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모험의 마지막 단계에서 태양신 헬리오스의 섬에 이른 오뒷세우스에게 태양신의 가축을 잡아먹을 경우 배와 선원을 모두 잃을 것이라는 예언이 주어진다. 오뒷세우스는 예언을 떠올리며 가급적 섬을 지나쳐 항해를 계속하자고 선원들을 설득하지만, 오랜 항해에 지친 선원들은 잠시라도 섬에 머물러 쉬었다 갈 것을 오뒷세우스에게 요구한다. 다수의 요구를 당할 수 없었던 오뒷세우스는 선원들에게 절대로 태양신의 가축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맹세를 시킨 후, 섬에 상륙하여 하룻밤을 보낸다. 그와 선원들은 모두 딱 하룻밤만 보내고는 다음날 일찍 출발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고전본문
[…] 나는 회의를 소집하고는 그들 사이에서 이렇게 말했소.
“친구들이여! 날랜 배 안에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있으니
우리는 무슨 변을 당하지 않도록 저 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도록
합시다. 저것들은 무서운 신인 만물을 굽어보고 만사를 듣는
헬리오스의 소들과 힘센 작은 가축들이기 때문이오.”
이렇게 말하자 그들의 당당한 마음은 내 말에 복종했소.
그러나 한달 내내 남풍이 쉬지 않고 불었고,
동풍과 남풍 이외의 다른 바람은 일지 않았소
내 전우들은 음식과 불그레한 포도주가 아직 남아있는
동안에는 목숨을 건지기를 열망하여 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소. 그러나 마침내 바 안의 양식이
다 떨어지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사냥감을 찾아 돌아다니며
구부러진 낚싯바늘로 물고기며 새며 그밖에 그들의 손에
닿는 것이면 무엇이든 잡았소. 굶주림이 그들의 창자를
갉아먹었으니까요. 마침내 나는 혹시 어떤 신이 내게
귀향의 방법을 가르쳐주실까 해서 기도하려고 섬으로 올라갔소.
나는 섬을 돌아다니다가 전우들에게서 벗어나게 되자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에서 손을 씻은 다음
올륌포스에 사시는 모든 신들께 기도했소
그러나 그분들은 내 눈꺼풀 위에 달콤한 잠을 쏟아부으셨고
그동안에 에우륄로코스는 내 전우들에게 나쁜 조언을 하기 시작했소.
“전우들이여! 그대들은 그동안 고생이 많았소. 하지만 내 말을 들어보시오!
가련한 인간들에게는 모든 죽음이 다 가증스럽겠지만
굶어 죽는 것이야말로 가장 비참할 것이오.
자, 헬리오스의 소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들을 몰고 와서
넓은 하늘에 사시는 불사신들게 제물로 바치도록 합시다.
그리고 고향 땅 이타케에 닿게 되면 우리는 즉시
헬리오스 휘페리온에게 풍요한 신전을 지어드리고
그 안에 빼어난 장식품들을 많이 갖다 놓을 것이오.
그러나 그분이 뿔이 곧은 소들 때문에 노하여 우리 배를
부수기를 원하시고 다른 신들도 그분의 뜻을 따르시겠다면
나는 외딴 섬에서 서서히 기진해 죽느니, 차라리 너울을 향해
크게 입을 벌리고 한 번 숨을 헐떡여 목숨을 버리고 싶소이다!”
에우륄로코스가 이렇게 말하자 다른 전우들도 이에 찬동했소.
그들은 지체없이 가까이 있던 헬리오스의 소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들을 몰고 왔으니, 뿔이 굽고 이마가 넓은 아름다운 그 소들은
이물이 검은 배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풀을 뜯고 있었던 것이오.
그들은 소들 주위에 둘러서서 잎이 높다랗게 달린 참나무의
연한 잎사귀를 뜯으며 신들께 기도했소. […]
그들은 기도를 마치고는 소들을 잡아 껍질을 벗긴 다음
넓적다리뼈들을 발라내어 그것들을 기름 조각에
두겹으로 싸고 다시 그 위에 날고기를 얹었소.
그리고 활활 타는 제물 위에 부어드릴 술이 없어서
대신 물을 부어드린 뒤에, 불 위에 내장을 구었소.
이윽고 넓적다리뼈들이 다 타자 그들은 내장을 맛보고 나서
나머지는 잘게 썰어 꼬챙이에 꿰었소.
바로 그때 달콤한 잠이 내 눈꺼풀을 떠나자
나는 날랜 배가 있는 바닷가로 걸어갔소.
내가 양 끝이 흰 배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기름 조각의 달콤한 냄새가 나를 완전히 에워쌌소.
그래서 나는 신음하며 불사신들을 향해 말했소.
“아버지 제우스와 그대들 영생하고 축복 받은 다른 신들이시여! 그대들은
틀림없이 나를 파멸시키려고 달콤한 잠으로 나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동안 뒤에 남아있던 내 전우들이 엄청난 일을 생각해냈으니까요!”
토론하기
(1) 우리는 살아가면서 실수로든, 혹은 고의로든 잘못은 범하곤 한다. 혹시 고의로 무엇인가 잘못을 범한 적이 있다면, 그때 어떤 변명을 생각하면서 잘못을 범했는지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자.
해설읽기
10년간 트로이아 전쟁을 치르고 난 뒤에, 다시 포세이돈의 저주로 10년간 온 세상을 떠돈 오뒷세우스는 이제 귀향의 마지막 고비에 해당되는 태양신 헬리오스의 섬 트리나키아에 도착한다. 오뒷세우스를 도왔던 여신과 예언자는 만일 그가 헬리오스의 소와 가축들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무사히 귀향할 것이지만, 반대로 헬리오스의 소와 가축을 죽이거나 잡아먹는다면 배와 병사를 모두 잃고 힘겹게 귀향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오뒷세우스는 위험 요소를 아예 없애기 위해서 트리나키아섬을 그냥 통과하려고 하지만, 부하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그들은 강력한 오뒷세우스와 달리, 오랜 항해로 지친 상태이고, 이미 해가 저문 상황에서 야간 항해는 너무나 위험하며, 오래 머물 것이 아니라 딱 하룻밤만 쉬고 이튿날 아침 일찍 출발하면 된다고 주장하며 오뒷세우스를 설득한다. 반박의 근거를 찾을 수 없었던 오뒷세우스는 부하들에게 절대로 헬리오스의 가축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맹세를 요구한 뒤에, 하룻밤 쉬어가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여신과 예언자가 오뒷세우스에게 거듭 경고한 것은 그리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신들이 보내는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가 섬에 정박한 순간 바람의 방향이 바뀌더니 동풍과 남풍만 불어대기 시작했다. 오뒷세우스가 배를 띄워 동쪽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서풍이 필요했다. 하지만 서풍은 단 한 차례도 불지 않았고, 트리나키아 섬에서의 체류 기간은 점점 길어져 갔다. 그 사이에 배에 실었던 식량은 모두 떨어지고 사람들은 굶주리게 되었다. 처음에 선원들은 자신들이 한 맹세를 떠올리며 낚시와 사냥 등으로 생계를 해결하려 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지쳐갔고 굶주림은 점점 더 심해졌다. 신들의 테스트는 ‘하룻밤만 머물고 떠나면 된다’라는 인간의 판단보다 훨씬 더 위에 있었던 것이다. 신들에게 기도를 하러 간 오뒷세우스가 잠에 취한 사이에, 부대의 이인자인 에우륄로코스는 은밀하게 부하들을 모아놓고는 맹세를 깨자며 다음과 같은 말로 설득한다. 첫째 그 어떤 죽음보다도 굶어 죽는 것이 가장 비참한 죽음이다. 둘째, 우리는 헬리오스의 소를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제물로 바치는 것이다. 또한 귀향하게 되면 헬리오스를 위한 신전을 지어드리자.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신이 분노해서 귀향하는 우리를 죽이려 한다면, 나는 굶어죽느니 차라리 물에 빠져 죽는 쪽을 택할 것이다. 부하들은 모두 에우륄로코스의 말에 설득되었고, 태양신의 소를 도축하여 잡아먹게 된다. 결국 여신과 예언자의 경고와 오뒷세우스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료들과 배는 파멸을 맞이할 운명에 처하게 된다.
<오뒷세이아>가 주는 교훈 중 하나는 바로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경고이다. 인간보다 훨씬 더 멀리 내다보는 신들과 예언자들은 인간의 불행한 미래를 경고해주지만, 인간은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눈앞의 쾌락이나 고통에 흔들리며 스스로 파멸의 길로 빠져든다는 것이다. 트리나키아 섬에서 하룻밤만 쉬고 가자고 할 때는 그 누구도, 심지어는 오뒷세우스 자신도 바람의 방향이 바뀔 가능성을 상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체류가 길어지면서 식량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굶주리기 시작하자, 신들의 경고는 점점 흐릿해지고, 그 대신 눈앞의 가축들에 대한 식욕은 점점 더 커지고 분명해져 갔다. 에우륄로코스의 연설은 욕구의 합리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먼저 그는 헬리오스의 소를 ‘잡아먹는다’라는 표현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인간이 신의 물건을 탐하는 것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불경이기 때문이다. 그대신 그는 소를 ‘제물로 바치자’라고 말한다. 그리스의 종교 제의에서는 제단에서 소를 도살한 뒤에 뼈를 태워 신들에게 바치고 남은 고기는 사람들이 나눠 먹는다. 결국 소를 ‘제물로 바치자’라는 말은 사실상 소를 ‘잡아먹자’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핵심적인 문제는 그 소가 이미 헬리오스 소유라는 것이다. 제물이란 인간의 소율물을 신에게 바치는 것이지, 이미 신의 소유인 것을 다시 신에게 바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에우륄로코스는 동료들의 마음 속에서 불경에 대한 두려움과 후회를 없애기 위해 신의 소를 잡아먹자고 말하지 않고 제물로 바치자고 제안한 것이다.
다음으로 그는 헬리오스의 소를 잡아먹는 행위를 ‘도둑질’이 아니라, 마치 ‘교환’ 내지는 ‘거래’ 행위처럼 묘사한다. 왜냐하면 이타케에 돌아가거든 헬리오스를 위해 신전을 건립하고 보물을 넣어드릴 것이기 때문이다. 즉 자기들은 결코 신의 것을 날로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먼저 신의 소를 먹을 뿐이요, 나중에 신전 건립과 보물로서 그 값을 치르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 역시 용서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교환이나 거래는 당사자들 간의 합의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거래의 대상이 인간보다 우월한 신이라고 한다면, 신의 허락도 받지 않고서 인간들 마음대로 신의 물건을 선취하는 것은 결코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를 때 자기가 의식적으로 잘못을 저지른다고 말하기를 꺼린다. 예컨대 신호 위반으로 단속에 걸린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신호등을 못봤다’라든가, ‘내가 지나갈 때는 신호가 바뀌기 직전이었다’라고 말하지, ‘신호가 바뀐 줄 알면서도 위반했다’라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있다 하더라도 ‘급한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위반한 것이지 고의는 아니었다’라고 변명한다. 즉 대개의 사람들은 사회 통념상 잘못으로 간주되는 일을 고의로 저지르지는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에우륄로코스의 발언은 ‘도둑질’을 ‘교환’으로 바꿈으로써 동료들이 갖게 될 죄의식과 가책을 완화시키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즉 사람들의 마음 속에 집단적인 알리바이를 만들어주는 것이라 하겠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것은 죽음의 선택이다. 에우륄로코스는 모든 죽음 가운데 굶어죽는 것이 가장 비참한 죽음이라고 말하면서 연설을 시작한다. 그리고 정 죽어야 한다면 굶어죽느니 차라리 물에 빠져 죽는 쪽을 택하겠노라고 말하면서 연설을 마친다. 그리고 모든 동료들은 에우륄로코스의 발언에 동조한다. 그런데 과연 굶어죽는 것이 가장 비참한 죽음일까? 따지고 보면 아사보다 더 고통스럽고 더 잔인한 죽음도 얼마든지 있지 않을까? 사실 에우륄로코스는 여기서 당면한 고통(배고픔)과 임박한 죽음(굶어 죽음)을 멀리 있는 고통(항해하다가 폭풍을 만남)과 막연한 죽음(물에 빠져 죽음)과 대비시키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천수를 누린 뒤에 늙어 죽는 경우도 있고, 눈앞의 테러범에게 살해당하는 수도 있다.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그 고통이나 공포의 강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후자가 강하다. 오뒷세우스 일행은 지금 죽을 정도로 배고픔의 고통을 겪고 있다. 이들에게 굶어죽는다는 것은 매우 가까이 있는 죽음의 공포라 할 수 있다. 반면에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죽는다는 것은 아직 겪고 있는 고통도 아닐뿐더러 그로 인한 죽음의 공포 역시 다소 막연하고 추상적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재 육지에 있기 때문이다. 선원들은 맹세를 어기고 소를 잡아먹을 경우, 헬리오스가 모두를 죽일 수 있다고 두려워 한다. 그러나 태양신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그들을 죽일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항해 중에 익사시킬 수도 있고, 훨썬 더 먼 훗날 죽일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안 죽일지도 모른다. 반면에 그들이 겪고 있는 배고픔의 고통은 강렬하며, 그로 인한 죽음의 공포 역시 매우 구체적이며 임박한 것처럼 느껴진다. 에우륄로코스의 발언은 이러한 심리를 이용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이렇게 죽나 저렇게 죽나, 어차피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임박한 죽음보다는 멀리 있는 죽음을 선택하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이다.
그런데 에우륄로코스의 제안에는 커다란 함정이 숨어있다. 그것은 배고픔의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다. 섬에 도착한 순간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선원들이 굶주리게 된 것은 신들이 인간에게 내린 시련과 고통이겠지만, 그로부터 모두가 굶어죽으리라는 결론은 도출되지 않는다. 오히려 예언은 그들이 소를 먹지 않을 경우 무사 귀향을 약속하고 있다. 반면에 예언은 신의 가축을 탐할 경우 오뒷세우스를 제외한 모두의 파멸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선원들에게는 신들의 경고보다 당면한 고통이 훨씬 더 크게 보였다. 그 결과 에우륄로코스는 배고픔의 고통을 코앞에 닥친 죽음으로 바꾸고, 신의 저주로 인한 파멸을 막연하고 추상적인 죽음처럼 취급함으로써, 선원들이 한결 마음 편하게 맹세를 어기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어쩌면 오뒷세이아가 위의 대목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려 한 것은 눈앞의 욕구를 이기지 못하고 신들이 금지한 일을 범하면서도, 잘못된 정당화를 통해 마음의 부담을 덜어내려 하는 인간의 나약한 본성인지도 모른다.
키워드
예언, 운명, 의지, 인간
전후맥락
모험의 마지막 단계에서 태양신 헬리오스의 섬에 이른 오뒷세우스에게 태양신의 가축을 잡아먹을 경우 배와 선원을 모두 잃을 것이라는 예언이 주어진다. 오뒷세우스는 예언을 떠올리며 가급적 섬을 지나쳐 항해를 계속하자고 선원들을 설득하지만, 오랜 항해에 지친 선원들은 잠시라도 섬에 머물러 쉬었다 갈 것을 오뒷세우스에게 요구한다. 다수의 요구를 당할 수 없었던 오뒷세우스는 선원들에게 절대로 태양신의 가축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맹세를 시킨 후, 섬에 상륙하여 하룻밤을 보낸다. 그와 선원들은 모두 딱 하룻밤만 보내고는 다음날 일찍 출발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고전본문
[…] 나는 회의를 소집하고는 그들 사이에서 이렇게 말했소.
“친구들이여! 날랜 배 안에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있으니
우리는 무슨 변을 당하지 않도록 저 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도록
합시다. 저것들은 무서운 신인 만물을 굽어보고 만사를 듣는
헬리오스의 소들과 힘센 작은 가축들이기 때문이오.”
이렇게 말하자 그들의 당당한 마음은 내 말에 복종했소.
그러나 한달 내내 남풍이 쉬지 않고 불었고,
동풍과 남풍 이외의 다른 바람은 일지 않았소
내 전우들은 음식과 불그레한 포도주가 아직 남아있는
동안에는 목숨을 건지기를 열망하여 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소. 그러나 마침내 바 안의 양식이
다 떨어지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사냥감을 찾아 돌아다니며
구부러진 낚싯바늘로 물고기며 새며 그밖에 그들의 손에
닿는 것이면 무엇이든 잡았소. 굶주림이 그들의 창자를
갉아먹었으니까요. 마침내 나는 혹시 어떤 신이 내게
귀향의 방법을 가르쳐주실까 해서 기도하려고 섬으로 올라갔소.
나는 섬을 돌아다니다가 전우들에게서 벗어나게 되자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에서 손을 씻은 다음
올륌포스에 사시는 모든 신들께 기도했소
그러나 그분들은 내 눈꺼풀 위에 달콤한 잠을 쏟아부으셨고
그동안에 에우륄로코스는 내 전우들에게 나쁜 조언을 하기 시작했소.
“전우들이여! 그대들은 그동안 고생이 많았소. 하지만 내 말을 들어보시오!
가련한 인간들에게는 모든 죽음이 다 가증스럽겠지만
굶어 죽는 것이야말로 가장 비참할 것이오.
자, 헬리오스의 소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들을 몰고 와서
넓은 하늘에 사시는 불사신들게 제물로 바치도록 합시다.
그리고 고향 땅 이타케에 닿게 되면 우리는 즉시
헬리오스 휘페리온에게 풍요한 신전을 지어드리고
그 안에 빼어난 장식품들을 많이 갖다 놓을 것이오.
그러나 그분이 뿔이 곧은 소들 때문에 노하여 우리 배를
부수기를 원하시고 다른 신들도 그분의 뜻을 따르시겠다면
나는 외딴 섬에서 서서히 기진해 죽느니, 차라리 너울을 향해
크게 입을 벌리고 한 번 숨을 헐떡여 목숨을 버리고 싶소이다!”
에우륄로코스가 이렇게 말하자 다른 전우들도 이에 찬동했소.
그들은 지체없이 가까이 있던 헬리오스의 소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들을 몰고 왔으니, 뿔이 굽고 이마가 넓은 아름다운 그 소들은
이물이 검은 배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풀을 뜯고 있었던 것이오.
그들은 소들 주위에 둘러서서 잎이 높다랗게 달린 참나무의
연한 잎사귀를 뜯으며 신들께 기도했소. […]
그들은 기도를 마치고는 소들을 잡아 껍질을 벗긴 다음
넓적다리뼈들을 발라내어 그것들을 기름 조각에
두겹으로 싸고 다시 그 위에 날고기를 얹었소.
그리고 활활 타는 제물 위에 부어드릴 술이 없어서
대신 물을 부어드린 뒤에, 불 위에 내장을 구었소.
이윽고 넓적다리뼈들이 다 타자 그들은 내장을 맛보고 나서
나머지는 잘게 썰어 꼬챙이에 꿰었소.
바로 그때 달콤한 잠이 내 눈꺼풀을 떠나자
나는 날랜 배가 있는 바닷가로 걸어갔소.
내가 양 끝이 흰 배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기름 조각의 달콤한 냄새가 나를 완전히 에워쌌소.
그래서 나는 신음하며 불사신들을 향해 말했소.
“아버지 제우스와 그대들 영생하고 축복 받은 다른 신들이시여! 그대들은
틀림없이 나를 파멸시키려고 달콤한 잠으로 나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동안 뒤에 남아있던 내 전우들이 엄청난 일을 생각해냈으니까요!”
토론하기
(1) 우리는 살아가면서 실수로든, 혹은 고의로든 잘못은 범하곤 한다. 혹시 고의로 무엇인가 잘못을 범한 적이 있다면, 그때 어떤 변명을 생각하면서 잘못을 범했는지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자.
해설읽기
10년간 트로이아 전쟁을 치르고 난 뒤에, 다시 포세이돈의 저주로 10년간 온 세상을 떠돈 오뒷세우스는 이제 귀향의 마지막 고비에 해당되는 태양신 헬리오스의 섬 트리나키아에 도착한다. 오뒷세우스를 도왔던 여신과 예언자는 만일 그가 헬리오스의 소와 가축들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무사히 귀향할 것이지만, 반대로 헬리오스의 소와 가축을 죽이거나 잡아먹는다면 배와 병사를 모두 잃고 힘겹게 귀향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오뒷세우스는 위험 요소를 아예 없애기 위해서 트리나키아섬을 그냥 통과하려고 하지만, 부하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그들은 강력한 오뒷세우스와 달리, 오랜 항해로 지친 상태이고, 이미 해가 저문 상황에서 야간 항해는 너무나 위험하며, 오래 머물 것이 아니라 딱 하룻밤만 쉬고 이튿날 아침 일찍 출발하면 된다고 주장하며 오뒷세우스를 설득한다. 반박의 근거를 찾을 수 없었던 오뒷세우스는 부하들에게 절대로 헬리오스의 가축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맹세를 요구한 뒤에, 하룻밤 쉬어가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여신과 예언자가 오뒷세우스에게 거듭 경고한 것은 그리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신들이 보내는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가 섬에 정박한 순간 바람의 방향이 바뀌더니 동풍과 남풍만 불어대기 시작했다. 오뒷세우스가 배를 띄워 동쪽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서풍이 필요했다. 하지만 서풍은 단 한 차례도 불지 않았고, 트리나키아 섬에서의 체류 기간은 점점 길어져 갔다. 그 사이에 배에 실었던 식량은 모두 떨어지고 사람들은 굶주리게 되었다. 처음에 선원들은 자신들이 한 맹세를 떠올리며 낚시와 사냥 등으로 생계를 해결하려 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지쳐갔고 굶주림은 점점 더 심해졌다. 신들의 테스트는 ‘하룻밤만 머물고 떠나면 된다’라는 인간의 판단보다 훨씬 더 위에 있었던 것이다. 신들에게 기도를 하러 간 오뒷세우스가 잠에 취한 사이에, 부대의 이인자인 에우륄로코스는 은밀하게 부하들을 모아놓고는 맹세를 깨자며 다음과 같은 말로 설득한다. 첫째 그 어떤 죽음보다도 굶어 죽는 것이 가장 비참한 죽음이다. 둘째, 우리는 헬리오스의 소를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제물로 바치는 것이다. 또한 귀향하게 되면 헬리오스를 위한 신전을 지어드리자.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신이 분노해서 귀향하는 우리를 죽이려 한다면, 나는 굶어죽느니 차라리 물에 빠져 죽는 쪽을 택할 것이다. 부하들은 모두 에우륄로코스의 말에 설득되었고, 태양신의 소를 도축하여 잡아먹게 된다. 결국 여신과 예언자의 경고와 오뒷세우스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료들과 배는 파멸을 맞이할 운명에 처하게 된다.
<오뒷세이아>가 주는 교훈 중 하나는 바로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경고이다. 인간보다 훨씬 더 멀리 내다보는 신들과 예언자들은 인간의 불행한 미래를 경고해주지만, 인간은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눈앞의 쾌락이나 고통에 흔들리며 스스로 파멸의 길로 빠져든다는 것이다. 트리나키아 섬에서 하룻밤만 쉬고 가자고 할 때는 그 누구도, 심지어는 오뒷세우스 자신도 바람의 방향이 바뀔 가능성을 상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체류가 길어지면서 식량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굶주리기 시작하자, 신들의 경고는 점점 흐릿해지고, 그 대신 눈앞의 가축들에 대한 식욕은 점점 더 커지고 분명해져 갔다. 에우륄로코스의 연설은 욕구의 합리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먼저 그는 헬리오스의 소를 ‘잡아먹는다’라는 표현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인간이 신의 물건을 탐하는 것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불경이기 때문이다. 그대신 그는 소를 ‘제물로 바치자’라고 말한다. 그리스의 종교 제의에서는 제단에서 소를 도살한 뒤에 뼈를 태워 신들에게 바치고 남은 고기는 사람들이 나눠 먹는다. 결국 소를 ‘제물로 바치자’라는 말은 사실상 소를 ‘잡아먹자’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핵심적인 문제는 그 소가 이미 헬리오스 소유라는 것이다. 제물이란 인간의 소율물을 신에게 바치는 것이지, 이미 신의 소유인 것을 다시 신에게 바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에우륄로코스는 동료들의 마음 속에서 불경에 대한 두려움과 후회를 없애기 위해 신의 소를 잡아먹자고 말하지 않고 제물로 바치자고 제안한 것이다.
다음으로 그는 헬리오스의 소를 잡아먹는 행위를 ‘도둑질’이 아니라, 마치 ‘교환’ 내지는 ‘거래’ 행위처럼 묘사한다. 왜냐하면 이타케에 돌아가거든 헬리오스를 위해 신전을 건립하고 보물을 넣어드릴 것이기 때문이다. 즉 자기들은 결코 신의 것을 날로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먼저 신의 소를 먹을 뿐이요, 나중에 신전 건립과 보물로서 그 값을 치르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 역시 용서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교환이나 거래는 당사자들 간의 합의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거래의 대상이 인간보다 우월한 신이라고 한다면, 신의 허락도 받지 않고서 인간들 마음대로 신의 물건을 선취하는 것은 결코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를 때 자기가 의식적으로 잘못을 저지른다고 말하기를 꺼린다. 예컨대 신호 위반으로 단속에 걸린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신호등을 못봤다’라든가, ‘내가 지나갈 때는 신호가 바뀌기 직전이었다’라고 말하지, ‘신호가 바뀐 줄 알면서도 위반했다’라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있다 하더라도 ‘급한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위반한 것이지 고의는 아니었다’라고 변명한다. 즉 대개의 사람들은 사회 통념상 잘못으로 간주되는 일을 고의로 저지르지는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에우륄로코스의 발언은 ‘도둑질’을 ‘교환’으로 바꿈으로써 동료들이 갖게 될 죄의식과 가책을 완화시키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즉 사람들의 마음 속에 집단적인 알리바이를 만들어주는 것이라 하겠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것은 죽음의 선택이다. 에우륄로코스는 모든 죽음 가운데 굶어죽는 것이 가장 비참한 죽음이라고 말하면서 연설을 시작한다. 그리고 정 죽어야 한다면 굶어죽느니 차라리 물에 빠져 죽는 쪽을 택하겠노라고 말하면서 연설을 마친다. 그리고 모든 동료들은 에우륄로코스의 발언에 동조한다. 그런데 과연 굶어죽는 것이 가장 비참한 죽음일까? 따지고 보면 아사보다 더 고통스럽고 더 잔인한 죽음도 얼마든지 있지 않을까? 사실 에우륄로코스는 여기서 당면한 고통(배고픔)과 임박한 죽음(굶어 죽음)을 멀리 있는 고통(항해하다가 폭풍을 만남)과 막연한 죽음(물에 빠져 죽음)과 대비시키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천수를 누린 뒤에 늙어 죽는 경우도 있고, 눈앞의 테러범에게 살해당하는 수도 있다.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그 고통이나 공포의 강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후자가 강하다. 오뒷세우스 일행은 지금 죽을 정도로 배고픔의 고통을 겪고 있다. 이들에게 굶어죽는다는 것은 매우 가까이 있는 죽음의 공포라 할 수 있다. 반면에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죽는다는 것은 아직 겪고 있는 고통도 아닐뿐더러 그로 인한 죽음의 공포 역시 다소 막연하고 추상적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재 육지에 있기 때문이다. 선원들은 맹세를 어기고 소를 잡아먹을 경우, 헬리오스가 모두를 죽일 수 있다고 두려워 한다. 그러나 태양신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그들을 죽일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항해 중에 익사시킬 수도 있고, 훨썬 더 먼 훗날 죽일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안 죽일지도 모른다. 반면에 그들이 겪고 있는 배고픔의 고통은 강렬하며, 그로 인한 죽음의 공포 역시 매우 구체적이며 임박한 것처럼 느껴진다. 에우륄로코스의 발언은 이러한 심리를 이용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이렇게 죽나 저렇게 죽나, 어차피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임박한 죽음보다는 멀리 있는 죽음을 선택하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이다.
그런데 에우륄로코스의 제안에는 커다란 함정이 숨어있다. 그것은 배고픔의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다. 섬에 도착한 순간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선원들이 굶주리게 된 것은 신들이 인간에게 내린 시련과 고통이겠지만, 그로부터 모두가 굶어죽으리라는 결론은 도출되지 않는다. 오히려 예언은 그들이 소를 먹지 않을 경우 무사 귀향을 약속하고 있다. 반면에 예언은 신의 가축을 탐할 경우 오뒷세우스를 제외한 모두의 파멸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선원들에게는 신들의 경고보다 당면한 고통이 훨씬 더 크게 보였다. 그 결과 에우륄로코스는 배고픔의 고통을 코앞에 닥친 죽음으로 바꾸고, 신의 저주로 인한 파멸을 막연하고 추상적인 죽음처럼 취급함으로써, 선원들이 한결 마음 편하게 맹세를 어기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어쩌면 오뒷세이아가 위의 대목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려 한 것은 눈앞의 욕구를 이기지 못하고 신들이 금지한 일을 범하면서도, 잘못된 정당화를 통해 마음의 부담을 덜어내려 하는 인간의 나약한 본성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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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 운명, 의지,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