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인용문은 『열자』, 「황제」 편에 수록된 여러 이야기 중에 하나다. 「황제」 편은 서로 다른 내용으로 이루어진 여러 편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인용문은 그 중의 하나로, 여기에는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초나라로 가다가 우연히 숲에서 목도한 매미 잡는 등 굽은 노인과의 대화 및 대화를 통해 깨달은 바를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공자의 말이 담겨 있다.
고전본문
공자가 초나라로 감에 숲속을 지나쳐 나오다가 등 굽은 이가 매미를 잡는 광경을 보았다. 그런데 그는 기력이 다해 땅에 떨어져 움직이는 못하는 매미를 마치 주워 담듯이 잡았다. 공자가 말했다. “당신의 솜씨가 참으로 대단합니다. 이렇게 매미를 잡는 데 무슨 방도가 있습니까?” 그가 대답했다. “나에게는 방도가 있습지요. 대여섯 달 동안 연습하여 대나무 장대 끝에 두 개의 둥근 공을 포개 놓고서 떨어뜨리지 않게 되면 매미를 잡는 데 놓치는 것이 적어집니다. 세 개를 포개 놓고서 떨어뜨리지 않게 되면 놓치는 것은 열 마리 중에 한 마리입니다. 다섯 개의 공을 포개 놓고서 떨어드리지 않게 되면 마치 손으로 줍는 것과 같이 매미를 잡게 됩니다. 그러할 때 내 몸은 마치 곧게 서있는 그루터기와 같고, 나의 장대를 쥔 팔뚝은 마치 마른 나뭇가지와 같습니다. 비록 하늘과 땅이 크며 만물이 많다고 하더라도 나는 다만 매미의 날개만을 지각할 뿐입니다. 나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곁을 보지도 않으며 어떠한 물건일지라도 매미 날개에서 눈을 떼지 않으니 어찌 잡지 못하겠습니까?” 공자가 뒤돌아보며 제자들에게 말했다. “마음을 씀에 분산시키지 않으면 신의 경지에 이른다. 이것이 등 굽은 어르신께서 말씀하신 바이니라.” 등 굽은 노인이 말했다. “당신들은 소매 넓은 옷을 입는* 유학자의 무리인데 어찌 이것을 물을 줄 아십니까? 당신들이 행하는 바를 닦아 버린 후에 앞의 일에 대하여 다시 말해봅시다.”
– 『열자』(列子), 「황제(黃帝)」
* 소매 넓은 옷을 입는 : 공자의 학설을 따르는 학자인 유가들은 소매가 넓은 옷을 입고 다님으로써 자신들이 유가임을 드러내었다. 이러한 유가를 가리켜 소매 넓은 옷을 입는 이들이라는 식으로 가리킴은 유가가 허례허식에 치우쳐 있음을 비판하는 것이다. 소매가 넓으면 일을 하는 데 지장이 있기 때문이다.
토론하기
(1) 등 굽은 노인이 매미를 잡기 위하여 어떠한 기술을 연마했는가? 공자는 그러한 기술에 대한 이해는 타당한가?
(2) 인용문의 이야기는 실제 일어났던 일이라기보다는 가공의 이야기에 가깝다. 무엇을 말하고자 그러한 이야기를 꾸몄던 것일까?
(3) 기술 숙련과 마음 수양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무관하다고 생각하는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얘기해보자.
해설읽기
열자는 제자백가가 활약했던 전국시대 도가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도가는 모든 인위적 욕망과 사고, 행위 등이 무의미하다고 비판하며, 인위적 사고와 행위를 일절 하지 않고 자연과 자신을 한 몸으로 만들어 자연이 굴러가듯이 인생도 그렇게 살 것을 추구했던 사상이다. 이러한 도가의 대표자로는 일반적으로 노자를 꼽고 그 다음은 장자를 꼽는다. 열자는 그들 사이에서 노자의 학설을 장자에게 전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당연히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하여 그 사람의 역사적 가치와 의의 등이 저평가되어서는 안 되지만 말이다.
공자는 널리 알려져 있듯이 유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도가의 경우는 사실 노자가 도가를 개창하고 장자가 뒤에서 크게 발달시켰다고 평가하지만 그렇다고 노자가 절대적인 권위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장자가 노자보다도 후세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봄이 사실에 한층 부합하기 때문에 때로는 장자가 도가를 대표하기도 한다. 이에 비해 유가에서 공자와 맞먹는다거나 공자를 대체할 수 있는 권위나 위상, 의의 등을 지닌 인물은 없다. 공자가 유가의 세계에서는 절대적인 지존(至尊)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도가에서는 그러한 공자를 무척 요긴하게 활용해 먹는다. 가령 『장자』에 보면 공자가 유가에서 지향한 도의 한계를 깨닫고 도가의 도에 감복한다거나 이를 추구하는 모습이 종종 실려 있다. 도가의 도와 상반되는 유가의 도를 깨뜨리기 위하여 장자가 의도적으로 유가의 지존인 공자를 그렇게 활용한 것이다. 이러한 양상이 인용문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 이야기 속의 공자는 생명이 다해 땅에 떨어진 매미를 줍듯이 멀쩡한 매미를 잡는 등 굽은 노인과 대화를 나눈 후 깨달은 바가 있어 이를 제자들에게 이를 일러준다. 그러한 공자의 말을 듣고 있던 등 굽은 노인은 공자더러 당신이 지날 날부터 지니고 있었고 행해왔던 바를 다 내려놓은 다음에 자신이 말한 방도와 경지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자고 한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해준 말이 자신이 말하고자 한 바와 일치되지 않음을 환기했음이다. 이는 공자의 깨달음이 여전히 한계가 있음을 일러준 것이다.
사실 공자는 몰락했지만 엄연히 귀족의 후예였다. 이에 비해 매미를 줍는 노인은 매미를 주어 관청에 세금 대신 받치는 평민 내지 그보다 못한 천민이었을 개연성이 아주 높다. 또한 공자가 살았던 시대는 물론 열자가 살았던 시대도 마찬가지로 귀족의 후예면 학문을 연마할 수 있었지만 평민이나 천민이 학문을 연마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사회적 지위나 학식 면에서 현격하게 차이가 날 가능성이 무척 높은 등 굽은 노인이 깨닫고 있는 경지가 오히려 사회적 지위도 높고 학문도 훨씬 많이 익혔던 공자의 깨달음보다 높다고 함으로써 열자는 공자로 대변되는 유가의 도는 진정한 답이 될 수 없고 자신이 말하는 도가의 도가 진정한 답이 될 수 있음을 역설했던 것이다. 실제로 이 이야기 속의 공자는 등 굽은 노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등 굽은 노인은 장대 끝에 공을 거듭 쌓아 놓고 이를 떨어뜨리지 않는 기술의 연마를 통해 자신이 마치 나무와 같이 존재하는 경지를 체득한다. 도가에서 지향한 자연과 한 몸이 되는 삶을 체현한 것이다. 그 결과 매미는 등 굽은 노인을 그저 다른 나무와 동일한 나무로 인지하여 나무에 앉듯이 자연스레 앉았던 것이며 그렇게 앉은 매미를 노인은 수명이 다해 땅에 떨어져 더는 움직이지 못하게 된 매미를 줍듯이 잡았던 것이다. 그런데 공자는 노인의 이러한 경지를 마음의 집중이라는, 달리 말해 마음 수양이라는 차원에서 오독한다. 그래서 그 모습을 본 등 굽은 노인은 공자더러 지금까지 지녀왔고 행해왔던 모든 것을 다 씻어버린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고 말했던 것이다.
여기서 노인이 자신이 곧 나무가 되었다는 것은 도가의 최고 경지인 자연과 ‘나’가 한 몸으로 합일되었음에 대한 비유이다. 곧 도가 최고의 도를 체득한 경지를 나타낸다. 이렇듯 열자를 비롯한 도가는 기술 숙련을 통해 최고의 도를 체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장자』에서 “포정해우(庖丁解牛, 포정이 소를 도축하다)”라는 고사, 그러니까 소를 도축하는 포정이라는 인물이 소의 뼈와 살을 분해하는 기술을 고도로 숙련함으로써 도의 경지에 올라설 수 있었다는 고사를 소개한 데서 목도되듯이 말이다. 유가에서는, 이를테면 조선시대 선비들이 기술을 중인이나 익히는 것이라 하면서 기술과 참된 도를 깨우치는 것을 무관한 것으로 보았지만, 이처럼 도가에서는 기술로 도를 깨우칠 수 있다고 보았다. 기술이 학문처럼 참된 진리를 깨닫고 이를 체득하는 중요한 방편으로 설정되어 있었음이다.
키워드
공자, 기술, 도가, 마음 수양, 매미 잡이, 무위자연, 열어구, 열자, 유가, 포정해우
전후맥락
인용문은 『열자』, 「황제」 편에 수록된 여러 이야기 중에 하나다. 「황제」 편은 서로 다른 내용으로 이루어진 여러 편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인용문은 그 중의 하나로, 여기에는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초나라로 가다가 우연히 숲에서 목도한 매미 잡는 등 굽은 노인과의 대화 및 대화를 통해 깨달은 바를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공자의 말이 담겨 있다.
고전본문
공자가 초나라로 감에 숲속을 지나쳐 나오다가 등 굽은 이가 매미를 잡는 광경을 보았다. 그런데 그는 기력이 다해 땅에 떨어져 움직이는 못하는 매미를 마치 주워 담듯이 잡았다. 공자가 말했다. “당신의 솜씨가 참으로 대단합니다. 이렇게 매미를 잡는 데 무슨 방도가 있습니까?” 그가 대답했다. “나에게는 방도가 있습지요. 대여섯 달 동안 연습하여 대나무 장대 끝에 두 개의 둥근 공을 포개 놓고서 떨어뜨리지 않게 되면 매미를 잡는 데 놓치는 것이 적어집니다. 세 개를 포개 놓고서 떨어뜨리지 않게 되면 놓치는 것은 열 마리 중에 한 마리입니다. 다섯 개의 공을 포개 놓고서 떨어드리지 않게 되면 마치 손으로 줍는 것과 같이 매미를 잡게 됩니다. 그러할 때 내 몸은 마치 곧게 서있는 그루터기와 같고, 나의 장대를 쥔 팔뚝은 마치 마른 나뭇가지와 같습니다. 비록 하늘과 땅이 크며 만물이 많다고 하더라도 나는 다만 매미의 날개만을 지각할 뿐입니다. 나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곁을 보지도 않으며 어떠한 물건일지라도 매미 날개에서 눈을 떼지 않으니 어찌 잡지 못하겠습니까?” 공자가 뒤돌아보며 제자들에게 말했다. “마음을 씀에 분산시키지 않으면 신의 경지에 이른다. 이것이 등 굽은 어르신께서 말씀하신 바이니라.” 등 굽은 노인이 말했다. “당신들은 소매 넓은 옷을 입는* 유학자의 무리인데 어찌 이것을 물을 줄 아십니까? 당신들이 행하는 바를 닦아 버린 후에 앞의 일에 대하여 다시 말해봅시다.”
– 『열자』(列子), 「황제(黃帝)」
* 소매 넓은 옷을 입는 : 공자의 학설을 따르는 학자인 유가들은 소매가 넓은 옷을 입고 다님으로써 자신들이 유가임을 드러내었다. 이러한 유가를 가리켜 소매 넓은 옷을 입는 이들이라는 식으로 가리킴은 유가가 허례허식에 치우쳐 있음을 비판하는 것이다. 소매가 넓으면 일을 하는 데 지장이 있기 때문이다.
토론하기
(1) 등 굽은 노인이 매미를 잡기 위하여 어떠한 기술을 연마했는가? 공자는 그러한 기술에 대한 이해는 타당한가?
(2) 인용문의 이야기는 실제 일어났던 일이라기보다는 가공의 이야기에 가깝다. 무엇을 말하고자 그러한 이야기를 꾸몄던 것일까?
(3) 기술 숙련과 마음 수양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무관하다고 생각하는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얘기해보자.
해설읽기
열자는 제자백가가 활약했던 전국시대 도가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도가는 모든 인위적 욕망과 사고, 행위 등이 무의미하다고 비판하며, 인위적 사고와 행위를 일절 하지 않고 자연과 자신을 한 몸으로 만들어 자연이 굴러가듯이 인생도 그렇게 살 것을 추구했던 사상이다. 이러한 도가의 대표자로는 일반적으로 노자를 꼽고 그 다음은 장자를 꼽는다. 열자는 그들 사이에서 노자의 학설을 장자에게 전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당연히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하여 그 사람의 역사적 가치와 의의 등이 저평가되어서는 안 되지만 말이다.
공자는 널리 알려져 있듯이 유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도가의 경우는 사실 노자가 도가를 개창하고 장자가 뒤에서 크게 발달시켰다고 평가하지만 그렇다고 노자가 절대적인 권위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장자가 노자보다도 후세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봄이 사실에 한층 부합하기 때문에 때로는 장자가 도가를 대표하기도 한다. 이에 비해 유가에서 공자와 맞먹는다거나 공자를 대체할 수 있는 권위나 위상, 의의 등을 지닌 인물은 없다. 공자가 유가의 세계에서는 절대적인 지존(至尊)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도가에서는 그러한 공자를 무척 요긴하게 활용해 먹는다. 가령 『장자』에 보면 공자가 유가에서 지향한 도의 한계를 깨닫고 도가의 도에 감복한다거나 이를 추구하는 모습이 종종 실려 있다. 도가의 도와 상반되는 유가의 도를 깨뜨리기 위하여 장자가 의도적으로 유가의 지존인 공자를 그렇게 활용한 것이다. 이러한 양상이 인용문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 이야기 속의 공자는 생명이 다해 땅에 떨어진 매미를 줍듯이 멀쩡한 매미를 잡는 등 굽은 노인과 대화를 나눈 후 깨달은 바가 있어 이를 제자들에게 이를 일러준다. 그러한 공자의 말을 듣고 있던 등 굽은 노인은 공자더러 당신이 지날 날부터 지니고 있었고 행해왔던 바를 다 내려놓은 다음에 자신이 말한 방도와 경지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자고 한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해준 말이 자신이 말하고자 한 바와 일치되지 않음을 환기했음이다. 이는 공자의 깨달음이 여전히 한계가 있음을 일러준 것이다.
사실 공자는 몰락했지만 엄연히 귀족의 후예였다. 이에 비해 매미를 줍는 노인은 매미를 주어 관청에 세금 대신 받치는 평민 내지 그보다 못한 천민이었을 개연성이 아주 높다. 또한 공자가 살았던 시대는 물론 열자가 살았던 시대도 마찬가지로 귀족의 후예면 학문을 연마할 수 있었지만 평민이나 천민이 학문을 연마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사회적 지위나 학식 면에서 현격하게 차이가 날 가능성이 무척 높은 등 굽은 노인이 깨닫고 있는 경지가 오히려 사회적 지위도 높고 학문도 훨씬 많이 익혔던 공자의 깨달음보다 높다고 함으로써 열자는 공자로 대변되는 유가의 도는 진정한 답이 될 수 없고 자신이 말하는 도가의 도가 진정한 답이 될 수 있음을 역설했던 것이다. 실제로 이 이야기 속의 공자는 등 굽은 노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등 굽은 노인은 장대 끝에 공을 거듭 쌓아 놓고 이를 떨어뜨리지 않는 기술의 연마를 통해 자신이 마치 나무와 같이 존재하는 경지를 체득한다. 도가에서 지향한 자연과 한 몸이 되는 삶을 체현한 것이다. 그 결과 매미는 등 굽은 노인을 그저 다른 나무와 동일한 나무로 인지하여 나무에 앉듯이 자연스레 앉았던 것이며 그렇게 앉은 매미를 노인은 수명이 다해 땅에 떨어져 더는 움직이지 못하게 된 매미를 줍듯이 잡았던 것이다. 그런데 공자는 노인의 이러한 경지를 마음의 집중이라는, 달리 말해 마음 수양이라는 차원에서 오독한다. 그래서 그 모습을 본 등 굽은 노인은 공자더러 지금까지 지녀왔고 행해왔던 모든 것을 다 씻어버린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고 말했던 것이다.
여기서 노인이 자신이 곧 나무가 되었다는 것은 도가의 최고 경지인 자연과 ‘나’가 한 몸으로 합일되었음에 대한 비유이다. 곧 도가 최고의 도를 체득한 경지를 나타낸다. 이렇듯 열자를 비롯한 도가는 기술 숙련을 통해 최고의 도를 체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장자』에서 “포정해우(庖丁解牛, 포정이 소를 도축하다)”라는 고사, 그러니까 소를 도축하는 포정이라는 인물이 소의 뼈와 살을 분해하는 기술을 고도로 숙련함으로써 도의 경지에 올라설 수 있었다는 고사를 소개한 데서 목도되듯이 말이다. 유가에서는, 이를테면 조선시대 선비들이 기술을 중인이나 익히는 것이라 하면서 기술과 참된 도를 깨우치는 것을 무관한 것으로 보았지만, 이처럼 도가에서는 기술로 도를 깨우칠 수 있다고 보았다. 기술이 학문처럼 참된 진리를 깨닫고 이를 체득하는 중요한 방편으로 설정되어 있었음이다.
키워드
공자, 기술, 도가, 마음 수양, 매미 잡이, 무위자연, 열어구, 열자, 유가, 포정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