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정의를 다루는 키케로의 『국가론』 3권은 기원전 155년에 그리스의 사절로 로마에 파견되었던 카르네아데스의 연설을 재현한다. 카르네아데스는 첫 번째 날에 국가에 정의가 필요하다고 논증했고, 두번째 날에는 국가에 정의가 필요 없다고 논증했다. 『국가론』 3권에서는 두 명의 대화상대자인 필루스와 라일리우스가 카르네아데스의 두 입장을 각각 재현한다. 여기서는 이타적인 정의가 자연스러운지, 즉 인간 본연의 특성인지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는 데, 필루스는 이에 반대하고 라일리우스는 찬성하는 입장을 피력한다.
고전본문
필루스[1]:
[*** 만일 자연이] 우리에게 정의로운 것들을 규정했더라면,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법을 따를 것이고, 한 때에는 이 법을, 다른 때에는 저 법을 따르지 않을 것이네. 그러니 물어보겠네, 만일 정의롭고 선한 사람이 법률을 따르는 것이 합당하다면, 그는 어떤 법률을 따라야 하겠는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현존하는 법을 따라야 하나? 그러나 덕은 변덕을 허락하지 않고, 자연도 변화를 허용치 않네. 그러니 법을 따르는 것은 우리의 정의 때문이 아니라 처벌 때문이네. 따라서 정의는 전혀 자연적인 것이 아니네. 이로부터 정의로운 사람들조차 본성적으로 정의로운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도출되네. 아니면 그들은 비록 다양한 법률들이 존재하지만 본성적으로 훌륭한 사람들은 정의로 간주되는 것이 아닌 실제 정의를 좇는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
라일리우스[2]:
실로 참된 법이란 자연에 일치하는 바른 이성으로서, 모든 사람들에게 확산되어 있고, 한결같으며, 영원하네. 이 법은 명령함으로써 의무로 불러내고, 금지함으로써 범죄를 저지하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은 착한 사람들을 헛되이 명령하거나 금지하지 않고, 불량한 사람들을 명령이나 금지함으로써 움직이지도 못하네. 이 법이 수정되는 것은 당치않고, 일부가 철폐되는 것도 허용되지 않으며, 법 전체가 폐지되는 것도 불가능하네. 우리는 실로 원로원이나 로마 인민에 의해 이 법으로부터 해방될 수도 없고, 섹스투스 아일리우스[3]가 해석자나 중재자로 요청되어서도 안되네. 로마와 아테네에 다른 법이, 지금과 나중에 다른 법이 존재할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영원하고 불변하는 법이 모든 시대에, 모든 민족들을 총망라할 것이네. 모든 사람들의 스승 혹은 사령관과 같은 한 분의 신(神)이 있을 것인데, 이 신이 곧 이 법의 고안자요, 심판자요, 입법자이네. 이 법에 복종하지 않을 자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꼴이 될 것이고, 인간의 본성을 경멸한 이 사람은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비록 형벌로 간주되는 여타의 것들을 피할지라도 가장 큰 처벌을 받게 될 것이네.
[1] 기원전 136년에 집정관이었으며 스키피오의 동료 무리의 일원이었다. 그는 스키피오의 문화적 관심을 공유했고 고대 로마의 희곡 작가인 테렌티우스의 후원자이기도 했다.
[2] 스키피오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서 스키피오의 동료 무리의 핵심인물이었다. 기원전 155년에 그리스의 사절로 파견되었던 스토아학파의 디오게네스와 그의 제자 파나이티오스와 깊은 친분을 맺어 현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기원전 147~146년에는 스키피오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군복무를 했다. 기원전 140년에 집정관이었으며 웅변가로 명성을 떨쳤다.
[3] 로마의 법률가로서 기원전 198년에 집정관이었다. 그는 로마법의 근간이었던 12표법에 대한 해설서를 저술했다.
토론하기
1.여러분은 학교 규율이 정당하기 때문에 지키나요 처벌이 두려워서 지키나요?
2. 모든 사람들이 본성적으로 알고 있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 존재할까? 만일 존재한다면 그 기준은 무엇인가?
3.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삶과 정직한 삶 중 어떤 쪽을 선택하겠나? 만일 여러분이 아무도 모르는 부정한 경로로 명문대를 입학할 수 있는 문이 열린다면 이를 선택하시겠나 아니면 거부하시겠나?
해설읽기
『국가론』 3권의 대화상대자는 필루스, 라일리우스, 그리고 스키피오이다. 『국가론』의 배경이 되는 기원전 129년보다 26년 앞선 기원전 155년에 그리스는 세 명의 철학자들로 구성된 사절단을 로마로 파견했다. 세 철학자들은 스토아학파의 디오게네스, 소요학파의 크리톨라오스, 그리고 아카데미아학파의 카르네아데스였다. 박식한 웅변가의 가르침을 청강하기 위해 모여든 로마인들에게 카르네아데스는 첫째 날에는 정의를 덕으로 칭송하는 연설을 했고, 바로 다음날에 이를 번복하여 정의를 부정하는 논의를 전개함으로써 로마인들을 적잖은 충격에 빠드렸다. 당시 로마 정치계의 원로였던 카토가 카르네아데스의 연설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원로원에게 그리스 사절단을 신속히 되돌려보내도록 충고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카르네아데스가 기원전 155년에 했던 연설의 정확한 내용은 남아있지 않다. 따라서 『국가론』 3권에서 키케로가 재구성한 내용이 얼마나 카르네아데스의 본래 주장과 유사한지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러한 확실한 점은 키케로가 카르네아데스의 연설의 순서를 뒤바꾸었다는 사실이다. 즉 『국가론』 3권에서는 필루스가 정의의 불필요성을 논증한 후에 라일리우스가 정의를 변호하는 순서를 따른다. 정의를 강조하는 이러한 전개는 국가에 정의가 필수적이라는 키케로의 생각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필루스는 정의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닌 정치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 그는 이집트, 그리스, 그리고 페르시아와 같은 지역에서 서로 상이한 관습들과 법이 통용된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그는 흑해의 타우리인들, 이집트의 왕 부시리스, 갈리아인들, 그리고 페니키아인들이 인간제물을 바치는 것을 경건한 행위로 간주한다고 말한다. 이는 서로 다른 사회에서 통용되는 극도로 상이한 관습들을 보여준다. 지역적인 차이 뿐만 아니라 동일한 지역 내에서도 시간과 함께 관습들이 변한다. 로마의 관습이나 법 또한 시간과 함께 변했다. 이렇듯 필루스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법이나 관습이 변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법이나 관습이 정의를 반영한다고 가정한다면, 법이나 관습이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변하듯이 정의도 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정의는 온 인류가 공유하는 불변하는 가치가 아니게 된다. 이런 이유로 필루스는 정의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정의는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서 사회적인 협의나 강제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정치적 현상인 것이다.
온 인류가 공유하는 자연적인 정의에 대한 개념이 존재할까? 라일리우스는 스토아학파의 자연법을 통해 이에 대한 답변을 제시한다. 라일리우스에 의하면 참된 법이 존재하는데, 이는 바로 인간의 바른 이성이다. 인간의 이성은 바른 것을 권하고 잘못된 것을 금지한다. 모든 사람들이 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이 법의 명령 아래 있다. 이 법은 로마와 아테네에서 다르지 않고, 시대에 따라 변하지도 않는 하나의 영원 불변한 법이다. 물론 불량한 사람들은 이 법에 복종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신이 입법하고 명령하는 이 법은 인간의 본성인 이성과 밀접하게 연관되기 때문에 이 법에 불복종하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라일리우스는 설명한다. 키케로는 『법률론』에서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자연법을 설명한다. 『법률론』에서 자연법이란 인간의 본성에 심겨진 최상의 이성으로서 소개된다. 키케로는 신들과 인간이 이성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신들과 인간이 일종의 가족관계로 맺어져 온 우주를 하나의 국가로 공유한다고 설명한다. 이성은 인간을 여타의 동물들과 구별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렇듯 키케로는 인간을 동물들과 구분 짓고 신들과 엮어주는 인간의 고귀한 본성을 이성에서 찾았다. 그는 이성을 토대로 온 인류를 포괄하는 정의 개념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키워드
공정한 사회, 사회 정의, 사회적인 인간, 이상 사회, 이상적인 인간상, 자연법
전후맥락
정의를 다루는 키케로의 『국가론』 3권은 기원전 155년에 그리스의 사절로 로마에 파견되었던 카르네아데스의 연설을 재현한다. 카르네아데스는 첫 번째 날에 국가에 정의가 필요하다고 논증했고, 두번째 날에는 국가에 정의가 필요 없다고 논증했다. 『국가론』 3권에서는 두 명의 대화상대자인 필루스와 라일리우스가 카르네아데스의 두 입장을 각각 재현한다. 여기서는 이타적인 정의가 자연스러운지, 즉 인간 본연의 특성인지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는 데, 필루스는 이에 반대하고 라일리우스는 찬성하는 입장을 피력한다.
고전본문
필루스[1]:
[*** 만일 자연이] 우리에게 정의로운 것들을 규정했더라면,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법을 따를 것이고, 한 때에는 이 법을, 다른 때에는 저 법을 따르지 않을 것이네. 그러니 물어보겠네, 만일 정의롭고 선한 사람이 법률을 따르는 것이 합당하다면, 그는 어떤 법률을 따라야 하겠는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현존하는 법을 따라야 하나? 그러나 덕은 변덕을 허락하지 않고, 자연도 변화를 허용치 않네. 그러니 법을 따르는 것은 우리의 정의 때문이 아니라 처벌 때문이네. 따라서 정의는 전혀 자연적인 것이 아니네. 이로부터 정의로운 사람들조차 본성적으로 정의로운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도출되네. 아니면 그들은 비록 다양한 법률들이 존재하지만 본성적으로 훌륭한 사람들은 정의로 간주되는 것이 아닌 실제 정의를 좇는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
라일리우스[2]:
실로 참된 법이란 자연에 일치하는 바른 이성으로서, 모든 사람들에게 확산되어 있고, 한결같으며, 영원하네. 이 법은 명령함으로써 의무로 불러내고, 금지함으로써 범죄를 저지하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은 착한 사람들을 헛되이 명령하거나 금지하지 않고, 불량한 사람들을 명령이나 금지함으로써 움직이지도 못하네. 이 법이 수정되는 것은 당치않고, 일부가 철폐되는 것도 허용되지 않으며, 법 전체가 폐지되는 것도 불가능하네. 우리는 실로 원로원이나 로마 인민에 의해 이 법으로부터 해방될 수도 없고, 섹스투스 아일리우스[3]가 해석자나 중재자로 요청되어서도 안되네. 로마와 아테네에 다른 법이, 지금과 나중에 다른 법이 존재할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영원하고 불변하는 법이 모든 시대에, 모든 민족들을 총망라할 것이네. 모든 사람들의 스승 혹은 사령관과 같은 한 분의 신(神)이 있을 것인데, 이 신이 곧 이 법의 고안자요, 심판자요, 입법자이네. 이 법에 복종하지 않을 자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꼴이 될 것이고, 인간의 본성을 경멸한 이 사람은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비록 형벌로 간주되는 여타의 것들을 피할지라도 가장 큰 처벌을 받게 될 것이네.
[1] 기원전 136년에 집정관이었으며 스키피오의 동료 무리의 일원이었다. 그는 스키피오의 문화적 관심을 공유했고 고대 로마의 희곡 작가인 테렌티우스의 후원자이기도 했다.
[2] 스키피오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서 스키피오의 동료 무리의 핵심인물이었다. 기원전 155년에 그리스의 사절로 파견되었던 스토아학파의 디오게네스와 그의 제자 파나이티오스와 깊은 친분을 맺어 현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기원전 147~146년에는 스키피오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군복무를 했다. 기원전 140년에 집정관이었으며 웅변가로 명성을 떨쳤다.
[3] 로마의 법률가로서 기원전 198년에 집정관이었다. 그는 로마법의 근간이었던 12표법에 대한 해설서를 저술했다.
토론하기
1.여러분은 학교 규율이 정당하기 때문에 지키나요 처벌이 두려워서 지키나요?
2. 모든 사람들이 본성적으로 알고 있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 존재할까? 만일 존재한다면 그 기준은 무엇인가?
3.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삶과 정직한 삶 중 어떤 쪽을 선택하겠나? 만일 여러분이 아무도 모르는 부정한 경로로 명문대를 입학할 수 있는 문이 열린다면 이를 선택하시겠나 아니면 거부하시겠나?
해설읽기
『국가론』 3권의 대화상대자는 필루스, 라일리우스, 그리고 스키피오이다. 『국가론』의 배경이 되는 기원전 129년보다 26년 앞선 기원전 155년에 그리스는 세 명의 철학자들로 구성된 사절단을 로마로 파견했다. 세 철학자들은 스토아학파의 디오게네스, 소요학파의 크리톨라오스, 그리고 아카데미아학파의 카르네아데스였다. 박식한 웅변가의 가르침을 청강하기 위해 모여든 로마인들에게 카르네아데스는 첫째 날에는 정의를 덕으로 칭송하는 연설을 했고, 바로 다음날에 이를 번복하여 정의를 부정하는 논의를 전개함으로써 로마인들을 적잖은 충격에 빠드렸다. 당시 로마 정치계의 원로였던 카토가 카르네아데스의 연설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원로원에게 그리스 사절단을 신속히 되돌려보내도록 충고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카르네아데스가 기원전 155년에 했던 연설의 정확한 내용은 남아있지 않다. 따라서 『국가론』 3권에서 키케로가 재구성한 내용이 얼마나 카르네아데스의 본래 주장과 유사한지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러한 확실한 점은 키케로가 카르네아데스의 연설의 순서를 뒤바꾸었다는 사실이다. 즉 『국가론』 3권에서는 필루스가 정의의 불필요성을 논증한 후에 라일리우스가 정의를 변호하는 순서를 따른다. 정의를 강조하는 이러한 전개는 국가에 정의가 필수적이라는 키케로의 생각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필루스는 정의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닌 정치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 그는 이집트, 그리스, 그리고 페르시아와 같은 지역에서 서로 상이한 관습들과 법이 통용된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그는 흑해의 타우리인들, 이집트의 왕 부시리스, 갈리아인들, 그리고 페니키아인들이 인간제물을 바치는 것을 경건한 행위로 간주한다고 말한다. 이는 서로 다른 사회에서 통용되는 극도로 상이한 관습들을 보여준다. 지역적인 차이 뿐만 아니라 동일한 지역 내에서도 시간과 함께 관습들이 변한다. 로마의 관습이나 법 또한 시간과 함께 변했다. 이렇듯 필루스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법이나 관습이 변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법이나 관습이 정의를 반영한다고 가정한다면, 법이나 관습이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변하듯이 정의도 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정의는 온 인류가 공유하는 불변하는 가치가 아니게 된다. 이런 이유로 필루스는 정의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정의는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서 사회적인 협의나 강제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정치적 현상인 것이다.
온 인류가 공유하는 자연적인 정의에 대한 개념이 존재할까? 라일리우스는 스토아학파의 자연법을 통해 이에 대한 답변을 제시한다. 라일리우스에 의하면 참된 법이 존재하는데, 이는 바로 인간의 바른 이성이다. 인간의 이성은 바른 것을 권하고 잘못된 것을 금지한다. 모든 사람들이 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이 법의 명령 아래 있다. 이 법은 로마와 아테네에서 다르지 않고, 시대에 따라 변하지도 않는 하나의 영원 불변한 법이다. 물론 불량한 사람들은 이 법에 복종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신이 입법하고 명령하는 이 법은 인간의 본성인 이성과 밀접하게 연관되기 때문에 이 법에 불복종하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라일리우스는 설명한다. 키케로는 『법률론』에서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자연법을 설명한다. 『법률론』에서 자연법이란 인간의 본성에 심겨진 최상의 이성으로서 소개된다. 키케로는 신들과 인간이 이성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신들과 인간이 일종의 가족관계로 맺어져 온 우주를 하나의 국가로 공유한다고 설명한다. 이성은 인간을 여타의 동물들과 구별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렇듯 키케로는 인간을 동물들과 구분 짓고 신들과 엮어주는 인간의 고귀한 본성을 이성에서 찾았다. 그는 이성을 토대로 온 인류를 포괄하는 정의 개념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키워드
공정한 사회, 사회 정의, 사회적인 인간, 이상 사회, 이상적인 인간상, 자연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