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국가론』 1권에서 스키피오는 동료들과 함께 최고의 정치제제에 대해 논의한다. 스키피오는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39단락에서 먼저 국가와 인민을 정의하고, 인간의 사회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전본문
『국가론』 1.39: 아프리카누스가 말했다, “따라서 국가는 인민의 것이네. 그러나 인민이란 무작위로 모인 사람들의 집단이 아니라, 정의(正義)에 대한 동의와 공적인 유익으로 결합된 무리의 모임이지. 허나 이러한 모임의 가장 큰 원인은 연약함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어떤 군집성과 같은 것이네. 그 이유는 인간이란 외롭게 홀로 방랑하는 종류가 아니라, 모든 물질의 풍요[함 속에서도 혼자 살기를 원하도록]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네.”
토론하기
1. MBN에서 방영중인 ‘나는 자연인이다’는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에게 힐링과 참된 행복의 의미를 전하는 프로그램’으로 소개된다. 자연인이 만든 ‘생선대가리 카레’를 바라보는 개그맨 이승윤의 전설의 눈빛짤을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사회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사는 자연인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가? 이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 본연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2. 사람들이 공동체를 형성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혼자일 때 두렵기 때문일까 아니면 본연의 사회성 때문일까? 둘 중 어떤 요소가 더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하는가?
해설읽기
스키피오에 의하면 국가란 정의에 대한 동의와 공공의 유익으로 결합된 무리인 인민의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이렇게 무리를 짓는 첫번째 이유를 인간의 연약함에서 찾지 않는다. 사람들이 사회를 구성하는 이유는 연약한 사람들이 내외부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이 태생적으로 혼자 살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명은 사회와 국가를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정의를 실현하고 공공의 유익을 도모하는 속성이 인간의 본성에 함축되었다는 말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스키피오는 우리가 혼자 살아갈 능력이 있더라도 혼자 사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유사한 생각은 기원전 4세기에 그리스의 철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논의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본성적으로 ‘폴리스[1]를 형성하며 살아가기에 적합한 동물’”[2]이며, “이와 같은 종류의 공동체[정치적 공동체]로 향하는 충동은 자연적으로(본성적으로) 모든 인간에게 있는 것”[3]이라고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인간의 목표인 행복한 삶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언급한다. 그에 의하면 국가의 테두리 밖에 사는 존재는 인간 이하의 동물이나 인간보다 우월한 신들에게만 가능하다. 본문에서 스키피오는 인간 본연의 사회성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정을 받아들이고 논의를 전개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은 널리 받아들여졌지만, 17세기에는 이 이론에 정면 도전하는 학자도 있었다. 토마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인간은 자유를 사랑하고,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구가 있어서 본성적으로 비사회적인 동물이라는 논증을 전개한다. 따라서 본래 자연의 상태에서 끔찍하고 야만적인 삶을 영위하던 사람들은 단명했는데, 이러한 지독한 삶을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의 본성에 어긋나는 국가를 형성하여 정부에 복종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환언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답습한 키케로는 인간의 사회성을 인간 본연의 특성으로 받아들였던 반면에, 홉스는 사회란 인간의 본성에는 어긋나지만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형성되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인간이 본래 사회적인 동물인지 비사회적인 동물인지에 대한 양측의 주장에는 일말의 진리가 있기 때문에 논쟁의 여지가 남는다. 비록 손쉬운 답변을 도출하기는 어렵지만, 이 문제는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 각자가 숙고해 볼 만한 문제이다.
[1] 폴리스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를 가리킵니다.
[2]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김재홍 옮김, 2017, 33쪽.
[3]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김재홍 옮김, 2017, 36쪽.
키워드
공정한 사회, 사회적인 인간, 이상 사회, 이상적인 인간상, 자연법, 정의
전후맥락
『국가론』 1권에서 스키피오는 동료들과 함께 최고의 정치제제에 대해 논의한다. 스키피오는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39단락에서 먼저 국가와 인민을 정의하고, 인간의 사회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전본문
『국가론』 1.39: 아프리카누스가 말했다, “따라서 국가는 인민의 것이네. 그러나 인민이란 무작위로 모인 사람들의 집단이 아니라, 정의(正義)에 대한 동의와 공적인 유익으로 결합된 무리의 모임이지. 허나 이러한 모임의 가장 큰 원인은 연약함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어떤 군집성과 같은 것이네. 그 이유는 인간이란 외롭게 홀로 방랑하는 종류가 아니라, 모든 물질의 풍요[함 속에서도 혼자 살기를 원하도록]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네.”
토론하기
1. MBN에서 방영중인 ‘나는 자연인이다’는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에게 힐링과 참된 행복의 의미를 전하는 프로그램’으로 소개된다. 자연인이 만든 ‘생선대가리 카레’를 바라보는 개그맨 이승윤의 전설의 눈빛짤을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사회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사는 자연인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가? 이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 본연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2. 사람들이 공동체를 형성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혼자일 때 두렵기 때문일까 아니면 본연의 사회성 때문일까? 둘 중 어떤 요소가 더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하는가?
해설읽기
스키피오에 의하면 국가란 정의에 대한 동의와 공공의 유익으로 결합된 무리인 인민의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이렇게 무리를 짓는 첫번째 이유를 인간의 연약함에서 찾지 않는다. 사람들이 사회를 구성하는 이유는 연약한 사람들이 내외부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이 태생적으로 혼자 살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명은 사회와 국가를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정의를 실현하고 공공의 유익을 도모하는 속성이 인간의 본성에 함축되었다는 말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스키피오는 우리가 혼자 살아갈 능력이 있더라도 혼자 사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유사한 생각은 기원전 4세기에 그리스의 철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논의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본성적으로 ‘폴리스[1]를 형성하며 살아가기에 적합한 동물’”[2]이며, “이와 같은 종류의 공동체[정치적 공동체]로 향하는 충동은 자연적으로(본성적으로) 모든 인간에게 있는 것”[3]이라고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인간의 목표인 행복한 삶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언급한다. 그에 의하면 국가의 테두리 밖에 사는 존재는 인간 이하의 동물이나 인간보다 우월한 신들에게만 가능하다. 본문에서 스키피오는 인간 본연의 사회성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정을 받아들이고 논의를 전개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은 널리 받아들여졌지만, 17세기에는 이 이론에 정면 도전하는 학자도 있었다. 토마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인간은 자유를 사랑하고,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구가 있어서 본성적으로 비사회적인 동물이라는 논증을 전개한다. 따라서 본래 자연의 상태에서 끔찍하고 야만적인 삶을 영위하던 사람들은 단명했는데, 이러한 지독한 삶을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의 본성에 어긋나는 국가를 형성하여 정부에 복종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환언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답습한 키케로는 인간의 사회성을 인간 본연의 특성으로 받아들였던 반면에, 홉스는 사회란 인간의 본성에는 어긋나지만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형성되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인간이 본래 사회적인 동물인지 비사회적인 동물인지에 대한 양측의 주장에는 일말의 진리가 있기 때문에 논쟁의 여지가 남는다. 비록 손쉬운 답변을 도출하기는 어렵지만, 이 문제는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 각자가 숙고해 볼 만한 문제이다.
[1] 폴리스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를 가리킵니다.
[2]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김재홍 옮김, 2017, 33쪽.
[3]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김재홍 옮김, 2017, 36쪽.
키워드
공정한 사회, 사회적인 인간, 이상 사회, 이상적인 인간상, 자연법, 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