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화성에 불시착한 뒤 서너 달이 지나 묘어(猫語)를 할 수 있게 된 ‘나’는 묘국(猫國)과 묘인(猫人)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묘국은 화성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국이었으나 500년 전 외국에서 미혹나무[迷樹]가 들어온 후로 기풍이 점차 쇠퇴했다. 미혹나무 잎[迷葉]은 묘인들의 양식이었는데, 영양가가 있다기보다는 배고픔과 갈증을 잊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 잎을 먹고 나면 생기가 돌지만 손발을 움직이기 싫어져서 모두들 일손을 놓고 빈둥거리기 시작했다. 이에 정부에서 금지령을 내렸지만 미혹나무 잎에 중독된 황제가 미혹나무 잎에 중독된 황후에게 뺨을 세 대나 맞고 당일 오후에 다시 미혹나무 잎을 ‘국식(國食)’으로 선포했다. 그 후 400여 년 동안 묘국의 문명은 전보다 빠르게 발전했지만 묘인들은 점점 더 게으르고 더럽고 뻔뻔해졌다. ‘나’는 묘인처럼 되지 않기 위해 더 이상 미혹나무 잎을 먹지 않기로 결심했지만, 다셰(大蠍)는 갖은 방법을 동원하며 잎을 먹으라 설득한다. 결국 ‘나’는 다셰와 협상을 하여 매일 아침 미혹나무 잎을 한 장 먹는 대신 저녁에는 제대로 된 끼니를 제공받고 매일 아침 강으로 목욕을 가면서 마실 물을 한 동이씩 떠오기로 한다. 이른 아침 강가로 가서 헤엄치며 씻는 작은 호사를 누리기 시작한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 목욕하는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묘인들 때문에 나의 고요한 행복이 깨진다. 그 무리 속에 다셰가 있는 것을 보고 왜 묘인들을 불러 목욕하는 것을 구경하게 했는지 물었지만 대답을 듣지 못한다. 이튿날 구경꾼들 속에서 미혹나무 잎을 나눠주는 다셰를 발견한 ‘나’는 돈벌이에 이용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정확한 사실을 묻기 위해 구경꾼 둘을 잡았는데 본디 외국인을 두려워하는 묘인들은 너무나 겁에 질린 나머지 그 자리에서 죽어버린다.
고전본문
“이봐, 국혼(國魂: 묘국의 화폐단위)은 국혼일 뿐이야. 남의 국혼을 자기 손에 넣는 것은 고상한 행위라고! 너랑 상의한 적은 없지만 말이야.” 그는 빠른 속도로 걷고 있었지만 전혀 흐트러짐 없이 자세하고 완곡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나의 이런 고상한 행위에 대해 너는 절대 반대하지 않았을 거야. 너는 평소대로 목욕을 하고, 나는 이 기회를 빌어 국혼을 좀 벌고, 그들은 덕분에 견문을 넓힐 수 있으니까 두루두루 유익한 일이지. 유익한 일이고 말고!”
“그럼 놀라서 죽은 이들은 누가 책임을 지지?”
“놀라서 죽게 만든 건 너니까 괜찮아! 내가 사람을 때려죽이면……” 다셰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미혹나무 잎만 좀 손해보면 돼. 미혹나무 잎이 전부지. 법이라고 해봐야 돌에 몇 줄 새겨진 글자에 불과해. 미혹나무 잎이 있으면 사람을 때려 죽여도 별일 아니야. 네가 누굴 때려죽인다 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 묘국의 법률은 외국인에 관여할 수 없거든. 미혹나무 잎 한 장조차 낼 필요가 없지. 내가 외국인이 아니라는 게 한스러워. 네가 시골에서 사람을 때려죽이면 그냥 내버려두고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흰꼬리독수리에게 간식을 좀 나눠주는 거지. 도시에서 사람을 때려죽인다면 법정에 가서 보고만 하면 돼. 그럼 법관도 아주 공손하게 너에게 감사를 표할 거야.” 다셰는 내가 너무 부러운 나머지 눈에 눈물까지 고인 것 같았다. 나도 눈물이 나려고 했다. 불쌍한 묘인들 같으니……. 생명은 어디에 있는가? 공리(公理)는 또 어디에 있는가?
“죽은 두 명도 권세가 있는 자들일 텐데, 가족이 와서 난리 피우지 않아?”
“당연히 소란을 피웠지. 미혹나무 잎을 빼앗아간 게 바로 그들인 걸. 빨리 가자! 그자들은 벌써 오래 전에 정탐꾼을 보내 너의 행적을 지켜보고 있었어. 너가 미혹나무 숲에서 멀어지기만 하면 바로 약탈하려는 거지. 자기네 식구가 죽었으니 보복으로 내 미혹나무 잎을 빼앗는 거야. 빨리 가자고!”
“사람하고 미혹나무 잎의 가치가 똑같다는 말이야? 그런 거야?”
“죽은 건 죽은 거고. 살아 있는 자는 어쨌든 미혹나무 잎을 먹어야 하잖아! 빨리 가자니까!”
묘인에게 물들었기 때문인지, 다셰의 이 두 마디가 내 마음을 흔들었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문득 그에게 국혼을 꼭 받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내가 다셰를 떠난다면—우리가 친한 친구는 아니니까—나는 뭘로 먹고 살까? 그가 묘인들을 불러 내가 목욕하는 모습을 구경하게 하고 돈을 받았으니 나도 이윤을 나눠 가질 권리가 있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나도 이런 생각까지 하지는 못 했겠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도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은 건 죽은 거고. 살아 있는 자는 어쨌든 미혹나무 잎을 먹어야 하잖아! 일리 있는 말이다!
미혹나무 숲에 거의 다다라서 나는 멈춰 섰다. “다셰, 지난 이틀 동안 모두 합쳐서 얼마를 벌었지?”
다셰는 어리둥절해져서 동그란 눈을 한바퀴 돌렸다. “오십 국혼을 벌었지. 위조 국혼 두 개도. 빨리 가자!”
나는 뒤로 돌아 걷기 시작했다. 그가 쫓아오며 말했다. “백 국혼이야, 백 국혼!” 나는 계속 걸었다. 그가 부르는 액수는 점점 늘어나더니 천 국혼까지 올라갔다. 이틀 동안 구경하러 온 묘인이 수백 명이 넘었기 때문에 천 국혼만 벌지 않았으리란 걸 알았지만, 누가 또 이렇게 큰 공을 들여 그런 수작을 부리겠는가? “좋아, 다셰, 나에게 오백을 나눠줘. 아니면 여기서 헤어지는 거야!”
다셰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 나와 여기서 1분 더 실랑이할수록 미혹나무 잎을 그만큼 더 많이 잃게 된다는 것을. 그는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좋아!”
“앞으로 또 다시 아무런 상의 없이 나를 이용해서 돈벌이하는 일이 생긴다면 네 미혹나무 숲에 불을 질러 버릴 거야.” 나는 성냥갑을 꺼내어 툭툭 두드렸다.
다셰도 동의했다.
미혹나무 숲에 도착해보니 아무도 없었다. 아마 내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정탐꾼에게 보고를 받고 모두 도망쳐버린 듯했다. 미혹나무 숲 바깥쪽에 있던 이 삼십 그루는 벌써 거의 다 털린 후였다. 다셰는 소리를 지르며 나무 밑에 쓰러졌다.
-라오서의 『고양이 나라 이야기(猫城記)』(1933) 제8장
토론하기
(1) “남의 국혼을 자기 손에 넣는 것은 고상한 행위”라며 주인공이 목욕하는 모습을 구경시키고 돈을 번 다셰의 행동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2) 다셰는 자신이 묘인을 죽이면 “미혹나무 잎만 좀 손해보면 돼. ……법이라고 해봐야 돌에 몇 줄 새겨진 글자에 불과해”라고 말한다. 묘국의 법률에 의하면 묘인이 묘인을 죽여도 미혹나무 잎으로 다 해결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인명을 경시하고 돈이면 다 해결된다는 풍조를 조장하는 판례 또는 사례가 있다면 다같이 토론해보자.
(3) 묘국의 사정은 1930년대 당시 중국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고 ‘미혹나무 잎’은 ‘아편’의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중국에 아편이 유입되게 된 과정과 두 차례 발생한 아편전쟁에 대해 알아보자.
해설읽기
다셰(大蠍)는 주인공이 묘국에서 처음 알게 된 묘인이다. 그는 묘국의 중요 인사로, 커다란 미혹나무 숲을 가진 대지주이자 정치인이며, 시인인 동시에 장교였다. 마약과도 같은 미혹나무의 잎은 묘인들의 주식(主食)이자 묘국에서 가장 귀한 물건이다. 정치인들은 미혹나무 잎이 있어야 황제를 알현할 수 있었고, 군인들은 미혹나무 잎으로 급료를 받았으며, 시인들은 미혹나무 잎을 먹어야 시적 영감이 솟아났다.
미혹나무는 먼 옛날 외국에서 들어왔는데 오래지 않아 대다수의 묘인들이 이것에 중독되어 생업을 내팽개쳤고 갈수록 게을러지며 인격을 상실했다. 한때 묘인 대부분이 직접 미혹나무를 재배한 적도 있었으나 점점 나무를 심는 것조차 귀찮아하다가, 어느 해인가 대홍수가 나면서 미혹나무 숲이 많이 유실되었다. 그러자 곳곳에서 약탈이 벌어졌고 급기야 정부가 “미혹나무 잎을 빼앗아 먹는 자는 무죄”임을 선포하면서 무법천지가 되었다.
현재 미혹나무 숲을 가진 자는 권세가 있는 소수였고, 다셰와 같은 지주들에게 미혹나무 숲을 지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고용된 묘인 병사들은 틈만 나면 미혹나무 잎을 훔쳐먹을 뿐 명령에 복종할 줄 몰랐다. 자신의 병사들로부터 약탈을 당하는 일도 종종 발생했기 때문에 지주들은 미혹나무 숲을 지켜줄 외국인이 필요했다. 묘인들은 외국인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화성에 불시착한 ‘나’는 다셰의 미혹나무 숲을 지켜주는 조건으로 숙식을 제공받게 되었다. 다셰는 도망칠까봐 ‘나’를 감시하며 미혹나무 잎을 먹도록 종용했는데, 서너 달 동안 묘인들의 인성에 질려버린 ‘나’는 묘인화되지 않기 위해 미혹나무 잎을 먹지 않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미혹나무 잎을 먹으면 배고픔도 갈증도 사라지고 씻지 못해서 생기는 찝찝함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가성비가 좋았다. 묘국에서 다른 음식은 너무 비쌌다. 사체를 쪼아 먹고 사는 흰꼬리독수리를 제외하면(고기에 독이 있다) 묘국에서 들짐승과 가축은 씨가 말랐고 아무도 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에 음식은 모두 수입산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먹고 마시고 씻는 것은 인간답게 사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아침 해가 뜨기 전 고즈넉한 강가에서 헤엄치며 목욕하는 ‘나’의 평온한 일상은 갑자기 몰려든 구경꾼들로 인해 깨졌다. 묘인들은 본래 옷을 입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알몸을 보였다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의 구경거리가 된다는 것은, 더구나 누군가는 이를 돈벌이 기회로 삼는다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다셰가 무슨 꿍꿍이로 구경꾼을 끌어들인 것인지 속 시원히 대답해주지 않자 ‘나’는 구경꾼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하고 무작위로 잡아 다그치는 과정에서 묘인 몇 명이 다치고 급기야 둘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나’는 후회하는 마음과 함께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고 어떤 법적 책임도 감수하리라 각오하면서 다셰를 기다린다. 얼마 후에 다셰는 심하게 구타당한 모습으로 ‘나’를 찾아와 죽은 자들의 가족이 자신의 미혹나무 숲을 빼앗으러 왔다며 도움을 요청한다. ‘나’는 가족이 죽었는데도 미혹나무 잎(경제적 보상)에만 관심을 갖는 것을 보면서 “사람하고 미혹나무 잎의 가치가 똑같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알고 보니 구경꾼들은 수도에서 초청해온 상류층 인사들이었는데, 목욕을 구경하는 것은 매우 희한한 일이었고(아마도 묘인은 물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강에서 헤엄치는 외국인이 그저 신기해보였을 것이다) 다셰가 가장 두툼하고 맛있는 미혹나무 잎을 제공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관람료로 십 국혼씩을 내고 모여들었던 것이다. 죽은 두 명도 권세가 있는 자들이었는데, 묘국의 법은 외국인에게 너무나도 관대했으며, 묘인이 묘인을 죽였더라도 미혹나무 잎만 있으면 살인죄도 별 게 아니었다.
키워드
고양이별, 마약, 묘국, 미혹나무, 법률, 아편, 외국인 인명 경시, 중독
전후맥락
화성에 불시착한 뒤 서너 달이 지나 묘어(猫語)를 할 수 있게 된 ‘나’는 묘국(猫國)과 묘인(猫人)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묘국은 화성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국이었으나 500년 전 외국에서 미혹나무[迷樹]가 들어온 후로 기풍이 점차 쇠퇴했다. 미혹나무 잎[迷葉]은 묘인들의 양식이었는데, 영양가가 있다기보다는 배고픔과 갈증을 잊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 잎을 먹고 나면 생기가 돌지만 손발을 움직이기 싫어져서 모두들 일손을 놓고 빈둥거리기 시작했다. 이에 정부에서 금지령을 내렸지만 미혹나무 잎에 중독된 황제가 미혹나무 잎에 중독된 황후에게 뺨을 세 대나 맞고 당일 오후에 다시 미혹나무 잎을 ‘국식(國食)’으로 선포했다. 그 후 400여 년 동안 묘국의 문명은 전보다 빠르게 발전했지만 묘인들은 점점 더 게으르고 더럽고 뻔뻔해졌다. ‘나’는 묘인처럼 되지 않기 위해 더 이상 미혹나무 잎을 먹지 않기로 결심했지만, 다셰(大蠍)는 갖은 방법을 동원하며 잎을 먹으라 설득한다. 결국 ‘나’는 다셰와 협상을 하여 매일 아침 미혹나무 잎을 한 장 먹는 대신 저녁에는 제대로 된 끼니를 제공받고 매일 아침 강으로 목욕을 가면서 마실 물을 한 동이씩 떠오기로 한다. 이른 아침 강가로 가서 헤엄치며 씻는 작은 호사를 누리기 시작한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 목욕하는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묘인들 때문에 나의 고요한 행복이 깨진다. 그 무리 속에 다셰가 있는 것을 보고 왜 묘인들을 불러 목욕하는 것을 구경하게 했는지 물었지만 대답을 듣지 못한다. 이튿날 구경꾼들 속에서 미혹나무 잎을 나눠주는 다셰를 발견한 ‘나’는 돈벌이에 이용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정확한 사실을 묻기 위해 구경꾼 둘을 잡았는데 본디 외국인을 두려워하는 묘인들은 너무나 겁에 질린 나머지 그 자리에서 죽어버린다.
고전본문
“이봐, 국혼(國魂: 묘국의 화폐단위)은 국혼일 뿐이야. 남의 국혼을 자기 손에 넣는 것은 고상한 행위라고! 너랑 상의한 적은 없지만 말이야.” 그는 빠른 속도로 걷고 있었지만 전혀 흐트러짐 없이 자세하고 완곡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나의 이런 고상한 행위에 대해 너는 절대 반대하지 않았을 거야. 너는 평소대로 목욕을 하고, 나는 이 기회를 빌어 국혼을 좀 벌고, 그들은 덕분에 견문을 넓힐 수 있으니까 두루두루 유익한 일이지. 유익한 일이고 말고!”
“그럼 놀라서 죽은 이들은 누가 책임을 지지?”
“놀라서 죽게 만든 건 너니까 괜찮아! 내가 사람을 때려죽이면……” 다셰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미혹나무 잎만 좀 손해보면 돼. 미혹나무 잎이 전부지. 법이라고 해봐야 돌에 몇 줄 새겨진 글자에 불과해. 미혹나무 잎이 있으면 사람을 때려 죽여도 별일 아니야. 네가 누굴 때려죽인다 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 묘국의 법률은 외국인에 관여할 수 없거든. 미혹나무 잎 한 장조차 낼 필요가 없지. 내가 외국인이 아니라는 게 한스러워. 네가 시골에서 사람을 때려죽이면 그냥 내버려두고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흰꼬리독수리에게 간식을 좀 나눠주는 거지. 도시에서 사람을 때려죽인다면 법정에 가서 보고만 하면 돼. 그럼 법관도 아주 공손하게 너에게 감사를 표할 거야.” 다셰는 내가 너무 부러운 나머지 눈에 눈물까지 고인 것 같았다. 나도 눈물이 나려고 했다. 불쌍한 묘인들 같으니……. 생명은 어디에 있는가? 공리(公理)는 또 어디에 있는가?
“죽은 두 명도 권세가 있는 자들일 텐데, 가족이 와서 난리 피우지 않아?”
“당연히 소란을 피웠지. 미혹나무 잎을 빼앗아간 게 바로 그들인 걸. 빨리 가자! 그자들은 벌써 오래 전에 정탐꾼을 보내 너의 행적을 지켜보고 있었어. 너가 미혹나무 숲에서 멀어지기만 하면 바로 약탈하려는 거지. 자기네 식구가 죽었으니 보복으로 내 미혹나무 잎을 빼앗는 거야. 빨리 가자고!”
“사람하고 미혹나무 잎의 가치가 똑같다는 말이야? 그런 거야?”
“죽은 건 죽은 거고. 살아 있는 자는 어쨌든 미혹나무 잎을 먹어야 하잖아! 빨리 가자니까!”
묘인에게 물들었기 때문인지, 다셰의 이 두 마디가 내 마음을 흔들었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문득 그에게 국혼을 꼭 받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내가 다셰를 떠난다면—우리가 친한 친구는 아니니까—나는 뭘로 먹고 살까? 그가 묘인들을 불러 내가 목욕하는 모습을 구경하게 하고 돈을 받았으니 나도 이윤을 나눠 가질 권리가 있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나도 이런 생각까지 하지는 못 했겠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도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은 건 죽은 거고. 살아 있는 자는 어쨌든 미혹나무 잎을 먹어야 하잖아! 일리 있는 말이다!
미혹나무 숲에 거의 다다라서 나는 멈춰 섰다. “다셰, 지난 이틀 동안 모두 합쳐서 얼마를 벌었지?”
다셰는 어리둥절해져서 동그란 눈을 한바퀴 돌렸다. “오십 국혼을 벌었지. 위조 국혼 두 개도. 빨리 가자!”
나는 뒤로 돌아 걷기 시작했다. 그가 쫓아오며 말했다. “백 국혼이야, 백 국혼!” 나는 계속 걸었다. 그가 부르는 액수는 점점 늘어나더니 천 국혼까지 올라갔다. 이틀 동안 구경하러 온 묘인이 수백 명이 넘었기 때문에 천 국혼만 벌지 않았으리란 걸 알았지만, 누가 또 이렇게 큰 공을 들여 그런 수작을 부리겠는가? “좋아, 다셰, 나에게 오백을 나눠줘. 아니면 여기서 헤어지는 거야!”
다셰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 나와 여기서 1분 더 실랑이할수록 미혹나무 잎을 그만큼 더 많이 잃게 된다는 것을. 그는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좋아!”
“앞으로 또 다시 아무런 상의 없이 나를 이용해서 돈벌이하는 일이 생긴다면 네 미혹나무 숲에 불을 질러 버릴 거야.” 나는 성냥갑을 꺼내어 툭툭 두드렸다.
다셰도 동의했다.
미혹나무 숲에 도착해보니 아무도 없었다. 아마 내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정탐꾼에게 보고를 받고 모두 도망쳐버린 듯했다. 미혹나무 숲 바깥쪽에 있던 이 삼십 그루는 벌써 거의 다 털린 후였다. 다셰는 소리를 지르며 나무 밑에 쓰러졌다.
-라오서의 『고양이 나라 이야기(猫城記)』(1933) 제8장
토론하기
(1) “남의 국혼을 자기 손에 넣는 것은 고상한 행위”라며 주인공이 목욕하는 모습을 구경시키고 돈을 번 다셰의 행동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2) 다셰는 자신이 묘인을 죽이면 “미혹나무 잎만 좀 손해보면 돼. ……법이라고 해봐야 돌에 몇 줄 새겨진 글자에 불과해”라고 말한다. 묘국의 법률에 의하면 묘인이 묘인을 죽여도 미혹나무 잎으로 다 해결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인명을 경시하고 돈이면 다 해결된다는 풍조를 조장하는 판례 또는 사례가 있다면 다같이 토론해보자.
(3) 묘국의 사정은 1930년대 당시 중국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고 ‘미혹나무 잎’은 ‘아편’의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중국에 아편이 유입되게 된 과정과 두 차례 발생한 아편전쟁에 대해 알아보자.
해설읽기
다셰(大蠍)는 주인공이 묘국에서 처음 알게 된 묘인이다. 그는 묘국의 중요 인사로, 커다란 미혹나무 숲을 가진 대지주이자 정치인이며, 시인인 동시에 장교였다. 마약과도 같은 미혹나무의 잎은 묘인들의 주식(主食)이자 묘국에서 가장 귀한 물건이다. 정치인들은 미혹나무 잎이 있어야 황제를 알현할 수 있었고, 군인들은 미혹나무 잎으로 급료를 받았으며, 시인들은 미혹나무 잎을 먹어야 시적 영감이 솟아났다.
미혹나무는 먼 옛날 외국에서 들어왔는데 오래지 않아 대다수의 묘인들이 이것에 중독되어 생업을 내팽개쳤고 갈수록 게을러지며 인격을 상실했다. 한때 묘인 대부분이 직접 미혹나무를 재배한 적도 있었으나 점점 나무를 심는 것조차 귀찮아하다가, 어느 해인가 대홍수가 나면서 미혹나무 숲이 많이 유실되었다. 그러자 곳곳에서 약탈이 벌어졌고 급기야 정부가 “미혹나무 잎을 빼앗아 먹는 자는 무죄”임을 선포하면서 무법천지가 되었다.
현재 미혹나무 숲을 가진 자는 권세가 있는 소수였고, 다셰와 같은 지주들에게 미혹나무 숲을 지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고용된 묘인 병사들은 틈만 나면 미혹나무 잎을 훔쳐먹을 뿐 명령에 복종할 줄 몰랐다. 자신의 병사들로부터 약탈을 당하는 일도 종종 발생했기 때문에 지주들은 미혹나무 숲을 지켜줄 외국인이 필요했다. 묘인들은 외국인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화성에 불시착한 ‘나’는 다셰의 미혹나무 숲을 지켜주는 조건으로 숙식을 제공받게 되었다. 다셰는 도망칠까봐 ‘나’를 감시하며 미혹나무 잎을 먹도록 종용했는데, 서너 달 동안 묘인들의 인성에 질려버린 ‘나’는 묘인화되지 않기 위해 미혹나무 잎을 먹지 않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미혹나무 잎을 먹으면 배고픔도 갈증도 사라지고 씻지 못해서 생기는 찝찝함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가성비가 좋았다. 묘국에서 다른 음식은 너무 비쌌다. 사체를 쪼아 먹고 사는 흰꼬리독수리를 제외하면(고기에 독이 있다) 묘국에서 들짐승과 가축은 씨가 말랐고 아무도 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에 음식은 모두 수입산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먹고 마시고 씻는 것은 인간답게 사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아침 해가 뜨기 전 고즈넉한 강가에서 헤엄치며 목욕하는 ‘나’의 평온한 일상은 갑자기 몰려든 구경꾼들로 인해 깨졌다. 묘인들은 본래 옷을 입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알몸을 보였다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의 구경거리가 된다는 것은, 더구나 누군가는 이를 돈벌이 기회로 삼는다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다셰가 무슨 꿍꿍이로 구경꾼을 끌어들인 것인지 속 시원히 대답해주지 않자 ‘나’는 구경꾼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하고 무작위로 잡아 다그치는 과정에서 묘인 몇 명이 다치고 급기야 둘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나’는 후회하는 마음과 함께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고 어떤 법적 책임도 감수하리라 각오하면서 다셰를 기다린다. 얼마 후에 다셰는 심하게 구타당한 모습으로 ‘나’를 찾아와 죽은 자들의 가족이 자신의 미혹나무 숲을 빼앗으러 왔다며 도움을 요청한다. ‘나’는 가족이 죽었는데도 미혹나무 잎(경제적 보상)에만 관심을 갖는 것을 보면서 “사람하고 미혹나무 잎의 가치가 똑같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알고 보니 구경꾼들은 수도에서 초청해온 상류층 인사들이었는데, 목욕을 구경하는 것은 매우 희한한 일이었고(아마도 묘인은 물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강에서 헤엄치는 외국인이 그저 신기해보였을 것이다) 다셰가 가장 두툼하고 맛있는 미혹나무 잎을 제공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관람료로 십 국혼씩을 내고 모여들었던 것이다. 죽은 두 명도 권세가 있는 자들이었는데, 묘국의 법은 외국인에게 너무나도 관대했으며, 묘인이 묘인을 죽였더라도 미혹나무 잎만 있으면 살인죄도 별 게 아니었다.
키워드
고양이별, 마약, 묘국, 미혹나무, 법률, 아편, 외국인 인명 경시, 중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