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뒷세이아>는 영웅 오뒷세우스의 모험담을 다룬 노래이다. 노래가 시작되면 시인은 신들의 회의 광경을 묘사한다. 제우스는 인간들이 평소에 신들의 경고를 알아채지 못하고 어리석은 짓을 일삼다가 파멸한 뒤에, 자기들의 무지를 탓하기보다는 거꾸로 신들을 원망한다며 한탄한다. 그때 딸인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개입하여, 인간인 오뒷세우스는 누구보다도 신을 공경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귀향을 하지 못한 채 요정 칼륍소에게 잡혀있다고 말하며, 오뒷세우스를 돌봐주지 않는 제우스를 원망한다.
고전본문
그에게 빛나는 눈의 여신 아테네가 대답했다.
“오오! 우리들의 아버지시여, 크로노스의 아드님이시여!
[…]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현명한 오뒷세우스 바로 그 불운한
사람이에요. 그는 벌서 오랫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바닷물에 둘러싸인 섬에서, 바다의 배꼽에서 고통 받고 있어요.
[… 그 섬에 살고 있는 요정인 칼륍소가] 지금 비탄에 잠긴 그 불행한 사람을 붙들어두고
이타케를 잊어버리도록 줄곧 감언이설로 호리고 있어요.
그러나 오뒷세우스는 고향 땅의 연기가 오르는 것이라도
보기를 열망하며 차라리 죽기를 바라고 있지요.
그럼에도 지금 그대의 마음은 도무지 움직이지 않고 있네요.
올륌포스의 주인이시여! 혹시 오뒷세우스가 넓은 트로이아에서,
아르고스인들의 함선 옆에서 그대에게 제물 바치기를 소홀히
했나요? 어째서 그대는 그에게 그토록 노여워하시나요, 제우스시여?”
구름을 모으는 제우스가 그녀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내 딸아, 너는 무슨 말을 그리 함부로 하느냐!
내 어찌 신과 같은 오뒷세우스를 잊었겠느냐?
그는 지혜에 있어서 인간들을 능가할 뿐만 아니라 넓은 하늘에 사는
불사신들에게 누구보다도 많은 제물을 바쳤느니라.
허나 대지를 떠받치는 포세이돈이 그를 끊임없이 노여워하는구나.
오뒷세우스가 모든 퀴클롭스들 가운데
가장 힘이 센, 신과 같은 폴뤼페모스의 눈을 멀게 했기 때문이지.
[…] 그때 이후로 대지를 흔드는 포세이돈은 오뒷세우스를 죽이지는 않되
그가 고향땅으로부터 멀리 떠돌아다니게 했던 것이니라.
자, 여기 있는 우리 모두 오뒷세우스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그의 귀향에 대해 궁리해봅시다.
포세이돈은 노여움을 풀 것이오. 혼자서는 결코
모든 불사신들에 맞서 대항하지 못할 테니 말이오.”
토론하기
(1) 여러분이 속해있는 공적인 모임이나(예컨대 학교) 사적인 모임(예컨대 동아리, 동호회)에서 하나의 사안을 놓고 의견이 갈릴 때, 여러분은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지, 왜 그런 방식을 취하는지 이야기해봅시다.
(2) 모임의 존폐 혹은 구성원들의 이익과 손해를 좌우하는 중요한 사안과 관련하여, 한 사람 혹은 소수가 다수의 의견에 반대하여 자기 의견을 고집하는 경우를 가정하고, 그에 관해 가상의 토론을 벌여봅시다.
해설읽기
* 오뒷세우스의 귀향을 둘러싸고 신들이 의견을 모으는 방식
이야기의 시작은 트로이아 전쟁이 끝나고 10년이 지난 어느 날 있었던 신들의 회합에서 시작된다. 신들의 왕인 제우스는 인간들이 신들의 경고를 듣지 않고 불행해진 뒤에 언제나 신들을 원망한다며 그들의 어리석음을 탓하고 있었다. 그때 제우스의 딸인 아테나가 오뒷세우스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작품의 주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된다. 아테나에 따르면, 오뒷세우스야말로 누구보다도 신들을 공경하고, 특히 제우스에게 많은 제물을 바쳤음에도 불구하고, 신들의 보호를 받기는커녕, 바다 요정 칼륍소에게 붙잡혀 귀향도 못 한 채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책임을 추궁하는 듯한 아테나의 발언에 제우스는 언짢아하며, 오뒷세우스가 귀향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탓이 아니라 동생인 포세이돈의 분노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오뒷세우스가 포세이돈의 아들인 폴뤼페모스의 눈을 멀게 해서 포세이돈이 그에게 분노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우스 자신은 오뒷세우스를 사랑하고 있으며, 마침 신들이 한 자리에 모였으니 그의 귀향을 궁리해보자고 제안한다.
신화 속 세계에서는 신과 인간이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신들은 불사이며, 압도적인 힘과 지혜를 가지고서 인간들을 다스린다. 그러한 신들의 모임에서 오뒷세우스의 귀향이 대화의 화두로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오뒷세우스는 이타케 지방의 왕으로서 그리스 연합군의 일원으로 트로이아 전쟁에 참전했다. 전쟁 10년만에 목마 작전을 성공시켜 트로이아를 멸망시켰으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포세이돈의 분노로 인해 다시 10년간 온 세상을 떠도는 중이다. 그런데 이 대목을 읽다 보면 궁금한 것이 하나 생긴다. 신은 인간보다 월등히 우월한 자로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인간을 살릴 수도, 파멸시킬 수도 있다. 정말로 제우스나 아테나가 오뒷세우스를 아끼고 사랑한다면, 그들은 아주 손쉽게 우리의 주인공을 고향으로 보내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전쟁이 끝난 뒤 10년이나 오뒷세우스를 방치하다가 이제 와서 고향에 보낼 궁리를 하는 그들의 모습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제우스는 아테나에게 답변하면서 포세이돈의 분노를 언급한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외눈박이 거인인 퀴클롭스족의 여인과 사랑을 나누었고, 그 결과 폴뤼페모스라는 아들이 태어났다. 그런데 귀향 중이던 오뒷세우스가 폴뤼페모스의 하나밖에 없는 눈을 멀게 했던 것이다. 이에 포세이돈은 분노하였고, 오뒷세우스의 귀향은 멀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오뒷세우스가 귀향하지 못하는 원인은 포세이돈의 분노 때문인 셈이다. 그런데 이 대목은 그리스 신화 속의 신들이 의사 결정의 방법으로 일종의 만장일치제와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아테나와 제우스의 발언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오뒷세우스는 신들을 공경해왔고 제물도 넉넉히 바침으로써 신들의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모든 신들이 오뒷세우스의 귀향을 바라고, 또 마음만 먹는다면 아주 손쉽게 그를 고향으로 보낼 수도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포세이돈, 단 한 명의 분노 때문이다. 민주적인 공동체들에서 대부분 채택하고 있는 다수결과 달리, 만장일치는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결정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구성원들 거의 모두가 지지하는 특정한 가치에 단 한 명이 반대하더라도, 그 한 명의 결정은 다수의 결정에 버금가는 것으로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결국 다른 모든 신들이 찬성한다 하더라도, 포세이돈이 끝까지 반대하는 한, 오뒷세우스의 귀향을 결의될 수 없는 셈이다.
만장일치제를 운영하는 공동체에서 하나의 사안을 결정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만장일치에 이를 때까지 끝없이 진행되는 토론이다. 이러한 만장일치제의 대표적인 예로는 ‘콘클라베’라 불리는 로마 바티칸의 교황 선출 방식을 들 수 있다. 선출에 참여하는 선거인단은 투표를 통해 다수를 취하고 소수를 배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모두가 합의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토론과 재투표를 반복한다. 그 외에도 학계나 문화, 예술계의 몇몇 특수한 조직들이나 공동체에서도 만장일치제를 채택하는 경우가 있다.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이 더 좋은 것인지, 아니면 만장일치제가 더 좋은 것인지는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확실히 만장일치제는 다수결에 비해 다소 답답하고 비효율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장일치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절대적인 존중이라는 가치관이 담겨있다. 그리고 개개인에 대한 절대적인 존중은 평등의 이념에 기반한다. 즉 공동체의 성원의 결정이 하나하나 모두 중요하지, 그 정도가 다수냐 소수냐 하는 양에 의해 결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태도는 민주주의의 선거 원칙들 중 하나인 평등선거의 이념에서도 잘 나타난다. 주식회사의 주주가 자신이 보유한 주식만큼 권리를 행사하는 것과 달리, 평등선거의 원칙 하에서는 부자나 빈자,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1표씩이 부과된다. 사회지도층이나 나라에 공헌을 한 사람이라고 해서, 더 많은 표를 행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두가 같은 인간으로서 평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인의 평등권이 극단적으로 강조되는 것이 바로 만장일치제이다. 소수 의견, 더 나아가 단 한 사람의 의견이라 하더라도, 그 의견은 다수의 의견들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신들의 회합으로 넘어가자. 그리스 신화는 다신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세계는 수많은 신들로 이루어져있다. 그리고 그 신들 사이에는 복잡한 위계 질서가 있다. 제우스는 신들의 왕이고, 포세인돈은 그의 동생이며, 아테나는 딸이다. 그 외에도 태양이나 달, 산이나 하천 등과 같은 자연을 상징하는 신들도 있고, 정의나 자유, 기억이나 교양 등 추상적인 가치를 상징하는 신들도 있다. 제우스는 이들 모두 위에 군림하며 세상을 다스리지만, 신 그 자체로서 갖는 권리는 제우스나 다른 신들 모두에게 평등하게 부여되어 있다. 오뒷세우스는 다른 모든 신들에게 사랑을 받되, 오직 포세이돈에게만 미움을 받는다. 하지만 제우스의 지배권도, 다른 모든 신들의 권리를 합친 것도, 포세이돈의 결정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런 이유로 제우스와 아테나는 오뒷세우스가 전쟁 후 10년 동안이나 귀향을 못한 채 헤매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뒷세우스의 귀향을 결정할 방법은 과연 없을까?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만장일치제에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반대자를 설득하는 것이다. 즉 제우스를 비롯한 모든 신들이 포세이돈을 설득함으로써 오뒷세우스의 귀향을 만장일치로 결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포세이돈이 끝까지 반대한다면? 위 인용문의 마지막 대목에서 제우스는 신들을 향해 오뒷세우스의 귀향에 대해 궁리해보자고 제안하며, ‘포세이돈 혼자서는 모든 신들에 대항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발언은 무엇을 의미할까? 혹시 만장일치가 아니라 다수의 힘으로 포세이돈을 밀어붙이자는 말일까? 사실 제우스의 발언은 현재 신들의 회의장에 포세이돈이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만일 회합 장소에 포세이돈이 있었다면, 제우스는 ‘포세이돈 혼자서는 대항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식의 발언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포세이돈이 불참한 상황에서 제우스는 설득과는 전혀 다른 문제 해결의 방법을 찾아낸다. 그것은 반대자가 없는 상황에서 남은 신들끼리 결정을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포세이돈이 본의 아니게 기권을 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만장일치제에서는 단 한 명이라도 반대를 하면, 어떠한 결정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한 명이 기권을 한다면, 남은 사람들이 만장일치로 결정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미 결정이 이루어지고 난 뒤에는 포세이돈이 아무리 화를 내고 항의를 해도, ‘그 혼자서 모든 신들을 당해낼 수는 없으리라’는 것이다.
만장일치제에서 끝까지 반대하는 구성원을 배제시키고 남은 사람들끼리 결정을 해버리는 일은 인간 사회에서도 간혹 일어나곤 하는 일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종종 고대 그리스보다 더 이전 시대인 상고기 그리스 시대의 귀족들의 모습이 반영된 것이었으리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요컨대 제우스와 신들의 회합은 결국 인간들의 회합과 갈등, 그리고 갈등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한 가지 방식을 반영한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볼 수 있다. 그 방식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말이다.
키워드
갈등, 개인과 공동체, 귀향, 다수결, 만장일치, 민주주의, 오뒷세우스
전후맥락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뒷세이아>는 영웅 오뒷세우스의 모험담을 다룬 노래이다. 노래가 시작되면 시인은 신들의 회의 광경을 묘사한다. 제우스는 인간들이 평소에 신들의 경고를 알아채지 못하고 어리석은 짓을 일삼다가 파멸한 뒤에, 자기들의 무지를 탓하기보다는 거꾸로 신들을 원망한다며 한탄한다. 그때 딸인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개입하여, 인간인 오뒷세우스는 누구보다도 신을 공경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귀향을 하지 못한 채 요정 칼륍소에게 잡혀있다고 말하며, 오뒷세우스를 돌봐주지 않는 제우스를 원망한다.
고전본문
그에게 빛나는 눈의 여신 아테네가 대답했다.
“오오! 우리들의 아버지시여, 크로노스의 아드님이시여!
[…]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현명한 오뒷세우스 바로 그 불운한
사람이에요. 그는 벌서 오랫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바닷물에 둘러싸인 섬에서, 바다의 배꼽에서 고통 받고 있어요.
[… 그 섬에 살고 있는 요정인 칼륍소가] 지금 비탄에 잠긴 그 불행한 사람을 붙들어두고
이타케를 잊어버리도록 줄곧 감언이설로 호리고 있어요.
그러나 오뒷세우스는 고향 땅의 연기가 오르는 것이라도
보기를 열망하며 차라리 죽기를 바라고 있지요.
그럼에도 지금 그대의 마음은 도무지 움직이지 않고 있네요.
올륌포스의 주인이시여! 혹시 오뒷세우스가 넓은 트로이아에서,
아르고스인들의 함선 옆에서 그대에게 제물 바치기를 소홀히
했나요? 어째서 그대는 그에게 그토록 노여워하시나요, 제우스시여?”
구름을 모으는 제우스가 그녀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내 딸아, 너는 무슨 말을 그리 함부로 하느냐!
내 어찌 신과 같은 오뒷세우스를 잊었겠느냐?
그는 지혜에 있어서 인간들을 능가할 뿐만 아니라 넓은 하늘에 사는
불사신들에게 누구보다도 많은 제물을 바쳤느니라.
허나 대지를 떠받치는 포세이돈이 그를 끊임없이 노여워하는구나.
오뒷세우스가 모든 퀴클롭스들 가운데
가장 힘이 센, 신과 같은 폴뤼페모스의 눈을 멀게 했기 때문이지.
[…] 그때 이후로 대지를 흔드는 포세이돈은 오뒷세우스를 죽이지는 않되
그가 고향땅으로부터 멀리 떠돌아다니게 했던 것이니라.
자, 여기 있는 우리 모두 오뒷세우스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그의 귀향에 대해 궁리해봅시다.
포세이돈은 노여움을 풀 것이오. 혼자서는 결코
모든 불사신들에 맞서 대항하지 못할 테니 말이오.”
토론하기
(1) 여러분이 속해있는 공적인 모임이나(예컨대 학교) 사적인 모임(예컨대 동아리, 동호회)에서 하나의 사안을 놓고 의견이 갈릴 때, 여러분은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지, 왜 그런 방식을 취하는지 이야기해봅시다.
(2) 모임의 존폐 혹은 구성원들의 이익과 손해를 좌우하는 중요한 사안과 관련하여, 한 사람 혹은 소수가 다수의 의견에 반대하여 자기 의견을 고집하는 경우를 가정하고, 그에 관해 가상의 토론을 벌여봅시다.
해설읽기
* 오뒷세우스의 귀향을 둘러싸고 신들이 의견을 모으는 방식
이야기의 시작은 트로이아 전쟁이 끝나고 10년이 지난 어느 날 있었던 신들의 회합에서 시작된다. 신들의 왕인 제우스는 인간들이 신들의 경고를 듣지 않고 불행해진 뒤에 언제나 신들을 원망한다며 그들의 어리석음을 탓하고 있었다. 그때 제우스의 딸인 아테나가 오뒷세우스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작품의 주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된다. 아테나에 따르면, 오뒷세우스야말로 누구보다도 신들을 공경하고, 특히 제우스에게 많은 제물을 바쳤음에도 불구하고, 신들의 보호를 받기는커녕, 바다 요정 칼륍소에게 붙잡혀 귀향도 못 한 채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책임을 추궁하는 듯한 아테나의 발언에 제우스는 언짢아하며, 오뒷세우스가 귀향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탓이 아니라 동생인 포세이돈의 분노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오뒷세우스가 포세이돈의 아들인 폴뤼페모스의 눈을 멀게 해서 포세이돈이 그에게 분노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우스 자신은 오뒷세우스를 사랑하고 있으며, 마침 신들이 한 자리에 모였으니 그의 귀향을 궁리해보자고 제안한다.
신화 속 세계에서는 신과 인간이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신들은 불사이며, 압도적인 힘과 지혜를 가지고서 인간들을 다스린다. 그러한 신들의 모임에서 오뒷세우스의 귀향이 대화의 화두로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오뒷세우스는 이타케 지방의 왕으로서 그리스 연합군의 일원으로 트로이아 전쟁에 참전했다. 전쟁 10년만에 목마 작전을 성공시켜 트로이아를 멸망시켰으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포세이돈의 분노로 인해 다시 10년간 온 세상을 떠도는 중이다. 그런데 이 대목을 읽다 보면 궁금한 것이 하나 생긴다. 신은 인간보다 월등히 우월한 자로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인간을 살릴 수도, 파멸시킬 수도 있다. 정말로 제우스나 아테나가 오뒷세우스를 아끼고 사랑한다면, 그들은 아주 손쉽게 우리의 주인공을 고향으로 보내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전쟁이 끝난 뒤 10년이나 오뒷세우스를 방치하다가 이제 와서 고향에 보낼 궁리를 하는 그들의 모습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제우스는 아테나에게 답변하면서 포세이돈의 분노를 언급한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외눈박이 거인인 퀴클롭스족의 여인과 사랑을 나누었고, 그 결과 폴뤼페모스라는 아들이 태어났다. 그런데 귀향 중이던 오뒷세우스가 폴뤼페모스의 하나밖에 없는 눈을 멀게 했던 것이다. 이에 포세이돈은 분노하였고, 오뒷세우스의 귀향은 멀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오뒷세우스가 귀향하지 못하는 원인은 포세이돈의 분노 때문인 셈이다. 그런데 이 대목은 그리스 신화 속의 신들이 의사 결정의 방법으로 일종의 만장일치제와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아테나와 제우스의 발언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오뒷세우스는 신들을 공경해왔고 제물도 넉넉히 바침으로써 신들의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모든 신들이 오뒷세우스의 귀향을 바라고, 또 마음만 먹는다면 아주 손쉽게 그를 고향으로 보낼 수도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포세이돈, 단 한 명의 분노 때문이다. 민주적인 공동체들에서 대부분 채택하고 있는 다수결과 달리, 만장일치는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결정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구성원들 거의 모두가 지지하는 특정한 가치에 단 한 명이 반대하더라도, 그 한 명의 결정은 다수의 결정에 버금가는 것으로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결국 다른 모든 신들이 찬성한다 하더라도, 포세이돈이 끝까지 반대하는 한, 오뒷세우스의 귀향을 결의될 수 없는 셈이다.
만장일치제를 운영하는 공동체에서 하나의 사안을 결정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만장일치에 이를 때까지 끝없이 진행되는 토론이다. 이러한 만장일치제의 대표적인 예로는 ‘콘클라베’라 불리는 로마 바티칸의 교황 선출 방식을 들 수 있다. 선출에 참여하는 선거인단은 투표를 통해 다수를 취하고 소수를 배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모두가 합의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토론과 재투표를 반복한다. 그 외에도 학계나 문화, 예술계의 몇몇 특수한 조직들이나 공동체에서도 만장일치제를 채택하는 경우가 있다.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이 더 좋은 것인지, 아니면 만장일치제가 더 좋은 것인지는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확실히 만장일치제는 다수결에 비해 다소 답답하고 비효율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장일치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절대적인 존중이라는 가치관이 담겨있다. 그리고 개개인에 대한 절대적인 존중은 평등의 이념에 기반한다. 즉 공동체의 성원의 결정이 하나하나 모두 중요하지, 그 정도가 다수냐 소수냐 하는 양에 의해 결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태도는 민주주의의 선거 원칙들 중 하나인 평등선거의 이념에서도 잘 나타난다. 주식회사의 주주가 자신이 보유한 주식만큼 권리를 행사하는 것과 달리, 평등선거의 원칙 하에서는 부자나 빈자,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1표씩이 부과된다. 사회지도층이나 나라에 공헌을 한 사람이라고 해서, 더 많은 표를 행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두가 같은 인간으로서 평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인의 평등권이 극단적으로 강조되는 것이 바로 만장일치제이다. 소수 의견, 더 나아가 단 한 사람의 의견이라 하더라도, 그 의견은 다수의 의견들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신들의 회합으로 넘어가자. 그리스 신화는 다신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세계는 수많은 신들로 이루어져있다. 그리고 그 신들 사이에는 복잡한 위계 질서가 있다. 제우스는 신들의 왕이고, 포세인돈은 그의 동생이며, 아테나는 딸이다. 그 외에도 태양이나 달, 산이나 하천 등과 같은 자연을 상징하는 신들도 있고, 정의나 자유, 기억이나 교양 등 추상적인 가치를 상징하는 신들도 있다. 제우스는 이들 모두 위에 군림하며 세상을 다스리지만, 신 그 자체로서 갖는 권리는 제우스나 다른 신들 모두에게 평등하게 부여되어 있다. 오뒷세우스는 다른 모든 신들에게 사랑을 받되, 오직 포세이돈에게만 미움을 받는다. 하지만 제우스의 지배권도, 다른 모든 신들의 권리를 합친 것도, 포세이돈의 결정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런 이유로 제우스와 아테나는 오뒷세우스가 전쟁 후 10년 동안이나 귀향을 못한 채 헤매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뒷세우스의 귀향을 결정할 방법은 과연 없을까?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만장일치제에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반대자를 설득하는 것이다. 즉 제우스를 비롯한 모든 신들이 포세이돈을 설득함으로써 오뒷세우스의 귀향을 만장일치로 결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포세이돈이 끝까지 반대한다면? 위 인용문의 마지막 대목에서 제우스는 신들을 향해 오뒷세우스의 귀향에 대해 궁리해보자고 제안하며, ‘포세이돈 혼자서는 모든 신들에 대항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발언은 무엇을 의미할까? 혹시 만장일치가 아니라 다수의 힘으로 포세이돈을 밀어붙이자는 말일까? 사실 제우스의 발언은 현재 신들의 회의장에 포세이돈이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만일 회합 장소에 포세이돈이 있었다면, 제우스는 ‘포세이돈 혼자서는 대항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식의 발언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포세이돈이 불참한 상황에서 제우스는 설득과는 전혀 다른 문제 해결의 방법을 찾아낸다. 그것은 반대자가 없는 상황에서 남은 신들끼리 결정을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포세이돈이 본의 아니게 기권을 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만장일치제에서는 단 한 명이라도 반대를 하면, 어떠한 결정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한 명이 기권을 한다면, 남은 사람들이 만장일치로 결정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미 결정이 이루어지고 난 뒤에는 포세이돈이 아무리 화를 내고 항의를 해도, ‘그 혼자서 모든 신들을 당해낼 수는 없으리라’는 것이다.
만장일치제에서 끝까지 반대하는 구성원을 배제시키고 남은 사람들끼리 결정을 해버리는 일은 인간 사회에서도 간혹 일어나곤 하는 일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종종 고대 그리스보다 더 이전 시대인 상고기 그리스 시대의 귀족들의 모습이 반영된 것이었으리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요컨대 제우스와 신들의 회합은 결국 인간들의 회합과 갈등, 그리고 갈등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한 가지 방식을 반영한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볼 수 있다. 그 방식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말이다.
키워드
갈등, 개인과 공동체, 귀향, 다수결, 만장일치, 민주주의, 오뒷세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