 현이나 읍에 사는 사람만 못하고, 현이나 읍의 사람은 기술 솜씨가 이름난 도시나 큰 도시에 사는 사람만 못하며, 이름난 도시나 큰 도시 사람은 신식의 기계식 제조 기술이 도성에 사는 사람만 못하다. 그런데 저 시골보다 더 외진 곳에 사는 사람이 과거에 도성에 갔다가 막 개발되었을 뿐 아직 완비되지 않은 기법을 우연히 얻고는 기꺼워하며 돌아와 시험해본 후 다 아는 듯이 만족해하면서 “천하에 이 기법보다 나은 것이 없다”라고 하고는 아들과 손자에게 경계하기를 “도성에서의 이른바 기예라는 것을 내가 모두 터득하였으니 이제부터는 도성에서는 또다시 더 배울 것은 없다”고 했다. 이러한 사람은 그 한 일이 거칠고 투박하며 비루하고 조악하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나라에 있는 온갖 장인의 기예는 모두 옛날에 배웠던 중국의 기법인데 수백 년 이래 딱 잘라 끊듯이 다시는 중국에 가서 배워올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그런데 중국의 신식의 기계식 제조 기술은 나날이 증가하고 다달이 늘어나서 다시 수백 년 전의 중국이 아님에도 우리는 또한 막연하게 모르는 것을 묻지도 않고 오로지 예전의 것에 안주하고 있으니 어찌 그리도 게으르단 말인가?
– 정약용, 「기예론 1」.
* 사세(事勢) : 세상사 모든 일이 되어가는 추세, 형세.
토론하기
(1) 왜 필자는 중국에 가서 기예를 배워 와야 한다고 주장했는가?
(2) 기술의 습득과 진보가 이로웠거나 반대로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면 얘기해보자. 이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데 기술 진보가 꼭 필요한지에 대하여 토의해보자.
(3) 기술의 진보를 지속적으로 일구어내기 위해서는 어떤한 조건이 필요한지에 대하여 토의해보자.
해설읽기
정약용의 「기예론」은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글이다. 주지하듯이 조선시대 기술은 양반이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폄하되었다. 정약용은 이글에서 이러한 통념을 전복시킨다. 그는 기술은 양반이라고 하여 지니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인 한 기술은 누구나 지니도록 되어 있다고 못 박는다.
정약용이 보기에 하늘은 호랑이 같은 짐승에게는 날카로운 이와 발톱을 갖추게 해주어 먹고 살 수 있게 해주었고, 사람에게는 ‘지혜, 사려, 솜씨, 생각’을 주어서 먹고 살 수 있게 해주었다. 여기서 솜씨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구현해내며 움직이게 하는 역량을 가리킨다. 곧 기술을 익히고 사용할 수 있는 역량을 뜻한다. 그러한 솜씨를 하늘이 인간에게 주었다는 것은 곧 인간이면 누구나 먹고 살기 위해서는 기술을 익힐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하늘이 인간에게 먹고 살라고 부여한 것인 만큼 누구나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를 닦고 익혀 잘 사용해야 한다. 이처럼 기술은 양반이든 중인이든 평민이든 천민이든 누구나 기본으로 갖추고 태어난다. 그러니 기술은 중인이나 연마하는 것이라는 식의 관점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 된다.
실제로 정약용이 언급한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는 지혜나 사려, 솜씨, 생각 덕분에 인간은 인간답게 살 수 있게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중 지혜나 사려, 생각 등은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는 명제가 있듯이 이들 덕분에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었다는 데 쉬이 동의된다. 반면에 솜씨, 그러니까 기술 덕분에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었다는 규정은 낯설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 관한 통찰 가운데 “인간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동물”이라는 명제가 오래전부터 있었음을 감안하면 그리 낯선 관점만은 아니다. 곧 이성이라는 힘과 기술이라는 힘 덕분에 인간은 문명을 일구면서 인간답게 살 수 있었음이다. 그래서 정약용보다 2천여 년 앞서서 묵자라는 사상가는 이렇게 단언할 수 있었다.
사람은 본래부터 고라니나 사슴, 나는 새나 기어 다니는 벌레와 같은 짐승들과는 다른 존재이다. 고라니나 사슴, 나는 새나 기어 다니는 벌레들은 자신들의 깃과 털로써 옷을 삼고 발굽과 발톱으로써 신발을 삼으며 물과 풀을 음식으로 삼는다. 그래서 수컷은 씨를 뿌리고 김매지 않아도 되고 암컷은 길쌈하고 옷 짓지 않아도 되니 입고 먹을 재화가 본디부터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이와 달라서 자신의 힘[力]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존재이니 힘[力]에 의지하지 않으면 곧 살지 못하게 된다.(『묵자』(墨子), 「비악상(非樂上」)
맹자라는 유학자가 묵자의 사상을 신랄하게 비판한 덕분에 묵자의 학설이 전반적으로 부정되었지만, 인간은 자신의 힘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존재라는 규정은 유학자인 정약용과 상통한다. 정약용의 사상이 편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가 당시 행세하던 성리학자들보다 훨씬 더 깊고 근본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약용은 기술의 속성에 대하여도 남다른 안목을 펼쳐 냈다. 기술은 성인같이 뛰어난 존재라고 할지라도 혼자서 이루는 성취에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성인 혼자서 빚어낸 것보다는 여러 사람이 논의해낸 것이 훨씬 낫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자면 정약용은 다중지성이 어느 한 개인의 탁월한 역량보다 훨씬 낫다고 여긴 것이다. 200여 년이나 시대를 앞서간 통찰을 제시한 셈이다. 또한 그는 시골보다는 도회지가, 도회지보다는 한 나라의 수도와 같이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 더 진보된 기술이 있다고 보았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지혜와 사려, 생각, 솜씨를 거쳤을 가능성이 큰 만큼 더욱 나은 기술일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 가서 기술을 배워 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중국이 당시 조선보다 인구가 많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조선의 기술이 실은 과거의 중국에서 배워온 것인데, 지금 중국은 신식 기술이 나날이 다달이 발달하며 축적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기술 덕분에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었다면 가장 첨단을 걷는 기술을 배워옴에 주저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정약용의 신념이 오롯이 담겨 있다.
한편 정약용은 기술 진보의 필요성을 주로 국가 차원에서 찾았다. 인용문에는 안 나와 있지만 「기예론」 두 번째 글과 세 번째 글에서는 기술이 진보할수록 나라가 부유하게 되고 군대가 강하게 되며 백성들이 윤택하게 오래 살 수 있게 될 것이니, 기술의 진보는 국가를 경영하는 이들이라면 모름지기 반드시 도모해야 할 바라고 강조했다. 기술을 개인 차원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고 삶을 윤택하게 해줄 뿐 아니라 국가와 사회 차원에서도 그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는 정약용의 시대에만 유의미한 논의는 아니다. 우리나라가 1970년대 이래 ‘기술입국(技術立國)’, 곧 ‘기술로 나라를 일으켜 세우다’는 모토 아래 국가적 차원에서 기술 발전에 큰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온 덕분에 오늘날 경제적, 물질적 차원에서는 선진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키워드
기술, 기술 입국, 기예론, 묵자, 문명, 유가, 인간다움, 인간 본성, 정약용
전후맥락
정약용은 ‘기예론’이라는 제목으로 모두 세 편의 글을 썼다. 다음 고전 인용문은 그 중 첫 번째 글의 전문이다.
고전본문
동물에게는 발톱을 주고 뿔을 주고 단단한 발굽과 날카로운 이를 주었으며 독(毒)을 주어서 그들로 각기 욕구하는 것을 얻게 하고 환난을 방어하도록 하였다. 사람의 경우에는 곧 벌거숭이인 채 연약하고 깨지기 쉬워 삶을 영위하지 못할 듯하게 했으니 어찌 하늘은 천한 동물에게는 후하게 하고 귀한 사람에게는 박하게 하였을까? 그러나 하늘은 사람은 지혜와 사려 및 솜씨와 생각을 지녀 그들로 기예를 익힘으로써 스스로 충족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런데 지혜와 사려는 밀고 나가며 운용함에는 한계가 있고 솜씨와 생각은 깊이 파고들어감에 순서가 있다. 그래서 아무리 성인(聖人)이라 하더라도 수많은 사람이 함께 논의한 바를 당해낼 수 없고, 아무리 성인이라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그 훌륭함을 다 발휘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많이 모일수록 그 기예가 더욱 정교하게 되고 세대가 아래로 내려올수록 그 기예가 한층 훌륭하게 되니, 이는 사세(事勢)*가 그렇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시골에 사는 사람은 공작 능력이 현이나 읍에 사는 사람만 못하고, 현이나 읍의 사람은 기술 솜씨가 이름난 도시나 큰 도시에 사는 사람만 못하며, 이름난 도시나 큰 도시 사람은 신식의 기계식 제조 기술이 도성에 사는 사람만 못하다. 그런데 저 시골보다 더 외진 곳에 사는 사람이 과거에 도성에 갔다가 막 개발되었을 뿐 아직 완비되지 않은 기법을 우연히 얻고는 기꺼워하며 돌아와 시험해본 후 다 아는 듯이 만족해하면서 “천하에 이 기법보다 나은 것이 없다”라고 하고는 아들과 손자에게 경계하기를 “도성에서의 이른바 기예라는 것을 내가 모두 터득하였으니 이제부터는 도성에서는 또다시 더 배울 것은 없다”고 했다. 이러한 사람은 그 한 일이 거칠고 투박하며 비루하고 조악하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나라에 있는 온갖 장인의 기예는 모두 옛날에 배웠던 중국의 기법인데 수백 년 이래 딱 잘라 끊듯이 다시는 중국에 가서 배워올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그런데 중국의 신식의 기계식 제조 기술은 나날이 증가하고 다달이 늘어나서 다시 수백 년 전의 중국이 아님에도 우리는 또한 막연하게 모르는 것을 묻지도 않고 오로지 예전의 것에 안주하고 있으니 어찌 그리도 게으르단 말인가?
– 정약용, 「기예론 1」.
* 사세(事勢) : 세상사 모든 일이 되어가는 추세, 형세.
토론하기
(1) 왜 필자는 중국에 가서 기예를 배워 와야 한다고 주장했는가?
(2) 기술의 습득과 진보가 이로웠거나 반대로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면 얘기해보자. 이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데 기술 진보가 꼭 필요한지에 대하여 토의해보자.
(3) 기술의 진보를 지속적으로 일구어내기 위해서는 어떤한 조건이 필요한지에 대하여 토의해보자.
해설읽기
정약용의 「기예론」은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글이다. 주지하듯이 조선시대 기술은 양반이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폄하되었다. 정약용은 이글에서 이러한 통념을 전복시킨다. 그는 기술은 양반이라고 하여 지니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인 한 기술은 누구나 지니도록 되어 있다고 못 박는다.
정약용이 보기에 하늘은 호랑이 같은 짐승에게는 날카로운 이와 발톱을 갖추게 해주어 먹고 살 수 있게 해주었고, 사람에게는 ‘지혜, 사려, 솜씨, 생각’을 주어서 먹고 살 수 있게 해주었다. 여기서 솜씨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구현해내며 움직이게 하는 역량을 가리킨다. 곧 기술을 익히고 사용할 수 있는 역량을 뜻한다. 그러한 솜씨를 하늘이 인간에게 주었다는 것은 곧 인간이면 누구나 먹고 살기 위해서는 기술을 익힐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하늘이 인간에게 먹고 살라고 부여한 것인 만큼 누구나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를 닦고 익혀 잘 사용해야 한다. 이처럼 기술은 양반이든 중인이든 평민이든 천민이든 누구나 기본으로 갖추고 태어난다. 그러니 기술은 중인이나 연마하는 것이라는 식의 관점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 된다.
실제로 정약용이 언급한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는 지혜나 사려, 솜씨, 생각 덕분에 인간은 인간답게 살 수 있게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중 지혜나 사려, 생각 등은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는 명제가 있듯이 이들 덕분에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었다는 데 쉬이 동의된다. 반면에 솜씨, 그러니까 기술 덕분에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었다는 규정은 낯설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 관한 통찰 가운데 “인간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동물”이라는 명제가 오래전부터 있었음을 감안하면 그리 낯선 관점만은 아니다. 곧 이성이라는 힘과 기술이라는 힘 덕분에 인간은 문명을 일구면서 인간답게 살 수 있었음이다. 그래서 정약용보다 2천여 년 앞서서 묵자라는 사상가는 이렇게 단언할 수 있었다.
사람은 본래부터 고라니나 사슴, 나는 새나 기어 다니는 벌레와 같은 짐승들과는 다른 존재이다. 고라니나 사슴, 나는 새나 기어 다니는 벌레들은 자신들의 깃과 털로써 옷을 삼고 발굽과 발톱으로써 신발을 삼으며 물과 풀을 음식으로 삼는다. 그래서 수컷은 씨를 뿌리고 김매지 않아도 되고 암컷은 길쌈하고 옷 짓지 않아도 되니 입고 먹을 재화가 본디부터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이와 달라서 자신의 힘[力]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존재이니 힘[力]에 의지하지 않으면 곧 살지 못하게 된다.(『묵자』(墨子), 「비악상(非樂上」)
맹자라는 유학자가 묵자의 사상을 신랄하게 비판한 덕분에 묵자의 학설이 전반적으로 부정되었지만, 인간은 자신의 힘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존재라는 규정은 유학자인 정약용과 상통한다. 정약용의 사상이 편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가 당시 행세하던 성리학자들보다 훨씬 더 깊고 근본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약용은 기술의 속성에 대하여도 남다른 안목을 펼쳐 냈다. 기술은 성인같이 뛰어난 존재라고 할지라도 혼자서 이루는 성취에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성인 혼자서 빚어낸 것보다는 여러 사람이 논의해낸 것이 훨씬 낫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자면 정약용은 다중지성이 어느 한 개인의 탁월한 역량보다 훨씬 낫다고 여긴 것이다. 200여 년이나 시대를 앞서간 통찰을 제시한 셈이다. 또한 그는 시골보다는 도회지가, 도회지보다는 한 나라의 수도와 같이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 더 진보된 기술이 있다고 보았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지혜와 사려, 생각, 솜씨를 거쳤을 가능성이 큰 만큼 더욱 나은 기술일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 가서 기술을 배워 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중국이 당시 조선보다 인구가 많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조선의 기술이 실은 과거의 중국에서 배워온 것인데, 지금 중국은 신식 기술이 나날이 다달이 발달하며 축적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기술 덕분에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었다면 가장 첨단을 걷는 기술을 배워옴에 주저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정약용의 신념이 오롯이 담겨 있다.
한편 정약용은 기술 진보의 필요성을 주로 국가 차원에서 찾았다. 인용문에는 안 나와 있지만 「기예론」 두 번째 글과 세 번째 글에서는 기술이 진보할수록 나라가 부유하게 되고 군대가 강하게 되며 백성들이 윤택하게 오래 살 수 있게 될 것이니, 기술의 진보는 국가를 경영하는 이들이라면 모름지기 반드시 도모해야 할 바라고 강조했다. 기술을 개인 차원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고 삶을 윤택하게 해줄 뿐 아니라 국가와 사회 차원에서도 그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는 정약용의 시대에만 유의미한 논의는 아니다. 우리나라가 1970년대 이래 ‘기술입국(技術立國)’, 곧 ‘기술로 나라를 일으켜 세우다’는 모토 아래 국가적 차원에서 기술 발전에 큰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온 덕분에 오늘날 경제적, 물질적 차원에서는 선진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키워드
기술, 기술 입국, 기예론, 묵자, 문명, 유가, 인간다움, 인간 본성, 정약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