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아테네인 멜레토스와 아뉘토스, 그리고 뤼콘은 각각 시인들과 장인들, 그리고 연설가들을 대표하여 소크라테스를 불경죄로 고발한다. 고발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나라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고, 새로운 신령스러운 것을 도입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고발자 가운데 한 사람인 멜레토스를 상대로 그것이 과연 사실인지를 검토하며 고발자들을 논박한다.
고전본문
[소크라테스] 아니 제우스 신이 보는 앞에서 묻는데, 당신한테는 정말 내가 그렇게 보이나요? 그러니까 내가 어떤 신도 있지 않다고 믿는다는 건가요?
[멜레토스] 그렇소! 제우스께 맹세코, 당신은 어떤 식으로도 없다고 믿고 있소! […]
[소] 그렇다면, 멜레토스! 인간의 활동은 있다고 믿으면서 인간의 존재는 믿지 않는 사람이 과연 있나요? […] 말(馬)의 존재는 믿지 않으면서 말과 관련된 일이 있다고 믿은 사람이 있나요? 피리 연주자의 존재는 믿지 않으면서 피리 연주와 관련된 일은 믿는 사람이 과연 있나요? 없겠죠! 이 잘난 양반아, 당신이 대답하고 싶지 않다면, 내가 직접 당신과 여기 계신 다른 분들을 위해 말하겠소. 하지만 이것만큼은 대답해주시오! 신령스러운 일은 있다고 믿으면서 신령은 믿지 않는 사람이 있나요?
[멜] 없습니다.
[소] […] 그런데 당신은 내가 신령스러운 것들을 믿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한다고 주장하지 않소? 그것들이 새로운 것들이든, 오래 된 것들이든 상관없이 말이오. 어쨌든 당신 말에 따르면, 나는 적어도 신령스러운 것들을 믿고 있는 셈이오. 게다가 당신은 고발장에서 이에 관해 서약까지 했소. 그런데 내가 신령스러운 것들을 믿는다면, 필연적으로 나는 신령의 존재를 믿고 있는 것이 되오. 그렇지 않나요? 당연하죠. 당신이 답변을 안 하니 동의한 걸로 치겠습니다. 그런데 신령이란 신들이거나 신들의 자식들이라고 말하지들 않소?
[멜] 물론 그렇소.
[소] […] 그런데 신령들이 신들의 자식들이라면, 즉 님프에게서 태어났거나 혹은 그들을 낳았다고 하는 다른 어떤 신들에게서 태어난 일종의 서출(庶出)들이라면, 인간들 가운데 누가 신들의 자식은 있다고 믿으면서 신들은 안 믿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누군가가 말과 나귀의 새끼인 노새는 믿으면서 정작 말과 나귀가 있다는 건 믿지 않는 경우와 꼭 마찬가지로 터무니 없는 일일 테니까요.
토론하기
(1) 위의 대화에서는 신의 존재에 관한 문제가 ‘원인과 결과’의 관점을 통해 다뤄지고 있다. 이것은 어떤 사건이나 사태, 즉 결과를 보고서 해당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원인을 밝히는 것으로서 토론이나 논쟁에서 자주 사용된다. 사회적인 이슈들 가운데 이렇듯 원인과 결과의 관점을 적용할 수 있는 사례를 찾아서 친구들과 토론해보자.
해설읽기
그리스인들은 신과 관련하여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덕목을 ‘경건’이라고 불렀다. 고발자들은 소크라테스가 ‘신을 믿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그가 ‘불경’의 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한다. 이에 더하여 고발자들은 ‘소크라테스가 국가의 공식적인 신을 믿지 않고 다른 신령스러운 것을 도입했다’고 비난함으로써 소크라테스에게 이단의 죄를 덧씌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이단이라는 관념이 없었다는 점이다. 소크라테스가 고발자인 멜레토스를 논박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그리스인들의 종교관과 그들이 생각한 불경죄의 의미를 한결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먼저 소크라테스는 멜레토스에게 자신이 신을 믿지만 그것이 나라가 섬기는 신이 아님을 지적하는 것인지, 아니면 신을 전혀 믿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인지를 묻고, 이에 대해 멜레토스는 소크라테스가 신을 전혀 믿지 않는다고 답한다. 이 답변을 통해 고발자들이 문제 삼는 것은 이단이 아니라, 무신론임을 알 수 있다. 사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이단이라는 관념이 없었다. 왜냐하면 고대 그리스 사회는 다신교 사회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단이란 ‘오직 우리가 믿는 신만이 유일하다’라는 전제로부터 발생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신 이외의 다른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 가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믿는 방식과 교리만이 올바르다는 신념 역시 유일신교에서 비롯된다. 설령 누군가가 우리와 같은 신을 믿는다고 주장하더라도, 그 방식이나 교리가 우리의 것과 다르다면, 그것은 우리와 같은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종교 안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교리 논쟁, 타 종파와의 전쟁, 그리고 종교인들 사이에서 자행된 학살 등은 거의 대부분 유일신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와 달리, 소크라테스가 살던 고대 그리스는 다신교 사회였고, 도시국가들마다 저마다 다양한 신들을 자기 나라의 수호신으로 섬겼다. 예컨대 아테네는 아테나 여신을, 델피는 아폴론 신을 자국의 수호신으로 섬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나라의 수호신 이외의 다른 신들을 배척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신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임을 인정하는 이상, 모든 신들은 두려움과 숭배의 대상일 뿐이었다. 예를 들어 아테네인이라도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서는 기꺼이 예언의 신(아폴론)을 찾아가 기도를 했고, 델피의 지도자들도 싸움을 앞두고서는 전쟁의 여신(아테나)에게 제를 지내며 승리를 기원했다. 이렇듯 나라가 어떤 신을 믿느냐에 상관없이, 그리스인들은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신을 찾아가 제사를 지내고 기도할 수 있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가 어떤 신을 믿었느냐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으며, 단죄할 만한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반면에 소크라테스가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소크라테스의 첫 질문에 대한 멜레토스의 답변은 이를 잘 보여준다. 왜냐하면 그는 소크라테스가 다른 신을 믿는 게 아니라, 아예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자기들이 설명할 수 없었던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신들의 힘과 의지를 통해 이해하려 했고, 이는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신들이 특정 민족을 선택하여 특정 지역에 정착시켰다’라는 이른바 건국신화는 공동체의 결속과 유지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무신론적인 사고는 공동체의 토대를 흔드는 위험한 생각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으며, 무신론은 중범죄로 취급 되었다. 그래서 멜레토스 역시 소크라테스를 파멸시키기 위해서는 ‘그가 나라의 수호신과는 다른 신을 믿었다’라고 비난할 게 아니라, ‘그가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라고 비난해야 했던 것이다.
멜레토스의 의도를 파악한 소크라테스는 그를 논박하기 위하여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기반한 논증 방법을 사용한다. 훗날 학자들은 이러한 소크라테스가 사용한 논법을 인과논증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모든 결과는 원인의 결과이다’라는 생각에 기반한 논증이다. 소크라테스의 발언을 살펴보자. 인간의 활동(결과)이 있다면, 당연히 그 활동을 일으킨 인간(원인)이 있어야 한다. 말과 관련된 활동(예컨대 승마, 마상전투)이 있다면, 당연히 그 원인이 되는 말이 있어야 한다. 또한 피리 연주자(원인)가 없다면, 피리 연주(결과)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즉 인간의 일, 말과 관련된 활동, 피리 연주 등은 모두 결과들로서 인간, 말, 피리 연주자라는 원인들의 결과들인 것이다. 이러한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소크라테스의 경우에 적용시키면 어떻게 될까?
소크라테스는 먼저 ‘새로운 신령스러운 것을 도입했다’는 비난을 지적한다. 여기서 말하는 ‘신령스러운 것’은 그리스어로 ‘다이모니온’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의 변형태인 ‘다이몬(daimon, 신령)’은 오늘날 영어에서 ‘악령’을 뜻하는 ‘데몬(demon)’의 어원이기도 하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뭔가 옳지 못한 일을 하려 할 때면, 언제나 자신의 내면에서 신령스러운 신호가 나와 잘못된 행동을 제지했다’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것을 그의 고발자들은 ‘소크라테스가 새로운 신령스러운 것을 도입했다’고 말하며 비난했던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다신교 사회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신들을 믿을 수 있었기에, 소크라테스가 신령스러운 것을 도입했다는 것은 특별한 문젯거리가 될 수 없다. 즉 그런 비난으로는 소크라테스를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범죄자로 몰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비난이 바로 앞의 고발, 즉 ‘소크라테스는 나라가 믿는 신을 믿지 않았다’라는 고발을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위의 대화를 보면, 멜레토스는 이 비난을 통해서 소크라테스를 무신론자로 몰고가려 했는데, ‘그가 새로운 신령스러운 것을 도입했다’라는 비난을 추가함으로써, 앞의 비난과 모순된 상황에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은 신령이나 신령스러운 것을 모두 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스인들은 신령들이나 신령스러운 것들이 신들의 자식들이되, 적자가 아닌 서자들이라고 보았다. 이것들은 부모인 신들보다는 하위에 속하는 것들이지만, 넓게 보아서는 이것들 역시 신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소크라테스의 비판에서 정확히 드러난다. 소크라테스는 ‘신령스러운 것(결과)을 믿는다면, 그와 관련하여 신령(원인)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멜레토스에게 동의를 받아낸다. 또한 신령은 신들의 자식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멜레토스의 동의를 받아낸다. 그렇다면 자식(결과)의 존재를 믿으면서 부모(원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고발자달은 소크라테스가 신령스러운 것을 도입했다고 비난하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신령스러운 것의 원인이 되는 신령의 존재와, 다시 신령의 부모인 신의 존재를 믿고 있음을 입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소크라테스에게 자신에게 치명적일 수 있었던 무신론자라는 비난을 논박할 수 있었던 것이다.
키워드
경건과 불경, 무신론, 신, 신령, 원인과 결과, 정통과 이단, 종교
전후맥락
아테네인 멜레토스와 아뉘토스, 그리고 뤼콘은 각각 시인들과 장인들, 그리고 연설가들을 대표하여 소크라테스를 불경죄로 고발한다. 고발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나라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고, 새로운 신령스러운 것을 도입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고발자 가운데 한 사람인 멜레토스를 상대로 그것이 과연 사실인지를 검토하며 고발자들을 논박한다.
고전본문
[소크라테스] 아니 제우스 신이 보는 앞에서 묻는데, 당신한테는 정말 내가 그렇게 보이나요? 그러니까 내가 어떤 신도 있지 않다고 믿는다는 건가요?
[멜레토스] 그렇소! 제우스께 맹세코, 당신은 어떤 식으로도 없다고 믿고 있소! […]
[소] 그렇다면, 멜레토스! 인간의 활동은 있다고 믿으면서 인간의 존재는 믿지 않는 사람이 과연 있나요? […] 말(馬)의 존재는 믿지 않으면서 말과 관련된 일이 있다고 믿은 사람이 있나요? 피리 연주자의 존재는 믿지 않으면서 피리 연주와 관련된 일은 믿는 사람이 과연 있나요? 없겠죠! 이 잘난 양반아, 당신이 대답하고 싶지 않다면, 내가 직접 당신과 여기 계신 다른 분들을 위해 말하겠소. 하지만 이것만큼은 대답해주시오! 신령스러운 일은 있다고 믿으면서 신령은 믿지 않는 사람이 있나요?
[멜] 없습니다.
[소] […] 그런데 당신은 내가 신령스러운 것들을 믿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한다고 주장하지 않소? 그것들이 새로운 것들이든, 오래 된 것들이든 상관없이 말이오. 어쨌든 당신 말에 따르면, 나는 적어도 신령스러운 것들을 믿고 있는 셈이오. 게다가 당신은 고발장에서 이에 관해 서약까지 했소. 그런데 내가 신령스러운 것들을 믿는다면, 필연적으로 나는 신령의 존재를 믿고 있는 것이 되오. 그렇지 않나요? 당연하죠. 당신이 답변을 안 하니 동의한 걸로 치겠습니다. 그런데 신령이란 신들이거나 신들의 자식들이라고 말하지들 않소?
[멜] 물론 그렇소.
[소] […] 그런데 신령들이 신들의 자식들이라면, 즉 님프에게서 태어났거나 혹은 그들을 낳았다고 하는 다른 어떤 신들에게서 태어난 일종의 서출(庶出)들이라면, 인간들 가운데 누가 신들의 자식은 있다고 믿으면서 신들은 안 믿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누군가가 말과 나귀의 새끼인 노새는 믿으면서 정작 말과 나귀가 있다는 건 믿지 않는 경우와 꼭 마찬가지로 터무니 없는 일일 테니까요.
토론하기
(1) 위의 대화에서는 신의 존재에 관한 문제가 ‘원인과 결과’의 관점을 통해 다뤄지고 있다. 이것은 어떤 사건이나 사태, 즉 결과를 보고서 해당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원인을 밝히는 것으로서 토론이나 논쟁에서 자주 사용된다. 사회적인 이슈들 가운데 이렇듯 원인과 결과의 관점을 적용할 수 있는 사례를 찾아서 친구들과 토론해보자.
해설읽기
그리스인들은 신과 관련하여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덕목을 ‘경건’이라고 불렀다. 고발자들은 소크라테스가 ‘신을 믿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그가 ‘불경’의 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한다. 이에 더하여 고발자들은 ‘소크라테스가 국가의 공식적인 신을 믿지 않고 다른 신령스러운 것을 도입했다’고 비난함으로써 소크라테스에게 이단의 죄를 덧씌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이단이라는 관념이 없었다는 점이다. 소크라테스가 고발자인 멜레토스를 논박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그리스인들의 종교관과 그들이 생각한 불경죄의 의미를 한결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먼저 소크라테스는 멜레토스에게 자신이 신을 믿지만 그것이 나라가 섬기는 신이 아님을 지적하는 것인지, 아니면 신을 전혀 믿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인지를 묻고, 이에 대해 멜레토스는 소크라테스가 신을 전혀 믿지 않는다고 답한다. 이 답변을 통해 고발자들이 문제 삼는 것은 이단이 아니라, 무신론임을 알 수 있다. 사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이단이라는 관념이 없었다. 왜냐하면 고대 그리스 사회는 다신교 사회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단이란 ‘오직 우리가 믿는 신만이 유일하다’라는 전제로부터 발생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신 이외의 다른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 가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믿는 방식과 교리만이 올바르다는 신념 역시 유일신교에서 비롯된다. 설령 누군가가 우리와 같은 신을 믿는다고 주장하더라도, 그 방식이나 교리가 우리의 것과 다르다면, 그것은 우리와 같은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종교 안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교리 논쟁, 타 종파와의 전쟁, 그리고 종교인들 사이에서 자행된 학살 등은 거의 대부분 유일신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와 달리, 소크라테스가 살던 고대 그리스는 다신교 사회였고, 도시국가들마다 저마다 다양한 신들을 자기 나라의 수호신으로 섬겼다. 예컨대 아테네는 아테나 여신을, 델피는 아폴론 신을 자국의 수호신으로 섬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나라의 수호신 이외의 다른 신들을 배척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신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임을 인정하는 이상, 모든 신들은 두려움과 숭배의 대상일 뿐이었다. 예를 들어 아테네인이라도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서는 기꺼이 예언의 신(아폴론)을 찾아가 기도를 했고, 델피의 지도자들도 싸움을 앞두고서는 전쟁의 여신(아테나)에게 제를 지내며 승리를 기원했다. 이렇듯 나라가 어떤 신을 믿느냐에 상관없이, 그리스인들은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신을 찾아가 제사를 지내고 기도할 수 있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가 어떤 신을 믿었느냐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으며, 단죄할 만한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반면에 소크라테스가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소크라테스의 첫 질문에 대한 멜레토스의 답변은 이를 잘 보여준다. 왜냐하면 그는 소크라테스가 다른 신을 믿는 게 아니라, 아예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자기들이 설명할 수 없었던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신들의 힘과 의지를 통해 이해하려 했고, 이는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신들이 특정 민족을 선택하여 특정 지역에 정착시켰다’라는 이른바 건국신화는 공동체의 결속과 유지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무신론적인 사고는 공동체의 토대를 흔드는 위험한 생각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으며, 무신론은 중범죄로 취급 되었다. 그래서 멜레토스 역시 소크라테스를 파멸시키기 위해서는 ‘그가 나라의 수호신과는 다른 신을 믿었다’라고 비난할 게 아니라, ‘그가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라고 비난해야 했던 것이다.
멜레토스의 의도를 파악한 소크라테스는 그를 논박하기 위하여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기반한 논증 방법을 사용한다. 훗날 학자들은 이러한 소크라테스가 사용한 논법을 인과논증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모든 결과는 원인의 결과이다’라는 생각에 기반한 논증이다. 소크라테스의 발언을 살펴보자. 인간의 활동(결과)이 있다면, 당연히 그 활동을 일으킨 인간(원인)이 있어야 한다. 말과 관련된 활동(예컨대 승마, 마상전투)이 있다면, 당연히 그 원인이 되는 말이 있어야 한다. 또한 피리 연주자(원인)가 없다면, 피리 연주(결과)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즉 인간의 일, 말과 관련된 활동, 피리 연주 등은 모두 결과들로서 인간, 말, 피리 연주자라는 원인들의 결과들인 것이다. 이러한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소크라테스의 경우에 적용시키면 어떻게 될까?
소크라테스는 먼저 ‘새로운 신령스러운 것을 도입했다’는 비난을 지적한다. 여기서 말하는 ‘신령스러운 것’은 그리스어로 ‘다이모니온’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의 변형태인 ‘다이몬(daimon, 신령)’은 오늘날 영어에서 ‘악령’을 뜻하는 ‘데몬(demon)’의 어원이기도 하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뭔가 옳지 못한 일을 하려 할 때면, 언제나 자신의 내면에서 신령스러운 신호가 나와 잘못된 행동을 제지했다’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것을 그의 고발자들은 ‘소크라테스가 새로운 신령스러운 것을 도입했다’고 말하며 비난했던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다신교 사회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신들을 믿을 수 있었기에, 소크라테스가 신령스러운 것을 도입했다는 것은 특별한 문젯거리가 될 수 없다. 즉 그런 비난으로는 소크라테스를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범죄자로 몰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비난이 바로 앞의 고발, 즉 ‘소크라테스는 나라가 믿는 신을 믿지 않았다’라는 고발을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위의 대화를 보면, 멜레토스는 이 비난을 통해서 소크라테스를 무신론자로 몰고가려 했는데, ‘그가 새로운 신령스러운 것을 도입했다’라는 비난을 추가함으로써, 앞의 비난과 모순된 상황에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은 신령이나 신령스러운 것을 모두 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스인들은 신령들이나 신령스러운 것들이 신들의 자식들이되, 적자가 아닌 서자들이라고 보았다. 이것들은 부모인 신들보다는 하위에 속하는 것들이지만, 넓게 보아서는 이것들 역시 신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소크라테스의 비판에서 정확히 드러난다. 소크라테스는 ‘신령스러운 것(결과)을 믿는다면, 그와 관련하여 신령(원인)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멜레토스에게 동의를 받아낸다. 또한 신령은 신들의 자식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멜레토스의 동의를 받아낸다. 그렇다면 자식(결과)의 존재를 믿으면서 부모(원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고발자달은 소크라테스가 신령스러운 것을 도입했다고 비난하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신령스러운 것의 원인이 되는 신령의 존재와, 다시 신령의 부모인 신의 존재를 믿고 있음을 입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소크라테스에게 자신에게 치명적일 수 있었던 무신론자라는 비난을 논박할 수 있었던 것이다.
키워드
경건과 불경, 무신론, 신, 신령, 원인과 결과, 정통과 이단, 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