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신을 믿지 않는다는 불경죄로 고발되어 법정에 선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무죄를 가리는 1차 투표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다.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형량을 제안하는 연설을 하는데, 거기서 그는 추방형을 거부하는 한편, 만일 누군가가 침묵을 강요하더라도 절대 굴하지 않고 철학적 대화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다짐한다.
고전본문
[…] 그럼 추방을 제안할까요? 어쩌면 여러분이 나에게 이 형벌을 부과하게 될지도 모르기에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아테네인 여러분, 그렇다면 나는 정말이지 대단히 목숨에 연연하는 사람이 될 겁니다. 다음과 같은 것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내가 추론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말이에요. 즉 여러분은 나의 동료임에도 나의 담론과 논변을 참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들이 여러분에게 너무도 부담스럽고 비위에 거슬리게 된 나머지 여러분은 지금 그것들로부터 벗어날 길을 찾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다른 나라 사람들이라고 과연 그것들을 쉽게 참을 수 있을까요?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아테네인 여러분, 그럼 이 나이를 먹고서 밖으로 쫓겨나거나, 추방당해서 이 나라 저 나라를 전전하는 삶을 산다면, 그런 내 삶이 과연 훌륭하다 할 수 있을까요? 내가 어딜 가든 젊은이들은 여기서 그러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내 말에 귀를 기울이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거든요. 내가 그들을 쫓아버리면 이들이 직접 연장자를 설득해 나를 추방할 것이요, 반대로 쫓아버리지 않는다면 그들의 아버지와 가족들이 바로 그들을 위해 나서서 나를 추방할 것입니다.
그럼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소크라테스, 당신이 침묵을 지키고 조용히 지낸다면, 우리한테서 쫓겨나 밖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여기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은가?”라고 말입니다. 이거야말로 여러분 중 일부를 설득해내기가 무엇보다도 까다로운 대목입니다. ‘그것은 신에게 불복하는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조용히 지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내가 말한다면, 여러분은 내가 의뭉을 떤다고 생각해서 내 말을 믿지 않을 테니까요. 또 이번에는 내가 날마다 덕에 관해서, 그리고 다른 것들(즉 대화를 통해 내가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검토하게 되는 그런 주제들)에 관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 이것이 그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좋음이며, 검토 없이 사는 삶은 인간에게 살 가치가 없다고 말하면, 여러분은 이런 말을 하는 나를 훨씬 더 못미더워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실상은 내가 말한 게 맞습니다. 다만 그걸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뿐이죠.
토론하기
(1) 혹시 당신 주변에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는 문제에 대해 꼬치꼬치 따져 묻거나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주변을 피곤하게 만드는 친구가 있는가? 아니면 말을 하면 할수록 미움을 받는다던가, 주변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친구가 있는가? 그런 친구를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어떻게 대응하는지 각자의 경험을 토대로 의견을 나눠보자.
해설읽기
형벌의 제안
불경죄로 고발된 소크라테스는 재판정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지만, 유무죄를 가르는 1차 투표에서 근소한 차이로 유죄 판결을 받는다. 유죄로 판결이 난 이상, 다음으로는 ‘어떤 형벌을 얼마나 받을까’ 하는 양형(量刑)을 결정해야 하는데, 이것들 두고서 피고측과 원고측은 다시 한 번 번갈아 가며 연설을 하게 된다. 작품의 끝에 가면 짐작할 수 있지만, 고발자들은 소크라테스의 사형을 요구한 상황이다. 이에 맞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양형을 제안하는 연설을 해야 한다. 참고로 오늘날과 달리 고대 그리스의 형벌에는 이른바 자유형(즉 징역형처럼 죄인을 감옥에 가두는 형벌)이 없었다. 대부분의 형벌은 사형, 추방, 벌금이나 재산 몰수 중 하나였다. 그리고 대다수의 피고인들은 자신의 억울함이나 딱한 처지를 호소하면서 최대한 가벼운 형벌인 벌금형을 제안한다. 혹은 죄가 무거운 경우에는 추방을 제안함으로써 사형을 피하려고 든다. 소크라테스는 위의 대목에서 자신이 제안할 수 있는 형벌들 가운데 추방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소크라테스가 생각한 추방
추방은 한 마디로 자기 나라의 시민권을 상실하고 조국에서 쫓겨나는 것이다. 자신이 고향에서 쌓은 부와 지위, 권력을 모두 잃게 됨은 물론이다. 결국 추방된 자는 외국을 전전하며 마치 유형지에서와 비슷한 삶을 살아야 한다. 다만 정치인들에게는 종종 추방이 일종의 훈장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래서 정적에게 패한 뒤에 추방당했다가 훗날 다시 복귀한 정치인은 더 많은 환영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추방의 핵심은 시민권의 박탈이나 재산의 상실이 아니라, 오히려 고향 사람들과 더 이상 대화를 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것은 소크라테스의 고발자들이 원하는 것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그는 끊임없이 아테네 시민들에게 질문을 해대며, 사람들의 편견과 허위의식, 특히 실제로는 무지하면서도 자신이 지혜롭다고 착각하는 이중의 무지를 깨뜨리고자 노력했다. 고발자들은 소크라테스의 이런 끈질긴 행동을 귀찮아 했던 것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의 추방을 통해 사람들은 그의 귀찮은 질문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소크라테스는 추방에 담긴 고발자들의 의도를 대화의 금지라고 해석하고, 자신은 이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대화를 통해 사람들을 각성시키는 것을 신의 명령으로 여기는 소크라테스로서는 자신이 어디에 있든, 어디로 가든 간에 대화를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테네에서 추방을 당해 다른 도시로 간다면, 그는 그 도시에서 역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것이요, 사람들의 편견과 허위의식을 깨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그 경우, 소크라테스는 그 도시의 사람들로부터도 미움을 받게 될 것이요, 이곳에서와 똑같이 고발을 당하게 될 것이다. 결국 소크라테스로서는 어느 곳에 가든지 같은 행동을 할 것이요, 결국에는 어디서든 추방을 면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이미 일흔살의 고령인 소크라테스로서는 추방을 당해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도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어디를 가든 그의 철학적 대화로 인해 추방을 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굳이 아테네를 떠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그가 문답법적인 대화를 통해 사람들의 허위의식과 이중의 무지를 벗겨내는 모습은 수많은 젊은이들을 매료시켰다. 그는 말한다. 만일 자신이 추방지에 가서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곳의 젊은이들이 실망하여 자신을 쫓아내려 할 것이다. 반면에 추방지에서도 아테네에서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철학적인 대화를 지속한다면, 이번엔은 기성세대, 즉 젊은이들의 부모들이 자기를 미워하여 추방시키려 들 것이다. 결국 소크라테스가 어딜 가든 추방의 위험을 피할 수 없다면, 굳이 아테네를 떠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는 자신의 형벌로서 추방형을 제안하지 않는다.
침묵하는 삶의 거부
그런데 고발을 비롯한 모든 문제의 원인이 문답법적인 대화 때문이라고 한다면, 소크라테스가 대화를 그만 둘 경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즉 더 이상 사람들을 귀찮게 굴지 않고 조용히 살아간다면, 굳이 추방을 생각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당연하게도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선택지를 한 마디로 일축한다. 즉 대화는 신이 자신에게 내린 일이기에 그만 둘 수 없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입장은 명료하면서도 단호하다. 인간의 법이 침묵할 것을 명령하고, 신이 대화를 통해 사람들의 혼을 돌보라고 명령한다면, 그래서 두 명령이 서로 대립한다면, 인간의 명령이 아니라 신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더 올바르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그토록 신의 명령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그 명령이 이 대화편의 가장 중요한 교훈, 즉 ‘검토함 없는 삶은 인간으로서 살 가치가 없다’는 교훈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검토함’이란 바로 자기를 돌이켜보고 반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자기가 자신을 객관화시킬 수 있다. 이를 통해 인간은 스스로의 말과 행동과 삶을 평가하고, 잘못과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자신에게 고유한 반성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는 더 이상 인간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소크라테스가 목숨을 걸고 끊임없이 타인과의 대화를 시도한 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자기 반성을 촉구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키워드
교육, 대화의 즐거움, 소크라테스식 대화
전후맥락
신을 믿지 않는다는 불경죄로 고발되어 법정에 선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무죄를 가리는 1차 투표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다.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형량을 제안하는 연설을 하는데, 거기서 그는 추방형을 거부하는 한편, 만일 누군가가 침묵을 강요하더라도 절대 굴하지 않고 철학적 대화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다짐한다.
고전본문
[…] 그럼 추방을 제안할까요? 어쩌면 여러분이 나에게 이 형벌을 부과하게 될지도 모르기에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아테네인 여러분, 그렇다면 나는 정말이지 대단히 목숨에 연연하는 사람이 될 겁니다. 다음과 같은 것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내가 추론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말이에요. 즉 여러분은 나의 동료임에도 나의 담론과 논변을 참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들이 여러분에게 너무도 부담스럽고 비위에 거슬리게 된 나머지 여러분은 지금 그것들로부터 벗어날 길을 찾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다른 나라 사람들이라고 과연 그것들을 쉽게 참을 수 있을까요?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아테네인 여러분, 그럼 이 나이를 먹고서 밖으로 쫓겨나거나, 추방당해서 이 나라 저 나라를 전전하는 삶을 산다면, 그런 내 삶이 과연 훌륭하다 할 수 있을까요? 내가 어딜 가든 젊은이들은 여기서 그러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내 말에 귀를 기울이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거든요. 내가 그들을 쫓아버리면 이들이 직접 연장자를 설득해 나를 추방할 것이요, 반대로 쫓아버리지 않는다면 그들의 아버지와 가족들이 바로 그들을 위해 나서서 나를 추방할 것입니다.
그럼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소크라테스, 당신이 침묵을 지키고 조용히 지낸다면, 우리한테서 쫓겨나 밖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여기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은가?”라고 말입니다. 이거야말로 여러분 중 일부를 설득해내기가 무엇보다도 까다로운 대목입니다. ‘그것은 신에게 불복하는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조용히 지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내가 말한다면, 여러분은 내가 의뭉을 떤다고 생각해서 내 말을 믿지 않을 테니까요. 또 이번에는 내가 날마다 덕에 관해서, 그리고 다른 것들(즉 대화를 통해 내가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검토하게 되는 그런 주제들)에 관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 이것이 그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좋음이며, 검토 없이 사는 삶은 인간에게 살 가치가 없다고 말하면, 여러분은 이런 말을 하는 나를 훨씬 더 못미더워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실상은 내가 말한 게 맞습니다. 다만 그걸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뿐이죠.
토론하기
(1) 혹시 당신 주변에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는 문제에 대해 꼬치꼬치 따져 묻거나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주변을 피곤하게 만드는 친구가 있는가? 아니면 말을 하면 할수록 미움을 받는다던가, 주변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친구가 있는가? 그런 친구를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어떻게 대응하는지 각자의 경험을 토대로 의견을 나눠보자.
해설읽기
형벌의 제안
불경죄로 고발된 소크라테스는 재판정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지만, 유무죄를 가르는 1차 투표에서 근소한 차이로 유죄 판결을 받는다. 유죄로 판결이 난 이상, 다음으로는 ‘어떤 형벌을 얼마나 받을까’ 하는 양형(量刑)을 결정해야 하는데, 이것들 두고서 피고측과 원고측은 다시 한 번 번갈아 가며 연설을 하게 된다. 작품의 끝에 가면 짐작할 수 있지만, 고발자들은 소크라테스의 사형을 요구한 상황이다. 이에 맞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양형을 제안하는 연설을 해야 한다. 참고로 오늘날과 달리 고대 그리스의 형벌에는 이른바 자유형(즉 징역형처럼 죄인을 감옥에 가두는 형벌)이 없었다. 대부분의 형벌은 사형, 추방, 벌금이나 재산 몰수 중 하나였다. 그리고 대다수의 피고인들은 자신의 억울함이나 딱한 처지를 호소하면서 최대한 가벼운 형벌인 벌금형을 제안한다. 혹은 죄가 무거운 경우에는 추방을 제안함으로써 사형을 피하려고 든다. 소크라테스는 위의 대목에서 자신이 제안할 수 있는 형벌들 가운데 추방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소크라테스가 생각한 추방
추방은 한 마디로 자기 나라의 시민권을 상실하고 조국에서 쫓겨나는 것이다. 자신이 고향에서 쌓은 부와 지위, 권력을 모두 잃게 됨은 물론이다. 결국 추방된 자는 외국을 전전하며 마치 유형지에서와 비슷한 삶을 살아야 한다. 다만 정치인들에게는 종종 추방이 일종의 훈장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래서 정적에게 패한 뒤에 추방당했다가 훗날 다시 복귀한 정치인은 더 많은 환영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추방의 핵심은 시민권의 박탈이나 재산의 상실이 아니라, 오히려 고향 사람들과 더 이상 대화를 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것은 소크라테스의 고발자들이 원하는 것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그는 끊임없이 아테네 시민들에게 질문을 해대며, 사람들의 편견과 허위의식, 특히 실제로는 무지하면서도 자신이 지혜롭다고 착각하는 이중의 무지를 깨뜨리고자 노력했다. 고발자들은 소크라테스의 이런 끈질긴 행동을 귀찮아 했던 것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의 추방을 통해 사람들은 그의 귀찮은 질문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소크라테스는 추방에 담긴 고발자들의 의도를 대화의 금지라고 해석하고, 자신은 이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대화를 통해 사람들을 각성시키는 것을 신의 명령으로 여기는 소크라테스로서는 자신이 어디에 있든, 어디로 가든 간에 대화를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테네에서 추방을 당해 다른 도시로 간다면, 그는 그 도시에서 역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것이요, 사람들의 편견과 허위의식을 깨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그 경우, 소크라테스는 그 도시의 사람들로부터도 미움을 받게 될 것이요, 이곳에서와 똑같이 고발을 당하게 될 것이다. 결국 소크라테스로서는 어느 곳에 가든지 같은 행동을 할 것이요, 결국에는 어디서든 추방을 면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이미 일흔살의 고령인 소크라테스로서는 추방을 당해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도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어디를 가든 그의 철학적 대화로 인해 추방을 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굳이 아테네를 떠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그가 문답법적인 대화를 통해 사람들의 허위의식과 이중의 무지를 벗겨내는 모습은 수많은 젊은이들을 매료시켰다. 그는 말한다. 만일 자신이 추방지에 가서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곳의 젊은이들이 실망하여 자신을 쫓아내려 할 것이다. 반면에 추방지에서도 아테네에서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철학적인 대화를 지속한다면, 이번엔은 기성세대, 즉 젊은이들의 부모들이 자기를 미워하여 추방시키려 들 것이다. 결국 소크라테스가 어딜 가든 추방의 위험을 피할 수 없다면, 굳이 아테네를 떠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는 자신의 형벌로서 추방형을 제안하지 않는다.
침묵하는 삶의 거부
그런데 고발을 비롯한 모든 문제의 원인이 문답법적인 대화 때문이라고 한다면, 소크라테스가 대화를 그만 둘 경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즉 더 이상 사람들을 귀찮게 굴지 않고 조용히 살아간다면, 굳이 추방을 생각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당연하게도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선택지를 한 마디로 일축한다. 즉 대화는 신이 자신에게 내린 일이기에 그만 둘 수 없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입장은 명료하면서도 단호하다. 인간의 법이 침묵할 것을 명령하고, 신이 대화를 통해 사람들의 혼을 돌보라고 명령한다면, 그래서 두 명령이 서로 대립한다면, 인간의 명령이 아니라 신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더 올바르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그토록 신의 명령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그 명령이 이 대화편의 가장 중요한 교훈, 즉 ‘검토함 없는 삶은 인간으로서 살 가치가 없다’는 교훈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검토함’이란 바로 자기를 돌이켜보고 반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자기가 자신을 객관화시킬 수 있다. 이를 통해 인간은 스스로의 말과 행동과 삶을 평가하고, 잘못과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자신에게 고유한 반성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는 더 이상 인간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소크라테스가 목숨을 걸고 끊임없이 타인과의 대화를 시도한 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자기 반성을 촉구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키워드
교육, 대화의 즐거움, 소크라테스식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