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뒷세이아>는 영웅 오뒷세우스의 모험담을 다룬 노래이다. 노래가 시작되면 시인은 신들의 회의 광경을 묘사한다. 제우스는 인간들이 평소에 신들의 경고를 알아채지 못하고 어리석은 짓을 일삼다가 파멸한 뒤에, 자기들의 무지를 탓하기보다는 거꾸로 신들을 원망한다며 한탄한다. 그때 딸인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개입하여, 인간인 오뒷세우스는 누구보다도 신을 공경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귀향을 하지 못한 채 요정 칼륍소에게 잡혀있다고 말하며, 오뒷세우스를 돌봐주지 않는 제우스를 원망한다.
고전본문
그러니 아테네인 여러분! 지금 나는 나 자신을 위해 항변을 하고 있는 게 아니오. 물론 혹자는 그리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오히려 나는 여러분을 위해서 항변을 하고 있소. 즉 여러분이 나에게 유죄표를 던짐으로써 신이 여러분에게 준 선물에 뭔가 잘못을 범하지 말라고 항변을 하고 있는 것이오. 여러분이 나를 죽인다면 나와 같은 유의 다른 사람은 좀처럼 발견하지 못할 테니까요. 좀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굳이 말을 하자면 나는 마치 크고 혈통은 좋지만 그 덩치 때문에 꽤나 굼뜬 말이 깨어나기 위해 등에가 필요한 것처럼, 신이 도시를 위해 붙여놓은 사람이라 할 수 있소. 하루 종일 장소를 불문하고 여러분 곁에 붙어 앉아 끊임없이 여러분 각각을 일깨우고 설득하며 부끄럽게 만드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여러분! 나와 같은 유의 다른 사람이 여러분 곁에 쉽게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요, 여러분이 내말을 믿는다면, 나를 살려두겠지요. 반면에 어쩌면 여러분은 마치 꾸벅꾸벅 졸다가 깨어난 사람들처럼 짜증을 내면서 아뉘토스의 말을 따라 나를 ‘탁’ 쳐서 쉽게 죽이고는 나머지 인생을 쿨쿨 자면서 보낼 수도 있소. 신이 여러분을 걱정하여 다른 누군가를 여러분에게 보내주지 않는 한 말이오.
토론하기
(1) 아테네인들은 소크라테스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불경죄로 몰아 죽게 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어떨까? 혹시 비슷한 일이 일어났거나 일어나고 있지는 않을까? 우리는 과연 우리 사회 안에 있을 지도 모르는 위인을 알아볼 수 있을까?
해설읽기
소크라테스는 고발자들의 비난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멜레토스와의 문답식 대화를 통해 이를 보여주었다. 또한 그는 훌륭한 자가 열등한 자에게 해를 입을 수는 없다고 주장하며, 설령 자신이 죽는다 하더라도, 죽음은 결코 해가 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따라서 고발자들은 소크라테스에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재판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되는 쪽은 누구일까?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사형을 당해 죽을 경우,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아테네인들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소크라테스는 지금껏 살아온 삶은 ‘인간이 자신의 무지를 깨달아야 한다’는 델피의 신이 내린 경고를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는 좋고 나쁜 것들에 관한 사람들의 믿음과 판단이 사실은 오류이거나 허위의식일 수 있다는 것을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제기하면서, 자신의 이러한 활동이야말로 신에게 봉사하는 일이라고 확신해왔다. 즉 신은 아테네인들을 위해 소크라테스를 심부름꾼으로 보내 그들의 무지를 깨닫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의 행동은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자신을 신이 사람들을 위해 보내준 선물이라고 단언한다. 사실 법정에서 재판관들을 상대로 자신이 신이 보낸 선물이라는 주장을 한다는 것은 적잖이 당혹스러우며, 또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는 재판관들의 눈치를 고려하지 않은 도발적인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재판의 목적은 승리이며, 이를 위해 법정에서 행하는 모든 발언은 재판관들을 설득하는 데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대의 법정에서는 진실을 밝히는 주장 못지않게, 재판관들의 마음을 얻는 발언 역시 중요하게 간주되었다. 그러다 보니 설득의 기술을 가르치는 수사가들 또한 재판관들의 권위를 높여주거나 그들의 판단력을 찬양하는 방법을 설득의 중요한 기술로 다루곤 하였다. 그렇게 보았을 때, ‘자신은 신이 아테네인들에게 보낸 선물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발언은 재판관들의 기분을 거의(혹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그의 발언에는 재판관들을 부담스럽게 하거나, 심지어는 기분 나쁘게 만들 소지가 다분하다. 왜냐하면 만일 재판관들이 유죄 판결을 내려 소크라테스를 죽게 만든다면, 아테네인들(재판관들 역시 아테네 시민들이다!)은 신이 보낸 선물을 잃게 되는 것이요, 이는 도시 전체로 볼 때 커다란 손해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재판관들이 소크라테스를 죽게 만드는 것은 신의 모처럼 보내준 선물을 파괴한다는 것이며, 인간이 신의 호의를 무시하고 파괴하는 것은 명백한 불경죄에 해당된다. 따라서 재판관들이 소크라테스에게 유죄 판결을 내려서 그를 죽게 할 경우, 그것은 도시국가에게 있어서 커다란 손해일 뿐만 아니라, 유죄 판결 자체가 불경죄를 범하는 것일 수도 있음을 소크라테스는 은근히 경고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재판관들의 귀를 만족시키는 발언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명백하게 드러내는 쪽을 택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신이 보낸 선물 역할을 하는지를 말과 등에라는 구체적인 비유를 통해서 자세히 언급한다. 즉 그는 아테네인들은 훌륭한 혈통과 좋은 체구를 가졌지만, 그 크기 때문에 동작이 굼뜨고 둔감한 말에 비유한다. 그러한 말의 각성을 위해서는 등에가 필요한데, 바로 소크라테스 자신이 그러한 등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즉 등에가 말 주변을 날아다니며 귀찮게 물어뜯음으로써 말을 자극하여 움직이게 하듯이, 소크라테스 역시 시민들에게 귀찮게 질문을 해댐으로써 시민들의 영혼을 자극하여 자신의 무지를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소크라테스는 말과 등에의 비유를 통해서 자신이 시민들의 각성을 위해 신이 보낸 선물이라는 주장의 의미를 훌륭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 비유가 그저 신이 보낸 선물의 의미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비극적인 운명 역시 암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말은 등에로부터 자극을 받아 깨어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등에가 윙윙거리는 것을 귀찮게 여기고는 꼬리를 휘둘러 등에를 간단히 쳐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등에처럼 끊임없이 사람들을 붙들고서 질문을 해댔지만, 그것을 귀찮게 여기고 기분 나빠한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를 불경죄로 고발하여 법정에 세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신이 인간에게 보낸 선물로서 더할 나위 없는 가치와 중요성을 지니지만,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말을 귀찮게 하는 한낱 등에에 불과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키워드
위인, 유익함, 혼의 각성
전후맥락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뒷세이아>는 영웅 오뒷세우스의 모험담을 다룬 노래이다. 노래가 시작되면 시인은 신들의 회의 광경을 묘사한다. 제우스는 인간들이 평소에 신들의 경고를 알아채지 못하고 어리석은 짓을 일삼다가 파멸한 뒤에, 자기들의 무지를 탓하기보다는 거꾸로 신들을 원망한다며 한탄한다. 그때 딸인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개입하여, 인간인 오뒷세우스는 누구보다도 신을 공경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귀향을 하지 못한 채 요정 칼륍소에게 잡혀있다고 말하며, 오뒷세우스를 돌봐주지 않는 제우스를 원망한다.
고전본문
그러니 아테네인 여러분! 지금 나는 나 자신을 위해 항변을 하고 있는 게 아니오. 물론 혹자는 그리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오히려 나는 여러분을 위해서 항변을 하고 있소. 즉 여러분이 나에게 유죄표를 던짐으로써 신이 여러분에게 준 선물에 뭔가 잘못을 범하지 말라고 항변을 하고 있는 것이오. 여러분이 나를 죽인다면 나와 같은 유의 다른 사람은 좀처럼 발견하지 못할 테니까요. 좀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굳이 말을 하자면 나는 마치 크고 혈통은 좋지만 그 덩치 때문에 꽤나 굼뜬 말이 깨어나기 위해 등에가 필요한 것처럼, 신이 도시를 위해 붙여놓은 사람이라 할 수 있소. 하루 종일 장소를 불문하고 여러분 곁에 붙어 앉아 끊임없이 여러분 각각을 일깨우고 설득하며 부끄럽게 만드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여러분! 나와 같은 유의 다른 사람이 여러분 곁에 쉽게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요, 여러분이 내말을 믿는다면, 나를 살려두겠지요. 반면에 어쩌면 여러분은 마치 꾸벅꾸벅 졸다가 깨어난 사람들처럼 짜증을 내면서 아뉘토스의 말을 따라 나를 ‘탁’ 쳐서 쉽게 죽이고는 나머지 인생을 쿨쿨 자면서 보낼 수도 있소. 신이 여러분을 걱정하여 다른 누군가를 여러분에게 보내주지 않는 한 말이오.
토론하기
(1) 아테네인들은 소크라테스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불경죄로 몰아 죽게 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어떨까? 혹시 비슷한 일이 일어났거나 일어나고 있지는 않을까? 우리는 과연 우리 사회 안에 있을 지도 모르는 위인을 알아볼 수 있을까?
해설읽기
소크라테스는 고발자들의 비난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멜레토스와의 문답식 대화를 통해 이를 보여주었다. 또한 그는 훌륭한 자가 열등한 자에게 해를 입을 수는 없다고 주장하며, 설령 자신이 죽는다 하더라도, 죽음은 결코 해가 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따라서 고발자들은 소크라테스에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재판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되는 쪽은 누구일까?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사형을 당해 죽을 경우,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아테네인들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소크라테스는 지금껏 살아온 삶은 ‘인간이 자신의 무지를 깨달아야 한다’는 델피의 신이 내린 경고를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는 좋고 나쁜 것들에 관한 사람들의 믿음과 판단이 사실은 오류이거나 허위의식일 수 있다는 것을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제기하면서, 자신의 이러한 활동이야말로 신에게 봉사하는 일이라고 확신해왔다. 즉 신은 아테네인들을 위해 소크라테스를 심부름꾼으로 보내 그들의 무지를 깨닫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의 행동은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자신을 신이 사람들을 위해 보내준 선물이라고 단언한다. 사실 법정에서 재판관들을 상대로 자신이 신이 보낸 선물이라는 주장을 한다는 것은 적잖이 당혹스러우며, 또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는 재판관들의 눈치를 고려하지 않은 도발적인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재판의 목적은 승리이며, 이를 위해 법정에서 행하는 모든 발언은 재판관들을 설득하는 데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대의 법정에서는 진실을 밝히는 주장 못지않게, 재판관들의 마음을 얻는 발언 역시 중요하게 간주되었다. 그러다 보니 설득의 기술을 가르치는 수사가들 또한 재판관들의 권위를 높여주거나 그들의 판단력을 찬양하는 방법을 설득의 중요한 기술로 다루곤 하였다. 그렇게 보았을 때, ‘자신은 신이 아테네인들에게 보낸 선물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발언은 재판관들의 기분을 거의(혹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그의 발언에는 재판관들을 부담스럽게 하거나, 심지어는 기분 나쁘게 만들 소지가 다분하다. 왜냐하면 만일 재판관들이 유죄 판결을 내려 소크라테스를 죽게 만든다면, 아테네인들(재판관들 역시 아테네 시민들이다!)은 신이 보낸 선물을 잃게 되는 것이요, 이는 도시 전체로 볼 때 커다란 손해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재판관들이 소크라테스를 죽게 만드는 것은 신의 모처럼 보내준 선물을 파괴한다는 것이며, 인간이 신의 호의를 무시하고 파괴하는 것은 명백한 불경죄에 해당된다. 따라서 재판관들이 소크라테스에게 유죄 판결을 내려서 그를 죽게 할 경우, 그것은 도시국가에게 있어서 커다란 손해일 뿐만 아니라, 유죄 판결 자체가 불경죄를 범하는 것일 수도 있음을 소크라테스는 은근히 경고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재판관들의 귀를 만족시키는 발언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명백하게 드러내는 쪽을 택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신이 보낸 선물 역할을 하는지를 말과 등에라는 구체적인 비유를 통해서 자세히 언급한다. 즉 그는 아테네인들은 훌륭한 혈통과 좋은 체구를 가졌지만, 그 크기 때문에 동작이 굼뜨고 둔감한 말에 비유한다. 그러한 말의 각성을 위해서는 등에가 필요한데, 바로 소크라테스 자신이 그러한 등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즉 등에가 말 주변을 날아다니며 귀찮게 물어뜯음으로써 말을 자극하여 움직이게 하듯이, 소크라테스 역시 시민들에게 귀찮게 질문을 해댐으로써 시민들의 영혼을 자극하여 자신의 무지를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소크라테스는 말과 등에의 비유를 통해서 자신이 시민들의 각성을 위해 신이 보낸 선물이라는 주장의 의미를 훌륭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 비유가 그저 신이 보낸 선물의 의미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비극적인 운명 역시 암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말은 등에로부터 자극을 받아 깨어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등에가 윙윙거리는 것을 귀찮게 여기고는 꼬리를 휘둘러 등에를 간단히 쳐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등에처럼 끊임없이 사람들을 붙들고서 질문을 해댔지만, 그것을 귀찮게 여기고 기분 나빠한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를 불경죄로 고발하여 법정에 세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신이 인간에게 보낸 선물로서 더할 나위 없는 가치와 중요성을 지니지만,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말을 귀찮게 하는 한낱 등에에 불과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키워드
위인, 유익함, 혼의 각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