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포틀래치(potlatch)는 콰키우틀 족 등 캐나다와 미국의 접경지대인 북서태평양 연안의 인디언들이 행하는 ‘잔치’의 일종이다. 사회적 지위에 걸맞게 많은 음식과 일용품 등을 장만하여 손님에게 대접하거나 선물한다. 손님 앞에서 파괴하는 퍼포먼스도 행하기도 한다. 이는 부와 지위를 과시함으로써 개인의 정치․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확대해 주는 동시에, 집단 내 재분배를 통해 재화를 순환시켜 축적을 방지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억제하는 기능을 갖는다.
고전본문
주어야 하는 의무를 수행하는 것은 포틀래치의 본질이다. 추장은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 자신의 아들이나 사위와 딸을 위해서, 또는 죽은 자들을 위해서 포틀래치를 베풀지 않으면 안 된다. 추장은 자신이 정령과 재산의 비호를 받고 있으며, 또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때에만 부족과 마을, 가족에 대해 권위를 갖고, 또 추장들 사이에서도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그가 재산을 증명하는 방법은 자신의 재산을 소비하고 분배해 다른 사람들의 자존심을 꺾고 ‘자신의 명성의 그림자’로 뒤덮어버리는 것이다.
콰키우틀족과 하이다족의 귀족은 중국의 문인이나 관리처럼 ‘체면’ 관념을 갖고 있다. 그들 신화에서 포틀래치를 베풀지 않는 대(大)추장은 ‘썩은 얼굴’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이들 사회는 누구나 주려고 안달한다. 겨울의 의식과 모임 외에도 친구들을 초대하여 신이나 토템에게서 얻은 사냥물이나 따온 과일을 나누어야 하고, 포틀래치에서 얻어온 것을 친구들에게 재분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누군가에게 봉사를 받았을 때는 반드시 선물로 감사 표시를 해야 한다. 이런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적어도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 되며 귀족의 경우는 지위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
받아야 하는 의무는 주어야 하는 의무만큼이나 강제적이다. 증여받기를 거부하거나 포틀래치에 초대되는 것을 거부할 권리는 없다.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답례를 하지 못해 ‘코가 납작해질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는 것은 그의 이름이 ‘권위를 상실하는’ 것이며, 또 자기가 먼저 졌다는 것을 자백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반대로 자신이 승리자이며 무적이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 사람들은 선물을 ‘짊어져야 하는 귀찮은 것’으로 받는다. 도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떤 물건이나 잔치에서 받는 이익 이상의 것을 선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그것에 대해 답례할 확신이 있으며, 자기도 그에 못지않게 더 많이 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 <증여론> 2장 中
토론하기
1. 포틀래치를 통해 받은 선물에 대해 보답을 해야 하는 것이 의무적이고 강제적이라면, 이것은 현대의 신용거래와 같다고 보아야 할까? 현대 신용거래와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얘기해 보자.
2. 친구 생일에 손수 그린 그림을 선물로 주었는데 친구는 나의 생일 때 문구점에서 볼펜을 선물로 사주었다. 혹은 나는 2만 원짜리 물건을 선물했는데 친구는 나에게 5천 원짜리 물건을 선물했다. 이럴 경우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보자.
3. 원하는 시험에 붙거나 좋은 일이 생기면, 보통 한턱낸다고 말한다. 이런 문화가 생긴 이유를 포틀래치와 관련하여 설명해 보자.
해설읽기
시장경제가 시장에서의 등가교환을 통해 생산과 소비를 조절하는 시스템이라고 한다면, 마르셀 모스는 [증여론]에서 시장의 교환 이외에도 생산과 분배를 조직화할 수 있는 다른 원리를 탐색하고자 했다. 그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원시’ 사회의 흔적을 간직한 북서태평양 연안의 인디언 부족에 관한 현지조사 보고서를 검토하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그들은 물건(상품)을 사고팔아서 이익을 얻기 위한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물주기 경쟁을 한다는 사실이다. 상품을 사고파는 것을 통해서만 작동하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 외에도 한 사회의 물질적 재화를 조직화하는 방법으로 발견한 것은 증여, 곧 선물의 방식이다.
치누트 인디언 말로 ‘식사를 제공하다’, ‘소비하다’를 뜻하는 포틀래치는 선물 경쟁 게임으로 이해할 수 있다. 포틀래치를 베푸는 사람은 결혼식이나 장례식과 같은 일상 의례나 각종 축하할 만한 일로 잔치를 열어 초대한 사람들을 실컷 먹이고 선물을 제공한다. 포틀래치를 위해 주로 제공되는 물품은 카누, 담요, 동판, 가죽 등이다. 일단 초대를 받으면 초대에 응해야 하며, 잔치에서 받은 것 이상으로 되돌려 줘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마치 경기에서 진 것처럼 분해하거나 수치감을 느낀다. 주는 쪽이든 답례하는 쪽이든 더 크게 증여할수록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경쟁이 지나쳐서 심지어 자신은 이런 물건들은 하등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물건을 바다 속에 던지는 파괴 행위도 일삼는다.
이런 방식으로 선물을 주고받고 하는 선물의 연쇄 시스템은 [증여론]에 나오는 인디언 부족의 사례만은 아니다. 우리의 경우에도 관혼상제의 행사는 물론, 돌잔치나 환갑잔치 등에서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많은 사람을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풍부히 제공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일상적 의례만이 아니라 이와 같은 증여는 우리 일상의 다양한 활동을 포괄한다. 연말연시나 크리스마스 때의 선물,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 선물주기 또는 생일을 맞아 한턱내기, 매달 친구들과 번갈아가며 떡볶이 사주기, 원하는 시험에 합격하거나 좋은 일이 생길 때 여는 파티, 불우이웃을 위한 성금이나 봉사활동, 헌혈, 재산의 사회 환원 등. 작은 선물에서부터 한턱내는 파티, 재산의 사회 환원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선물 혹은 증여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
선물과 증여는 개인의 선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스에 따르면 이런 활동은 한 사회를 조직하고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구조이기도 하다. 선물을 주고받는 시스템에 들어감으로써, 사람들은 고립과 단절을 피하고 소속감을 가질 수 있다. 부족 간에는 서로 호혜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증표이며 전쟁과 같은 갈등적 상황을 막을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동맹계약서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잔치를 열어 사람들을 대접하고 선물을 주는 것은 증여자의 명예와 위신을 높이는 활동이다. 대접을 받은 사람은 또 다시 그와 같은 잔치를 베풀어 자신이 축적하고 있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제공함으로써 부의 축적을 방지하고 순환시킨다.
정치적 권력을 가진 추장이 베풀지 않으면 ‘썩은 얼굴’이라는 모욕이 주어지는 것은 특히 흥미롭다. 정치적 권력을 가진 추장 또한 물질적 재산이 권위의 징표로서 과시될 필요가 있지만 그것은 소유와 축적을 통해서가 아니라 포틀래치를 통해 타인을 대접하거나 선물하고 심지어 파괴하는 것을 통해 확인된다. 이는 정치적 권력을 가진 자가 경제적 권력까지 소유하는 것에 대한 방지 장치라고 추론할 수 있다.
답례를 하지 않으면 위신을 잃게 되어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의무이고 강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규범적 수준의 것이며 현대 사회처럼 법적인 강제가 뒤따르는 것은 아니다. 이런 규범적 강제를 통해 기대되는 것은 선물을 주고받는 사이클 안에 편입되는 것 곧 선물을 매개로 하여 공동체의 성원들과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앞서 본 것처럼 이와 같은 사회적 관계의 형성은 고립과 전쟁을 막아주는 기능을 할 뿐 아니라 정치적 권력을 가진 추장 등 특정인에게 경제적 부가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도 갖는다.
포틀래치와 같은 선물과 증여 시스템이 말해주는 것은 아주 최근에 서구 사회가 인간을 ‘경제적 동물’로 만들어버렸지만 실은 인간은 매우 오랫동안 다른 존재였다는 사실이다. 이익을 위해서 교환하고 거래하는 것이 마치 인간의 본성처럼 간주되고 있지만, 인간은 그 이전에는 명예와 위신을 위해서 ‘경쟁적으로’ 서로에게 선물을 증여하는 존재이기도 했으며 그것은 개인의 규범이나 의무이면서 동시에 사회가 조직되는 방식이기도 했다. 실제로 수천 년간 문명사회에서 살아온 인간이 이해타산을 따지는 ‘계산기’가 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선물’이나 비합리적 지출과 같은 관행과 풍습이 남아 있다는 점은 이익만을 추구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키워드
경쟁, 과시, 교환, 마르셀 모스, 선물, 순환, 연대, 위신, 증여, 포틀래치, 호모 에코노미쿠스
전후맥락
포틀래치(potlatch)는 콰키우틀 족 등 캐나다와 미국의 접경지대인 북서태평양 연안의 인디언들이 행하는 ‘잔치’의 일종이다. 사회적 지위에 걸맞게 많은 음식과 일용품 등을 장만하여 손님에게 대접하거나 선물한다. 손님 앞에서 파괴하는 퍼포먼스도 행하기도 한다. 이는 부와 지위를 과시함으로써 개인의 정치․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확대해 주는 동시에, 집단 내 재분배를 통해 재화를 순환시켜 축적을 방지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억제하는 기능을 갖는다.
고전본문
주어야 하는 의무를 수행하는 것은 포틀래치의 본질이다. 추장은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 자신의 아들이나 사위와 딸을 위해서, 또는 죽은 자들을 위해서 포틀래치를 베풀지 않으면 안 된다. 추장은 자신이 정령과 재산의 비호를 받고 있으며, 또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때에만 부족과 마을, 가족에 대해 권위를 갖고, 또 추장들 사이에서도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그가 재산을 증명하는 방법은 자신의 재산을 소비하고 분배해 다른 사람들의 자존심을 꺾고 ‘자신의 명성의 그림자’로 뒤덮어버리는 것이다.
콰키우틀족과 하이다족의 귀족은 중국의 문인이나 관리처럼 ‘체면’ 관념을 갖고 있다. 그들 신화에서 포틀래치를 베풀지 않는 대(大)추장은 ‘썩은 얼굴’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이들 사회는 누구나 주려고 안달한다. 겨울의 의식과 모임 외에도 친구들을 초대하여 신이나 토템에게서 얻은 사냥물이나 따온 과일을 나누어야 하고, 포틀래치에서 얻어온 것을 친구들에게 재분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누군가에게 봉사를 받았을 때는 반드시 선물로 감사 표시를 해야 한다. 이런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적어도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 되며 귀족의 경우는 지위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
받아야 하는 의무는 주어야 하는 의무만큼이나 강제적이다. 증여받기를 거부하거나 포틀래치에 초대되는 것을 거부할 권리는 없다.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답례를 하지 못해 ‘코가 납작해질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는 것은 그의 이름이 ‘권위를 상실하는’ 것이며, 또 자기가 먼저 졌다는 것을 자백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반대로 자신이 승리자이며 무적이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 사람들은 선물을 ‘짊어져야 하는 귀찮은 것’으로 받는다. 도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떤 물건이나 잔치에서 받는 이익 이상의 것을 선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그것에 대해 답례할 확신이 있으며, 자기도 그에 못지않게 더 많이 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 <증여론> 2장 中
토론하기
1. 포틀래치를 통해 받은 선물에 대해 보답을 해야 하는 것이 의무적이고 강제적이라면, 이것은 현대의 신용거래와 같다고 보아야 할까? 현대 신용거래와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얘기해 보자.
2. 친구 생일에 손수 그린 그림을 선물로 주었는데 친구는 나의 생일 때 문구점에서 볼펜을 선물로 사주었다. 혹은 나는 2만 원짜리 물건을 선물했는데 친구는 나에게 5천 원짜리 물건을 선물했다. 이럴 경우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보자.
3. 원하는 시험에 붙거나 좋은 일이 생기면, 보통 한턱낸다고 말한다. 이런 문화가 생긴 이유를 포틀래치와 관련하여 설명해 보자.
해설읽기
시장경제가 시장에서의 등가교환을 통해 생산과 소비를 조절하는 시스템이라고 한다면, 마르셀 모스는 [증여론]에서 시장의 교환 이외에도 생산과 분배를 조직화할 수 있는 다른 원리를 탐색하고자 했다. 그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원시’ 사회의 흔적을 간직한 북서태평양 연안의 인디언 부족에 관한 현지조사 보고서를 검토하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그들은 물건(상품)을 사고팔아서 이익을 얻기 위한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물주기 경쟁을 한다는 사실이다. 상품을 사고파는 것을 통해서만 작동하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 외에도 한 사회의 물질적 재화를 조직화하는 방법으로 발견한 것은 증여, 곧 선물의 방식이다.
치누트 인디언 말로 ‘식사를 제공하다’, ‘소비하다’를 뜻하는 포틀래치는 선물 경쟁 게임으로 이해할 수 있다. 포틀래치를 베푸는 사람은 결혼식이나 장례식과 같은 일상 의례나 각종 축하할 만한 일로 잔치를 열어 초대한 사람들을 실컷 먹이고 선물을 제공한다. 포틀래치를 위해 주로 제공되는 물품은 카누, 담요, 동판, 가죽 등이다. 일단 초대를 받으면 초대에 응해야 하며, 잔치에서 받은 것 이상으로 되돌려 줘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마치 경기에서 진 것처럼 분해하거나 수치감을 느낀다. 주는 쪽이든 답례하는 쪽이든 더 크게 증여할수록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경쟁이 지나쳐서 심지어 자신은 이런 물건들은 하등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물건을 바다 속에 던지는 파괴 행위도 일삼는다.
이런 방식으로 선물을 주고받고 하는 선물의 연쇄 시스템은 [증여론]에 나오는 인디언 부족의 사례만은 아니다. 우리의 경우에도 관혼상제의 행사는 물론, 돌잔치나 환갑잔치 등에서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많은 사람을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풍부히 제공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일상적 의례만이 아니라 이와 같은 증여는 우리 일상의 다양한 활동을 포괄한다. 연말연시나 크리스마스 때의 선물,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 선물주기 또는 생일을 맞아 한턱내기, 매달 친구들과 번갈아가며 떡볶이 사주기, 원하는 시험에 합격하거나 좋은 일이 생길 때 여는 파티, 불우이웃을 위한 성금이나 봉사활동, 헌혈, 재산의 사회 환원 등. 작은 선물에서부터 한턱내는 파티, 재산의 사회 환원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선물 혹은 증여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
선물과 증여는 개인의 선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스에 따르면 이런 활동은 한 사회를 조직하고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구조이기도 하다. 선물을 주고받는 시스템에 들어감으로써, 사람들은 고립과 단절을 피하고 소속감을 가질 수 있다. 부족 간에는 서로 호혜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증표이며 전쟁과 같은 갈등적 상황을 막을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동맹계약서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잔치를 열어 사람들을 대접하고 선물을 주는 것은 증여자의 명예와 위신을 높이는 활동이다. 대접을 받은 사람은 또 다시 그와 같은 잔치를 베풀어 자신이 축적하고 있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제공함으로써 부의 축적을 방지하고 순환시킨다.
정치적 권력을 가진 추장이 베풀지 않으면 ‘썩은 얼굴’이라는 모욕이 주어지는 것은 특히 흥미롭다. 정치적 권력을 가진 추장 또한 물질적 재산이 권위의 징표로서 과시될 필요가 있지만 그것은 소유와 축적을 통해서가 아니라 포틀래치를 통해 타인을 대접하거나 선물하고 심지어 파괴하는 것을 통해 확인된다. 이는 정치적 권력을 가진 자가 경제적 권력까지 소유하는 것에 대한 방지 장치라고 추론할 수 있다.
답례를 하지 않으면 위신을 잃게 되어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의무이고 강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규범적 수준의 것이며 현대 사회처럼 법적인 강제가 뒤따르는 것은 아니다. 이런 규범적 강제를 통해 기대되는 것은 선물을 주고받는 사이클 안에 편입되는 것 곧 선물을 매개로 하여 공동체의 성원들과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앞서 본 것처럼 이와 같은 사회적 관계의 형성은 고립과 전쟁을 막아주는 기능을 할 뿐 아니라 정치적 권력을 가진 추장 등 특정인에게 경제적 부가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도 갖는다.
포틀래치와 같은 선물과 증여 시스템이 말해주는 것은 아주 최근에 서구 사회가 인간을 ‘경제적 동물’로 만들어버렸지만 실은 인간은 매우 오랫동안 다른 존재였다는 사실이다. 이익을 위해서 교환하고 거래하는 것이 마치 인간의 본성처럼 간주되고 있지만, 인간은 그 이전에는 명예와 위신을 위해서 ‘경쟁적으로’ 서로에게 선물을 증여하는 존재이기도 했으며 그것은 개인의 규범이나 의무이면서 동시에 사회가 조직되는 방식이기도 했다. 실제로 수천 년간 문명사회에서 살아온 인간이 이해타산을 따지는 ‘계산기’가 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선물’이나 비합리적 지출과 같은 관행과 풍습이 남아 있다는 점은 이익만을 추구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키워드
경쟁, 과시, 교환, 마르셀 모스, 선물, 순환, 연대, 위신, 증여, 포틀래치, 호모 에코노미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