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불경죄로 고발되어 법정에 선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도시를 해롭게 하는 사람이기는커녕, 오히려 자기는 아테네인들을 위해 신이 보낸 선물이라는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재판관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가난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전본문
내가 바로 신이 이 나라에 선물로 주었다고 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다음의 사실로부터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내가 이 숱한 세월 동안 나 자신의 일은 일절 돌보지 않았고, 집안일조차 돌보지 않은 채 방치하고 견딘 반면, 줄곧 여러분의 일에 몰두해왔다는 사실(마치 여러분의 아버지나 형처럼 여러분 각자에게 개인적으로 찾아가 덕을 돌보라고 설득하면서 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적인 일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이오. 물론 내가 이런 일에서 뭔가 이익을 얻고 있다든지, 보수를 받으며 이런 권고를 해왔다면, 그런 행동을 할 만한 어떤 이유를 갖는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오. 하지만 지금 여러분도 직접 보고 계시다시피, 고발자들이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그토록 뻔뻔스럽게 비난을 해대면서도, 적어도 이것, 그러니까 내가 누군가에게 보수를 받아냈다거나 요구한 적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증인을 내세우는 뻔뻔스러움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나로서는 내가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증인을 내세울 수 있소. 그것은 바로 나의 가난입니다.
토론하기
(1) 소크라테스는 자기처럼 자신의 일에는 무관심하고 오직 타인의 일을 돌보는 데 열중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일이라고 단언한다. 이런 극단적으로 보이는 이타주의적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해설읽기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테네인들을 위해 신이 보낸 선물이라고 주장하며, 재판관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든다. 그것은 소크라테스가 오랜 시간(아마도 평생!) 자기 자신이 집안일은 돌보지 않고, 오직 시민들의 일에만 관심을 기울였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시민들의 일이란 대화를 통해 시민들이 겪는 이중의 무지를 깨닫게 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처럼 스스로에게 무관심하고 타인의 일에 헌신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에 속하는 게 아니라고 단언한다. 즉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신이 자기를 아테네인들에게 보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만으로는 자신이 신의 선물이라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치 않다. 왜냐하면 누군가는 소크라테스가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돈을 벌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듣고 즉각적으로 소피스트를 떠올렸을 수 있다. 왜냐하면 소피스트들은 젊은이들에게 돈을 받고 덕을 가르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결코 가르침을 대가로 보수를 받거나 요구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며, 그 증거로 자신의 가난함을 든다. 실제로 고대의 증언들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돈을 버는 일에는 무관심했고, 사람들과 대화를 이어나가는 데만 몰두했다고 한다. 또한 그의 아내인 크산티페는 집안일에 무관심했던 소크라테스를 한심스러워하여 종종 바가지를 긁곤 했는데, 그런 이유로 그녀는 서양 철학사에서 악처(惡妻)의 대명사라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불명예는 적잖이 부당한 것처럼 보인다. 위의 대목을 비롯하여 고대의 증언들을 살펴보면, 크산티페의 처신은 집안일에 무관심한 가장에 맞선 생존의 발버둥에 가깝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기를 돌보지 않고 타인만을 돌보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자기희생을 동반한 다소 극단적인 이타주의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뿐만 아니라 가족들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로 보일 수도 있다. 소크라테스의 주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가 눈여겨 볼 대목은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신의 선물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과 가정을 돌보지 않고 남의 일에 몰두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속하지 않은 일이 아니겠냐고 단언하는 부분이다. 오늘날의 상식에서는 자기 일을 내팽개치고 남의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적잖이 한심한 모습으로 보이겠지만, 사실 이러한 주장의 이면에는 신과 인간의 차이에 대한 인식이 숨어있다. 불사인 신과 달리, 인간은 유한하며 완전하지 못한 존재자이다. 그래서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끊임없이 죽음에 맞서 저항해야 한다. 특히 고대인들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자족성의 결여로 이해한다. 즉 인간은 굶어죽지 않기 위해 외부로부터 양분을 섭취해야 하며, 스스로 혹한과 혹서를 버티지 못하기에 외부의 재료를 가지고서 옷과 집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요컨대 자족적이지 못한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무엇인가를 획득하여 스스로를 돌봐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가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 개개인은 비록 죽지만, 저마다 자신의 일부를 떼어내어 살아가게 하는데, 그것이 바로 자식이다. 즉 가족을 구성하여 자손을 이어간다는 것은 근본적인 의미에서 인간이 (자식을 매개로 하여 간접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려는 시도인 것이다. 이렇듯 신과 비교하여 인간의 유한성을 이해했을 때, 위의 대목은 그 의미가 좀 더 분명해진다. 자신과 가족을 건사한다는 것은 인간의 생존을 이어나가려는 지극히 본성적인 일이다. 반면에 신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신들은 애초에 불사이며, 모든 면에서 완전하고 자족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들의 관심사는 자기 자신이나 가족이 아니라, 이 세상을 지배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일이 된다. 한편, 소크라테스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과 가족의 일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반면에, 그는 자기 이외의 것들, 즉 다른 사람들의 혼을 돌보는 일에만 몰두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소크라테스가 해온 것들은 인간의 영역에 속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신들의 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결코 보수를 받거나 요구한 적이 없다는 대목에 대해 생각해보자. 많은 사람들은 이 대목을 읽으면서 소크라테스 시대의 대중 지식인이자 교육자들인 소피스트들을 연상시키곤 한다. 소피스트는 ‘지혜로운 자’를 뜻하는그리스어 ‘소포스(sophos)’에서 파생된 말로 처음에는 ‘소포스’와 마찬가지로 ‘소피스트’ 역시 ‘지혜로운 자’를 의미했다. 하지만 조금씩 시간이 흐르면서 서기전 5세기 무렵에 이르러 ‘소피스트’는 ‘지혜를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때 소피스트들이 가르친 지혜는 의술이나 건축술과 같은 전문 지식이 아니라, 정의나 절제, 용기 등과 같이 공동체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한결 더 일반적인 지혜였다. 사람들은 이렇듯 공동체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지혜와 용기, 절제, 정의 등을 ‘덕’이라고 불렀다. 원래 덕은 어린 시절부터 신화 속의 신들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리고 옛 조상들의 업적에 관해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세대를 통해 전승되는 가치였다. 하지만 5세기 이후로는 소피스트들이 등장하면서, 이들이 신화를 대체하여 덕의 교육을 담당하게 되었다. 특히 이들은 덕과 함께 토론술과 웅변술을 가르쳤는데, 이러한 설득과 논쟁의 기술은 고대의 민주정체 하에서 성공의 결정적인 열쇠이기도 했다. 정치적 야심을 품고 있었던 젊은이들은 소피스트들에게 열광하였고, 이런 현상은 당시에 민주정체가 가장 발달했던 아테네에서 가장 활발하게 나타났다. 많은 소피스트들이 아테네로 모여들었고, 그들은 강의를 통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통적인 신화와 조상들을 업적을 통해 자연스럽게 익혀왔던 덕을 외지에서 들어온 소피스트라는 교사들에게, 그것도 돈을 내고 배운다는 것은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아테네의 젊은이들은 열광했지만, 기성세대와 보수층은 소피스트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소피스트들이 전통적이 가치관과 질서를 파괴하며, 젊은이들에게 위험한 사상을 불어넣는다고 생각했다. 특히 사람들은 소피스트들이 돈을 받고 덕을 가르친다는 사실에 대해 분노했다. 일례로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그 자신 역사가이면서 철학자였던 크세노폰은 돈을 받고 지혜를 파는 소피스트의 행위가 돈을 받고 몸을 파는 것과 다름없는 지적인 매춘 행위라고 격렬하게 비난하였다. 소크라테스 역시 이러한 비판에 동의한다. 덕은 돈을 받고 파는 상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위의 대목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돈을 받고서 사람들에게 충고를 하지 않았다는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활동이 소피스트들의 교육과는 다르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보수를 받지 않았다는 증거로 자신의 가난을 내세웠던 것이다. 결국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일과 가정을 소홀히 하면서까지 타인의 일에 몰두했던 것은 보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의 봉사자로서 신을 도와 사람들이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도록 만드는 임무였던 것이다.
키워드
가난, 이타주의, 자신의 일, 타인에 대한 봉사
전후맥락
불경죄로 고발되어 법정에 선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도시를 해롭게 하는 사람이기는커녕, 오히려 자기는 아테네인들을 위해 신이 보낸 선물이라는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재판관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가난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전본문
내가 바로 신이 이 나라에 선물로 주었다고 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다음의 사실로부터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내가 이 숱한 세월 동안 나 자신의 일은 일절 돌보지 않았고, 집안일조차 돌보지 않은 채 방치하고 견딘 반면, 줄곧 여러분의 일에 몰두해왔다는 사실(마치 여러분의 아버지나 형처럼 여러분 각자에게 개인적으로 찾아가 덕을 돌보라고 설득하면서 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적인 일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이오. 물론 내가 이런 일에서 뭔가 이익을 얻고 있다든지, 보수를 받으며 이런 권고를 해왔다면, 그런 행동을 할 만한 어떤 이유를 갖는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오. 하지만 지금 여러분도 직접 보고 계시다시피, 고발자들이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그토록 뻔뻔스럽게 비난을 해대면서도, 적어도 이것, 그러니까 내가 누군가에게 보수를 받아냈다거나 요구한 적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증인을 내세우는 뻔뻔스러움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나로서는 내가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증인을 내세울 수 있소. 그것은 바로 나의 가난입니다.
토론하기
(1) 소크라테스는 자기처럼 자신의 일에는 무관심하고 오직 타인의 일을 돌보는 데 열중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일이라고 단언한다. 이런 극단적으로 보이는 이타주의적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해설읽기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테네인들을 위해 신이 보낸 선물이라고 주장하며, 재판관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든다. 그것은 소크라테스가 오랜 시간(아마도 평생!) 자기 자신이 집안일은 돌보지 않고, 오직 시민들의 일에만 관심을 기울였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시민들의 일이란 대화를 통해 시민들이 겪는 이중의 무지를 깨닫게 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처럼 스스로에게 무관심하고 타인의 일에 헌신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에 속하는 게 아니라고 단언한다. 즉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신이 자기를 아테네인들에게 보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만으로는 자신이 신의 선물이라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치 않다. 왜냐하면 누군가는 소크라테스가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돈을 벌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듣고 즉각적으로 소피스트를 떠올렸을 수 있다. 왜냐하면 소피스트들은 젊은이들에게 돈을 받고 덕을 가르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결코 가르침을 대가로 보수를 받거나 요구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며, 그 증거로 자신의 가난함을 든다. 실제로 고대의 증언들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돈을 버는 일에는 무관심했고, 사람들과 대화를 이어나가는 데만 몰두했다고 한다. 또한 그의 아내인 크산티페는 집안일에 무관심했던 소크라테스를 한심스러워하여 종종 바가지를 긁곤 했는데, 그런 이유로 그녀는 서양 철학사에서 악처(惡妻)의 대명사라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불명예는 적잖이 부당한 것처럼 보인다. 위의 대목을 비롯하여 고대의 증언들을 살펴보면, 크산티페의 처신은 집안일에 무관심한 가장에 맞선 생존의 발버둥에 가깝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기를 돌보지 않고 타인만을 돌보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자기희생을 동반한 다소 극단적인 이타주의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뿐만 아니라 가족들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로 보일 수도 있다. 소크라테스의 주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가 눈여겨 볼 대목은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신의 선물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과 가정을 돌보지 않고 남의 일에 몰두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속하지 않은 일이 아니겠냐고 단언하는 부분이다. 오늘날의 상식에서는 자기 일을 내팽개치고 남의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적잖이 한심한 모습으로 보이겠지만, 사실 이러한 주장의 이면에는 신과 인간의 차이에 대한 인식이 숨어있다. 불사인 신과 달리, 인간은 유한하며 완전하지 못한 존재자이다. 그래서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끊임없이 죽음에 맞서 저항해야 한다. 특히 고대인들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자족성의 결여로 이해한다. 즉 인간은 굶어죽지 않기 위해 외부로부터 양분을 섭취해야 하며, 스스로 혹한과 혹서를 버티지 못하기에 외부의 재료를 가지고서 옷과 집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요컨대 자족적이지 못한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무엇인가를 획득하여 스스로를 돌봐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가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 개개인은 비록 죽지만, 저마다 자신의 일부를 떼어내어 살아가게 하는데, 그것이 바로 자식이다. 즉 가족을 구성하여 자손을 이어간다는 것은 근본적인 의미에서 인간이 (자식을 매개로 하여 간접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려는 시도인 것이다. 이렇듯 신과 비교하여 인간의 유한성을 이해했을 때, 위의 대목은 그 의미가 좀 더 분명해진다. 자신과 가족을 건사한다는 것은 인간의 생존을 이어나가려는 지극히 본성적인 일이다. 반면에 신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신들은 애초에 불사이며, 모든 면에서 완전하고 자족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들의 관심사는 자기 자신이나 가족이 아니라, 이 세상을 지배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일이 된다. 한편, 소크라테스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과 가족의 일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반면에, 그는 자기 이외의 것들, 즉 다른 사람들의 혼을 돌보는 일에만 몰두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소크라테스가 해온 것들은 인간의 영역에 속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신들의 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결코 보수를 받거나 요구한 적이 없다는 대목에 대해 생각해보자. 많은 사람들은 이 대목을 읽으면서 소크라테스 시대의 대중 지식인이자 교육자들인 소피스트들을 연상시키곤 한다. 소피스트는 ‘지혜로운 자’를 뜻하는그리스어 ‘소포스(sophos)’에서 파생된 말로 처음에는 ‘소포스’와 마찬가지로 ‘소피스트’ 역시 ‘지혜로운 자’를 의미했다. 하지만 조금씩 시간이 흐르면서 서기전 5세기 무렵에 이르러 ‘소피스트’는 ‘지혜를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때 소피스트들이 가르친 지혜는 의술이나 건축술과 같은 전문 지식이 아니라, 정의나 절제, 용기 등과 같이 공동체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한결 더 일반적인 지혜였다. 사람들은 이렇듯 공동체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지혜와 용기, 절제, 정의 등을 ‘덕’이라고 불렀다. 원래 덕은 어린 시절부터 신화 속의 신들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리고 옛 조상들의 업적에 관해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세대를 통해 전승되는 가치였다. 하지만 5세기 이후로는 소피스트들이 등장하면서, 이들이 신화를 대체하여 덕의 교육을 담당하게 되었다. 특히 이들은 덕과 함께 토론술과 웅변술을 가르쳤는데, 이러한 설득과 논쟁의 기술은 고대의 민주정체 하에서 성공의 결정적인 열쇠이기도 했다. 정치적 야심을 품고 있었던 젊은이들은 소피스트들에게 열광하였고, 이런 현상은 당시에 민주정체가 가장 발달했던 아테네에서 가장 활발하게 나타났다. 많은 소피스트들이 아테네로 모여들었고, 그들은 강의를 통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통적인 신화와 조상들을 업적을 통해 자연스럽게 익혀왔던 덕을 외지에서 들어온 소피스트라는 교사들에게, 그것도 돈을 내고 배운다는 것은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아테네의 젊은이들은 열광했지만, 기성세대와 보수층은 소피스트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소피스트들이 전통적이 가치관과 질서를 파괴하며, 젊은이들에게 위험한 사상을 불어넣는다고 생각했다. 특히 사람들은 소피스트들이 돈을 받고 덕을 가르친다는 사실에 대해 분노했다. 일례로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그 자신 역사가이면서 철학자였던 크세노폰은 돈을 받고 지혜를 파는 소피스트의 행위가 돈을 받고 몸을 파는 것과 다름없는 지적인 매춘 행위라고 격렬하게 비난하였다. 소크라테스 역시 이러한 비판에 동의한다. 덕은 돈을 받고 파는 상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위의 대목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돈을 받고서 사람들에게 충고를 하지 않았다는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활동이 소피스트들의 교육과는 다르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보수를 받지 않았다는 증거로 자신의 가난을 내세웠던 것이다. 결국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일과 가정을 소홀히 하면서까지 타인의 일에 몰두했던 것은 보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의 봉사자로서 신을 도와 사람들이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도록 만드는 임무였던 것이다.
키워드
가난, 이타주의, 자신의 일, 타인에 대한 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