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일제강점기에 지금의 북한 지역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며 “모범적인 황국 신민”으로서의 삶을 살던 외과의사 이인국은 해방이 된 이후 자신의 친일 행각이 발각될까 봐 노심초사한다. 소련군이 들어오고 얼마 뒤 치안대에 끌려가 감옥에 갇히고 문초를 당하면서도 살아남기 위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며 러시아어(노어)를 공부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감방에 전염병이 돌자 임시로 응급 치료실에서 전염병 환자들을 치료하게 된다. 적극적으로 담당 환자들을 돌보며 풀려날 기회를 엿보던 이인국은 소련군 장교인 스텐코프의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마침내 자유를 얻는다.
고전본문
“동무는 당분간 환자의 응급 치료실에서 일하시오.”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기적일까, 그는 통역의 말을 의심했다. 소련 장교와 통역관을 번갈아 쳐다보는 그의
눈동자는 생기를 띠어갔다.
“알겠소 엥……?”
“네.”
다짐에 따라 이인국 박사는 기쁨을 억지로 감추며 평범한 어조로 대답했다.
‘글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니까.’
그는 아무 표정도 나타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죽어 넘어진 송장이 개 치우듯 꾸려져 나가는 것을 보고 이인국 박사는 꼭 자기 일같이만 느껴졌다.
“의사, 이것은 나의 천직이다.”
그는 몇 번이고 감격에 차 중얼거렸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자기 담당의 환자를 치료했다. 이러한 일은 그의 실
력이 혹부리 고문관의 유다른 관심을 끌게 한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사상범을 옥사시키는 경우는 책임자에게 큰 문책이 온다는 것은 훨씬 후에야 그가 안 일이다.
소련 군의관에게 기술이 인정된 이인국 박사는 계속 병원에 근무하게 되었다. 그러나 죄상 처벌의 결말에 대하
여는 알 길이 없었다.
그는 이 절호의 기회를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싶었다.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을 것만 같았다.
어떻게 하여 이 보이지 않는 구속에서까지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을까.
그는 환자의 치료를 하면서도 늘 스텐코프의 왼쪽 뺨에 붙은 오리알만한 혹을 생각하고 있었다.
불구라면 불구로 볼 수 있는 그 혹을 가지고 고급 장교에까지 승진했다는 것은, 소위 말하는 당성(黨性)이 강하
거나 그렇지 않으면 전공(戰功)이 특별했음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 하나만 물고 늘어지면 무엇인가 완전히 살아날 틈바귀가 생길 것만 같았다.
이인국 박사의 뜨내기 노어(露語: 러시아어)도 가끔 순시하는 스텐코프와 인사말을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
진전되었다.
이 안에서의 모든 독서는 금지되었지만 노어 교본과 당사(黨史: 당의 설립과 그것이 변화한 과정에 대한 기록.
여기서는 ‘공산당의 역사’를 지칭)만은 허용되었다.
이인국 박사는 마치 생명의 열쇠나 되는 듯이 초보 노어 책을 거의 암송하다시피 했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장교들의 주연이 베풀어지는 기회가 거듭되었다.
얼근히 주기를 띤 스텐코프가 순시를 돌았다.
이인국 박사는 오늘의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수일 전 소군(蘇軍: 소련군) 장교 한 사람이 급
성 맹장염이 터져 복막염으로 번졌다.
그 환자의 실을 뽑는 옆에 온 스텐코프에게 이인국 박사는 말 절반 손짓 절반으로 혹을 수술하겠다는 의사를 표
명했다.
스텐코프는 ‘하라쇼(좋소, 좋습니다)’를 연발했다.
그 후 몇 번 통역을 사이에 두고 수술 계획에 대한 자세한 의사를 진술할 기회가 생겼다.
이인국 박사는 일본인 시장의 혹을 수술하던 일을 회상하면서 자신 있는 설복을 했다.
‘동경 경응대학(게이오대학) 병원에서도 못 하겠다는 것을 내가 거뜬히 해치우지 않았던가.’
그는 혼자 머릿속에서 자문자답하면서 이번 일에 도박 같은 심정으로 생명을 걸었다.
소련 군의관을 입회시키고 몇 차례의 예비 진단이 치러졌다.
수술일은 왔다.
이인국 박사는 손에 익은 자기 병원의 의료 기재를 전부 운반하여 오게 했다.
군의관 세 사람이 보조하기로 했지만 집도는 이인국 박사 자신이 했다. 야전병원(싸움터에서 생기는 부상병을
일시적으로 수용하고 치료하기 위하여 전투 지역에서 가까운 후방에 설치하는 병원)의 젊은 군의관들이란 그에
게 있어선 한갓 풋내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수술을 진행하는 동안 그들 군의관들을 자기 집 조수 부리듯 했다. 집도 이후의 수술대는 완전히 자기 전
단(專斷: 독단. 혼자 마음대로 결정하고 단행함)하의 왕국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아까 수술 직전에 사인한, 실패되는 경우에는 총살에 처한다는 서약서가 통일된 정신을 순간순간 흐려
놓곤 한다.
수술대에 누운 스텐코프의 침착하면서도 긴장에 찼던 얼굴, 그것도 전신 마취가 끝난 후 삼 분이 못 갔다.
간호부는 가제(거즈)로 이인국 박사의 이마에 내맺힌 땀방울을 연방 찍어내고 있다.
기구가 부딪는 금속성과 서로의 숨소리만이 고촉(밝기의 도수가 높은 촉광)의 반사등이 내리비치는 방 안의 질
식할 것 같은 침묵을 헤살(남의 일이 잘 안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짓고 있다.
수술은 예상 이상의 단시간으로 끝났다.
위생복을 벗은 이인국 박사의 전신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완치되어 퇴원하는 날 스텐코프는 이인국 박사의 손을 부서져라 쥐면서 외쳤다.
“꺼삐딴 리,* 스바씨보(고맙소).”
이인국 박사는 입을 헤벌리고 웃기만 했다. 마음의 감옥에서 해방된 것만 같았다.
* 꺼삐딴: 영어 captain에 해당하는 러시아어 капита́н에서 따온 말로, 광복 직후 소련군이 북한에 진주하면서 ‘캡틴, 대장, 최고’라는 뜻으로 많이 쓰였다.
토론하기
(1) 치안대에 끌려간 이인국이 자신의 친일 행각에 대해 처벌을 받지 않고 풀려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2) 감방 안에서 전염병이 돌아 응급 치료실에서 일하게 된 기회를 붙잡아 소련군 장교 스텐코프의 혹 제거 수술까지 성공시켜 결국 자유의 몸이 된 이인국의 행동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말해보자.
(3) 기회주의자의 전형으로 일컬어지는 이인국의 치열했던 삶의 모습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해설읽기
제국대학을 졸업한 외과의사였던 이인국은 집안에서 가족끼리 대화할 때도 일본어를 쓸 정도로 친일을 하며 그것을 영예롭게 생각했다. 그는 비싼 진료비를 감당할 수 있는 간부급 일본인들을 주로 상대했고 돈 없는 환자를 가려서 받았다. 해방되기 6개월 전, 형무소에서 병보석으로 풀려난 중환자가 그의 병원으로 업혀왔는데, 사상범을 입원시켰다가 일본인에게 밉보일 것이 두려웠던 이인국은 응급 치료만을 해주고 입원실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돌려보냈다.
해방이 되어 그의 “가장 믿었던 성벽”이었던 일본인들이 떠나고 소련군이 진주한 후 이인국은 치안대로 끌려가 문초를 당한다. 치안대에는 이인국에게 입원을 거절당했던 사상범도 있었다. 전부터 벼르고 있었던 그는 이인국에게 “쪽발이 끄나풀”, “왜놈의 밑바시(‘음식찌꺼기’를 뜻하는 함경도 사투리)”, “민족과 조국을 팔아먹은 이 개돼지 같은 놈”이라고 욕하며 마구잡이로 구타했다. 감옥에 갇힌 이인국의 죄목은 “친일파, 민족 반역자, 반일 투사 치료 거부, 일제의 간첩 행위…” 등등이었고, 이대로라면 무기징역이나 사형감에 해당했다. 하지만 이인국은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며 출감한 학생이 놓고 간 러시아어 회화책을 열심히 공부했다.
이인국에게 지난 일에 대한 뉘우침이나 가책 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지난날의 과오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식민지 백성이 별수 있었어. 날구뛴들 소용이 있었느냐 말이야. 어느 놈은 일본 놈한테 아첨을 안 했어. 주는 떡을 안 먹은 놈이 바보지. 흥”하며 자기 변명과 합리화에 급급했다. 그런 그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어느 날 밤, 같은 방에 수감된 사람이 피똥을 쌌는데 적리(赤痢: 급성 전염병인 이질의 하나)임을 한 눈에 알아본 그가 교도관에게 알렸고, 이튿날부터 다른 감방에서도 같은 증세의 환자들이 잇달아 발생하자 응급 치료실로 차출된 것이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담당 환자들을 치료하는 그의 모습은 소련 고문관의 눈에 들기 충분했다. “의사, 이것은 나의 천직이다”라는 말은 의사라는 직업 덕분에 죽음의 위기를 면했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그에게 의술은 성공과 출세,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 경제력에 따라 환자를 가려 받던 그에게 생명을 살리는 의사로서의 사명감 따위가 존재할 리 만무하다. 그는 실력을 인정받아 병원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죄에 대한 처벌까지 면제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되기 위해 “도박 같은 심정으로 생명을 걸”고 ‘혹부리 고문관’ 스텐코프의 왼쪽 뺨에 붙은 오리알만 한 혹을 수술하겠다고 자청한다. 혹 제거 수술은 결코 쉬운 수술이 아니었으며 이인국은 실패할 경우 총살에 처한다는 서약서를 쓰고 수술대에 올랐다. 과거 일본인 시장의 혹을 성공적으로 수술한 경험이 있었던 이인국은 스텐코프의 수술을 성공시키고, 완치되어 퇴원하는 날 그에게 “꺼삐딴 리, 스바씨보(고맙소).”라는 진심 어린 인사를 듣는다. 훗날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는 새로운 동아줄이 생긴 순간이었다.
이인국과 같은 기회주의자가 변신을 거듭하며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던 데에는 일본-소련-미국 등 외세의 개입과 분단이라는 민족사적 비극이 있다. 해방 후 우리 민족이 일제에 부역한 반민족행위자와 친일 식민 잔재를 주체적으로 청산할 수 있었다면 이인국과 같은 사람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친일파와 기회주의자가 이인국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친일-친소-친미 노선으로 갈아탈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눈치와 함께 외과의사로서 특출난 실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인국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운이 따랐던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인민재판의 첫 타자에 걸리지 않았던 것이나(그랬다면 즉결 처형을 당했을 것이다), 갑자기 감방에 전염병이 돈 것은 그에게 행운이었다. 하지만 그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으며,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것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능력과 배짱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하나, 의사로서의 능력, 어학적 재능과 노력, 정세를 읽는 판단력 등은 칭찬할 수 있지만, 이인국은 민족의식이나 애국심, 양심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이 오로지 자기 일신의 영달과 출세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 시대, 소련군 점령하의 감옥 생활, 6‧25 사변, 삼팔선, 미군 부대, 그동안 몇 차례의 아슬아슬한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격동기 한국사를 나름 치열하게 ‘살아낸’ 이인국의 삶에 박수를 보내기는 어렵다.
키워드
기회주의자, 생존전략, 식민지, 융통성, 일제강점기, 임기응변, 처세술, 친일
전후맥락
일제강점기에 지금의 북한 지역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며 “모범적인 황국 신민”으로서의 삶을 살던 외과의사 이인국은 해방이 된 이후 자신의 친일 행각이 발각될까 봐 노심초사한다. 소련군이 들어오고 얼마 뒤 치안대에 끌려가 감옥에 갇히고 문초를 당하면서도 살아남기 위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며 러시아어(노어)를 공부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감방에 전염병이 돌자 임시로 응급 치료실에서 전염병 환자들을 치료하게 된다. 적극적으로 담당 환자들을 돌보며 풀려날 기회를 엿보던 이인국은 소련군 장교인 스텐코프의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마침내 자유를 얻는다.
고전본문
“동무는 당분간 환자의 응급 치료실에서 일하시오.”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기적일까, 그는 통역의 말을 의심했다. 소련 장교와 통역관을 번갈아 쳐다보는 그의
눈동자는 생기를 띠어갔다.
“알겠소 엥……?”
“네.”
다짐에 따라 이인국 박사는 기쁨을 억지로 감추며 평범한 어조로 대답했다.
‘글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니까.’
그는 아무 표정도 나타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죽어 넘어진 송장이 개 치우듯 꾸려져 나가는 것을 보고 이인국 박사는 꼭 자기 일같이만 느껴졌다.
“의사, 이것은 나의 천직이다.”
그는 몇 번이고 감격에 차 중얼거렸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자기 담당의 환자를 치료했다. 이러한 일은 그의 실
력이 혹부리 고문관의 유다른 관심을 끌게 한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사상범을 옥사시키는 경우는 책임자에게 큰 문책이 온다는 것은 훨씬 후에야 그가 안 일이다.
소련 군의관에게 기술이 인정된 이인국 박사는 계속 병원에 근무하게 되었다. 그러나 죄상 처벌의 결말에 대하
여는 알 길이 없었다.
그는 이 절호의 기회를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싶었다.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을 것만 같았다.
어떻게 하여 이 보이지 않는 구속에서까지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을까.
그는 환자의 치료를 하면서도 늘 스텐코프의 왼쪽 뺨에 붙은 오리알만한 혹을 생각하고 있었다.
불구라면 불구로 볼 수 있는 그 혹을 가지고 고급 장교에까지 승진했다는 것은, 소위 말하는 당성(黨性)이 강하
거나 그렇지 않으면 전공(戰功)이 특별했음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 하나만 물고 늘어지면 무엇인가 완전히 살아날 틈바귀가 생길 것만 같았다.
이인국 박사의 뜨내기 노어(露語: 러시아어)도 가끔 순시하는 스텐코프와 인사말을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
진전되었다.
이 안에서의 모든 독서는 금지되었지만 노어 교본과 당사(黨史: 당의 설립과 그것이 변화한 과정에 대한 기록.
여기서는 ‘공산당의 역사’를 지칭)만은 허용되었다.
이인국 박사는 마치 생명의 열쇠나 되는 듯이 초보 노어 책을 거의 암송하다시피 했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장교들의 주연이 베풀어지는 기회가 거듭되었다.
얼근히 주기를 띤 스텐코프가 순시를 돌았다.
이인국 박사는 오늘의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수일 전 소군(蘇軍: 소련군) 장교 한 사람이 급
성 맹장염이 터져 복막염으로 번졌다.
그 환자의 실을 뽑는 옆에 온 스텐코프에게 이인국 박사는 말 절반 손짓 절반으로 혹을 수술하겠다는 의사를 표
명했다.
스텐코프는 ‘하라쇼(좋소, 좋습니다)’를 연발했다.
그 후 몇 번 통역을 사이에 두고 수술 계획에 대한 자세한 의사를 진술할 기회가 생겼다.
이인국 박사는 일본인 시장의 혹을 수술하던 일을 회상하면서 자신 있는 설복을 했다.
‘동경 경응대학(게이오대학) 병원에서도 못 하겠다는 것을 내가 거뜬히 해치우지 않았던가.’
그는 혼자 머릿속에서 자문자답하면서 이번 일에 도박 같은 심정으로 생명을 걸었다.
소련 군의관을 입회시키고 몇 차례의 예비 진단이 치러졌다.
수술일은 왔다.
이인국 박사는 손에 익은 자기 병원의 의료 기재를 전부 운반하여 오게 했다.
군의관 세 사람이 보조하기로 했지만 집도는 이인국 박사 자신이 했다. 야전병원(싸움터에서 생기는 부상병을
일시적으로 수용하고 치료하기 위하여 전투 지역에서 가까운 후방에 설치하는 병원)의 젊은 군의관들이란 그에
게 있어선 한갓 풋내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수술을 진행하는 동안 그들 군의관들을 자기 집 조수 부리듯 했다. 집도 이후의 수술대는 완전히 자기 전
단(專斷: 독단. 혼자 마음대로 결정하고 단행함)하의 왕국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아까 수술 직전에 사인한, 실패되는 경우에는 총살에 처한다는 서약서가 통일된 정신을 순간순간 흐려
놓곤 한다.
수술대에 누운 스텐코프의 침착하면서도 긴장에 찼던 얼굴, 그것도 전신 마취가 끝난 후 삼 분이 못 갔다.
간호부는 가제(거즈)로 이인국 박사의 이마에 내맺힌 땀방울을 연방 찍어내고 있다.
기구가 부딪는 금속성과 서로의 숨소리만이 고촉(밝기의 도수가 높은 촉광)의 반사등이 내리비치는 방 안의 질
식할 것 같은 침묵을 헤살(남의 일이 잘 안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짓고 있다.
수술은 예상 이상의 단시간으로 끝났다.
위생복을 벗은 이인국 박사의 전신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완치되어 퇴원하는 날 스텐코프는 이인국 박사의 손을 부서져라 쥐면서 외쳤다.
“꺼삐딴 리,* 스바씨보(고맙소).”
이인국 박사는 입을 헤벌리고 웃기만 했다. 마음의 감옥에서 해방된 것만 같았다.
* 꺼삐딴: 영어 captain에 해당하는 러시아어 капита́н에서 따온 말로, 광복 직후 소련군이 북한에 진주하면서 ‘캡틴, 대장, 최고’라는 뜻으로 많이 쓰였다.
토론하기
(1) 치안대에 끌려간 이인국이 자신의 친일 행각에 대해 처벌을 받지 않고 풀려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2) 감방 안에서 전염병이 돌아 응급 치료실에서 일하게 된 기회를 붙잡아 소련군 장교 스텐코프의 혹 제거 수술까지 성공시켜 결국 자유의 몸이 된 이인국의 행동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말해보자.
(3) 기회주의자의 전형으로 일컬어지는 이인국의 치열했던 삶의 모습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해설읽기
제국대학을 졸업한 외과의사였던 이인국은 집안에서 가족끼리 대화할 때도 일본어를 쓸 정도로 친일을 하며 그것을 영예롭게 생각했다. 그는 비싼 진료비를 감당할 수 있는 간부급 일본인들을 주로 상대했고 돈 없는 환자를 가려서 받았다. 해방되기 6개월 전, 형무소에서 병보석으로 풀려난 중환자가 그의 병원으로 업혀왔는데, 사상범을 입원시켰다가 일본인에게 밉보일 것이 두려웠던 이인국은 응급 치료만을 해주고 입원실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돌려보냈다.
해방이 되어 그의 “가장 믿었던 성벽”이었던 일본인들이 떠나고 소련군이 진주한 후 이인국은 치안대로 끌려가 문초를 당한다. 치안대에는 이인국에게 입원을 거절당했던 사상범도 있었다. 전부터 벼르고 있었던 그는 이인국에게 “쪽발이 끄나풀”, “왜놈의 밑바시(‘음식찌꺼기’를 뜻하는 함경도 사투리)”, “민족과 조국을 팔아먹은 이 개돼지 같은 놈”이라고 욕하며 마구잡이로 구타했다. 감옥에 갇힌 이인국의 죄목은 “친일파, 민족 반역자, 반일 투사 치료 거부, 일제의 간첩 행위…” 등등이었고, 이대로라면 무기징역이나 사형감에 해당했다. 하지만 이인국은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며 출감한 학생이 놓고 간 러시아어 회화책을 열심히 공부했다.
이인국에게 지난 일에 대한 뉘우침이나 가책 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지난날의 과오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식민지 백성이 별수 있었어. 날구뛴들 소용이 있었느냐 말이야. 어느 놈은 일본 놈한테 아첨을 안 했어. 주는 떡을 안 먹은 놈이 바보지. 흥”하며 자기 변명과 합리화에 급급했다. 그런 그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어느 날 밤, 같은 방에 수감된 사람이 피똥을 쌌는데 적리(赤痢: 급성 전염병인 이질의 하나)임을 한 눈에 알아본 그가 교도관에게 알렸고, 이튿날부터 다른 감방에서도 같은 증세의 환자들이 잇달아 발생하자 응급 치료실로 차출된 것이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담당 환자들을 치료하는 그의 모습은 소련 고문관의 눈에 들기 충분했다. “의사, 이것은 나의 천직이다”라는 말은 의사라는 직업 덕분에 죽음의 위기를 면했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그에게 의술은 성공과 출세,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 경제력에 따라 환자를 가려 받던 그에게 생명을 살리는 의사로서의 사명감 따위가 존재할 리 만무하다. 그는 실력을 인정받아 병원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죄에 대한 처벌까지 면제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되기 위해 “도박 같은 심정으로 생명을 걸”고 ‘혹부리 고문관’ 스텐코프의 왼쪽 뺨에 붙은 오리알만 한 혹을 수술하겠다고 자청한다. 혹 제거 수술은 결코 쉬운 수술이 아니었으며 이인국은 실패할 경우 총살에 처한다는 서약서를 쓰고 수술대에 올랐다. 과거 일본인 시장의 혹을 성공적으로 수술한 경험이 있었던 이인국은 스텐코프의 수술을 성공시키고, 완치되어 퇴원하는 날 그에게 “꺼삐딴 리, 스바씨보(고맙소).”라는 진심 어린 인사를 듣는다. 훗날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는 새로운 동아줄이 생긴 순간이었다.
이인국과 같은 기회주의자가 변신을 거듭하며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던 데에는 일본-소련-미국 등 외세의 개입과 분단이라는 민족사적 비극이 있다. 해방 후 우리 민족이 일제에 부역한 반민족행위자와 친일 식민 잔재를 주체적으로 청산할 수 있었다면 이인국과 같은 사람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친일파와 기회주의자가 이인국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친일-친소-친미 노선으로 갈아탈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눈치와 함께 외과의사로서 특출난 실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인국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운이 따랐던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인민재판의 첫 타자에 걸리지 않았던 것이나(그랬다면 즉결 처형을 당했을 것이다), 갑자기 감방에 전염병이 돈 것은 그에게 행운이었다. 하지만 그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으며,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것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능력과 배짱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하나, 의사로서의 능력, 어학적 재능과 노력, 정세를 읽는 판단력 등은 칭찬할 수 있지만, 이인국은 민족의식이나 애국심, 양심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이 오로지 자기 일신의 영달과 출세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 시대, 소련군 점령하의 감옥 생활, 6‧25 사변, 삼팔선, 미군 부대, 그동안 몇 차례의 아슬아슬한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격동기 한국사를 나름 치열하게 ‘살아낸’ 이인국의 삶에 박수를 보내기는 어렵다.
키워드
기회주의자, 생존전략, 식민지, 융통성, 일제강점기, 임기응변, 처세술, 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