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인용문은 『사기』, 「흉노열전(匈奴列傳)」의 일부이다. [가]는 한나라의 사신과 흉노의 중항열이 흉노의 습속에 대하여 논쟁한 내용이고, [나]는 사마천이 「흉노열전」 기술을 갈무리하면서 결론으로 제시한 대목이다. 「흉노열전」은 흉노로 불리는 유목민족과 중국 왕조와의 상호작용과 교류의 역사를 개괄한 글이다. 흉노는 몽골 고원 지대에 거주하며 몽골 일대와 서쪽으로 동투르기스탄 일대, 중국 북부 일대 등을 세력권에 두었던 유목민족이었다. 전국시대 후엽(3C BCE 경) 무렵 몽골고원 동부와 서부에 걸친 광활한 지역을 석권하며 만리장성 이북의 유목민을 통합하며 사상 최초로 큰 정치세력을 이룩하였고, 한나라 시절에는 ‘흉노제국’이라고 할 만한 위용을 갖추었다. 「흉노열전」에는 이러한 역사를 지닌 흉노의 풍습, 역사, 제도 등과 중국과 흉노 사이에 있었던 교류와 충돌의 역사가 담겨 있다. 이는 중국과 유목세계 간 상호작용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기술한 최초의 문헌으로, 흉노와 치열하게 대치하던 상황에서 중국인의 편견과 왜곡된 자의식을 일정 정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전본문
[가] 한(漢)나라 사신 중 어떤 이가 말했다. “흉노의 풍습에서는 노인을 천대하고 있소.” 그러자 중항열은 그 한나라 사신을 추궁하였다. “당신들 한나라 습속에도 변방 수비군으로 군대에 징집되는 이에게는 그 늙은 부모가 자기들의 따뜻하고 두꺼운 옷을 벗어주고,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주면서 군대로 떠나가게 하지 않는가?” 한나라 사신이 답했다. “그렇소.” 중항열이 대꾸했다. “흉노는 주지하듯이 전투가 일상사인데 늙고 약한 사람은 싸울 수가 없다. 그래서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젊고 건장한 이들에게 먹이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한 것으로 이와 같이 함으로써 아버지와 자식이 모두 오랫동안에 걸쳐 서로를 지켜줄 수 있었으니 어찌 흉노가 노인을 경시한다고 할 수 있소?” 한나라 사신이 말했다. “흉노는 부자가 한 천막에 같이 살고 자며, 아버지가 죽으면 자식이 계모를 아내로 삼고 형제가 죽으면 남은 형제가 그 아내를 맞아 자기 아내로 삼는다. 관과 허리띠와 같은 복식도, 조정에서의 예법도 없소.” 중항열이 말했다. “흉노의 습속에서는 사람은 가축의 고기를 먹고 그 젖을 마시며 그 털가죽을 옷으로 입는다. 가축은 풀을 먹고 물을 마시며 철에 따라 옮겨 다닌다. 그래서 위급할 때에는 사람들은 말 타고 활 쏘는 법에 익숙하고 한가로울 때에는 아무 일도 안 함을 즐긴다. 그들의 약속은 간소하여 행하기가 쉽고 임금과 신하의 예법도 단순하고 범상해서 한 나라의 정치가 마치 한 개인적인 일과 같다. 아버지나 형제가 죽으면 그 아내를 자기 아내로 삼는 것은 대가 끊김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흉노는 문란하지만 종족은 반드시 유지된다. 이제 중국은 외형상으로는 아버지나 형의 처를 아내로 삼는 일이 없지만, 친족 간이라도 더욱 소원해지면 서로 죽이기도 한다. 군왕의 성을 갈아치우는 것도 모두 그러한 부류이다. 또한 예의의 병폐 탓에 위아래가 서로 원망하고, 최고 수준의 궁궐을 짓는 데 힘을 다 써서 반드시 쓰러지고 만다. 무릇 힘써 경작하고 누에를 쳐서 먹고 입을 것을 구하고 성곽을 쌓아 스스로를 방비하느라 한나라 백성들은 위급할 때에는 싸움에 익숙하지 못하고 한가로울 때에는 생업에 지치고 만다.”
– 『사기』, 「흉노열전」
[나] 세상에서 흉노를 언급하는 자들은 한때의 총애라도 얻으려 노심초사하며 자기 말이 황제에게 받아들여지는 데만 힘쓴다. 편견에 빠져 흉노와 한의 현실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고, 장수들은 중국의 광대함을 믿고 기세를 올렸고 황제 또한 그것에 의거하여 방책을 결정했다. 그 때문에 공을 세워도 심원하지 못했다.
– 『사기』, 「흉노열전(匈奴列傳)」
토론하기
(1) [가]에 기술되어 있는 한나라 사신의 문제제기는 정당한가? 또한 흉노 측 중항열의 말은 정당한가? 정당하다면 그 근거는 무엇이고, 부당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2) [나]에 드러나 있는 사마천의 견해를 정리해보고, 이를 토대로 타자와 관계를 맺는 최적의 태도는 무엇인지, 그렇게 관계 맺었을 때의 이로움은 무엇인지 등에 대하여 토의해보자.
(3) 사마천이 한나라 사신과 중항열의 논쟁을 기록하는 태도를 분석해보자. 사마천이 그러한 태도로 기록한 목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해설읽기
농경을 하며 정주, 그러니까 한 곳에 머물러 살던 중국인으로서는 목축을 하며 목초지를 찾아 이리저리 떠도는 유목민족이, 그들의 습속이 꽤 ‘이상하게’ 보였다. 그중에서도 건장한 젊은이는 좋은 음식을 먹고 옷을 입는데 노인은 그렇지 않은 습속과 아버지가 사망 시 계모가 있으면 계모를 아들 중 하나가 자신의 아내로 삼고 형제가 죽으면 그 부인을 남은 형제 중 하나가 아내로 삼는 풍습이 가장 이상했다. 특히 ‘형사취수(兄死取嫂)’라고 불리던 후자의 관습은 중국에서는 짐승이나 하는 짓이라고 여겨왔던 패륜 중의 패륜이었다. 노인을 공경하지 않고 젊은이를 더 우대하는 것 또한 중국에선 부도덕함의 상징이었다. 저 옛날 주나라의 서백 창이라는 제후가 “노인을 잘 공경한다”는 평판으로 훗날 중국을 제패할 수 있는 기초를 탄탄하게 쌓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노인 공경은 중국에선 그 사회적 영향력이 엄청나게 컸던 윤리였다. 한나라 사신이 노인 공경 문제와 형사취수 문제를 거론한 것은 그것들이 중국인의 입장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대표적인 흉노의 습속이었기 때문이다.
한나라 사신의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하여 중항열은 한나라, 곧 중국과 흉노의 생활환경의 차이를 근거로 단호하게 대꾸한다. 중국에서도 변방으로 군 복무를 하러 떠나는 젊은이가 있을 경우 집안사람들이 그에게 좋은 옷, 좋은 음식을 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러한 중국과 흉노의 차이는 유목이라는 생활환경으로 인해 흉노는 일상이 전시에 준하게 펼쳐지는 데 있고, 그렇다 보니 일상적으로 젊은이 위주로 사회가 굴러갈 수밖에 없다고 반박한다. 만약 중국인들도 이러한 환경 아래서 생활한다면 흉노와 마찬가지로 젊은이 위주로 사회를 운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반론이 함축되어 있는 셈이다. 실제로 유목민족은 목초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생활은커녕 생존이 어려웠기 때문에 목초지를 둘러싼 다른 종족과의 전투를 일상적으로 겪었다. 중항열은 이러한 삶의 조건을 거론한 것이다. 또한 중항열은 척박한 삶의 조건과 반복되는 이동, 일상적 전투 등으로 인해 종족을 보전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형사취수와 같은 습속이 어쩔 수 없이 형성되었다고 옹호한다. 그 결과 문란한 것은 맞지만 종족을 보존할 수 있었다면서, 겉으로는 친척 간 친밀한 듯 굴지만 의가 나면 서로 죽이는 일조차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중국이 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항변한다.
사마천은 중항열과 한나라 사신 간의 이러한 논쟁을 한나라 사신의 말은 짧게 언급하고 중항열의 말은 길게 서술하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또한 중항열에게 한나라 사신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위상을 부여하여 한나라 사신이 지닌 자기 중심적, 중국 중심적 시각을 통쾌하게 허물어 버렸다. 사마천의 서술 전략 아래 한나라 사신은 중항열의 논박에 속절없이 당하는 형상으로 그려진다. 바로 이러한 면모 때문에 「흉노열전」은 중국 중심주의, 그러니까 중화주의 내지 화이론(華夷論, 중국은 문명지대이고 나머지 지역은 오랑캐들이 사는 야만지대라는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 흉노라는 타자를 객관적이고 실증적으로 다루려고 노력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사마천의 이러한 태도는 제법 긴 분량의 「흉노열전」의 서술을 갈무리하는 대목([나])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나 있다. 사마천은 [나]에서 흉노라는 타자에 대하여 편견에 빠진 채 그들을 자기 이익을 위해 악용하는 태도를 거론한다. 편견에 빠졌다고 함은 흉노를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고 중국의 입장에서 재단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흉노를 이른바 ‘오랑캐’로 취급함으로써, 다시 말해 중국의 예법이 전혀 통하지 않는 야만으로 취급했다는 뜻으로, 그 결과 중국은 흉노에 대하여 타당한 대처법을 수립하는 데 실패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마천은 타자에 대하여 이렇게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다보면 자기에 대한 인식에도 큰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흉노를 낮잡아봄은 결과적으로 중국을 과대평가함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흉노에 대한 대처가 적절하고 지속 가능할 수 없었다. 상대 인식도 잘못되었고 자기 인식도 잘못되었으니 일이 제대로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었음이다. 사마천이 보기에 타자에 대한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인식은 결국 자기 자신, 나아가 우리에 대하여 객관적이고 실증적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가능했던 일이었던 것이다.
한편 중항열은 한나라 출신으로 한나라의 공주가 흉노 군주와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공주를 수행하여 흉노에 갔다가 이러한 한나라의 정책에 불만을 품고 흉노에 귀화한 인물이다. 그렇지만 토의를 할 때에는 중항열의 이러한 개인적 배경은 논외로 할 필요가 있다.
키워드
문명, 야만, 오랑캐, 유목, 중항열, 중화주의, 타자, 형사취수, 화이론, 흉노
전후맥락
인용문은 『사기』, 「흉노열전(匈奴列傳)」의 일부이다. [가]는 한나라의 사신과 흉노의 중항열이 흉노의 습속에 대하여 논쟁한 내용이고, [나]는 사마천이 「흉노열전」 기술을 갈무리하면서 결론으로 제시한 대목이다. 「흉노열전」은 흉노로 불리는 유목민족과 중국 왕조와의 상호작용과 교류의 역사를 개괄한 글이다. 흉노는 몽골 고원 지대에 거주하며 몽골 일대와 서쪽으로 동투르기스탄 일대, 중국 북부 일대 등을 세력권에 두었던 유목민족이었다. 전국시대 후엽(3C BCE 경) 무렵 몽골고원 동부와 서부에 걸친 광활한 지역을 석권하며 만리장성 이북의 유목민을 통합하며 사상 최초로 큰 정치세력을 이룩하였고, 한나라 시절에는 ‘흉노제국’이라고 할 만한 위용을 갖추었다. 「흉노열전」에는 이러한 역사를 지닌 흉노의 풍습, 역사, 제도 등과 중국과 흉노 사이에 있었던 교류와 충돌의 역사가 담겨 있다. 이는 중국과 유목세계 간 상호작용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기술한 최초의 문헌으로, 흉노와 치열하게 대치하던 상황에서 중국인의 편견과 왜곡된 자의식을 일정 정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전본문
[가] 한(漢)나라 사신 중 어떤 이가 말했다. “흉노의 풍습에서는 노인을 천대하고 있소.” 그러자 중항열은 그 한나라 사신을 추궁하였다. “당신들 한나라 습속에도 변방 수비군으로 군대에 징집되는 이에게는 그 늙은 부모가 자기들의 따뜻하고 두꺼운 옷을 벗어주고,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주면서 군대로 떠나가게 하지 않는가?” 한나라 사신이 답했다. “그렇소.” 중항열이 대꾸했다. “흉노는 주지하듯이 전투가 일상사인데 늙고 약한 사람은 싸울 수가 없다. 그래서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젊고 건장한 이들에게 먹이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한 것으로 이와 같이 함으로써 아버지와 자식이 모두 오랫동안에 걸쳐 서로를 지켜줄 수 있었으니 어찌 흉노가 노인을 경시한다고 할 수 있소?” 한나라 사신이 말했다. “흉노는 부자가 한 천막에 같이 살고 자며, 아버지가 죽으면 자식이 계모를 아내로 삼고 형제가 죽으면 남은 형제가 그 아내를 맞아 자기 아내로 삼는다. 관과 허리띠와 같은 복식도, 조정에서의 예법도 없소.” 중항열이 말했다. “흉노의 습속에서는 사람은 가축의 고기를 먹고 그 젖을 마시며 그 털가죽을 옷으로 입는다. 가축은 풀을 먹고 물을 마시며 철에 따라 옮겨 다닌다. 그래서 위급할 때에는 사람들은 말 타고 활 쏘는 법에 익숙하고 한가로울 때에는 아무 일도 안 함을 즐긴다. 그들의 약속은 간소하여 행하기가 쉽고 임금과 신하의 예법도 단순하고 범상해서 한 나라의 정치가 마치 한 개인적인 일과 같다. 아버지나 형제가 죽으면 그 아내를 자기 아내로 삼는 것은 대가 끊김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흉노는 문란하지만 종족은 반드시 유지된다. 이제 중국은 외형상으로는 아버지나 형의 처를 아내로 삼는 일이 없지만, 친족 간이라도 더욱 소원해지면 서로 죽이기도 한다. 군왕의 성을 갈아치우는 것도 모두 그러한 부류이다. 또한 예의의 병폐 탓에 위아래가 서로 원망하고, 최고 수준의 궁궐을 짓는 데 힘을 다 써서 반드시 쓰러지고 만다. 무릇 힘써 경작하고 누에를 쳐서 먹고 입을 것을 구하고 성곽을 쌓아 스스로를 방비하느라 한나라 백성들은 위급할 때에는 싸움에 익숙하지 못하고 한가로울 때에는 생업에 지치고 만다.”
– 『사기』, 「흉노열전」
[나] 세상에서 흉노를 언급하는 자들은 한때의 총애라도 얻으려 노심초사하며 자기 말이 황제에게 받아들여지는 데만 힘쓴다. 편견에 빠져 흉노와 한의 현실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고, 장수들은 중국의 광대함을 믿고 기세를 올렸고 황제 또한 그것에 의거하여 방책을 결정했다. 그 때문에 공을 세워도 심원하지 못했다.
– 『사기』, 「흉노열전(匈奴列傳)」
토론하기
(1) [가]에 기술되어 있는 한나라 사신의 문제제기는 정당한가? 또한 흉노 측 중항열의 말은 정당한가? 정당하다면 그 근거는 무엇이고, 부당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2) [나]에 드러나 있는 사마천의 견해를 정리해보고, 이를 토대로 타자와 관계를 맺는 최적의 태도는 무엇인지, 그렇게 관계 맺었을 때의 이로움은 무엇인지 등에 대하여 토의해보자.
(3) 사마천이 한나라 사신과 중항열의 논쟁을 기록하는 태도를 분석해보자. 사마천이 그러한 태도로 기록한 목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해설읽기
농경을 하며 정주, 그러니까 한 곳에 머물러 살던 중국인으로서는 목축을 하며 목초지를 찾아 이리저리 떠도는 유목민족이, 그들의 습속이 꽤 ‘이상하게’ 보였다. 그중에서도 건장한 젊은이는 좋은 음식을 먹고 옷을 입는데 노인은 그렇지 않은 습속과 아버지가 사망 시 계모가 있으면 계모를 아들 중 하나가 자신의 아내로 삼고 형제가 죽으면 그 부인을 남은 형제 중 하나가 아내로 삼는 풍습이 가장 이상했다. 특히 ‘형사취수(兄死取嫂)’라고 불리던 후자의 관습은 중국에서는 짐승이나 하는 짓이라고 여겨왔던 패륜 중의 패륜이었다. 노인을 공경하지 않고 젊은이를 더 우대하는 것 또한 중국에선 부도덕함의 상징이었다. 저 옛날 주나라의 서백 창이라는 제후가 “노인을 잘 공경한다”는 평판으로 훗날 중국을 제패할 수 있는 기초를 탄탄하게 쌓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노인 공경은 중국에선 그 사회적 영향력이 엄청나게 컸던 윤리였다. 한나라 사신이 노인 공경 문제와 형사취수 문제를 거론한 것은 그것들이 중국인의 입장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대표적인 흉노의 습속이었기 때문이다.
한나라 사신의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하여 중항열은 한나라, 곧 중국과 흉노의 생활환경의 차이를 근거로 단호하게 대꾸한다. 중국에서도 변방으로 군 복무를 하러 떠나는 젊은이가 있을 경우 집안사람들이 그에게 좋은 옷, 좋은 음식을 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러한 중국과 흉노의 차이는 유목이라는 생활환경으로 인해 흉노는 일상이 전시에 준하게 펼쳐지는 데 있고, 그렇다 보니 일상적으로 젊은이 위주로 사회가 굴러갈 수밖에 없다고 반박한다. 만약 중국인들도 이러한 환경 아래서 생활한다면 흉노와 마찬가지로 젊은이 위주로 사회를 운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반론이 함축되어 있는 셈이다. 실제로 유목민족은 목초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생활은커녕 생존이 어려웠기 때문에 목초지를 둘러싼 다른 종족과의 전투를 일상적으로 겪었다. 중항열은 이러한 삶의 조건을 거론한 것이다. 또한 중항열은 척박한 삶의 조건과 반복되는 이동, 일상적 전투 등으로 인해 종족을 보전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형사취수와 같은 습속이 어쩔 수 없이 형성되었다고 옹호한다. 그 결과 문란한 것은 맞지만 종족을 보존할 수 있었다면서, 겉으로는 친척 간 친밀한 듯 굴지만 의가 나면 서로 죽이는 일조차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중국이 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항변한다.
사마천은 중항열과 한나라 사신 간의 이러한 논쟁을 한나라 사신의 말은 짧게 언급하고 중항열의 말은 길게 서술하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또한 중항열에게 한나라 사신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위상을 부여하여 한나라 사신이 지닌 자기 중심적, 중국 중심적 시각을 통쾌하게 허물어 버렸다. 사마천의 서술 전략 아래 한나라 사신은 중항열의 논박에 속절없이 당하는 형상으로 그려진다. 바로 이러한 면모 때문에 「흉노열전」은 중국 중심주의, 그러니까 중화주의 내지 화이론(華夷論, 중국은 문명지대이고 나머지 지역은 오랑캐들이 사는 야만지대라는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 흉노라는 타자를 객관적이고 실증적으로 다루려고 노력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사마천의 이러한 태도는 제법 긴 분량의 「흉노열전」의 서술을 갈무리하는 대목([나])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나 있다. 사마천은 [나]에서 흉노라는 타자에 대하여 편견에 빠진 채 그들을 자기 이익을 위해 악용하는 태도를 거론한다. 편견에 빠졌다고 함은 흉노를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고 중국의 입장에서 재단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흉노를 이른바 ‘오랑캐’로 취급함으로써, 다시 말해 중국의 예법이 전혀 통하지 않는 야만으로 취급했다는 뜻으로, 그 결과 중국은 흉노에 대하여 타당한 대처법을 수립하는 데 실패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마천은 타자에 대하여 이렇게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다보면 자기에 대한 인식에도 큰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흉노를 낮잡아봄은 결과적으로 중국을 과대평가함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흉노에 대한 대처가 적절하고 지속 가능할 수 없었다. 상대 인식도 잘못되었고 자기 인식도 잘못되었으니 일이 제대로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었음이다. 사마천이 보기에 타자에 대한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인식은 결국 자기 자신, 나아가 우리에 대하여 객관적이고 실증적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가능했던 일이었던 것이다.
한편 중항열은 한나라 출신으로 한나라의 공주가 흉노 군주와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공주를 수행하여 흉노에 갔다가 이러한 한나라의 정책에 불만을 품고 흉노에 귀화한 인물이다. 그렇지만 토의를 할 때에는 중항열의 이러한 개인적 배경은 논외로 할 필요가 있다.
키워드
문명, 야만, 오랑캐, 유목, 중항열, 중화주의, 타자, 형사취수, 화이론, 흉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