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에밀은 장 자끄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의 유명한 교육 소설의 제목이자 그 소설의 주인공이다. 이 소설은 고아인 에밀이 유아기에서 성년기에 이르기까지 신체적,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에밀을 지도하는 교사는 에밀이 타고난 자연적 본성에 따라서 스스로 성장하도록 인도한다. 유아기에는 자연스럽게 신체가 발달하도록 과도하게 보호해서는 안 된다. 아동기에는 책을 통한 공부보다는 세상을 감각적으로 직접 경험하게 해야 한다. 소년기는 배움을 시작하는 단계이지만 추상적인 개념을 억지로 주입시키기는 것보다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 일반화하는 능력을 키워줄 필요가 있다. 루소가 다음 글에서 다루는 청소년기는 인생의 첫 전환기로 고립된 인간에서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정서적 자질을 갖추는 시기이다. 이 시기를 지나 성년기의 에밀은 소피라는 여성과 관계를 통해 성장을 마무리하게 된다.
고전본문
청소년기는 복수심에도 증오에도 물들어 있지 않은 시기이다. 이 시기는 동정심, 온화함 그리고 관대한 덕성을 갖춘 시기이다. 그렇다. 나는 이 주장을 지지한다. 좋지 못한 환경에서 태어나지만 않았다면 스무 살 때까지 순수성을 간직한 아이는 이 시기에 가장 관대하고, 가장 착하고, 가장 사랑이 많고, 가장 다정다감한 아이이다. 이 사실이 경험을 통해 부정된다 해도 나는 겁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식의 말을 당신이 결코 들어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당신네 철학자들은 부패한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이에 대해 듣지 못했다.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은 바로 그의 연약함이다. 우리의 가슴에 인간에 대한 사랑을 심어 주는 것은 우리가 함께 겪고 있는 비참한 일들이다. 우리가 만일 인간이 아니라면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것도 빚진 것이 없을 것이다. 모든 애정은 무언가 부족한 상태에 대한 표시이다. 우리 각자가 다른 사람들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다른 이들과 연대하는 것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연약함에서도 우리의 일시적인 행복이 생겨난다. 진정 행복한 인간은 고독한 인간이다. 오직 신만이 절대적인 행복을 누린다. 하지만 우리들 가운데 누가 그런 행복에 대해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어떤 불완전한 인간이 스스로 충분하다고 하면, 우리가 보기에 그는 도대체 무엇을 누리고 있단 말인가? 그는 외롭고 비참할 것이다. 나는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것을 사랑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것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 이웃에 대해서 애정을 갖게 되는 것은 그들의 즐거움들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에 대한 감정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고통 속에서 우리가 같은 본성을 지니고 있음을 더 잘 알게 되고, 그들도 또한 우리에 대해서 애정을 갖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공동의 필요들이 우리를 이익을 통해서 묶어준다면, 우리의 불행들은 사랑으로 우리를 하나가 되게 한다.(중략) 상상력은 행복한 사람의 자리보다는 불행에 처한 사람의 자리로 우리를 인도한다. 우리는 불행한 상태에 처해 있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가까이 있다고 느낀다.
-장 자끄 루소, <에밀> 제4부 중에서
토론하기
1. 인간을 ‘이성적 동물’로 규정한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루소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인간을 이성적인 인간보다 더 이상적인 인간으로 여기고 있다. 이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2. 모든 인간의 마음은 정도의 차이일 뿐 자기 보존 본능에서 나오는 자기애와 자기중심적 성향인 이기심 사이에 오가고 있다. 당신의 마음은 그 중간 어디에 위치하고 있습니까?
3. 각자도생(各自圖生)*은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자기의 삶만을 살아가기 바쁜 우리에게 루소의 진단과 그가 제시한 대안은 어떤 의의가 있을까요?
*각자도생(各自圖生): 각자 제 살길만 찾음
해설읽기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충고는 그의 교육학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는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은 자연적인 능력과 리듬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보호하거나 개입하게 되면 스스로 가지고 있는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훼손시킬 수 있다. 루소에게 자연은 사회와 대립되는 개념이다. 인간이 원래 자연상태에 있었을 때는 자족한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 모여 살게 되면서 타인의 시선이 자신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었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 살면서 비교와 경쟁의식에 짓눌려 살게 된 것이다.
루소에 따르면 사회가 형성되기 전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어린아이처럼 자기 보존 욕구를 갖고 있었다. 루소를 이 욕구를 자기애(自己愛)라고 표현했고 이 욕구는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회 속에서 자신을 보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욕구인 자기애는 타인과의 비교의식 속에서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으로 변질되었다.
루소는 자연상태 속에서 인간의 자기애가 이기심으로 변하지 않았던 것은 자연 상태의 인간이 다른 사람에 대한 동정심(同情心)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은 타인도 자신처럼 자기애를 가진 존재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따라서 동정심은 자기에 대한 사랑을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확대시킬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루소의 생각이다.
루소는 사회상태 속의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갖고 있었던 덕성을 교육을 통해서 회복하기를 소망했다. 다시 말해, 그는 인간이 자기를 존중하고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타인에게 따뜻한 마음을 갖기를 원했다. 루소 이전의 근대 사상가들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생각하는 능력, 즉 이성(理性)에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이성을 잘 활용하면 인류가 진보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루소가 보기에 이들은 인간을 잘못 진단하였다. 오히려 그는 타인에 대한 따뜻한 공감의 태도가 진정한 인간성의 기초라고 생각한다. 이 정서를 바탕으로 지성이 활용되어야지 지성이 앞서게 되면, 그것은 인간의 탐욕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그는 자연 상태의 선량한 미개인과 닮은 인간을 양성하는 길을 정치와 교육에서 찾았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이라는 책에서 사회의 공동 이익을 대변하는 ‘일반의지’에 개인적인 의지를 복종시키는 근대 민주주의 사회를 구상했다. 하지만 개개인은 완고한 자기중심적 성향을 갖고 있어서 이런 사회가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민주주의 사회에 알맞은 덕성을 지닌 인간을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로 <에밀>은 이 사회에 적합한 인간으로 훈육하기 위한 안내서이다. 위 인용문에서 다루는 청소년기는 자기를 보존하려는 욕구에 의해서 지배를 받는 아이의 단계에서 타인에 대한 동정심을 가진 인간으로 성장해야 하는 단계이다. 청소년기에는 삶의 비참함과 고통에 대해서 조금씩 경험하게 된다. 이 개인적인 경험을 모든 인간의 고통으로 확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인간이 같은 고통 속에 있음을 알게 되고, 그 고통에 대한 동정심을 갖게 되면 자기애는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확대되게 된다.
동정심이 자기애를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확대시키는 디딤돌이라면, 상상력은 이 추상적인 인류애를 구체적인 대상에 적용하게 한다. 이 능력을 통해 인간은 타인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 그 고통에 정서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상호 의존과 사랑 속에서 서로의 삶을 지탱해 줄 수 있게 될 것이다.
키워드
동정심, 사회상태, 상상력, 이기심, 자기애, 자연 상태
전후맥락
에밀은 장 자끄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의 유명한 교육 소설의 제목이자 그 소설의 주인공이다. 이 소설은 고아인 에밀이 유아기에서 성년기에 이르기까지 신체적,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에밀을 지도하는 교사는 에밀이 타고난 자연적 본성에 따라서 스스로 성장하도록 인도한다. 유아기에는 자연스럽게 신체가 발달하도록 과도하게 보호해서는 안 된다. 아동기에는 책을 통한 공부보다는 세상을 감각적으로 직접 경험하게 해야 한다. 소년기는 배움을 시작하는 단계이지만 추상적인 개념을 억지로 주입시키기는 것보다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 일반화하는 능력을 키워줄 필요가 있다. 루소가 다음 글에서 다루는 청소년기는 인생의 첫 전환기로 고립된 인간에서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정서적 자질을 갖추는 시기이다. 이 시기를 지나 성년기의 에밀은 소피라는 여성과 관계를 통해 성장을 마무리하게 된다.
고전본문
청소년기는 복수심에도 증오에도 물들어 있지 않은 시기이다. 이 시기는 동정심, 온화함 그리고 관대한 덕성을 갖춘 시기이다. 그렇다. 나는 이 주장을 지지한다. 좋지 못한 환경에서 태어나지만 않았다면 스무 살 때까지 순수성을 간직한 아이는 이 시기에 가장 관대하고, 가장 착하고, 가장 사랑이 많고, 가장 다정다감한 아이이다. 이 사실이 경험을 통해 부정된다 해도 나는 겁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식의 말을 당신이 결코 들어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당신네 철학자들은 부패한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이에 대해 듣지 못했다.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은 바로 그의 연약함이다. 우리의 가슴에 인간에 대한 사랑을 심어 주는 것은 우리가 함께 겪고 있는 비참한 일들이다. 우리가 만일 인간이 아니라면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것도 빚진 것이 없을 것이다. 모든 애정은 무언가 부족한 상태에 대한 표시이다. 우리 각자가 다른 사람들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다른 이들과 연대하는 것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연약함에서도 우리의 일시적인 행복이 생겨난다. 진정 행복한 인간은 고독한 인간이다. 오직 신만이 절대적인 행복을 누린다. 하지만 우리들 가운데 누가 그런 행복에 대해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어떤 불완전한 인간이 스스로 충분하다고 하면, 우리가 보기에 그는 도대체 무엇을 누리고 있단 말인가? 그는 외롭고 비참할 것이다. 나는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것을 사랑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것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 이웃에 대해서 애정을 갖게 되는 것은 그들의 즐거움들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에 대한 감정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고통 속에서 우리가 같은 본성을 지니고 있음을 더 잘 알게 되고, 그들도 또한 우리에 대해서 애정을 갖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공동의 필요들이 우리를 이익을 통해서 묶어준다면, 우리의 불행들은 사랑으로 우리를 하나가 되게 한다.(중략) 상상력은 행복한 사람의 자리보다는 불행에 처한 사람의 자리로 우리를 인도한다. 우리는 불행한 상태에 처해 있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가까이 있다고 느낀다.
-장 자끄 루소, <에밀> 제4부 중에서
토론하기
1. 인간을 ‘이성적 동물’로 규정한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루소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인간을 이성적인 인간보다 더 이상적인 인간으로 여기고 있다. 이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2. 모든 인간의 마음은 정도의 차이일 뿐 자기 보존 본능에서 나오는 자기애와 자기중심적 성향인 이기심 사이에 오가고 있다. 당신의 마음은 그 중간 어디에 위치하고 있습니까?
3. 각자도생(各自圖生)*은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자기의 삶만을 살아가기 바쁜 우리에게 루소의 진단과 그가 제시한 대안은 어떤 의의가 있을까요?
*각자도생(各自圖生): 각자 제 살길만 찾음
해설읽기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충고는 그의 교육학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는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은 자연적인 능력과 리듬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보호하거나 개입하게 되면 스스로 가지고 있는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훼손시킬 수 있다. 루소에게 자연은 사회와 대립되는 개념이다. 인간이 원래 자연상태에 있었을 때는 자족한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 모여 살게 되면서 타인의 시선이 자신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었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 살면서 비교와 경쟁의식에 짓눌려 살게 된 것이다.
루소에 따르면 사회가 형성되기 전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어린아이처럼 자기 보존 욕구를 갖고 있었다. 루소를 이 욕구를 자기애(自己愛)라고 표현했고 이 욕구는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회 속에서 자신을 보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욕구인 자기애는 타인과의 비교의식 속에서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으로 변질되었다.
루소는 자연상태 속에서 인간의 자기애가 이기심으로 변하지 않았던 것은 자연 상태의 인간이 다른 사람에 대한 동정심(同情心)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은 타인도 자신처럼 자기애를 가진 존재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따라서 동정심은 자기에 대한 사랑을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확대시킬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루소의 생각이다.
루소는 사회상태 속의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갖고 있었던 덕성을 교육을 통해서 회복하기를 소망했다. 다시 말해, 그는 인간이 자기를 존중하고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타인에게 따뜻한 마음을 갖기를 원했다. 루소 이전의 근대 사상가들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생각하는 능력, 즉 이성(理性)에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이성을 잘 활용하면 인류가 진보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루소가 보기에 이들은 인간을 잘못 진단하였다. 오히려 그는 타인에 대한 따뜻한 공감의 태도가 진정한 인간성의 기초라고 생각한다. 이 정서를 바탕으로 지성이 활용되어야지 지성이 앞서게 되면, 그것은 인간의 탐욕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그는 자연 상태의 선량한 미개인과 닮은 인간을 양성하는 길을 정치와 교육에서 찾았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이라는 책에서 사회의 공동 이익을 대변하는 ‘일반의지’에 개인적인 의지를 복종시키는 근대 민주주의 사회를 구상했다. 하지만 개개인은 완고한 자기중심적 성향을 갖고 있어서 이런 사회가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민주주의 사회에 알맞은 덕성을 지닌 인간을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로 <에밀>은 이 사회에 적합한 인간으로 훈육하기 위한 안내서이다. 위 인용문에서 다루는 청소년기는 자기를 보존하려는 욕구에 의해서 지배를 받는 아이의 단계에서 타인에 대한 동정심을 가진 인간으로 성장해야 하는 단계이다. 청소년기에는 삶의 비참함과 고통에 대해서 조금씩 경험하게 된다. 이 개인적인 경험을 모든 인간의 고통으로 확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인간이 같은 고통 속에 있음을 알게 되고, 그 고통에 대한 동정심을 갖게 되면 자기애는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확대되게 된다.
동정심이 자기애를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확대시키는 디딤돌이라면, 상상력은 이 추상적인 인류애를 구체적인 대상에 적용하게 한다. 이 능력을 통해 인간은 타인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 그 고통에 정서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상호 의존과 사랑 속에서 서로의 삶을 지탱해 줄 수 있게 될 것이다.
키워드
동정심, 사회상태, 상상력, 이기심, 자기애, 자연 상태