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온 세상을 떠돌던 오뒷세우스는 귀향의 조건을 알아내기 위해 저승까지 가게 된다. 저승에 도착한 오뒷세우스는 귀향의 조건을 알고 있는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혼백을 찾아 헤매던 중에 죽은 어머니의 혼백과 마주치게 된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오뒷세우스는 어머니에게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를 묻는다.
고전본문
“어머니 저는 테바이의 테이레시아스의 혼백에게 물어보고자
어쩔 수 없이 하데스의 집으로 온 거에요. […]
자, 이제 제게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사람을 길게 뉘는 죽음의 어떤 운명이 어머니를 제압했나요?
① 오래 끄는 병이었나요? ② 아니면 활의 여신 아르테미스께서
부드러운 화살을 갖고 찾아와 어머니를 죽이셨나요? […]”
“[… 아버지에게는] 힘겨운 노년이 다가오고 있단다. ③ 나도 그렇게 죽어 내 운명을 맞았지.
잘 겨냥한 활의 여신께서 부드러운 화살들을 갖고
궁전으로 찾아와 나를 죽이신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서글픈 쇠약으로 사지에서 생명력을
앗아가는 어떤 병이 나를 엄습한 것도 아니란다.
오히려, 영광스런 오뒷세우스여! 너와 네 조언들과 네 상냥함에 대한
그리움이 내게서 꿀처럼 달콤한 목숨을 앗아갔단다.”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나는 마음 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다가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의 혼백을 붙잡기로 작정했소.
나는 세 번이나 달려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어머니를 붙잡으려
했으나 세 번이나 어머니께서는 그림자처럼, 꿈처럼, 내 두 손에서
날아가버리셨소. 그래서 나는 마음이 더욱 더 쓰라리고
괴로워서 어머니를 향해 물 흐르듯 거침없이 말했소.
“어머니! 하데스의 집에서나마 우리 둘이 서로 얼싸안고
싸늘한 비탄을 실컷 즐기려고 제 가 어머니를 붙잡기를 열망하건만
어째서 어머니께서는 저를 기다려주시지 안나요?
아니면 제가 더욱 더 비탄하고 신음하도록
당당한 페르세포네께서 제게 환영을 보내주셨을 뿐인가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존경스런 어머니께서는 지체 없이 대답했소.
“아아! 내 아들아! 모든 이들 중에서 가장 불운한 자여!
제우스의 따님이신 페르세포네께서 너를 속이시는 것이 아니란다.
이것이 곧 인간이 죽게 되면 당하게 되는 운명이란다.
일단 목숨이 흰 뼈를 떠나게 되면,
근육은 더 이상 살과 뼈를 결합시키지 못하고
활활 타오르는 불의 강력한 힘이 그것들을 모두 없애버리지만
혼백은 꿈처럼 날아가 배회하게 되는 것이란다.”
토론하기
(1) 우리는 하루하루의 삶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며 살아가지만, 정작 자신이 ‘살아있다’라는 사실을 느끼거나 자각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음’이 각자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일상의 경험 속에서 생각해보고 이야기를 나눠보자.
(2)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우리는 먼 훗날 다가올 죽음을 어떤 마음으로 대비할 수 있을까?
해설읽기
어떤 죽음?
귀향의 조건을 듣기 위해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혼백을 만나러 저승에 내려운 오뒷세우스는 그곳에서 뜻밖에도 어머니 안티클레이아의 혼백을 만나게 된다. 트로이아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고향인 이타케를 떠나온지 20년이 흐르는 사이에 어머니가 죽은 것을 알게 된 오뒷세우스는 슬퍼하며 어머니에게 어떤 죽음이 어머니를 이곳으로 데려왔냐고 묻는다. 이 질문은 우리에게도 낯선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도 조문을 가면, 상주에게 애도를 표한 후에 ‘고인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를 묻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위의 대목에서 언급된 죽음의 세 가지 방식이다. 오뒷세우스는 어머니에게 ① 병으로 죽었는지, 아니면 ② 아르테미스의 화살에 맞아 죽었는지를 묻는다. 그러자 안티클레이아는 둘 다 아니라, 자신은 ③ 노년과 함께 자식에 대한 그리움 속에서 죽은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 대목은 죽음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가치관을 보여준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어떻게 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 생각한 것이 ‘어떻게 죽어야 가장 행복할까’하는 물음이다. 우선 ① 병사(病死)는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고대 그리스인들 역시 피하고 싶어했던 죽음이었다. 특히 질병은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으며, 일단 병에 걸리게 되면 젊은 사람도 마치 노인처럼 쇠약해져서 죽는다는 점에서 고대인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또한 환자는 병으로 인해 죽기 직전까지 고통 받는다는 점에서 그 삶 자체가 불행하다고 보았다.
다음으로 ② 아르테미스의 화살은 급사(急死)를 의미한다. 누군가가 특별한 이유 없이 급작스럽게 죽을 때, 고대 그리스인들은 죽은 사람이 남자인 경우에는 아폴론의 화살에 맞았다고 생각했으며, 여자인 경우에는 아르테미스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고 간주하였다. 그런 이유 때문에 레토 여신의 쌍둥이 남매인 아폴론과 아르테메스는 급사의 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예컨대 그리스인들은 페스트와 같은 급성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속절없이 죽어나갈 때, 아폴론과 아르테미스가 사람들을 향해 눈에 보이지 않는 화살을 쏜다고 말하며 공포에 떨곤 하였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고대인들은 이러한 급사 역시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는다는 점에서 불행한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오뒷세우스의 질문에 대하여 어머니는 앞의 두 가지를 모두 부정하고, ③ 자신이 노년(老年)으로 인해 죽었다고 대답한다. 이는 안티클레이아가 사고로 급사하거나 질병으로 고통받으며 죽은 것이 아니라, 천수를 누리고 늙어서 죽었음을 의미한다. 노년으로 인한 죽음은 그리스인들이 가장 행복하게 생각했던 죽음이다. 그것은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수명을 모두 누린다는 점에서 급사보다 나으며, 살아가는 동안 고통을 겪지 않는다는 점에서 병사보다 나은 것이었다. 요컨대 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한, 그리스인들이 보기에 가장 행복한 죽음이란 천수를 누리고 건강하게 살다 가는 것이라 하겠다.
죽음의 특성: 혼이 떠나자 몸이 해체되다.
눈 앞에서 사랑하던 어머니의 혼백을 만난 오뒷세우스는 그냥 물러서지 않는다. 그는 어머니를 붙잡으려고 세 차례나 시도하지만, 안티클레이아의 혼백은 마치 그림자나 꿈처럼 오뒷세우스의 손아귀를 빠져나간다. 그는 절망하여 혹시 눈 앞에 있는 것이 어머니의 혼백이 아니라, 저승의 여주인인 페르세포네가 보낸 허상이 아닐까 의심하지만, 어머니는 자신이 맞다고 말하며, 죽음이 인간에게 어떤 결과를 미치는지를 이야기해준다. 이어지는 안티클레이아의 말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인간의 생명과 죽음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잘 드러내준다.
먼저 ‘목숨이 흰 뼈를 떠난다’라는 대목은 죽음이 곧 혼과 몸의 분리임을 의미한다. 그리스인들은 생물과 무생물을 구별해주는 결정적인 차이가 바로 혼의 유무에 있다고 보았다. 혼은 생명의 원리로서 혼이 깃든 것은 살아있는 것이다. 이때 혼의 특징은 자기 운동성에 있다. 즉 혼이 깃든 생명체는 무생물과 달리 스스로 움직이며 살아간다. 반면에 죽음은 혼에서 몸이 빠져나가는 것이다. 운동의 원리가 빠져나간 이상, 죽은 자의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혼의 위상은 운동과 생명의 원리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위에서 “근육은 더 이상 살과 뼈를 결합시키지 못한다”라는 대목은 그리스인들이 혼을 생명의 원리일 뿐만 아니라, 신체를 유지시키는 결속의 원리로 간주했음을 암시한다. 우리의 살과 뼈을 비롯하여 각종 기관들은 다양한 물질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살아있는 동안 이것들을 서로 결속되어 유기적인 작용을 이어가지만, 죽고 난 뒤에는 신체는 그 기능이 정지되며 더 이상 결속을 유지하지 못한다. 즉 혼이 빠져나간 뒤에 몸은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고 자연의 요소들로 해체되는, 이른바 부패가 진행되는 것이다.
하지만 생명의 원리이자 신체를 결속시키며 움직이게 하는 혼은 막상 그 자체로 보면 마치 꿈이나 그림자처럼 손에 잡히지 않고 덧없는 것이라고 안티클레이아는 말한다. 몸을 움직이고 지배하는 혼을 물질과는 동떨어진 것처럼 간주하는 이러한 태도는 일견 모순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은 죽음에 관한 매우 중요한 사실, 즉 생명체에게 죽음이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라는 사실을 설명해준다. 왜냐하면 죽음은 혼과 몸의 분리인데, 만일 우리가 몸에서 빠져나간 혼을 다시 붙잡을 수만 있다면,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죽은 사람이 결코 되살아나지 않는다. 혼은 물체와 같이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빠져나간 혼을 붙잡아 다시 몸에 넣은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안티클레이아의 마지막 대목은 어머니의 혼백을 붙잡으려는 오뒷세우스의 부질없는 시도에 대한 설명이라 할 수 있다.
키워드
몸/신체, 무생물, 생명(의 원리), 생물, 죽음, 혼
전후맥락
온 세상을 떠돌던 오뒷세우스는 귀향의 조건을 알아내기 위해 저승까지 가게 된다. 저승에 도착한 오뒷세우스는 귀향의 조건을 알고 있는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혼백을 찾아 헤매던 중에 죽은 어머니의 혼백과 마주치게 된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오뒷세우스는 어머니에게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를 묻는다.
고전본문
“어머니 저는 테바이의 테이레시아스의 혼백에게 물어보고자
어쩔 수 없이 하데스의 집으로 온 거에요. […]
자, 이제 제게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사람을 길게 뉘는 죽음의 어떤 운명이 어머니를 제압했나요?
① 오래 끄는 병이었나요? ② 아니면 활의 여신 아르테미스께서
부드러운 화살을 갖고 찾아와 어머니를 죽이셨나요? […]”
“[… 아버지에게는] 힘겨운 노년이 다가오고 있단다. ③ 나도 그렇게 죽어 내 운명을 맞았지.
잘 겨냥한 활의 여신께서 부드러운 화살들을 갖고
궁전으로 찾아와 나를 죽이신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서글픈 쇠약으로 사지에서 생명력을
앗아가는 어떤 병이 나를 엄습한 것도 아니란다.
오히려, 영광스런 오뒷세우스여! 너와 네 조언들과 네 상냥함에 대한
그리움이 내게서 꿀처럼 달콤한 목숨을 앗아갔단다.”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나는 마음 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다가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의 혼백을 붙잡기로 작정했소.
나는 세 번이나 달려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어머니를 붙잡으려
했으나 세 번이나 어머니께서는 그림자처럼, 꿈처럼, 내 두 손에서
날아가버리셨소. 그래서 나는 마음이 더욱 더 쓰라리고
괴로워서 어머니를 향해 물 흐르듯 거침없이 말했소.
“어머니! 하데스의 집에서나마 우리 둘이 서로 얼싸안고
싸늘한 비탄을 실컷 즐기려고 제 가 어머니를 붙잡기를 열망하건만
어째서 어머니께서는 저를 기다려주시지 안나요?
아니면 제가 더욱 더 비탄하고 신음하도록
당당한 페르세포네께서 제게 환영을 보내주셨을 뿐인가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존경스런 어머니께서는 지체 없이 대답했소.
“아아! 내 아들아! 모든 이들 중에서 가장 불운한 자여!
제우스의 따님이신 페르세포네께서 너를 속이시는 것이 아니란다.
이것이 곧 인간이 죽게 되면 당하게 되는 운명이란다.
일단 목숨이 흰 뼈를 떠나게 되면,
근육은 더 이상 살과 뼈를 결합시키지 못하고
활활 타오르는 불의 강력한 힘이 그것들을 모두 없애버리지만
혼백은 꿈처럼 날아가 배회하게 되는 것이란다.”
토론하기
(1) 우리는 하루하루의 삶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며 살아가지만, 정작 자신이 ‘살아있다’라는 사실을 느끼거나 자각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음’이 각자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일상의 경험 속에서 생각해보고 이야기를 나눠보자.
(2)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우리는 먼 훗날 다가올 죽음을 어떤 마음으로 대비할 수 있을까?
해설읽기
어떤 죽음?
귀향의 조건을 듣기 위해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혼백을 만나러 저승에 내려운 오뒷세우스는 그곳에서 뜻밖에도 어머니 안티클레이아의 혼백을 만나게 된다. 트로이아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고향인 이타케를 떠나온지 20년이 흐르는 사이에 어머니가 죽은 것을 알게 된 오뒷세우스는 슬퍼하며 어머니에게 어떤 죽음이 어머니를 이곳으로 데려왔냐고 묻는다. 이 질문은 우리에게도 낯선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도 조문을 가면, 상주에게 애도를 표한 후에 ‘고인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를 묻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위의 대목에서 언급된 죽음의 세 가지 방식이다. 오뒷세우스는 어머니에게 ① 병으로 죽었는지, 아니면 ② 아르테미스의 화살에 맞아 죽었는지를 묻는다. 그러자 안티클레이아는 둘 다 아니라, 자신은 ③ 노년과 함께 자식에 대한 그리움 속에서 죽은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 대목은 죽음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가치관을 보여준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어떻게 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 생각한 것이 ‘어떻게 죽어야 가장 행복할까’하는 물음이다. 우선 ① 병사(病死)는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고대 그리스인들 역시 피하고 싶어했던 죽음이었다. 특히 질병은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으며, 일단 병에 걸리게 되면 젊은 사람도 마치 노인처럼 쇠약해져서 죽는다는 점에서 고대인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또한 환자는 병으로 인해 죽기 직전까지 고통 받는다는 점에서 그 삶 자체가 불행하다고 보았다.
다음으로 ② 아르테미스의 화살은 급사(急死)를 의미한다. 누군가가 특별한 이유 없이 급작스럽게 죽을 때, 고대 그리스인들은 죽은 사람이 남자인 경우에는 아폴론의 화살에 맞았다고 생각했으며, 여자인 경우에는 아르테미스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고 간주하였다. 그런 이유 때문에 레토 여신의 쌍둥이 남매인 아폴론과 아르테메스는 급사의 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예컨대 그리스인들은 페스트와 같은 급성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속절없이 죽어나갈 때, 아폴론과 아르테미스가 사람들을 향해 눈에 보이지 않는 화살을 쏜다고 말하며 공포에 떨곤 하였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고대인들은 이러한 급사 역시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는다는 점에서 불행한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오뒷세우스의 질문에 대하여 어머니는 앞의 두 가지를 모두 부정하고, ③ 자신이 노년(老年)으로 인해 죽었다고 대답한다. 이는 안티클레이아가 사고로 급사하거나 질병으로 고통받으며 죽은 것이 아니라, 천수를 누리고 늙어서 죽었음을 의미한다. 노년으로 인한 죽음은 그리스인들이 가장 행복하게 생각했던 죽음이다. 그것은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수명을 모두 누린다는 점에서 급사보다 나으며, 살아가는 동안 고통을 겪지 않는다는 점에서 병사보다 나은 것이었다. 요컨대 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한, 그리스인들이 보기에 가장 행복한 죽음이란 천수를 누리고 건강하게 살다 가는 것이라 하겠다.
죽음의 특성: 혼이 떠나자 몸이 해체되다.
눈 앞에서 사랑하던 어머니의 혼백을 만난 오뒷세우스는 그냥 물러서지 않는다. 그는 어머니를 붙잡으려고 세 차례나 시도하지만, 안티클레이아의 혼백은 마치 그림자나 꿈처럼 오뒷세우스의 손아귀를 빠져나간다. 그는 절망하여 혹시 눈 앞에 있는 것이 어머니의 혼백이 아니라, 저승의 여주인인 페르세포네가 보낸 허상이 아닐까 의심하지만, 어머니는 자신이 맞다고 말하며, 죽음이 인간에게 어떤 결과를 미치는지를 이야기해준다. 이어지는 안티클레이아의 말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인간의 생명과 죽음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잘 드러내준다.
먼저 ‘목숨이 흰 뼈를 떠난다’라는 대목은 죽음이 곧 혼과 몸의 분리임을 의미한다. 그리스인들은 생물과 무생물을 구별해주는 결정적인 차이가 바로 혼의 유무에 있다고 보았다. 혼은 생명의 원리로서 혼이 깃든 것은 살아있는 것이다. 이때 혼의 특징은 자기 운동성에 있다. 즉 혼이 깃든 생명체는 무생물과 달리 스스로 움직이며 살아간다. 반면에 죽음은 혼에서 몸이 빠져나가는 것이다. 운동의 원리가 빠져나간 이상, 죽은 자의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혼의 위상은 운동과 생명의 원리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위에서 “근육은 더 이상 살과 뼈를 결합시키지 못한다”라는 대목은 그리스인들이 혼을 생명의 원리일 뿐만 아니라, 신체를 유지시키는 결속의 원리로 간주했음을 암시한다. 우리의 살과 뼈을 비롯하여 각종 기관들은 다양한 물질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살아있는 동안 이것들을 서로 결속되어 유기적인 작용을 이어가지만, 죽고 난 뒤에는 신체는 그 기능이 정지되며 더 이상 결속을 유지하지 못한다. 즉 혼이 빠져나간 뒤에 몸은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고 자연의 요소들로 해체되는, 이른바 부패가 진행되는 것이다.
하지만 생명의 원리이자 신체를 결속시키며 움직이게 하는 혼은 막상 그 자체로 보면 마치 꿈이나 그림자처럼 손에 잡히지 않고 덧없는 것이라고 안티클레이아는 말한다. 몸을 움직이고 지배하는 혼을 물질과는 동떨어진 것처럼 간주하는 이러한 태도는 일견 모순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은 죽음에 관한 매우 중요한 사실, 즉 생명체에게 죽음이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라는 사실을 설명해준다. 왜냐하면 죽음은 혼과 몸의 분리인데, 만일 우리가 몸에서 빠져나간 혼을 다시 붙잡을 수만 있다면,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죽은 사람이 결코 되살아나지 않는다. 혼은 물체와 같이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빠져나간 혼을 붙잡아 다시 몸에 넣은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안티클레이아의 마지막 대목은 어머니의 혼백을 붙잡으려는 오뒷세우스의 부질없는 시도에 대한 설명이라 할 수 있다.
키워드
몸/신체, 무생물, 생명(의 원리), 생물, 죽음, 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