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로마는 본래 왕정이었다. 기원전 753년에 로마를 건립한 로물루스가 초대 왕으로 등극한 후 7대 왕인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가 폐위되기까지 로마는 244년 동안 왕에 의해 통치되었다. 그러나 기원전 509년에 왕정이 전복되고 공화정이 들어서게 된다. 그 배후에는 루크레티아의 이야기가 있다. 전장에 나가있던 로마의 마지막 왕의 아들인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와 그의 동료들 사이에서 누구의 부인이 가장 고결한지 논쟁이 일어난다. 서로 자신의 부인을 칭송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그들은 몰래 부인들을 방문해 판단하기로 결정한다. 남편의 부재를 틈타 심야의 연회를 즐기며 시간을 낭비하던 여타의 부인들과 달리 콜라티누스의 부인인 루크레티아는 밤 늦게까지 등불 아래서 뜨개질을하며 하녀들과 가사를 돌보고 있었다. 루크레티아가 가장 정숙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러한 루크레티아를 향한 욕망에 사로잡힌 타르퀴니우스는 다음 날 밤에 콜라티누스 몰래 그녀를 찾아간다. 그는 모두가 잠든 밤을 틈타 루크레티아를 겁탈한다. 본문은 이 사건 직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고전본문
타르퀴니우스는 여인의 명예를 짓밟고는 거기서 의기양양하게 떠나갔다. 루크레티아는 그토록 큰 행악에 비통해하며 동일한 전령을 로마에 있는 아버지와 아르데아에 있는 남편에게 보내 신속히 처리할 일이 있고,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면서 신뢰할만한 동료들과 함께 와달라고 부탁했다. … 그들은 침실에서 비통에 빠진 루크레티아를 발견했다. 그들이 도착하자 그녀는 눈물을 터트렸고, “괜찮냐”고 묻는 남편에게 말했다. “전혀 괜찮지 않아요. 정결을 잃은 여인이 어찌 괜찮을 수 있겠어요? 콜라티누스, 당신의 침상에 다른 남자의 흔적이 남아 있어요. 비록 제 몸은 더렵혀졌지만, 마음만은 결백해요. 죽음이 증인이 될 것이에요. 허나 오른 손을 뻗어 간통을 범한 자가 반드시 처벌받을 것이라고 맹세하세요. 섹스투스 타르퀴누스였어요. 그가 어젯밤에 호의를 적의로 갚으며 무력으로 무장하여 여기서 저에게도, 그리고 만일 여러분들이 대장부라면, 그 자신에게도 파멸적인 기쁨을 취했어요.” 모두가 차례대로 맹세했다. 그들은 강요당한 그녀로부터 범인에게로 탓을 돌리며 상심한 그녀에게 죄를 범하는 것은 몸이 아닌 마음이고, 의도하지 않았다면 잘못도 없다며 위로했다. 그러나 루크레티아는 말했다. “그에게 마땅한 것은 여러분들이 결정하세요. 저는 비록 제 자신에게 죄가 없음을 알지만, 처벌을 면제받지 않을 거에요. 이후 어떤 정결치 못한 여인도 루크레티아의 모범으로 살아갈 수 없을 것이에요.” 그녀는 옷 안에 숨긴 칼로 가슴을 찔렀고, 죽어가면서 상처를 향해 앞으로 쓰러졌다. 남편과 아버지가 비명을 질렀다. 이들이 비탄에 빠진 동안에 브루투스가 루크레티아의 상처로부터 피로 물든 칼을 뽑아 자신 앞에 들어 올리며 말했다. “왕가의 불의가 행해지기 이전에 가장 정결했던 이 피를 걸고, 신들이여, 당신들을 증인으로 세워 내가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와, 그의 불경한 아내를 비롯한 그의 대대손손에게 검과, 불과, 내게 있는 모든 힘을 동원해 복수할 것이고, 저들이나 다른 어떤 이들도 로마에서 왕으로 통치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리비우스 <로마사> 중에서
토론하기
1. 루크레티아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아버지와 남편에게 알려야만 했을까? 그녀가 이실직고한 이유는 무엇인가?
2. 사회적 약자가 사회적 강자에게 부당한 일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는가? 어떤 상황이었고, 어떻게 대처했는가?
해설읽기
리비우스의 『로마사』에는 역사적인 전환점에 여성이 종종 등장한다. 루크레티아의 사건은 로마의 마지막 왕인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를 타도하고 공화정을 수립하는 데 결정적인 촉매제 역할을 했다. 로마의 초대 왕인 로물루스는 건국신화를 이룬 장본인으로서 존경을 받아 신격화되었고, 2대 왕인 누마 역시 종교와 입법을 통해 삶의 수준을 향상시킨 선왕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면서 왕정은 타락했다. 7대 왕인 타르퀴니우스는 폭군이었다. 본문에서 루크레티아를 위한 복수를 다짐하면서 로마의 왕정을 전복하겠다고 맹세한 브루투스는 결국 타르퀴니우스 가문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때부터 로마인들은 공화정이라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도입한다. 공화정 체제에서는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폭정으로 변모하는 현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2명의 집정관을 선출하여 1년 동안 국정을 맡겼다. 본문에서 나온 브루투스는 로마 공화정이 도입된 기원전 509년에 선출된 최초의 집정관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기원전 44년에 공화국의 존립을 위협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브루투스 너마저냐”란 말을 내뱉게 만든 마르쿠스 브루투스의 선조였다.
루크레티아는 로마가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넘어가는 역사적인 사건의 중심에 있다. 그녀는 왕의 아들인 타르퀴니우스의 횡포를 폭로해 로마인들의 마음에 왕정을 향한 증오심를 품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러나 루크레티아는 왕이라는 절대 권력 앞에서 힘없이 무너진 나약한 희생양에 불과하지 않나? 어떤 학자는 리비우스가 루크레티아를 정조를 지킨 여성의 전형인 모범으로 제시하지만, 사실 그녀는 남성의 폭력과 가부장적인 사회적 이념의 희생자일 뿐이라고 평가한다. 물론 그녀는 타르퀴니우스의 폭력의 희생자였다. 하지만 루크레티아가 이 사건 이후에 보여준 모습은 단지 나약한 희생자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던 사람들은 사건의 당사자들인 타르퀴니우스와 루크레티아 뿐이었다. 루크레티아만 잠잠히 있으면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굳이 전령을 보내 아버지와 남편에게 사실을 폭로한다. 절대 권력자인 왕의 아들을 고발하기까지는 적잖은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을 것이다. 사실을 전해들은 아버지와 남편은 그녀가 범죄를 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백하다며 위로한다. 그녀의 아버지도 남편도 그녀의 죽음을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루크레티아가 도의심 때문에 자결하자,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의 전개에 그녀의 남편과 아버지는 비명을 지르며 비탄에 빠진다. 따라서 그녀의 죽음은 가부장적인 사회의 이념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사실을 폭로하고 담대히 죽음을 선택한 루크레티아의 용기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녀의 이야기에 고무된 로마인들이 일어나 폭군을 몰아내었기 때문이다. 루크레티아는 절대권력 앞에서 무너졌지만, 그녀의 용기는 절대권력을 몰아내어 로마인들을 위한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했다.
리비우스 뿐만 아니라 파비우스 픽토르나 디오도로스와 같은 역사가들도 루크레티아의 일화를 전한다. 고대 로마의 대표적인 시인 중 한 명인 오비디우 역시 <로마의 축제들>에서 그녀에 대해 작시한다. 전설적인 그녀의 일화는 티티안을 비롯한 수많은 중세 예술가들의 손에 의해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했다. 또한 초서의 <열녀전>이나 셰익스피어의 <루크리스의 능욕>의 소재로도 사용되었으며, 1946년에는 벤저민 브리톤에 의해 오페라로 제작되어 21세기에도 여전히 공연되고 있다. 정결의 대명사인 루크레티아는 고대 로마 뿐만 아니라, 중세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으며, 여성상에 대한 하나의 모범으로 자리매김했다. 루크레티아의 이야기가 2,500년이 넘도록 전승되는 이유 중 하나는,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이에 용기있게 대처하는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키워드
공화정, 사회정의, 용기, 정결, 정의
전후맥락
로마는 본래 왕정이었다. 기원전 753년에 로마를 건립한 로물루스가 초대 왕으로 등극한 후 7대 왕인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가 폐위되기까지 로마는 244년 동안 왕에 의해 통치되었다. 그러나 기원전 509년에 왕정이 전복되고 공화정이 들어서게 된다. 그 배후에는 루크레티아의 이야기가 있다. 전장에 나가있던 로마의 마지막 왕의 아들인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와 그의 동료들 사이에서 누구의 부인이 가장 고결한지 논쟁이 일어난다. 서로 자신의 부인을 칭송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그들은 몰래 부인들을 방문해 판단하기로 결정한다. 남편의 부재를 틈타 심야의 연회를 즐기며 시간을 낭비하던 여타의 부인들과 달리 콜라티누스의 부인인 루크레티아는 밤 늦게까지 등불 아래서 뜨개질을하며 하녀들과 가사를 돌보고 있었다. 루크레티아가 가장 정숙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러한 루크레티아를 향한 욕망에 사로잡힌 타르퀴니우스는 다음 날 밤에 콜라티누스 몰래 그녀를 찾아간다. 그는 모두가 잠든 밤을 틈타 루크레티아를 겁탈한다. 본문은 이 사건 직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고전본문
타르퀴니우스는 여인의 명예를 짓밟고는 거기서 의기양양하게 떠나갔다. 루크레티아는 그토록 큰 행악에 비통해하며 동일한 전령을 로마에 있는 아버지와 아르데아에 있는 남편에게 보내 신속히 처리할 일이 있고,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면서 신뢰할만한 동료들과 함께 와달라고 부탁했다. … 그들은 침실에서 비통에 빠진 루크레티아를 발견했다. 그들이 도착하자 그녀는 눈물을 터트렸고, “괜찮냐”고 묻는 남편에게 말했다. “전혀 괜찮지 않아요. 정결을 잃은 여인이 어찌 괜찮을 수 있겠어요? 콜라티누스, 당신의 침상에 다른 남자의 흔적이 남아 있어요. 비록 제 몸은 더렵혀졌지만, 마음만은 결백해요. 죽음이 증인이 될 것이에요. 허나 오른 손을 뻗어 간통을 범한 자가 반드시 처벌받을 것이라고 맹세하세요. 섹스투스 타르퀴누스였어요. 그가 어젯밤에 호의를 적의로 갚으며 무력으로 무장하여 여기서 저에게도, 그리고 만일 여러분들이 대장부라면, 그 자신에게도 파멸적인 기쁨을 취했어요.” 모두가 차례대로 맹세했다. 그들은 강요당한 그녀로부터 범인에게로 탓을 돌리며 상심한 그녀에게 죄를 범하는 것은 몸이 아닌 마음이고, 의도하지 않았다면 잘못도 없다며 위로했다. 그러나 루크레티아는 말했다. “그에게 마땅한 것은 여러분들이 결정하세요. 저는 비록 제 자신에게 죄가 없음을 알지만, 처벌을 면제받지 않을 거에요. 이후 어떤 정결치 못한 여인도 루크레티아의 모범으로 살아갈 수 없을 것이에요.” 그녀는 옷 안에 숨긴 칼로 가슴을 찔렀고, 죽어가면서 상처를 향해 앞으로 쓰러졌다. 남편과 아버지가 비명을 질렀다. 이들이 비탄에 빠진 동안에 브루투스가 루크레티아의 상처로부터 피로 물든 칼을 뽑아 자신 앞에 들어 올리며 말했다. “왕가의 불의가 행해지기 이전에 가장 정결했던 이 피를 걸고, 신들이여, 당신들을 증인으로 세워 내가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와, 그의 불경한 아내를 비롯한 그의 대대손손에게 검과, 불과, 내게 있는 모든 힘을 동원해 복수할 것이고, 저들이나 다른 어떤 이들도 로마에서 왕으로 통치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리비우스 <로마사> 중에서
토론하기
1. 루크레티아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아버지와 남편에게 알려야만 했을까? 그녀가 이실직고한 이유는 무엇인가?
2. 사회적 약자가 사회적 강자에게 부당한 일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는가? 어떤 상황이었고, 어떻게 대처했는가?
해설읽기
리비우스의 『로마사』에는 역사적인 전환점에 여성이 종종 등장한다. 루크레티아의 사건은 로마의 마지막 왕인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를 타도하고 공화정을 수립하는 데 결정적인 촉매제 역할을 했다. 로마의 초대 왕인 로물루스는 건국신화를 이룬 장본인으로서 존경을 받아 신격화되었고, 2대 왕인 누마 역시 종교와 입법을 통해 삶의 수준을 향상시킨 선왕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면서 왕정은 타락했다. 7대 왕인 타르퀴니우스는 폭군이었다. 본문에서 루크레티아를 위한 복수를 다짐하면서 로마의 왕정을 전복하겠다고 맹세한 브루투스는 결국 타르퀴니우스 가문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때부터 로마인들은 공화정이라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도입한다. 공화정 체제에서는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폭정으로 변모하는 현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2명의 집정관을 선출하여 1년 동안 국정을 맡겼다. 본문에서 나온 브루투스는 로마 공화정이 도입된 기원전 509년에 선출된 최초의 집정관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기원전 44년에 공화국의 존립을 위협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브루투스 너마저냐”란 말을 내뱉게 만든 마르쿠스 브루투스의 선조였다.
루크레티아는 로마가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넘어가는 역사적인 사건의 중심에 있다. 그녀는 왕의 아들인 타르퀴니우스의 횡포를 폭로해 로마인들의 마음에 왕정을 향한 증오심를 품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러나 루크레티아는 왕이라는 절대 권력 앞에서 힘없이 무너진 나약한 희생양에 불과하지 않나? 어떤 학자는 리비우스가 루크레티아를 정조를 지킨 여성의 전형인 모범으로 제시하지만, 사실 그녀는 남성의 폭력과 가부장적인 사회적 이념의 희생자일 뿐이라고 평가한다. 물론 그녀는 타르퀴니우스의 폭력의 희생자였다. 하지만 루크레티아가 이 사건 이후에 보여준 모습은 단지 나약한 희생자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던 사람들은 사건의 당사자들인 타르퀴니우스와 루크레티아 뿐이었다. 루크레티아만 잠잠히 있으면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굳이 전령을 보내 아버지와 남편에게 사실을 폭로한다. 절대 권력자인 왕의 아들을 고발하기까지는 적잖은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을 것이다. 사실을 전해들은 아버지와 남편은 그녀가 범죄를 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백하다며 위로한다. 그녀의 아버지도 남편도 그녀의 죽음을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루크레티아가 도의심 때문에 자결하자,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의 전개에 그녀의 남편과 아버지는 비명을 지르며 비탄에 빠진다. 따라서 그녀의 죽음은 가부장적인 사회의 이념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사실을 폭로하고 담대히 죽음을 선택한 루크레티아의 용기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녀의 이야기에 고무된 로마인들이 일어나 폭군을 몰아내었기 때문이다. 루크레티아는 절대권력 앞에서 무너졌지만, 그녀의 용기는 절대권력을 몰아내어 로마인들을 위한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했다.
리비우스 뿐만 아니라 파비우스 픽토르나 디오도로스와 같은 역사가들도 루크레티아의 일화를 전한다. 고대 로마의 대표적인 시인 중 한 명인 오비디우 역시 <로마의 축제들>에서 그녀에 대해 작시한다. 전설적인 그녀의 일화는 티티안을 비롯한 수많은 중세 예술가들의 손에 의해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했다. 또한 초서의 <열녀전>이나 셰익스피어의 <루크리스의 능욕>의 소재로도 사용되었으며, 1946년에는 벤저민 브리톤에 의해 오페라로 제작되어 21세기에도 여전히 공연되고 있다. 정결의 대명사인 루크레티아는 고대 로마 뿐만 아니라, 중세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으며, 여성상에 대한 하나의 모범으로 자리매김했다. 루크레티아의 이야기가 2,500년이 넘도록 전승되는 이유 중 하나는,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이에 용기있게 대처하는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키워드
공화정, 사회정의, 용기, 정결, 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